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23. 콕스바자르 ▶ 다카 ▶ 캘커타 ▶ 가야(수자타아카데미) 이동
“로힝야족 난민 문제가 왜 발생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를 출발하여 다카를 경유, 인도 캘커타에 도착했습니다.

로힝야족 난민캠프 가까이에 위치한 콕스 바자르 숙소에서 이틀 밤을 머문 스님과 JTS 일행은 이제 난민캠프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인도로 넘어갑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WFP 방글라데시 총책임자 리처드 리간 씨, WFP 로힝야 난민캠프 책임자 피터 게스트 씨, 요르단 공주 사라 제이드 씨, WFP 임형준 한국 소장님 등을 차례대로 만나 가스버너가 무사히 전달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영문 책 ‘A Monk’s Reply to Everyday Problems’와 스카프 하나씩을 선물했습니다.

또 스님은 이번 난민촌 방문을 함께 동행한 배우 조인성 씨와 노희경 작가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로힝야족 난민 문제 관련 이후 지원 계획에 대해 WFP 실무자들, KOCIA 관계자들과 몇 가지 실무 논의를 더 한 후 오전 11시경에 콕스 바자르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공항은 정말 버스 정류장처럼 작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행기가 연착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콕스 바자르에서 다카로 가는 비행기는 무려 2시간이 연착되었습니다. 결국 콕스 바자르 공항에서 1시 40분이 되어서야 비행기가 출발했습니다.

다카 공항에 도착하니 3시 45분에 캘커타로 출발할 예정이던 비행기는 이미 스님 일행이 도착하기 20분 전에 체크인 카운터 문을 닫아버린 상태였습니다. 스님과 JTS 박지나 대표님은 항공사 사무실과 체크인 카운터를 열 번도 더 넘게 왔다 갔다 하며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결국 캘커타행 비행기를 놓쳤고, 새로 저가항공 비행기표를 급히 구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스님 일행은 큰 차질이 없었는데, 델리로 가서 한국으로 귀국해야 하는 JTS 홍보대사 분들의 일정은 큰 차질이 생길 뻔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하여 도착비자를 받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다시 캘커타에서 델리로 가는 비행기가 또 연착이 되는 바람에 촌음을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JTS 박지나 대표님의 노력으로 다행히 JTS 홍보대사 분들도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하루였습니다.

캘커타 공항을 나오니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보내준 운전기사 한 분이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차를 타고 캘커타 시내를 나와 고속도로를 조금 달리다가 마침 휴게소가 보여서 밤 9시에 식사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아침 식사 후 계속 이동을 하느라 점심을 건너뛰고 하루 종일 굶다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에도 휴게소라는 것이 생겼다니 놀라웠습니다. 스님은 식사를 하면서 변화하는 인도에 대해 한마디 했습니다.

“30년 동안 인도를 다니면서 늘 세상과 담쌓고 사는 곳이 인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인도가 요즘 변하는 것 같다.”

식사를 하고 나니 밤 10시였습니다. 그때부터 캘커타 교외에서 7시간을 쉬지 않고 차를 달렸습니다. 중간에 화장실도 가지 않고 차 한 번 세우지 않고 밤새 도로를 달린 끝에 새벽 5시에 수자타 아카데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앞으로 4일 동안 수자타 아카데미에 머물며 인도 JTS 사업 전반에 대해 점검하고, JTS 인도인 스텝들을 위한 교육수련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이동만하고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0일에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하기 전 스님이 배우 조인성 씨와 노희경 작가에게 설명해 준 로힝야족 난민 문제의 발생 원인과 해법에 대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어제와 오늘 난민촌 방문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도대체 왜 로힝야족 난민 문제가 발생했을까 궁금하셨을 텐데요.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님은 지도를 펼쳐 보여주면서 로힝야족이 살고 있는 주변 나라들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벵갈(벵골)은 인도의 동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인도의 동쪽 바다를 벵갈만이라고 부릅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곧 힌두와 무슬림이 갈라서면서 당시 무슬림들이 많이 살았던 서쪽과 동쪽 지역에 각각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이 들어서게 됩니다. 인도와 서파키스탄의 국경 지역에 있는 펀잡주도 갈라져서 파키스탄에도 펀잡주가 있고, 인도에도 펀잡주가 있습니다. 동파키스탄 지역은 서파키스탄과는 인종도 크게 다르고, 파키스탄 내부에서도 거의 식민지처럼 여겨지다가 결국 1971년 독립 전쟁을 통해 방글라데시가 되었습니다.

벵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벵갈족입니다. 그런데 서벵갈(West Bengal) 지역은 인도의 한 주가 되었고, 동 벵갈(East Bengal) 지역은 방글라데시로 독립된 분단국가입니다. 서벵갈 지역의 인구는 약 8천만 정도 됩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8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로 그 숫자는 약 1억 7천만 정도 됩니다. 면적은 남한의 1.5배 정도로,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위치는 갠지스강 하류의 삼각주 지역 주변입니다.

방글라데시의 동쪽에는 인도의 또 다른 영토가 있습니다. 이곳 산악지대는 트리푸라(Tripura) 주, 미조람(Mizoram) 주, 마니푸르(Manipur) 주, 나가 랜드(Nagaland) 주, 아삼(Assam) 주, 아루나찰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 주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소승 불교도들인 몽골리안 계통의 소수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동쪽 치타공 산악 지역에는 100만 명 정도의 차크마(Chakma) 종족이 살고 있어요. 이들은 전통적으로 불교도들인데, 독립 이후 인종, 종교 차이 등의 이유로 방글라데시 무슬림들로부터 탄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약 30년 전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결국 30여 만 명은 인도로 피난을 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그 문제를 돕기 위해 저도 이 지역을 몇 번 방문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동쪽에 있는 나라가 로힝야족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미얀마(Myanmar)입니다. 미얀마는 여러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종교적으로는 대부분 불교를 믿습니다. 그런데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에 사는 로힝야족은 무슬림입니다. 만약 영국과 인도로부터 독립하면서 로힝야족들이 방글라데시로 소속되고, 카그라차리(Khagrachari District), 랑가마티(Rangamati Hill District), 반다르반(Bandarban District) 지역 주변의 소위 치타콩 힐트랙스(Chittagong Hill Tracts)라 불리는 곳이 인도나 미얀마로 소속이 되었다면 이런 소수 민족 탄압 문제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독립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소속이 정확하게 나뉘어지지 않으니까 무슬림 국가에 남아있는 불교도들과 불교 국가에 남아있는 무슬림들이 탄압을 받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방글라데시-미얀마 국경 지역에 사는 로힝야족이 미얀마 군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방글라데시로 대거 넘어오면서 난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노희경 작가님이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은 왜 시작되었나요?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로 자리 잡았고, 민주화로 나아가는 움직임도 보이는 나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을 계기로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습니까?”

“미얀마에 살면서 차별과 탄압에 억눌려 있던 로힝야족의 일부는 오래전부터 방글라데시로 피난 와서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장투쟁을 하게 되었어요. 이 일을 핑계로 미얀마 군부의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군부는 무장투쟁을 하는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핑계로 마을 전체에 불을 지르고 하다 보니, 그 모습에 놀란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국경을 줄줄이 넘기 시작한 거예요. 물론 미얀마 정부의 입장을 들어보면 자기들은 테러리스트 몇몇을 잡기 위한 일만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또 로힝야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구잡이로 와서 마을을 불 지르고 부녀자들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하고요. 이렇게 서로 입장이 다른 상황입니다.

로힝야족의 입장을 들어보면, 자기들은 그 지역에 수백 년 동안 살아온 원주민이었고 오랫동안 그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온 소수 민족인데 미얀마 정부가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차별을 해서 저항을 하게 되었다는 입장이에요. 1948년 미얀마가 독립을 하였지만 로힝야족에 대해서는 시민권을 주지 않았고, 로힝야족은 정부가 시민권을 주지 않아서 많은 차별이 뒤따랐고, 몇 년 전부터 심하게 저항해온 것도 이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미얀마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입장은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나 인도 사람들인데, 영국 식민지 시기에 영국 사람들이 미얀마를 통치하기 위해 미얀마로 데려온 외부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로힝야족에 대한 저항감은 민주화와 관계없이 미얀마 전 국민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적대감이 진보 보수를 떠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아요. 미얀마 사람들의 인식 속에 로힝야족은 ‘우리를 탄압한 영국 사람들의 하수인 노릇을 한 사람들’로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거예요. 이런 차별이 있다 보니 미얀마 안에서는 로힝야족이라고 드러내지 않고 벵갈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정부 사이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문제를 두고 두 정부 사이에 특별한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로힝야족과 미얀마 정부 사이의 시각 차이로 인한 것인데, 입장 차이를 요약해보면 로힝야족은 자기들이 이 지역에 옛날부터 살아온 원주민이라는 입장이고,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은 어디까지나 방글라데시나 인도에서 넘어온 이민자이지 미얀마 사람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 차이에서 시작되는 갈등입니다.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이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지역은 라카인 주(Rakhine State) 또는 아라칸 주(Arakan State)라고 불리는 지역입니다. 다민족 국가에서는 어느 한 지역에 오랜 기간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 지역의 영토도 자연히 그 종족의 것이 됩니다. 그러니 로힝야족이 이 지역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소수 민족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라카인 주에 대한 로힝야족의 영향이 커집니다. 이 점이 로힝야족 난민 문제가 불거진 또 다른 이유입니다.

그런데 현재 중국이 이 지역에 항구를 개발해서 중동으로부터 수입하는 석유를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이 있는 반도를 둘러오지 않고 바로 중국 대륙으로 수송하는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이 파이프 라인 건설이 완공되면 특히 중국 대륙 서부 지역에 석유 공급은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로힝야족이 소수 민족으로 인정받으면 이 문제를 둘러싼 결정이나 이권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되니, 미얀마 정부는 예전부터 인정하지 않았던 로힝야족을 더욱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전부터 시민권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가 있어왔고, 이러한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더해지니 저항은 심해지고, 더불어 탄압도 심해지니 결국 로힝야족이 국경을 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그렇다고 방글라데시 쪽에서도 국경을 넘어오는 로힝야족을 반기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으로는 무슬림으로 같지만, 종족으로 보면 로힝야족은 소수 민족이지 전통적인 벵갈족이 아닙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수상이 1억 7천만 인구에 비해 100만은 크지 않다며 받아주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정작 국민들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로힝야족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로힝야족이 미얀마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미얀마어를 가르치기도 어렵고, 방글라데시어를 가르치는 것은 또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반대합니다. 언어를 모르면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 게 금방 티가 나는데, 일단 언어를 할 줄 알면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살 수 있게 되니 자기들과 밥그릇 경쟁을 하게 된다며 반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우선 UN에서 크게 압력을 행사하니 미얀마 정부에서 다시 로힝야족을 받겠다고 했고, 저희가 처음에 로힝야족을 돕고자 했을 때도 로힝야족이 원래 살던 미얀마 지역에 돌아간 후 그들의 정착을 돕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아직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합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아웅산수지(Aung San Suu Kyi)의 입장도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아요. 그 이유는 만약 국민적인 저항감을 보이는 로힝야족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면 자칫 군부의 재집권이 이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민주화 여부를 떠나 국민적인 저항감이 있는 부분입니다.

식민지의 잔재

외국인 입장에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분쟁이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서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스리랑카의 경우에도 주축이 되는 종족이 싱할리족이고, 소수민족이 타밀족입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싱할리족은 대부분 불교도들이고, 타밀족은 힌두교가 많습니다. 소수 민족인 타밀족의 입장에서는 영국의 지배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수 민족이 지배하나 영국이 지배하나 큰 차이가 없잖아요. 그리고 사회 최하층인 불가촉 천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영국의 지배가 나은 점이 많습니다. 다수 민족이 지배할 때는 일방적으로 지배만 당했는데, 오히려 영국이 지배를 할 때 불가촉 천민 중에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고 사회적 신분이 상승되기도 합니다. 대신 그런 과정에서 나라의 독립운동에 덜 참여하거나 식민 지배에 동조하는 일이 생겨서, 독립 후 소수 민족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는 일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일은 민족주의로 인해 일어나는데, 형식적인 겉모습만 보면 불교도인 싱할리족이 소수 민족인 타밀족을 탄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깊이 살펴보면 종교 간의 분쟁이 아닌데도 서양에서는 이것을 종교 문제로 부각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이렇게 불교도인이 다른 민족을 탄압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곳이 세 나라가 있는데 바로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입니다.

태국은 불교 국가이고 말레이시아는 무슬림 국가인데,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부 무슬림이 태국에 편입되고, 일부 불교도들이 말레이시아로 편입되었습니다. 특히 태국의 남쪽에 있는 5개 주(州)는 무슬림들이 많은데, 10여 년 전 이들과 불교도들 사이의 권리 분쟁에 군부가 강경한 무력 탄압을 하여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언론에는 종교 간의 분쟁으로 비춰지지만 실제로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식민지 지배에 저항한 나라가 겪는 문제입니다. 미얀마의 경우에도 불교도들이 영국 식민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독립 후 소위 사회의 지배세력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식민지배의 피해의식이 남아있어서 소수 민족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피해의식이 남아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를 받은 것은 70년 전인데도, 여전히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소수 민족이 없기 때문에 로힝야족과 같은 문제는 없었습니다.

저도 로힝야족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었는데요. 방글라데시에 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미얀마에 가면 또 그곳에 있는 스님들과 힘을 합하여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미얀마에서는 승려들도 무슬림이 불교를 탄압한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과 더불어 민족적인 감정까지 있다보니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로힝야’라는 말도 못 쓰게 합니다. ‘벵갈인’이라고 부르라 하면서 미얀마의 소수 민족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관점이 그렇다보니 대화를 전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입장 차이가 있는데다가, 중국의 항구 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까지 맞물려 있다보니 더욱 해결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어요. 자기들의 민족주의 문제와 함께 미국, 중국의 이권까지 걸려 있으니 복잡한 거예요.

미얀마 정부는 중국과 가깝고 자기들에게도 이익이 생기니까 항구 개발과 파이프 라인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미국은 어떻게든 막으려는 입장이에요. 문제가 심각해지면 로힝야 문제를 더 이슈화할지도 모릅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에게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주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그래서 시민권을 안 주는 겁니다. 얼마 전에는 시민권을 받으려면 ‘할아버지 때부터 이곳에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예전부터 시민권이 없었던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증명하겠어요.

이 문제는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로 넘어간 차크마(Chakma)족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30만 명의 차크마족이 인도로 넘어갔는데 이들도 인도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작년에 인도에 큰 홍수가 있었는데, 정부에서 홍수 피해자금으로 큰 지원금을 줬는데도 차크마족은 공식적으로 시민권이 없으니 아무런 보상을 못 받았습니다. 집이 다 떠내려 갔는데도, 공식적인 권한이 없으니까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차크마 족도 여전히 시민권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차크마족은 일종의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고 있는 거예요. 인도에서 추방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주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로힝야족 중에도 다른 도시나 지방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탄압을 받지 않습니다. 그걸 보면 이 분쟁의 핵심은 지역과 영토를 둘러싼 이해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힝야족을 소수 민족으로 인정해줘서 그들이 라카인주에 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 행여 나중에 투표를 통해서 라카인주를 방글라데시로 편입시키겠다고 하면 국경이 바뀌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지나친 우려 같은데도, 미얀마 국민들에게는 논리가 통합니다.

저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INEB 방콕 회의에 참석해서 대화를 해봤는데, 처음에는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여러 사람의 입장을 들으면 이 문제가 복잡하고 간단하지 않았어요. UN에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가스버너를 지원하게 된 이유

지금은 합의를 통해 미얀마 정부에서 다시 로힝야 족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정작 방글라데시로 넘어온 사람들은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돌아가는 조건으로 시민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시민권 없이 돌아가면 전처럼 다시 탄압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미얀마 정부에서 시민권을 주려고 하지 않으니, 미얀마는 북한처럼 UN으로부터 경제적 제재와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승려들의 영향력 큰 편입니다. 그 점을 잘 활용해서 승려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중재하려고 해도 민족주의 문제가 걸려있어서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해결이 된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이렇게 문제가 장기화되면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입니다. 우리도 아이들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사람들을 파견했지만, 정작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교육보다 당장 밥 해 먹는 문제가 더 급한 것 같아요.

그리고 방글라데시가 로힝야족을 그리 반기지 않으니 UN도 눈치를 보는 입장입니다. 난민은 현재 있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국에 있는 북한 사람들을 돕지 못하는 이유가 중국에 있는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중국이 UN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오히려 중국 정부는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UN은 어디까지나 ‘국가 연합’이니 중국 정부가 직접 요청을 해야 가능하다는 입장이에요.

로힝야족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방글라데시 정부가 요청해서 UN이 들어가긴 했지만,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족의 장기적인 정착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금처럼 텐트 치고 밥 해 먹는 것 이상으로 나아지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진행하려고 해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우리도 아이들의 교육을 돕고자 했는데 막상 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보다 당장 가스스토브가 급하다는 거예요. 국경을 넘어온 100만 명이 밥을 먹어야 하니까 마땅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 나무를 구해와서 불을 지핍니다. 100만 명이 밥을 해 먹으니 주변의 산들도 금세 황폐화되고, 여자 아이들의 경우에는 산에 나무하러 먼 길을 나서면 성추행에도 쉽게 노출되어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또 연기와 삼림 훼손으로 인해 환경도 나빠지니 방글라데시 지역 주민들의 불만도 많이 생기고요. 이런 연료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해서 JTS가 가스스토브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전체댓글 25

0/200

정명데오

"WFP 방글라데시 총책임자 리처드 리간 씨, WFP 로힝야 난민캠프 책임자 피터 게스트 씨, 요르단 공주 사라 제이드 씨, WFP 임형준 한국 소장님 등을 차례대로 만나 가스버너가 무사히 전달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12-26 12:10:23

클락

스님의 실천으로 보면서 "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라고 느껴집니다. 같이 슬퍼하면 앉아만 있는 것은 어리석음을, 미미하시만 행동으로 실천해는 보는 것. 스님으로 법문을 읽으며 저를 보게 됩니다.

2019-01-28 09:58:48

백은정

다툼이 있는 곳엔 언제나 다른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봅니다. 하여 그곳의 약자인 로힝야족 아이들이 배움의 기회와 의식주의 해결에 문제가 생깁니다. 급한것 부터 해 나가는 JTS의 지원이 감사합니다. 차근 차근 하나씩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19-01-27 08:05:34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