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4.10 장수군 초청 강연, 즉문즉설 (5) 남원시
"부부 관계를 피하는 남편, 이혼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부터 종교인모임, 수행 법회, 장수군청 초청 강연, 남원시 즉문즉설 강연까지 서울에서 남원까지 장소를 이동하며 하루 종일 강연이 연달아 있었습니다.

아침 7시, 평화재단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모임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김명혁 목사님, 박종화 목사님, 김홍진 신부님, 박경조 성공회 주교님, 박남수 전 교령님, 김대선 교무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최근 남북 관계와 북한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종교인들은 남남갈등이 심해지는 분위기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구심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종교인들부터 국민들에게 신뢰를 회복하면서 통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하기로 하고, 그런 모임을 서서히 만들어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종교인모임을 마친 후 곧바로 수행 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전국 150여 개의 정토법당에서 생방송을 보기 위해 오전 10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정토불교대학에서 통일 수업에 영상 교재를 제작하는 목적과 전국 수행 법회 생방송을 함께 겸해서 ‘최근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1시간 동안 진행된 생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본 해결책으로 평화와 통일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오늘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표현하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존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첫째, 지진, 홍수, 산불 등 자연의 큰 변화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합니다. 둘째, 세월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사고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셋째, 범죄, 교통사고, 각종 사고 등 개개인의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을 ‘사회 안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큰 위협이 되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앞에 세 가지는 몇십 명, 몇 백 명, 몇 천 명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라면, 전쟁은 몇 만 명, 몇 십만 명, 심지어 몇 천만 명까지도 죽을 수 있는 매우 큰 문제입니다. 이렇게 전쟁이 없는 평화를 만드는 일을 ‘국가 안전’, 즉 '안보'라고 합니다.

전쟁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첫째, 전쟁 중에 사망자가 엄청나게 생겨나고, 둘째, 부상자가 속출하고, 셋째,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넷째, 전쟁 후에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런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엄청난 재화의 손실을 가져옵니다. 산업시설과 농경지가 모두 파괴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현재 전쟁의 위협이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삶의 질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잿더미로 변해버릴 수 있는 굉장히 불안정한 토대 위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작은 위협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데, 이렇게 큰 위협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첫발은 바로 전쟁이 없는 평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최대 과제는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종전선언을 하고, 종전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둘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완전한 통일이 언제 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형편 되는 대로 만들어가면 돼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국민의 행복도를 높이고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작은 기여를 하고자 모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관점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국민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국가를 정말 발전시키려면, 정부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우선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되 거기에 대해 찬반이 갈리는 국민의 여론을 폭넓게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정말로 남북문제를 풀고 국가를 발전시키려면 이런 목표의식이 분명한 정부가 필요합니다. 북한을 적대하는 정부도 안 되고,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하지 않은 채 자기 생각대로만 밀고 가는 정부도 안 돼요. 통일 추진 정부를 세워서 통일을 국가 발전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강력하게 추진해 가도록 해야 합니다. 거기에 도움이 된다면 일본하고도 손잡아야 하고, 거기에 도움이 안 된다면 일본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불사해야 해요.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런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들도 이런 관점을 갖고 지도자들에게 요구해야 해요.

정토회는 설립할 때부터 두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하나는 개개인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바른 법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1차 만일결사의 목표로 설정하고 정토회를 설립한 거예요. 역사적으로 올라가면 100년 전 용성조사님이 불교를 지성화, 생활화, 대중화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셨던 것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토행자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공부해서 각자가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는 수행을 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을 없애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로 나아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안정과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의 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정토회를 설립할 때 그런 취지로 설립했고 여러분도 거기에 동의를 해서 여기 온 게 아닙니까?(모두 웃음)

이건 설립 취지문에 딱 들어 있습니다. ‘이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은 여기 모여서 함께하자’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평화와 통일이 정토회 회원의 의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법문을 마치고 대중들이 명상을 하고 있는 사이 스님은 곧바로 정토회관을 나왔습니다. 오후 2시 30분부터 장수군에서 군수님과 미팅이 있어서 서둘러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며칠 전 강원도에 산불이 크게 난 후 이재민이 많이 발생했는데, 어떤 지원을 긴급히 하면 좋을지 JTS 사무국장과 통화를 계속했습니다.

“그냥 후원금을 1억만 내는 것은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이재민들이 지금 많이 어렵긴 하지만, 집이나 농기계가 불에 탄 것은 나중에서 정부에서 다 보상처리를 해주거든요. 보상처리가 안 되는 걸 JTS가 지원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실제로 도움이 되려면, 나무 심는 것을 봉사자들이 많이 가서 빠르게 해 주면 어떨까 싶어요. 정토회에서 대중들이 봉사를 많이 오도록 해서 1헥타르나 2헥타르를 한꺼번에 가서 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 봄이니까 나무를 심으면 좋은 시기잖아요. 이왕 심는 거 산림자원이 될 수 있게 수종도 괜찮은 것으로 선택하고요. 어제 비가 와서 불이 완전히 꺼졌으니까 강원도 지자체와 산림청 두 곳에 나무 심는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알아봐 주세요.”

강원도와 산림청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더 알아봐야겠지만, 정토회와 JTS가 나무 심기 지원을 신속히 해서 전국에서 많은 국민들이 함께 동참하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장수로 내려가는 길 휴게소에 잠시 들러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은 후 2시 30분에 가까스로 장수군 한누리전당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군수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최근 장수군의 현황이 어떤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군수님은 인구가 도시로 계속 빠져나가는 것이 고민이라며 만약 정토회 공동체가 장수로 이전해 온다면 터전을 마련하는데 적극 돕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200명 정도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 ‘리’ 하나를 배정하고 이장도 선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농촌에 농사 지을 사람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이 정말 큰 문제임을 군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장수군 한누리전당 280석은 빈자리 없이 꽉 채워져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스님은 이곳 장수군이 배출한 독립운동가인 백용성 조사님의 삶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중 남편과의 원만하지 못한 부부관계 때문에 이혼을 고민 중인 한 여성 분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부부 관계를 피하는 남편, 이혼해도 될까요?

“남편이 건강이 좀 안 좋아요. 처음엔 아무도 몰랐고, 저도 몇 년 살다가 알게 됐어요.”

“신체적 건강이 안 좋다는 거예요, 정신적 건강이 안 좋다는 거예요?”

“둘 다요. 신혼 때부터 남편이 계속 해외 출장을 다녀서 처음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남편과 대화가 안 되고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당연히 스킨십이나 잠자리도 안 하고요. 제가 아예 손도 못 대도록 스킵십을 거부하기도 하고요. 아기와도 정서적인 교감이 안 돼요. 결혼 2, 3년 차에 잠자리를 시도해도 잘 안 돼서 같이 병원을 가봤어요. 몸도 안 좋고, 상담을 해보니 어릴 때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못 받아서 그럴 수 있대요. 제가 마음을 비우려고 해도 계속 저만 도를 닦으려니 너무 힘들어요.”

“상황은 대충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요. 대화가 안 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부부관계를 안 가지려고 해요?”

“네. 처음엔 저한테 다가오지 못하는 게 저를 아껴주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제가 얘기를 해서 잠자리를 시도했는데 잘 안 돼서 병원을 갔어요. 병원에서 준 약을 먹고 관계를 가졌을 때 바로 아기가 생겼어요. 아기가 생긴 뒤론 다시 잠자리를 피하고요.”

“알았어요. ‘스님이 뭘 저런 걸 묻나’싶죠. 이런 건 스님한테 할 질문이 아닌데 처음 질문부터 내용이 고약하네요.”

“죄송해요.”(모두 웃음)

“치료를 하기 위한 문제니까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봅시다. 남편이 성기능 장애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부부관계를 안 가지려고 하는 거예요?”

“성기능 장애가 있어요. 결혼하고 2년 지나서 알았어요. 병원에 가보니 혈관에 문제가 있고 부정맥이 있어서 안 된대요. 호르몬 수치도 낮고요. 당시 돈으로 매월 2백만 원인가 3백만 원을 들여서 죽을 때까지 꾸준히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원인만 파악하고 돌아왔어요.”

“네. 질문자는 남편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남편은 첫째, 성기능에 장애가 있을 수 있어요. 성기능 장애가 있는 것은 나쁜 게 아니라 치료를 받으면 돼요. 비용이 들더라도 치료를 원하면 해야죠. 돈이 없거나 치료가 어렵다면 이 사람은 성적인 관계는 못 맺는 거예요. 두 번째, 성기능이 있더라도 남편이 무성애자라면 성관계를 갖기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해요. 그런 사람한테 계속 관계를 요구하면 상대가 괴로워하겠죠.

남편이 나쁜 사람이거나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남편이 성기능장애거나 무성애자일 수도 있죠. 그건 그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의학적으로 그럴 수 있어요. 이 세상은 항상 다수가 정상이고 소수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많죠.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특성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남편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자가 결정해야 해요. ‘나는 성적인 관계를 맺고 살고 싶다. 나는 승려도 아니고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는 입장이면 남편과 의논을 해야죠.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내가 수행자도 아니고,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살고 싶은데 당신이 성기능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당신과 함께 살기가 어렵다’ 이렇게 고백을 해야 해요. 외국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있을 경우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도록 하고 부부로 같이 사는 경우도 있어요.

아니면 질문자가 수녀나 비구니가 됐다고 생각하면 돼요. 평생 손도 못 만져보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질문자는 손이라도 만져보잖아요.(모두 웃음) 남편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래도 인연이 됐으니까 함께 살아야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이건 이혼이 ‘나쁘냐, 좋냐’는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남편은 장애가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겠느냐?’를 결정하는 거예요.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 이혼을 하고 나는 정상적인 사람과 살아야겠다’ 이렇게 결정해도 돼요. 그러면 합의해서 이혼을 해야겠죠. ‘남편에게 장애가 있지만 이것도 인연이다. 내가 비구니 됐다 생각하고 성적 쾌락은 포기하자. 아기도 있으니 함께 살아가자.’ 이렇게 결정해도 되고요. 질문자 스스로 결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정서적으로도 다가오려고 하질 않아요. 마음이 위축돼서 그런지 저에게 말을 잘 못하고 어려워해요.”

“장애가 있으니까 열등의식 때문에 그렇겠죠.”

“그렇더라고요.”

“그래요, 남편이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에 마음 표현을 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그건 엄마처럼 등 두드려주고 감싸줘서 심리적인 위축을 풀어줘야 해요. 그것도 치유예요. 의사가 해주든 질문자가 해주든 남편은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치유까지 해줘 가면서 살 게 뭐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같이 안 살아도 돼요.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환자더러 자꾸 정상인처럼 하라고 요구한다면 질문자가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 저렇게 해봤지만 잘 안 됐어요. 처음엔 치유가 될 줄 알고 저도 다가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잘 안 돼서 이혼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딸한테 미안하고 마음에 걸려서요.”

“딸에겐 나중에 솔직하게 얘기해야죠. ‘너희 아빠가 성기능에 장애가 있어서 같이 못 살았다. 미안하다’ 이렇게 얘기할 각오를 해야지, 숨기면 안 되죠.”(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남편 마음이 닫혀 있어서 잘 안 되더라고요.”

“신체에 장애가 있으니까 마음도 닫히기 쉬워요. 예를 들어 말을 유창하게 못 하면 남 앞에 가서 잘하지 못해도 자꾸 말하는 연습을 해야 말이 늡니다. 그런데 말을 못 한다고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걸 자꾸 피하면 점점 더 말을 못 하게 돼요.

질문자는 남편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조금 더 해보든지, 아니면 헤어지겠다는 결정을 내리세요. 나중에 딸이 왜 헤어졌냐고 물으면 솔직하게 말하면 돼요. 딸이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하면 ‘그래, 그 문제는 나도 인정을 한다’라고 딱 인정을 해야 해요. 질문자는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어요. 지금 그 권리를 희생해가면서까지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잖아요. ‘치유가 된다면 몰라도 안 된다면 못 살겠다’고 생각하면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요. 대신, 아이에게 ‘엄마의 이기심 때문에 네 아빠하고 같이 못 살았다’라고 솔직하게 말해야죠. 이기심으로 이혼을 결정하고는 성인군자처럼 말하면 안 돼요.”

“제 선택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왔어요.”

“네, 괜찮아요.”

질문자는 스님의 대답에 웃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할 거냐의 문제예요. 예를 들어서, 내가 돈을 빌렸다가 못 갚는다면 괜찮은 게 아니죠. 그러나 숨겨놓고 못 갚으면 문제지만, 입고 있는 속옷 한 장만 딱 남기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고 할 때는 못 갚아도 죄가 안 돼요. 그땐 돈을 빌렸던 사람들에게도 ‘돈이 없어서 못 갚았다, 죄송하다’ 이렇게 말을 해야 해요. 그런데 돈 빌려가서 안 갚았는데 본인은 좋은 집에 살거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빌려준 사람은 눈이 뒤집어지게 마련이에요.

질문자도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요. 그 권리를 추구할 건지, 다른 이유가 있으면 그걸 포기할 건지 자기가 결정하면 돼요. 예를 들어 스님도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집에 살 권리가 있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걸 포기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중요한 일이 있으면 잠을 안 자고 그 일을 하듯, 스님도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집이나 결혼 같은 걸 포기하는 거예요. 질문자도 어느 쪽이든 선택하면 돼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자기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고, 아이에게도 ‘엄마는 아빠를 위해서, 또는 너를 위해서 이걸 포기했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아니면 ‘엄마는 내 인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네가 좀 어려움을 겪은 것은 미안하다’ 이렇게 인정을 하든지요. 그건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해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스님은 청중석에도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

“자, 청중석에 한번 물어봅시다. 남편이 성기능에 장애가 있고,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마음으로 따뜻하게 지내면서 성기능만 장애라면 괜찮은데 마음도 멀어져서 젊은 여성이 같이 살기 어렵다. 그러니 이혼하는 게 합당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이번에는 ‘그래도 사람이 결혼을 했으니 보살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청중은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쪽에 훨씬 더 많이 손을 들었습니다.

“네, 이것은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살 거냐’가 문제예요. 이건 내가 결정할 문제예요. 제가 어릴 때 절에 들어왔는데 부모님이 반대했어요. 그러면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이렇게 부모님한테 큰소리쳐야 할까요,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할까요?”

“죄송합니다.”

청중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부모님이 ‘죄송한 줄 알면 가지 마라!’ 이러면 안 가야 해요, 그래도 가야 해요?”

“가야 해요.”

청중은 크게 대답을 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맞아요. 자기 인생이니까 자기가 결정해야 하지만 나를 키워준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죄송한 일이에요. 그러니 죄송하다고 해야지,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한다는데 당신이 뭔데요!’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두 개를 다 가지려고 해요. 하나를 취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해요. 질문자가 자기 인생에서 이혼을 선택한다고 남편에게 죄를 짓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미안하다고는 해야 해요. 남편에게 ‘미안해, 여보. 이런 욕망을 버리고 함께 살면 좋겠지만 내가 그런 수준은 안 된다’ 이렇게 고백을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엄마가 그런 수준이 안 된다’라고 솔직히 얘기해야 해요. 이건 나쁜 건 아니에요. 나에게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솔직하게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청중들은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결국은 자기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게 명확하지만 질문자가 겪었을 고뇌의 깊이가 느껴져서인지 유난히 박수소리가 컸습니다. 자리에 앉아서도 눈물을 계속 흘리던 질문자는 그 후 6명의 질문과 대답을 계속 경청해 들으면서 나중에는 편안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고, 스님은 막힘없이 즉문즉설을 이어갔습니다.

  •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많아서 잠도 잘 안 옵니다.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6살 딸과 23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시부모님께서 사이가 좋지 않아 10년째 따로 사시고, 시어머님이 남편에게 집착하는데 남편이 효자라 시어머니께 휘둘려 부부간 많이 싸웁니다. 현재 1년간 주말 부부를 하고 있는데 계속 주말 부부로 살아야 할까요?
  • 아들이 군대 말년휴가 때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 11개월째 식물인간 상태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아무 의식 없이 누워있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마음과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 정치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스님이 정치인들에게 강의를 좀 해서 의식이 깨어나게 해 줄 수 없습니까?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니 약속한 5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추첨을 통해 스님의 사인 책을 나눠준 후 스님은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이 곧바로 저녁 강연이 열리는 남원시 춘향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남원시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이미 툭툭 떨어진 꽃잎 사이로 연두색 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춘향이가 이도령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는 얼굴을 한 700여 명의 시민이 꽃길을 지나 강연장으로 속속 모였습니다.

춘향전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남원시는 용성조사님이 출가한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즉문즉설이 시작하기 전 용성스님의 독립운동사를 담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강연에는 남원시장 이환주 님 부부가 참석하였습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이 시장님은 “남원 교룡산성 덕밀암은 용성스님이 출가하신 곳이자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이 머문 곳입니다. 법륜스님이 직접 남원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올라 청중에게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위에도 사람이 있네요. 제가 못 쳐다보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2층에 앉은 청중에게도 인사하고 용성조사님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 내일은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지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2019.4.11) 즉 대한민국을 수립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런 대한민국의 뿌리는 이 지역 출신인 용성조사님이 세운 발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이곳 장수군 번암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는 남원군 번암면이었어요. 용성조사님은 번암면 죽림리에서 14살까지 서당에 다니면서 지내셨는데, 어느 날 꿈에서 부처님을 만났어요. 그 부처님이 너무 생생해서 마침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꿈을 이야기하니까 남원 교룡산성에 가면 꿈에 나온 절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부모님께 말도 안 하고 무턱대고 그 절을 찾아갔어요. 하루 종일 걸어서 교룡산성 덕밀암까지 갔어요. 법당 문을 열고 보니까 꿈에서 본 부처님이 딱 계셨어요. 너무 신기해하고 있는데 그 절의 스님이 ‘내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라고 했습니다. 그 스님도 꿈에 이 동자를 봤던 겁니다. 용성조사님은 그 스님의 지도로 덕밀암에서 3년 동안 행자생활을 했습니다. 덕밀암에 계셨던 그 스님이 바로 혜월 화상입니다.

혜월 화상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생과 인연이 깊은 분입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우리나라의 동쪽, 경주에서 도를 이루었어요. 그러나 깨달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자마자 혹세무민 한다고 체포가 되어 구금을 당합니다. 이 분이 깨달은 내용이 후천개벽 사상이에요. 후천개벽 사상을 쉽게 말하면 이겁니다.

‘지금까지는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었는데, 새로운 세상이 되면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 지금까지는 남자가 주인이었는데, 여자도 주인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사대부 양반이 주인이었는데, 앞으로는 상민도 주인이 될 수 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너무 당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말을 하면 반역죄에 해당했습니다. 최제우 선생은 ‘도는 동쪽에서 이루었지만 뜻은 서쪽에서 펼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서쪽으로 피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남원 덕밀암으로 피신해 옵니다. 혜월 화상과 최제우 선생은 그렇게 만나게 됩니다. 두 분은 뜻이 딱 맞았어요.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탄압하고 스님을 천민으로 전락시켰잖아요. 그래서 수운 최제우 선생은 덕밀암에 숨어 지내면서 동학의 많은 저술을 남기고 때가 돼서 다시 경주로 돌아갔습니다. 경주에서 최시형 선생에게 도를 전한 후 본인은 체포가 되어 순교를 하게 됩니다. 최제우 선생이 순교한 해인 1864년에 용성조사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최제우 선생이 체포된 후 덕밀암에 숨어 지냈던 것이 드러나서 혜월 화상은 체탈도첩, 즉 승적이 박탈되고 가택연금을 당합니다. 그래서 덕밀암의 본사인 실상사만 오가는 것이 허용된 상태로 혼자 지내게 됩니다. 이때 용성조사님이 14살 때 덕밀암을 찾아와 제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혜월 화상은 제자를 출가시킬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용성조사님을 해인사로 보내어 화월 화상 아래에서 출가를 하게 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그렇게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출가한 이후 용성조사님은 큰 깨달음을 얻어 위대한 스승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되었습니다. 그때 용성조사님은 칠불암 조실로 계셨는데, 한일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려고 전국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옛 관료 중에는 그런 뜻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백성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 굶어 죽고 있었어요. 나라의 녹을 받아먹고 살던 관리들은 나라를 되찾을 생각은 안 하고 전부 제 살 궁리만 하고, 오히려 착취를 당했던 백성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그걸 보면서 더 이상 이 나라는 임금이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6년 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고통받는 백성의 모습을 본 용성조사님은 1918년에 천도교의 손병희 선생을 찾아갑니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선생과 용성조사님의 스승인 혜월 화상이 서로 동지의 관계였는데, 동학의 3대 교주인 손병희 선생과 혜월 화상의 제자인 용성조사님이 다시 동지가 된 거예요. 용성조사님과 손병희 선생은 나이도 두 살 차이밖에 안 났습니다.

용성조사님은 손병희 선생에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본 참상을 이야기하고 이제 독립을 주장할 때가 됐지 않느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손병희 선생님이 이미 천도교에서 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의기투합을 해서 3.1 운동이 시작이 됐습니다.”

스님은 3.1 운동을 준비하고 전개했던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연호와 태극기를 어떻게 사용하게 됐는지도 알려주었습니다.

“3.1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백성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라를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나라를 되찾은 다음에는 누가 임금을 하냐’ 이런 의문이 들 것 아니겠어요. 백성이 경험해본 옛날 임금들을 다시 임금으로 세운다고 백성에게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또 고종은 죽고, 순종은 유명무실한 허수아비 왕이었으니까 그럼 누가 임금을 하느냐는 의문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용성조사님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대한제국(大韓帝國) 부흥이 아니라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수립해야 한다.’

대한제국에서 ‘제(帝)’ 자는 ‘황제(皇帝)’를 뜻하는 ‘제’ 자입니다. 임금이 주인인 나라가 ‘제국’이에요. 그런데 임금 없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사람들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용성조사님은 ‘이제는 백성이 주인인 나라가 돼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을 국호로 하도록 향도하셨습니다. 그래서 3.1 운동은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운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어요. 3월에 3.1 독립운동이 시작됐는데 곧이어 4월 11일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속하게 수립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전에 치밀하게 의논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들어설 때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 대한민국이 100년째 되는 해예요.

그리고 만세를 부를 때 무슨 깃발을 흔들 것인가 논란이 있었는데, 용성조사님은 태극기를 흔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상해 임시정부에서도 태극기를 국기로 정했습니다.

1948년에 분단이 되자, 반쪽이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역사는 100년입니다.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면서 대한민국 수립 100주년이기 때문에 기념행사를 크게 해야 할 텐데, 3.1 운동 100주년은 북미 정상회담에 가려져버렸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은 한미 정상회담에 가려져버렸습니다. 미국이 하필이면 두 기념일에 정상회담 날짜를 잡아서 3.1 운동 100주년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빛이 흐려져 버렸어요. 미국에서 그 날짜밖에 안 된다니까 우리나라 대통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오늘 미국으로 갔습니다.

올해 4월 11일은 그만큼 소중한 해의 소중한 날이에요. 그리고 100년 전 이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국기를 태극기로 정하도록 주도한 분이 바로 용성조사님입니다. 또 그분이 이곳 남원 출신입니다. 남원 시민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바로 오늘 남원에 강연 일정을 잡은 거예요.(모두 박수)

또 용성조사님이 독립운동을 할 수 있게 모든 재정을 뒷받침한 사람들이 운봉에 살았던 만석꾼 임씨 가문이에요. 그분들도 남원 사람이에요. 상해 임시정부 초기 재정도 여기서 마련했습니다. 만석의 재산이 다 날아갈 정도로 독립운동을 위해 재정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3.1 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이곳 남원에 와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랑스러우세요?”

“네!”

스님은 30분 동안 자세하고 열정적으로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청중은 스님과 함께 과거 대한민국의 100년의 역사 속으로 푹 빠졌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청중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낮은 목소리로 ‘아’ 하고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질문지함에 질문지가 많았습니다. 스님은 “질문지가 많네요. 무슨 고민이 이렇게 많아요?”하고 웃으며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 아들이 대인공포증으로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받으면서 약을 먹는데 남편이 약 먹는 걸 싫어해서 못 먹게 합니다.
  •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요?
  •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많이 해요. 말을 어떻게 간결하게 할 수 있을까요?
  • 3년 전 이혼하고 주말마다 어린 딸을 보러 가는데 전 부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 지은 죄가 많아서 저승사자 꿈을 꾼 거 같아요.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 24살 취업준비생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님께서 안정적인 공무원을 하라고 해서 갈등을 겪고 있어요.
  • 큰형님과 전 부인에게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 오빠가 게임을 많이 해서 걱정이에요. 아빠가 술을 많이 마셔서 걱정이에요.

대인공포증을 가진 아들의 치료 문제를 걱정하는 엄마부터 게임을 많이 하는 오빠와 술을 많이 마시는 아버지가 걱정인 소녀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오갔습니다. 스님은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하게 답변을 해주어 700여 명의 남원시민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크게 손뼉을 치면서 웃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안타까워하다 보니 어느새 9시가 금방 다가왔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의 소감을 하나하나 물어보았습니다.

“행복했어요.”
“명쾌해졌고, 감사합니다.”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졌고, 힘이 되었습니다.”

질문자들은 환한 얼굴로 답변했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에요.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세상이 그나마 유지되는 겁니다. 어떤 일이 좋은지 알 수 없어요. 이런 관점을 갖고 일상을 행복하게 사셨으면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책 사인회를 하며 스님은 남원시민들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늘 영상 속에서만 보던 스님을 직접 보았다며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행복학교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부산 남구에서 시민들과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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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미화없이 있는 그대로 나도 상대도
내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또한 책임 집니다
순간 상대탓 남탓 환경탓... 다시 넘어졌지만 한발한발
내딪어 봅니다^^ 오늘도 돌이키니 부끄러움에 눈을 질끔 감습니다 이런 나를 돌이킬수 있어 감사합니다 꾸벅

2019-04-18 22:06:25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4-16 23:20:19

이지은

그 시절 최제우선생의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는 센세이션한 주장이였습니다.
용성조사님과 법륜스님까지의 이런 활동들이 감사합니다.

2019-04-15 09: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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