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3.24. 농사일, 공동체 나들이 삼일째
“마음의 봄을 맞이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공동체 대중과 함께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공동체 대중들은 아침 식사 후 곧바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비닐하우스와 밭으로 나누어 일을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정비를 맡은 조는 비닐하우스 앞에 도착해 함께 일나누기를 했습니다. 농사 준비와 주변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제 포크레인으로 땅을 뒤집어 놓았는데, 오늘은 괭이를 이용해 돌멩이를 걷어내고 조금 더 정교하게 땅을 정비했습니다. 비닐하우스 곳곳에 구멍 난 곳을 메우고, 비닐하우스 주위에 무성하게 난 잡초도 낫으로 베어냈습니다. 비닐하우스 앞에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스님이 삽으로 다듬었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각종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쓰다 남은 노끈, 논에 물을 댈 때 쓰는 고무관, 부직포, 비닐 등 재활용 가능한 것은 다시 사용할 수 있게 깔끔하게 정리해서 컨테이너 한 켠에 가지런히 두었습니다.

각종 퇴비 포대와 고무관, 농기계들로 뒤엉켜 있던 비닐하우스 앞은 조금씩 깨끗해져 갔습니다. 나무는 장작으로 쓸 수 있게 잘라서 묶었습니다. 잡풀은 한 곳에 모았습니다. 일하는 내내 먼지가 풀풀 날렸지만 웃음이 넘쳤습니다.

대중과 함께 일을 하던 스님은 잠시 논농사를 지을 곳도 둘러보고 왔습니다. 논에 물을 계속 대주어야 하는데 어디서 물을 끌어올지, 펌프를 사용하려면 전기는 어디서 가져올지 살펴보았습니다.

오전 11시가 되자 모든 정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잡풀과 쓰레기로 뒤덮였던 비닐하우스가 아주 깔끔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스님은 “모두 수고 많았어요” 하고 대중들을 격려했습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곡식을 심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식사를 마친 대중은 오후 1시부터 강당에 모여 스님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일정은 2박 3일이었지만 실제로 이틀이 채 안 되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울력도 하고, 산행도 하고, 식사도 했습니다. 공동체란 원래 열린 공간에서 24시간 같이 먹고, 일하고, 자면서 같이 살아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아직 한 공간에 살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보니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도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잘 모르기도 합니다.

갑자기 나들이 날짜를 변경해서 일부 법사님들이 참여를 못하거나 일부 실무자들이 늦게 참석해서 다 함께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함께 만나서 생활해보니 참 좋네요.

제일 최근에 우리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이 이번에 백일출가 마치고 온 사람들이에요? 손 들어보세요. 마이크 하나 줘보세요.(모두 웃음) 한 사람이 대표로 2박 3일 소감을 한번 말해보세요.”

공동체에 들어온 지 6개월 된 사람과 1년 된 사람 중 대표로 한 명씩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해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요. 다른 부서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고, 공동체에 산다는 것에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같이 지내보면서 뿌듯함도 느꼈습니다.”(모두 웃음)

“농사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보면서,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먹기는 너무 잘 먹었는데 머리에 쌓인 것이 적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스님은 행자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다음에는 먹는 것은 줄이고 법문을 많이 해야겠어요.”(모두 웃음)

이어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2년, 2년~3년, 3년~5년, 5년~10년, 10년~20년, 20년 이상 된 사람 중에서도 대표로 한 명씩 소감을 말해보았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혼자 쉬었는데 혼자 쉬니까 마음이 많이 불편했어요. 지금 26살인데 마흔까지만 공동체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모두 웃음)

“제가 처음에 왔을 때는 1년 이하는 이런 자리에 오지도 못했습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그 당시에 엄청 부러웠는데 이제 모두 함께 하게 돼서 기쁜 마음이고요.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남산을 몇 번 가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스님 설명을 제대로 들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특히 머리 없는 불상 얘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서울에서만 지내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을 봐서 좋았습니다. 비닐하우스 정리를 하면서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깨끗하게 정리해서 마음까지 깨끗해진 기분입니다. 새로 오신 분들과 함께 해서 좋았어요.”

사람들은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었고, 대중은 공감하며 웃거나 박수를 쳤습니다. 단위 별로 모든 소감을 들은 후 스님도 소감을 말하며 마무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마음밭에 쌓인 쓰레기

“여러분들이 이야기해 주신 소감 잘 들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 보니 잡초가 우거져서 많이 어지러웠습니다. 그런데 행자님 한 분이 비닐하우스 정리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마음 나누기를 했어요.

‘내 마음 밭을 제대로 안 가꾸었더니 마치 잡초가 어지럽게 자란 비닐하우스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닐하우스 정리를 하고 나니까 내 마음도 잘 관리하면 이렇게 깔끔하게 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상근자들이 요즘 많이 헤매었나 봐요.(모두 웃음) 이 일이 여러분들에게 자기 마음을 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좀 더 편리하게 농사를 짓기 위해 온갖 자재를 사와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그 안에 온갖 기계들을 설치했는데, 그것들이 폐자재가 되어 쌓이니까 쓰레기 더미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두 끄집어내니까 세 트럭이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것이 우리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인들도 문화생활이라는 미명 하에 편리를 추구하고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마음의 찌꺼기를 쌓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마치 현대적인 농법을 하면서 그것이 제대로 관리 안 될 때 엄청난 폐자재가 쌓이듯이 오늘날 우리도 편리를 좇는 삶을 살면서 이런 폐자재와 같은 마음의 찌꺼기를 우리 속에 쌓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냥 원시 농법으로 일할 때는 논밭을 몇 년 묵혀도 잡초가 우거진 것밖에 안 돼요. 그런데 오늘 청소하면서 나온 폐자재들은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모습이잖아요. 현대인들의 마음속 어지러움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리함과 욕구 충족을 쫓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우리의 삶을 자유롭고 복되게 하는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 큰 폐해를 가져오는 것 아닌가.’

오늘 청소를 하면서 저는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싹이 트기까지 기다려주세요

봄에 농사를 지어보면, 지금 씨앗을 심어도 싹이 터서 나오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 지금처럼 날씨가 조금 쌀쌀할 때는 열흘이 지나도 싹이 안 나오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한 보름이 지나야 겨우 싹이 나옵니다. 물론 날씨가 아주 따뜻하면 씨앗을 뿌리고 난 뒤 일주일 이내에 싹이 트지만, 대부분 첫 씨앗을 뿌린 후 보름이 지나야 싹이 터서 나옵니다. 긴 것은 20일이 넘어야 하고요. 그 후 한 뼘 정도 자라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이게 언제 다 자라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답답해져요.

그런데 7,8월이 넘어가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자라기 시작합니다. 고추도 옮겨 심어놓고 한 달이 지나도 그냥 그대로 있는 것 같은데, 7,8월이 되면 사람 키보다 더 자랍니다. 호박도 넝쿨이 어마어마하게 자라요.

수행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수행을 시작하면 어느 정도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업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기 습관을 알아차리는 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려요. 이것을 변화시키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3년 공부했는데’, ‘5년 공부했는데’, 10년 공부했는데’ 하다가 결국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 같으니까 대부분 공부를 그만둡니다. 처음 출가를 했을 때는 스님만 되면 도를 이룰 것 같았고, 강원만 졸업하면 도를 이룰 것 같았고, 선방에서 세 철만 나면 깨달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뜻대로 안 되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고, ‘까짓것 이럴 바에야 밖에 나가서 사는 게 낫겠다’, ‘세월만 낭비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결국 포기하게 돼요. 그래서 5년에서 10년 안에 속퇴하는 사람이 거의 70% 이상입니다. 이것은 마치 곡식을 심었는데 싹이 안 난다고 다시 땅을 갈아엎는 것과 같아요.

과학에서는 ‘임계점’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임계점을 넘어야 급속도로 자랍니다. 경제 성장에서는 비상한다고 표현하죠. 비행기도 활주로를 달리다가 일정 속도 이상이 되어야 날아오릅니다. 성냥불도 살살 켜면 만 번을 켜도 불이 안 붙지만 300도 이상 마찰력이 생기면 인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야 공부에도 속도가 붙습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그전에 공부를 포기해요.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씨앗을 심으면 땅속에 머무는 시간이 깁니다. 땅 위로 올라와도 어릴 때 자라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일단 자라게 되면, 그다음에는 특별히 손을 안 봐도 아주 빠른 속도로 쑥쑥 자랍니다.

그리고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쑥쑥 자란다고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뭔가 열매가 열리려면, 마무리 단계에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많은 고추와 오이가 달려도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게 되면 다 썩혀 버리게 돼요. 수행도 마무리가 잘 안 되고 넘쳐버리면, ‘내가 부처다’, ‘나는 깨달았다’ 이러면서 허황된 쪽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수행을 하면 마음이 늘 고요해야 되는데, 마무리를 제대로 못해서 흥분이 되거나 정신이상자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급속도로 성장한 종교들이 대부분이 나중에 분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욕망의 충족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급격하게 성장했다가 1,2대를 못 가서 주저앉게 됩니다.

부처님의 법이 좋은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을 살피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가 부지런히 일하더라도 그 가운데 마음은 늘 안정되어 있어야 해요. 둘째, 꾸준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농사를 지어보면 그런 교훈들을 얻을 수가 있어요. 혼자 앉아서 명상을 하는 것도 수행이지만, 농사일도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농사일도 우리의 마음 작용과 거의 동일한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따로 있고 마음공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일 속에서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면 일할 때 괴롭거나 지루하지 않아요. 그래서 차분하고 꾸준히 일하게 됩니다. 농사일을 하면서 그런 것도 앞으로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정토회가 마지막으로 개발하려는 게 선농일치(禪農一致)예요. 일을 하기 전에 마음 나누기를 하고, 일을 하면서 평정심을 가지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일이 끝나고 나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시 점검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앉아서 명상하는 것과 밭에서 일하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아요. 이것이 바로 ‘선농일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전에 농사짓고 오후에 참선하는 게 선농일치가 아니라, 농사짓고 일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 관리가 되는 것이 선농일치예요. 이것이 바로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명상을 오랫동안 하면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일상 속에서 자기 마음을 관리할 수 있어야 ‘평상심이 도’ 혹은 ‘일상이 곧 수행’이라고 하는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앞으로 연습해 나가야 합니다.

수행은 어떤 특정한 모양이나 형식이 아니에요. 잠을 자든 일어나든, 병이 나든 건강하든, 쉬든 일하든, 명상을 하든 노동을 하든, 늘 그 속에 수행이라고 하는 바탕이 안정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대상이나 방식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한가할 수도 있고, 바쁠 수도 있겠죠. 이런 공부를 해나가야 진정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과 문경으로 돌아가면 일상 속에서도 그런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마음이 들뜨거나 흥분될 때는 항상 자기를 봐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명이 함께 살 때 어떤 사람의 꼬라지가 보기 싫다면 정신질환일 가능성이 절반 정도 됩니다. 이 정도는 가능성이 반반입니다.(모두 웃음) 그런데 같은 부서에 있는 사람이 두 명이나 세 명 이상 보기 싫다는 정도면 거의 100퍼센트 정신질환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평가 기준이 그렇다는 말이에요. 아시겠어요?”

“...” (침묵)

“인정을 안 하나 봐요.(모두 웃음) 그렇게 자기 점검을 빨리 해야 합니다. 여러 명이 같이 있을 때 어떤 한 사람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건 분별심이에요. 그건 수행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보기 싫고, 저것도 보기 싫다’라고 할 정도가 되면 그건 분별심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질환에 속해요. 여러분들이 이런 기준을 딱 갖고 있으면 자기 치료가 굉장히 쉬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죠. ‘어떻게 내 주위에 있는 인간들은 다 이럴까?’ 자꾸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동시에 2~3명이 보기 싫다는 마음이 딱 일어나면 ‘어, 내가 지금 분별심을 넘어서 정신질환에 속하는 수준이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아니면 정진과 마음 관찰에 몰두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우울증이 있어도 자기 컨트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생각에 빠져버리죠. 자기 생각에 빠져서 시비를 하니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미쳐 날뛰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걸 오늘 꼭 명심하셔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태어나기를 키가 작도록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신체가 약한 사람도 있고,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죠. 그런 것처럼 정신적으로 차분한 사람도 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도 있고, 민감한 사람도 있고,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도 있고, 분열증이 있는 사람도 있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장애는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게 아닌 것처럼, 그 상태를 자기가 알고 인정하면 괜찮아요. 여러분들이 우울증이 있든, 감정 기복이 심하든, 흥분을 잘하든,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그걸 자기가 알아차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중요한 거죠.

몸이 약하거나 아프다고 해서 공동체에 못 사는 건 아니에요. 건강한 사람과 똑같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게 힘들어지는 거예요. 몸이 약하더라도 자기가 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맞춰서 조금 힘이 덜 드는 일을 하면 돼요. 다른 사람은 땅을 팔 때 자기는 풀을 뽑는다든지, 다른 사람이 바깥에서 힘쓰는 일을 할 때 자기는 안에서 청소를 한다든지, 이렇게 맞춰서 일하면 되거든요.

이것은 게으른 것과는 성격이 달라요. 자기를 잘 알면 회의를 할 때 자기 역량에 맞게 일을 하겠다고 건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가 있어서 부엌에서 일을 하겠습니다’라든지, ‘저는 이런 문제가 있어서 이번에는 이런 일을 좀 맡아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내놓고 얘기하면 함께 생활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이런 얘기를 내놓는 것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자기를 열등하게 생각 안 해야 편안하게 내놓을 수 있어요. 게으르거나 혹은 그 일을 하기 싫으면 그런 제안을 하기가 부담이 됩니다. 눈치가 보이니까요. 그런데 본인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처지가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일을 찾아 한다는 자세를 가지면, 몸이 약해도, 병이 있어도, 장애가 있어도, 심리가 불안해도, 우리는 함께 살 수 있고 서로 조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점검을 늘 해야 합니다. 자꾸 남을 탓하기만 하면 자기 점검을 못해요. 아니면 자꾸 억제하거나 자학하게 됩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존재예요. 자학할 필요가 없어요. 억지로 이를 악물고 감정을 억누를 필요도 없습니다.

‘아, 내가 지금 흥분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병이 발병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감정 기복이 심하구나’

이렇게 그냥 알아차릴 뿐이지,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그걸 당연시하지도 마세요.

‘아, 이런 상태구나. 이런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대중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을까?’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자기에게 긍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좋은 봄날에 정작 마음에는 봄이 안 오는 삶을 살지 말고, 이렇게 정진을 하셔서 계절의 봄과 함께 마음에도 봄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창밖에 봄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햇살 같은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공동체 대중들도 마음밭에 행복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며 입승 법사인 묘수 법사님이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올 봄을 아주 잘 맞이했네요. 앞으로 이게 우리의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직접 삶의 모습을 보고 따라 배울 수 있는 스승님이 계시다는 것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같이 숨쉬고 같이 밥먹는 그 자체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이 좋은 자리에 소임 덕분에 올 수 있었는데요. 함께 하지 못한 법사님들과 해외에 계신분들에게도 함께 공유해서 새봄을 다 같이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쓰레기 치운 것이 시작이니까요. 이제 밭에서 우리의 마음도 키워보면 좋겠습니다.”

사홍서원으로 회향식을 마친 후 모두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 위에 올라간 촬영자를 보고 한 사람이 "사진 찍는 사람이 더 멋있네"라고 하자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비닐하우스만 깨끗해진 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도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농사뿐만 아니라 마음밭을 잘 가꾸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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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일을 하기 전에 마음 나누기를 하고, 일을 하면서 평정심을 가지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일이 끝나고 나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시 점검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앉아서 명상하는 것과 밭에서 일하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아요. 이것이 바로 ‘선농일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2020-04-13 19:13:49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4-04 22:55:06

산나무

내 마음이 이렇구나 알아차리고 편안하게 내어놓는게 수행이다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2019-03-31 07: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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