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21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Cox’s Bazar) 로힝야 난민캠프 방문 1일째
“난민캠프에서 지낼만해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Cox’s Bazar) 근교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캠프에 도착했습니다. WFP 관계자들을 만나 미팅을 한 후 로힝야 난민캠프 1곳을 방문해 난민들의 상황을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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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Dhaka) 공항에서 10시 1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1시 15분에 콕스 바자르(Cox’s Bazar)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콕스 바자르행 비행기 안에서 스님에게 여러 난민촌에 가보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곳을 방문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칸드하르 난민촌에서 구호활동을 했었고, 예전에 미얀마에서 종족 간 내전이 일어나서 카렌족이 태국으로 넘어와서 난민촌을 형성했는데 거기에 방문했었고, 북한 난민들이 중국으로 대거 넘어왔을 때 돕는 일을 했습니다.

난민촌에 가보면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새가 모이를 주면 주는 대로 먹듯이 식량 지원을 받지만 난민촌에 살아야 하니까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가슴 아픈 일이지요.”

새가 사람이 주는 모이를 먹듯이 희망 없이 살아간다는 이야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콕스 바자르 공항에는 WFP 콕스 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총책임자인 피터 게스트(Peter Guest) 소장님이 마중을 나와서 스님과 JTS 일행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피터 소장님은 먼저 안전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콕스 바자르 난민캠프의 안전 상황은 괜찮습니다. 콕스 바자르는 밤 10시 이후에만 이동을 자제해 주시면 됩니다.”

스님이 “바쁘신데 저희 때문에 더 바빠지신 것 아니냐”라고 하자, 피터 소장님은 손사래를 치며 진심으로 환영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현장의 상황을 직접 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멀리 한국에서 와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어서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JTS 이사장인 법륜 스님입니다.”

“JTS 대표인 박지나 씨입니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 씨입니다.”

“한국에서 온 배우 조인성 씨입니다.”

노희경 작가님과 배우 조인성 씨는 평소에 로힝야 난민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난민캠프 현장을 한 번 둘러보기 위해 스님과 함께 방문을 하게 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가 왔다는 이야기에 WFP 스텝들도 무척 반가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난민 중에서도 조인성 씨를 알아보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가벼운 환영 인사가 끝나고 곧바로 WFP 콕스 바자르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WFP 사무실에 도착한 JTS 일행이 먼저 가스버너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초기에 우려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자 WFP 소장님은 안전 문제는 전혀 걱정할 것 없다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안전에 대해 그러한 염려를 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그 측면을 고려하여 현지 소방서를 참여시켜서 훈련과 교육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에 사용한 숯이나 나무를 떼는 방식에도 비슷한 안전문제가 있었습니다만, 가스가 오히려 더욱 안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위험할 때 밸브를 잠그어서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실제로 난민 캠프에서 화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가구가 많이 탔지만 그 안에 가스통 2개는 남겨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가스통에는 화재 시 가스를 모두 방출시키며 태워버리는 특별한 밸브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다 탔지만 이 가스통 2개는 아무런 문제 없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JTS 측의 우려를 듣고 저희 측에서는 가스통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고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가스버너 지원 결정을 내린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인도에서 아이들이 나무를 하러 혼자 숲에 가거나 하면, 특히 여자 아이들이 성추행에 노출되는 위험이 큽니다. 여기서도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해서 바로 이 사업에 동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얘기를 듣고 나서 피터 소장님은 가스버너 지원의 이점을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을 포함하여 가스버너를 지원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크게 4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효율적인 연료를 안전하게 공급한다는 점, 둘째, 그로 인해 여기 사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점, 셋째, 주변 삼림 등 환경을 보호한다는 점, 넷째, 집 안에서 나무를 태우면 많은 연기가 나는데 가스는 그러지 않아서 가내 공기 등 집안 환경도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점들이 마침내 잘 설득이 되고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넓은 공간의 미팅룸으로 이동하여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피터 소장님은 WFP가 하는 일과 현재 로힝야 난민들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브리핑해 주었습니다.

“WFP(세계 식량계획)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콕스 바자르에서 활동하면서 3만 4천 명의 난민을 도왔습니다. 이 지역에는 약 15만 명의 등록되지 않은 미얀마 난민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등록되지 않은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기존 사회에 동화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2017년 8월 25일에 미얀마 군경이 벌인 로힝야족 반군 토벌 작전으로 인해 7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갑작스럽게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난민들이 급증할 때 그래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거주지나 식량 등 많은 협조를 해주었고, 현지 주민들도 난민들이 자기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지도에 보이는 메가 캠프(Mega Camp, 거대 캠프)를 오늘 우리가 방문할 예정인데요, 저곳에 63만 명이 있고 그 외에 작은 캠프들이 또 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캠프 별 인구가 표시돼 있습니다. 캠프 중간쯤에 큰 도로가 있는데, 여기가 저희가 모든 물자를 실어 나르는 대동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WFP는 현재 88만 명을 돕고 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인 67만 명은 쌀, 달(콩죽), 식용유, 이렇게 3가지의 식료품을 지급받습니다. 그런데 그중 21만 명은 이-바우처 샵(E-boucher Shop)이라는 가게에서 18가지 식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됩니다. 한 가족 당 체크카드처럼 생긴 카드를 한 장씩 지급하고, 카드에는 한 사람 당 한 달에 9달러씩을 넣어줍니다. 한국 돈으로는 한 달에 1인 당 10,000원 정도 되죠. 이 카드를 가지고 가게에 가면 18개 식품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카드 없이 3개 품목만 지급받는 사람과 카드를 지급받는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뭡니까?”

“구분하는 게 아니라 전환기라 그렇습니다. 3개 품목만 지급받는 63만 명도 올해 중반 정도까지는 모두가 이 카드를 받게 될 겁니다. 전환 중에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중요한 문제는 가게 수가 충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게들을 늘려가는 중이고, 2월까지 가게들이 더 많이 생길 예정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난민들은 올해 중반이 되면 이 카드로 식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카드시스템을 2018년 8월에 3만 4천 명 대상으로 처음 시작해서 현재 21만 명에 이르렀고, 올해 중반쯤에 이르면 대부분의 난민들이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카드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우선 영양적으로 더 균형 잡힌 식품을 섭취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사람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줄을 서서 식량을 배급받는 것보다 가게에 가서 사는 편이 인간의 존엄성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에 지원하는 가스는 기존의 지원경비 안에 포함되는 거예요? 별도로 추가 지급하는 거예요?”

“추가로 지급하는 겁니다. 이 카드는 다목적 지갑이라고 부르는데요, 하나의 지갑에는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이 들어 있고, 다른 지갑에는 유니세프(UINICEF)가 제공하는 비누, 즉 세탁비누며 위생비누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 있습니다. LPG 가스를 살 수 있는 돈은 IOM(국제이주기구), FAO(식량농업기구), UNHCR(유엔난민기구)가 제공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WFP가 가스 보급도 맡을 예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 수가 많으면 가스 구입비도 더 많이 받게 됩니다.

WFP는 이처럼 모든 난민들에게 식량을 지급할 뿐 아니라 특수 영양식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급 대상은 6개월 이상 5세 이하의 영유아들과 임산부, 수유부입니다. 이들은 특별히 영양이 필요한 계층이거든요. 임신 직후부터 만 2세까지 1000일 동안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면 뇌가 자라지 못할뿐더러 신체 성장 잠재력이 훼손돼 버리는데, 이런 피해는 2살이 지나버리면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특별히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임산부, 수유부, 이 나이에 해당하는 영유아들에게 밀가루와 콩, 영양 강화식품을 섞은 특수식을 별도로 제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많은 식량을 결국은 조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스버너가 없으면 영양 공급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JTS에서 이번에 지원해주신 가스버너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지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WFP가 하는 또 다른 활동은 재난 저감 활동입니다. 식량을 나눠주는 센터나 가게는 도로 같은 설비가 잘 돼 있어야 하니까요. 특히 몬순(우기) 전에 이런 작업을 잘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해놓는 게 캠프를 안정화시키는 데 무척 중요합니다.

WFP는 학교 급식도 맡고 있습니다. 학교는 난민촌 안에도 있고 바깥의 주민 사회에도 있지만, 난민촌 안에 있는 건 학교라고 부르지 않고 러닝 센터(Learning Center)라고 부릅니다.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긴급 구호 상황에서는 코디네이팅 작업을 합니다. WFP는 수송 분야, 식량 안보 분야, 긴급 구호 시 통신 분야, 이렇게 세 가지 분야에서 코디네이팅 작업을 합니다. 다른 기관들도 이런 활동을 하긴 하지만 WFP가 중심이 돼서 이렇게 협력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WFP 소장님의 설명이 끝나고 이어서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캠프 안 아이들을 위한 러닝 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유니세프 사업이에요, WFP 사업이에요?”

“러닝 센터는 상호 협력 하에 운영됩니다. WFP는 고열량 비스킷을 지급합니다. 그리고 BRAC이라고 방글라데시에 아주 큰 NGO가 있습니다. 국제 NGO로 성장한 기구인데 이 BRAC이 주로 관리를 하고 또 다른 파트너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WFP가 하는 일은 영유아들에게 60퍼센트의 영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특히 미량 영양소가 필요한데 그 60퍼센트의 영양을 WFP가 지급하는 비스킷을 통해 커버하고, BRAC은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학교를 짓는 작업을 합니다.”

“그러면 수업할 때 언어는 방글라데시어를 써요, 영어를 써요? 아니면 미얀마어로 수업해요?”

“일단은 로힝야어로 주로 수업합니다. 그런데 로힝야 어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미얀마어를 같이 쓰고요. 방글라데시어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방글라데시어를 배워서 난민들이 여기 계속 있게 되면 방글라데시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방글라데시어를 가르치는 걸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 로힝야 난민캠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요. 아이들 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NGO가 있다기에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WFP 관계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직접 난민캠프 한 곳을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욱히아(Ukhia) 지역에 위치한 쿠타 팔롱 난민캠프(Kutupalong Refugee Camp)로 향했습니다.

쿠타 팔롱 난민캠프는 방글라데시로 넘어온 전체 88만 명의 로힝야 난민 중 63만 명이 살고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캠프입니다. JTS 일행이 도착한 욱히아 지역은 WFP에서 캠프 4라고 부르고 있는데 7천 가구, 3만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덜컹 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1시간 30분 정도 달린 후 오후 4시경에 난민캠프 4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캠프 4 지역입니다. 이곳은 언덕이 많은데요. 비가 오는 것을 피해서 약간 언덕에 주거지를 마련했습니다.”

“여기는 오래된 캠프예요? 새로 지은 캠프예요?

“새로 만든 지 4개월밖에 안 된 캠프입니다.”

난민캠프의 전체 경관을 대략 살펴본 후 러닝센터로 향했습니다. 러닝센터를 담당하고 있는 스텝 한 분이 나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곳에는 이런 러닝센터가 2000개 있습니다. 매일 20만 명이 러닝센터에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각 러닝센터마다 105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한 교실에 35명씩 3교대로 돌아갑니다. 러닝센터에서는 하루에 50%의 영양 필요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비타민 A와 미량의 영양소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러닝센터에 올 때는 아무것도 못 먹고 배고픈 상태로 오는데, 225kcal 정도 되는 밥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영양 제공이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록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 등록률이 50% 이하였는데, 지금은 90%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4살에서 6살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미얀마어 수업 시간이었는지, 학생들은 시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림 색칠하기, 알파벳 베껴 쓰기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수업 교재는 미얀마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더하기 빼기 할 줄 알아요?”
“네!”
“그럼 이 문제 한 번 풀어봐. 7+5는?”

스님이 칠판에 적어서 문제를 냈지만 아이는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아마 유치원 과정이어서 아직 덧셈을 배우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대신 시를 읊을 수 있다고 하면서 시 낭송을 멋진 율동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한 아이가 목청껏 시를 낭송하며 율동을 하니 다른 아이들도 큰 목소리로 따라 했습니다. 아주 씩씩하고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과 조인성 씨, 노희경 작가님 모두 아이들의 시낭송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본 후 큰 박수로 아이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런 후 가져온 비스킷을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비스킷을 받아 든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곳 난민캠프와 구호단체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수도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난민캠프와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이렇게 건강하고 밝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비스킷을 먹으며 웃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몇 살이에요?”
“6살”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의사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꿈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일 것입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많은 탄압과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은 어른들의 표정은 무척 어두워보였습니다. 스님과 JTS 일행은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가구 한 곳을 찾아갔습니다. 스님은 잠깐이지만 난민 한 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기 캠프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어요?”

“국경을 넘어온 지는 1년 정도 되었고, 캠프에 들어온 지는 8개월 되었습니다.”

“미얀마에서 살 때는 뭐 했어요?

“고향에서는 농사도 짓고 야채도 재배하고 살았는데, 난민캠프에는 농지가 없어서 야채 재배를 못해요.”

“그럼 음식은 어떻게 구해서 먹어요?”

“구호 단체에서 제공해주는 것에 의존해서 살고 있습니다.”

“고향이 그리워요?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고향에 가족들이 남아 있고, 가축들과 집도 그대로 놓고 왔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미얀마 시민으로서 아무런 권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된다면 돌아가고 싶어요. 시민권이 없으면 여기 난민캠프에 머무는 게 더 낫습니다.”
....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스님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WFP 직원들이 대화가 더 깊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아마도 난민들 입장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나올까 봐 우려하는 것 같았습니다.

난민캠프를 나오는 길에 WFP 피터 소장님과 더 구체적인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아직도 난민들이 계속 넘어오고 있나요?”
“넘어오는 속도가 많이 느려지긴 했는데, 여전히 조금씩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넘어오는 이유가 뭐예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각기 다른 이유로 넘어옵니다.”

“다시 미얀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미얀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아주 소수입니다.”

“소수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가 뭐예요?”

“특정한 이유는 없어요. 남겨둔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다양할 겁니다.”

“전기 상황은 어때요?”

“전기는 안 들어오고 있고, 태양열 전지를 공용화장실이나 길거리에 몇 군데 설치해 둔 상태입니다. 앞으로 가로등을 설치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비가 와서 집이 무너지지 않게 지금 배수로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 확장한 캠프는 땅을 평지화 시켜서 짓고 있어요. 그래야 공간 효율도 좋고, 무너지지 않으니까요.”

난민캠프를 빠져나와 비교적 높은 언덕에서 난민촌 전경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은 난민캠프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는 그래도 정돈이 좀 된 축에 속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좋은 편이야.”

그동안 험하고 열악한 난민촌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스님은 이곳은 그래도 양호한 상태라고 본 것 같습니다.

배우 조인성 씨에게 난민캠프를 둘러본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나마 이곳은 제대로 된 구호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의 얼굴이 굉장히 밝아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울하거나 어두운 분위기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있어야지만 이 아이들이 계속 밝은 모습들을 유지하면서 지낼 수 있겠구나 싶어요.”

아이들의 밝은 표정이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 것 같습니다. 난민캠프를 둘러본 JTS 일행들 모두 마음이 그렇게 무겁진 않았습니다.

노희경 작가님에게 난민캠프를 둘러본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구호 활동의 중요성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학교도 마련되어 있고, 주민들 교육도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만약에 이런 구호 단체들이 들어와서 이런 시설이나 체계를 안 만들었다면 난민들의 모습이 어떨까. 아마 아비규환이었을 것 같아요. 다행히 구호단체들이 이렇게 들어왔기 때문에 정돈된 시스템이 마련된 거죠. 이곳에 오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탄압이 너무 심한 상태에서 가족을 잃고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라 마음이 굉장히 어두울 것이라 생각했어요. 예상보다 너무 어둡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어요.”

이곳 난민캠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나마 행운이었을지 모릅니다. 탄압받는 과정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었을 것입니다. 난민들을 뒤로하고 다시 화려하고 번잡한 콕스 바자르로 돌아오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WFP, 유니세프, IOM, JTS 관계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특히 요르단 사라 제이드(Sarah Zeid) 공주가 참석해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라 공주는 모성 및 신생아 건강에 초점을 둔 세계 보건 옹호자입니다. 그녀는 유엔 평화 유지 활동 부서에서 근무했으며, 세계적인 구호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사라 공주와 인사를 나누며 오늘 로힝야 난민캠프 방문 소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난민 상황이 계속 길어지면 아이들 교육 문제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캠프를 방문해 보니 아이들 교육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저도 WFP가 하루에 20만 명의 아이들을 매일 교육하고 비스킷을 나눠주고 있는 것에 저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20만 명이나... 저도 처음에는 숫자가 너무 커서 믿지를 못했습니다.”

“저도 20만 명이라 하길래 설마 2만 명이겠지 생각했는데, 그래서 세 번이나 확인했어요.”

“2017년, 2018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난민촌에 갔을 때는 아이들 교육 문제가 전혀 안 갖춰져 있어서 정말 가슴 아팠는데, 이곳은 빠른 시일 내에 기초 교육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놓아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사라 공주도 스님의 소감에 매우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WFP 피터 소장님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악수를 건넸습니다.

이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스님은 WFP 방글라데시 총책임자인 리차드 라간(Richard Ragan) 씨와 사라 공주 등 여러 분들과 난민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일은 JTS가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버너 10만 개를 전달하는 전달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JTS는 2018년 하반기에 10만 대의 가스버너를 주문 제작했는데, 바로 내일 드디어 가스버너 지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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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기초 교육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놓아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12-25 18:17:45

선등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2019-02-01 09:07:57

무지랭이

고맙습니다

2019-01-28 18: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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