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5.26. 봄 경전반 특강
“상대가 미운 이유는 내 기대가 높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 6시부터 모인 2019년 봄학기 경전반 학생들에게 법문을 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는 어제부터 1박 2일 동안 경전반 특강수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서울, 제주, 인천, 경기, 대구, 경북에서 320여 명의 학생들이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특강수련 이틀째로 그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스님에게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즉문즉설을 하기 전 먼저 어제 모둠 토론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제는 “금강경을 만나고 변화된 나의 모습”, “나에게 일과 수행의 통일이란?” 두 가지였습니다. 17개 조 중에 3개 조가 전체 학생들을 대표하여 발표를 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기본 교리만 대강 배우고 매일 매일 괴로웠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고, 가족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경전반에 입학하여 영상 속 젊은 스님의 재밌는 강의를 들으며 수행, 보시 봉사를 하니 자존감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이제 이틀에 한 번씩만 괴롭습니다.” (웃음)

“지금까지의 변화에 만족하지 않고 수행, 보시, 봉사하여 부처가 되겠습니다.” (박수)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을 회피하는 나에게 봉사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이제 괴로울 땐 내 마음을 알아차려봅니다. 상대 때문이 아니라 상대에게 바라는 내 마음 때문에 괴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중은 발표자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웃거나 박수를 쳤습니다.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에 발표자의 말에 더욱 크게 공감하는 듯 했습니다. 명상으로 들떴던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법문 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스님은 경전반 학생들의 변화를 기뻐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불교대학과 경전반에 다니면서 삶이 조금씩 변했다고 하니 다행이고 기쁜 일입니다.”

“발표 내용 중에 노력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노력을 해서 부처님처럼 자유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본래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입니다. 이를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본래 부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누에가 자기 입에서 만든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히듯이, 우리가 일으킨 생각과 마음 작용으로 굴레를 만들고 그 속에 갇혀서 괴로워하고 있어요. 여러분 자신도 소중한 존재이고, 여러분과 함께 사는 남편이나 아내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동시에 여러분 자신을 포함해서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존재란 대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고,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고 싶어 하고, 도움을 주기보다 도움을 받고 싶어 하고, 이해하기보다 이해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남편, 아내, 자식이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평범한 존재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주기를 바라니까 현실에서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불평불만이 많은 거예요. 자신에 대해서 불평불만이 생기면 자존감이 없어지고, 상대에 대해서 불평불만이 생기면 미움이 생깁니다. 이건 그 사람이 문제라서가 아니라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수준이 모자라서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 기대가 너무 높아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대부분 내 기대가 너무 높아서 기대에 미치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하게 설정해놓은 기대를 낮추면 주변사람들은 다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그 높은 기대를 평생 동안 놓지 못하면 자기와 같이 사는 아내나 남편을 미워하고, 자기가 낳아서 키운 자식을 미워하고,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미워하고, 자기와 함께 일하는 회사 직원이나 동료, 친구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의 기대는 많은 병폐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대부분이 지나치게 높이 설정해놓은 기대 때문에 발생해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부족해도 토끼보다 낫고 다람쥐보다 낫잖아요. 토끼와 다람쥐도 다 살아가는데, 내가 만약 자존감이 없고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존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너무 높이 설정하고 있는 것에서 오는 거예요. 여러분이 원하는 남편 또는 아내가 되려면 거의 부처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남편 또는 아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인물도 지금보다 잘 생겼고, 돈도 지금보다 많이 벌고, 성격도 지금보다 좋고, 지금보다 줏대도 있고, 지금보다 결단력도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보다 더 만족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가 채갑니다. 그런 남자나 그런 여자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냥 두겠어요?(모두 웃음)

만약 그보다 더 훌륭하면 어떨까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훌륭한 사람이라면,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모두 웃음)

부처님 같은 사람이면 도를 찾아서 출가해버릴 거예요. 예수님 같은 사람이면 훌륭한 일을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요. 반대로 지금 수준보다 못하면 어떨까요? 이번에는 여러분이 보다 못해 그 사람을 떠날 거예요.(모두 웃음)

그러니 지금 내가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는 건 서로 적당하다는 뜻입니다. 서로 적당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거예요. 상대방이 지금보다 더 잘 나기를 바라면 같이 살아지지가 않습니다. 지금과 달라지면 이쪽에서 떠나든지 저쪽에서 떠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지금의 내 남편, 지금의 내 아내가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적절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어쩌다가 재수 없이 만난 게 아니고, 나와 가장 맞는 천생연분의 사람이에요.(모두 웃음)

조금만 정신 차리고 보면 다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이상을 원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타인을 부족한 사람으로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의 쉬운 설명에 해가 뜬 것처럼 대중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생각과 마음, 이성과 감성, 철학과 종교의 차이를 설명해주며,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마음을 닦는 수행임을 강조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예불과 기도를 하고, 6시부터 법문을 듣다보니 깜빡깜빡 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법문 중간에 스님의 안내로 다함께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 잠시 자리에서 다 일어나세요. 기지개를 켜보겠습니다. 왼쪽으로 쭉. 오른쪽으로 쭉.”

오늘은 총 7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지금 스님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서 집중하고 있는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북한이 UN제재로 인해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굶주린 어린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북한에 옥수수 1만톤을 보내려고 모금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북한에 식량을 주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거라고 우려도 많습니다. 정부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한데요.

예전에 90년대에 북한이 무척 어려웠을 때도 스님께서 북한을 도우려고 하는데 잠수함 사건이 터져서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스님께서는 계속 북한을 지원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지원하신건가요?”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아주 심각한 식량난을 겪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이고, 제가 그 사실을 처음 알기 시작한 것은 1995년입니다.

1995년에 북한에서 아주 큰 홍수가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식량부족의 원인이 홍수로 인한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미 그전부터 북한의 경제상황이 많이 어려워졌고, 1994년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식량난을 겪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995년이었지만 제가 직접 상황을 목격한 것은 그 이듬해인 1996년이었습니다. 압록강 근처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한국에 돌아와서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한 일은 정보수집이었습니다. 저는 직접 상황을 목격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북한의 홍수 피해가 담겨있는 비디오와 피해 내용 등을 미국에서 수집하게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료를 보여주며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토회에서는 서초동에 부지를 구입하고 7층 건물을 짓는 불사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모금한 돈으로 땅을 구입한 상태였고, 건물 설계도까지 나와서 건물 불사 모금을 시작하려던 찰나였어요. 게다가 제 건강이 안 좋아서 정토회에서 6개월 병가를 강하게 권유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하겠다고 하니 정토회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우선 스님의 건강이 염려가 되었고, 또 정토회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이제 건물도 짓고 무언가 시작해보려고 하는 단계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강남 지역에 부지를 구입하는 데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고, 생활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 10명이 마음을 내서 불사 기부금을 내었어요. 그렇게 5억 원이 모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낸 돈을 10억까지 모아서 부지를 구입하게 되었어요. 그분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부지 구입과 모금이 모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도 북한동포 돕기를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불사가 막 진행되는 그 시점에 북한동포 돕기를 한다면 앞으로 정토회가 강남에 건물을 짓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어요. 스님을 비롯해서 정토회가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는지 아니까, 그분들이 마음을 내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 불사를 밀어붙이지 않으면 그런 기회가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처음에는 북한동포 돕기가 정토회의 사업으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스님의 건강을 가장 염려했고, 회원들은 스님의 건강과 함께 이제 막 불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동력을 잃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셔도 매일 일이 많으니까 갈 수가 없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더니 누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가 눈 감으시기 전에 너를 꼭 한 번 보고 싶어 하셨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누님도 ‘스님이 많이 바쁜 건 어머니도 아시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하니 그때 저희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무리 바쁘다 바쁘다 해도 내가 죽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 네가 바쁜 일은 오늘 못하면 내일 또 하면 되지만, 나는 한 번 죽으면 다시는 볼 수가 없지 않으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 마음도 좋지가 않았어요.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고 하자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 건물은 이번에 못 지으면 10년 후, 20년 후 기회가 될 때 다시 지으면 되지만, 북한 사람들은 한 번 죽으면 돌아오지 못하지 않느냐.’

정토회 회관을 짓는 것은 뒤로 미루고 사람 구하는 일부터 먼저 하자는 것이 저의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반대한 사람들도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니라 스님을 위한다고 반대를 한 거였어요. 정토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다 지켜보신 분들이니까요. 스님이 정말 어렵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일구어왔고 이제 그 씨앗이 막 트려고 하는데 여기서 멈춰버리면 불사가 어려워진다는 얘기였어요. 그분들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저는 사람을 구하는 게 먼저라는 입장이 확고했기 때문에 회의 중에 이렇게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람 구하는 일을 먼저 하지 않는 정토회라면 내가 탈퇴하겠다.’

저는 혼자서라도 모금을 해서 사람 구하는 일을 먼저 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정토회에서는 회의를 통해 스님의 입장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스님 혼자서 하는 것은 무리일 테니 실무자 두 명과 함께 북한동포 돕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33개의 불교단체를 모아서 제가 집행위원장을 하면서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져서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아주 안 좋을 때였습니다. 요즘 미사일에 대한 반대 여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회 전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반감이 거세었고, 마치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북한동포 돕기에 대한 저항도 아주 심해서 일을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제가 북한동포 돕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압록강에서 굶주리던 아이를 본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강릉 잠수함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잠수함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굶주린 아이의 배가 불러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굶주린 아이를 보고 시작한 일인데, 그 아이의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졌다는 이유로 그 일을 멈춘다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일을 계속 추진했습니다.

제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마침 사회적 저항이 거센 시점에 일을 계속하다 보니 외부에서는 저에 대해 조금 강경한 이미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굶주린 아이를 보고 시작한 일을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계속 추진한 것이기 때문에 이건 강경한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었어요. 일을 시작한 뒤 6개월 정도 지나니 북한의 식량난이 공론화되었고, 결국 정토회도 불사를 포기하고 북한동포 돕기에 전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모금만 해서는 북한동포 돕기가 어려우니 불사를 하기 위해 구입했던 땅을 팔아서 돕자’라고 했어요. 땅 구입을 위해 돈을 기부한 분들의 반대가 컸습니다. 그러다가 타협안을 찾게 되었는데, 땅을 팔아서 반은 북한동포 돕기에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부지가 조금 저렴한 서울 변두리에 회관을 건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땅을 팔기로 했는데, 계약금을 받는 날 아침에 IMF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계약금을 주기로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결국 땅을 파는 건 무산되고, 3년이 지나니까 세금이 나오게 된 거예요. 당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부지를 구입해도 3년 내에 건물을 짓지 않으면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세금이 1억이 넘었어요. 결국 모금을 조금 더 해서 계획했던 7층 건물은 못 지었지만 3층 건물을 짓기는 지었어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정토회관이 지어졌고, 북한동포 돕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북한의 모습은 90년대 중반처럼 낙엽이 떨어지듯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때의 모습이 겨울같았다면 지금은 초봄과 같아요. 아직 잎이 나진 않았지만 이제 꽃봉오리가 올라오려고 하듯 사회가 정비되어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사람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누가 봐도 식량난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겉으로 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만큼 새로운 지도자를 통해 사회가 많이 정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작년부터 경제 제재가 심해지면서 수출 산업이 거의 중지된 상태입니다. 석탄, 돌, 철광 수출도 모두 막히고, 봉제공장도 거의 멈춰있는 상태이다 보니 월급을 못 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식량을 지급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부 제한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큰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에요.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은 작년 봄부터 들려왔습니다. 공식적으로 요청을 해야 지원이 가능해지니까 공식적으로 요청을 하라고 알려줬는데, 정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요청되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런 상황은 북미 정상회담에 식량부족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회담이 끝나고 작년 가을이 되어서야 공식적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부터 식량지원이 가능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식량사정은 작년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식량난은 더욱더 심해집니다. 한 해가 지날수록 50만 톤 씩 더 부족해져요. 왜냐하면 감자가 주먹만 하게 커졌을 때 캐먹어야 하고, 옥수수가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 따먹어야 하는데, 배가 고프니까 조기 수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배가 고프니까 농사를 그만두고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그러니 수확량이 점점 줄어듭니다.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량지원을 서둘러서 농사를 계속 짓도록 해야 하고, 조기 수확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걸 지금 막으면 한 해만 지원해도 해결되지만, 식량난이 2~3년 이어지면 그다음에는 10만 톤이 아니라 100만 톤을 지원해도 해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사람이 죽는 건 막아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도적 지원에 찬성하는데, ‘북한을 더 어렵게 해서 항복하도록 해야 한다’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인도적 지원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중요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계속 인도적 지원을 계속 하고자 해요.

만약 북한이 사람이 많이 굶어 죽으면 항복하는 국가 시스템이라면 모르겠지만, 북한의 현재 시스템은 주민이 고통을 겪더라도 항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애꿎은 사람만 죽게 됩니다. 그들을 굶어 죽게 만드는 것이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에 이렇다 할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미 20년 전에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늦게 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도 손을 쓸 수 없었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정보를 미리 알았기 때문에 또다시 예전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는다면 그것은 양심에 어긋난 일입니다. 모르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저희가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아는 이상 최선을 다해 인명피해를 막아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면 한결 좋은데, 남북 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아직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도 경제 부분에서는 남한과의 긴요한 협력이 필요하지만, 정치 부분에서는 아직 민감합니다. 또 북한 내 강경세력은 식량지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아요. 남한에서도 보수 세력이 정치적으로 강경한 것처럼 북한 내부에도 그런 세력들이 있습니다. 현재 남한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할 용의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입장을 맞춰줘야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할 수 있는데 아직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면 6월 30일 이후에는 정토회 차원에서 추가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만약 그때까지도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후로도 정토회에서 몇 만 톤이라도 지원을 계속 해나가야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모금이 잘 안 들어오면, 건물을 팔아서라도 정토회는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현재 저는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북한은 춘궁기 보릿고개예요. 지금이 제일 어려울 때예요. 6월 30일까지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서 신속히 식량을 지원해야 해요. 그래야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려야한다는 스님의 간절한 목소리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금강경에서 배운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스님에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금강경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기 어려워요.
  • 경전반을 다니면서 불교대학 스텝 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불교대학 끝나 술이나 고기를 먹으며 뒷풀이를 해서 불편한 마음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 자기 긍정과 자기 합리화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 무주상 보시를 바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운전하다가 끼어드는 차를 끼워줬는데 나의 선행이 준법을 하는 내 뒤의 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되고, 네팔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초콜렛을 줬는데 충치를 생기게 한 건 아닌 지 걱정이 됐어요.
  • 왜 관세음보살만 독송하나요?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 전생이 있나요? 그리고 죽으면 아무것도 없나요?

다양한 질문을 통해서 금강경에서 배운 ‘상’이 무엇인지,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경전반 학생들이 오늘 들은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명상을 하고 있는 사이 스님은 법상에서 내려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중국에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까지 탔는데 북경에 폭풍이 와서 비행기가 결항됐습니다. 스님은 다시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 머물며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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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6-17 02:15:42

정지나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는것은 그저 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아주 평범한 행동일뿐이라는 스승님에 말씀
다시,살펴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6-06 22:45:29

임무진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 괴로운 나날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기대를 버리니 괴로움도 사라집니다

2019-06-04 22: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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