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9 인도성지순례 5일째(수자타 아카데미 개교기념식)
“스님은 지난 25년 동안 기운이 빠지신 적은 없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성지순례 5일째로 오전에는 수자타 아카데미 개교 25주년 기념식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둥게스와리 마을 방문을 하는 날입니다.

전정각산의 새벽

오늘도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5시에 수자타 아카데미 쁘락보디홀에 모여서 새벽 예불을 드렸습니다. 400명의 대중이 가사를 걸치고 함께 하는 새벽 예불은 참으로 장엄하고 엄숙합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전정각산에 오르기 위해 6시 15분에 교문 앞에 모였습니다.

어제 순례길 행군으로 피곤한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라고 공지하였지만 대부분의 순례객들이 동참하였습니다.

스님을 따라 산을 오르니 꽤 큰 웅덩이가 보이는데 물이 뿌옇습니다. 스님께서 물 웅덩이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십니다.

“이 곳이 전정각산에서 유일하게 물이 있는 곳입니다. 고오타마의 샘이라고 불리는데 부처님도 이곳에서 물을 드셨다고 합니다.”

조금 더 가니 바위로 둘러싸인 평안해 보이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은 바람을 막아주어서 안온합니다. 아마도 겨울에는 여기서 주로 부처님이 머무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기와 저기에 탑터가 2개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명상하던 자리로서 기념탑을 세웠던 곳입니다. 그럼 여기서 명상 하겠습니다.”

스님은 몸소 바위에 자리를 깔고서 자세를 바로 하시고 간략하게 명상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함께 명상을 하셨습니다.

“각자 편안한 자세로 앉습니다. 우선 자세부터 편안히 하고, 한 번 앉으면 움직이지 않도록 합니다. 잘하려고도 하지 말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셔야 합니다. 긴장을 풀어야 해요.

이제는 마음을 코끝에 모아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려 봅니다. 즉,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 체크해보는 거예요. ‘호흡하고 있구나’ 하면 숨이 들어올 때 들어오는 줄 알고, 나갈 때 나가는 줄 알아차리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가운데 마음을 코끝에 모아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춥다’ 이런 몸의 감각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나 생각,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지금 여기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이제 죽비를 치면 모든 동작을 멈추고 호흡에만 집중해봅니다.”

대중이 모두 조용히 자리를 잡고 명상을 하는 가운데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어옵니다. 부처님께서 정진하셨던 이곳에 2600여년이 지나 그 제자인 정토행자들이 명상을 한다고 하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음이 새롭습니다. 조용하고 편안한 가운데, 순례객들을 따라 온 동네 개들도 한 쪽에 자리 잡고 명상을 하는지 잠을 자는지 다소곳이 눈을 감고 곁에 있었습니다.

명상이 끝나고 스님은 잠깐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곳 전정각산에서 이곳과 같이 저희가 현재까지 발견한 탑터는 16곳입니다. 여러분들 앉은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벽돌이 있는 터가 두 곳 보입니다. 산 능선 위에 올라가면 그저께 올라간 유영굴 뒤편으로 무너진 탑터가 두 곳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면 전정각산의 정상 부근에는 탑 터가 5곳이 있습니다.

능선에 7곳, 이곳에 2곳, 학교 앞에도 2곳이 있고, 샘터에 탑이 1개, 유영굴 밑에 3개, 제 2 유영굴 1개가 있습니다. 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벽돌 무더기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이 산에 탑터가 아니면 벽돌이 있을 일이 없잖아요. 그렇게 현재 16군데 탑 터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 중에 부처님이 산에 계신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활동하셨던 곳이 주로 힌두스탄 대평원 유역이기 때문에 산지는 많지 않고, 그나마 산이라면 이곳 전정각산과 라즈기르(왕사성) 주변입니다. 이곳이 데칸 고원에서 힌두스탄 평원으로 이어지는 끝자락 지역입니다. 힌두스탄 평원에 들어서면 평원이 계속 되다가 히말라야로 연결됩니다.

자, 그럼 이것으로 마치고 내려가겠습니다. 이렇게 한가한 아침을 보내는 건 오늘 밖에 없어요. 학교에 하루 머무니까 아침에 산책도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일어나서 천천히 내려가겠습니다.”

스님이 앞장서시고 서둘러 길을 내려왔습니다. 아침 식사 후 8시 30분부터는 인도 JTS에서 봉사하시다가 무장괴한의 침입으로 돌아가신 설성봉 거사님 추모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빛으로 돌아오소서

먼저 향상 법사님이 추모의 글을 낭독했습니다.

"설거사님! 부를 때마다 안경 너머 작은 눈은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채비를 갖춘 선한 눈매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옅은 웃음으로 대답하셨죠.

‘세상살이에 아무런 욕심이 없어. 어디 살든 나는 정토행자이고 정토행자로 살다 부처님 법 전하며 살다 죽으면 되지...’

언젠가 옥상에서 전정각산을 바라보고 허허 웃으며 하시던 말씀. 지지리도 못 살아 인간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땀이 많으신 분이 40도를 오르내리는 인도 땅을 밟으심은 바로 그 이유였습니까? 중학교 건물 콘크리트 친다고 인도의 어린 아이들과 함께 대야에 시멘트를 이고 나르던 당신의 모습. 눈물이 납니다. 당신의 모습이 수자타 아카데미 전정각산과 더불어 더 큰 무게로 가슴을 누릅니다. 당신의 크나큰 사랑, 남아 있는 저희들이 이루겠습니다. 설성봉 거사님! 부처님 고행하신 전정각산 바람 따라 네이란자라강 흐르는 강물 따라 몸 편히 누이시고 고이 가소서! 빛으로 돌아오소서!’

그리고 무변심법사님의 염불과 함께 정성스럽게 천도재를 올렸습니다. 척박한 이곳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시다가 무장 강도의 총격에 숨진 거사님이 있었기에 오늘의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부디 왕생극락하시고 빛으로 돌아오소서’ 하는 마음으로 지극정성으로 재를 지내고, 설 거사님의 뜻을 이제 우리가 이어받아서 인도JTS를 잘 가꾸어 나가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개교기념식

추모식을 하는 동안에 학교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부다가야의 외국절 스님들 그리고 비하르주의 농림부장관과 이 지역 내빈들이 25주년 개교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총 2600여 명이 모인 큰 행사였습니다.

요란한 축하 음악과 함께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는 인도어로 진행되었고 오늘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한 학생들의 공연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공연 하나 하나 신나고 재미있고 멋졌습니다.

먼저 귀여운 유치원생들이 반짝이는 무대의상을 입고 곰 세 마리에 맞춰 앙증맞은 춤을 선보였습니다. 정말 다채롭고 인상적인 인도 공연을 보는 듯 했습니다. 때로는 인도 음악에 때로는 한국 전통 음악에 맞추어서 신명나게 즐기는 모습에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BTS의 음악에 맞춰 인도 남자 아이들이 멋진 댄스를 추자 한국인들의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은 평소에 갈고 닦은 태권도 실력도 뽐냈습니다. 한국말로 “하나”, “둘”, “태권” 하는 소리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얼마 전 콜카타에서 열린 국제 태권도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탔습니다. 다시 한 번 스님께서 직접 시상해주었습니다.

저렇게 멋지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들에서 어제까지 관광지에서 보았던 구걸하는 인도 아이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 정성으로 교육한 힘은 컸고 기적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사이사이 둥게스와리 마을 사람들의 공연도 있었습니다. 두르가푸르 마을의 어머니들은 ‘스님이 오셔 마을이 좋아져서 기쁘네’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고, 까나홀 마을에서는 인도 특유의 구수한 노래와 함께 연극을 하며 ‘아동 노동 금지, 아동 조혼 금지, 지참금 금지’, ‘깨끗한 인도 만들기’ 등의 주제를 표현했습니다.

한참 신나게 공연을 즐기고 드디어 스님께서 감사의 인사말을 하셨습니다. 먼저 개교 기념식에 참석한 분들을 하나 하나 언급하면서 감사의 말씀을 하는데 학생들을 제일 먼저 말씀하면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그 뜻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오랫동안 지원해 주셨던 미얀마 스님을 위시하여 근처의 베트남, 방글라데시, 티벳 스님들 그리고 지역 유지들 그리고 학교를 세울 당시 땅을 보시하였던 이곳의 가난하고 헐벗은 동네사람들, 하나라도 빠질세라 스님의 세심한 모습이 엿보입니다.

“오늘은 수자타 아카데미 25주년 개교기념식입니다. 학교를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이 지났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입니다. 지난 25년 동안은 수자타 아카데미가 지금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아이와 같았다면, 이제는 성년이 되었으니까 앞으로 마을과 학생들을 위해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과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5년 전 이곳 둥게스와리 유영굴 근처에서 아이들이 구걸하는 것을 보고 이 학교를 짓게 되었습니다. 처음 학교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기증해주신 두르가푸르 사르빤지 외 10명의 어르신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가야에 있는 청년들과 선생님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대중 박수)

아침 조회 때 아이들이 쓰러져서, 의사선생님을 초청해서 아이들의 건강을 검진했더니 의사선생님이 ‘이 아이들에게는 약보다 우유 하나, 바나나 하나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영양실조 상태입니다’라고 해서 그 때부터 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좋은 조언을 해주셨고 그 이후에도 아이들과 주민들의 건강을 늘 돌봐주시는 닥터 B.K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학교가 시작되었을 때 석가족의 청년들이 와서 학교선생님으로서 활동을 해주셨던 YBS의 많은 활동가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YBS의 회장인 수바스씨가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마을마다 유치원을 짓는데 유치원을 세울 수 있도록 동네마다 땅을 기증해주신 분들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땅을 기증해주신 분들 모두 한 번 일어나주세요. (대중 환호와 박수)

일일이 다 거명할 수 없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에 의해서 오늘의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시작되고 운영되도록 한국에 계신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셔서 이 학교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그동안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이곳 둥게스와리 지역은 지난 25년간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25년 전에는 문맹률이 거의 100%에 가까웠는데, 현재는 14-25세 사이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보면 언어독해율이 80%에 가깝습니다. 그동안 청년들은 거의 대부분 글을 알게 되는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인도 전 지역의 평균 언어독해율인 64%에 비한다면 80%는 평균을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동네마다 유치원이 있어서 이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아가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의 출석률은 9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동네에 왔을 때에는 결핵 환자가 많았습니다. 현재 12,000여명이 사는 둥게스와리 지역에 결핵 환자로 관리 받고 있는 환자 수는 3명에 불과합니다. 아기를 낳다가 산모가 죽거나 어린 아이가 일찍 죽음을 맞이하는 사고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변화를 위해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듯 주민 여러분들도 변화를 위해 무언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곳은 부처님이 6년간 수행하신 곳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오신 주민 여러분과 학생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우리가 잘 사는 마을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부유한 건 아니더라도 누구나 와서 살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을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대중 박수)

아이들은 재능이 많습니다. 조금 전에 보셨듯이 태권도를 배웠는데 캘커타 국제대회에 나가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나 땄습니다. 춤, 음악 등 많은 부분에 나가서도 수상을 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도와야겠습니다. 그렇게 여러분과 함께 수자타 아카데미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대중 박수)

오늘 점심식사를 준비했으니 잘 드시고 조심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참여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아이들이 법륜스님과 여러 귀빈들을 모시고 무대 위로 올라와서 꽃목걸이를 걸고 “세상을 함께 치유하자”는 노래를 부르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학교를 세우신 스님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스님이 없었다면 지금도 굶주림에 허덕이며 구걸을 하고 있었을 아이들인데...’ 순례객들도 모두 눈시울을 붉힙니다.

성지순례객들도 오늘은 인도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뭇잎으로 만든 접시 위에 뿌리, 사부지, 미타이 그리고 오렌지를 담아서 야외 잔디밭에 조별로 올망졸망 모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늘은 숟가락도 사용하지 않고 인도인들처럼 손으로 식사를 해봅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학교 옆 마을인 자그디스푸르와 두르가푸르 마을 주민 300여 가구에 쌀을 배분했습니다. 쌀을 한 자루씩 받은 주민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이어서 오후에는 직접 마을 방문을 하였습니다. 약 400명의 순례객들이 각각의 마을로 나뉘어져 실제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방문한 마을의 아이들은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때로 몰려와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네는데 사탕이나 초콜렛을 원하는 듯 했습니다. 안내해주는 법사님이 “아이들에게 자꾸 무엇을 주지 마세요.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지 마시고 의젓한 청년으로 자라게 해주세요. 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저희 JTS에서 균등히 잘 전달하겠습니다.” 라고 얘기해주시는데 JTS가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시켜 왔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직접 들여다 본 방 안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깜깜한지 놀라웠고 염소나 닭과 함께 생활해서 염소 똥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어찌 사는가 싶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밝게 웃으면서 사진 촬영에도 응하고 아이들은 해맑기만 하였습니다.

순례객이 직접 방문한 집은 모두 마을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집이었습니다. 그래도 JTS의 염소은행에서 분양받은 염소 한 마리를 열 마리까지 늘리기도 하고, 아이들 모두가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집 방문 후에는 인도JTS에서 제공하는 구호물품을 함께 나눠주었습니다.

방문 후 조별로 소감문을 작성하고 나누기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기준에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지만 누가 더 자유롭고 행복한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보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비위생적이었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살고 있는지 알겠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돕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로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 저녁 예불 후 강당에서 차량별로 한 명씩 대표로 소감 발표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감과 더불어 둥게스와리의 발전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각 조별로 나온 의견들에 대해 정리말씀을 해주시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중 한 가지 질문과 대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JTS 구호활동 기금 마련을 위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그런 활동에 참여하면 주변에서 ‘그런 활동을 해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스님께 배운 대로 그 과정에서 이미 행복하고 즐거웠기 때문에 ‘다만 할 뿐이다’ 이렇게 답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려오는 뉴스들에서 대기업 분식회계처럼 굉장히 이슈가 될 줄 알았던 문제가 그냥 묻혀가고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는 상황을 접할 때마다 2600년 전 부처님 당시랑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운이 좀 빠집니다. 혹시 스님은 25년 동안 활동을 하시면서 기운이 빠지신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제가 어떤 관점을 놓치고 있는 건지 여쭙고 싶습니다.”

“빈부격차는 현대 사회에서 문명의 발달 시스템 상 특별히 이 문제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은 갈수록 더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겁니다. 벌어진다 해도 벌어지는 속도를 늦추고, 그 다음에 멈추게 하고, 나아가서 개선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그것은 우리들의 사회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노력을 하면 벌어지는 속도를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노력하면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연 3퍼센트인데 노력을 안 하면 연 5퍼센트가 된다면 비록 벌어지더라도 노력을 해야 하겠죠.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니까요.

기후변화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환경운동을 해도 기후변화는 일어나고, 환경운동을 안 해도 일어나요. 우리가 그나마 환경운동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 100년에 1도 오를 게 100년에 0.5도 오르게 한다고 합시다. 이럴 때 ‘그래봤자 못 고치지 않았냐? 그래도 어차피 온도는 오르지 않았냐!’ 이렇게 말하는 게 극단적 주장이에요. 그러니 내버려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면 인간이 할 일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제일 좋겠지만,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방치하는 것보다는 그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면 그만큼 사람들의 고통이 덜어집니다. 수행자는 ‘결과가 된다, 안 된다’ 하는 관점에서만 보면 안 되고, 조금이라도 될 수 있으면 해야 하는 겁니다.

인도 전체 인구가 얼만데 학생 1600명 되는 수자타 아카데미 하나 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한다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저 팽개치는 것보다는 다만 10명이라도, 혹은 다만 100명이라도 우리가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렇다고 딱 이 100명만 가지고 성과를 내서 잘 살도록 해주겠다는 목표도 아니에요. 가능하면 다수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원래는 8대 성지마다 학교를 지어서 점을 찍고, 그 점과 점을 이어서 마을마다 학교를 짓고, 거기서 또 면을 넓히는 이런 계획을 이미 20년 전에 세웠어요. 그런데 여태껏 한 점에 머물러서 다른 점도 미처 못 찍었어요. (모두 웃음)

다만 여기서 이런 변화가 일어남으로 해서, 첫째, 앞으로 점을 찍을 때 굉장히 유리해졌어요. 여기서 우리가 훈련시킨 노동자며 기술자 서너 명에 여기서 훈련받은 선생님 두 명을 다른 지역에 보내면 바로 건물도 지을 수 있고 학교 운영도 할 수가 있겠죠.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려니 자리 잡는 데만 20년이 걸렸거든요. 모델은 이제 만들어졌고, 다음 단계는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모델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어요.

둘째, 인도 사회가 변하면서 문맹 퇴치가 우리 일이 아니라 정부에서 이미 주관하는 일이 됐어요. ‘그러면 그 다음 단계의 일이 뭐겠느냐?’ 이런 식으로 고민을 거듭해서 변화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던 20년 전이나 30년 전에는 문맹 퇴치가 중요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인도 사회며 정부가 투자를 해서 상당부분 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 다음 단계에서 아직 인도 정부가 못 하거나 인도 사회가 못 하는 건 뭘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봐야 해요.

우리가 이 아이들을 아무리 훈련시켜도 어릴 때 이미 까르마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제가 볼 때 이 심성을 단박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기서 공부한 아이들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 그 아이가 결혼해서 그 다음에 낳은 아이 때까지 가야 건강한 의식이 형성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목표를 세웠어요. 그래서 제가 인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다섯 생은 해야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다섯 생을 해야 하겠다는 것은 150년 정도 되는 계획을 세운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는 기다리고 있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동네 청년이 되면 그 청년들이 중심이 돼서 마을 개발을 그 다음 단계에 어떻게 할지 의논해가도록 기다리는 거예요. 사람이 있어야 일을 할 거 아니겠어요.

그 사이에 스님은 죽을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정토회도 후예들이 계속 올라올 거잖아요. 종교적으로 말하면 제가 여기에 다섯 번 태어난다는 얘기고, 종교적인 게 아니라면 30년을 주기로 다섯 번쯤 세대가 변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 정도면 이 사회가 다시 건강한 사회로 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중국이 40년 동안 경제 개발을 해온 것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들 하지만 전체적인 문화로 볼 때는 아직 민주주의라든지 인권이라든지 한참 멀었잖아요. 인도도 경제 개발은 어쩌면 20~30년 만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외의 많은 문제들을 부처님 법에 맞춰서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시간을 좀 더 길게 잡아야 해요.

그리고 사람이 나서 죽는 게 풀 한포기와 같다고 주장하는 스님이 뭘 어떤 계획을 세워서 하루아침에 성공하려고 하겠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 그러나 이것이 토대가 돼서 다음 사람이 이어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당대에 무슨 성과를 내려고 하는 건 오히려 올바르지 않아요. 그러면 그 지도자가 죽거나 그 단체가 해체됐을 때 원래대로 돌아가 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당신들 뭐 할래요?’라고 물어봅니다. 예컨대 탈곡기를 사 달라고 해도 ‘당신들이 타작하는데 왜 우리가 사줍니까? 당신들은 얼마 낼래요?’ 라고 해요. (모두 웃음)

‘우린 가난하니까 내기 힘들어요.’
‘가난해도 당신들이 할 일이 있을 거잖아요. 탈곡기가 얼마예요?’
‘1만 루피입니다.’
‘그럼 당신들 10명이 500루피씩 해서 5000루피를 내세요. 그렇게 10명을 모아오면 우리가 5천 루피 낼게요.’

이래야 자기 게 되지, 우리가 그냥 사주면 금방 고장을 내버려요. 그렇게 고장 나면 그냥 갖다 버려 버립니다. 정부가 파준 핸드펌프는 거의 다 고장 나서 못씁니다. 그것까지 우리가 맡아서 다 수리해주고 있어요. 수리하는 것이 지금 핸드펌프를 새로 파서 설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어떤 사업이든 지속가능하도록 해야지, 이렇게 건물 하나 지어서 사진 찍고 말아버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것이 지속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관점을 가지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모금해서 모아봐야 사실 얼마 모으겠어요? 그렇게 따지면 대기업에서 후원받는 게 제일 빠른 길이죠. 제가 제일 잘 하는 일이 강연이잖아요. 대기업에 강연해주고 버는 돈 갖고 이런 학교 하나 짓는 건 일도 아니에요. 그렇게 돈으로 계산하면 우리가 얼마나 초라해져요? (모두 웃음)

그런데 이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가 없어요. 여기에 우리가 25년 동안 투여한 정성과 원이라는 것, 그 축적된 역량은 이 빌딩으로 표현될 수가 없습니다. 시설 자체는 돈으로 계산해봐야 사실 얼마 안 돼요. 그런 것들이 여기 축적이 돼서 그걸 보고 들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거든요. 방금 인도인 스탭들 보셨죠? 물론 자기 생활도 해야 하지만 그렇게 어릴 때부터 사탕 먹으러 왔다가 지금까지 경험한 게 있는 거예요. 나이는 스물다섯 살에서 서른 살밖에 안 되지만 여기서 스님과 실무자들이 같이 살고 일하는 모습을 20년 이상 보고 살았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일을 하긴 하지만, 일하는 방식이 단순한 노동자나 선생님하고는 질이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게 자산이라면 자산이지, 딴 건 그렇게 큰 자산은 아니에요.

방금 인사한 수바스지 같은 사람이 자산입니다. 저런 사람들이 이제 은퇴를 하면 영향력이 큽니다. 원래 청년 때 한 생을 바치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결혼을 해버려서 제가 부인을 찾아가서 물었어요.

‘이 사람은 원래 내 건데 당신이 가져가서 이래 됐잖아요. 남편을 내놓을래요, 아들이 둘이니까 그 중 하나를 내놓을래요?’

그러면 예전에는 남편이 필요하다더니 요새는 남편 데려가라 그래요. (모두 웃음) 여자들은 진짜 못 믿겠어요. 젊은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잖아요. (모두 웃음) 늙어도 내 남자가 낫지, 왜 남의 남자 될 애들한테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 부인은 남편을 데려가래요. 아니면 아들이 둘이니까 하나를 내놓으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계속 제가 주입을 시키는 거예요. 갈 때마다 ‘이건 제 겁니다, 당신 거 아닙니다. 빌려간 거예요’ 이렇게 20년 내내 주입을 시키니까 이제 긴가민가하는 거예요. 원래 점을 먼저 찍은 게 임자잖아요. 제가 먼저 찍었는데 관리를 제가 잘못한 경우예요. (모두 웃음)

결국 사람이 중요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해요. 상카시아도 지금 이십 몇 년간 사업을 못 하는 이유는 돈이 핵심은 아니에요. 그거 하나 지어준다고 불교가 되겠어요? 자기들이 그걸 어떻게 자립적으로 이어가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자기들도 모금하고 자기들도 노력해서 짓느냐, 그걸 지켜보는 데 30년이 다 되어가는 거예요. 젊은 애가 영감이 될 때까지의 세월이죠. 그런데 이제는 마음을 내서 짓겠다고 해요. 전에는 지으라고 하면 아직 애들 공부시켜야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짓겠다고 해요.

불법이라는 것은 무슨 형식 갖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어디 가서 불법을 전할 때 평생 정성을 기울여서 딱 한 명만 발굴하고 죽으면 대성공입니다. 두 명, 세 명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그 현지 사람이라면 확산력이 있잖아요. 스님은 외지 사람이라 확산력이 없지만요. 그런 씨앗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해요. 우리가 여기에 평생 살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자기들 일이잖아요. ‘이게 내 일이다’, ‘이게 내 마을 일이다’, ‘이게 내 자식 일이다’ 이렇게 느끼도록 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거 해서 뭐가 되나?’ 맞는 얘기예요. 그러나 꼭 뭐가 돼야 하는 거예요? 인생이 꼭 돼야만 하는 거예요? 안 되면 아무것도 못합니까? 안 돼도 해야죠. 이게 옳은 길이라면 실패할 걸 알아도 할 수밖에 없어요.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수행이라는 건 그런 관점을 갖습니다. 영화 ‘안시성’에도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꼭 너는 이겨야만 전쟁 하나? 질 줄 알고도 하지.’ 스님이 안 본 것 같아도 봤어요.(모두 박수) 그런 마음으로 순례를 해봅니다.”

“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지나놓고 보면 크게 기억에 안 남아요. 성지순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서 일주일쯤 지난 뒤에 돌아보면 어느 날 저녁에 어디서 잤느냐, 뭐 먹었느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중요해요. 지금 이 순간에 쌀밥 먹었는지 보리밥 먹었는지가 중요하지, 내일이 되면 어제 쌀밥 먹었든 보리밥 먹었든 그건 뭐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순간에만 사로잡히지 않으면 지나놓고 볼 때 이건 다 좋게 느껴집니다. 성지순례로 인도를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가서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석 달이든 있으면 좋게 느껴질까요, 안 좋게 느껴질까요?”

“좋게 느껴져요.”

“절반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좋을 거예요. 이건 제가 농담하는 게 아니라 진짜예요. 좋게 느껴지게 돼 있지만 다만 지금 이 순간에는 좀 불편한 거예요. 오줌 누러 갈 때 불편하고, 밥 먹을 때 불편하고, 시끄러워서 불편하지만, 그 순간만 여러분들이 좀 넘으면 이건 다 좋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저는 잘 될 수밖에 없는 일만 합니다. 자, 그러면 짐 정리 싹 해가지고 내일부터 떠나겠습니다.” (모두 박수)

“네!”

“감사합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개교기념식과 마을 방문을 하면서 열악한 환경을 보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JTS의 사업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서 인도JTS의 사업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길 기원해 봅니다.

스님께서 2시간 동안의 열강을 해주시니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각자 숙소로 돌아가 다시 내일부터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내일은 부처님께서 10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으로 가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설법을 하신 영축산, 죽림정사, 열반하신 후 500 아라한이 모여 경전을 결집한 칠엽굴, 불교가 번창하면서 세워진 나란다 대학 등이 있는 라즈길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48

0/200

스태미나

스님도 사람인데 왜 없겠습니까?

기운이 빠질 때 문경 정토수련원 주변 산림지대에서
산삼, 인삼, 홍삼, 더덕, 도라지 같은 임산물을
재배해서 드시고

스쿼트, 팔굽혀펴기 같은 운동도
가볍게 하실 겁니다.


그래도 기운이 회복이 안 될 때는
돼지국밥 후루루룩, 삼겹살 얌냠쩝쩝 하시는
스님들도 있습니다.

2024-02-23 15:26:01

보각심

이번 인도성지순례 다녀온 후에 읽으니 그때의 감동이 다시금 느껴집니다. 무조건 도와주는것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하도록 원을 세우시고 jts사업을 진행하시는 스님께 존경심이 올라옵니다. 금방 결과를 바라는 저의 성급한 중생심을 반성하게 됩니다. 사람이 중요함을 잊지않겠습니다. 생활이 조금 불편할지라도 집에가면 인도가 좋아질꺼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성지순례에 2번은 안갈것 같았는데 스님의 하루를 읽으니 스님 말씀처럼 인도성지순례에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봉사해주셨던 모든 스텝분들과 정성으로 순례를 이끄셨던 스님께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19-01-29 13:27:30

김영란

수행자는 결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닌 조금이라도 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이렇게해서 진행하고 있는 문제를 늦추고, 멈추고 더 나아가서 개선까지 할 수 있다는 말씀에 다시 기운을 얻습니다

2019-01-20 09:05:4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