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1.10. 행복학교 경주역사순례
“남북통일은 언제쯤 이뤄질까요?”

스님은 아침 일찍 공동체 행자들과 대화를 한 후 9시부터 행복학교 참가자 420여 명과 경주역사순례를 시작했습니다. 10월 6일 예정된 행사였으나 태풍의 북상으로 취소되어 다시 잡힌 일정입니다. 기행 취소로 학생들의 아쉬움이 컸었는데 날씨마저 쾌청하여 학생들의 마음을 달래 주는 듯하였습니다. 눈 닿는 곳마다 단풍도 곱게 물들어있었습니다.

기다리던 행사인지라 참가자들의 눈빛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합니다. 스님은 참가자와 인사를 나눈 뒤 불국사 일주문 앞에서 불국사 창건 유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현재의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어 원형의 일부만 복원이 된 상태예요. 불국사에는 청운교, 백운교, 다보탑, 석가탑, 비로나자불, 아미타불, 무구정광대다라니경까지 7가지의 국보를 보유한 보기 드문 사찰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청운 백운교 앞에서 스님의 설명은 계속되었습니다.

“자, 불국사 쪽으로 보고 앉으세요. 자리 좋다고 멀리 앉으면 안 보여요. 제가 있는 곳이 정토회인데 정토회에 창립 원리가 이 축대와 비슷합니다. 축대에서 얻은 영감을 말씀드릴게요.

보통 절은 평지에 짓습니다. 평지에 지은 절이 정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평지에 지었던 절은 조선시대 500년 동안 불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산속에 남아 있는 절은 엄격하게 말하면 절이라기보다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산에는 경사가 있기 때문에 평지처럼 절을 지을 수가 없어요. 경사를 이용해서 지으려니 축대를 쌓아야 했습니다. 이 축대를 쌓는데 불교의 사상을 적용했어요. 맨 밑을 보세요. 돌을 깎았어요, 안 깎았어요?”

“안 깎았어요.”

“큰 돌만 쌓았어요? 큰 돌, 작은 돌 섞었어요?”

“섞었어요.”

“깎지도 않은 큰 돌, 작은 돌이 어우러진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에요.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고, 나무도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 중에도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마음이 넓은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고, 너그러운 사람도 있고 신경질적인 사람도 있고,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상징해요.

그 위층에는 기둥을 반듯하게 세운 후 중간중간에 돌을 끼워 났지요? 저 돌이 여기서 보면 다듬은 돌같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전부 자연석입니다. 첫 번째 층은 중생계, 두 번째 층은 보살, 즉 성인의 세계를 상진 한다고 해요. 그리고 그 위에 부처의 세계예요.

보살은 부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부처를 지향하지만 아직은 중생인 이 사람들이 축대의 기둥 같은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다듬어야 되는 게 아니라 정말 중요한 자리에 바르게 사는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사람은 적당히 살아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철학입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 삶에서 한 가지는 꼭 부처님처럼 살아야 됩니다. 백 가지 천 가지가 아니고요. (모두 웃음)

저 기둥 사이의 돌은 다듬지 않은 돌이지만 한 면은 평평한 돌을 주어 온 것이에요. 그 앞면이 앞으로 오도록 배치를 해서 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다듬어진 모양이 된 거예요. 하지만 기둥이 없으면 무너지죠. 여러분들이 행복학교를 나와서 동네든 가정에서든 자리를 잘 잡으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동네가 좋아질 겁니다. 모든 사람이 다 다듬어서 행복해야 될 필요는 없어요. 여러분들이 행복학교를 다녀서 행복하면 남편도 자식도 다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세상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봐도 한 가지는 좋은 점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지만 돈은 잘 벌든지, 돈은 못 벌지만 친절하다든지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어요. 여러분들은 백 가지를 다 잘하길 바라기 때문에 늘 불만이에요. ‘한 가지만 잘해도 괜찮다. 없는 것보다 낫다. 문제는 많지만 죽고 나면 섭섭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남편이 살아만 있어도 좋아요.

이렇게 한 사람이 한 가지 역할만 제대로 하면 모자이크로 붓다가 되어 정토회는 부처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곧 화엄경의 원리이자 정토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다른 단점은 문제 삼지 말고 살라는 말씀에 참가자들의 얼굴엔 환한 웃음꽃이 번집니다. 말씀 한마디에도 가벼워지는 원리가 있습니다.

스님은 청운교와 백운교를 가리키며 청운은 젊음을 상징하고 백운은 늙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는데요. 청운을 지나 백운이 되는 이치가 계단에 담겨 있다는 것인데, 설명도 깊이가 있지만 유머도 늘 곁들여 주었습니다.

“늙어서 거울 쳐다보고 자기 얼굴에 실망하는 사람은 젊을 때 예쁘게 생긴 사람이에요. 우리들처럼 대강 생긴 사람들은 늙어서 괴로울 일이 없는 것이 굉장히 좋은 점이란 걸 아셔야 해요.”

맑은 가을 공기 사이로 참가자들의 웃음소리가 터집니다.

“10년 전 어느 날에 불고기를 먹었든지, 시래기 국을 먹었든지, 고등학교 학기말 시험 성적이 60점을 받든 지, 80점을 받든 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이 모든 것이 뜬구름이란 걸 알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것이 흰구름 백운이예요.”

자하문과 구품연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불교에서는 아주 잘못한 사람도 극락에 태어난다는 말씀을 들으니 참 자비로운 종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환생하는 기간은 잘못의 정도에 따라 차별이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극락에 가는 원리가 참 공평하단 생각이 듭니다.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러 가기 전 단체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스님은 경내에서 다른 관광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란 말씀을 하고 주위에 계신 관광객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참가자들도 조용히 스님 뒤를 따랐습니다.

석가탑은 무영탑, 다보탑은 유영탑이라고도 합니다. 큰 공사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고, 사랑하는 부부가 헤어지기도 하는 등 아픔이 있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묵묵히 서 있는 탑과 대웅전, 무설전, 관음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극락전에는 만지면 복을 준다는 황금돼지 상도 있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복에 목메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하지만 뜨끔하기도 합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황룡사지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황룡사와 9층 목탑을 세운 유래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이곳은 황룡사지입니다. 당시 신라는 불교국가가 됐으니까, 신라의 많은 승려들이 당나라에 유학을 갔습니다. 특히 자장율사는 왕족 출신으로서 당나라에 유학을 갔는데, 당시에는 승려라도 나라 걱정을 많이 했나 봐요. 자장율사가 어떤 연못가를 지나는데 신선이 나타나서 ‘네 나라 임금은 지혜는 있는데 덕이 부족하다. 왕이 여자라고 만만히 보고 다른 나라에서 침공을 많이 한다. 그러니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위용을 만들어야 된다. 그러니 황룡사에 9층 탑을 세워라. 아주 큰 탑을 세워서 신라를 침공하는 아홉 나라의 적을 막도록 해라’라고 했다고 해요.

그래서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세웠습니다. 주춧돌이 한 변에 8개씩 8줄, 총 64개의 주춧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높이가 227척, 거의 67m 에 달하는 아주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아주 큰 탑을 쌓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탑을 쌓을 때도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유구, 이런 식으로 신라와 갈등관계에 있는 아홉 나라의 침공을 막는다는 의미로 쌓았습니다. 국난을 당했을 때 부처님의 힘을 빌어서 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동안 신라는 백제의 침공, 고구려의 침공, 각 나라의 침공을 막는 데만 급급했는데, 선덕여왕 때에 와서야 비로소 ‘삼국이 통일되면 오히려 전쟁이 없어지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지금 남북 간에도 첫째는 평화가 중요하지만 평화가 영원히 계속되려면 통일을 해야 합니다. 즉 항구적인 평화로 가는 길은 바로 통일인 것입니다. 그것처럼 황룡사 9층 탑은 첫째,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쌓았고, 두 번째는 통일을 발원하면서 쌓았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만약 북한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어렵게 이룬 재산에 큰 피해가 올 것입니다. 이를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듭니다. 지금 우리의 경쟁상대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이에요. 포부를 크게 가지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해야 합니다.”

황룡사까지 순례를 마치고 동국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이동했습니다. 기념관 주변과 주차장에 삼삼오오 흩어져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꺼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스님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래 한 자락을 부르고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와이리 좋노. 와이리 좋노. 행복학교 여러분들을 만나니 와이리 좋노!”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오늘은 총 12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전 내내 삼국 통일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해서 그런지 현재로 돌아와서 남북의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지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스님의 답변을 듣고 관점이 확 돌이켜졌다며 좋아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통일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올 연말 안에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한다고 했다가 연기하기도 했는데요, 과연 통일이 될 수 있을까요? 통일이 된다면 언제쯤이나 될까요?”

“일본 사람이 저한테 ‘한국은 언제 통일이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그럴 만한 일이에요. 그런데 한국 사람이 저한테 ‘우리는 언제쯤 통일이 될까요’라고 묻는 건 좀 말이 안 돼요. 그건 어떤 총각이 저한테 ‘스님, 저 언제쯤 장가갈까요’라고 묻는 것과 같은 거예요. 다른 사람이 ‘스님, 쟤는 언제쯤 장가갈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도 ‘글쎄, 쟤가 언제쯤 갈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자기 일을 가지고 ‘스님, 제가 언제쯤에 장가갈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네가 알아서 가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언제쯤 통일이 될까요’라는 질문은 주어가 없는 질문이에요. 우리가 통일을 하고 싶으면 통일이 되는 쪽으로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통일을 별로 원하지 않으면 통일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면 되는 겁니다. 노력을 하더라도 통일이 안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되고, 안 되고’가 뭐가 중요해요? 통일이 나한테 이익이다 싶으면 지금부터 통일을 향해서 노력하면 되는 것이지요. 장가가는 게 좋겠다 싶으면 지금부터 장가를 가도록 노력하면 되지만 노력한다고 꼭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점쟁이한테 묻듯이 저한테 물을 필요가 없고, 질문자가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이 되는 쪽으로 지금부터 무엇을 할지 연구하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만 통일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네요.” (모두 박수)

“우리는 자꾸 자기 일을 남 일 보듯이 할 때가 많아요. 그렇지 않으면 남의 일에 계속 간섭하고, 정작 자기 일은 책임을 안 질 때도 많아요.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을 지되 여유가 있으면 남의 일에도 좀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종교를 믿는 종교인들 대부분은 내 일 도와달라고 기도합니까? 남의 일 돕겠다고 기도합니까?”

“내 일 도와달라고요.”

“대부분 내 일 도와달라고 하지요. 어쩌다 남의 일을 돕는 이유도 남의 일을 도우면 하나님이 내 일을 도와주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결국은 자기 일이 목적이에요. (모두 웃음)

토끼는 자기가 알아서 풀 뜯어먹고 살고, 다람쥐도 알아서 도토리 주워 먹고살지, 부처님이나 하나님한테 도와달라는 얘기를 안 합니다. 우리도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힘이 남으면 다른 사람이 요청했을 때 도와주면 좋은 거고요.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토끼나 다람쥐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토끼보다 못한 수준이니까 1차 목표는 일단 토끼나 다람쥐만큼 되는 것이에요. 2차 목표는 토끼나 다람쥐보다 나아지는 것이고요.

그러니 여러분들만이라도 구걸 좀 그만하세요. 뭐가 부족해서 계속 도와달라고만 합니까? 한반도의 평화 문제나 통일 문제는 우리 문제예요, 남의 나라 문제예요?”

“우리나라 문제입니다.”

“그러니 자꾸 남의 나라 핑계를 대면 안돼요. 미국이 이래서 안 되고, 북한이 이래서 안 된다는 얘기는 이제 하지 말아야 돼요. 그 얘기는 남편이 술 먹어서 문제고, 아이는 공부를 안 해서 문제라고 불평하는 것과 똑같아요. 공부 안 하는 아이 두고도, 술 마시는 남편을 두고도, 나는 행복해야 돼요. 그 사람들 때문에 괴롭게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뭐가 부족해서요? (모두 웃음)

우선 나부터 행복하고, 그러고도 힘이 남으면 그런 사람들도 좀 도와주는 게 좋아요. 남도 도와주는데 남편 좀 도와주면 좋잖아요.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실천도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괴로워하면서 하면 안 돼요. 며칠 전 외국인을 대상으로 통역을 해서 즉문즉설을 했는데요. 어떤 젊은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일을 하느라 너무 힘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신이 욕심을 부리니까 힘이 드는 겁니다. 남을 돕는 일은 좋은 일이긴 한데, 좋은 일도 욕심을 부리면 본인이 괴로워집니다. 그러니 그 욕심을 내려놓으세요.’

그랬더니 그 젊은이가 자기는 그런 식의 조언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민주적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누가 해야 됩니까?”

“우리가 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거에 참여해서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또 우리 사회가 좀 더 양극화가 완화되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누가 해야 됩니까?”

“우리가 해야 돼요.”

“예. 그런데 그건 바로 정부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런 정부를 누가 만들 수 있습니까?”

“우리요.”

“예, 우리가 헌법상 주권자이니까요. 그러니 그런 일을 내 일로 받아들여야 돼요. 그래야 실천력이 생깁니다. 나 혼자 하라는 게 아니고, 내 일로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내 일로 받아들이면 우리나라 통일에 대한 전망을 남의 나라 통일 얘기하듯이 질문할 수는 없는 거죠. 저한테 ‘스님, 대만과 중국이 통일이 될까요?’라고 물어볼 순 있어요. 그건 남의 나라 얘기이니까 점쳐보듯이 얘기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통일은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내가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이 되도록 하면 됩니다.

노력한다고 반드시 통일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여러분들은 반드시 된다는 보장이 없으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인생을 살면서 뭘 하면 꼭 이루어져야만 합니까? 여러분들은 애 낳아서 키울 때 꼭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는 보장이 있어서 애를 낳아서 키웠어요?(모두 웃음)

그 애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훌륭한 사람이 안 된다고 실패한 건 아니잖아요. 되면 좋지만 안 돼도 소중한 인생이니까요.

그래서 조금 더 실천적 관점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무거운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에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책임을 지라는 거예요. 만약 가게를 열었다면 장사가 되고 안 되는 건 내 일인데, 그걸 왜 부처님, 하나님한테 도와달라고 하느냐는 거예요. 그러니 생각을 조금만 바꿔 보세요. 왜 우리가 자꾸 남한테 손을 벌려야 돼요?

우리가 1960년 정도에만 해도 배가 고팠죠? 그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하면서 열심히 노력했잖아요. 그래서 경제적으로만 보면 반세기 만에 세계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됐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부처님이 하신 일이에요? 우리 국민들이 한 일이에요?”

“우리 국민들이요.”

“예. 그것 보세요. 하면 되잖아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겠다면, 자꾸 북한 욕하고 미국 욕할 필요 없이 우리가 나서서 하면 됩니다. 남의 나라 빼앗아서라도 이익을 착취하는 사람들도 역사 속에 수없이 많았는데,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자는 것도 아니고, 원래 하나이던 우리끼리 같이 살자는 건데, 그게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통일이 이익이라면 하면 됩니다.

원래 내 것이었다 하더라도 다시 되찾아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된다면 안 가져올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필요하다면 내 것이었으니까 다시 가져오면 된다는 거예요.

나 혼자 살면 내 마음대로 하면 되는데 거기에도 사람이 사니까 내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까지 해서 가지는 것은 전쟁을 안 하는 것보다 실익이 없어요. 그런데 전쟁을 안 하고도 가질 수 있을 때는 실익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타협과 양보를 해야 됩니다. 이렇게 내 일은 내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 뉴스를 보면 분노가 일어 괴롭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조리에 눈과 귀를 막고 살고 있는데, 나만 행복하게 살아도 될까 의문이 듭니다.
  • 남편이 밖에 나가서 다른 여자들과 눈만 마주쳐도 마음이 힘들고,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이 쓰입니다.
  • 나이 오십이 되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 걱정이 듭니다.
  • 분황사와 황룡사의 창건 유래가 궁금하고, 분황사에서 스님이 출가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출가를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 법륜 스님은 친척들과의 관계가 어떠신가요?

질문이 계속 이어지던 중 한 분이 차례가 되어 일어났는데, 이렇게 말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 계속 들으면서 단박에 깨쳐서 저는 질문이 없습니다.”

스님도 “훌륭하십니다” 하며 기뻐하면서 “일어선 김에 노래 한 곡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분은 사랑가 민요를 멋들어지게 한 곡 불러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 남편에 대한 집착은 끊어지는데 자식에 대한 집착은 끊어지지가 않고 자꾸 간섭을 하게 돼요. 중3 아들이 공부를 좀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스님의 말씀을 듣고 108배를 한 지 오늘로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 밝히고 싶은 마음이 들고 화가 납니다.
  • 저도 스님처럼 지혜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죠?
  • 어머니가 농약 중독으로 인한 화학물질 감염증을 앓고 있는데 아버지가 그걸 공감해주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싸우는 부모님을 보는 저도 힘듭니다.
  • 얼마 전 호감이 생기는 남자가 생겼는데, 상대의 마음을 봐야 할지, 현실적으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인지를 봐야 할지 궁금합니다.
  • 5년 동안 만난 남자 친구와 얼마 전 헤어졌는데, 그 친구가 어려움에 처해서 도움을 주면서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 계속 상처를 받습니다.

2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며 스님이 정리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 하루 잘 지냈습니까?”

“예.”

“행복학교를 다니는 목적이 뭐예요?”

“행복하게 사는 거요.”

“예, 행복하게 사는 게 목적이에요. 첫째, 조건이 어떻든 나는 행복하게 산다. 이것이 목표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연인과 헤어지고, 누가 죽었고, 이런 건 불행하고 싶은 사람의 핑계입니다. ‘불행하고 싶은데, 무슨 핑계로 내가 불행을 합리화할까’ 하는 수준이에요. 물론 남편이 죽으면 슬프지요. 그런데 3년 지나면 좀 좋아질까요, 계속 나빠질까요?”

“좋아져요.”

“남편이 살아와서 좋아지는 거예요? 세월이 흐르니 좋아지는 거예요?”

“세월이 흐르니 좋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3년 지나서 좋아질 건데, 3년간 괴로워하다가 좋아지는 게 나아요? 그냥 오늘부터 좋아지는 게 나아요?”

“오늘부터요.”

“이게 수행이에요. 3년 간 괴로워하다가 좋아지는 건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자연 치유에 해당합니다. ‘3년 있다가 좋아질 거라면 오늘부터 좋아지자. 굳이 3년 끌 게 뭐냐’ 하는 관점으로 탁 바꿔서 오늘부터 웃어버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잘 안 되겠지요? (모두 웃음)

그러니 자꾸 연습을 하세요. 오늘 당장은 안 되어도, 일주일 만에 되든, 한 달 만에 되든, 연습을 하면 확 당길 수 있어요. 90세까지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괴로워하면서 사는 건 낭비입니다. 괴롭게 90세까지 사느니, 안 괴롭고 70세까지 살다 죽는 게 훨씬 나아요.

그러니 첫째, 핑계 대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 됩니다. 만약 자녀가 장애인이거나 우울증 환자라면, 운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그런 자녀를 데리고도 나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아프면 치료받으러 다녀보고, 고쳐지면 다행이고, 안 고쳐지면 계속 다니면 되고, 그런 가운데에도 나는 행복해야 돼요.

저는 평화와 통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년이 넘게 애써왔지만 지칠 때는 없었어요. 안 되면 또 되도록 하고, 안 되면 또 되도록 하고, 그렇게 할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미 통일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분단 사회에 살고 있죠? 저에게는 형식적으로 통일이 되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그 목표를 향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미 통일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수행의 관점을 분명히 가지면 어떤 상황에서든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요. 보통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겠지요.

그러니 둘째, 우리 사회를 차별 없는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행복도가 좀 더 높아질 겁니다. 꼭 본인만 쳐다보고 살 게 아니고,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면 그게 또 자기 수행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걸 옛날 용어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합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같이 하는 사람이 바로 ‘보디 사트바’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어떻게 하든 여러분들은 본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이 남편한테도 조금 도움이 돼요. 짜증 내면서 말하지 않고 이해하면서 말하면 나도 화가 안 나고 남편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건 당위는 아니에요.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를 함께 해 나가자는 게 행복학교의 취지입니다. 이렇게 하면 민주 시민으로서도 괜찮은 시민이 됩니다. 개인으로서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교양 있는 민주 시민이 되는 길이에요. 적어도 주권자로서의 자기의식이 분명한 시민이 되는 길을 함께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행복학교를 여러분들이 많이 확산시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역사 공부와 행복한 대화가 어우러져 스님 말씀처럼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를 함께 생각하고 다짐하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참가자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경주를 떠났습니다. 420여 명의 행복시민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대한민국의 행복도를 높이는 일을 계속해주시길 기원해 봅니다.

순례를 마치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하루 종일 김장 울력을 한 공동체 대중들을 격려했습니다.

대중들은 밭에서 배추 300포기를 뽑아와서 배추를 자르고 소금에 절이는 일을 했는데요. 소금에 절인 배춧잎을 한 입 먹어본 스님이 신통치 않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숨이 제대로 안 죽은 것 같은데, 제대로 한 것 맞아요?”

“방금 소금에 절여서 그래요. 6시간 기다려야 해요.”

6시간이 뒤에 고무통 위에 있던 배추를 다시 아래로 내려주는 뒤집기 울력을 또 해야 합니다. 스님은 “즐겁게 하세요”라고 격려한 후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멀리서 손님들이 찾아와서 저녁에는 손님들과 산책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일은 스님은 문경 수련원에서 불교대학생들을 위해 법문을 한 후 하루 종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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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

큰돌 작은돌이 어우러진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임을~
자기삶에서 한가지만이라도 부처님처럼 살아야된다는 말씀에 마음을 둡니다
감사합니다~^^

2019-03-29 10:51:48

정지나

지금, 여기서 자유롭고, 가볍게 가볍게...감사합니다. 꾸벅^^

2018-11-25 09:28:46

천준호

글로써 다시한번 보게되니 그날의 여운을 되새겨 보게 되네요..스님을 가까이서 뵙고 즉문즉설을 통해 좋은 말씀도 들으니 영광이었고 더없이 행복했습니다.스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18-11-16 18: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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