스님의하루

2018.10.8. 용성조사 오도일 제 132주년
“분별심을 어떻게 내려놓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이자 근대 한국 불교의 중흥조이신 용성진종(龍城 震鐘) 조사께서 깨달음을 얻으신지 132주년 되는 날입니다. 기념법회가 열린 전북 장수 죽림정사는 불심 도문 큰 스님이 용성 진종조사께서 태어나신 마을에 생가를 복원하고 지으신 사찰입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은 용성조사님의 손상좌이자 법륜스님의 스승이십니다.

어젯밤 김해에서 가야에 대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울산 두북에서 주무신 스님은 아침 일찍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맑은 하늘과 이제 막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산 아래 죽림정사에는 300여 명의 정토회 경전반 학생들과 정토회원들, 내 외빈들이 모여 활기를 띠었습니다. 죽림정사에 도착한 스님은 도문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기념법회를 찾아온 장수 군수 장영수 님과 전라북도 도의원 박용근 님과 함께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회에 앞서 다례제가 진행되었습니다. 다례제는 부처님의 법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달하기까지 과거 7 여래불과 69 조사, 7 대사 등에 대해 차 공양을 올리는 예식입니다. 스님과 대중 일동은 수많은 선지식들의 은공을 생각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고 다례를 지냈습니다.

이어서 10시 30분부터 용성조사 오도일 제 132주기 기념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불교행사의 기본인 삼귀의, 반야심경에 이어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대중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용성조사님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1864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이 해에는 최제우 대신사님께서 순교하셨습니다. 또 1862년부터 1864년 사이는 전국에 흉년이 들어 많은 아사자가 속출했고, 또 삼도 민중봉기가 일어났던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그런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출가하시고, 수도하시고, 교화하시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의 가장 중요한 활동을 꼽는다면, 첫째, 스스로 수행 정진하셔서 깨달음을 얻어 안심입명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좋은 법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지 않고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이 법을 만나서 안심입명(자신의 불성을 깨달아 마음이 편안함을 얻는 것)할 수 있도록 쉽고 바르게 불법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을 ‘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라고 하는데, 저희들에게 이런 3대 지침을 세워 주셨습니다.

또 복을 비는 불교에서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고 해탈 열반을 증득하는 불교로 나아갈 수 있도록 5대 수행 지침을 확립해 주셨고, 어려운 경전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을 해주셨습니다. 또 불교가 산중에만 있었는데 도성 가운데 대각교당을 여셔서 대중들이 생활 터전에서 불법을 만나 정진하도록 해주셨고, 삼귀의 오계를 받은 대중들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수행 정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성조사님을 ‘근대 한국 불교의 중흥조’라고 칭송합니다.

뿐만 아니라 둘째 나라가 점점 쇠락해지고 결국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만 형국에서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3.1 독립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여하셨을 뿐만 아니라, 돌아가실 때까지 줄곧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 애쓰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유훈에 따르면 ‘2025년부터 새로운 대한민국의 국운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이곳 죽림정사에서 ‘새로운 국가의 비전을 열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6년이 남았습니다. 새로운 국가의 비전이 뭐겠습니까? 바로 통일입니다. 이 예언대로라면 2024년에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게 되고, 아직 통일은 안 됐지만 이제는 통일로 갈 수밖에 없는 기회가 확정되고, 2025년부터는 통일로 가는 첫발을 내딛는 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 100년의 고난을 청산하고 미래의 희망 속에서 새로운 100년을 열 수 있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여기 참여하신 여러분들께서도 바른 불교를 위한 수행정진을 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나라가 평화롭고 통일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용성조사 오도일을 맞아서 새로운 다짐을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부터 통일의 그날까지, 불교가 바르게 정립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앞으로 꾸준히 정진해 나아갑시다.”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님께서 특별히 용성조사의 독립운동에 대해 강의해주었습니다. 박 전 교령님은 ‘3.1 운동은 세 종교(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하나 됨을 나타낸 것이며, 민족을 위하여 하나 된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3.1 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용성조사님의 업적을 알려주시며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어서 도문 큰스님은 기념 법문을 해주시며 “용성 스님의 뜻을 이어받아 민족 통일과 평화를 실현하고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안락하자”라고 설했습니다. 또 내년이면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도문 큰스님은 박남수 전 교령님과 법륜스님이 중심이 되어 "내년에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연합하고 국가에서 뒷받침하고 남북의 전 국민과 전 세계만방의 교포들이 함께하는 기미년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자.”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불교의 중흥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용성조사님. 도문 큰스님과 법륜스님은 오늘도 그 뜻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법회에 참석한 BBS 불교방송 선상신 사장은 "용성 조사님의 여러 가지 뜻을 전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오늘 기념법회에 참석하고 보니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며 축사를 하였습니다.

기념 법회가 끝나고 스님은 경전반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하였습니다. 용성스님께서 앞장섰던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가 지금 이 자리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질문자들은 경전 공부를 해나가는 한편 삶 속에서 느낀 어려움을 이야기하였고, 스님은 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중 ‘분별심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경전반 수업에서 분별을 하지 말라고 배웠는데요, 분별하지 말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엄마인 저한테 고함을 지를 때 화가 나는데요. 그럴 때 ‘아, 아이가 고함을 지르네’ 하고 그냥 지켜보는 것이 분별을 안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게 맞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묻는 것을 보니 모르네요.(모두 웃음) 자기가 딱 알아차린 것은 물을 게 없어져요.”

“네.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요. 분별하지 말자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조차 분별인지, 아니면 지켜보는 게 분별인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용어’에 걸려있습니다

“경전반 교재를 바꾸든지 해야겠어요. (모두 웃음) 경전반에 다니면서 용어나 지식을 배우게 되니까 다시 문자 병이 든 것 같아요. ‘분별’이라는 용어, ‘놓으라’ 하는 용어, ‘수행’이라는 용어, ‘공부’라는 용어, 이런 용어들을 지식으로만 접근하니까 지금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절에 안 다니는 사람들을 강연장에서 만나면 ‘분별이 뭡니까?’ 이런 질문을 안 해요. 그냥 ‘남편이 술을 마셔서 못 견디겠어요!’ 이렇게 구체적인 고민을 질문하니까 바로 대화가 됩니다. 이것은 다 지식 공부를 많이 해서 생긴 병이에요. 용어를 배워 와서 ‘이 용어가 맞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분별입니다.

지식적인 것은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됩니다. ‘아이가 고함을 치는데 가만히 있는 게 분별인가? 아닌 게 분별인가?’ 이렇게 접근하면 공부가 안 돼요.

애가 고함을 칠 때 ‘요게 조그마한 게 어디 엄마한테 고함을 치나?’ 이렇게 접근하면 괴롭잖아요. 이때 ‘요게 조그마한 게 어디 엄마한테 고함을 쳐?’ 이런 걸 분별이라고 해요. 그렇게 분별을 하니까 괴로워지는 거예요. 분별을 해서 괴로워하니까 ‘분별을 내려놓아라’라고 한 것인데, 이럴 때는 ‘분별이 뭐예요?’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접근하면 될까요?”

분별을 내려놓는 것

"‘분별을 내려놓아야지!’ 하는 것은 지식이고, 각오와 결심이에요. 수행은 각오하고 결심하는 게 아니에요. 이 모든 것은 다 망상이에요.

아이가 지금 고함을 치잖아요. 고함을 칠 때 ‘요게 어디서 엄마한테 대드냐?’ 이렇게 접근하면 괴로워집니다. 여기에는 엄마와 아이라는 인식이 벌써 들어가 있어요. 또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인식이 벌써 끼어 들어가 있어요. 이런 걸 분별이라 그래요.

그럼 분별을 내려놓는다는 건 뭘까요? ‘저게 어디 어른한테 까부냐?’ 이러면서 까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게 분별이 없는 게 아니에요. ‘아이고, 아이가 화가 났구나. 왜 화가 났지? 무엇 때문에 그래?’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분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가 화가 났는데도 내가 안 괴로워요. 왜 안 괴로울까요? 엄마니 자식이니 구분하지 않고, 옳으니 그르니 구분하지 않고 원인을 규명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큰소리치는 걸 보고 화가 났다면, 이 때는 ‘아이가 화가 났구나’ 이게 사실입니다. 사실을 향해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 후 ‘왜 화가 났을까?’ 연구를 해야죠. ‘무슨 일로 아이가 화가 났지?’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분별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겁니다. 화가 나면서도 그냥 가만히 보는 게 분별이 없는 게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네요.” (질문자 웃음)

왜 못 알아들을까요?

“지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못 알아듣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분별은 요거다!’, ‘YES, NO’, ‘맞다, 틀렸다’, 이렇게 자꾸 답을 원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부처님께 누가 찾아와서 ‘강가 강에서 목욕을 하면 업장이 다 녹고 천국에 태어난다는데 정말입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이런 경우에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답은 ‘YES’ 아니면 ‘NO’ 예요. 그래서 ‘천국에 안 태어난다’라고 하면 ‘왜 안 태어나느냐?’ 이렇게 다시 묻죠. 그럼 다른 사람에게도 찾아가서 또 물어야 돼요. 다른 사람이 ‘태어난다’ 그러면 방금 부처님은 안 태어난다고 하고 이 사람은 태어난다고 하니까 문제가 해결 안 됐잖아요. 지식은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그 사람 말이 맞다면 강가 강에 사는 물고기가 제일 먼저 하늘나라에 나겠구나.’

그러자 이 질문을 했던 사람이 탁 알아들어 버렸어요. 여기서 부처님이 ‘태어난다’, ‘안 태어난다’라는 답변을 안 했는데도 이 사람은 자기 고민이 해결되어버렸어요. 다른 사람한테 가서 다시 물을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이 강가 강에서 목욕하면 천국에 태어난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안 태어난다고 주장을 해도 이 사람은 이제 안 헷갈려요.

‘아, 저 사람은 저렇게 믿고 있구나. 그리고 이 사람은 이렇게 믿고 있구나.’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구름 타고 하늘을 나는 얘기가 아니에요. 모순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요게 조그마한 게 어디 엄마한테!’ 이렇게 접근을 하면 ‘이걸 봐줘야 하나, 안 봐줘야 하나’ 하는 갈등이 생겨요. 안 봐주고 야단을 치려니까 아이한테 상처될 것 같고, 가만히 내버려두려니까 버릇이 나빠질 것 같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됩니다. 분별에서 출발하니까 문제가 안 풀리는 거예요. 그러나 ‘아이고, 아이가 화가 났네? 왜 화가 났지?’ 이렇게 접근하면, 이걸 봐주느니 안 봐주느니, 버르장머리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가 아예 안 생깁니다.

그것을 용어로 말하면 이래요. 아이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났다면, 화가 난 걸 두고 ‘분별심을 일으켜서 화가 났다’라고 말하고, ‘아이가 왜 저러지?’ 이런 마음을 내는 걸 두고 ‘분별이 사라졌다’ 이렇게 말해요. 옳으니 그르니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분별이라고 합니다.

‘옳으니 그르니 하는 생각을 안 일으켜야 해!’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것이 분별을 없애는 게 아닙니다. 그건 분별을 없애야 한다는 또 하나의 분별을 내는 것뿐이에요. 이렇게 접근하면 여러분들의 병이 치유가 안 돼요. 그래서 즉문즉설이 필요한 거예요.

원리를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늘 아침에 자명종이 울리면 이불 밑에 누워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잖아요. ‘일어나야지!’를 100번 결심을 해도 그 사람은 아직 누워 있는 거예요. ‘일어나야지!’ 하는 건 노력이 아니라 번뇌예요. ‘일어나야지!’ 하는 망상을 피우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그걸 노력이라고 부르지만, 그런 노력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일어나야지!’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벌떡 일어나야 해요. 일어나버리면 ‘일어나야지!’ 하는 결심이나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일어나버리면 번뇌가 싹 없어져 버려요. 누워 있는 상태에서는 ‘일어나야지!’ 하고 밤새도록 노력해도 번뇌가 끝이 안 나요.”

“잘 알았습니다, 스님.” (모두 박수)

분별을 내려놓는 것과 망상의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듣는 학생도 있고, 얼굴이 환해진 학생도 있었습니다.

“공부를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바짝 좀 정신 차리고 해보세요. ≪금강경≫을 공부하면 배운 걸 집에 가서 딱 적용을 해봐야 해요. ‘집착을 놓으면 된다’ 이걸 지식으로 배우기만 하면 안 돼요. 집착을 탁 놔야죠. ‘놓으면 된다’ 이런 건 번뇌 망상에 불과해요.

아이가 화가 났을 때 ‘애가 화가 났네. 무엇 때문에 화가 났지?’ 이렇게 접근해야지, ‘화를 참을까, 말까? 저걸 내버려둘까, 혼내줄까?’ 이런 건 다 망상에 속하는 거예요. 직지(直指), 바로 이렇게 직설적으로 딱 본질을 꿰뚫어봐야죠. 공부를 이렇게 접근해야 합니다. 경전에 지금 배우는 게 다 그런 내용이에요. ≪금강경≫도, ≪반야심경≫도, ≪육조단경≫도 그런 내용이에요. 가을 경전반이면 지금 ≪금강경≫ 배우고 있어요?”

“금강경 4분까지 배웠어요.”(모두 크게 대답)

“그러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라는 대목 배우고 있어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도 배웠고요?”

“네.”(모두 크게 대답)

“그래요, 공부 좀 더해서 다음에 또 질문해 봐요.”(모두 웃음)

또 수행이 안 되어 괴롭다는 학생은 ‘괴로움을 푸는 것이 수행인데, 수행이 안 되어 괴롭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스님에게 된통 혼이 났습니다. 스님은 경전반 학생들이기에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하시며, 공부한 것을 생활에서 실천해보라고 거듭 말씀해주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학생들은 밝은 얼굴로 다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스님은 기념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경기도 평택에서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리포터 임도영 사진 이준길 녹취 손명희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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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분별심은 내가 옳다는 생각때문에 생겼구나 앞으로 그는 그렇게 믿구나 라고 생각하겠습니다

2018-10-19 11:33:54

정지나

아 내가 잘난체하고 싶구나 사랑받고 관심받고싶구나
감사합니다 꾸벅^^

2018-10-15 09:38:36

조정

고맙습니다.덕분입니다_()()()_

2018-10-11 22: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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