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2.27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 ‘독립운동가 백용성’ (2)
“100년 전 꿈을 지금 우리의 꿈으로”

안녕하세요.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 두 번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에 대한 법륜 스님의 발제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스님의 발제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용성스님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토론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토론회 사회는 통일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한 조민 박사님이 진행해주었습니다.

먼저 최병헌 교수님은 구술 자료의 한계와 일제강점기 아래 구술 자료의 중요성을 말하며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용성스님은 불교계에 끼친 업적에 비해 독립운동가로서의 업적은 상대적으로 잘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 좀 가려진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법륜스님의 발표를 통해서 용성스님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업적이 새롭게 조명됐습니다. 오늘 발표한 내용이 모두 사실에 부합되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용성스님은 일제 강점기에 어느 독립운동가 못지않은 커다란 업적을 이룬 분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구 선생이나 안창호 선생, 홍범도 장군 같은 분들의 업적에 비견될 만큼 크게 평가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검증하는 것이 역사학자인 저의 의무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료에 근거해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발제에 인용된 자료는 주로 도문 스님의 구술 자료에 의거했기 때문에, 그 구술 내용에 대해서 다방면에 걸친 검증과 비판, 해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편, 일제 강점기는 구술 자료가 다른 시대에 비해 특히 중요하기도 합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목숨을 내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발각당하면 가차 없이 처벌당하는 상황이었기에 독립운동한 사실을 그 당시에 떠벌릴 수 없었고, 가능한 한 숨겨야 했습니다. 증거를 숨기는 데서 더 나아가 화근을 안 남기고자 아예 없애버리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구술 자료는 다른 시대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발표하신 구술 자료 내용은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 교수님은 발제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역사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독립선언서 공약 3장의 작성 과정, 상해 임시정부 지원, 윤봉길, 홍범도와의 관계, 장개석, 모택동에게 조중 연합군 구성을 제안했다는 부분은 정말 사실이었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암울했던 불교계 상황도 함께 고려하여 조사하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우선 다른 자료들과의 검증작업을 철저하게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구술 자료도 제3의 다른 인물들의 구술 자료까지도 비교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 하나, 사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이 자유를 빼앗기고 유례없이 탄압을 받던 시기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불교계에서 겪은 난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일제의 데라우치 총독이 총독부를 설치하면서 불교계에 대한 정책도 함께 수립했습니다. 데라우치 총독의 불교정책 수립 과정을 보면, 대단히 치밀했습니다. 전문가를 활용해서 사전조사를 하고, 조선 불교를 일제 식민통치에 이용하기 위한 치밀한 법령을 제정하고 제도를 만듭니다. 이렇게 일제의 치밀한 정책으로 불교 교단의 조직이 어떤 의미에서는 식민지 통치기구의 종교적인 한 부분을 담당할 정도로 철저하게 예속되어 버립니다.

용성스님에 대한 구술 자료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당시 불교계의 이런 척박한 상황을 감안해야 하고, 그 속에서 용성스님의 활동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함께 검토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근대사 불교 연구는 대개 각 문중이나 사찰에서 자신들의 스승이나 조사들의 업적을 선양하기 위한 사업으로 추진되는 게 거의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불교계의 그런 어두운 과거는 대부분 눈을 감고 지나쳐버립니다. 개개인만 뚝뚝 떼어서 그분이 훌륭한 분이라고 내세우는 데 치중하는 게 근대 불교사 연구의 경향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그분들의 업적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고, 업적을 제대로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당시 불교계 상황을 분석하는 쪽으로 연구가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을 다 드러내 놓고,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느냐를 논의해야 합니다. 어두운 면은 적당히 넘기거나 눈을 감고 지나쳐버리는 식으로 역사를 이해한다면 과거 역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불교의 발전도 극히 어렵고 제한될 것입니다.

저희 역사학자들이 제대로 했느냐고 한다면 저희는 제대로 못 하고 있고 충분한 해답을 드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불교계도 그런 쪽으로 같이 생각을 해주시면 앞으로 합동으로 연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커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식민지의 종교기구로까지 예속되었던 불교계의 상황 속에서 용성스님의 항일운동은 그 의미가 더욱 소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어서 이이화 선생님이 자신의 소견을 밝혔습니다. 이 선생님은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가 미션스쿨을 통해 학생 동원력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기독교가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양보했다는 스님의 발제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용성 평전을 저술한 김택근 작가님은 평전을 집필하며 느꼈던 소감과 사실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오전에 용성스님 평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용성스님은 어떤 스님이셨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참 쓸쓸한 스님이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용성스님은 평생 나라를 위해서 싸우셨고, 불교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영화라는 걸 누리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최병헌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용성스님이 펼친 대각교 운동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일제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종교만을 종교로 규정하고, 다른 종교는 해산시켰습니다. 불교의 대중화, 지성화, 생활화를 주창하고 실천한 대각교는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습니다.

패널들의 발언이 끝나고 청중으로부터 질의응답과 의견을 받았습니다. 한 청중은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계승하여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도법스님은 남북관계의 평화를 넘어 개개인의 평화까지 아우르는 평화를 어떻게 이루어나갈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자고 발언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마지막으로 토론 내용을 종합하여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두 분 원로 학자님께서 지적해주신 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증언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 진실을 증명할 증거를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다면 땅에 묻고 갈 수밖에 없겠죠. 그런 면에서 후손들이나 후예들이 그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증언이 없으면 우리들이 어떤 사실이 있었는지도 모를 텐데, 그나마 증언이라도 있으니까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 그 증언에 대한 고증 작업을 우리가 좀 더 깊이 있게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이화 교수님께서 ‘33이라는 숫자가 뭐가 중요하냐’고 하신 비판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용성스님은 종교인이어서 믿음을 갖고 있으니까 ‘33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서 33이라는 숫자를 주장한 것인데,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게 뭐가 중요하냐? 33이면 어떻고 44면 어떠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건 관점의 차이예요. (모두 웃음)

이런 비판도 받으면서 우리가 연구를 앞으로 더 해야 합니다. 오늘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처음 던져놓은 것에 불과해요, 앞으로 비판을 더 받으면서 저희가 고증 작업과 연구를 더욱더 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이라고 하면 나라의 독립만 자꾸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3.1운동을 해서 나라를 독립시키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제국(帝國)을 부흥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3.1운동은 제국의 부흥이 아니라 민국(民國)의 수립이었습니다. 3.1운동의 목표는, 첫째, 일제로부터 독립하는 것이고, 둘째,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거예요.

‘민(民)이 주인이 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

이 목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 정신이 3.1운동의 정신이고, ‘독립’과 ‘새로운 나라’라는 개념이 결합한 결과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고 붙이게 된 겁니다. 그래서 1948년 정부를 수립할 때 헌법 전문에 3.1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를 우리 대한민국의 법통으로 계승한다고 밝혀 두었습니다.

그런데 나라는 독립됐지만 분단이 되었기에 완전한 독립이 안 된 것과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완성이 되려면 평화와 통일을 모두 이루어야 합니다. 평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통일이 이루어져야 3.1운동에서 뿌린 씨앗이 완전히 열매를 맺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3.1운동이 지향한 바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둘째, 민(民)이 주인이 된다는 의미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민국(民國)’이라는 이름을 쓰긴 했지만 실제로는 민국이 아니었어요. 대통령도 이름만 그렇게 썼지 독재를 했잖아요. 그래서 4.19혁명이 일어나고 바로 민국의 내용이 채워졌고, 5.18 항쟁과 6월 항쟁, 촛불혁명까지 오면서 실질적인 민국을 이루어왔습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불의에 항거한 4.19정신을 계승해서 민주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이 헌법 전문에 딱 박혀 있어요. 용성스님은 민(民)이 주인 되는 나라를 꿈꾸셨고, 그 씨앗을 뿌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르러서는 독립도 이루었고 민국도 건설했지만, 그렇다고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가져야 할 관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3.1독립정신에서 종교 간 화합을 이끌어낸 것도 생각해볼 부분입니다. 이이화 교수님은 대표로 참여한 사람 중에 노동자도 없고 학생도 없지 않느냐고 비판하셨지만, 어쨌든 세 종교가 화합해서 거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화합하기 쉬웠을 것 같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오늘은 용성스님만 얘기하는 시간이니까 따로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예를 들어 기독교 측의 이승훈 선생님은 기독교가 함께 참여하도록 정말 헌신적인 노력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마음을 하나로 모았어요.

그런데 오늘날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지금 마음이 하나로 모여 있지 않습니다.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여니 야니, 경상도니 전라도니 해서 사분오열이 되어 있어요. 용성스님께서는 ‘나라가 사분오열되면 독립을 이루기 어렵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큰 과제는 ‘국민통합’입니다. 나라를 평화와 통일로 이끌어나가되, 가는 속도가 조금 더뎌지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이런 다양한 견해를 아울러서 가는 국민통합의 정신이 지금 절실히 요청됩니다. 특히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우리 종교인들은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가운데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국민통합을 해나가는 데에 무엇보다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화통일과 국민통합,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통일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의 나라 이름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의견이 많겠지만 일단 통일코리아라고 해봅시다. (모두 웃음) 그 통일코리아가 혼자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주변 나라들과 함께 손잡고 발전해가는 동아시아 평화지대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오는 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우리가 그 중심에 서는 시대가 도래하는 꿈을 한 번 꿔보면 좋겠습니다. 그런 염원을 담아서 과거의 100년을 넘어선 새로운 미래 100년으로 우리가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용성스님의 꿈이 우리들의 꿈이 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모두 박수)

학자들의 비판까지도 겸허히 껴안는 스님의 모습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토론회를 마치고 스님은 원로학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더 세게 비판하시지 그랬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행사장을 나온 스님은 토론회를 참석한 패널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이 토론회를 시작으로 용성스님과 잊혀진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되기를 바래봅니다. 또 선조들의 그 정신을 배워 대한민국이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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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민(民)이 주인이 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 감사합니다.~~^^

2020-03-15 16:33:06

이마음

타 종교인과 생각과 관점이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스님의 생각을 겸손하되 당당하게 밝힌 부분에서 참 존경스런 마음이듭니다. 다름을 인정하면 내 뜻을 더이상 밝히기가 잘 안되던데 오늘 많은 걸 배웁니다.

2019-03-05 20:53:26

겸손

삼일절 백주년을 맞아 용성스님의 업적이 재조명되기를 바랍니다

2019-03-04 14: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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