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23 (오후) 제9사단 백마부대 즉문즉설
“군대에 있다가 실력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9사단 백마부대에서 군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서울 구로구청 구민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백마부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전에 비가 세차게 쏟아지더니 점심이 지나자 하늘이 개이고 햇살이 내렸습니다. 스님은 오전 내내 평화재단 전문가들과 미팅 일정을 가진 후 오후 2시 30분에 백마부대에 도착했습니다. 사단장님 이하 영관급 장교님들 10여 명이 도열하여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스님에게 사단장님은 “바쁘신 스님께서 저희 부대를 직접 찾아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며 정중히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대를 상징하는 백마 동상을 비롯해 예하 부대를 상징하는 도깨비, 황금박쥐, 독수리, 백호 동상을 자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사단 사령부 입구에 들어서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서 산화하신 8,946명의 전사자 명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묵념한 후 그 넋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건져내신 백마 부대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이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평화를 지켜주십시오.” - 2018.10.23. 법륜

강연 전 접견실에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지난 2009년도에 맹호부대에서 군장병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로부터 10년 만에 열리는 군장병 즉문즉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단장님은 오늘 강연에 남다른 의미 부여를 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두 번의 전쟁을 모두 참가한 부대는 오직 맹호부대와 백마부대 두 곳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스님께서 두 부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시게 되어서 더 뜻깊네요.”

10년 전에 맹호부대에서 강연했던 내용은 ‘힘내라 청춘’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는데요. 군종참모인 원경 스님은 “신병교육대에 입소하는 훈령병들에게 매월 힘내라 청춘을 나눠주고 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군종 목사님, 군종 신부님도 함께 자리해서 스님은 평소에 친하게 교류하고 있는 목사님, 신부님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는데요. 모임 내내 웃음이 넘쳤습니다.

3시가 되어 강당으로 이동해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의 장병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눈치 보지 말고 편안하게 어떤 주제든 이야기해 보라” 고 하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10명이 군생활 고민을 물었는데요. 그중에서 군대에 있으니 실력이 떨어질까 불안하다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군생활이 무의미하고 불안해요.

“저는 입대 전에는 운동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군 복무를 마치고도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은데, 지금 이렇게 군대에 있어서는 잘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느껴지고 그런 불안감 때문에 지금의 군 복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감을 없애고 의미 있는 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질문자가 지금 ‘내가 군대 안 오고 밖에 있었으면 계속 연습을 해서 실력이 좋아졌을 텐데 군대에 와서 시간 낭비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실력이 늘까요, 안 늘까요?”

“안 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질문자 같은 운동선수에게 도움이 될까요? 지금 군대에 21개월 있는 것은 하느님이나 부처님한테 빌거나 어떤 높은 사람한테 줄을 선다고 해서 중간에 빠져나갈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확실해요?”

“그렇습니다.”

“그럼 어차피 질문자는 여기에 있어야 하고 다른 친구들은 다 훈련받는데 질문자만 혼자 운동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도 앞으로 선수 생활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을 여기서 할 수 있어요. 그게 뭘까요?”

“체력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기능을 키우는 게 아니라 기초체력을 키우는 겁니다. 기초체력을 키우려면 위에서 시킬 때만 훈련해야 해요, 훈련을 안 시켜도 훈련해야 해요?”

“안 시켜도 해야 합니다.”

“네. 남들은 그냥 구보를 한다면 질문자는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어야 해요. 남들은 300 고지를 올라간다면 질문자는 1000 고지를 올라갔다 와야 해요. 남들은 운동장 2바퀴 도는 게 훈련이라면 질문자는 7바퀴를 돌아야 해요. 그렇게 마음먹고 여기 생활을 하면 재미있어집니다.

운동선수는 시합한다며 기술적인 것을 익히느라 기초체력을 못 키우기 쉬워요. 기초체력이 부족해서 훌륭한 선수가 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기본, 즉 기초체력이 부족해서요. 골프면 골프, 축구면 축구, 대부분이 기능과 기술에만 집중합니다. 기초체력을 튼튼히 다져 놔야 하는데도 선수 생활하다 보면 기능에 빠져서 기초체력을 못 다져요. 그런데 질문자가 군대에 와서 선수생활에서 좀 물러나 있는 동안 기초체력을 확실하게 키워놓으면 제대했을 때 어떤 선수보다도 튼튼한 기초체력을 갖추게 되잖아요. 그러면 2년간 익히지 못했던 기술적인 문제는 금방 극복이 돼요.

그러면 오늘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 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청소할 때도 남이 마당 하나를 쓸면 질문자는 몇 개 쓸어야겠어요? ‘그거 놔둬, 내가 쓸어줄게’ 이렇게 말하면서 쓸어주세요. 물건을 들 일이 있어도 ‘그거 놔둬라, 내가 들어줄게’ 이렇게 하고요. (모두 웃음)

뭐든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초체력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군 생활을 아주 재미나게 할 수 있어요. 친구들한테도 인기 짱이죠. 청소도 내가 해주고 걸레질도 내가 해주니까요. 앉아서 놀면 뭐 해요? 기초체력을 키워야 하잖아요.

관점을 그렇게 딱 가져버리면 질문자는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정말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기본기를 갖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굳어있던 질문자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관점만 바꾸었을 뿐인데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어떤 군인은 스님의 답변을 수첩에 빼곡히 적고 있습니다. 명심하고 새겨두고 싶은 메시지가 정말 많았나 봅니다. 수첩은 금세 여러 장이 넘어갑니다.

  • 처음 입대했을 때와 다르게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고민입니다.
  • 진로에 대해 확신이 안 들고, 전역 후 사회생활이 걱정입니다.
  • 남을 자꾸 의식하게 되어서 대인 관계가 고민입니다.
  • 동기들로부터 장난으로 놀림을 자주 당해서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를 해야 하는지, 포용을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 타인이 안 좋게 되는 걸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힘듭니다.
  • 군대에서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복학하면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걱정입니다.
  • 장교인데, 어떤 부대를 가면 정말 싫은 사람이 꼭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마지막 장교 분의 질문까지 모두 답을 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군대가 감옥이 되느냐 마느냐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스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감옥에서 깨달은 것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잖아요. ‘아이고, 그래도 너희 때가 좋다. 너희야 무슨 걱정이 있냐? 그래도 청춘이 좋지.’

그런데 왜 자기가 청춘일 때는 청춘이 고달프다 그래 놓고 자기가 늙으면 ‘그래도 청춘이 좋지’ 이럴까요? 이게 잘못이라는 거예요. 늙어서 청춘이 좋아 보이면 청춘일 때도 청춘이 좋아야 하는 거예요. 어릴 때는 어릴 때가 좋고, 청소년 때는 청소년이 좋고, 청년 때는 청년이 좋고, 장년 때는 장년이 좋고, 저처럼 늙으면 ‘늙은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이게 자기를 사랑하는 거예요.

군대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군대 생활이 좋다’까지는 못 가더라도 ‘힘들다, 괴롭다’ 이건 아니어야 해요. 군대 생활을 힘들게 보내면 본인 손해잖아요. 아무도 그걸 보상해줄 사람이 없어요.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면 자기만 하루하루 손해예요.

여러분들이 생각을 딱 바꿔서 여기 있는 동안 자기에게 필요한 걸 하겠다고 마음먹어보세요. 체력 단련을 하자든지, 인간관계를 연습하든지요. 이렇게 해서 현재에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대학 가서 공부할 거리를 군대 안에서 아무리 생각해봐야 현실에서 이루어지는데 한계가 있어요.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우리의 삶은 늘 이렇게 한계가 있어요. 그 한계 내에서 제일 유용한 것을 선택해서 할 때 자기 삶을 가장 온전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지루해하지 말고, 자꾸 제대할 날만 손가락 꼽지 말고요. 안 꼽아도 조금 있으면 저절로 나가게 돼요. (모두 웃음)

제가 그걸 언제 깨달았는지 알아요? 절에서 참선하다가 깨달은 게 아니에요. 감옥에 있으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게 됐어요. 안에 들어가니까 저더러 잘못했다고 반성문 써라 하길래 ‘나는 잘못한 거 없다!’ 이렇게 버텼더니 징벌을 줘요. 집시법을 위반한 소위 ‘양심수’들을 징벌하는 방법은 소위 ‘잡범’이라는 사람들과 같은 방에 집어넣어 버리는 거예요.

거기 갔더니 한 방에 12명이 있는데 죄다 사기 친 사람, 간통해서 들어온 사람, 도둑질 한 사람 등등이었어요. 개중 6명이 개신교 신자, 4명이 천주교 신자였고 불교 신자는 저를 제외하면 한 명 있었고요. 그런데 불교 믿는 사람이 제 신분을 알고는 자기한테 불교를 좀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그때는 책이고 볼펜이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금까지 제가 아는 것의 핵심만 다 정리해서 이 사람한테 매일 한 시간씩 가르쳐줄 스케줄을 짜 놨어요. 그런데 어느 날 검사가 부르더니 나가라는 거예요. 공부가 덜 끝났는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검사님, 일주일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왜?’
‘지금 공부를 가르치다가 놔둔 게 있으니 마무리를 좀 하고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별 웃기는 놈 다 있다는 식으로 쳐다보더니 그날로 내보내 버렸어요. 그 때 제가 탁 깨달았어요. 감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안에서 밖으로 나오겠다 하는데 상황 때문에 못 나오면 그게 감옥이에요. 내가 안에 있겠다 하면 그건 감옥이 아니에요. 제가 이걸 감옥에 있으면서 탁 깨쳤어요.

거기서 배운 게 많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정말 나쁜 놈들이지만 그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안 그래요. 우리는 죄가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형을 받는 거라고 해서 이름도 우리 스스로 ‘양심수’라 그러고 다른 사람들은 진짜 죄가 있는 놈이라고 해서 ‘잡범’이라고 불렀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거기 가서 같이 살아보니까 그 사람들도 전부 다 죄가 없어요. 전부 다 억울해서 들어온 거예요. 교통사고 내고 들어온 사람은 상대가 합의를 안 해줘서, 간통죄로 들어온 사람은 마누라가 어떻게 해서, 도둑질하다가 들어온 사람은 하필 그때 방범대원이 나타나서 억울하게 됐다고 해요. 전부 재수 없어서 그렇게 됐고 다 억울한 거예요. 제가 그때 크게 반성을 했어요.

‘와, 내가 너무 건방졌구나. 나는 죄가 없는데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이 사람들은 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도 다 재수 없이 들어와서 억울하게 있는 것이지 각자는 아무도 죄가 없는 거구나.’

그때 이후 제가 교도소에 가서 설법할 때 법문 내용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안 그렇겠지만 옛날에는 교도소나 군대에 가면 떡이나 빵을 가져가서 나눠주니까 다들 그걸 먹으러 모여요. 다들 그걸 먹으러 모이기 때문에 법문은 잘 안 들려요. 그런데 저는 교도소에 가면 첫마디가 이래요.

‘여러분들 다 억울하죠?’

그러면 얼굴들이 확 펴집니다.(모두 웃음) 이 세상에 자기들 억울한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도 옛날에 가서 강의하면 강연 요지가 ‘당신들은 비록 한때의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서 죄인이 됐지만 앞으로 정신 차리고 참회하고 잘 살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늘 이랬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감옥살이를 해보고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다 억울하죠?’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이 되겠어요?

감옥에 안 가봤으면 죽을 때까지도 이렇게 말할 줄 몰랐을 거예요. 저는 서너 달 있었는데, 그 서너 달 있었던 동안 배운 것이 밖에서 보낸 어떤 서너 달보다 많은 거예요. 이걸 두고 ‘크으, 억울하다! 결국은 죄 없이 내보내 줄 거면서 아무 죄 없는 나를 집어넣었잖아’ 이렇게 생각하면 제가 막 불만이 생기고 술 마시고 욕도 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승려의 품위에 안 맞잖아요.

그런데 이거 하나만 딱 깨친 것만 해도 ‘아, 내가 너무 잘 갔다!’ 이렇게 됐어요. 그때 그 경험을 한 덕분에 저는 인생에 있어서도 깨친 게 있고, 법문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도 교감을 하기가 참 좋았어요. ‘아,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있구나’ 이런 걸 알 수 있었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의 소중함을 알아주길 바라서예요.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자빠지고, 애인과 헤어지더라도 다 지나 놓고 보면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고 소중한 삶이에요. 그걸 고통과 상처로 안고 있으면 부채가 되고, 그걸 교훈과 경험으로 안고 있으면 자산이 돼요.

그래서 실패가 좋은 거예요. 모르던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실패해야 다시 실패하지 않을 길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성공을 하게 되면 그때 당장은 기분이 좋지만 교만해져서 다음에 더 큰 실패를 불러옵니다. 이런 걸 여러분들이 좀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제 요지는 이왕 하는 군대 생활을 즐겁게 하자는 거예요. 수처작주(隨處作主), 즉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이 되세요. 내가 이 상황을 주도하는 적극성으로 바꾸십시오. 그럴 때 개인에게도 우리 군 전체에게도 활기가 돌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장병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외동으로 자란 청년들이 많아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단체로 생활하는 것이 많이 힘들 것인데, 오늘 스님의 강연이 큰 활력소가 되었길 바래봅니다.

다섯시 반에 강연을 마친 스님은 곧바로 서울 구로구민회관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퇴근길 차가 막혀 저녁은 먹지 못하고 시작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함께 만든 사람들
손명희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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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3-05 11:16:46

정지나

지금 그 자리에서 주인.
감사합니다 꾸벅^^

2018-11-02 12:41:57

서우

너무 감동적이고 존경에 마지 않습니다. ㅡ()ㅡ

2018-10-28 17: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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