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12 북미 순회강연 (8) 미국 몽고메리(Montgomery)
"욱하는 성격, 고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앨라배마주로 이동하여 몽고메리(Montgomery)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합니다.

새벽 3시 30분, 어둠이 조용히 내린 가운데 108배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스님은 어제 낮 이동 중에 차 안에서 휴식을 했기 때문에 그제 밤과 마찬가지로 내년 일정을 계획하고 업무를 보며 밤을 새웠습니다.

새벽 4시 30분, 오스틴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둥그런 보름달이 하늘에 떠있습니다. 내일이 추석 한가위라는 게 새삼 다가옵니다. 한국은 추석 때 가족들과 반가운 해후를 하지만 미국은 11월 셋째 주인 추수감사절이 가족들과 만나는 가장 큰 명절입니다. 오스틴 공항에 도착 후 숙소를 제공하고 이른 새벽에 공항까지 바래다준 원호석 님께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공항은 많은 인파로 혼잡하였습니다. 조금 늦게 나왔으면 힘들 뻔했습니다. 오스틴 공항에서 2시간 30분간 비행기로 이동하여 조지아주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상섭 님과 이재우 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1년 만에 만난 것을 반가워하며 스님과 인사를 나눈 후 몽고메리까지 2시간 30분 동안 자동차로 이동하였습니다. 오스틴에서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하여 몽고메리에 낮 12시에 도착했으니 이동하는데 꼬박 7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몽고메리(Montgomery)는 미국 앨라배마주 중부에 있는 주도입니다. 1861년 5월 정부 소재지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로 이전할 때까지 아메리카 연합국(아메리카 남부 연합) 최초의 수도 역할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현대자동차의 미국 거점지이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공장이 세워지면서 한인 수가 크게 늘어난 지역입니다. 앨라배마주는 남부 흑인들의 권리 신장에 영향을 준 인권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서 미국 남부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곳입니다.

스님은 지난 2017년 강연 이후 두 번째로 앨라배마 정토법당을 방문했습니다. 이 법당은 스님이 항상 얘기하는 ‘자기 집을 법당으로 만든 곳’입니다.

용수진, 이상섭 부부는 ‘나는 법을 전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라는 명심문을 가지고 몽고메리 지역에서 해외 전법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가장 먼저 법을 전해서 부부가 함께 사는 집을 법당으로 만들고,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진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이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먼저 2층에 위치한 법당으로 가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렸습니다. 앨라배마 정토회원들도 2년 만에 몽고메리를 찾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하였습니다.

스님과 수행팀은 정토회 회원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한 뒤 빨래를 하거나 업무를 보면서 오랜만에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이옥선 님 부부가 와서 식사 준비를 하였습니다. 두 분은 오늘 하루 가게 문을 닫고 식사 준비와 강연 자원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내일이 추석이라 송편도 준비해 왔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몽고메리 미술관(Montgomery Museum of Fine Arts) 내 강당입니다. 강연장은 주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어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여서 산책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강연장에 스님이 도착하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대부분 스님을 실물로 처음 보는 분들입니다.

스님도 반갑게 봉사자들과 인사를 하고, 강연 전까지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몇몇 분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합니다.

7시가 되자 스님은 큰 박수와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청중들은 앨라배마를 찾은 스님에게 큰 박수를 보내었습니다.

“인생살이에는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자기가 좋을 대로 살면 돼요. 내가 좋을 대로 살되 두 가지 문제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첫째, 내가 좋을 대로 사는데 나한테 괴로움이 돌아온다면 모순이지 않습니까? 내 이익을 추구했는데 손해가 오거나, 내 즐거움을 추구했는데 괴로움이 온다면, 이 문제는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둘째, 내가 자유롭게 살 권리는 있지만, 남을 해칠 권리는 없습니다. 내가 이익을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칠 권리는 없습니다. 내가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내가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있지만, 남을 괴롭히는 말을 할 권리는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먹든 자유이지만, 술을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내 자유이지만, 남의 삶을 방해하는 그런 삶을 살 권리는 없어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유의를 해야 돼요.

내가 혼자 산다면 그냥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그런데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해치게 되면 그 사람은 그것을 방어하려고 대응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은 나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의 이익을 추구했던 게 도리어 나에게 손실이 되어 돌아오고, 내가 즐거움을 추구했던 게 도리어 나에게 괴로움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해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어떤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자유롭게 생활을 하면 됩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실의 우리는 자유롭게 살지 못합니다. 마치 누에고치가 자기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히듯이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것이 도리어 나를 속박하고 나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요. 이걸 불교 용어로는 자업자득,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다’라고 표현합니다. 자기의 어리석음이니까 남을 탓할 수는 없어요. 자기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우쳐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서로 대화가 필요해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되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아무리 야단을 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자기의 문제를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문즉설을 할 때는 여러분들이 자기 인생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책에서 봤던 이야기, 네이버나 구글에 물어서 답을 알 수 있는 지식적인 것은 이 자리에서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 문제는 네이버나 구글이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몰라서요? 아니에요. 답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게 답일까요? ‘답은 없습니다’가 답이에요. 대화를 하다가 스스로 ‘어, 이건 안 되겠다’ 혹은 ‘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하고 결국 자기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러니 어떤 얘기를 해도 대화의 소재일 뿐이지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남편이 바람피웠다는 얘기, 남편과 갈등이 있다는 얘기, 다 대화의 소재일 뿐이지 그 자체는 중요한 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삶의 구체적인 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문제를 풀어나간다고 이해하시면 돼요.”

봉사자를 포함해 총 110여 명이 강연에 참가했고 그중 5명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 저는 욱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바꿔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 하고 싶은 게 정확히 없어요. 돈은 많이 벌고 싶은데요, 잘하는 것도 딱히 없고 싫어하는 것도 없는데 진로를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 오랜 유학생활을 끝내고 영주권을 진행하고 있는데 직장에서 영주권을 빌미로 갑질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긴 시간을 스트레스 없이 현명하게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까요?
  • 한국과 미국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소득정책이 시행되어 실패하게 된다면 어떤 요인 때문에 실패할 수 있을까요?
  • 최근에 깨달음장 수련을 하였는데 108배 수행이 결심한 대로 잘 안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첫번째 질문인 욱하는 성질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스님의 즉문즉설을 많이 봤습니다. 아이들과 집사람이 가서 꼭 질문을 하고 좋은 답변을 얻어서 아빠가 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모두 웃음)

저는 갑자기 저도 모르게 욱하고 올라오는 성격이 있습니다. 제가 그걸 알고 나서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까, 어린 시절부터 종갓집 종손으로 크면서 생긴 제 병인 것 같아요.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을 빨리 배우고 싶어 하는 욕심 때문에 제 감정을 숙여야 하는 것에 길들여진 것도 원인 것 같고요. 어느 순간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니가 성격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이 지금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나옵니다.

심지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아주 저렴한 데에서 넣고 싶어서 주유소를 찾아 돌고 돌아서 기름을 넣다가 ‘아, 이렇게 싼 데를 찾아서 여기까지 돌아서 왔나?’ 이러면 욱하는 성질이 올라오는 거예요. 또 아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하고 제가 정해놓은 것에서 아이들이 벗어나면 또 갑자기 욱하고 올라 오더라고요. 평소에는 애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애들도 잘 따르고 좋아하는데, 아버지의 이런 성격 때문에 애들이 주눅 드는 것이 느껴져요. 그래서 욱하는 성격을 한 번 고쳐보고 싶어요. 애들도 원하고 저 역시도 원해서 30년 피웠던 담배도 끊고 원하는 대로 하나하나 고쳐가고 싶습니다. 그 마지막 완성을 성격을 고치는데 도전을 하고 싶어서 오늘 스님을 찾아뵙고 여쭙습니다.”

“그 정도는 사는데 지장이 없어요. 그래서 안 바뀌는 거예요. 사는데 지장이 있으면 바뀌어요. 만약에 한번 욱하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하게 된다면 욱할까요, 안 할까요? 옆에서 욱하다가 총 맞아서 죽는 사람을 계속 보면서 살면 욱해질까요?”

“참을 수 있겠죠.”

“참는 게 아니예요. 옆에서 욱하다가 바로 죽는 걸 보는데 욱해질까요, 안 해질까요?”

“무의식적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총 맞아 죽는 걸 보면 무의식적으로도 안 나와요. 그래서 사는데 지장이 없어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제가 말하는 거예요. 욱하면 조금 손실이 있겠지만, 그 정도 손해 보는 것은 사는데 지장이 없어요.

예를 들어 한 달에 백만 원을 버는데 한 번 욱할 때마다 백 원이 손해 난다고 해봐요. 백 원도 아깝기는 하지만 ‘에이, 그 정도 없어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렇게 됩니다. 자기가 욱하는 것은 나쁘지만 평소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기 때문에 그거 안 고친다고 마누라가 이혼하자거나 애들이 집을 나가는 수준은 아니라는 거죠.”

“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안 고쳐진다는 말이에요. 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요.” (모두 웃음)

“제 나름대로는 욱해야 되는 상황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을 하거든요.”

“욱해야 될 상황을 자기가 만드나요? 저절로 오는데요.”

“제가 설정을 자꾸 하는 것 같아요. ‘애들은 이래야 된다’, ‘기름이 싼 곳에서 주유를 해야겠다’ 이렇게요.”

“그런데 그게 고쳐지나요? ‘기름을 좀 더 싸게 넣고 싶다', '애들을 좀 더 잘 키우고 싶다’ 그런 건 못 고쳐요. 만약 그걸 고치려면 일부러 기름이 비싼 곳을 찾아다니며 기름을 넣으면 됩니다. ‘가능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비싼 기름을 넣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바꾸어 버리면 해결이 돼요.

그런데 ‘오늘부터 일부러 비싼 곳을 찾아가야 되겠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싼 곳을 가게 되지요. 그래도 일부러 비싼 데서 넣겠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돼요. 잔돈을 좀 버릴 각오를 하면 고쳐져요.

‘가능하면 옆에 있는 두 집 중에 10센트라도 기름이 비싼 곳에 넣겠다. 비싼 곳은 이유가 있다. 기름이 좋든지, 양을 제대로 주든지. 기름이 싼 곳은 이유가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저기는 기름을 속이든지 질이 나쁘든지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안 그러면 왜 싸게 주겠어? 그러니 비싼 게 낫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그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부처님이 왕일 때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겠다'라고 하니 아버지가 볼 때는 ‘이게 제정신인가, 아님 뭔가 좀 모자라나?’ 하는 생각이 들었겠죠. 아이도 있고 마누라도 있고 곧 왕이 돼야 하는 태자인데 왕도 안 되겠다고 하고 길거리에 나가서 거지 옷 입고 밥 얻어먹고 돌아다니겠다고 한 겁니다. 아버지가 볼 때는 ‘이 아이가 훌륭하구나’ 이렇게 생각을 할까요, ‘이 아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할까요?”

“전 그거는 뭐 그냥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해가 돼요? 굉장하네요. 그런데 부처님 아버지는 숨 넘어갈 때까지 그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는 애들은 이해가 됩니다. 부모들 때문에 화가 나는 거지, 아이들에게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여기는 아이가 13세가 되어야만 애들이 혼자 있거나 뭔가를 할 수 있어요. 저희 가족들이 같이 볼링장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 아이들이 10살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는데 팀으로 와서 볼링을 치고 떠드는 겁니다...”

“한국애들이에요, 외국애들이에요?”

“한국애들요.”

“한국애들은 5살짜리도 자기가 알아서 잘 놀아요.”

“여기는 미국인데...”

“미국이라도 한국사람은 한국식으로 노는 거예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문제네요.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서 좀 살았다고 미국식으로 놀겠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하면 한국 사람이 볼 때는 ‘지가 언제부터 미국에서 살았다고?’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잘못했네요.”

“잘못한 게 아니라, 미국에 살아도 한국 사람들은 어떤 건 미국식으로 하고, 어떤 건 한국식으로 하고 그래요. 요즘은 조금 덜한데, 옛날에는 이민 오신 분들 부부갈등이 참 많았어요. 왜냐하면 남자들은 남자 중심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한국식으로 하면서 여자들에게는 ‘여자도 돈 벌어라’ ‘너도 직장 나가라’ 이렇게 미국식으로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가장이니 돈을 벌어야지’ 이것은 한국식으로 하고, 남녀평등은 미국식으로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맨날 싸워요. 제가 왜 이민 가족들이 한국 부부보다 더 싸울까 궁금해서 양쪽 얘기를 들어보니까 서로 자기한테 유리한 주장을 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유리한 것은 여기서도 한국식으로 하려고 하고, 한국에서 불리했는데 여기 와서 유리한 것은 미국식으로 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가족을 이루고 살아도 남편은 직장일 끝나고 나면 동료하고 회식하고 술 먹고 놉니다. 여자들은 동창 모임이니 학부형 모임이니 이렇게 놀고요. 아이들은 자기 친구끼리 나가서 놀아요. 그러니까 잠만 자러 집에 오지 놀 때는 끼리끼리 다 이렇게 놉니다. 그런데 여기 오면 어때요? 주로 가족끼리 어울려서 놀지 않습니까?"

"네."

"여기도 현대 자동차가 들어와 있으니까 한국의 회식 문화가 있죠? 미국에 왔는데도 일 끝나고 회식하러 한국식 술집에 가고, 한국식으로 어울려 놉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왜 미국에 와서 미국식으로 안 하고 한국식으로 하느냐? 옆집에 미국 사람 보니까 가족끼리 어울려 노는데 당신은 왜 맨날 그렇게 회식하고 돌아다니냐?’

이것은 기준을 서로 자기한테 유리한 대로 적용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입니다. 지금 질문하신 분도 자기가 볼 때 ‘아, 이거는 미국식이 좋겠다' 이 생각이 드니까 그 기준에서 문제제기하는 거예요. 자기도 아마 미국 와서 살면서도 한국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있을 거예요. 누가 문제제기하면 ‘우리가 미국 사람이냐? 한국 사람이지’ 이렇게 변명을 해요. 그래서 자기가 버럭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그래요. 버럭 하는 게 자기가 좀 심할 뿐이죠.

분석하면 두 가지 이유는 있어요. 첫째, 자기가 어릴 때부터 심리적으로 억압을 받은 게 있어요.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한 게 아니라 뭔가 긴장하고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좀 강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퍽 터져 나오는 게 있어요.

둘째, 자기가 성격이 조급해요. 조급해서 뭐든지 빨리 하려고 해요. 천성은 고치기가 어려워요. 버럭 하는 게 자기 천성인데 그 천성을 고치려면 첫째, 자각을 해야 돼요. 오늘도 여기 올 때 자기 스스로 ‘아, 내가 이렇게 버럭 하니 아빠 이미지도 나빠지고 마누라도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가족한테 피해를 주고 살아서 되겠나? 내가 이것 좀 고쳐야 되겠다’ 이렇게 자각을 해서 왔어야 됩니다. 그런데 부인이 ‘여보, 가서 좀 물어보고 고치세요’ 하고, 애들도 ‘아빠, 가서 좀 물어보고 고치세요' 해서 왔잖아요. 이건 자각이 아니에요. (모두 웃음)

그래서 제가 애초에 고치기가 어렵다고 말한 겁니다. 여기 온 동기부터도 자각이 아니고 억지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억지까지는 아니라도 어쨌든 자기 스스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개선을 해야 된다' 이렇게 자각을 해야 됩니다. 제가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그냥 두라고 한 이유는, 의식의 세계에서는 고쳐야 된다고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이 정도가 뭐가 문젠데? 나만 그러나? 안 그런 사람 누가 있어?’ 이런 것이 마음 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개선이 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담배를 끊어야지’ 하면서도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뭐 담배 좀 피우다가 일찍 죽으면 되지, 담배 꼭 끊고 오래 살아서 뭐하나?’ 하는 속삭임이 계속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옆에서 자꾸 ‘끊어라, 끊어라' 하면 결심해서 하다가 또 실패하고, 하다가 또 실패하고 그래요. 그런데 본인이 병원에 갔는데 폐에 새까만 니코틴이 붙어있는 사진을 본다든지, 병이 나서 의사가 ‘당신 담배 더 피우면 폐암 걸릴 위험이 있다'라고 하든지 해서 본인이 ‘어, 이러다가 나 죽겠네' 하고 탁 자각이 들면 담배를 30년 피웠어도 딱 끊어집니다.

자각이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어, 이거 문제다' 이런 것이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자각은 마음에서 일어나야 되는데 대부분은 어디에서 일어나나요? 자꾸 옆에서 뭐라 뭐라 하니까 생각과 의식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긴장을 하면 지켜지는데 방심하고 있으면 무의식이 항상 앞섭니다.

길은 두 가지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냥 살아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모두 웃음) 아내나 애들이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세요.

‘그래. 아빠가 그런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그게 내 천성인데 어떻게 쉽게 고치겠니?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바라지 말고, 아빠가 성질은 더럽더라도 일은 잘해. 그러니 돈은 많이 벌어다 줄게. 대가를 다른 걸로 지불해줄게. 이렇게 고치기 어려운걸 자꾸 기대하면 너희도 나를 싫어하고 나도 힘들고 하니까 그냥 살자.’

자기 천성이 그러니까 대신에 다른 걸 좀 잘하는 겁니다. 성질을 버럭 냈다 하더라도 금방 반성을 해야 됩니다. ‘너 때문에!' 라고 하지 말고 ‘아이고, 내가 또 버럭 했구나’ 이러면 됩니다. ‘네가 공부를 안 하니까 그렇지’ 이러면 안 되고 ‘아이고, 내 성질이 문제다’ 이렇게만 돌이키면 안 고쳐도 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각을 하면 점진적으로 고쳐져 나갑니다. 단박에 고치려면 자기가 굉장히 충격을 받아야 해요. 이 버럭 때문에 전재산을 날린다든지, 버럭 때문에 총 맞아 죽을 뻔 했다던지, 이런 심각한 경지에 처하면 단박에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단박에는 안 고쳐져요.

고치려고 각오하고 결심했는데 안 고쳐지면, 자학 증세가 생겨요. ‘내가 문제다. 내가 이것 하나도 못 고치고’ 하면서요. 질문자는 괜찮은 사람인데 괜히 이거 하나 못 고친다고 자기가 무슨 큰 문제 있는 사람처럼 자기를 비하하게 돼요. 그건 결과적으로 좋은 게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예”

“그런데 타인에게는 좀 문제가 있어요, 없어요? 나는 버럭하고 말지만, 애들이나 아내나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요, 어때요?”

“힘들어요”

“그러니까 사과를 해야 될까요, 안 해야 될까요?”

“사과해야죠.”

“버럭 하고는 사과를 빨리 해야 돼요. ‘아이고, 내가 또 버럭 했네, 미안하다. 내가 성질이 더러워서’ 이렇게 사과를 빨리 하면 사는데 큰 지장이 없어요. 이것 때문에 아내가 못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다른 좋은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같이 사는 거예요. 그래서 성격은 못 고치더라도 다른 서비스를 해야 돼요. 버럭 한 번 할 때마다 설거지를 열심히 한다든지, 버럭 한 번 할 때마다 선물을 사준다든지, 그러면 아이들이 ‘아, 우리 아빠가 버럭 하면 좋겠다. 나한테 이익이 되니까’ 이렇게 돼요. 그렇게 되면 버럭 해도 그것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안 됩니다. (모두 웃음)

우리가 안 되는 거를 너무 고치겠다고 하면, 아이들도 ‘아빠! 고치겠다고 했는데 왜 못 고쳐?’ 하고, 아내도 ‘여보! 결심해도 안 되네?’ 하니까 자존심 상하는 일만 자꾸 생기고, 자기도 자기를 자학하게 돼요. 그러니까 이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고치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해보세요. 첫째, 이대로도 괜찮다, 둘째, 버럭 하고 나면 빨리 반성한다. 셋째, 대신에 다른 것을 잘한다. 넷째, 꾸준히 자각한다. 버럭 하는 걸 고치려고 하지 말고 버럭 할 때 버럭 한 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빨리 반성하고 사죄하면 됩니다."

이렇게 해나가면 어느덧 개선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박수)

“이 분은 사실은 크게 문제가 안 돼요. 그 이유는 버럭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버럭 할 때 ‘마누라가 그렇게 하니까 내가 성질나지', '애들이 그렇게 하니까 내가 성질나지’ 이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버럭 하는 성질이 있다고 알고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문제라는 것을 알고 질문하기 때문에 버럭 하는 것이 피해가 좀 있지만 못 살 정도로 큰 피해는 없다는 얘기예요.”

5명과의 대화로도 벌써 2시간을 넘어서자 스님은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절을 안 해도 됩니다. 선택 사항이에요. 절을 하면 나한테 좋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는 겁니다. 안 했다고 죄가 되나요? 죄가 안 돼요. 절 안 했다고 무슨 잘못이 있나요? 없어요. 그러나 더 나은 이익을 위해서 내가 하기로 했다면 반드시 저항이 따릅니다. 이 저항을 이겨내는 방법은 뭘까요? 그냥 하는 겁니다.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거예요. 저도 7시에 강의를 하기로 했으면 7시 되면 그냥 합니다. 몸이 아픈 날도 하고, 졸린 날도 하고, 눈 감고도 해요.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면 되지 계속 저 쪽에 앉아서 ‘아이고, 졸린데 오늘은 안 하면 안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의 번뇌만 늘어나는 거예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 인생이 피곤해요.

여러분들 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늦잠 잔다고 문제 있는 거 아니고, 직장 없다고 문제 있는 거 아니고, 혼자 산다고 문제 있는 거 아니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아무리 문제가 있다고 해도 토끼보다는 나을까요, 안 나을까요? (대중 웃음)

집에 있는 강아지보다 나아요, 안 나아요? 나아요! 강아지, 토끼도 다 잘 살아요. 다람쥐도 다 잘 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내가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걸 ‘자존’이라고 해요. 이걸 전제로 딱 깔고 '그런데 내가 다람쥐보다 좀 나아야 되지 않겠느냐' 한다면 이렇게 하세요. 자기밖에 모르는 다람쥐보다 조금 더 나으려면 옆에 있는 배고픈 사람 좀 도와주는 겁니다. 그걸 안 했다고 죄인은 아니에요. 하면 좋은 일이에요. 절을 하면 좋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좋다, 술을 적게 먹으면 좋다, 이건 자기 선택이에요. 그러나 그걸 안 한다고 큰 죄인은 아니에요.

그런 관점에서 우선 자기 긍정을 하고요. 조금 더 나은 인생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래, 짜증 내는 것보다는 웃는 게 낫겠다' 싶으면 웃으면 돼요. 버럭 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버럭 안 하면 애들이나 아내한테도 좋다’ 한다면 약간 노력이 필요합니다. ‘빨리 고치는 게 좋겠다’ 하면 전기 충격기 사와서 버럭 할 때마다 지지세요. 전기 충격기가 좀 심하다 싶으면, 한 번 버럭 할 때마다 3000배 절을 하세요. 이게 전통적인 불교 방식이에요. 그런데 한 번 화내고 3000배 하면 다음에 화내고 싶을까요, 안 내고 싶을까요? 버럭 올라오다가도 ‘아유! 또 3000배나 해야 돼?’ 이렇게 돼요. (모두 웃음)

이 징벌이 외부에서 강제로 주어지면 ‘까짓 거 맞지 뭐!' 이렇게 되어버리기 쉬운데, 자발적으로 자기가 자기한테 벌을 주는 방식은 개선의 효과가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아, 내가 한번 버럭 할 때마다 설거지를 한다', '내가 한번 버럭 할 때마다 3000배를 한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에게 처벌을 내리면 개선 효과가 매우 빠릅니다.

중독되는 것도 똑같습니다.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노래 부르고 술을 마시면, 많이 마셔도 중독될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사무실에 앉아 소주잔이나 맥주잔에 벌컥벌컥 마시는 것은 중독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술을 먹는지 안 먹는지 갖고 자꾸 평가하지 말고 ‘과음하면 몸에 나쁘니까 과음은 안 한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과음하고 중독은 조금 다릅니다. 중독은 습이 되어 버려서 자기가 자기를 절제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돼요. 자기가 선택해서 혼자 홀짝홀짝 마시면 습관이 빨리 들고 중독도 빨리 됩니다. 자기 스스로 하면 중독도 빨리 되지만 중독 치유를 자각에 기초해서 하면 치료 속도도 더 빠릅니다.

여러분들 지금 이대로도 다 괜찮아요. 너무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고쳐지지도 않아요. (모두 웃음) 지금도 괜찮은데 더 고치고 싶다면 그건 선택이에요. 선택을 해서 한 번 고쳐보겠다고 하면 뭐든지 다 고칠 수는 있어요. 고치기 어려울 뿐입니다. 그러니 욕심을 내지 마세요. 고치려면 첫째,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해야 합니다. 둘째,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누구나 다 개선해서 살 수 있어요. 늘 여러분들은 고치려다가 못 고치니까 자학을 해요. 너무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사세요.”

스님은 절을 하지 않아도, 버럭 하는 성질을 고치지 않아도, 뭘 하고 싶지 않아도 다 괜찮다고 합니다. 이대로도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씀이 따뜻한 격려로 느껴졌습니다.

2시간 30분간 열정적으로 강연을 한 스님에게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된 질문을 한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마음이 더 많이 가벼워졌고, 앞으로 화를 버럭 낼 때마다 손해 보는 것을 하나 정해놓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을 연습해 보겠다"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아침에 108배가 잘 안 된다는 분도 하기로 한 것을 가볍게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멀리 뉴올리언스에서 5시간 동안 운전해서 오신 분들은 스님 법문을 유튜브로 매일 시청하는데 오늘 직접 뵙게 되어 너무 기쁘고 다음에는 스님이 뉴올리언스에도 방문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앨라배마 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헌츠빌에서 오신 분은 스님을 만나 뵈러 오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근 지역에서 몇 시간씩 걸려 강연장에 오시는 분들은 일정은 고되지만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사인도 해주고 사람들이 셀카를 찍는 동안 잠깐씩 포즈도 취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앨라배마 강연을 무사히 마친 것을 기뻐하며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단체로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고 합니다. 총무님과 회원님들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학생 자원봉사자들과는 따로 사진을 찍고 격려해주고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다들 신나고 즐거운 경험인 듯합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들 수고했다고 인사를 한 후 내일은 오전 3시 30분에 애틀랜타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둥근 보름달이 하늘에 두둥실 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차례를 지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내일은 애틀랜타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BWI(볼티모어-워싱턴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3일 동안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에서 열리는 북미 동부지구 정토행자 대회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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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숙

버럭 하는 자신을 알아, 버럭 했을 때 알아차려 바로 사과하며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 하다는 말씀 깊이 세기겠습니다.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매일 해 나가는 일상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2023-05-05 21:15:55

고원

감사합니다 스님 하루팀님((()))

2023-05-05 20:51:21

바쁜 스님

늘 건강하세요

2022-05-01 13: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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