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3.5 해외활동가 수련 2일째
"같이 일하기 부담스러운 사람 때문에 고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활동가 수련 2일째입니다. 오늘은 강원도 낙산사를 순례하고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 4시 30분, 해외활동가들은 각자 방에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침식사는 죽과 사과로 간단하게 먹고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 밖 바다 위로 은은한 해가 떠올라있었습니다. 해만 봐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낙산사입니다.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스님과 활동가들은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사찰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후문에서 순례를 시작하면 한 바퀴를 빙 돌아 나올 수 있는데, 정문에서 시작하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스님은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선택했습니다. 후문으로 향하는 길옆으로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경치 좋죠?”

“네!”

아침 공기에 바다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의상기념관입니다. 한 바퀴 둘러본 후 스님은 이른 시간이라 다른 관광객도 없고, 춥기도 하여 실내에서 낙산사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이 곳 낙산사가 있는 곳은 오봉산입니다. 오봉산은 낙산이라고도 하는데요. 낙산은 산스크리트어 보타락가(補陀落伽, Potalaka)의 준말로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신라시대에 의상조사께서 저 바닷가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겠다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아무리 해도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지 않아서 바다에 몸을 던지려고 했더니 관세음보살님이 희미하게 나타났다고 해요. 그러면서 말하기를 ‘저 산 위에 대나무가 있는 곳이 내가 머무르는 곳이다.’고 했다고 해요. 그곳이 현재 관세음보살 모셔진 원통보전이에요.

또 이곳에서 파랑새를 만났는데, 파랑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이윽고 7일 후 바다 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친견한 후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 이름을 짓고, 파랑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의상대를 지나서 홍련암에 들렀다가,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해수관음상을 보고 원통보전으로 가겠습니다.”

스님은 이 외에도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나당전쟁의 소식을 알리러 급히 귀국했던 의상조사와 그를 사모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기념관을 나와 곧 의상조사가 기도했다고 하는 의상대에 다다랐습니다.

“의상조사법성게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스님은 의상대에 오르며 의상조사가 화엄경을 요약한 법성게를 힘차게 외었습니다. 활동가들도 따라 외우다 그만 게송을 까먹어 다 함께 웃었습니다. 바닷바람이 웃음소리를 실어갔습니다.

의상대를 나와 홍련암으로 갔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홍련암도 아름다웠지만, 암자로 가는 길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작은 암자에 빼곡히 들어간 스님과 활동가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관세음보살 정근을 했습니다. 암자 밖으로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목탁을 대신하는 듯하였습니다.

홍련암을 나와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수관음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에 첫 봄을 만났습니다.

“이야. 매화가 이렇게 일찍 피었어요. 올해 첫 꽃구경이네요. 여기 쑥 자란 것도 봐요.”

매화처럼 마음도 화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길이라는 예쁜 흙길을 걸어 원통보전에 다다랐습니다.

원통보전에서는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가는 곳마다 보시를 하고, 절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에게 꼭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산과 바다를 흠뻑 즐기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두 시간이 흘러있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경포대입니다. 경포대는 경포호 안에 있는 누각으로 바다와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관동팔경 중 첫손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경포대를 바닷가인 줄 알고 있었던 활동가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이 설명했는데, 뒤이어 온 사람이 ‘바다가 아니라고?’ 또 묻고, 또 다음 사람이 물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아이고. 스님 이렇게 무식한 저희와 한반도 평화를 만들고 세계 전법을 하려니 속이 답답하시죠?”

한 활동가가 웃으며 이야기하자 스님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라도 있으니까 하죠.”

경포호를 지나 바다를 따라 난 소나무 길을 걷고 차도 한 잔씩 마신 후 버스에 올랐습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송수신기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서든 야단법석이 펼쳐졌습니다. 활동가들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불교대학 진행을 할 때 장신구는 착용하지 않도록 안내받았는데 결혼반지도 빼야 하는지 물었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유럽지구에서 불교대학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교실 운영자는 몸이나 얼굴에 장신구를 달면 안 된다고 안내를 받았어요. 손가락에 끼고 있는 결혼반지도 빼야 하나요?”

“장신구를 달지 말라는 계율은 오계만 받은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됩니다. 때리거나 죽이지 마라,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마라, 성추행이나 성폭행하지 마라, 거짓말이나 욕설하지 마라, 술 먹고 취하지 마라, 이 다섯 가지가 오계입니다. 오계는 개인의 인격에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팔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오계 다음에 삼계가 더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이 팔계는 재가 수행자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 어떻게 수행해야 되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오계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율이지만, 팔계는 재가 수행자이지만 다른 사람을 지도해야 되는 위치에 놓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계율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해야 될 때는 조금 모범이 돼야 합니다. 비록 머리는 기르고 살아도 다른 사람이 볼 때 ‘수행자답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비록 재가자이지만 법사와 같이 다른 사람을 지도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 세 가지 계율을 더 받게 됩니다.

첫째, ‘꾸미지 마라’입니다. 머리에 꽃을 꽂는다든지, 장신구로 치장을 한다든지, 무언가로 몸을 꾸미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몸을 꾸미는 것을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주로 머리에 꽃을 꽂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꽃을 꽂지 마라’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데, ‘꾸민다’, ‘얼굴에 화장을 한다’, ‘장신구를 단다’ 이런 것들이 다 꾸미는 것에 해당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치하지 말라는 겁니다. 남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은 검소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검소하게 생활해야 하고, 설령 왕이라 하더라도 법사와 같은 역할을 하려면 삶이 검소해야 합니다. 즉 수행자는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계율입니다.

둘째, ‘교만하지 마라’입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높은 평상에 앉지 마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알려면, 인도 문화를 이해해야 됩니다. 인도 문화는 동네에서 유지가 되면 어떤 행사를 할 때 반드시 평상 위에 앉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동네 유지라는 사람들은 다 평상에 앉아 청중을 내려다봅니다. 한국 문화로는 자기가 동네 유지이면 앞자리에 앉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도 문화는 평상 위에 앉아 청중들과 서로 마주 봅니다. 완전히 평상에 좌정을 하고 앉든지, 자리가 없으면 엉덩이라도 평상에 걸치든지 말이죠. 그래서 높은 평상에 앉지 말라는 것은 ‘잘난 체하지 마라’, ‘교만하지 마라’ 하는 의미입니다. 수행자는 교만해서는 안 되고 겸손해야 한다는 계율입니다.

셋째, ‘가무를 즐기지 마라’입니다. 가무를 즐기지 말라는 것의 핵심은 마음이 고요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술을 먹고 마음이 들뜨거나, 흥분해서 노래 부르고 춤추거나, 이렇게 마음을 들뜨게 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세 가지 계율을 오계와 합해서 팔계라고 부릅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조용한 명상음악도 있지 않습니까. 설령 음악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음악들은 이 계율에 해당되지 않아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하는 간단한 음악과 놀이 정도는 괜찮은데, 노래방에 가서 악을 쓰고 노래를 한다든지, 기생을 불러 놓고 춤을 춘다든지, 이런 것들은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계율은 남을 해치는 것은 아니라서 오계에는 어긋나지 않아요. 대신 재가 수행자라면 꼭 지켜야 하는 팔계 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불교대학 담당을 맡게 되었다면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화장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내가 나를 보면 평범한 사람이 봉사를 하는 것이지만 불교대학에 처음 온 사람이 볼 때는 내가 선생님처럼 보이거든요. 최소한 불교대학을 진행할 때만이라도 장식을 하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말라는 뜻이에요. 원칙대로 하면 당연히 손가락에 반지 끼는 것도 안 되지요. 그게 뭐 어려워요? 수업 시작하기 전에 반지를 빼서 호주머니에 넣어 놓고 있다가 불교대학이 끝나고 다시 반지를 끼면 되지요. 또 반지를 끼면 절대 안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기본 정신은 검소하고, 겸손하고, 고요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유명하고 인기가 있다 하더라도 수행자라면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머리를 기르고 세속에 살아도 수행자로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에서 나온 계율이에요.

불교대학 담당자가 되면 학생들이 볼 때 여러분은 수행자입니다. 그러니 불교대학 담당자가 되었다면 깔끔하고 단정하게, 검소하고 겸손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임해 달라는 취지에서 그런 원칙이 생긴 거예요.”

몇 가지 질문을 받다 보니 동해휴게소에 다다랐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동해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 한 숟가락에 바다 한번 눈에 담는 멋진 식사였습니다.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즉문즉설이 계속되었습니다. 스님도 스님이지만, 활동가들도 ‘이때다!’하고 질문이 끝이 없었습니다. 개인 질문은 없고, 활동과 사업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목욕도 하고, 여유롭게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시간 만에 모든 피로가 풀리진 않겠지만, 타국에서 가정, 직장, 활동을 병행하며 한국으로 오는 날까지도 쉬지 못했을 활동가들에게는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휴식 후 오늘도 최 보살님과 스텝들이 준비해준 맛난 저녁 식사를 먹고,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활동가들은 대부분 법당을 운영하는 총무이거나 한 팀을 운영하는 팀장 이상 이어서 직급에 따른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후임자에게 조언이 간섭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능력이나 열의가 부족한 팀원과 어떻게 일해야 할지,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중 일을 잘 맡으려 하지 않는 팀원은 배제하게 된다는 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같이 일하는 봉사자 중에 제가 같이 일하기가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되도록 안 맡으시려고 하고, 하기 싫은 일이 주어지면 본인이 그렇다고 하기보다는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불평합니다. 그분을 설득하려고 해 봤지만, 제가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는 그분이 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주고 있습니다. 도반으로서 함께 활동가로 커나가야 될 텐데, 제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그분을 참여시키지 않고, 그분이 하는 만큼만 일을 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받아준다’는 말의 뜻은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 준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힘들어하면 ‘힘드시죠’ 하며 힘들어하는 그 마음을 받아준다는 의미예요. ‘원칙이 이렇잖아요!’ 하고 따지면 ‘아, 맞네요’ 하고 마음을 받아주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그 사람의 말을 ‘너는 늘 원칙만 제기하잖아’라고 하면서 쳐내고 있거든요. 일단 마음을 받아주세요. 그 일을 하기 싫으니까 ‘원칙이 이렇잖아!’ 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법사가 되어서 상대를 교화해도 되는 자격을 가졌을 때는 ‘당신은 원칙을 내세우지만 결국 당신이 그 일을 하기 싫으니까 원칙을 내세우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법사에게는 그 사람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줍니다. 그러나 법사가 아닌 경우에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지적을 하면 상대가 상처를 입기 때문에 상대는 더욱더 내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스님이 이야기를 해도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있어요. 즉문즉설을 할 때도 대다수는 스님의 말에 수긍을 하지만 가끔 오해를 하고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거든요.

도둑을 잡을 때 10명의 도둑을 잡는 것보다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원칙인 것처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일단 말하면 ‘너 핑계지?’ 이렇게 접근하지 말고, 어렵다고 하면 ‘아이고, 어렵죠’ 이렇게 먼저 받아주세요. ‘원칙이 이렇잖아요!’ 하고 따져도 어쨌든 그 말이 옳다면 그냥 받아주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그게 원칙 맞네요. 원칙은 그런데 이 경우는 그 사람을 위해서 조금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먼저 수용을 한 후 다시 제안을 해야 합니다.

‘당신 말이 맞는데, 그래도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어려운 건 알아요. 저도 그 일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러나 우리는 어려워도 그 일을 해야 되는 조건에 있지 않겠어요?’

이렇게 접근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면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그만두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먼저 받아들여야 돼요.

그런데 딱 보면 벌써 시비심이 일어나죠. 이때 ‘저 사람은 또 핑계 댄다’라고 생각하면 자꾸 내 기분만 나빠집니다. 기분이 나빠지면 ‘팍 지적을 해서 깨우쳐 줄까’ 이렇게 되거나, 안 그러면 ‘에이, 그냥 내버려 두자’ 이렇게 됩니다. 이것은 집착과 포기입니다. 저 사람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이 있어서 도움되는 것이 많아요. 내가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습니다. 항상 관점을 이렇게 가지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거예요.

물론 ‘저 사람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도 못하다. 진짜 장애만 될 뿐이다’ 하는 경우에는 일을 그만두게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라고 여겨질 때는 항상 부족한 것을 따지지 말고, 그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좋은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손실이 40이고 이익이 60일 때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40만 자꾸 보면 그만두라고 하고 싶어요. 그러나 막상 잘라 놓고 보면 손실이 커요.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있는 게 낫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좋아요.

그렇다고 원칙 없이 그런 사람들에게 끌려다녀도 안 돼요.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것과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을 혼돈하면 안 됩니다. 대중을 수용한다고 해서 대중에게 끌려다니면 안 돼요. 원칙은 원칙대로 가지되 부족한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관점을 가져야 돼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조금씩 부족하거든요. 그런데 부족하다고 다 그만두게 하면, 우리는 이 일을 해나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을 조금 더 강화한다든지 개선책을 마련해 나가는 자세가 오히려 필요해요. 관점을 그렇게 잡고 접근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토회의 법사 수계에 대한 질문을 한 분도 있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에서 정토회에서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정토회에서 법사님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데요. 법사 역할도 소임이라고는 하지만 인격적으로 별로 존경이 안 되는 분이 법사로 선임될 때 마음으로 안 받아들여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귀의를 하면 받아주었던 승단인데 뭐가 문제일까 생각을 하니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법사 수계 전에 한 달 동안 이의신청을 받는 기간이 있더라고요.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법사 수계를 받는 분들은 정회원으로 이미 교육도 이수한 분들인데 어떤 점을 심사하는 것인가요?”

“스님들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스님들은 나이도 어리고 아무 인격도 안 갖춰졌는데도 일단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면 여러분들이 무조건 절하고 존경을 하지 않습니까? 그게 권위라는 겁니다. 귄위를 위에서 줘버리니까 사람들이 거기에 따르잖아요. 이렇게 하면 신자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고, 스님들에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나이도 어리고 불교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남들에게 절도 받고 보시도 받고 대우도 받게 되니까, 스님들의 인격이 대부분 제대로 안 갖춰지게 됩니다. 전혀 수행자로서의 겸손함이 없고, 목이 뻣뻣해지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정토회에서는 출가를 안 시키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출발할 때부터 대중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시작했지만, 출가하는 것도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이 나중에 전부 다 정토회의 이념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왜냐하면 승복을 입으면 대우받는 시스템에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20년 전에 출가 시스템을 중지해 버렸습니다. 남아 있는 분은 유수 스님 한 분 뿐이고, 나머지 스님들은 모두 정토회와 무관하게 살고 있어요. 그리고 20년 동안 출가 시스템만 폐지한 것이 아니라 법사 수계 자체를 중지시켰다가 4년 전에 다시 법사 수계를 시작했습니다. 법사 수계를 중간에 중지했다가 다시 하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대우받는 것이 수행자에게는 부작용이 크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스님과 법사님이 함께 있을 때 여러분들은 ‘스님이니까’ 이러면서 대우를 하는 게 있거든요. 이것은 정토회 원칙에 어긋납니다. 이것이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가 아닙니다. 정토회는 종교 지도자를 키우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스님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수행을 지도할 사람을 키우는 곳이지 사제를 키우는 곳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행동과 삶에 감동을 해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스님이니까 대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수행공동체를 지향하는 정토회의 이념과 맞지 않습니다. 제 말 이해하셨어요?”

“네.”

“법사로서 훌륭하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은 괜찮은데, 스님이기 때문에 존경하거나, 스님이기 때문에 대우하는 것은 안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가르쳐도 잘 안 될 겁니다. 이것은 몸에 배어 있는 오랜 문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스님한테 머리를 다시 기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모두 웃음)

우리는 수행자로서 모인 것이지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사제로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법사가 된 사람 중에 일부에서 ‘저 사람을 존경한다’, ‘존경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개인의 의견이지 정토회에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법사로서 임명을 한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법사의 기준을 자꾸 능력으로 보니까 시비심이 드는 겁니다. 옛날 스님들은 아무 능력 없고 그냥 나무하고 불 때고 참선만 하는 스님들도 있었어요. 그 사람의 능력이 무엇을 진행하는데 부족할 수 있어요. 그러나 법사는 수행자를 뜻합니다. 그 사람이 분별심이 얼마나 있느냐,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있느냐, 이런 것으로 평가합니다. 능력은 부차적인 거예요.

부처님 당시에 데바다타가 대중의 지지를 받은 것은 데바다타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부처님의 뒤를 이어 다음 지도자가 되겠다고까지 나온 겁니다. 왜냐하면 대중이 지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동의를 안 해주니까 결국 나중에 교단을 분리해서 별도로 세우는 일이 벌어지고 그랬습니다.

수행은 능력 중심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법사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정토회는 그런 역할을 그 법사님께 안 맡깁니다. 법사님은 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능력은 사람의 특성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해외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 중에도 법사 수계를 받는 사람이 나와야 해요. 여러분들이 이 활동을 다 해왔기 때문에 가장 잘 알 것 아닙니까. 이제는 여러분들 중에 해외활동가들을 상담하고 지도해주는 법사가 나와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자꾸 능력을 따지게 되면 대중들 중에서 법사가 나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그분의 개인적인 능력과 수행의 정도는 법사단에서 검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대중과 접하면서 성추행을 했다든지, 돈을 빌렸다든지, 어떤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을 한 것은 법사단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달간 이의 신청을 받도록 공지를 하는 거예요. 만약 이의 신청이 들어와서 확인해보니 그 내용이 합당하다면, 법사 수계가 유보됩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보기에 ‘어, 이런 일이 있었는데 법사를 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든다면 한 달 안에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하면 돼요.”

그리고 불교대학 진행과 관련된 질문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서로 지역이 멀어서 불교대학 수업을 격주에 1번 2강을 연달아 듣는데 집중도가 떨어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격주 진행으로 개편된 불교대학 프로그램 적용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담당자로서 불교대학 교육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보시를 하는 게 좋을지 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또 법당에서 환경실천으로 비누를 제작하고 자율 보시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해도 될지, 새로운 불사에 부정적인 회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등 법당을 운영하며 생기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해외활동가 경비 지원 문제, 해외용 불대 졸업식과 수계식 영상제작에 대한 요청도 있었습니다. 수계식 영상을 요청한 질문자는, 소수의 인원을 두고 스님이 해외까지 오는 것을 염려하여 제안했는데요. 스님은 "수계식은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기에 인원이 적은 것이 문제는 아니다." 라며 수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어느덧 10시가 넘었습니다. 내일 일정을 고려하여 스님은 즉문즉설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또 필요한 것은 내일 버스 타고 가면서 이야기해요. 마르고 닳도록 물으세요. (모두 웃음) 내일 문경으로 가는 길에 공사 중인 연수원에 들러보겠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건강하지만 늙어서 죽을 때 다 돼서 오도가도 못하면 와서 살아야 될 곳을 조금씩 마련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사세요. 늙어서 같이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겠습니다.”(모두 웃음)

스님의 말에 근심 걱정이 다 날아가 앞으로 편안하게 수행, 보시, 봉사만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다시 문경 수련원으로 돌아가 해외활동가 수련 입재식을 하고, 지부별 사업평가와 계획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내일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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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때리거나 죽이지 마라,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마라, 성추행이나 성폭행하지 마라, 거짓말이나 욕설하지 마라, 술 먹고 취하지 마라, 이 다섯 가지가 오계입니다. 오계는 개인의 인격에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03-26 18:38:15

선주행

감사합니다.^^

2019-03-11 15:30:39

정지나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아~힘드셨군요 저도 그랬는데\"
자꾸만 지적하고 고치려하는 나를 또 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3-08 10: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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