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16. 행복한 대화 (7) 서울 성동구
“부모님께서 저희 부부와 같이 살려고 해요. 어떻게 거절하죠?”

스님은 연화회 노보살님들을 모두 배웅하고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노보살님들을 모시고 가는 봉사자들에게 전화하여 끝까지 조심해서 가고 도착하면 저녁식사를 꼭 대접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서울 성동구 적십자 문화회관에는 300명가량의 시민들이 모여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7시가 되자 스님은 열띤 박수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무대에 올랐습니다. 경주에서 긴 시간 차를 타고 와서 피곤할 만도 한데 강연만 시작하면 피곤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최근 즉문즉설 강연에서는 그 지역의 행복도를 사전에 조사하여 강연 전에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성동구에서는 48%의 시민들이 행복하다고 응답하였고 행복도가 떨어지는 이유로 도로, 주차, 치안, 쓰레기 처리 등의 문제를 꼽았습니다.

스님은 “성동구의 행복도가 전국 평균 행복도보다는 높은 편인 것 같다” 며 즉문즉설에 앞서 현시점에서 한국인의 행복도에 관해 한 시간 가량 깊이 있게 말해주었습니다.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수행도 중요하지만 사회 제도의 개선도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총 여섯 분이 질문할 수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부모님이 합가를 원하는데 현명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분과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서 합가를 원하는데, 어떻게 현명하게 거절하죠?

“현재 결혼 3년 차인데 저희 부부는 서울에 거주하고 부모님께서는 지방에 계십니다. 저는 서울에서 계속 살기를 원하지만, 부모님께서는 합가를 원하시기에 자주 연락하셔서 합가 얘기를 계속 꺼내십니다. 일단 알겠다고 말씀만 드린 채 미루는 중인데, 현명하게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질문드립니다.”

“부인은 어떻게 생각해요?”

“합가를 원치 않습니다.”

“그럼 합가를 안 해야죠.”

“그래서 거절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씀드려야 부모님이 최대한 기분 안 상하시도록 거절할 수 있을까요?”

“욕 좀 덜 얻어먹고 싶다고요?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니까 안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어떤 욕도 얻어먹겠다’, ‘부모님의 어떤 처분도 수용을 하겠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고만 하니까 자꾸 잔머리를 굴리게 되죠.

부모님은 나이도 들고 하니까 나한테 좀 의지하고 같이 살고 싶은 거예요. 부모님은 나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그 옛날 은혜를 생각하면 같이 살아야 하겠지만, 나는 이미 결혼해서 내 가정이 있잖아요. 게다가 부인도 원하지 않는다면 합가를 안 해야죠.

어릴 때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거기서 독립하고 결혼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잖아요. 질문자가 여기서 왔다 갔다 고민을 한다는 건 이중 멤버십을 갖고 있다는 뜻이에요. 양쪽을 다 가지려니까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안 돼요. 이제 새로운 공동체의 멤버가 되었어요. 지금에 충실해야죠.

대신에 옛날 공동체에도 애정을 좀 가질 필요는 있어요. 그래서 힘닿는 대로 돕는 건 좋아요. 그러나 공동체 소속을 헷갈리는 건 안 돼요. 합가를 한다는 건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거거든요. 이건 질문자가 지금 기본적인 관점을 헷갈려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말로는 합가를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옛날 은혜 때문에 헷갈리는 거예요. 아무리 부모가 뭐라고 해도 관점을 헷갈리면 안 돼요. 딱 분명하게 말해야 해요.

제가 출가할 때 부모님께서 출가를 반대하셨어요. 질문자가 스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이 약을 가져와서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냐?’ 이렇게 나오면 질문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출가를 해야죠.”

“그러면 엄마가 죽는다는 데도요?”

“그래도 저는 출가합니다. 제가 결정했으면 그대로 갑니다.” (모두 웃음)

“부모가 내 눈앞에서 죽겠다며 약봉지를 쥐고 있는데도 질문자는 할 수 있겠어요?”

“일단은 안심시켜 드리고 나중에 몰래 출가를 하겠습니다.” (모두 웃음)

“그렇게 꼼수 쓰면 안 돼요. 그게 바로 잔머리를 굴리는 거예요. 그럴 때는 이렇게 얘기해야 해요.

‘아이고, 어머니 마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길을 가겠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제가 자식으로서 장례는 잘 치러드리겠습니다.’ (모두 웃음)

‘죽으시려면 죽으세요’라고 하라는 게 아니라 ‘그 결정은 어머니가 하시는 것이지만 저는 어머니의 뜻에 동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신다면 자식으로서 도리는 다 하겠습니다’라고 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이 길을 오지, 거기에 연연해서 잔머리를 굴리려 들면 이 길을 올 수가 없어요.

적당하게 구슬려서 손 떼려고 하면 안 돼요. 내면에서부터 딱 단호해요. 그건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질문자가 내면에서부터 타협의 여지가 없이 딱 분명하면 어머니에게 얘기할 방법은 저절로 생겨요. 어머니가 합가를 얘기하실 때마다 대답을 미루면 안 돼요. ‘어머니, 저는 합가는 안 됩니다’ 이렇게 딱 말해야죠.

미루면 가능성을 두잖아요. 출가하면 어머니가 약 먹고 죽는다길래 어머니를 따라 집에 가서 한 3개월 있다가 몰래 도망 온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머니는 ‘잘 하면 아들을 잡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련을 두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머니 은혜는 알지만 저는 결혼을 했으니 합가는 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이 태도가 분명해야 해요. 유산을 준다는 유혹에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가정을 지키고 유산도 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유산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자기 가정을 포기하는 거예요. 가정을 먼저 지킨 다음에 따로 살면서 ‘자주 찾아뵙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합가는 안 됩니다’라고 해야죠. 머리 굴리면 안 되고 딱 분명하게 얘기해야 해요. 망설이지도 말고, 시간도 끌지 말고, ‘합가는 안 됩니다. 제가 다른 걸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께 말해야 합니다.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 해보려는 건 질문자가 보기엔 굉장히 효자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양쪽에 다리를 걸쳐서 어떻게 발뺌하려고 하는 것밖에 안 돼요. 입장을 분명히 해야 아내도 남편을 신뢰하게 돼요. 안 그러면 이 남자가 이러다가 또 합가를 하자고 하지나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알았죠?”

“예,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합가를 하지 않는 것이 정말로 불효를 하는 것일까요?”

“아니오.”

“불효가 아니에요. 20살이 넘으면 자기 길은 자기가 가는 거예요. 아들이 출가한 것을 보고 어머니가 죽겠다고 할 때 어머니 얘기를 안 들어주는 게 불효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러면 부모의 노예밖에 안 됩니다. 어릴 때 키워준 것은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노예가 되어서는 안 돼요.

자기 갈 길은 가되, 가능하면 옛날 은혜를 생각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을 드려야 하겠죠. 그러나 그것도 아내와 합의해서 아내가 동의하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 이상을 하면 아내도 ‘왜 너는 시댁만 챙기느냐? 친정은 왜 안 챙기느냐?’ 이렇게 나오게 돼서 또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나 남편의 태도가 분명하면 아내도 여유가 좀 생겨서 ‘여보, 그러지 말고 좀 더 드려’ 이렇게 나올 수 있어요. 월급을 200만 원 받는다면 부모님한테 50만 원을 보내겠다고 먼저 얘기하면 아내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나?’ 이렇게 나오게 되니까 갈등이 생깁니다. 남편 쪽에서 먼저 ‘하나도 안 보내겠다!’ 이렇게 말해야 해요. 그러면 아내가 ‘아이고, 여보, 그래도 어머니한테 조금은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하는 거예요.

‘그러면 너는 얼마를 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한 30만원은 드려야 하지 않을까?’
‘알았다, 그럼 20만원만 드리지.’

이렇게 해야 아내가 안심을 해요. 아내가 항상 더 주자고 얘기하고 남편은 안 된다고 해야 집안이 화목하고 아내도 오히려 시어머니한테 잘 하게 됩니다.

남자가 이중 멤버십을 유지하기 때문에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남자가 입장이 딱 분명하면 고부간의 갈등은 생길 일이 없어요. 대부분 여자 둘을 싸움 붙여놓고 자기는 뒤로 슬쩍 빠지는 짓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남자들, 이해하셨어요?”

“예.” (모두 웃으며 대답)

“양다리 걸치면 절대로 안 돼요. 내 가정을 가졌으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부모님한테 최선을 다하되 그것도 가정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가 안심을 하게 돼요.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항상 이런 관점을 갖고, 남자는 딱 자기 위치를 분명하게 해주면 자식하고 부모 사이에 갈등이 생길 이유가 사실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시댁 문제 갖고 맨날 갈등을 일으키잖아요. 원칙이 딱 안 잡혀 있어서 그래요.”

고부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부부들이 참 많을 텐데요.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이 오늘따라 참 감동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 외에도 블루 컬러 노동자들의 직장환경 개선과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적 이슈를 물어본 젊은 여성분, 학교폭력과 같은 자녀의 학교생활 갈등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본 학부모님, 남편의 도박과 외도, 주사로 인해 12년 전 이혼했지만 다시 합치자고 것 때문에 고민은 중년 여성, 그리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 생각하는 성향 때문에 기울어가는 사업을 선뜻 정리해내지 못해서 고민인 중년 남성, 며느리와의 종교적 갈등 때문에 아들 내외와 왕래가 끊겨서 힘든 분, 다양한 인생 고민과 스님의 이야기가 2시간 동안 펼쳐졌습니다.

강연을 마치며 스님은 관점을 확실히 잡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권리만 갖고 있지 권리를 행세할 줄 몰라요. 행복할 권리는 있는데 그 권리를 포기하고 괴롭게 살아요. 행복할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강연장을 나서는 한 분에게 오늘 소감을 인터뷰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관점을 잡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다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밝게 웃었습니다.

내일 스님은 각종 회의와 김포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재민, 김보경, 손명희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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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

좋은말씀이에요 ^^ 감사합니다

2021-02-12 17:17:38

장다연

부모님과 함께 살고싶지 않다라 사실 이건 현실적인문제죠
하지만 저는 후회할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나이19에 아직 사회경험도 별로없는 내년 20이될 예비성인입니다 그리고
60이신 부모님의자식입니다 저는 불현듯 미래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전 부모님이 없는 미래가
도통생각나지도 않고 걱정이됬습니다 아직 나이가어린
제가 드릴말씀이 아닐수도있지만 부모님과의시간

2019-12-06 20:54:15

정지나

관점없이 왔다갔다 우왕좌왕...
그 이면에는 욕심,잘보이고싶고,칭찬받고싶은 내모습이
있다. 이 모습 그대로 괜찮아 너도 그리고 나도 우리도
감사합니다 꾸벅^^

2018-10-25 05: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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