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3.7. 해외활동가 수련 3일째
“고요함이 수행의 목적일까요?”

안녕하세요. 정토회 해외활동가 수련 3일째입니다. 스님은 해외활동가 수련 입재법문을 하고, 활동가들로부터 지난 사업평가와 2019년 사업계획을 들은 뒤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이틀간의 사찰순례를 마치고 문경 수련원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과 해외활동가들은 4시 30분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아침식사를 한 뒤 문경으로 출발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아침 인사를 건넸습니다.

“잘 주무셨어요? 유럽지구에서 ‘우리가 이렇게 대우받을 자격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200불씩 걷었대요. 그래서 제가 돌려주라고 그랬어요. 유럽지구장이 정토행자들은 자기 경비를 내는 게 원칙이고 한국에서도 다 고생하는데 미움받는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해외에 이민 가서 자기 살기도 바쁜데 이런 활동까지 하느라 수고가 많아요. 제가 해외에 강연 갈 때마다 안쓰러워서 눈물을 좀 보태주고 싶었어요.(모두 웃음) 우리 유 보살님은 김밥 팔아서 시드니, 멜버른 법당을 만들었어요. 다 눈물겹게 하셨어요. 그래서 한국에 초대를 한 겁니다.

제가 유럽지구장에게 그랬어요. 정토회는 자립이 원칙이니까, 지금 조금 보태고 유럽 수련원 짓는 거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수련원 짓는 것이나 자립하라고요.” (모두 웃음)

수행, 보시, 봉사는 자신을 위한 것인데도 이렇게 챙겨주는 스님에게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피곤해요? 좀 자고 이야기할까요?”

“아니요!”

활동가들은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 평평한 도로로 들어서자 버스 안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당 총무로서 사람을 관리하고 법당을 운영하는 법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진남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동안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진남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문경 수련원으로 가는 길에 선유동에 있는 연수원에 들렀습니다. 연수원 앞까지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스님은 선유동계곡이 아름다우니 함께 걷자고 제안하였습니다. 30분 정도 계곡을 따라 걸어서 연수원으로 갔습니다. 아름다운 경치에 햇살까지 더해져 흙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요?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가 들려요?”

활동가들은 ‘네’하고 봄처럼 웃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한 활동가는 한국으로 3월에 와본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라며 기뻐했습니다.

연수원에 도착해서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수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작년에 공사하기 전 이곳을 보았던 활동가들은 연수원이 많이 깨끗해지고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수련 중에 두어 시간은 와서 청소 좀 하고 가세요. 그래야 나중에 연수원에 올 면목이 있죠.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보시를 하거나, 여기 와서 청소를 하거나, 지금 자기 사는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거예요. 세 번째가 제일 쉽죠?” (모두 웃음)

연수원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도착하니 찰진 밥과 청국장, 나물반찬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 공양 바라지를 자원해주신 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30분부터 해외활동가수련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선주 법사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선주 법사님은 9차 천일결사가 시작되던 2년 전, 해외지부의 담당 법사가 되었습니다.

“지난 2년, 해외지부와 함께 하며 정토회를 더 깊고 넓게 다시 공부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정토회가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데 우리 해외지부가 디딤돌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련을 통해 어떻게 디딤돌이 될지 함께 논의해보면 좋겠습니다.”

해외 사무국장 이정인 님은 2박 3일 사찰순례를 잘 다녀와 오늘 입재가 아니라 회향하는 기분이라고 말해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련을 통해 지혜를 잘 모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정토회 대표 김은숙 님도 참석하여 갈수록 무게중심이 국내에서 해외로 가고 있다고 독려하고, 연수원장 무변심법사님도 참석하여 “이제 마음 속에 늘 해외를 고려하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입재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 오신 것을, 문경 정토수련원에 오신 것을, 수련에 참가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각자 다 일상생활하기 바쁜 와중에 먼 곳에서, 각자 경비 들여서 참여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어릴 때 기억도 되살려서 산도 구경하고 바다도 구경하고 절도 구경하고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접근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수련 전에 2박 3일 사찰 순례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스님은 활동가들을 환영한 후 무엇보다 수행이 중요함을 재차 강조하고, 2차 만일결사의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 ‘나는 수행자다’ 하는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아직 이게 덜 갖추어져 있다 보니까 자기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라요.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형상에 집착해서 자꾸 신자로 전락하거나 자기를 하찮게 여기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가 왜 모이고, 왜 이 길을 가느냐’ 하는 것을 되새겨보면 좋겠어요. 이게 분명치 않으면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부처님 법을 얘기해도 돌아서면 무용지물이에요.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 수행자들의 모임이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시작이 됐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원래 어떤 것이냐’ 하는 관점을 잡도록 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정토불교대학’입니다. 그것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 ‘깨달음의 장’입니다.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한번 살아보자’ 하는 원(願)을 예전부터 갖고 있었지만, 수년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93년에야 비로소 저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의 도반들이 의기투합을 해서 출발을 했습니다. 상가(sangha, 僧迦)가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죠.

‘우리가 이런 목표를 갖고 만 일 동안 노력하면 어떨까? 한 세대가 평생 노력을 하면 그 씨앗은 뿌릴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마음으로 ‘깨달음의 장’도 시작하고, ‘정토불교대학’도 시작하고,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도 공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 혼자서 시작했는데, 우리는 혼자도 아니고 벌써 여러 명이었잖아요. 이렇게 해서 1993년에 제1차 만일결사 중 제1차 천일결사의 제1차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7년째에 접어들었고, 이제 제9차 천일결사의 끝 무렵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 1차 만일결사의 목표는 한국 안에 이 운동을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2차 만일결사의 목표는 이것을 세계화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좋은 법을 만나서 함께 정진하도록 하자.’

이렇게 원을 세우고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외국인 전법은 한국에서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외국인 전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내부에서 화합을 먼저 이루어야 해요. 한국 사람끼리는 같이 일하다가 서로 싸우고 깨져도 괜찮아요.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문화를 이해하잖아요. 그런데 외국인이 볼 때는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 됩니다. ‘자기들끼리의 갈등도 해결 못하는 게 무슨 수행이냐’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받기가 쉽습니다.

외국인이 법당에 오도록 하는 것을 제가 아직 썩 환영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준비가 아직 덜 됐기 때문이에요. 장소 문제가 아니에요. 외국 사람들은 장소 같은 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둘이 모였든 셋이 모였든 가정집에 모였든 그 모인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감동할 만한가, 이게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여러분 모두 정진을 더 해야 합니다. 전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행을 통해 내 삶이 바뀌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가족이 여기에 참여하려면 더욱더 나부터 바뀌어야 해요. 주변에 여러 사례가 있잖아요. 정토행자들의 삶이 바뀌니까 아내가 감동해서 바뀌고,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감동해서 도와주잖아요. 이렇게 될 때 파급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또 미래에 발휘할 힘을 위해서도 그렇고, 정진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정진을 통해 바뀐 내 삶을 토대로 해서 주위에 행복의 씨앗을 뿌려나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정토회의 미래를 그려보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이번 해외활동가수련은 해외 교민들에게 어떻게 전법을 하고, 불교대학을 어떻게 운영하느냐 등 현재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논의가 주된 것이지만, 미래의 희망도 이렇게 그려보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외국인 전법을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이어서 9차 천일결사 중 지난 2년에 대한 사업평가와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집중할 과제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는 해외사업국, 아시아태평양지구, 유럽지구, 북미동부지구, 북미서부지구, JTS America, 좋은 벗들 USA, 해외포교팀, 국제국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적인 성과도 성과지만 가장 큰 성과로 총무, 팀장, 지구장이 먼저 정진을 하며 정진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을 성과를 꼽은 지부도 있었습니다. 국제국에서는 외국인 수행자를 키우기 위해 영어법회, 영어 온라인 불교대, 영어로 진행하는 깨장, 나장, 명상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활동가 은 사업평가에 귀 기울이며 서로서로 배웠습니다. 스님도 뒤편에 앉아 활동가들의 발표를 경청하였습니다.

국제국을 마지막으로 발표가 끝나고 입재 법문과 지부별 사업평가와 과제를 듣고 난 후 소감을 조별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예불 후에는 전법을 어떻게 해나갈지 머리를 맞대 본 후 조별로 그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활동가들은 안으로는 수행을 열심히 하는 한편, 밖으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모둠 발표를 다 듣고 스님의 정리 말씀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가장 바른 가르침이 가장 쉬운 가르침이다.’고 생각하여 일구어왔던 정토회의 역사를 알려주고 지역 상황에 맞는 전법을 제안하였습니다. 해외에서 명상에 대한 수요가 많고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 제안이 많자 스님은 명상의 한계와 깨달음의 본질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려주었습니다.

명상의 목적이 고요함이라면, 목석처럼 되는 것이 수행일까요?

“요즘 불교 하면 명상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명상이 갖는 한계가 있어요. 명상은 복을 빌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기복적인 종교에 비해 탁월하게 좋은 점이 있긴 하지만, 지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상은 그냥 개인의 안심이라는 한계를 못 벗어납니다. 명상을 해서 사회의식이 커지거나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쪽으로 의식이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사회 운동하다가 지친 사람들이 명상을 하면서 세상을 오히려 외면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가 날 때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시적인 효과를 추구하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정신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명상을 한다면, 이건 붓다의 가르침과는 맞지가 않습니다. 정법(正法)과 정법 아닌 것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해요. 고요함에 이르는 것은 불법(佛法)의 한 과정이지 목표는 아닙니다. 불교의 목표는 지혜를 증득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화를 내다가 그릇을 집어던져서 깼다고 합시다. 이럴 때 우리는 대부분 ‘내 말에 대꾸하고 덤비는 것만 해도 기분이 나쁜데, 거기다가 그릇까지 깨?’ 이렇게 되기 때문에 화가 더 치솟잖아요. 그럴 때 심호흡을 하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힌다면 화를 내는 것보다는 좋지만, 이게 불법의 핵심은 아니라는 거예요.

불법의 핵심은 진실을 보는 것입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화가 나니까 아내를 그냥 때려버리고 싶지만 차마 때릴 수는 없으니까 대신에 그릇을 깬 겁니다. 그럴 때 우리가 마음의 진실을 딱 꿰뚫어 보면 어떻게 될까요?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는 건 못된 놈이지만 그 못된 놈의 마음 속에 나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화를 어떻게든 자제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그 진실을 탁 보는 순간 내 마음속에 있는 화가 일순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참는 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즉문즉설을 통해 이런 원리를 깨우치고 실생활 속에서 늘 경험해 나가야 하는데, 매번 상대방 꼬라지를 딱 보면 이게 잘 안 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마음을 딱 돌이켜보는 연습을 여러 번 반복하는 가운데 인격이 바뀌고 삶이 바뀌어나가는 거예요. 이건 그냥 앉아서 명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예요.

여러분들은 사람들이 명상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꾸 ‘명상을 합시다’라고 제안하지만, 제가 볼 때 지금 세상에서 말하는 명상은 복 비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인지는 몰라도 정법의 관점에서 볼 때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조차 이런 사실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고 있어요. 불법의 핵심이 무엇인지가 경험적으로 탁 꿰뚫어져야 합니다. 상대가 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 화가 일어나는 것은 까르마 때문이지만, 그렇게 화가 나더라도 수행자는 그 속의 진실을 보기 때문에 다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화가 나더라도 거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첫 번째 단계이고, 상대가 그렇게 하는 행동 가운데서도 마음을 가라앉혀서 평정심을 갖는 것은 두 번째 단계인 선정이에요. 세 번째 단계는 그 속에서 마음의 본질을 딱 꿰뚫어 보는 겁니다. 화가 났을 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하나, 둘’ 하고 수를 세거나 호흡을 알아차리는 게 수행의 근본이 아니에요. 상대가 그렇게 행동하는 본질을 꿰뚫어봐서 미소짓고 바라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웃으면서 미소지으려고 해도 안 되는 건 상대 마음의 본질을 내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 순간 참는 것이지 그냥 저절로 편안해지는 건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정토회 회원들이 이제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상당 부분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해외에 사는 여러분들과 얘기해보면 명상을 하자는 요구가 아직도 끊임없거든요. 명상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게 유행을 타는 명상은 깨달음의 본질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아. 이런 유행이 있으니까 우선 이것을 수용하면서 차차 불법의 본질을 안내하자’ 이렇게 방편이나 과정으로 삼으면 괜찮지만, ‘앉아서 명상하는 게 불법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안 됩니다. 고요함이 명상이라면 목석처럼 되는 것이 수행일까요?

여러분들이 초파일에 대중들과 연등을 만드는 건 문화적인 접근이에요. 이런 문화적인 접근은 사람들 사이에 친해지게 하거나 안면을 트는 데 도움이 되지, 수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사람이 우선 만나서 서로 알고 친해져야 한다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문화적으로 접근한다면 괜찮아요. 그러나 문화적으로 접근하느라 연등 만들고 초파일 행사에 참가하는 데에만 그치면 안 돼요. 예를 들어 일본에 가면 웃통 벗은 사람들이 가마를 메고 축제를 벌이는 걸 보잖아요. 이런 걸 보고 재미있어서 자기도 같이 해보거나, 유럽 가서 어떤 문화행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게 수행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한국의 불교 신자들은 외국인이 한국의 불교문화를 받아들이면 그게 곧 불법을 이해하고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명상을 유효한 수단으로 쓰는 것은 괜찮지만, 마치 그것이 수행인 양 생각한다면 이건 큰 착오입니다. 가끔 등산을 같이 하거나 저녁에 맥주 한 잔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목을 도모함으로 해서 불교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중간에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건 좋지만,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불교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수행자로 나아가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수행자로 나아가는 정체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나머지는 세상살이의 범위에서 좀 보강한다는 측면에서 활용하는 건 괜찮지만, 조심해서 살펴야 해요.

첫째, 한국의 불교문화로 접근해서 어떻게 해보려는 것입니다. 둘째, 서양에서 지금 유행하고 있는 명상이라는 걸로 접근해서 어떻게 해보려는 것입니다.

본질을 알고 접근하면 괜찮지만 마치 그것이 불법인 줄 생각한다면 큰 착오입니다. 설령 세상은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정토행자 여러분은 이 문제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법의 가장 큰 위력은 체득에 있습니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많은 사람을 가르쳤지만 결국 깨우친 사람은 혜가대사 한 명입니다. 혜가대사도 승찬대사 한 명 만을 깨우치고 죽었어요. 그렇게 6대를 내려와 육조 혜능대사에 와서야 이 법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래서 몇 명을 가르쳤느냐가 핵심이 아니에요. 정법이 정확하게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지, 숫자가 얼마 되는지는 핵심이 아닙니다. 정법이 유지가 되면 어느 순간 시절 인연이 도래할 때 꽃이 피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불법을 널리 전해서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이 현지에서 생명력을 가지려면 여러분들 자신이 법의 진수를 체득해야만 합니다. 그러려면 첫째, 내가 수행함으로써 나를 희생하지 않아야 해요. 예를 들어 정토회 활동에 일생을 다 바쳤는데 나중에 후회한다면 자기 인생을 희생한 셈이잖아요.

‘정말 내일 눈을 감아도 후회가 없다. 이 법을 만나서 나는 삶의 가치를 알았고, 삶의 행복을 누렸다.’

이렇게 후회 없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전법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그게 있어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화력을 가질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좀 잘해주면 좋아졌다가, 조금 틀어지면 삐쳤다가, 또 좋아졌다가, 이렇게 달래는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우리가 이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활동들은 ‘우리 인류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모델을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은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고 얘기해도 세상으로 확산도 잘 안 되고 오히려 우리가 좀 돌출된 삶을 사는 것처럼 취급받지만, 인연이 도래하면 순식간에 이것이 하나의 삶의 모델이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환경 문제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발생해서 기관지 질병 문제로 하루에 병원을 찾은 환자가 15,000명이 됐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래서 200명이 죽었다면 환경문제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금방 바뀌어 버려요. 제가 벌써 20년 전부터 늘 얘기했던 대로 환경 위기가 지금 이렇게 도래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로 인해 매일매일 문자메시지로 경고가 날아오고 난리잖아요.

지금 이렇게 물질적 소비를 늘리는 삶이 정말 잘 사는 삶이라면,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중국도 이렇게 살아가고, 인도도 이렇게 살아간다면, 과연 이게 지속 가능한 문명일까요?

이 문제를 제가 20년 전부터 계속 제기했는데, 이제 중국이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우리는 중국에서 발생시키는 공해 때문에 숨도 쉬기 어려워집니다. 한국 안에서 생긴 문제라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자동차 운행을 줄이자든지 어떤 방법을 취해서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공기 오염의 문제는 피할 수가 없어요. 물이 문제라면 다른 데 가서 물을 가져오기라도 할 수 있지만 공기 문제는 그렇게 안 됩니다. 공기 오염이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지는 캘리포니아에서 산불 났을 때 제가 느꼈습니다. 이건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자동차 안에 있어도 해결이 안 돼요. 상하이에서 광저우에 이르는 중국 남부 지방 전체에서 발생한 공해가 한국으로 밀려오기 때문에 한국 안에서는 피할 길이 없어요. 이 공해는 지금 태백산맥을 넘어서 한반도 전체를 다 덮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중국에서 밀려왔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을 넘어서 일본까지 덮어나가겠죠.

이런 지구 상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자꾸 선진국이 어떻고, 잘 사는 게 어떻고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은 결국 우리에게 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첫 번째가 기후변화예요.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공기의 오염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숨을 못 쉬면 당장 죽으니까 사실은 이 문제가 제일 심각해요. 세 번째는 물의 오염입니다. 지표수는 이제 거의 오염이 됐고, 지하수를 개발해서 쓴다고 하더라도 지하수조차 빠른 속도로 오염되고 있습니다. 무분별하게 지하수를 개발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지하수 오염은 지표수 오염보다 더 심각해질 거예요. 한 구멍만 오염이 되면 그 지하수층 전체의 물이 오염돼버리는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그다음으로 식품 오염이 있습니다. 지금도 식품 오염 때문에 안전한 먹거리를 마련하기 어렵잖아요.

앞으로 오염이 심해지면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이렇게 숨쉬고 물 마시고 음식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해질 거예요. 생존을 위해서는 이게 가장 필요하잖아요. 우리가 이걸 오염시켜놓고 다른 부차적인 걸 갖고 문명의 발전이라 하고 잘 산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이런 상태가 50년, 100년 계속되면 쓰레기더미에서 사는 삶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소하고 겸손하게 마음을 안정시켜서 살라는 붓다의 가르침은 단순히 옛날 수행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기본 방향입니다. 특수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길이에요. 이런 면에서 여러분들이 좀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견고한 마음의 기반 위에서 세상살이의 성공과 실패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나갈 수 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경고 문자에 환경운동의 중요성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깊이 있게 와 닿았습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치며 각 지역마다 현안도 많은데 세계화에 대한 비전이 버거울 수 있겠지만, 비전을 가지고 현안을 다루어 가자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에게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용성스님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한 자료집을 1권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스님이 한 권씩 전해주자, 활동가들은 기쁜 얼굴로 받아 들었습니다.

어느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1시간 정도 원고 교정 등 업무를 보고, 서울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BBS와 촬영이 있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각자의 수행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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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화가 날 때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시적인 효과를 추구하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정신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명상을 한다면, 이건 붓다의 가르침과는 맞지가 않다. 정법(正法)과 정법 아닌 것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 고요함에 이르는 것은 불법(佛法)의 한 과정이지 목표는 아니다. 불교의 목표는 지혜를 증득하는 데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4-19 03:24:54

정명데오

"검소하고 겸손하게 마음을 안정시켜서 살라는 붓다의 가르침은 단순히 옛날 수행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기본 방향입니다. " 감사합니다.~~^^

2020-03-28 06:40:44

박진자

제일 쉬운!지금 자기 사는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2019-03-15 12: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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