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1 서원행자대회, 행자대학원 14기 졸업식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전국대의원회의’와 ‘서원행자대회’에 참석하여 법문을 한 후 저녁에는 행자대학원 14기 졸업식에 참석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사이 아침 해가 떴습니다.

전국대의원회의 회향식

기도를 마치고 새벽 5시 30분부터 곧바로 전국대의원회의 회향식이 열렸습니다. 대의원들은 이틀 동안의 회의를 마치며 스님에게 회향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을 소개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대의원회의를 마치면서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입니다.

‘나의 제자 수행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나의 제자 수행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제가 보기에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어떤 종교인들보다 검소하게 사는 것도 더 뛰어나고, 도덕성도 뛰어나고, 지구를 생각하는 환경 의식도 뛰어나고,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의식도 뛰어나고, 다문화 가정과 장애인,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않는 의식도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에게도 더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서 1% 안에 들어갈 만한 안목과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

딱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당당하지 못합니다. 신부든, 목사든, 승려든, 시장이든, 대통령이든, 우리가 그들을 예우해주는 것과 그들 앞에서 심리가 위축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나, 자신의 수입 중에 보시하는 양이나, 자신의 시간 중에 봉사하는 시간이나, 미래를 보는 눈이나, 민족 통일에 대한 의식이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자세를 놓고 봤을 때,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전 세계인들과 비교해도 여러분들은 1% 안에 들어갈 만한 안목과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만 아직 극복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면 성질머리입니다. 그건 우리만 극복하지 못한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 극복하지 못했어요. 성질이 나더라도 ‘아이고, 제 성질이 더러워서 죄송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되는데, 자기 성질을 움켜쥐고 내 잘났다고 고집을 합니다. (모두 웃음)

이런 부족한 점이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 어떤 사람들과 비교해도 여러분들은 시민의식 수준이 높은 집단입니다.

그런데도 돈이 없다고 위축되거나, 지식이 없다고 위축되거나, 사회적 지위가 없다고 위축되는 게 잘 극복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남성들 중 일부는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해서 자꾸 거드름 피우는 게 잘 극복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뭘 좀 알거나 지위가 있으면 그걸 대단한 줄 알거든요.

겸손함 그리고 당당함

부처님 당시에도 돈이 없거나 지식이 없거나 지위가 없거나 신분이 천한 사람들이 당당함을 갖는 것이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또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돈이 있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교만함을 없애는 것도 참 어려웠던 것 같고요. 그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겸손하라고 가르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당당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부족한 부분을 잘 극복해가면서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일을 해나가 봅시다. 이틀 동안 회의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스님은 애정을 담아 거듭 ‘당당하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귀하게 여기는 스님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큰 박수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회향식을 마친 대의원들은 아침식사를 하고 대수련장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방석도 가지런하게 깔아놓고 서원행자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전국에서 600여 명의 서원행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원행자대회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서원행자대회

스님은 지난 3년과 그리고 이번 상반기를 돌아보며 수고한 서원행자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전하며 입재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 3년을 돌아봐도, 지난 상반기를 돌아봐도 참 애 많이 쓰셨습니다.”

특히 옥수수 1만 톤 모금을 위해 애써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향한 세 번의 큰 운동

“정토회가 설립되고 나서 지난 27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통일 문제와 관련해 세 번의 큰 운동이 있었습니다. 첫째, 1997년에는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는다고 해서, 그때는 정토회 회원 수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는데도, 정부 차원에서 긴급히 식량을 지원하라는 100만 서명운동을 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둘째, 2008년에는 남한에 정권이 바뀌면서 인도적 지원이 중단되고 또다시 북한에 식량 위기가 와서 10년 만에 다시 100만 인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셋째, 또 10년이 지난 후인 2019년 올해는 단시간에 여러분들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서 옥수수 1만 톤을 북한에 보내는 큰일을 해냈습니다.

아직은 분단 상태에 있고, 남북이 대결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이런 활동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통일이 되고 나서 우리의 활동을 되돌아본다면, ‘우리가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외면하지 않고 내 아픔처럼 느끼고 도운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가’ 하는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북한 동포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난민이 되어 고통을 겪을 때 저희들은 민간인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일을 기적같이 해냈습니다. 우리가 아직 그 활동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면 그것도 재평가가 이뤄질 겁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6.25 전쟁에 버금가는 수많은 희생자를 낸 소리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도 알게 될 겁니다.

뼈아픈 반성, 그리고 다짐

1997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동포 돕기를 하면서 저희들은 뼈아픈 반성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는 줄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300만이 굶어 죽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결심했습니다.

‘이번은 몰라서 그랬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 상황이 어떤지 늘 파악을 해서 위험 상황을 미리 알아야 하고, 위험 상황이 예측되면 신속하게 행동해서 한 명의 희생자도 생기지 않도록 하자.’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 위기가 20년 전만큼 대량 아사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다시 또 아사자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굶주림이 점차 확산되는 상태에 있습니다. 남북이 서로 협력을 한다면 능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와 정치적 입장의 대립으로 주민들의 굶주림이 외면되고 있습니다. 국민이 고통받는 것을 외면하는 정책은 그것이 아무리 대의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한도 그렇고, 북한도 그렇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견해를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치적 갈등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힘 닫는 데까지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금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들이 지난봄에 옥수수 1만 톤 모금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지원된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었고, 정말로 사람들이 고마워했습니다.”

스님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국내외 정세를 짚어주며 ‘어떻게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한반도에 유리한 방향으로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통일의 기초를 다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차 만일결사 회향을 3년 앞두고 서원행자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지 이야기하며 입재 법문을 마쳤습니다.

1차 만일결사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

“1차 만일결사의 목표는 전국에 5000개의 수행자 모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제 전국대의원회의에서 한 분이 ‘1차 만일결사의 목표가 너무 높지 않는가. 실현 가능한 목표로 수정해야 되지 않느냐’라고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그건 만일이 되어봐야 알 수 있지 너무 단정하지 마세요. 아침에 눈 떠 보니 목표가 달성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 웃음)

왜냐하면 현재 정토회 정회원들 모두가 결심만 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목표가 달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늘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자기가 법사가 되고, 자기 집이 법당이 되고, 자기 가족과 일가친척이 정토회원이 되어야 한다.’

정회원들이 지금 이렇게 결심만 하면 내일 당장 5000개의 수행자 모임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다들 이렇게 결심을 안 해서 지금 목표 달성이 안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27년의 기반 위에 선 특별한 3년

우리가 30년 전에 세운 목표가 어떻게 보면 허황된 목표 같지만, 30년 지난 뒤에 5% 달성이라고 평가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가보자는 겁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3년만 노력해도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죠. 600여 명의 서원행자들만이라도 이 목표가 충분히 인지가 되면, 앞으로 3년 동안 지난 27년 동안의 성과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3년은 단순한 3년이 아니고 27년의 기반 위에 선 3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3년은 30년과 같은 3년입니다.

앞으로 3년은 1차 만일을 마무리하는 3년인 것과 동시에 다음 2차 만일을 준비하는 3년입니다. 1차 만일을 마무리하는 3년이라는 측면에서는 1차 만일의 목표 달성이 중요하지만, 1차 만일의 목표는 다시 2차 만일의 출발점이 됩니다. 정토회와 불교라는 형식을 넘어서는 대중 확산 방식에 대한 실험이 이번 3년 동안 어느 정도 이뤄지면, 2차 만일부터는 전 세계를 향해 이 좋은 법을 확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30년 전에 이런 꿈을 꾸었을 때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이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 가능성은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그 가능성을 쫓아서 희망을 갖고 전력 질주를 해봅시다.”

이어서 신규 서원행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영상으로 신규 서원행자들 한 명 한 명을 만나보았습니다. 한 명씩 이름과 사진이 보여질 때마다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자 신규 서원행자들이 연꽃을 하나씩 들고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다시 쏟아졌습니다. 신규 서원행자들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었습니다.

이어서 신규 서원행자 모두를 대표해서 안선영 님이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정토회에서 가장 감동받은 것은 ‘내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구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요즘 저는 누구도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행복해지니 두 아들도 함께 행복해졌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 행복 모든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2013년 인도 성지순례 새벽 기차에서 읽은 스승님의 발원문은 감동이었습니다. 오늘 서원행자가 되어 스승님의 발원문을 다시 제 가슴에 새깁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됨으로써
당당함이 태산 같고,
견고함이 강철 같고,
지혜로움이 광명 같고,
청정함이 수정 같고,
부드러움이 솜털 같고,
겸손함이 그림자 같고,
아량이 허공 같고,
따뜻함이 어머님 품 같이 되어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혀 한 점 부끄러움 없고,
죽음 앞에서도 지옥 속에서도 한 점 두려움 없이
고통받는 중생이 있는 곳에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어 오직 정진하겠습니다.”

발원문을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신규 서원행자들의 이 같은 발원을 듣고 이어서 스님이 정성을 기울여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이 땅에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실현하고 정토를 이루겠다는 새로운 서원행자 50여 명을 이렇게 맞이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을 탓하거나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좌절함이 없이 내 마음 맑고 밝고 가볍게 가져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가 되고, 나아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우리는 서원행자가 되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양식이 되고, 병든 이에게는 약이 되며,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는 배움의 터가 되며,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오고, 갈등을 해소하여 화합을 가져오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원을 세운 신규 서원행자 분들이 이렇게 부처님 앞에서 함께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은 정말로 귀한 분들이며 우리의 만남은 소중합니다. 우리가 세운 원이 이루어지려면 이 분들 한 분 한 분과 손을 잡고 힘을 합해야만 가능합니다. 이 도반들이 없다면 우리가 꿈꾸는 정토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도반 아끼기를 내 몸 아끼듯이 하며 도반과 함께 손잡고 붓다의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되겠습니다. 우리 한 명은 부족하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부처님처럼 활동할 수 있다는 모자이크 붓다의 원을 실현해 나가겠습니다.”

스님의 축원을 들으니 신규 서원행자뿐만 아니라 선배 서원행자들도 다시 태어난 듯 그 마음이 새로웠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신규 서원행자 환영식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사회활동위원회와 공동체에서 2019년 상반기 사업 보고와 하반기 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스크린을 향해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발표 내용에 집중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봉사자들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이루어내었는지 하나씩 발표가 되자 큰 박수와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발표자들이 시간에 맞춰 발표를 해준 덕분에 짧은 시간에 알차게 사회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날이 좋아 꼭 소풍을 온 것 같았습니다.

오후에는 앞서 있었던 전국 대의원회의 결과와 제10차 천일결사 사업방향을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듣고 스님에게 제10차 천일결사 사업방향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청소를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서원행자대회를 마치며 회향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붓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상기시키며 서원행자들이 어떤 삶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면 좋겠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은 밥은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무리 공간이 없어도 사무실을 빌려서 쓰거나 가정집을 빌려서 씁니다. 이는 부처님 당시와 비교해보면 호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부처님의 고행상을 모셔놓은 것도 우리가 정진할 때 늘 붓다께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하셨는지를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살아간 삶과 지금 우리의 삶을 비교하면

오늘처럼 대중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강당에서 잠을 자면 집에서 혼자 자는 것보다 불편할 수 있지만, 나무 밑에서 비 맞고 추위에 떨며 자는 것과 비교한다면 비 안 맞고 추위에 떨지 않고 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여기 모여 자는 시간을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에요. 그런데 세속에서의 삶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한 방에 100명씩 자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세속에서처럼 너무 돈이나 편리 중심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약간의 불편은 감수하는 삶의 자세를 가지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서원행자들의 모임이니까 여러분들 모두가 이런 기본적인 삶의 기준이 먼저 잡혀야 합니다.

정토회에서 서원행자는 전국 각 법당에서 10%도 안 되는 소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원행자들이 부엌살림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연등을 켜거나, 건물을 고칠 때는 소박하고 검소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장 난 것을 그냥 두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칠 때도 가능하면 봉사를 통해 검소하게 해결해나가는 자세를 지니면, 다른 회원들도 차츰 따라 배우게 됩니다. 이 따라 배우기가 가장 핵심입니다. 말로 만 번 하는 것보다 한 번 같이 살면서 따라 배우기 하는 것이 더 오래갑니다. 그런 면에서 서원행자들은 늘 붓다가 살아가신 방식을 생각하며 활동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법문 속에서 부처님이 가신 길과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서원행자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서원행자대회를 모두 마친 대중들은 현수막을 앞에 두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행자대학원 14기 졸업식

저녁 7시부터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행자대학원 14기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3년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오늘 졸업하게 된 세 명의 행자를 위해 졸업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세 행자의 졸업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출가하기 전까지 할 줄 아는 것은 그저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전부였던 나. 그것이 내 인생에 전부인 양 마냥 좋다고 살아가다가 나의 큰 욕심과 이기심에 부딪쳐 괴로움에 허덕이던 나에게 출가라는 것은 새로운 삶의 경험이었으며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습관을 바꿔가는 3년의 시간이었습니다.”

“행자대학원에 입재하기 전 ‘네가 뭐가 부족해서 절에 가서 살려고 하냐?’라고 묻는 가족들에게 ‘3년 투자해서 앞으로 30년 행복하게 살겠다’라고 하고는 공동체로 들어왔습니다. 백일출가를 회향할 때는 ‘나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살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었는데, 지금 행자대학원을 졸업할 때는 ‘내가 전 세계 어딜 가든 살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지?’ 하는 근심 걱정은 없습니다. 백일출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거의 짐승 수준이었는데, 행대 졸업을 하는 지금은 사람 구실을 조금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여러 대중들과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3년 동안 한 덕분입니다.”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바른 길로 왔고, 계속 바른 길을 가라고 바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인연을 주셨습니다. 받은 사랑, 지혜, 공덕, 배려를 일체중생에게 회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세 명의 행자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졸업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곁에서 3년을 지켜본 법사님과 도반들은 그들의 성장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졸업 소감을 발표한 뒤 수행의 길을 일러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했습니다. 수련원에서 자란 꽃들로 만든 꽃다발과 다니실 때 햇빛을 피하라고 회색 모자를 준비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에게 청법가와 삼배를 올린 후 졸업기념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졸업을 하는 행자들에게 수행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되짚어주었습니다.

“오늘 세 분의 소감문을 들어보니 따로 법문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혹시 글만 잘 쓴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서 몇 마디 하는 것뿐이니까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모두 웃음)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항상 힘을 숭상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세상의 물이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능력이 조금 있으면 교만하기가 쉽고, 능력이 부족하면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많은 종교 단체의 활동들도 가만히 지켜보면 세속과 마찬가지로 힘을 숭상합니다. 가령, 하나님께 빌거나 수련을 하면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자랑삼아 선전하고, 또 동참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것을 기대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과정이라도 그것을 극복하면 나도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어려움을 참거나 견뎌냅니다.

이런 생각에 익숙해지면 알게 모르게 도반들 사이에서도 능력을 비교하면서 시기 질투하기도 하고, 자신을 비하하기도 합니다. 출가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만 늘 세상에서 살아온 가치관과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저 이름만 다르고 사는 위치만 다를 뿐 늘 헐떡거리며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힘을 숭상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많은 수행자나 종교인들이 힘을 숭상하고, 또 그런 신통력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세력을 모았지만, 부처님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힘을 숭상하지 않고 오히려 힘을 추종하는 것이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근원이라고 직시하셨습니다. 수행의 목표는 그런 신통을 얻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신통이 중생을 현혹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수행공동체 안에서도 힘을 숭상하는 분위기를 멈추고 신통력 사용을 금하셨습니다. 또한 당시 종교인들에게는 사주, 관상, 손금, 전생을 보고 운명을 점쳐주는 것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핵심 요인이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운명을 점치는 행위를 부정하셨습니다.

당시 종교인이나 수행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중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가 대중이 갖지 못하는 신통력을 갖고 있거나 대중이 모르는 사람의 운명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신통력이 대중이 그를 추종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신통으로 중생을 현혹해서는 안 되고, 사람들에게 운명을 점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은 세상을 거슬러 가신 분입니다.

그랬던 불교가 오늘날에 이르러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는 ‘인물이 잘 생겼다’, ‘외국의 유명한 대학을 나왔다’, ‘잠을 안 잔다’, ‘음식을 먹지 않고 산다’, ‘미래를 예언했다’ 등입니다. 이것은 신통력과 예언으로 평가했던 과거의 기준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세상을 욕하면서, 동시에 남보다 더 세상의 논리를 추종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인이 되어 신통력을 얻고 그 힘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름 아닌 힘을 숭상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종교가 더 허황한 방법으로 힘을 숭상한다면 그런 종교가 어떻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되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도 혹시 능력으로 사람들을 비교하고 있다면, 다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수행의 목표는 그러한 능력이 아닙니다. 수행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부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수행의 목표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힘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의 목표는 괴로움이 없는 안온한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가신 이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힘이나 능력을 얻는 것으로 수행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늘 비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끝이 없는 경쟁과 괴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목표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들뜨거나 침울해지지 않고 편안함을 유지하면서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자도 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할 수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도 할 수 있고, 지위가 낮은 사람도 할 수 있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할 수 있고, 신분이 낮은 사람도 할 수 있고, 피부 빛깔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학식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신체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의 정도는 능력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수행의 정도는 남이 평가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보면 옛날보다 편안해졌는지, 들뜸이 줄어들었는지, 좌절이 줄어들었는지, 후회가 줄어들었는지, 괴로움이 줄어들었는지, 언제나 점검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안온한 상태를 유지하면, 그렇지 못한 타인에 대해서도 좋은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서로가 경쟁관계라면 타인이 안온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경쟁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 또한 안온한 상태가 된다면 나에게 손해 나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이익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마땅히 이 법(法)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대중들도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인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를 살더라도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보니 참 좋다’ 하는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분명히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많은 실천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함께 하면 더 쉽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공동체를 이루고 뜻을 모아서 함께 해나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 마음의 뿌리는

오늘 행자대학원을 졸업하는 세 분의 행자님들이 발표한 소감문을 들어보니까, 글만 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관점을 잘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도 ‘수행을 잘해서 훌륭한 스님이 되어야겠다’, ‘유명한 구호활동가가 되어야겠다’ 하는 목표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는 좋은 뜻을 세우는 것 같지만 그 뿌리를 살펴보면 모두 힘을 숭상하는 것입니다.

힘에는 돈의 힘, 명예의 힘, 권력의 힘이 있습니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것은 명예의 힘을 얻고 싶다는 거예요. 이런 힘을 추구하는 것이 젊을 때는 ‘야망이 있구나’ 하고 좋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국 고통의 근원이 됩니다. 유명해지고자 명예를 추구하면 그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괴로움이 따릅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방향이 옳다고 생각되어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명예가 따라올 때도 있는 겁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명예가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붓다라는 인물이 어떠했는지는 그분의 일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평생을 나무 밑에서 주무시고,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드시고, 대중을 만나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야기해주실 뿐이었어요. 거기에는 따로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는 바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니 여기 계신 행자님들도 어떠한 결과를 미리 추구하지 않길 바랍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저 그들을 꾸준히 도와줄 뿐입니다. 명예는 그저 세상 사람들이 보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농사를 꾸준히 짓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장사를 꾸준히 하면 돈은 저절로 생깁니다. 공무원이 되어서 행정서비스를 꾸준히 하면, 그 성과들이 인정되어 결과적으로 승진이 됩니다.

굳이 승진되는 것을 나쁘게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그저 세상 사람들이 평가해서 결정하는 거예요.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도 그저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이고, 비난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 기준에서 평가하는 겁니다. 물론 비난받을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때로는 바른 행동을 하는 데도 세상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비난을 할 수 있습니다. 바른 길을 가더라도 세상이 그것을 바르게 평가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세상의 평가에 얽매이게 되면 여러분들의 삶이 안온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어리석게 살아온 결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날 수 있어요. 우선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 이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 나도 안온한 삶

이렇게 관점을 잘 잡으면 사는 게 쉽습니다. 사실 인생은 각자가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선택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굳이 조언을 하자면, 우리 자신의 삶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선택을 하기를 권합니다. 사람들은 삶이 자유로워진다고 하면 ‘자기만 좋으면 되나?’ 하고 이기적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내 삶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이기적인 게 아닙니다.

오늘 졸업하는 세 분의 행자님들도 지금 정진하는 마음을 잘 유지해서 세상과 단절하면서 안온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면서도 걸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실 대상이 무엇이든 내 입장이 분명하면 유혹이 되지 않습니다. 가령, 내가 담배를 한두 번 피워보고 ‘이거 별로구나’ 하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면, ‘나는 담배를 끊고 싶은데, 옆 사람이 계속 담배를 피워서 담배를 못 끊겠다’ 등의 이야기는 안 하게 됩니다. 내 입장이 분명하면 옆 사람이 피우는 것이 나에게 유혹으로 다가오지 않아요. 술 마시는 것도 내 마음이 떠나면 분위기에 따라 맥주 한 잔 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과음을 하고 노래방에 가서 악을 쓰고 노는 것에 물들지 않아요. 오히려 그렇게 노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러워 보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좋지 않음을 분명하게 알면 그 속에 있어도 내가 물들 일이 없습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야 가지 마라’ 하는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물론 같이 지내다 보면 담뱃재가 묻을 수도 있고, 술이 한 방울 튈 수도 있지만, 그건 집에 가서 씻어버리면 끝입니다. 내 마음이 떠나면 그것에 미련이 생기거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갖고 정진을 해나간다면 수행자로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졸업하면서 드는 마음을 잘 유지해서 여여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졸업식이라는 게 있으니까 오늘 졸업한다고 하지 사실 인생에 무슨 졸업이 있겠어요. 심지어 죽는 것도 졸업이 아니라고 합니다. 눈을 감으면 그저 눈을 감을 뿐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삶을 여여하고 걸림 없이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법문을 마친 후 스님이 직접 세 행자에게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졸업을 받는 행자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세 행자는 그동안 많은 대중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대중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기쁜 마음으로 삼배를 받았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세 명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졸업을 축하하느라 화기애애한 대웅전을 나와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부터 스님은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북미 동부와 북미 서부에서 각각 열리는 정토행자대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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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밝고 가볍고 자유롭게 너도 나도 우리모두!!!
감사합니다 꾸벅^^

2019-10-28 21:34:39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9-16 20:47:20

강선영

행자님들의 졸업소감이 감동입니다~
오고가며 안면이 있던 행자님의 졸업식이라 더 크게 와 닿습니다. 그리고 항상 크신 뜻으로 실천을 하시는 스님께 감사합니다

2019-09-12 23: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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