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5.29. INEB 깨달음의 장 안내, 즉문즉설(25) 구미
“나를 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INEB(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s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 1989년 창립된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해오고 있습니다. 스님은 INEB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년 6월 경 INEB에서는 정토회 방문단을 구성해 한국으로 보내는데, 스님은 해마다 이 분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인도, 부탄, 대만,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 등 동남아 불교국가에서 20명의 스님과 재가신자들이 정토회를 방문했습니다. 올해는 INEB 창립자인 슐락(Ajarn Sulak Sivaraksa) 박사님도 함께 방문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를 방문한 INEB 동남아시아 스님들에게 발우공양과 깨달음의 장을 안내하고, 저녁에는 구미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4시에 서울에서 문경으로 출발했습니다. 6시에 문경수련원에 도착해 슐락(Ajarn Sulak Sivaraksa) 박사님과 닥터요(Dr. Hsiang Chou Yo) 님에게 인사를 한 후 함께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유명하신 분인데 똑같이 대우해서 미안해요.”

“특별히 대우해주셨으면 공부할 게 없는데 똑같이 대우해주셔서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웃음)

이어서 발우공양에 함께 했습니다. 이틀째 만 배를 하고 있는 백일출가 37기 행자들과 상근자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깨달음의 장 바라지, 만 배 바라지, 농사 바라지 등 여러 봉사자 분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바라지하러 온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발우공양과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셨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에는 걸식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절 안에서 걸식하는 정신으로 먹는 것이 발우공양입니다. 그래서 제일 첫 구절은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입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명상원으로 내려와 INEB 스님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한국이 낯설 스님들에게 먼저 한국의 지리와 역사를 설명해주었습니다.

“한국에 오셨기 때문에 먼저 한국 지리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도에 보이는 이 곳이 한국입니다. 오른쪽이 일본, 왼쪽이 중국, 북쪽은 러시아입니다. 남쪽으로 타이완, 베트남, 라오스, 태국, 필리핀이 있습니다.

한국은 KOREA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입니다. 국호는 대한이고, 대한민국이란 왕이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뜻입니다. 인도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인디아라고 부르지만 자신들은 ‘바라트’라고 하고, 태국도 자신들은 ‘시암’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아요.

한국의 맨 처음 이름은 ‘한’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배달’, 세 번째가 ‘조선’, 네 번째가 ‘고구려’입니다. KOREA라는 이름은 고구려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스님은 대한민국의 뿌리에서부터 시작해 일제 식민지를 겪고 나라가 해방된 후 어떻게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는지까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강대국에 의한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깊이 공감을 하며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내년이면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은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가장 큰 이슈는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평화협정을 맺는 것입니다.”

스님은 지도를 보며 INEB 스님들이 앞으로 가볼 도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과는 다르게 생긴 한국의 승복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다 마치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혹시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동남아 스님들은 활발하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도 스님이 있나요?”
“남한 스님과 북한 스님의 교류가 있습니까?”
“남북 간에 평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중국의 리더십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거의 모든 나라를 자신의 헤게모니 안에 넣고 싶어 합니다.”
“한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지게 되면 가족들과 친척들도 갈라지게 됩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갈라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많이 생겼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궁금한 점에 대해 해소를 해주니 분위기가 한층 활기찼습니다.

“다른 질문이 더 있습니까?”

“한국에 불교가 어떻게 전래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가요?”

스님은 다시 지도를 보여주며 한국 불교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기원전 48년 인도 아유디아 왕국에서 가야로 불교가 처음 전해지고, 뒤이어 중국을 통해 고구려, 백제로 불교가 전해진 것부터 신라, 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가 될 정도로 불교가 꽃을 피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시대부터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 불교가 들어와 결혼한 스님들이 주도권을 가졌다고 하자 동남아 스님들은 혀를 차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해방 이후 결혼한 스님들을 몰아내려고 싸우느라 한국의 민주화에는 불교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내용까지 스님은 한국 불교의 역사와 한계에 대해 포장 없이 알려주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되는 과정에 불교가 제대로 역할을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주도권을 잃어버렸어요.”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설명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조계종과 태고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종교 때문에 정부가 탄압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INEB(국제참여불교 네트워크)를 창립한 슐락 박사님이 한마디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법륜 스님과 INEB 스님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까 우리가 참여 불교도로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저의 바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법륜 스님과 정토회가 하는 일들은 굉장히 독창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그 독창성을 배우러 왔습니다. 법륜 스님은 기독교인에게 불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하기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지금 남북한의 평화가 위중한 상황 속에서도 법륜 스님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중생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한국까지 와서 겉으로만 배울게 아니라 깊이 있게 배우고 가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괴로움에는 개인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괴로움도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괴로움과 사회적인 괴로움을 함께 극복해야만 합니다.”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제가 부탄에서 넌(Nun, 남방불교의 여성 출가수행자)들과 일을 할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부처님의 육 년 고행보다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감탄하며 합장했습니다. 질문한 비구니 스님은 웃으며 다시 질문했습니다.

“네. 그렇지만 부처님은 굉장히 특별하신 분이었고, 저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웃음)

“우리가 붓다를 늘 생각한다면 딱히 어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감옥 안이 부처님보다 먹는 게 나았어요. 잠자리도 부처님이 머무셨던 나무 아래보다는 감옥 안이 나았어요. 먹고 자고 입는 것을 부처님보다 훨씬 잘 누리고 사는데 뭘 그리 걱정할 게 있겠어요?

변화를 시도하면 항상 저항이 있습니다. 이건 이미 예약된 겁니다. 저항을 받지 않으려면 변화를 시도하지 말아야 하고, 변화를 일으키려면 저항은 필연적입니다.

한국의 인구분포도를 보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고, 불교 인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 신자를 상대로 하는 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없거나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정토회에 오는 청년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절에 한 번도 안 가봤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님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대만에서 온 박사님은 변화하는 부탄에 대해 걱정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부탄 친구로부터 최근 부탄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상황에 대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젊은 라마들이 사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락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젊은이들이 취업이 어려워서 힘들어하고 있고, 취업난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서방문화가 들어오면서 가치관의 변화 때문에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굉장히 순수한 나라였지만 지금 실제로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스님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서양 문화에 맞서서 우리 문화를 지킨다는 관점에서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저는 지금 그런 관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거냐’라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서양 문화를 막는 게 아니라 ‘서양 문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독교를 어떻게 막을 것이냐’가 아니라 ‘그들이 해결 못한 것을 내가 어떻게 도와줄 것이냐? 그래서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라는 관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돈이 우리를 타락시키기 때문에 돈을 만지지 않는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돈이 내 호주머니에 있더라도 나에게는 돈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하다’라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그걸 넘어서는 가치를 지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나 티벳, 부탄은 이런 자본주의 혹은 서양 문명의 바람이 한 번 지나가야 정말 그곳에 불교가 살아 있고 그걸 이겨낼 수 있는지 여부가 검증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보호받고 있어서 순수성이 유지되는 것이지, 그걸 극복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의 물결이 스쳐지나가도 거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과 삶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붓다의 젊은 시절은 요즘 말로 하면 자본주의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불교는 붓다가 버린 왕위를 어떻게 하면 붓다의 힘을 빌어서 얻을지 기도하는 관점에 서 있잖아요.(모두 웃음)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자본주의 혹은 소비주의를 버리는 출가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새로운 도전은 지금의 소비주의, 자본주의, 쾌락주의를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도록 어떻게 길을 안내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러면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서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너무 진지했습니다.”(모두 웃음)

진지했던 분위기가 웃음소리로 풀렸습니다. 15분간 휴식 한 다음 본격적으로 깨달음의 장 맛보기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정토회의 핵심 가치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저와 함께 정토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생을 지도하는 법사였습니다. 한국은 1987년에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 개헌을 이루었고, 1988년에는 선거에 의해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할 순 없지만,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지도하던 대학생들과 함께 3년 동안 ‘미래’를 주제로 토론했습니다.

‘이제 민주화 운동을 넘어서 어떤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정말 미래의 인류에게 무엇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자.’

토론을 해보니 지구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환경 문제였습니다. 세계적으로는 빈곤퇴치 문제가, 그리고 평화 문제가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당시 북유럽 국가는 이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이었어요. 그런데 그 네 나라가 당시에 자살률이 1,2,3,4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걸 보면 사회적인 조건만으로 인간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붓다가 제시한 수행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희들은 ‘환경’, ‘빈곤퇴치’, ‘평화’, ‘수행’을 정토회의 지향으로 삼았습니다.

정토회는 주로 수행을 중점적으로 지도합니다. 그러나 자기 변화를 가져오는 수행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 운동은 에코붓다, 빈곤퇴치를 위한 구호활동은 JTS(join together society), 평화운동은 평화재단, 인권과 난민 지원은 좋은 벗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지금도 실험 중입니다. 모든 것을 끊임없이 새롭게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중입니다.

괴로움을 해결하는 수행은 불교에 가장 노하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가야 할 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종교라는 울타리에 갇혀있는 것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문경에서 천막을 치고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개발하게 된 프로그램 중에 첫 번째가 ‘깨달음의 장’입니다.

깨달음의 장은 종교가 있든 없든, 불교든 아니든 상관이 없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저절로 편안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을 경험하면 붓다의 가르침이 저절로 이해됩니다.”

이어서 약 한 시간 동안 스님의 안내로 깨달음의 장을 체험해보았습니다. 조금 더 진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오후불식을 하는 남방불교의 스님들을 위해 12시 전에 프로그램을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는 문경 수련원의 상근자들과 바라지 오신 분들이 정성 들여 준비해주었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동남아 스님들은 김치 조각 하나로 그릇을 깨끗이 닦아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스님이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점심 먹고 나서 휴식 시간에 방에서 잠시 쉴래요? 경치 좋은 계곡을 산책할래요?”

모두들 계곡을 산책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다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설거지 안내를 했습니다.

“저희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일절 남기지 않는 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릇을 깨끗이 닦아 먹습니다. 학습하러 왔으니까 실습을 한 번 해보셔야죠. 여기 대중들은 모두 자기 그릇은 자기가 씻습니다. 3단계로 나누어서 설거지를 해요. 흐르는 물에 씻는 것에 비해 물을 훨씬 절약할 수 있어요. 스님들은 그동안 받아먹기만 했는데, 오늘은 직접 다 설거지를 해보시면 좋겠어요.”(웃음)

스님의 안내에 따라 동남아 스님들도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차례대로 설거지를 했습니다.

물을 절약할 수 있고, 세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적인 설거지 방법에 대해 모두들 신기해했습니다. 오후에는 문경 수련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선유동계곡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이곳이 선유동계곡이에요. 신선이 노닐 만큼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뜻이에요”

깨끗한 물과 바위 암반, 푸르른 나무들을 보자 동남아 스님들은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양말과 신을 벗고 곧바로 물속에 발을 담그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넓은 바위에 돗자리 하나 깔고 누워 있으면 정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정토연수원의 가장 큰 특징인 재활용 가구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이곳은 얼마 전 개원한 정토연수원입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자원봉사를 와서 전부 리모델링을 했어요. 새 물건은 하나도 사지 않고, 버리는 물건을 전부 주워와서 시설을 갖추었어요. 의자를 보시면 각양각색이에요. 집이나 회사에서 쓰지 않는 가구들을 다 모았어요. 굳이 똑같은 모양으로 꾸밀 필요는 없잖아요. 각기 다양한 의자와 책상을 배치해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에요.”

자원봉사로 리모델링을 했고, 버려진 물건을 주워 와서 건물 안에 가구를 모두 배치했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워했습니다.

다시 문경수련원으로 돌아온 INEB 방문단은 오후부터 사회활동 부서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JTS, 평화재단, 에코붓다, 좋은 벗들, 행자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활동 소개가 끝나자 스님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슐락박사님과 법륜스님의 사회적 실천을 존경하지만 사회구조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한반도 평화 관련 운동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대만과 중국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현대 사회에서 종교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중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대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종교지도자의 역할은?

“첫째, 종교지도자는 일단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때 그것을 치유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본분입니다.

둘째, 저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 고통받는 것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도 종교지도자들이 힘을 모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붓다가 가신 길입니다. 붓다 당시에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면 기득권자의 엄청난 저항을 받아야 했습니다.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할 때도 엄청난 저항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여자는 스스로 자기 이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딸, 결혼하면 남편의 아내,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엄마로 살았습니다. 이걸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불렀습니다. 평생 세 번 주인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비구니가 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 이름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구니 제도는 붓다가 돌아가신 후 500년도 지나지 않아서 없어져 버린 거예요.

또한 붓다가 전쟁을 막은 사례도 여러 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라는 문제를 더 깊이 연구하고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요약하자면 종교지도자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치유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사회적인 모순을 시정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오후 4시 30분이 넘어서야 INEB 방문 첫째 날 스님과의 시간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의 쉽고 자상한 설명에 모두들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저녁에는 구미 금오공과대학 대강당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로비 한 켠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도록 북한에 옥수수 1만 톤을 보내는 캠페인이 한 창이었습니다.

구미시민들은 동남아 스님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동남아에서 온 INEB 스님들을 잠깐 소개한 후 곧바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질문이 많으니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시작할게요.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을 아주 솔직하게 물어보면 됩니다.”

INEB 스님들은 통역으로 법문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총 11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엄마가 원망스럽다는 질문자와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를 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스님, 신도 실수를 할 수 있을까요? 저희 엄마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저를 지우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 저를 못 지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외갓집에 맡기고 서울로 돈을 벌러 갔어요. 제 나이가 육십인데 저는 아직도 엄마라는 이름이 낯섭니다. 아버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요….(중략)”

“그래요. 사정은 알겠는데 이러다 밤새겠어요.”

질문자는 계속 울먹이며 말을 했습니다.

“엄마한테 세 번을 버림받았습니다.”

“그건 버림받았다고 할 게 없어요. 신의 실수도 아니고요. 그냥 엄마, 아빠가 만나서 애를 낳았고, 엄마는 살기가 어려워서 할머니한테 나를 맡겨놓고 갔을 뿐이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엄마가 정말 하지 말아야 하는 재혼을 했습니다.”

“엄마가 재혼하는데 왜 질문자가 하지 말라고 해요? 질문자 하고는 아무 관계없어요.”

“아뇨, 하지 말아야 할 상대였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상대라는 건 없다니까요.”

“있습니다, 스님!”

“그렇게 질문자가 똑똑하면 저한테 묻지 말고 질문자 마음대로 하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 스님.”

“무엇이 힘든가요?”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오지만 저는 아파 죽겠어요. 이게 너무 힘들어요.”

“죽겠다 싶을 정도로 아픈데도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까 별 이상이 없다고 하면, ‘아, 잘됐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아뇨, 죽고 싶어요.”

“아프지만 그래도 살만하다는 뜻이에요. 검사 결과 병이 있다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건 그러네요.”(모두 웃음)

“이제 겨우 말귀를 알아듣네요.”

“저는 여기 오면서 스님한테 야단맞을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돈도 안 받고 야단쳐주겠어요?(모두 웃음) 어떻게 태어났든 그건 죄의 과보가 아닙니다.”

“그런데 3세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스님께서 늘 말씀하셨잖아요.”

“엄마가 키울 수 있으면 키우되 못 키우면 어쩔 수 없죠. 엄마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키우겠어요?”

“아뇨, 저희 엄마는 살아있었잖아요. 저는 엄마한테 너무 구박을 받았습니다.”

“3세까지는 엄마가 아기를 키워야 한다는 말은 질문자가 아기를 키우는 사람 입장일 때 그렇게 하라는 말이에요. 저렇게 꼭 법문을 거꾸로 듣고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어요.(모두 웃음)

나를 낳아서 고아원에 갖다주었든, 어떻게 했든, 부모는 원망할 대상이 아니에요. 다른 법문을 들어보세요. 부모한테는 무조건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라고 법문을 했잖아요. 내가 애를 키울 때는 가능하면 3세까지 키우라는 것이고, 내가 부모를 대할 때는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저는 법문을 했어요. 저렇게 거꾸로 듣는 걸 경상도 사투리로 ‘디비 쫀다’라고 해요. 저렇게 디비 쪼면 어떡해요.”(모두 웃음)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엄마가 지금 연세가 84세인데 자꾸 저한테 죽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죽든지 말든지 질문자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저랑 같이 죽자고 합니다.”

“같이 죽자고 하면 엄마 혼자 죽으라고 하세요. ‘나는 좀 더 살고 싶다. 죽고 싶으면 혼자 죽으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죠.”(모두 웃음)

“엄마가 그런 말을 여러 번 하니까 너무 안타까워서요.”

“괜찮아요. 방금 전에는 나를 버리고 갔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왜 또 안타까워해요? 그럴 때는 박수 치면서 ‘고소하다. 천벌이다! 어린 나를 버리고 갔으니 늙어서 좋은 결과가 있겠나? 인과가 딱 맞네!’ 이렇게 생각해야죠.”(모두 웃음)

“그런데 스님, 엄마가 저부터 죽으라고 합니다.”

“죽으라고 하면 ‘누구 좋으라고 죽노?’ 이러면 돼요. 뭐 별 거 아닌 거 갖고 그래요. 엄마가 그냥 하는 소리예요. 그럴 때는 ‘엄마가 그냥 하는 소리구나’ 하세요.”

“너 죽는 거 보고 나도 따라 죽겠다는 말에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너 죽는 거 보고 따라 죽겠다는 말은 죽기 싫다는 말이네요. 결국은 딸이 안 죽을 거잖아요. 딸 죽는 거 보고 죽겠다는 말은 딸이 안 죽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도 오래 살겠다는 얘기예요. 그 할머니, 앞으로 30년은 더 살겠네요.”(모두 웃음)

“안돼요, 안됩니다. 저는 어떡해요?”

“어떡하긴요, 그냥 살면 되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는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스님.”

“그 정도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항상 이런 마음으로 살면 돼요.

‘아이고,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았네!’

질문자가 태어난 것도 죄가 아니고, 엄마가 할머니 집에 맡긴 것도 엄마의 죄가 아니에요. 질문자가 할머니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질문자의 정신적 엄마는 할머니예요. 육체적으로나 이름으로는 할머니지만 마음의 엄마는 할머니가 질문자의 엄마라는 말이에요. 질문자에게 생모라는 육체적 엄마는 엄마같이 안 느껴지는 거예요. 낳은 자가 아니라 기른 자가 엄마거든요. 애를 낳자마자 어디 딱 입양시켜버리면 입양해서 키우는 엄마는 양모가 아니라 그냥 친모예요. 생물학적으로는 양모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친모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엄마가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엄마가 좀 늙었을 뿐이에요. 할머니가 엄마이거든요. 엄마가 좀 늙었을 뿐이지, 엄마가 없는 게 아니에요.(모두 웃음)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엄마 없는 사람이 없어요. 고아원에서 자랐다면 그 고아원에서 날 키운 사람이 엄마예요. 유모가 키우면 유모가 엄마예요. 정신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예요. 육체적으로도 누구든지 다 생모가 있죠. 생물학적인 생모가 있고, 누구한테 키워지든 키워지니까 누구든지 다 정신적인 엄마가 있는 거예요. 낳은 사람과 기른 사람이 일치 안 할 수는 있겠죠. 다수가 일치하고 소수가 일치 안 하다 보니까 일치하지 않는 게 뭔가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앞으로는 육체적인 엄마는 거의 없어지고 인공자궁이 나옵니다. 벌써 인큐베이터가 인공자궁 역할을 거의 하고 있거든요. 앞으로는 애를 낳기 위해 힘들게 여자 남자가 껴안고 이런 거 안 해도 돼요.(모두 웃음)

정자 추출하고 난자 추출해서 인공수정시킨 뒤 인공자궁에 넣어놨다가 몇 개월 후에 찾아가면 아이가 딱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엄마는 양모밖에 없어요. 정자와 난자는 내 걸 갖고 해도, 남의 걸 갖고 해도 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시대가 곧 도래할 거예요. 과학적으로는 이미 거의 다 기술 개발이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건 하등 중요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스님, 그래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저는 왜 살아야 하나요?”

“왜 살아야 하나를 자꾸 생각하면 결국 자살로 가는 거예요. 사는 데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없는데 이유를 찾으려니 ‘이유가 없네? 그러면 죽어야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은 왜 살까?’ 이런 생각이 들면 그건 죽는 출발점에 한 발을 올려놓은 거예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져야 ‘괴롭게 살까, 행복하게 살까? 행복하게 사는 게 낫겠네’ 이런 답이 나오죠. 사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네, 맞습니다.”

“그냥 정자와 난자를 딱 붙이면 생명이 태어나는 거지, 거기에 이유가 있어서 태어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니 전생이니 하는 건 아무 관계없어요. 그런 건 그냥 옛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 거지, 우리가 사는 데는 이유가 없어요. 어차피 사는데 어떻게 살면 좋겠냐? 그건 자기 선택이에요.”

“스님,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엄마한테서 전화를 받으면 가슴이 뛰고 제가 잠을 못 잡니다. 온 전신이 벌벌 떨리고요.”

“그러면 전화 안 받으면 되죠.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그러면 좀 미안해서요.”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요. 날 낳아서 버렸는데 뭐가 미안해요? 미워할 일도 아니지만 미안해할 일도 아니라는 말이에요. 미워도 하지 말고 미안해하지도 마세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질문자의 밝아진 목소리에 청중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를 미워하면서 또 부모를 걱정해요. 부모도 자식을 미워하면서 또 자식을 걱정합니다. 미워할 이유도 없고, 걱정할 이유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렇게 디비 쪼면서 살아요.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자기 알아서 살도록 놔두면 돼요. 그러면 나도 자유로워지고 자식도 자유로워집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간섭을 하면, 부모는 자식이 서른 살, 마흔 살 되도록 무거운 짐을 죽을 때까지 져야 하고, 자식은 서른 살, 마흔 살이 됐는데도 부모의 간섭과 속박 속에서 살아야 해요.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거예요. 이게 지금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건 동물도 안 하는 짓이에요.

그러니 그렇게 바보 같이 살지 마세요. 어떻게 태어났든 태어난 것은 죄의 과보가 아니에요. 어떻게 자랐든 자라는 것은 죄의 과보가 아닙니다. 신체장애가 되든, 동성애가 되든, 지체 부자유가 되든, 그 무엇도 죄의 과보가 아닙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고, 다수와 조금 다를 뿐이에요. 그냥 다를 뿐이지, 열등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어요.

‘모든 존재는 다 존귀한 존재다’(모두 박수)

그게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다들 자기가 소중한 줄 알고 사셔야 해요.”

“예!”(모두 크게 대답)

“아이를 낳았는데 지체부자유아라고 해도 괴로워할 이유가 없어요. 그런 엄마도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남도 돌보는데 내 새끼를 왜 못 돌보겠나’ 이런 마음으로 직접 아이를 돌봐도 되고, ‘이 경우엔 내가 돌보는 것보다는 전문가가 돌보는 게 낫겠다’ 하면 전문가한테 맡겨도 돼요.

그런데 우리는 환자가 생기거나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가정 전체가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보장제도를 갖춰야 하는 거예요. 이런 경우에는 사회가 책임을 져줘야 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예요. 누구나 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을 당할 가능성이 있으니 그럴 때는 우리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자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때요? 나한테 그런 일이 생겨서 남의 도움을 받는 게 낫겠어요,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더라도 그런 일이 안 생기는 게 낫겠어요?”

“안 생기는 거요.”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더라도 나에게 그런 일이 안 생기는 게 낫겠죠. ‘우리 집 일도 아닌데 내가 그 돈을 왜 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런 문제가 발생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그러려면 서로 도와야 해요. 여러분이 이런 관점을 갖고 사물을 보셔야 합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이가 고집이 너무 세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릅니다.
  • 대학원 졸업논문을 쓰는데 자괴감이 들어요. 스님은 공부하다 막힐 때 어떻게 하십니까?
  • 시댁과 친정 식구들과 인연을 끊은 지 2년이 됐는데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해요. 죽어서 죄가 될까요?
  • 나를 때린 남편과 이혼하고 싶은데 두려워요.
  • 몸이 약한 큰 아들에게 남편이 간 이식을 해줬는데 음식도 가리지 않고, 운동도 안 합니다.
  • 추어탕 장사를 하고 있는데, 살생을 많이 해서 메뉴를 바꿔야 할까요?
  • 나이가 드니 일이 부담스럽고 자신이 없어져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요. 재택근무를 해보니 게으른 자신에게 실망스러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낙태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예전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는데, 요즘은 의욕도 없고,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시댁에 살면서 시어머니와 큰형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첫 아이는 유산하고 둘째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남편과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어떤 기도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한 분은 강연을 듣다 보니 질문하려고 했던 고민이 해결되어 버렸다며 감사 인사만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마이크를 잡거나 남 앞에 서면 굉장히 떨려서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질문을 듣다 보니 제 질문은 스스로 해결하면 될 것 같습니다.(모두 웃음) 저도 불법을 만나기 전에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질문하신 분들이 꼭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처럼 정토회에서 불교 공부하셔서 함께 가벼워지시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정토회뿐만 아니라 행복학교도 동네 가까운 곳에 있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질문자들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자 스님은 한마디 더 덧붙이고 강연을 마쳤습니다.

“소감 중에 ‘노력을 하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 고뇌가 조금 덜 떨어진 사람들이에요. ‘지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관점이 딱 서야 인생이 바로 행복해집니다. 노력하기는 뭘 해요? 자기 꼬라지를 알고 사셔야죠.(모두 웃음)

‘아이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관점을 이렇게 딱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인생은 노력할만한 가치가 없어요. 토끼도 노력하면서 살지 않고 그냥 살잖아요. 다람쥐가 노력하면서 살지 않아요. 배추벌레도 노력하면서 살지 않고 그냥 살아요. 그런 것처럼 그냥 살면 되는 거예요. 괜히 노력하니 하면서 힘들게 살지 말고 그냥 사세요.(모두 웃음)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뛰어노는 자연을 보면 아무도 힘들게 사는 존재는 없어요. 여러분이 얼마나 힘들게 살면 나는 새가 부럽고 뛰어노는 사슴이 부럽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다음 생에 짐승 되려고요?(모두 웃음)

내가 아무리 재능이 없고 뭐가 없어도 짐승보다는 나아요. 짐승도 사는데 왜 내가 못 살겠어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좀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은 결혼해서 실패했니 어쩌니 저쩌니 하지만 어쨌든 결혼을 한 번 해봤잖아요. 결혼 못 해본 스님도 사는데 그게 뭐 문제예요?(모두 웃음)

결혼 생활하다가 안 돼서 이혼해도 본전이잖아요. 그래도 저보다는 낫잖아요. 재혼을 했다면 스님한테 이래야 해요. ‘스님은 한 번도 못 해봤죠? 나는 두 번 해봤어요!’ 이렇게 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해요.(모두 웃음)

결혼 두 번 한 게 무슨 흉이라고 그렇게 기가 죽어요? 남편이 죽은 게 무슨 흉이에요? 자기가 명을 다해서 죽었는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좋죠. 결혼 한 번 더 해도 되잖아요.(모두 웃음)

그러니 그렇게 별것 아닌 일로 난리 피우지 마세요. 알았죠? 다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예!”(모두 박수)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INEB 스님들은 스님보다 1시간 일찍 강연장에서 나가 두북 수련원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책 사인회를 하며 강연장을 찾아온 시민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대부분 유튜브를 통해 즉문즉설을 잘 보고 있다며 인생이 행복해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스님에게 전했습니다.

구미를 출발한 스님은 밤 10시 30분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도 하루가 참 길었습니다. 내일은 INEB 스님들과 함께 불국사를 둘러보고, 비구니 사찰인 운문사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울산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립니다.

전체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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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연준

감사합니다
어떻게 살것인가 라고 생각하지 왜 살지?라고 생각안하게되니 다행입니다
난 어떤삶을 살까?
나를 위하고 남을위하는 연기적세계관으로 보겠습니다

2019-12-08 15:48:57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6-26 00:27:38

정지나

오늘도 여러 맘이 생겼다 사라지고있는 나를 살펴봅니다
내가 짓고 내가 괴롭고...어리석음!!! 감사합니다 꾸벅^^

2019-06-10 15: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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