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2.20 ‘혼자여도 괜찮아’ 3545세대를 위한 송년파티
“20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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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님은 3545세대를 위한 송년파티에 참석해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30대가 되면 20대 때와는 다른 종류와 깊이의 고민들이 많이 생깁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어른이 되어가면서 불안한 마음이 커지기도 합니다.

오늘 콘서트는 이런 3545세대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2018년 한 해를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마포구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 아르떼홀 입구에는 행사 1시간 전부터 많은 청년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습니다. 190석이 가득 차고 7시 30분이 되자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편집한 사전 영상을 보며 대사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짓말, 괜찮아 사랑이야, 빠담빠담, 그들이 사는 세상...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대사들을 곱씹어 보니 마치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상의 마지막에 한 줄 문장이 뜨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는 우리에게 오늘 이 시간을 선물합니다.”

싱어송라이터 임현정 씨의 공연으로 3545 송년파티의 분위기는 서서히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마치 모닥불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의 따뜻한 공연이었습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
...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스님 앞이라서 너무 긴장되고 스님 얼굴 표정을 확인하며 노래를 했다”라고 말하는 가수 임현정 씨에게 스님은 “잘한다~!”라고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임현정 씨는 20대 중반 어려웠던 시기에 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고,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 시간은 멘토들과 함께 3545세대들의 고민을 나누는 자유롭고 편안한 대화, 이름하여, ‘아랫목 대화!’입니다. 법륜 스님과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에 올라와 청년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사회자가 청중석을 향해 “전부 미혼이신가요?”라고 질문하니 모두 “네” 하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인사 말씀을 청하자 스님이 웃으며 말문을 엽니다.

“혼자 산다고 고생하셨습니다.”

노희경 작가님도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떼로 모아 놓으니 더 재밌습니다.”

한겨울에 아랫목에서 귤을 까먹으며 나누는 대화같이 진솔한 분위기가 주욱 이어졌습니다.

사전에 사연들을 접수받았는데요. 그중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 사연을 사회자가 몇 개 소개한 후, 해당 사연을 직접 쓴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법륜스님, 노희경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청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진솔한 사연들이 아랫목 대화의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 결혼은 하고 싶은데 무섭고 걱정되고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생겨요. 나이 듦에 대해 점점 두려워지네요. 외롭고 힘듭니다.
  • 연애, 결혼, 정말 답이 없어요.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남들 하니 다 해야 하나요? 나중에 늙어서 혼자되면 힘들 것 같다는 주위의 어른들 말씀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 새로 만나는 분들이 나이를 물어보면 주저하게 됩니다. 미혼이고 반듯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어서 솔직하게 말했을 때 상대의 변하는 시선이 매번 아픕니다.

스님이나 노희경 작가님만 일방적으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연에 대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손을 들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사회자가 스님에게도 대답의 기회를 넘겼는데, 스님은 편안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왔어요.”

여러 가지 사연들의 공통점은 불안함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만큼 요즘 청년들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겠죠.

오늘은 그중에서 20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했다는 한 청년의 사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직장을 그만둔 청년의 고민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올초 20년 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을 했더랬습니다. 아직 젊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다잡고 있는데 직장, 결혼 등 불안한 감정은 아직 남아있네요. 어떻게 하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해요. 20년 동안 직장을 다녔는데, 전에 다닐 때 직위와 전에 다닐 때 월급을 자꾸 생각하면 미래에 장애가 됩니다. 20년 다니고 은퇴하셨으니까 저축해놓은 돈으로 몇 년 더 놀아도 되고요. 대신에 지출을 좀 줄여야 되겠죠. 그리고 몇 년 놀 동안에 그냥 놀지 말고 재미로 여기저기에서 몇 달씩 일을 해보세요. 아무것도 안 하고 2년 동안 실컷 놀고 나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노는 게 끝날 때가 되면 끝나가서 문제이고, 새로운 직장은 안 구해져서 문제입니다.

‘오늘부터 휴가다. 20년 열심히 일했으니까 3개월은 놀아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지내다가, 약간 지루해지면 또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부터는 가볍게 놀이 삼아 직장 한 번 다녀봐야지.’

월급에 구애받지 말고 좋아 보이면 가서 일해 보고, 빵도 한 번 만들어보고, 음식도 한 번 만들어보고, 청소도 한 번 해보고요. 이것저것 해보다가 재미가 있으면 그걸 좀 더 하고요. 그렇게 3년이 지난 뒤에 ‘아, 이번에는 10년 동안은 이걸 한 번 해 볼까’ 하고 생각이 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너무 결단을 내려서 하려니까 인생이 조급해지고 쪼들리고 조마조마해지는 겁니다.

저는 미래를 대강 구상하지만 인연 닿는 대로 합니다. 30년 전에 큰 구상을 이미 했습니다. 환경 운동, 구호 활동, 평화 운동, 수행, 이런 구상을 했지만, 계획을 세워서 집행한 적은 없었어요. 구호 활동은 제가 인도에 갔다가 굶주리는 아이를 외면한 것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평화 운동은 압록강변에 갔다가 몸이 야윈 북한 어린이를 만나서 시작이 되었어요.

농사짓는 것은 제가 늘 인생의 마지막 모습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훌륭한 스님의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하죠? 제가 그리는 마지막 모습은 농사짓고 그냥 농부로 죽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틈 나는 대로 가서 농사를 짓습니다. 제가 어릴 때 농사를 지었지만 요새 농사가 달라졌거든요. 틈 나는 대로 지금부터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같이 지내다가 좋은 감정이 생기면, 서로 물어보고 의사가 맞으면 연애를 하면 됩니다. 의사가 서로 안 맞는데 따라다니면 추행이에요. 옛날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는데 요즘은 그러면 전부 감옥에 갑니다. 쾌활하게 서로 의사가 맞으면 결혼을 하는 것이고, 결혼해서도 서로 의사가 안 맞으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동안 잘 살았습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고맙다고 인사한 후 헤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왜 원수가 돼서 헤어지나요? 한 이불 밑에서 자 본 사람이 인생 전체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이렇게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좋은 일도 너무 죽기 살기로 하지 마세요. ‘심심한데 뭐 모금이나 하지’ 이런 자세로 해야 삶이 가벼워요. 결혼을 한다, 안 한다, 자꾸 이렇게 정하지 마세요. 결혼을 하겠다 해도 사람이 없으면 못 하는 겁니다. 결혼을 안 하겠다 해도 사람이 엮이는데 어떻게 안 해요. 결혼을 안 하겠다고 결심해 놓았는데, 마음이 가는 여자가 나타나서 결심을 번복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어요. 그냥 살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고, 없으면 그냥 사는 거죠.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정해놓으면 자꾸 인생살이가 쪼들립니다. 혼자 사는 건 흉이 아니에요. 오늘 행사 이름을 ‘혼자라도 괜찮아’라고 적어 놓았는데, ‘둘이라도 괜찮아. 혼자는 더 좋아’ 이렇게 적어 놓으시면 좋겠어요.” (모두 웃음)

“네, 스님의 지혜를 주시는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청년의 고민에 대해 노희경 작가님도 본인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도 글 쓰는 일을 24년째 하고 있는데, 질문자의 고민이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제가 스님 옆에 붙어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제 장래 문제 때문입니다. 이번 겨울에 스님을 따라 인도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지난여름에 스님과 동북아 역사기행을 가서 개고생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때 ‘아, 이렇게도 살 수 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좀 생기더라고요. 인도는 열악한 환경이어서 침낭과 반찬을 모두 가지고 가는데, 오늘 아침에 인도에 갈 짐을 싸는데 ‘뭐, 그냥 살아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은 저처럼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은 ‘다음에 아무도 나를 안 써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급급해합니다. 저도 한 동안 그렇게 선택받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깨달음의 장에 갔다 오고 나서 진짜 내가 원했던 게 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저는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하게 살아서 어릴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제 삶은 제가 원하는 것 이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들이나 동기들을 보면 신인 때에 비해서 더 가졌지만 ‘더’, ‘더’, ‘더’, ‘더’ 하는 게 보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면서 너무 힘들었고 행복하지 않았어요. 모든 작가들이 처음에 글을 쓸 때는 누군가 한 사람만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이 욕을 하면 백만 명이 봐도 만족이 안 돼요. 그다음부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 가난했던 기억과 깨달음의 장에서 먹었던 두 끼의 밥과 반찬들을 생각하면 지금 너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때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 인도에 가서 먹을 쌀과 스물 세 끼 분량의 반찬을 챙기면서, 쌀 요만큼에 멸치 요만큼으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면 지금 가진 돈으로도 노후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게 먹고, 단체 숙소에서 같이 자고, 그렇게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나를 길들이니까 스스로에 대해 좀 더 당당해지는 것 같아요. ‘어차피 밥 세 끼 먹는데,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뭐’ 하는 배포도 생기고요.

최근에 부유층 사교 클럽 얘기를 듣게 됐는데 너무 무섭더라고요. 제가 거기에 속해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은 늘 비교하고 더 가지려고 합니다. 백억이 있어도 천억짜리 건물을 못 가져서 불안해한다는 얘기를 듣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후배는 ‘꽃자리에 있으면서 그런 얘기를 하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꽃자리가 진자리여도 괜찮다’라고 생각해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겠습니다. 스님 옆에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문경 정토수련원이 저에게는 고향 같아요. ‘내가 아무것도 없으면 마지막에 여기에 들어오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절에 들어오기 싫다면, 좀 아껴 쓰고 나를 천하게 길들여야 되겠죠. (모두 웃음)

나를 꽃자리에만 놔두어서 진자리에 가게 되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도록 스스로를 만들면 안 됩니다. 호텔이 아니면 잠을 못 자게 만들면 안 됩니다. 어디에서나 잘 수 있게 야생성을 길러야 돼요.

스님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저도 요즘 ‘농사를 배우리라!’ 하고 생각해요.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면 적어도 남들한테 고개 숙이고 살지는 않겠다 싶어요. 정말 잘 나가는 선배님들이 노후에 불행해지는 걸 많이 봤어요. ‘누구는 아직도 드라마를 쓰는데’, ‘누구는 자식이 잘 됐는데’, ‘누구는 건물이 있는데’, 이렇게 비교를 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어요.

저는 서른여섯 살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서 그 날 이후 수행을 하루도 안 놓쳤어요. 정말 깨달음의 장 때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처음에 글을 썼던 초심을 서른여섯 살까지 잊고 있었던 거죠. 가난했던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가난을 글로 쓸 수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들도 어떤 것이 행복한 것인지 연구하고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스님이 제일 행복하신 것 같아요. 가지신 것도 없는데 말이죠. 행복에 대해 좀 더 배우려고 이렇게 스님 옆에 있습니다.”

아랫목 대화가 ‘우리’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면, 다음 코너는 ‘나’의 고민을 해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질문에도 언제나 명쾌한 답을 주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두려움이 일어나서 너무 괴롭다는 청년의 질문이 있었는데요. 스님은 이 청년이 어떻게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죽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고 소리가 악 하고 질러졌습니다. 이제 여기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이렇게 괴로우면 인생이 너무 슬프잖아요. 매일 도돌이표이고 제자리걸음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죽음을 생각하면 두렵다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제가 자의로 생각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지하철을 탔을 때, 아니면 혼자 걸어갈 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그럴 때 퍼뜩 다른 생각을 해 보세요.”

“그렇게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면 뭐 괴로워하는 수밖에 없죠.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두려움이 생긴다면, 그건 트라우마이거든요. 어릴 때 나도 모르게 죽음에 대해서 놀란 일이 있거나, 기억도 안 나지만 어떤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도 몰라요.”

“기억이 없어요.”

“그렇다면 아주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가 무의식 세계에 있다는 거예요. 그 생각을 하면 옛날의 두려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세 살 이전의 경험이면 기억을 못 해요. 세 살 이후의 경험이면 심리 상담을 통해 계속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장면이 다시 재현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초등학교 때 기억은 몇 가지만 생각나는데,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자꾸 얘기하다 보면 ‘맞아. 맞아. 그때 그랬지’ 하면서 계속 고구마 줄기 찾아가듯이 기억이 찾아가서 다 되살아 나거든요. 뇌의 기억 창고에 다 기록이 돼 있으니까요. 이렇게 트라우마의 원인을 찾아가서 거기서 그 두려움을 치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은 이런 방법으로 치유하지 않습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두려움이 일어난다면 그냥 그 생각을 끄는 거예요. 그 생각이 딱 나면 딴생각을 바로 해 버리는 겁니다. 죽음이 생각나면 트라우마 때문에 자동으로 두려움이 일어나니까, 죽음이 생각나면 퍼뜩 머리를 흔들고 딴생각을 해 버리는 겁니다. 책을 본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장면 전환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런 방법은 회피가 아닐까요?”

“회피가 아니에요. 자동으로 켜지니까 내가 끄는 겁니다. 켜지는 건 자동으로 켜지지만, 끄는 건 내가 끌 수 있거든요. 이렇게 하면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로도 나는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치료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거예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죽음을 체험해보면 돼요. 밧줄을 목에 매달아 놓고 1분쯤 매달려 보는 거예요. 숨을 안 쉬어 보고 ‘그래도 괜찮네’ 하면서 죽음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체험을 하는 겁니다.

첫째,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게 제일 낫습니다. 둘째, 죽음이라는 게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죽음이에요. 우리 모두는 지금 죽음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올라갔다가 죽음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밑으로 내려갔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꼬불꼬불 돌아서 가는 사람도 있고, 똑바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 차이밖에 없어요. 삶은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경주인데, 누구나 다 종착점은 죽음이에요. 누구나 다 가는 길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사업을 하면 돈을 벌어야 한다’, ‘글을 쓰면 유명해져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목적 지향적인 자세입니다. 너무 목적 지향적이면, 그게 안 이루어졌을 때 괴롭습니다. 그게 이루어지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죽음이 목적이라고 해서 당장 죽을 수는 없잖아요? 지금에 충실하지 않고 자꾸 목적지에 마음이 먼저 가는데, 이것은 마치 글은 안 쓰고 유명해질 것만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는 아무리 다르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고, 그 생각이 떠오르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거예요. 자기가 괴롭고 싶어서 괴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 생각을 떠올리고 싶어서 떠올려지는 게 아닙니다. 무의식 세계에 하나의 습관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고, 떠오르면 두려움이 자동으로 일어나도록 까르마가 형성되어 있는 거예요. 그 까르마에 계속 휘둘리고 살 건지. 그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울 건지 질문자가 오늘부터 선택해야지요.

모든 까르마를 다 소멸시킬 순 없어요. 정말 상처가 심한 건 치유를 해야 되지만, 어차피 산다는 건 전부 다 과거로부터 살아온 습관의 결과물입니다. 그것의 결과물로서 자꾸 괴로움이 생긴다면, 자기가 괴롭게 살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됩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을 바꾸고, 안 바꿔지면 조금 괴로워하고요.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아, 이것은 내 까르마라서 잠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그 괴로움의 시간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가 있겠죠.

인생을 가볍게 접근하세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머리 굴려봐야 지금 머리 이상의 다른 또렷한 대책이 안 나옵니다. 선택은 간단합니다.

선택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첫째, 여러분들이 자꾸 욕심을 가지고 두 개를 다 먹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택하기 어려우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요. 우리의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것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환경이 나를 규정합니다. 여러분들이 중학교 올라간 것이 스스로 선택한 것 같죠? 아닙니다. 밀려서 그냥 올라간 거예요. 죽는 것도 밀려서 가는 거예요. 결혼도 직장도 밀려서 가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삶의 대부분이 밀려서 가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작은 선택들을 합니다. 그 선택은 이러나저러나 사실 큰 차이가 없어요. 머리를 많이 굴리든, 많이 안 굴리든, 결과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과 대화가 있었습니다.

  • 어릴 때부터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고 소리를 악 지르게 되는 증상이 있는데, 이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 어머니가 어떤 스님을 만난 후 올해 자식들 중 한 명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서 큰 금액을 불사금으로 달라고 하는데, 어떡하죠.
  •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서 웃는 경우는 많지만, 진심으로 웃는 것을 잃어버렸어요.
  • 하루하루 잘 살고는 있지만 문득 삶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 상대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아서 힘듭니다.
  • 선택을 할 때, 나의 이익을 선택하자니 상대방의 마음이 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자니 내가 힘듭니다.
  • 언니와 동생들이 시집을 잘 갔어요. 남자 친구를 만나면 항상 형부들과 비교하게 되어 압박감을 느낍니다.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준 스님에게 청년들 모두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 강연엔 언제나 웃음과 감동이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이곳에 모인 분들에게 연말 선물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추첨된 분들에게는 법륜 스님과 노희경 작가님의 사인이 담긴 책을 선물했습니다. 요술당나귀, 임현정 님, 노희경 작가님, 스님 순서대로 번호표를 추첨해서 번호를 부르자 당첨된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책을 선물로 받은 분들 모두가 정말 기뻐했습니다.

“우리의 고민을 나누고 문제도 해결했으니, 한번 파티 분위기를 내어 볼까요?”

사회자가 흥을 돋구자 환호가 터져 나옵니다. 송년파티의 마지막을 흥겹게 장식하기 위해 대형 기획사의 러브콜을 피해 산과 바다를 여행하며 자연을 노래하는 에코밴드 '요술당나귀'가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오늘 행사는 <정토회 3545 행복발전소>에서 기획하였습니다. 3545 행복발전소는 새해부터 3545세대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행복한 3545세대가 점점 많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오늘 3545 송년파티에 참석한 청년들처럼 여러분들도 <스님의 하루>와 함께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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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6

0/200

서 영문

이만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2022-10-28 16:43:03

정지나

그냥 좀 가볍게,가볍게...감사합니다 꾸벅^^

2019-01-02 08:58:43

김효정

스님 감사합니다. 모든 봉사자들 감사합니다.

2018-12-25 08: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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