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3 북미 순회강연 (3) 캐나다 밴쿠버(Vancouver)
“장모님이 손자와 손녀를 차별합니다."

오늘은 산호세에서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밴쿠버(Vancouver)로 가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다시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 시애틀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오전 4시 30분 알람 소리와 함께 일어나서 108배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놓치고 사로잡혔던 순간이 생각나면서 참회를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숙소가 스탠퍼드 대학교 근처의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 풍경이 평화롭고 한가하게 느껴졌습니다.

인근에 페이스북과 구글이 위치하고 있어 아침에 공항으로 가는 길이 많이 막힌다고 합니다. 다행히 비행기가 30분 연착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식사를 한 후 8시 30분에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까지 배웅해준 이혜정 총무님과 김준자 님께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고, 출국 수속을 했습니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어 게이트 앞에서 휴식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공항에서도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았습니다.

12시 30분에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2시간 동안 비행 후 2시 30분에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시애틀과 캐나다 밴쿠버는 아주 가까웠습니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시애틀 인근에서 가장 높고 유명한 4,392m 높이의 레이니어 산(Mount Rainer)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 덮인 레이니어 산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한꺼번에 여러 대의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이민국을 통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밴쿠버 정토회 최내영 총무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1년 만에 밴쿠버를 찾은 스님과 반갑게 인사하고 다 함께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밴쿠버의 남쪽,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써리(Surrey) 지역에서 열렸습니다.

강연장에는 봉사자들이 강연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박수로 스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강연이 극장에서 열리는 관계로 무료 티켓이 배포되고 있었는데, 총 400석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은 혹시나 만석이 되어 돌아가는 분들이 생길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연 후 바로 시애틀로 돌아가는 일정 때문에 봉사자들과 먼저 단체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을 잠시 격려한 후 인근 지역으로 잠시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공원에서 만난 주민들의 대부분이 인도 출신들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밴쿠버 지역에 인도 출신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라고 하면서 놀라워하였습니다.

로비에는 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무료티켓을 발급하는 곳, JTS 홍보 부스, 환경실천 부스, 불교대학 홍보 부스 등 각종 볼거리가 넘쳐 났습니다. 밴쿠버 정토회 회원들이 얼마나 이번 강연을 열심히 준비하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400석이 모두 꽉 차서 강연장 안은 아주 활기찬 분위기였지만, 입장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즉문즉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 지역은 한국 청년들이 유학을 많이 오는 곳입니다. 1년 미만의 단기 유학생도 많습니다. 강연장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유학생의 참석률이 높았습니다.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하자 큰 박수와 환호 속에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객석 곳곳에서 ‘스님 환영합니다’라는 큰소리가 이어졌습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등장한 스님은 솔직한 대화가 강연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해 준다고 강조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자각이 일어나면 성질을 잘 내는 사람도 그 성질이 바뀔 수 있고, 화를 잘 내는 사람도 화가 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스님과 같이 살고 대화를 해도 스스로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이 자각은 교육이나 훈련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의 핵심은 스스로 자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에요. 지식을 많이 알게 하거나 군대처럼 훈련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뭔가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주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자각이야말로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대화도 특별한 주제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여러분이 주로 질문을 하는 게 남편 때문에 살기 힘들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술을 마시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살기가 힘들대요. 그러면 제가 묻습니다.

‘아니, 그런 남자하고 왜 같이 살아요?’
‘남편이랑 같이 안 살아도 됩니까?’
‘그럼요. 같이 안 살아도 되죠. 그렇게 힘들면 같이 살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본인이 ‘알겠습니다, 안 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저한테 되묻습니다.

‘그러면 애는 어떡하고요?’
‘애는 고아원에 갖다 맡겨야죠.’
‘어떻게 애를 고아원에 갖다 맡겨요?’
‘아, 그래요? 애 때문에 그렇다면 할 수 없네요. 같이 살아야죠.’
‘남편이 술 마시고 이러저러 한데 어떻게 같이 살아요?’(모두 웃음)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똑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하다 보면, 질문자 본인이 어떤 자각을 해요.

‘아, 이게 남편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구나.’

술 마시는 남편을 두고 내가 어떻게 할 거냐는 내 선택의 문제지, 남편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자각하면 이제 이 일이 내 일이 됩니다. 더 이상 남을 탓하지 않게 돼요.

예를 들어 등산을 가려고 하는데 비가 온다면, 날씨를 탓하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할지 선택을 하면 되는 겁니다. 비가 안 왔다면 등산을 갈 텐데, 비가 오니까 비를 맞으면서 갈 건지, 비 맞으면서까지 굳이 갈 필요가 있는지를 다시 선택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날씨를 탓하거든요. ‘내가 산에 가려고만 하면 비가 오더라!’ 이런 식이에요.(모두 웃음)

여러분들은 자꾸 남을 탓하고,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을 찾아보면 ‘같이 살아라’, ‘같이 살지 마라’,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씀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다만 미워하지는 마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건 탓할 일도 아니고, 괴로워할 일도 아니고, 미워할 일도 아닙니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합니다. 비가 안 올 것이라 예측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비가 오는 새로운 환경이 된 거예요. 이럴 때 다시 나는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건 내 선택의 문제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얘기가 재미없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듣던 사람들은 ‘아, 저건 저 사람의 문제다’ 하는데 본인만 계속 남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와 대화하면서 본인은 벌써 ‘아, 내 문제구나’ 하고 자각을 했지만, 옆에서 듣던 사람들이 괜히 ‘아니, 스님은 어떻게 그런 남자하고 계속 살라고 그래요!’ 이렇게 얘기할 때도 있어요.(모두 웃음)

질문하는 본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본인이 빨리 자각할 때도 있고, 본인의 문제라서 본인이 도저히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즉문즉설은 그런 대화예요. 그러니 대화를 할 때 솔직하게 얘기해야 해요. 책에서 본 얘기를 가지고 하는 대화는 재미가 없어요. 그저께는 LA에서 강연을 하고, 어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연을 했는데, LA에서 한 강연을 청중이 더 재미있어했어요. 왜냐하면 질문자들이 솔직하게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60대 여성분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요새 외롭게 혼자 살다가 10살 아래 젊은 남자를 만났는데 내가 남자 복에 웬일인가 싶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오래 가게 할 수 있을까요?’ (모두 웃음)

또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해요.

‘제가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귀찮아서 혼자 살다가 벌써 60대 중반이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외로워서 대화가 되는 좋은 사람 없을까요?’

이렇게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면 대화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 와보니 젊은 남성분들이 주로 질문을 하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왜 살아요?’ 이런 식의 질문이어서 그랬습니다. ‘왜 살아요?’라고 묻기에 제가 이렇게 답했어요. ‘안 죽어서 삽니다.’(모두 웃음)

즉문즉설의 가장 핵심은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의문이든 뭐든 어떤 얘기를 해도 좋지만,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은 밤새도록 얘기해도 끝이 안 납니다. ‘하느님을 믿어야 할까요, 안 믿어야 할까요?’ 이런 얘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안 나요. 어떤 분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기에 ‘그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릅니다’라고 답했어요.(모두 웃음)

제가 강연을 재미있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저도 좀 기여를 하지만, 질문이 어떤 질문이냐가 중요해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대화가 쉽고, 자꾸 머릿속에서 생각한 내용을 얘기하면 대화가 어렵습니다.

재미도 있고 유익한 대화가 되려면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아요.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가장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욕을 하진 말고요.” (모두 웃음)

스님의 이야기에 질문자들의 마음도 활짝 열렸습니다. 덕분에 아주 솔직한 고민들이 터져 나오며 흥미진진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손자와 손녀를 차별하는 장모님

“나이가 좀 많이 들어서 결혼했습니다. 첫 아이인 딸을 캐나다에서 낳았을 때 장모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아이를 너무너무 예뻐하셨습니다. 1년 반 뒤에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남자아이를 보신 뒤로는 큰아이를 안 예뻐하십니다.(모두 웃음)

장모님이 집에 오시면 저는 참 좋긴 하지만, 큰아이한테 어떤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아서 아빠로서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트라우마는 되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3년 내내 돌보고 있으면 트라우마가 될 수 있지만, 몇 달 와 있다가 가는 정도는 트라우마가 안 돼요. 엄마처럼 계속 같이 있는 사람이 차별할 때는 트라우마가 되지만, 밖에서 잠시 와서 한두 달 있으면서 한 말과 행동은 그렇게 큰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아요.

다만 질문자가 자꾸 장모님을 문제 삼으면, 그 모습이 오히려 애한테 트라우마가 됩니다. 질문자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애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질문자가 그걸 자꾸 문제 삼으면 애도 ‘아, 저게 큰 문제구나’ 이렇게 됩니다.”

“큰 딸은 7살입니다. 이제 조금씩 삶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큰 딸한테 ‘할머니는 시골에서 오셨기 때문에 남자아이를 더 좋아할 때도 있다’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얘기해주는 게 좋을까요?”

“시골에서 왔기 때문에 남자아이를 더 좋아한다는 말은 안 맞아요. 그건 질문자가 아이에게 안 맞는 논리를 얘기하는 거예요.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를 좋아한다’라고 해야 맞지요.(모두 박장대소)

시골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나도 어른이고 아빠이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딸인 너를 더 좋아한다’ 이렇게 얘기해주면 돼요. ‘아빠가 너를 더 좋아하는 것이나 할머니가 손자를 더 좋아하는 것이나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이해하도록 얘기해주는 게 필요해요.”

스님의 재치 있는 답변에 청중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영어가 서툰 데다 가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 때문에 이민 생활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민 생활에 적응이 안 돼요

“4년 전에 처음 이민을 결심하고 가족들과 준비해서 작년에 이민을 왔습니다. 언어, 직업, 문화 등 모든 걸 다 새로 시작해야 하니까 쉽지가 않아요. 나름대로 빨리 적응해보겠다고 직업도 구하고 영어학원도 다니면서 열심히 살아왔거든요. 지금도 직장 다니면서 나름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문제는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니까 그 역할을 당연히 해야 하는데, 제 삶이 좀 피폐해지니까 항상 쫓기는 기분으로 살고 있어요.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까 집에 와서도 예민해지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려고 이민을 왔는데 실제로는 화를 내는 경우가 잦아졌어요.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질문자가 돌이켜봐야죠. 이렇게 쫓겨 가면서 긴장 상태로 살 바에야 한국에 살지, 무엇 때문에 여기 왔어요?”

“어느 정도 힘들 거란 생각은 했지만...”

“어떤 게 구체적으로 힘들어요?”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가족들과 의논하면 되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내가 직장이 있어서 가장의 책임을 다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던 장점이 없어졌어요. 한국에서는 친구관계, 가족관계, 학벌 같은 뿌리가 있어서 그 힘으로 내가 어떤 책임을 좀 더 지는 역할을 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여기 오면서 뿌리가 뽑혔잖아요. 아무런 내 장점이 없단 말이에요. 한국에서는 내가 아이보다 영어를 잘하거나 사회를 더 잘 알지 몰라도, 여기 와서 2~3년 살다 보면 애가 나보다 더 잘해요. 그리고 어쩌면 여기 와서는 부인이 나보다 더 잘할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이미 내가 앞서가 있었고 다른 가족들이 뒤에 왔지만, 여기서는 다 똑같이 뿌리가 뽑혀서 새로 시작하기 때문에 질문자가 제일 더딜 수도 있어요. 가령 1960년대 농촌에 살고 있던 40살 된 아버지와 20살 아들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농사를 짓는 것에 있어서는 아버지가 더 경험이 많고 유능해요. 그런데 이 부자가 농촌을 버리고 울산 현대중공업에 나란히 취직해서 용접을 배워 일한다면 아버지와 아들 중에 아들이 더 빨리 적응을 하겠죠. 그것과 똑같아요.

그러니 질문자가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 이런 의무감을 지나치게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의무감을 갖는다고 해서 꼭 그게 실행되는 게 아니니까요. 이곳에 이민을 왔으면 우선 여기 상황에 맞게끔 가족이 의논해서 역할을 조금 나누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지만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벌어서 가족이 다 먹고살았지만 여기 와서는 내 벌이가 그 정도 안 된다면 부인도 직장을 구하든지 해야 해요. 한국에서는 아이들 용돈을 많이 줄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용돈을 줄이든지 못 주든지 할 수밖에 없어요. 이에 대해 가족들과 의논을 해야 합니다.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요. 그렇게 혼자 책임지려다가 질문자 스스로 지쳐서 화내고 짜증내면 이게 가정에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책임의식을 갖는 건 좋지만, 책임을 지겠다고 각오를 한다고 해서 책임져지는 일이 아니에요.

즉문즉설에서 여러분이 제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질문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모른다고 대답해주는 게 좋아요,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말을 길게 하는 게 좋아요? ‘아이고,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이렇게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모두 웃음)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려면 말이 길어지고, 시간도 낭비하고, 듣는 사람도 지루해집니다. 그러니 부담을 갖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아요.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때 사랑이 더 깊어져요.

첫째, 그렇게 해서 질문자가 ‘가장’이라는 부담을 좀 줄이는 게 좋습니다. 이제 가장은 없어요. 그냥 같이 협력하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어떻게 역할분담을 할 것인지 가족과 같이 의논해서 정하세요.

대신, 질문자가 이런 책임을 같이 나누려면 의사결정을 할 때 독선적인 면을 좀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결정은 자기가 하면서 의무는 공평하게 나누자고 해요.(모두 웃음) 여자들은 의견은 공평하게 말해보자고 하면서 돈은 ‘네가 벌어와라’ 이러고요.(모두 웃음)

이렇게 되면 가정불화가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예전과 같은 책임을 못 진다면, 책임도 나누고 권리도 같이 나눠야 합니다. 아이들한테도 아빠로서 막 큰소리치고 윽박지르면 안 되고, 항상 의논하는 자세를 갖춰줘야 해요. 부인한테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하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못할지 몰라도 가정이 더 화목해지고 화기애애해질 수 있어요.

둘째, 여기에서 영어가 잘 안 되는 건 감수해야 해요. 이건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영어가 안 돼가지고 일부러 영어만 쓰는 애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건 좋아요. 영어를 빨리 배우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제가 지금 영어를 제일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서양 여자와 한 3년 동안 같이 사는 거예요. 저는 결혼을 안 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질문자는 영어를 빨리 배우겠다는 이유로 부인을 놔두고 다른 여자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모두 웃음) 그러니 영어는 조금 더디게 배울 생각을 해야 해요.

영어로 말하고 듣는 것이 화두처럼 확 막혀야 해요. 한국 사람들과 있으면서 계속 한국말을 쓰면 영어가 안 늘어요. 말이 안 돼서 손짓 발짓도 막 동원해야 영어 실력이 빨리 늘어요. 그리고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실력이 안 늘어요. 질문자가 영어 못하는 줄 천하가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숨겨봤자 숨겨지지도 않아요.(모두 웃음)

말도 앞뒤가 안 맞아도 그냥 막 하세요. 단어만 마구 나열하고, 급하면 한국말과 영어를 반반 섞어 쓰기도 하고요. 그런 뻔뻔함이 있어야 영어 실력이 늘어납니다. 영어 못하는 것을 자꾸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한국에서 살다 왔으니 영어 못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가벼워진 질문자의 얼굴을 보며 청중도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현장에서 13명이 질문을 하고 싶다고 신청했지만, 시간 관계상 10명이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아주 솔직한 고민들을 털어놓아서 웃음이 빵빵 터졌습니다.

  • 캐나다에 유학 온 지 1년이 되었습니다. 너무 외롭습니다. 여자 친구도 사귀고 싶고, 유학 생활도 너무 힘듭니다.
  •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토플이나 토익 등 해야 할 많은 일들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 중간이 없이 극단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데, 평범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스님은 어떤 계기로 출가를 하게 되었나요?

  • 고3 학생인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 지나치게 배려심이 많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14살 아들이 걱정됩니다. 어떻게 아들을 도와야 할까요?
  • 한두 살 되는 영유아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아기들이 감당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을 도와드리지 못해 마음이 불편합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관점을 바꾸면 가볍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 강조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따끔하게 혼내는 어투 속에 부모가 가져야 할 따뜻한 사랑과 냉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명한 답변 속에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강연을 시작한 지 2시간 20분을 넘어서자 스님은“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너무 좋은 것도 오래 하면 안 된다” 라고 하면서 대화를 하지 못한 세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_“내년에 다시 오면 질문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겠다”_라고 말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이런저런 인연을 갖고 찾아온 분들과도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목사님도 찾아와서 스님에게 책을 선물했고, 야단법석을 영어로 번역한 분도 찾아와서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극장 관계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하고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강연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있었던 봉사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묘덕 법사님과 봉사자들이 마음 나누기를 하는 동안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마음 나누기와 물품 정리를 모두 끝낸 후 미국 시애틀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밴쿠버 남쪽 지역에서 한 관계로 국경까지 오는 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국 입국 수속을 한 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새벽 1시에 숙소에 도착하여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미국 산호세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다시 육로로 밴쿠버에서 시애틀로, 하루에 두 번이나 국경을 넘나들면서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시애틀 정토법당에서 북미 서북부지역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위해 수계식을 한 후 시애틀 밸뷰 지역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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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화

가정이 협력하여 잘 지내기 위해선 의무이행이 잘 되어야 하고 권위를 버린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김니다.

2019-09-10 06:31:50

하심

오늘은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손자이야기에서 빵~터졌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_()_

2019-09-08 22:00:07

무지랭이

나, 여기, 지금에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2019-09-08 11: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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