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8.8 동북아 역사기행 1일째
“우리 민족이 극복해야할 열등감”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국에서 모인 통일의병 160여 명과 함께 민족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동북아 역사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날인 오늘은 현재 가장 웅장한 규모로 남아있는 고구려의 백암산성을 둘러본 후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 환인에 도착해 ‘우리 민족이 극복해야할 열등감’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새벽 6시 인천공항에 모인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설레임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8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9시에 심양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내렸는지 땅이 젖어있었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자 8박 9일 동안 기행단과 동고동락할 버스 3대와 운전기사, 현지 스텝들이 반갑게 기행단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기행단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요녕성 박물관입니다. 심양공항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수신기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륜입니다. 심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두 박수)

모두들 큰 박수로 스님을 반겼습니다. 드디어 역사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저희는 중국 요녕성 심양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요녕성 박물관으로 가서 요하문명 전을 보겠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따라 28만 년 전 고인류부터 8천 년 전 신석기 시대, 고대 하은주 시대, 진, 한시대, 수, 당시대, 원, 명, 청시대에 이르기까지 요녕성 지방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 시간 동안 쭉 둘러보았습니다. 점점 정교해지고 발전한 문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중심으로 정리된 역사라 지도에 고구려는 형편없이 작게 그려져 있기도 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을 나와 요양시 동쪽에 위치한 백암산성으로 출발했습니다. 버스에 오르니 점심식사로 옥수수를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옥수수 크기가 무지 커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옥수수를 먹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2시간 남짓 달렸을까요. 졸고 있는 대중들의 귓속에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왼쪽을 보세요. 저기 산 주위에 성벽이 주욱 쌓아져 있는 것이 보여요? 저것이 백암산성입니다.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안 보여요.” (모두 웃음)

날이 흐려 백암산성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을 깬 참가자들은 눈을 비비며 안개 속 백암산성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버스는 산성의 서문 입구 가까이에서 멈춰 섰습니다. 서문 입구에는 백암산성이 아닌 ‘연주산성’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있었습니다.

산성을 오르는데 해가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백암산성의 역사, 규모, 역할, 지형지세,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20~30km 정도 더 가면 ‘요양’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도시가 바로 고구려 시대의 요동성입니다. 수도는 국내성이지만, 고구려가 만주벌에 세운 가장 번영했던 도시는 요동성입니다. 백암산성은 바로 요동성을 보호하는 산성이었어요. 평지에 있는 큰 성을 보호하기도 하고, 평지에 있는 큰 성이 함락되면 도망가서 피신하기도 하는 곳을 산성이라고 해요.

백암산성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을 ‘태자하’라고 합니다. 망대에 올라가서 보면 태자하가 흘러가는 모습이 환히 보입니다. 동쪽은 태자하가 자연 성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쪽, 서쪽, 남쪽만 성벽을 쌓았어요. 서쪽은 경사가 완만해서 적이 침공해오기 쉬워 서쪽 성벽은 굉장히 높고 두텁습니다. 우리는 서쪽 성벽으로 올라가서 북쪽 성벽 위를 걸어서 망대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성을 언제 쌓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어요. 다만 고구려의 24대 왕인 양원왕 3년(서기 547년)에 이 성을 개축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최소한 1500년 이상 된 성벽 위를 기행단은 나란히 줄을 지어 걸어갔습니다.

“여기 보세요. 돌을 쌓을 때도 벽돌 쌓듯이 그냥 나란히 쌓은 것이 아니라 뾰족한 면이 서로 맞물리게 쌓아서 아주 견고합니다. 이것을 ‘개이빨식 축성법’이라고 부릅니다. 고구려 성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만약 큰 돌을 맞아서 성벽의 일부분이 부서져도 그 부분만 부서지지 함께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맞물리게 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치성을 쌓았어요. 고구려 성에는 반드시 치성이 있어요. 치성은 성벽 밖으로 툭 튀어나오게 쌓은 것을 말해요. 성벽 위에서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하려면 얼굴이 노출되잖아요. 그런데 치성 위에서는 적의 등 뒤로 공격을 할 수 있죠.

이렇게 보면 난공불락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사람이 지키는 것이니까 결국 사람이 잘못하면 함락이 됩니다. 요동성이 당 태종 때 함락됐잖아요. 수나라 때는 그렇게 침략해도 함락되지 않았는데 당 태종 때 함락이 됐어요. 요동성이 함락되니까 이 성의 성주가 항복을 해버려서 이 백암산성도 함락됐습니다.

그런데 안시성은 전황이 훨씬 불리한데도 양만춘이 끝까지 싸웠기에 함락되지 않았어요. 안시성 전투가 워낙 유명하지만 정작 가보면 성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고 ‘와, 이 정도면 점령을 못하겠다’라고 할 정도의 규모는 아닙니다. 쉽게 점령될 것 같은 구조인데도 버틴 것을 보면 역시 사람이 하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동반도 끝에 있는 비사성도 겉보기에는 높은 산의 절벽 위에 있어서 난공불락 같지만, 그것도 당 태종 때 함락이 됐습니다. 지금도 성안에 ‘당왕전(唐王殿)’이라고 해서 당 태종을 모셔놓고 절을 하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무리 산세가 험악하고 성을 튼튼하게 잘 지었다고 해도 역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어쨌든 이런 물리적 토대가 기본 바탕이 된 가운데 사람이 잘해야지, 사람만 잘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겠지요.

자, 여기서부터는 성벽 밖으로 나가서 성의 웅장함을 살펴보겠습니다.”

성을 튼튼하게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의 의지도 중요하다는 말씀에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이어서 서쪽 성벽 위를 걸어올라 가면서 계속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21일 동안 단식을 했기 때문인지 스님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날이 완전히 맑아졌습니다.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성벽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성벽 아래로 내려가 함께 성벽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벽이 가장 크고 웅장해 보이는 곳에 잠시 멈춰 서서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

1500여 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저렇게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선조들의 지혜와 노고에 절로 감탄이 되었습니다.

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날이 개어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입이 떡 하고 벌어졌습니다. 대중들은 망대에 서 보고 나서야 ‘아하. 그래서 여기에 성을 쌓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무너진 성벽 곳곳에는 정말로 개이빨식으로 돌을 쌓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백암산성을 뒤로 하고 기행단은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였던 ‘환인’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멀리 백암산성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경 잘 했죠? 이제 날이 맑아져서 꼭대기에 내성도 보이죠?”

“잘 보여요!”

멀리 수직으로 깎아내린 절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백암산성이 멀어지고 너른 옥수수밭과 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옥수수밭을 본 스님은 갑자기 북한 주민들 생각이 났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한국의 한해 곡물 생산량이 총 5백만 톤입니다. 그런데 동북 3성의 한해 곡물 생산량이 1억1천 톤이 넘어요.

최근 UN에서 발표하기를 북한의 올해 식량 생산량이 100만 톤 부족하다고 했잖아요. 중국의 한해 곡물 생산량은 약 5억 2천만 톤 정도 됩니다. 중국이 북한에게 140만 톤을 주는 건 쉬운 일일 겁니다. 만약 북한이 중국에 굽신댄다면 하루아침에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북한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고개를 안 숙이고 굶으면서 버티고 있어요. 올해 가뭄으로 북한의 옥수수는 아직 무릎까지도 안 자랐다고 하네요.”

스님의 눈에는 드넓고 비옥한 밭 위로 굶고 있을 북한 어린이들이 아른 거리는 듯 했습니다.

환인으로 가는 도중 본계현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도중 스님은 이번 역사기행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본계현에서 환인까지 가는 길이 고구려 시대 때에는 어떤 역할을 했었던 길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환인으로 향하는 이 길은 고구려인들이 만주벌판으로 나갈 때 말을 타고 달려갔던 바로 그 길입니다. 또 적이 침입할 때는 이 길로 다시 도망을 오면서 방어를 했습니다. 중원에 있는 민족들은 대부분 평지에서 말을 타고 싸우는 것에 익숙한데, 여기는 보시듯이 산골짜기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본거지를 점령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잘 뚫린 길을 가고 있지만, 이 길은 광개토대왕이 말을 타고 만주벌판으로 달려나갔던 통로였고, 관구검과 모용왕이 고구려를 침입하기 위해서 들어왔던 통로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즐겁게 식사를 마친 후 다시 환인을 향해 부지런히 버스를 타고 달렸습니다. 고구려인이 달렸을 그 길이라고 생각하니 평범한 도로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지형지세를 잘 활용한 고구려인들의 지혜도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버스 안에서 중국 역사의 큰 줄기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우리 민족과 국경을 맞대고 살아온 중국 역사를 알아야 우리 역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암산성을 둘러보고 배부르게 식사까지 해서 노곤한 대중을 깨워가며 재미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밤 8시가 넘어서 환인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저녁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오늘 강의 주제는 ‘우리 민족이 극복해야할 열등감’입니다. 스님은 왜 역사를 공부해야하는지,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어떤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약 2시간 동안 강연을 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극복해야할 열등감

“열등감은 그냥 내버려둘 게 아니라 극복을 해야 해요. ‘나도 잘났다!’ 이런다고 열등감이 극복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난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가난할 때 하던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학벌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으면, 아무리 박사학위를 따서 지식을 쌓아도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에 대해서는 늘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 근원적인 치유가 좀 돼야 합니다.

우리가 고대사에 대해서는 중국에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이 중국에 대한 열등의식을 극복하려면 ‘사실이 어떤가’ 하고 고대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열등의식을 극복하려고 우리 고대사를 막 과장한다고 해서 열등의식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에요. 보통 그렇게들 많이 하지만 그건 역사왜곡에 속합니다.

그런데 고대사를 살펴보니까 우리 고대사의 왜곡은 실제로 있는 역사를 우리가 잊어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역사가 됐어요. 우리 역사를 잃어버리고 중국 역사 속에서 우리 역사의 편린을 찾아 우리 역사를 재구성하다 보니까 우리 역사가 중국의 변방 역사가 돼 버렸어요.

우리가 고대사를 특별히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를 과장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를 원래의 모습대로 되찾자는 것입니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면 열등의식도 모두 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의 핵심은 첫째, 고대사 부문의 사실을 우리가 확인하고 유추해나가면서 우리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던 중국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사대의식,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져야 크고 작고에 관계없이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요.

친구지간에는 부잣집 애가 있고 가난한 집 애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크게 따지지 않잖아요. 가난한 집 애가 늘 부잣집 애한테 열등의식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가난은 가난이고 친구는 친구라며 아무런 스스럼없이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후자가 되려면 가난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해요.

둘째,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자는 겁니다. 이 부분은 근대사 100년, 특히 독립운동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했고 우리가 식민 지배를 당했다는 역사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저항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관건입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됐다고 하면 열등의식은 안 생깁니다. 후회는 없으니까요. 그걸 충분히 못했을 때 우리는 후회를 하게 돼요.

그런데 지금은 사실이 많이 왜곡이 돼 있습니다. 사실이 왜곡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분단입니다. 분단이 돼서 남북이 서로 자기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체제 경쟁을 하다 보니까 왜곡이 일어난 겁니다. 특히 남한의 경우 사회주의 노선이나 좌파 노선을 걸었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다 제외시켜버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살펴보면 사회주의는 당시의 세계적인 조류였어요. 당시 제3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 대다수가 사회주의 계열이었습니다. 중국도 그렇고, 베트남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간디가 좀 독특하긴 하지만 인도도 비슷했어요. 네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다 비슷한 길을 걸었기 때문에 독립 후 인도 공화국이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띠었던 거예요.

셋째, 현대사는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입니다. 현대사에 들어와서 교육시스템을 비롯해 우리의 모든 것이 미국식으로 바뀌었잖아요. 근대화의 기초는 일본 방식이고 그 위에 이룩한 현대화는 다 미국 방식이에요. 그러니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이 무의식에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세대가 어릴 때 ‘미국 놈 것이라면 똥도 좋다’라는 말도 한때 있을 정도였어요. (모두 웃음)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속 무의식 세계에 크게는 서양, 좁게는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처럼 생긴 게 잘생긴 것이고 외국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해야 당연할 텐데, 우리는 첫눈에 벌써 외국 사람은 잘생겨 보이고, 우리 자신은 좀 못생겨 보인다고 생각하잖아요. (모두 웃음)

이렇게 우리에게는 세 가지 과제가 지금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고대사의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첫 번째 큰 과제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독립운동사를 탐구하는 것인데, 이건 아직 일부밖에 진척이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현재는 고대사 문제도 우리가 다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고대사 문제로 지금 중국과 역사 논쟁을 벌이고 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감시 받는 것도 현재진행형이에요. 이렇듯 고대사 문제도 아주 극복은 안 됐지만, 그래도 고대사는 다른 주제에 비해서 그나마 좀 얘기를 할 수 있는 영역이에요.

그런데 근대사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끝났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인데도 불구하고 남북이 아직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금도 자칫 말을 잘못하면 ‘그럼 북한이 더 정통하다는 것이냐?’ 이런 질문이 돌아올 확률이 높아요. 그러나 이것도 우리가 이제는 극복 대상으로 삼아 진실을 규명해볼 때가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과제는 현대사입니다. 현대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아직은 좀 요원해요. 근대사도 통일이 돼야 극복 가능한데, 현대사는 통일된다고 해도 극복되기가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걸 극복하려면 시간을 100년 정도 잡고 해야 하는데, 우리가 서양을 모방해오는 국가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우리 것을 배워가는 국가와 사회를 만들 때 비로소 극복 가능합니다. 철학이든 종교든 기술이든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배워오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배워가는 수준에 이르러야 해요.

예를 들어 BTS를 비롯한 아이돌을 보면 음악에 있어서는 미국이나 유럽에 열등의식이 전혀 없겠죠. 유럽 사람들이 여기 와서 배워가야지, 이런 가수들이 어디 가서 보고 배워서 모방해온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옛날에 팝송을 부를 때는 다 남의 것을 가져와 흉내 내서 불렀잖아요. 성악도 다 기법을 흉내 내서 하는 것이고, 바이올린을 잘 켜거나 피아노를 잘 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우리 쪽에서 창조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모방하고 있는 한은 우리가 후진이고 상대가 선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것이 밖에 나가 세계화된 첫 번째가 태권도입니다. 그래서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은 열등의식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태권도라는 운동을 배우는 데 있어서 한국이 모국, 종주국이라는 인상을 갖죠. 그들이 쓰는 용어도 전부 한국 용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냥 씁니다. ‘하나, 둘, 셋, 넷’, ‘돌려차기’, ‘앞차기’ 이런 말을 그대로 써요. (모두 웃음)

소위 케이팝(K-Pop)도 요즘은 영어로 하지 않고 그냥 한국말로 하는데 외국인들이 다 한국말을 따라서 하잖아요. 그것과 똑같은 거예요. 모방을 하면 그렇게 돼요. 우리가 옛날에 영어를 할 줄도 모르면서 발음만 베껴 써가지고 팝송 부르는 것과 똑같아요. 번역해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대로도 많이들 부르잖아요. 홍콩에서 요즘 시위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번역해서 부르기도 하고, 한국말로 그냥 부르기도 하잖습니까? 우리가 모델이 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모든 영역에서 각각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문명을 선도해야 해요. 환경실천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에서 이러저러하게 하더라. 유럽에서 텀블러 쓰더라. 그러니 우리도 쓰자’ 이렇게 될 게 아니라, 우리가 텀블러를 쓰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쓰는 거예요. ‘한국에 가보니까 일회용 컵이 싹 없어졌더라’ 이렇게 해서 유럽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본받아서 환경실천운동을 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한국 사람을 본받아서 뭘 하는 것이 요즘 한두 가지씩 서서히 늘기 시작했어요. 우리도 이제 문명 창조의 앞부분에 가 있는 게 한두 품목씩 늘어나는 거예요. 수천 개의 품목이 있는 가운데 한두 품목씩 꾸준히 늘어나서, 주류를 형성할 정도가 되면 우리 속의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도 자연히 없어질 거예요.

마음의 열등의식은 문명을 선도할 때만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통일 대한민국이자 세계 최고의 모범국가로 만들어 가는 것을 새로운 100년의 과제로 삼아서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제안하는 것은 근대 서양 문명에 대한 우리 마음속의 열등감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미래의 과제예요.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두 가지 과제는 고대사에 대한 것과 독립운동사에 대한 것입니다. 왜 돈 들여 여기까지 와서 눈치를 봐가면서 이렇게 공부할까요? 이 돈으로 상해(상하이)나 광주(광저우)나 계림(구이린) 같은 곳을 가면 구경도 실컷 하고 마음껏 다니면서 노래 불러도 되는데, 왜 굳이 여기 와서 이렇게 쭈그리고 눈치 봐가면서 공부할까요? 이 지역이 우리 땅이라서가 아니라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여기에 살았기 때문이에요. 이 분들이 서울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평양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여기에 살았고 여기서 동북아를 경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면 여기도 아닌 저 멀리 요하(랴오허) 상류에 살았습니다. 우리가 상고사를 공부하려면 거기에 가야 해요. 거기에 가야 유물도 유적도 볼 수 있는데, 그게 아직 제대로 발굴이 덜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와서 고구려 유적과 유물을 보고 고구려 유물이나 유적은 어디서부터 연결돼 왔는지를 살피다가 단군, 환웅, 환인까지 가는 것이고요. 또 이게 어디로 계승됐고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살펴보면 이제 발해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눈으로 잡아내 볼 수 있는 상고사의 첫 출발을 고구려로 하자는 얘기지, 고구려가 우리 상고사의 전부는 아니에요. 실제로는 고구려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고구려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연은 밤 11시가 다 되어 끝났습니다. 정말 기나긴 하루였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꾸벅 꾸벅 고개를 숙이는 대중들도 일부 보였습니다.

“푹 쉬세요. 못 다한 설명은 내일 또 계속 하겠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늦었지만 참가자들은 조별로 나누기를 하고 잠을 잤습니다.

“스님은 21일 동안 단식을 해서 힘든 몸으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저는 자꾸 졸아서 죄송했어요.”

“왜 역사 현장에 와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현장에서 보니까 더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내일은 동북아 역사기행 2일째를 맞이해 고구려의 유적들을 집중적으로 찾아갑니다. 오전에는 주몽이 처음으로 고구려를 세웠다고 하는 홀본산성에. 오후에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과 환도산성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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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나윤

감사합니다. 🙏

2023-11-02 21:00:47

고명주

열등감은 극복해야 할 것 이라는 말이 귀에 꽂힙니다. 다시금 역사기행 꼭 참여 하고 싶어 집니다

2022-01-27 12:14:26

써니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입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

2022-01-20 14: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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