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15 연화회 가을 나들이 1일째
“정토회가 생기고 최고로 공로가 많으신 분들이 오늘 다 모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30여 년 전 처음 정토회를 만들 때 함께 했던 연화회 보살님들과 함께 경주로 1박 2일 가을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출발 시간인 8시가 되기 전부터 서초 법당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보살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80대가 된 어르신들이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오신 84세 보살님은 ‘스님을 오랜만에 뵈니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도 손을 맞잡고 포옹을 하며 반가워하셨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뿐만 아니라 청주, 문경, 부산 각지에서 정토회 초창기에 활동했던 노보살님들이 두북 정토수련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는 28인승 귀빈용 버스를 대절하여 노보살님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노보살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나눠먹으려고 갖가지 간식을 싸왔습니다. 스님은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보살님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불편한 거 없으세요? 다들 건강하시니까 다행입니다. 제일 나이 많으신 분이 92세예요.

우리가 만난 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1988년에 정토포교원을 시작했으니까요. 초창기에 저희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보살님들께서 법당 살림을 도맡아 주셨는데요. 정말 고맙습니다.

다섯 분이 85년부터 시작된 비원포교원 시절부터 인연이고, 일부는 그전에 소림선원 시절부터, 나머지 보살님들은 다 1988년 홍제동에서 정토회를 시작하고 나서 만난 분들이네요. 홍제동에서 정토회를 시작할 때 다들 50대였죠? 그게 벌써 30년 전이예요.”

노보살님들 중에는 법당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 인연이 되신 분도 있었는데요. 모두 30년이 넘은 인연들이었습니다.

“세월이 금방 가죠. 눈 감을 때 돌아보면 한 평생이 어제 같다고 그러잖아요. 지나 놓고 보면 금방 세월이 흘러 있어요. 애들 크는 것도 보면 굉장하죠.”

그리고 소식이 끊긴 보살님 몇 분의 근황도 물어보았습니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병환으로 요양병원에 계신 분도 계셨습니다.

“이제 노보살님들이 돌아가시면 정토회에서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아져요. 전에는 제가 제일 어렸는데요.” (모두 웃음)

스님이 보살님들 덕분에 오늘 하루 놀게 되었다고 웃자 노보살님들은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더 힘드실 것 같다”며 걱정했습니다.

“오늘 저녁엔 호텔에서 주무실 거예요.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바닥에서 자면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또 저희 수련원은 재래식 화장실이라 보살님들께서 앉았다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불국사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어요. 세 분씩 주무시면 됩니다.”

“아이고 스님, 낭비 아니에요?”

“나이 들면 낭비 좀 해도 돼요. 젊은 사람들이 낭비하면 안 되는 거죠. 보살님들도 여행 좀 하셔야죠. 정토회로 따지면 정토회를 초창기에 만드는데 고생을 하셨고,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을 이렇게 잘 살도록 만드는데 다 고생하셨잖아요. 대한민국 노인들은 모두 대우를 좀 받아도 돼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좋을 때 태어났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한국 전체가 끼니도 때우기 어려울 때 태어나셨잖아요. 일도 제일 많이 하셨고요. 한국 사람처럼 자는 것 빼고 밥만 먹고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얼마 전에 두북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싹 모셔서 식사 대접을 했어요. 마을 사람들 중 제일 어린 사람이 저보다 두 살 어리고 나이가 제일 많으신 분은 94살, 92살이셨어요. 아직 마을에 친구들 부모님이 몇 분 살아계셔요. 그래서 제가 앞치마 두르고 음식 대접을 했어요.”

마을 어르신들도, 오늘 함께하는 연화회 노보살님들도, 스님은 모두 어머니처럼 모시고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무르익어 가는 가을 풍경이 펼쳐지고, 차창 안에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보살님들과 스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방 두북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편안하게 잘 오셨습니까?”

“네.”

“다 왔습니다. 차가 완전히 서거든 천천히 내리세요.”

스님은 혹여나 보살님들이 다칠까 천천히 내리시라는 말을 계속하였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니 최말순 보살님과 법사님들, 행자님들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직접 농사지어 담근 열무김치, 직접 주운 도토리로 만든 묵, 고추나물 무침, 따뜻한 국도 나왔습니다. 동네에 사는 누님은 농번기로 바빠서 오지 못했지만 직접 담근 식혜를 보내주었습니다.

한 보살님은 “늙어빠진 사람 이렇게 환영하는 데가 어디 있어. 늙은이는 이제 다 싫어하는데”라고 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식사 잘 하셨어요?”

총 26분의 노보살님이 둘러앉았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못 온 한 분을 빼고 다 왔는데요. 스님은 한 분 한 분 소개를 했습니다. 다들 초창기에 정토회를 만들 때 많은 노력을 해주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옛날에는 함께 나들이도 자주 가고 했는데, 중간에 전쟁 난다고 해서 막으러 다니느라 오랫동안 모임을 못했네요. 올여름에 노스님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노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바쁜 줄 알지만 한번 보자고 하셨어요. 제가 일정이 꽉 잡혀있어서 일주일 후에 가겠다고 했는데 좀 이상해서 이틀 후에 일정을 당겨서 갔습니다. 스님께 갔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죽으면 네가 문상 올 거 아니냐?’
‘아이고 스님, 와야죠’
‘내가 죽은 뒤에 네가 문상을 온들 내가 너 온 줄 알겠느냐. 너는 또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너도 나를 볼 수 있고, 나도 네가 온 줄 알 수 있는 이때 서로 보는 게 낫지 않느냐.’
‘맞습니다. 스님’

그렇게 이야기를 두 시간쯤 하고 돌아왔어요. 갔다 오고 며칠 지나서 노스님이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더라고요. 일찍 다녀오길 잘 했죠. 연세 드시면 건강해도 언제 돌아가실 줄 모르잖아요. 노스님 말씀대로 죽은 뒤에 문상 가는 것보다 이렇게 노보살님들이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보는 게 더 낫겠다 싶었어요.”

보살님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노스님이 돌아가시며 전해준 깨달음이 오늘 가을 나들이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스님은 간단히 1박 2일 동안의 일정과 다음 일정에 대해 안내해주었습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통도사 가서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요. 그리고 요새 여기 제가 농사도 짓습니다. 나중에 쌀 한 움큼 씩 보내드릴게요.

휠체어 준비해뒀으니까 미리 신청해주세요. 일정은 간단합니다. 시간도 정해진 게 없어요. 천천히 움직이시면 돼요. 해가 있을 때 통도사 갔다 오고, 해거름에 저녁을 일찍 먹고 모여서 얘기 나눠요. 노래도 부르고 놉시다. 제가 재롱을 좀 떨겠습니다.”

화장실만 다녀온 뒤 스님과 노보살님들은 통도사로 출발했습니다. 통도사에 도착한 스님은 보살님들에게 휠체어와 막대기를 챙겨 주었습니다. 돌로 된 구름다리 앞에 나란히 서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주문에서부터 스님의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도가 통한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통도사, 인도 영축산을 닮아 이름 지어졌다는 영축산, 보살님들은 귀를 쫑긋하고 ‘아!’ 하며 재밌게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계단 조심하세요. 천천히 오세요.”

사천왕문,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지나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상, 중, 하단으로 설계된 통도사의 가람 배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약사전 앞에서 스님은 노보살님들을 위해 특별히 축원을 한 후 삼배를 올렸습니다.

“우리 보살님들 다 건강하세요.”

통도사에는 절의 창건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려 사찰 곳곳이 국화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가을국화 향기가 경내에 그윽했습니다. 예쁜 국화 장식이 되어 있는 돌로 된 의자 앞에서 노보살님 두 분씩 스님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노보살님들은 부산 국화가 여기 다 모여 있다며 소녀처럼 기뻐했습니다.

늘 빨리 걷던 스님은 노보살님들과 발맞추어 천천히 경내를 걸었습니다. _“온 김에 다 보고 가셔야 된다”_라고 하면서 구석구석 안내해 주었습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해두어서 다행히 힘드신 분들도 경내를 모두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다리 아프신 분들이 많아 대부분 문 앞에서 참배만 한 후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통도사 와본지 얼마나 되었어요?”

“20년도 넘었어요.” (모두 웃음)

참 오랜만에 찾은 통도사였습니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대웅전에 왔으니 절을 할까요?”

스님과 노보살님들은 대웅전에 들어가 천천히 그러나 정성스레 삼배를 올렸습니다. 보살님들은 가는 곳마다 보시를 하고 정성껏 참배를 했습니다. 대웅전 밖으로 나와 금강계단 앞에서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대웅전에 불상이 없습니다. 사리탑 참배 시간이 지나 뒤편 담 너머로 사리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키가 작은 보살님들을 위해 의자를 구해와 담 너머로 사리탑을 볼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통도사에서 제일 큰 건물인 대방광전을 참배한 후 스님은 “구경도 일이에요” 하며 “앉아서 좀 쉬시라” 고 여유를 주었습니다. 노보살님들은 대방광전 한편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91세가 되신 실상화 보살님이 다섯 살 어린 보살님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걸 보고서는 냉큼 달려가 어떻게 된 일이냐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스님은 실상화보살님에게도 좀 앉아서 쉬라고 권유했습니다. 보살님께서 괜찮다며 서 계시겠다고 하자 스님이 _“91년 서 계셨으면 됐지요”_라고 말해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통도사 곳곳에 노보살님들처럼 예쁘게 물든 단풍이 울긋불긋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 황금빛 들녘을 지나 이번엔 스님이 태어난 마을로 구경 갔습니다. 집 앞까지 버스가 들어갈 수 없어 느티나무 아래 차를 세워두고 삼삼오오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힘드신 분들은 봉고로 모셨습니다.

나무로 만든 문을 열자 아담하고 정갈한 마당에 갖가지 꽃과 나무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보살님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노보살님들은 ‘여기가 스님이 응애 하고 태어난 곳이냐’며 곳곳을 둘러봅니다. 마을에 버려진 비닐을 주워와 만든 비닐하우스에는 배추가 자라고 있었고, 한쪽 귀퉁이에는 신선초가, 또 한쪽 귀퉁이에는 고수 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노보살님들께 마당 가운데 놓인 평상을 가리키며 얼른 앉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아니 스님, 바쁘신데 언제 와서 이렇게 농사를 다 지어놓으세요?”

“어차피 운동해야 하잖아요.” (웃음)

고수를 좋아하는 한 보살님에게 스님은 농사를 짓고 거둬놓은 고수 씨앗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보살님들도 한 줌씩 달라며 조릅니다.

평상에 둘러앉아 스님과 노보살님들은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피와 산초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썩은 참나무에서 밤에 보이는 도깨비불로 착각하여 싸운 옛날 어르신의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노보살님들에게 나눠주려고 나무 지팡이를 여러 개 챙겼습니다.

버스로 돌아가는 길에 밭일을 마친 마을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92세인 노보살님이 반가워하며 “몇 살이시냐?” 여쭤보니 “93살인데 자식들 몰래 밭일을 하고 왔다”며 웃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니 노보살님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방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노보살님들은 눕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기도 했습니다.

“다들 보고 싶었는데 나들이 간다고 연락이 와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내 나이가 84살인데... ‘가다가 어떤 일이 생겨도 용기 내서 가자’ 하고 왔지. 멀미가 심해서 어디 가지를 못했는데, 만나서 기쁘니까 멀미도 안 나고 즐거워.”
“마음속에는 항상 정토회가 있어. 나 혼자 매일 아침 기도하고 있어. 기도하면 참 좋아.”
“내가 90년을 살았는데... 정토행자라는 게 제일 자랑스러워.”

30년 전 운동권 대학생이었던 딸이 스님도 아닌 법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다녀 딸을 잡으러 왔다가 반야심경 강의에 반했다는 84세 노보살님은 강의를 듣고 법당을 나가다가 우주가 다 내 안에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마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지금까지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30년 전에는 법당이 너무 좁아 김장도 할 수 없어서 노보살님 집에서 김장을 한 이야기도 재밌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때는 5명밖에 신도가 없었지만 스님 가르침대로 하면서 너무나도 신나고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정진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진을 꼭 해야 돼. 요새 젊은 사람들은 똑똑해서 금방 법문도 이해하고 다 아는데, 고민은 하나도 해결이 안 되어 있어. 정진을 해서 자기 걸로 만들어야 돼. 생각으로 아는 건 돌부리 하나 걸려 넘어져도 안 되게 되어 있어. 정진을 꼭 해야 돼.”

깊은 주름살 속에서 베어 나오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무게감이 남달랐습니다. 한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토회가 생기고 최고로 공로가 많으신 분들이 오늘 다 모였습니다. 정토회의 발전과 우리 노보살님들의 건강을 위하여!”

저녁 식사는 더 정성스레 차려져 노보살님들은 너무 고맙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오늘 생신을 맞은 보살님이 계셔서 다 함께 생신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스님이 “노래 한 자락씩 하고 놉시다” 하고는 “제가 먼저 할게요” 하고 아리랑을 한 자락 불렀습니다.

노보살님들도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좋다!”, “잘한다!” 하며 흥을 돋구었습니다.

가사를 다 잊어버렸다고 망설이는 보살님에게 “아니 팔십이나 됐는데 아직도 너무 잘하려고 한다” 며 놀리는 모습이 젊은 사람들이 노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보살님들은 흥겹게 노래를 이어 나갔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나이 드신 분들과 노니까 내가 다 아는 노래다” 라며 보살님들 노랫소리에 맞추어 박수를 쳤습니다.

자행 노스님은 노래 대신 약사경 한 구절을 염불해 주었습니다. 오늘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준 최말순 보살님이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자 노보살님들은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운전도 잘한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최보살님은 “요리는 제가 했지만, 장보라고 돈은 스님께서 다 주셨습니다”라고 공을 돌렸습니다.

노보살님들이 고단할 것을 고려하여 저녁 8시에 흥겨운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주무셔야죠. 일찍 가셔서 목욕도 하시고, 내일 아침 드시고 나서 불국사 구경 가겠습니다. 시간 남으면 동해 바다도 구경하고 점심 먹고 올라갈게요.”

노보살님들을 모두 버스에 태운 후 스님은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노보살님들은 스님은 왜 호텔에 안 가냐고 물었습니다.

“저만 남자라서 호텔 방을 혼자 써야 돼요. 저는 내일 아침에 불국사로 바로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노보살님들은 박수로 스님과 인사를 했고, 스님은 노보살님들이 떠나는 걸 본 후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봉사자들과 함께 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였습니다. 뒷정리가 모두 마무리가 될 때까지 함께 하시면서 하루 종일 부엌에서 애쓴 봉사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셨습니다.

이 후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본 뒤 눈을 붙였습니다.

어른을 공경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하는 분들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님의 따뜻하고 유쾌한 모습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전체댓글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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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연화회 보살님들이 계셔서
지금의 제가 부처님법을 만난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03-20 10:46:19

정미경

우리 정토회의 산증인이시고 역사이신 노보살님, 정토행자인게 제일 자랑스럽다는 말씀, 생각으로 아는 건 돌부리 하나에도 넘어지니 꼭 정진을 해야한다는 말씀 새기며 존경의 마음 올립니다. 건강하십시오.

2020-03-19 21:51:39

김정옥

지난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되고 재산이 되는것같읍니다.그노보살님들이 스님에게 있어선 참으로 소중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누구에게나 처음 시작은 어렵고 힘들고 아주미미하지만 많은시간이 흐르면서 그노보살님들로부터 다져져서 지금의 정퇴회가 있고 그러므로 또한저역시 불대로인해 정토회와 인연이되었읍니다.스님감사합니다..,

2020-03-19 20: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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