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1.26. 농사일
“스님, 이 대나무로 뭐하시려고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깨 털기입니다. 바싹 말린 들깨를 줄기 채로 탈탈 털었습니다. 깨를 털다 보면 마른 깻잎들도 함께 떨어집니다.

체로 큰 찌꺼기를 거르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작은 껍질까지 걸러냈습니다. 선풍기 바람에 작은 껍질은 날라 가고 무거운 깨만 바닥으로 떨어지는 원리입니다. 다 털고 난 들깻대는 불쏘시개용으로 모아두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밥값은 해야지.”

스님은 감기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밀린 농사일을 차근차근 시작했습니다.

국화와 각종 꽃 뿌리도 겨우내 얼지 않도록 채비를 했습니다. 긴 줄기는 잘라내고 화분들을 한 군데로 모아 부직포와 비닐로 덮어두었습니다.




마당 한켠에 남아있던 무도 수확했습니다. 얼까 봐 덮어두었던 부직포를 걷어내자 하얗고 싱싱한 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농사일을 하고 있으면, 법문 하러 가는 것도 싫어진다니까.”

농사일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 무아지경에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쉼 없이 몸을 움직입니다.

키우던 작물을 수확하고 남은 밭에는 석회, 소똥 말린 것, 깻묵을 뿌린 후 삽으로 땅을 뒤집었습니다. 지렁이들이 꿈틀꿈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평평하게 고른 땅에는 고수와 상추 씨앗을 뿌렸습니다.

“겨울에 심을 수 있는 작물은 몇 개 없어. 빈 땅에 이거라도 심어두면 봄에 수확을 할 수 있지.”

씨앗을 뿌린 땅에는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철사를 교차로 꽂고 지난번에 사용하고 잘 접어두었던 비닐을 덮어씌웠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새싹이 올라올 수 있도록 바람 한 점 안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긴 대나무로 무언가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낫으로 대나무 끝을 반으로 쪼개서 갈라진 양쪽 끝을 뾰족하게 낫으로 깎습니다. 쪼개진 부위가 시작되는 곳에는 철사로 조여서 더 벌어지지 않게 조였습니다.

“스님, 이 대나무로는 무엇을 하시려고요?”

“감깔게라고 알아? 이걸로 감 따려고.”

이 대나무를 이용하니 5~6m 높이에 있는 감도 쉽게 딸 수 있었습니다. 대나무를 가지에 끼워 넣은 후 비틀면 잔가지가 부러지면서 감이 달린 채로 따집니다.

대나무를 올려서 감을 따고 다시 내려서 감을 떼고 다시 올리는 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감이 박스 속에 수북이 쌓였습니다.

나뭇가지를 쳐다보면서 이 작업을 계속하니 목이 뻐근했습니다. 스님은 줄에 묶은 양동이를 들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나무 위에 자리를 잡자 순식간에 많은 양의 감을 따내기 시작합니다.

양동이에 감이 가득 담기면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듯이 줄로 묶은 양동이가 내려옵니다.

“자, 받아라.”

감나무 밑에서 행자들도 장대를 이용해 감을 따 보지만 땅에 툭툭 떨어뜨리기 일수입니다. 그래도 재미가 넘칩니다. 잘 익은 감이 뚝 하고 따지면 환호가 터져 나옵니다.

“스님, 공양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한 바구니만 더 따고 내려갈게요.”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감나무 하나에서 정말 많은 감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홍시가 된 것, 아직 덜 익은 것, 단단한 것으로 분류해 상자에 담았습니다. 곧 터질 것 같이 잘 익은 홍시는 서울 공동체로 보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웃 밭에 지난번에 수확하지 않은 열무를 수확하러 갔습니다. 스님이 푹푹 삽질을 해주자 행자들이 쑥쑥 뽑았습니다. 이 열무는 모두 이웃집에 기르는 소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갓 뽑은 무라 그런지 소들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밭 앞에 감나무에서 또 감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넝쿨이 나무 끝까지 타고 올라가 감 따기가 쉽지 않았는데도, 스님은 속전속결로 감을 척척 땄습니다.

“까치밥은 남겨두고 가야지.”

파란 하늘을 풍경으로 주홍색 까치밥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이번에도 한 바구니 가득 감을 따고 돌아왔습니다.

“법사님, 홍시 실컷 먹고 가세요.”

홍시를 좋아하는 법사님에게 건네는 스님의 말씀이 더 달게 느껴집니다.

오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봉화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신축한 강당이 잘 지어졌는지, 연말 수련을 진행할 수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은 봉화를 거쳐 다시 서울로 이동하였습니다. 내일은 평화재단 회의에 참석한 후 경기 광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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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감나무와 한몸이되어 가득채운 감박스가
더욱더 풍성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8-12-18 08:39:35

규원

스님 너무 일을 많이하시니 연세가 있으시니 힘든일은 좀줄여가시면좋겠습시다.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2018-12-03 11:56:32

임무진

저희 집 감 딸 때 참고하겠습니다

2018-11-30 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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