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3.9 해외활동가 수련 회향식
"아버지가 편찮으신데 도울 수가 없으니 마음이 불편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활동가수련 마지막 날입니다. 스님은 해외활동가들을 위해 5시간에 걸쳐 즉문즉설을 한 후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전은 두북에서 보낸 후에 오후 1시가 되어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오전에 각 지구별로 교육수련의 좋은 사례를 서로 공유하고, 모둠별로 어떻게 교육수련을 강화할 것인지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열띤 토론으로 점심식사도 늦어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미리 대청소도 해두었습니다.

오후에는 지난 6일간의 수련을 총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의문까지 모두 질문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충분히 질문할 수 있도록 즉문즉설에 4시간을 배정했습니다.

즉문즉설에 앞서 해외활동가수련 기간 동안 맛있는 공양을 지어주었던 5명의 바라지분들을 소개하고 소감을 들었습니다. 공양팀장을 맡았던 분은 3년 간 매번 해외활동가 수련 때마다 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바라지들은 환하게 웃으며 오히려 “해외에서 고생하시는데 바라지할 수 있어 영광이었어요.”, “행복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한 분 한 분 인사를 할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 쓰이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명상으로 마음을 고요히 한 뒤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버스에서 다 물었는데, 또 물을 것이 있어요?”

스님은 웃으며 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활동에 관한 질문뿐 아니라 개인적인 고민에서부터 사회적인 활동에 대한 의문까지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중 짧지만 큰 가르침이 있었던 질문 세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출근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108배 기도를 놓치기 되는 것이 고민이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108배하는 것보다 매 순간 깨어있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저는 정토회 8차 천일결사 1차 백일기도부터 기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처음 동참할 때 냈던 진지한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아요. 특히 작년부터 일주일에 세 번은 오전 6시 30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아침에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출근할 때가 많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하게 되는데, 충분한 기도는 되지 않지만 그나마 차선책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는 것이 저의 합리화인지, 아니면 그렇게라도 기도하는 것이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하는 게 낫죠. 그러나 그런 방식은 기도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데 일어나서 숫자를 세어가며 억지로 절을 하는 것도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수행의 원칙에 맞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을 할 때는 힘들어도 일어나서 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에요. 아침에 알람을 못 듣거나 사정상 기도를 놓치게 되면 차선으로라도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건 괜찮지만,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아침에 기도를 놓치게 되면, 중간에 어떻게든 108배 정진은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출근길 마음 속 기도도 안 하면 하루 종일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요.”

“그래요.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하는 게 나아요. 수행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놓친 경우에는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정말 수행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아침에 절을 못하고 출근을 하게 되었을 경우 저녁에 돌아와서 놓친 걸 해야죠.”

“다른 한편으로는 절을 하는 것보다 매 순간 깨어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게 수행이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요.”

“네, 아주 맞는 말씀이에요. 절을 만 배 하는 것보다 매 순간 깨어있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매 순간 깨어있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절을 하게 됩니다.”(모두 박장대소)

“맞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매 순간 깨어있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절을 하게 된다는 스님의 답변에 모두 박장대소하고 웃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마음 나누기를 하는 것이 어렵다며 그 방법을 물었습니다. 스님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주어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마음 나누기하는 것이 어려워요

“법당에 새로 오신 분과 법문을 들었는데, 당시 질문자가 자식의 도박 문제로 고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새로 오신 분이 그 법문을 듣고 스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다른 분들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마음 나누기가 끝나고 메아리를 하는 시간에 저를 포함해서 법당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 스님의 법문을 오랫동안 들은 것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이해한 대로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걸 듣고 있던 한 분이 마음 나누기는 법문을 듣고 자기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답변을 주고받는 토론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새로 오신 분이니까 저희가 의욕이 생겨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드리는 중이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질문하신 분도 조금 미안해지고, 저희도 무언가 잘못했나 싶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하고 나니 마음 나누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 나누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음 나누기는 내가 느낀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마음 나누기가 제일 쉬워요. 새로 오신 분은 법문을 듣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한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게 왜 이해가 안 되지?’하며 이건 이런 뜻이고 저건 저런 뜻이라고 말하는 건 그 사람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지 마음 나누기는 아니에요. 그러니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마음 나누기가 아니라는 분의 지적도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마음 나누기를 하면 됩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이 답답합니다. 내 마음이 왜 답답할까 살펴보니 ‘왜 그게 이해가 안 될까?’ 하는 내가 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내 마음이 답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는 이렇게 표현해도 마음 나누기가 됩니다.

‘마음 나누기는 토론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그 말을 듣고 약간 기분이 나빴습니다. 왜 기분이 나쁠까 살펴보니 ‘그걸 누가 모르나?’ 이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나빴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이렇게 말해서 내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거예요. 상대방이 지적을 할 때 ‘누가 몰라서 그래?’ 이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나빠집니다.

마음 나누기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그 마음이 일어난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는 거예요. 마음이라는 것은 길게 설명할 게 없습니다. 대부분 두세 마디면 표현이 다 돼요. 일단 내 마음이 어떤 한지 알아차리고, 왜 그런 마음이 들까를 살펴서 ‘내가 여기에 집착했구나’, ‘내가 그 생각이 들었구나’ 하고 표현하는 거예요. 내가 안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걸 모르는 사람을 볼 때 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겁니다. 그걸 지적하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네만 아냐, 나도 안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내 기분이 나빠지는 거예요.

이렇게 접근하면 마음 나누기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질문을 하든, 지적을 하든, 남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핵심이 아니에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질문을 한다고 해서 내가 꼭 답변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또 질문을 받고 나서 ‘답변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망설이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 망설이는 마음이 편안한 마음은 아니잖아요. 그때 내 마음이 긴장되고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표현하는 거예요.

‘질문을 받고 나서 답변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내어놓으면 돼요.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 상태를 이야기하면 돼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지 결국 거기에 대한 나의 분별이 내 마음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네가 그래서 그렇다’라고 말하면 결국 시비가 되고,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몰리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건 걱정하는 마음이잖아요. 그러면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라고 하거나,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내 분별에 사로잡혀서 내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하고 표현하면 됩니다.”

“마음 나누기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질문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을 드려야 하나요?”

“따로 말할 게 뭐가 있어요? (모두 웃음)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다시 물으면 이야기를 해주겠지만 그 사람도 마음 나누기하는 그 순간에 그 생각이 들어서 말을 한 거니까 끝나고 나면 그 생각이 사라질지도 몰라요. 그 생각을 잊었는데 굳이 내가 그걸 끄집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꾸 설명을 해주게 되면, 그게 쌓여서 나중에 질문자가 남을 가르치려 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속으로 ‘그걸 누가 모르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건 늘 변하는 겁니다. 그 사람도 그 순간 그런 의문이 들어서 물어보게 되었고, 지나 놓고 보니 더 이상 그것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새삼스레 ‘아까 물어본 건…’ 이러면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어요. 마음 나누기가 다 끝나고도 그 사람이 다시 의문이 들어 물어보면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라고 하거나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런 뜻인 것 같습니다’하고 알려주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설명을 하거나 설득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불러옵니다. 설명하고 나서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거나 설득되지 않으면 내가 기분이 나빠져요. 설득을 하려고 하지 말고 ‘저는 법문을 듣고 이렇게 이해가 되어 편안해졌습니다’ 이 정도로만 이야기를 해도 돼요. 만약 상대방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편안해집니까?’하고 다시 물어보면, 또 내가 느낀 만큼만 이야기를 하면 돼요.

그분이 물어보는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으면 ‘저는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법문을 자주 들어서 그런지 저는 익숙한데, 처음 듣는 분에게는 다르게 들릴 수 있었겠습니다’라고 하거나, ‘저도 처음 들었다면 다르게 느꼈을지 모르는데, 법문을 자주 들어서 그런지 별다른 문제의식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아요.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항암 치료를 받고 나서 편찮으신데 해외에 살고 있다 보니 도움이 되지 못해 고민이라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혼자 계시는 아픈 아버지가 걱정돼요

“저희 아버지께서 올해 85세이십니다. 2년 전 항암치료를 열 번 받은 후로 몸이 많이 상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예전에는 동생 가족과 함께 지내셨는데 지금은 혼자 계세요. 동생이 자주 찾아뵙긴 하지만, 제가 뭔가 해드리는 것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마음을 잘 추스를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편찮으신 상황에서 내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막상 도움을 드릴 수는 없으니까 한편으로 불효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죠. 그렇다고 도움을 드리려고 해도 내 생활이 있어서 여의치가 않으니 여기에서 번뇌가 생깁니다. 이건 내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도움을 드릴 형편은 안 되는데도 도움을 드려야 된다는 생각을 계속하기 때문에 지금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도움 드릴 형편이 안 되면 그런 나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런 다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려고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돼요. 이번에 한국에 들어올 때 하루 먼저 들어와서 아버지를 뵙고 오거나, 출국할 때 시간을 하루 더 내서 아버지를 뵙고 떠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집에 돌아가서라도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고, 또 형편이 되면 생활비로 쓰시도록 200불이라도 송금을 해드리면 되죠. 이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면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대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돈을 보내려니 그래도 1,000불은 보내야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안 보내자니 마음이 불편하구나.’

이런 게 다 체면과 관련이 있어요. 1,000불을 보내자니 내 생활이 그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200불을 보내자니 다른 형제들한테 욕 얻어먹을 것 같은 거예요. 이런 생각이 다 번뇌입니다. 보내고 싶으면 50불이든 100불이든 내 형편이 되는대로 보내면 돼요. 또 그 정도는 보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돈을 보내는 대신 전화를 드려도 괜찮아요.

우리에게 번뇌가 생기는 이유는 대개 가능하지 않은 것을 원하거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연세가 85세이면 세속적으로 봐도 돌아가실 때가 거의 다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제는 하루라도 더 살아계신 것만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잘 사셨고, 이제는 하루를 더 사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자꾸 내 생각으로 ‘아흔까지 사셨으면...’, ‘몇 년만 더 사셨으면...’하고 바라면 슬픔이 더 일어납니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예요. 내가 옆에서 간호를 한다고 더 오래 사시는 것도 아니고, 걱정을 한다고 더 오래 사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러한 걱정도 따지고 보면 결국 다 내 만족을 위한 거예요.

우리의 모든 행위는 다 남 핑계를 대지만 가만히 보면 모두 자기만족을 위한 거예요. 그래서 자기 기대가 크면 자기만족이 안 되고, 자기 기대가 작으면 자기만족이 되는 거예요.

‘이번에 정토회 해외활동가 수련을 계기로 한국에 들어온 덕분에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더 뵈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이러다가 만약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평소 같으면 못 찾아뵈었을 텐데 수련을 계기로 그래도 한 번 뵈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현재 항암치료를 받고 계시다면, 할 일이 있다고 해도 치료하는 의사에게 할 일이 있지 내가 여기에 앉아서 걱정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앉아서 걱정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돼요.

오히려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서 ‘나도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데 도움을 못 줘서 미안하다’라고 하고, 돈이라도 보탤 수 있으면 보태서 실질적으로 무언가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에 오게 되면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하고, 그럴 여건이 안 되면 전화라도 한 번 하는 것이 필요해요. 걱정만 하기보다는 실제로 무언가를 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만약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버지처럼 누워있다고 하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걱정이 심할 거예요. 대개 그런 일을 당하면 하늘이 노래집니다. 그런 일 앞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게 수행자로의 자세예요.”

“네, 감사합니다.”

질문한 분은 밝게 웃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외에 개인적 고민으로는 매년 활동가수련에 참여하고 있는데 환경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 남편이 매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나쁘지 않냐고 문제제기를 해서 고민이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어제 직접 참가해 보았던 행복학교에 대한 질문도 많았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행복학교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행복학교의 목표, 법문을 고르는 기준, 진행자로서 필요한 자질 등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또, 해외에서 행복학교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기도 했습니다.

법당 운영에 대한 문의도 여전히 많았습니다. 법당 운영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차기 총무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면 좋을지, 원래 나오던 법당이 아닌 다른 법당의 법회와 입재식에 참가하는 회원의 소속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토회에 와서 다른 명상 단체를 선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수행 법회가 정회원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열린 법회 운영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일반회원이 입재식에 참가할 수 있는지, 재능도 있고 수행에 열의도 있는 사람이 지역 법당에 정착을 못할 경우 온라인 법회나 국제국 봉사를 하도록 해도 될지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질문으로는 2차 북미회담이 단연 관심이 높았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가 무엇이고, 앞으로 북미관계가 어떻게 될지 묻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하노이에 거주하는 활동가는 북미정상회담으로 하노이 한인사회가 많은 행사를 열었는데 정토회는 어떤 입장을 취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도 했습니다.

해외에서 한 법문이 활동가들에게 큰 도움이 되므로, 영상 촬영을 하여 이후 교육 자료로 쓰면 좋겠다고 요청하기도 했고, 수련에서 논의된 문제가 수련 이후에 행정적으로도 정확히 처리되기를 요청한 분도 있었습니다.

끝으로 각 법당 산하에 외국인 전법 담당자를 선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외국인 전법 담당자를 두는 것에 대해 찬성하면서 담당자를 어떤 사람으로 선정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5시에 즉문즉설을 마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6시가 되어서 겨우 마쳤습니다. 다음 일정이 없었다면 계속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당으로 나와 다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지난 수련으로 마음속의 미세먼지도 싹 날려버렸는지, 활동가들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라지들의 정성이 담긴 마지막 저녁식사는 정말 맛났습니다. 저녁예불을 드린 후에는 지난 6일간의 수련을 하며 느끼고 알아차린 소감을 쓰고 지구별로 소감문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활동가들은 둘러앉아 각자가 느낀 6일을 나누며 웃음꽃과 눈물꽃을 피웠습니다.

이어서 전체가 다시 모여 아시아 태평양지구, 북미 서부지구, 북미 동부지구, 유럽지구에서 한 명씩 대표로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발표하는 활동가가 소감을 읽다가 그만 눈물이 왈칵 쏟으면, 나머지 도반들도 젖은 눈으로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스님 덕분에 한국의 여러 곳을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반겨주는 스님에게 감사하고, 이렇게 활동하는 도반들이 고마웠습니다.”

“새벽예불에 머리 하얀 노보살님이 청아한 목소리로 예불을 드렸습니다. 그 뒷모습이 너무 좋아서 눈물을 흘렀습니다. 맑은 보살님들의 얼굴이 그 자체로 법문이었습니다.”

“3년 전과 너무나 달라진 지구장님들의 모습을 보며 도대체 무엇이 저분들을 저렇게 바꾸었을까 싶었습니다. 저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곳에 머물다 보면 나도 어떻게든 성장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공양간에 가니 3년 내내 한 보살님이 한 해 동안 재운 식재료를 바리바리 싸오셔서 우리들의 공양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은데 힘들다 하면서도 3년 동안 봉사하는 그 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새로이 개편된 불교대학, 수행법회, 행복학교에 대한 안내를 들으며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습니다. 정토회는 대변화의 시기에 있습니다. 오기 싫다는 나를 설득해준 도반에게, 흔쾌히는 아니지만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이런 어리석은 나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주시는 스님, 법사님, 도반들께 정말 고맙습니다.”

“정토행자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도반이 들려주는 소감 또한 법문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해외활동가수련을 마무리할 시간이 왔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무엇보다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자신과 같이 타인 또한 소중히 여기는 붓다의 길을 가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이 길을 가도록 독려하였습니다. 5시간이 넘도록 법문을 하느라 스님의 목소리가 조금 쉬었습니다.

해외활동가 수련을 마치며

“이렇게 좋고 합당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조금 더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확신을 갖고 싶어도 안 가져진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그런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스님의 말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항상 자신의 삶을 찬찬히 살펴봐야 합니다.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 길은 누구나 다 가야 하는 길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또 우리 인류의 건강한 삶과 미래를 위해서도, 이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 우리 인류에게 재앙은 멀어지고 희망은 가까워집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긍지와 확신을 더 갖고 앞으로 활동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평가는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기준을 두니까 혼자 사는 것을 문제 삼고, 재물을 많이 모은 것에 기준을 두니까 재산 없이 사는 것을 문제 삼고, 많이 쓰는 것에 기준을 두니까 적게 쓰는 것이 하찮게 보이는 겁니다. 이렇게 남들에게 기준을 두고 내가 재물이 적고 지위가 낮다며 스스로를 하찮게 여길 것인지, 내 삶에 기준을 두고, 또 누가 봐도 합당한 것에 기준을 두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무소의 뿔처럼 홀로 당당히 가라’는 말씀이 나오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길을 가기를 권유드리고, 지난 일주일의 수련이 그런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제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정토회는 앞으로 10년, 20년, 30년, 50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활동이 시대의 흐름과 발맞추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 안에서 가르침에 어긋나는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어려움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느냐, 느리게 이루어지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달려있어요.

그러니 이 활동을 열심히 하면 더욱 좋겠지만, 아무리 못하더라도 떨어지지는 말고 붙어만 있으시라고 당부드립니다. 붙어만 있어도 20년, 30년이 지나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하는 말이 나올 거예요. (모두 웃음)

제가 여러분께 권유하고 싶은 것은 이 길에 확신을 갖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아무리 하기 싫더라도 떨어지지 말고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이런 말씀을 드리며 수련을 마치겠습니다.”

수련은 끝났지만, 일상은 다시 시작입니다. 활동가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내일은 9차 천일결사 일곱 번째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여덟 번째 백일기도에 입재하는 날입니다. 밤 10시가 넘어 회향식이 끝나고, 스님은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해외활동가들은 내일 입재식에서 대중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에 들 플래카드와 구호를 새벽까지 준비했습니다. 지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하하호호 웃으며 열정적으로 준비했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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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우리에게 번뇌가 생기는 이유는 대개 가능하지 않은 것을 원하거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
감사합니다.~~^^

2020-03-29 19:39:06

보리수

서로에게 잘 쓰이며 진행되는 수련. 해외활동가 수련도 서로서로 공덕을 쌓으며 감동적으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번뇌가 생기는 이유는 대개 가능하지 않은 것을 원하거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03-15 17:18:24

무지랭이

정토회가 온우주에 뿌리내리기를_()_

2019-03-15 13: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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