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7.8. 발우공양,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
"즉문즉설을 많이 본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니에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서울 공동체 상주대중과 함께 발우공양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회 기획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정토회의 10차 천일결사 사업방향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새벽 4시,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량석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집니다. 차가 막히는 출근 시간을 피하기 위해 4시 15분에 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에서 단잠을 잔 스님은 6시 15분에 서울 정토회관 앞마당에 도착했습니다.

“해외에서 오는 날 대중들에게 인사를 못했어요. 오늘이라도 인사를 해야지.”

스님은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하는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원단일체악 원수일체선 원공제중생 동성무상도
願斷一切惡 願修一切善 願共諸衆生 同成無上道
이 음식을 먹고 모든 악을 끊고 모든 선은 닦으며
일체 중생과 더불어 위없는 불도를 이루기를 원하옵니다.

우렁찬 게송을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발우에 밥, 국, 찬, 청수를 소박하게 담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식사를 마쳤습니다. 대중은 먼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대중대표가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하자 스님은 해외 강연을 잘 마치고 왔다고 인사를 하면서 공동체에 살고 있는 대중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삶이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느냐는 문제는 유튜브 즉문즉설 채널을 통해서 국민들의 관심도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이제 대중이 그 내용을 경험하고 부단히 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많이 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깨달음의 장’에 참여하거나,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거나, 아침에 매일 정진을 하면서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즉문즉설 동영상이 광범위한 대중의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지식이 아닌 ‘수행’이 개인들의 삶 속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이 수행을 하도록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정토불교대학과 행복학교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이뤄나가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수행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호응이 높아졌기 때문에 공동체에 들어와서 수행하는 여러분들은 더욱더 열심히 정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은 3년을 살든 5년을 살든 일단 여기 사는 동안은 출가수행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볼 때는 다 부족하고 내 문제도 해결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존재이지만, 바깥의 대중이 우리를 볼 때는 모범적인 사람들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실망할 수가 있어요.

다른 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이 되겠다고 절에 들어와서 행자 생활을 거쳐 수계를 받고 스님이 됐지만, 그 개개인을 보면 아주 부족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많이 헤매고 시행착오도 많이 합니다. 본인은 그저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느긋해하지만, 대중이 볼 때는 ‘승복을 입은 스님이 저렇게 막행막식을 하느냐’ 하면서 굉장히 실망합니다. 그래서 행자생활을 좀 더 거치고 수계를 주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토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정토회 대중은 여러분을 특별하게 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바깥사람들과 특별히 모양이 다르지 않으니까 바깥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괜찮은데, 정토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중은 여러분이 수행이 좀 더 많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해외 법당에서는 백일출가를 하고 왔다고 하면 대단하게 여깁니다. 자기들은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백일이나 살다 왔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굉장한 줄 알았는데, 며칠 혹은 몇 달만 같이 지내보면 대부분 실망을 하게 되죠.

사람들은 그만큼 이름과 상에 집착을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 있는 여러분은 조금 더 수행에 힘써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 와서 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밖에 있는 대중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분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집니다. 그러니 조금 더 정진에 전념해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나태한 마음을 다시 다잡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반찬으로 나온 가지가 두북 수련원에서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어제 스님이 비닐하우스에서 직접 수확한 가지입니다.

“방금 먹은 가지는 두북에서 따온 거예요. 여러분이 두북에서 짬짬이 주말마다 시간 내서 농사를 지어준 덕분입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가 생산해서 우리의 일상에서 먹을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주말에 시간 나는 대로 내려가서 함께 농사짓는 습관을 들였으면 합니다.”

우리가 생산해서 우리가 먹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기분이 참 좋아졌습니다. 대중들이 여는 모임을 하는 사이 스님은 정토회관을 출발해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7시 30분에 미팅을 하고 10시 30분부터 기획위원회 회의를 했습니다.

정토회 기획위원회는 정토회의 중장기적인 사업 방향과 단위 부서를 뛰어넘는 중요한 현안에 대해 기획하는 모임입니다. 6개 분과가 매월 또는 매주 분과 회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분기별로 스님을 모시고 큰 방향에 대해 다시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10차 천일결사 사업 방향에 대해 다시 점검하고 집중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 가운데, 다양한 쟁점들이 부각되자 스님은 논의의 초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통일의병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토회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의 대중음악만 배울 게 아니에요. 만약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도 배우고, 수행도 배우고, 평화도 배우고, 환경도 배우는 상황이 되면, 이것이야말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활동을 개척하는 사람들이에요. 벤치마킹을 할 게 아닙니다. 이제는 벤치마킹을 넘어서는 단계가 되어야 해요.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도 벤치마킹을 해야 할 게 있습니다. 그러나 벤치마킹을 하는 동시에 지금의 벤치마킹을 넘어서서 새로운 것을 제시한다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정토행자의 서원’에 ‘우리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 속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런 관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가 우리의 과제예요.

정토회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대중에게 쉽게 전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해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불교’라고 하는 종교적 울타리, ‘정토회’라는 조직적 울타리가 존재했습니다. 대중이 접근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울타리에 막히는 사람도 있었고, 같은 불교라 하더라도 조직적 울타리에 막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제는 이 운동을 국민운동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울타리를 풀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불교와 정토회라는 정체성을 갖되, 대중을 위해서는 더 폭넓게 접근해보자는 겁니다.

앞으로는 정토회 산하 조직이 아닌 국민들이 주체가 된 그들의 자발적 조직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한 달 동안 열심히 모금을 해서 옥수수 1만 톤을 북한에 보내 주었듯이, 우리의 헌신과 노력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민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지역마다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 개인이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토회의 원래 목표입니다. 물론 그렇게 모인 대중들 중에 불교라는 형식 때문에 정토회에 더 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정토회의 저변 확대도 이뤄지는 겁니다.

우리들의 활동은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내가 사는 지역사회에서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느냐’ 이 목표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와도 되고, 종교 없는 사람도 와도 되고, 다른 절에 다니는 사람도 와도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용어는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제가 통일 강연에서 ‘개인은 행복하고 나라는 발전해야 한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죠. 개인이 행복한 것은 수행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가 발전해야 한다고 할 때 ‘발전’의 내용은 뭘까요?

첫째,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지구 상에서 대량살상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냥 국지전 정도라면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우리보다 더 높은 곳이 있지만, 세계 평화를 저해할 정도의 국제 전쟁과 대량살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선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도 평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평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 시작점이 될 사건이 터지기 제일 쉬운 곳이 여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지금 통일의병 활동을 하는 겁니다. 이름은 통일의병이지만 통일의병이 곧 평화 의병이고 평화지킴이입니다.

둘째,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경위기가 온다’, ‘빈부격차가 커져서 사회 갈등이 심화된다’, ‘개인의 소외감과 자아상실이 커진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노동 과잉 현상이 일어나면서 실업이 증가한다’ 등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극복하는 새로운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 새로운 나라는 그냥 남한만 갖고 만드는 게 아니에요. 통일 한국을 새로운 나라로 만들자는 겁니다.

우리가 벌이는 통일운동은 분단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자는 운동, 다시 말해 과거를 극복하는 통일운동만이 아닙니다. 통일 한국을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한 새로운 나라로 만들자는 운동입니다. 다시 말해 과거를 극복하려는 뜻과 미래를 개척하려는 뜻이 동시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목표를 갖고 이 운동을 해나간다면 초기에는 조금 어려워도 시간이 갈수록 큰 힘을 발휘할 거예요. 지금은 정치도 혼란스럽고, 사회도 갈수록 혼란이 심해지고 있고, 개인들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식의 명상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실 도피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에 명상만 갖고는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숨어서 안전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해요.

그런데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운동은 내가 주체가 돼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는 운동이에요. 자기 한 몸도 추스르기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고, 보호받고 싶은 사람한테는 벅찬 운동이지만, 일단 바람이 불어서 가능성이 열리면 사람들이 모입니다. 대중은 늘 ‘가능성이 있냐, 없냐’가 중요해요. 꿈같은 소리일 때는 도망을 가지만, 일단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벌떼 같이 모여듭니다. 그 가능성이 대중에게 보일 때까지 우리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갈수록 사람들이 개인 주의화되고 점점 공공성이 없어지는 것이 사회적 추세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더 개인 주의화되고, 더 사유화되는 한편으로, 거꾸로 사유의 경제에서 공유의 경제로 바뀌는 경향성이 늘어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한쪽에서는 협력이라고 하는 가치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어요. 공유와 협력이 더 앞선 신문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가치는 오히려 시대의 흐름이 일으키는 반작용으로 인해 다시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고 있어요.

우선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욕망과 개인주의와 자기 안위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본인도 마음이 불안하다는 겁니다. 그 불안함의 밑바닥에 있는 게 바로 미래 세상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들도 다 공익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 양심을 자극해서 그들도 이 활동에 동참하도록 이끌어내면 대세가 바뀝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가족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 공동체로 이끌어내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개개인이 완전히 개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공동체로 이끌어내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개인이 안주처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는 식으로 해결하는 대신 그들이 의지처로 삼고 싶은 새로운 공동체를 우리가 만들어 낸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요. 기존의 모든 질서가 더 개인 주의화되어가는 가운데 우리는 거꾸로 더 큰 이상을 향해서 사람들을 결집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역사를 봐도 늘 그렇습니다. 사회가 몰락할 때 전체 추세는 더 개인 주의화되어 가지만, 사회가 몰락해서 엄청난 혼란이 올 때 의인이 출현합니다. 바로 그때 오히려 공익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역사적인 영웅이 됩니다. 물체를 끌면 늘 마찰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늘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드러난 현상만 보면 우리가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거꾸로 바닥을 보면 사회현상이 개인화 쪽으로 가는 힘만큼 반대 방향으로는 마찰력이 작용하고 있어요. 그런 반대 방향의 힘을 우리가 인식하고 끌어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하고 새로운 도전입니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해외에서도 초기에는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결국은 인류 문명에 새로운 진로를 제시하게 되면 어쩌면 해외에서도 이것이 새로운 희망으로 더 큰 지지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운동을 어떻게 대중화할 것인가도 과제이지만, 제가 지금 제일 근심하는 것은 이 운동이 대중의 호응을 받고 규모가 커질 때 이를 감당할 지도부가 탄탄하냐는 겁니다. 지금 현안은 ‘대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지만, 대중성의 확보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운동이 대중의 큰 호응을 얻게 되어 사람들이 몰려들 때 이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꿈과 이상이 확고한 지도부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눈도 깜짝하지 않고 전 세계를 내 집 관리하듯 하면서 방황하지 않고 진행할 결사조직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결사 행자를 만든 겁니다. 착하기만 하고 꿈과 이상이 부족하면 이 일을 오래 못합니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수행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이건 소승적 방법이에요. 대승적 방법은 큰 원(願)을 발하는 것입니다. 대승에서 개인적 문제는 극복 대상이 아니에요. 큰 원을 발하면 개인적 문제는 문제 자체가 안 돼버리는 수행이 대승적 수행입니다. 그래서 ‘원(願)’이라고 표현합니다. 큰 원을 내버리면 성격이 다른 사람들도 다 동지로 보여요. 성격이 다른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다들 내 일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개인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일일이 만나서 대화하고 절을 하면서 극복하는 건 소승적 수행법이에요. 원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새로운 수행법입니다.

대승 수행자는 ‘활동하느라 수행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면 안 돼요. ‘절을 할 시간이 없다고? 그래서 네가 무슨 수행자라고 할 수 있느냐?’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 돼요. 수행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얼마나 내 삶이 자유롭고 행복한가.’
‘당장 내일 죽어도 좋다 하는 자부심이 나한테 있느냐.’
‘수많은 사람이 비난해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이 과연 나한테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수행자이지 무슨 음식을 먹었나 안 먹었나가 수행자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목표의식을 좀 분명히 하고 그림을 그렸으면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다만 실행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늦을 뿐이에요.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실천력 사이에 시간의 갭이 조금 있을 뿐이지, 이것은 하나의 대세이고 추세이며 가야 할 길입니다.

첫째, 우리가 가고자 하는 해탈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게 귀의불(歸依佛)이에요. 둘째,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항상 진실에 기초해야 합니다. 관념이 아닌 실재에 기초해야 해요. 이게 귀의법(歸依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같이 해나가야 하는 거예요. 이게 귀의승(歸依僧)입니다. 이렇게 ‘부처’니 ‘스님’이니 하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삼보(三寶)를 우리의 활동 속에서 귀의의 대상으로 삼아나갈 수 있습니다. ‘스님’이라는 용어를 쓰거나, 머리를 깎아서 겉모양에 차이를 두는 것은 일시적으로 조금 효과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운동은 불교 신자를 데리고 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스님이냐 아니냐가 동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운동에서는 결혼을 했니 안 했니, 스님이니 아니니, 법사니 아니니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인격을 갖고 본인이 실제로 살아가느냐가 대중에게 파급력을 갖는 거예요. 직위나 권위를 갖고 하는 것은 그 순간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런 효과는 갈수록 점점 작아집니다. 그건 사양산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복을 비는 종교는 더 이상 사람들의 참여 동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명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상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맞아요. 그런데 이것도 그렇게 큰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 유행하는 명상은 소비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소비적인 명상은 도피적입니다. 세상을 외면하고 자기 안전만 추구한다면, 이것은 대승적 관점에서 보면 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기주의라고 말하는 거예요.

국가 운영의 목표가 지금까지는 경제성장이었어요. 그래서 GDP를 높이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신문에서 보셨겠지만, 이번에 뉴질랜드의 30대 여성 총리가 국가경영의 목표를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으로 잡았어요. 그래서 예산도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편성하고, 모든 행정의 최종 평가 기준을 거기에 두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학자가 제시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실제로 이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현실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정토를 그냥 마음속의 이상으로만 간직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 실현하자는 겁니다. 그럴 때 정토회는 우리 사회 안의 모델이 되고, 대한민국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현실 속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환경문제나 빈부격차, 평화 문제를 모두 극복한 이상적인 모델 국가로 자리 잡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에요. 욕심 많고 권력투쟁에 바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나라를 만들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우리의 사업계획을 세워 보았으면 합니다. 1차 만일결사에서는 정토회를 대한민국 안에서 하나의 사회적인 롤 모델로 만들었다면, 2차 만일결사에서는 대한민국이 그런 롤모델이 되도록 해서 전 세계에 그 씨앗을 뿌리자는 겁니다. 정토회 공동체가 100퍼센트라면 대한민국은 그 30퍼센트 정도라도 되는 국가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런 그림을 가지고 우리가 이 일을 지금 해나갔으면 해요.

지금까지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자선사업적 성격이 강했어요. 앞으로 정토회는 자신의 재능을 엉뚱한 데 쓰면서 자기와 세상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더욱더 교화해서 돈과 재능을 모두 세상을 위해 효과적으로 쓰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때 월급이나 활동비를 줘서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지금은 일이 급하니까 그런 사람 한두 명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모은 사람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못 만듭니다.

재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기 돈 내고 자기 시간 내서 자기 정열을 바친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요. 돈 좀 받고 일하는 수준 갖고는 절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어요. 아주 첨단기술을 다루는 기술자나 천재가 몇 사람 필요할지는 몰라도, 인류 역사상 세상이 변해온 과정이 모두 그랬습니다.

정토회에 인건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전문성과 지속성 면에서 큰 한계를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원과 꿈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에요. 이들이 세상을 바꾸지, 돈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여기에 돈이 가미되면 약간 효과가 나고, 또 전문가가 참여하면 약간 효과가 날 뿐이에요.”

스님의 이야기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공유가 되자 토론도 더욱 활기를 뛰었습니다.

준비한 안건에 대해 의논을 다 마친 후 저녁 8시가 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9시간 30분에 걸친 기나긴 회의였습니다.

오늘은 정토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평화재단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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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나 라는 틀속에 그저 안주하는 것이아닌 좀더 자유롭고
평화스럽고 행복한 나부터 시작하는 그런 생활에 확장성!!!

2019-08-18 14:38:11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8-08 20:14:05

임무진

대승적 수행법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더 큰 사회문제를 통해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게 문제랄게 없음을 알아차립니다. 고맙습니다

2019-07-23 12: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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