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20. 정토회 9차 천일결사 9차 백일기도 회향식, 10차 백일기도 입재식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벽 4시 반, 서울 서초 법당에 도량석이 울려 퍼집니다. 스님은 일찍 법당에 내려와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공동체 상주 대중과 함께 예불, 기도를 드리고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 게송 박자가 흐트러지자 스님이 마이크를 잡고 박자를 맞춰주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북미 순회강연을 잘 다녀왔다고 인사했습니다.

“3주 동안 북미주 동부, 서부 정토행자대회 및 강연에 잘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의 바른 법이 외국인에게도 보편성을 가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행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대중들을 위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주었습니다.

모든 괴로움은 나로부터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출가해서 자기의 욕망을 절제하면서 수행 정진하는 것은 참 드물고 귀한 일입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아주 소중해요.

일반인과 비교해서 보면 여기 사는 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수행자로서 바라본다면 많이 부족해요. 수행적 관점을 잡고 정진을 해서 자기 변화를 해야 하는데 출가해서 살면서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몸만 여기 있지 마음은 세속에 두고 있는지 여전히 세속적 기준으로 살고 있어요.

우리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내가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매일 아침마다 ‘모든 괴로움은 나의 무지로부터 일어난다’는 수행문을 읽잖아요. 그럼 화가 나거나 괴롭다가도 금방 ‘아, 내가 놓쳤구나. 내가 사로잡혔구나’ 하고 탁 돌아오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늪에 빠진 것처럼 괴로움에서 못 헤어 나와요. 옆에서 장대로 겨우 건져주면 조금 기어 나와 살았다가 며칠 못 가서 또 기어들어가요. 그러니까 굉장히 더딘 거예요. 전법은 커녕 자신을 건사하기에도 급급한 수준입니다.

수행은 절하고 명상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수행적 관점을 정확하게 잡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출가해서 수행을 해보려는 여러분을 보면 진짜 가슴이 아프고 뭐든지 도와주고 싶은데 계속 관점을 놓치고 헤매는 모습을 보면 좀 답답할 때가 있어요. 왜 자기 인생을 그렇게 낭비해요? 선택을 했으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죠.

우울증이나 어떤 정신질환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병은 쉽게 치료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늘 이야기했잖아요.

‘한 명이 꼴 보기 싫으면 내 수행의 대상으로 삼아라. 둘이 동시에 꼴 보기 싫으면 내가 병인 줄 알아라. 세명이 동시에 꼴 보기 싫으면 병원에 빨리 가라.’

제가 이렇게 기준을 알려줬는데도 수행자라고 하면서 그 기준을 잘 안 지켜요. 병원에 가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듯이 자기 혼자 못 헤어나는 수준이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병원에 가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병원에 탁 갈 수 있는 자세가 수행입니다. 남이 늘 병원에 가라고 해도 안 가고 버티는 건 바보예요.

겸손하게, 당당하게

자기가 좀 자기를 살펴보세요. 부처님께서는 천민 출신이라도 브라만 앞에서 당당하게 수행자로 살도록 가르쳤고, 교만한 왕자나 브라만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겸손하게 살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뭐가 잘났다고 고개를 쳐들고 온갖 이야기를 떠들고 재주 좀 있다고 잘난 척을 해요? 재주와 수행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리고 수행자가 돼서 뭐가 못났다고 기가 죽어서 살아요. 대통령 앞에서도 떳떳할 정도의 삶을 살아야죠. 기죽어 살지도 말고, 잘난척하고 다니지도 마세요. 부처님 말씀대로 내면은 당당하되 겉으로는 겸손하게 살고 말은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가능하면 하지 말고요. 업무적인 이야기, 수행에 관계된 이야기, 진지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면 가능한 말을 안 하는 게 좋아요.

바깥에서 사는 사람이 돈을 과시하든, 인기를 과시하든, 지위를 과시하든, 지식을 과시하든 그건 바깥세상이니까 괜찮아요. 적어도 출가한 수행자라면 수행적 관점을 꼭 쥐어야 합니다. 관점을 딱 잡고 있는데도 안 되는 건 우리가 서로 봐줘야 돼요. 그런데 본인이 관점을 놓치고 있다면 여기서 왜 사는 거예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거잖아요. 게으름 피우고 관점 놓치고 헤매고 그럴 바에 뭐 때문에 여기 살아요? 여기서 3년을 공부하면 자기 까르마를 극복해야죠. 비실비실한 사람도 여기 와서 딱 3년이 지나면 일취월장하는 수준이 되어야죠. 수행은 3년 만에 끝을 내버려야 해요. 자기 문제는 3년 만에 끝을 내고 그다음에 세상에 필요로 하는 일을 뭐든지 하는 거예요. 이게 보디 사트바입니다.

그래서 이 공동체 생활이 쾌활해야 해요. 우리가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쾌활한 재미라도 있어야 되잖아요. 인상 쓰고 살면 여기 사는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면 차라리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실컷 먹는 게 낫죠.

항상 마음을 가볍고 기쁘게 가져보세요. 몸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리하면 안 돼요. 마음만 먹으면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때로는 쉬어주고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해야 해요. 몸이 아파서 치료받는데 눈치 볼 거 없어요. 차가 고장 났으면 고쳐야지 차를 발로 찬다고 되겠어요? 그렇게 해서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가르침은 매서웠지만 행자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따뜻했습니다. 행자들은 한 마디, 한 마디 밥을 먹듯 스님의 가르침을 꼭꼭 씹어 삼켰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입재식이 열리는 세종대로 이동했습니다.

8900일째 기도

27년 전 정토회에서는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워 살기 좋은 세상을 실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만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9번째 천일기도 중 10번째 백일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8,900일을 지나 9천 일을 향해갑니다.

입재식은 한 지역에서 행사를 하고, 전국 정토법당과 해외 정토법당으로 생중계합니다. 10차 입재식은 서울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렸습니다.

오전 10시, 먼저 제9차 천일결사 중 9차 백일기도 회향식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백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전국에서 총 7천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개막 공연은 노원 정토회 전통무용가 이상연 님과 안양 정토회 회원들이 준비했습니다. 전통무용인 승무로 시작해서 현대무용으로 이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주제는 ‘무명에서 빛으로’였습니다.

하얀 고깔에 긴 장삼을 입은 무용수가 홀로 국악 장단에 맞춰 허공으로 뿌리치는 춤사위와 하늘을 향하여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이 아름다웠습니다. 법고가 둥둥 울리자 안양 정토회 회원들이 서로 싸우고, 자신을 학대하고, 방황하는 등 갖가지로 괴로워하는 중생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법고가 무대 뒤로 사라지자 색소폰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You raise me up”(당신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네)라는 곡에 맞춰 괴로워하던 중생들이 행복과 평화를 찾아가는 모습을 춤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한 편의 멋진 공연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멋진 개막공연을 보고 지난 백일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로 알차게 채운 백일이었습니다.

이어서 지난 백일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해온 분의 수행담을 들어보았습니다. 인천 정토회 임영미 님은 수행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이해하니 남편, 부모님, 자식을 이해하게 되어 편안해진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두 번째 수행담은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눈 푸른 수행자, 미국인 앤드류 스미스 씨였습니다.

앤드류 씨는 작년 미네소타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즉문즉설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 앤드류 씨는 인근 정토회를 찾아가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1년 전부터 미니애폴리스 정토 영어모임에서 법회를 듣고 매일 108배를 하고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문경 정토수련원을 방문해 보기도 했습니다.

영상에는 앤드류 씨가 문경 수련원을 방문해 예불과 기도를 해보고, 함께 농사를 지어보고, 밥을 먹은 뒤 그릇을 깨끗이 닦아먹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앤드류 씨는 한국을 방문하고 “스님의 답변이 쉬운 것 같지만 행하려면 노력이 따른다. 한국 정토회에 와보니 스님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한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자유롭게 한다. 스님의 가르침이 천일결사 수행문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언어가 다른 외국인이 수행을 통해 행복해지는 모습이 신기하고 감동스러웠습니다.

수행담으로 한층 뜨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스님이 지난 백일을 정리하는 회향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수행을 점검하는 기준

“지난 백일을 돌아봤을 때 무엇이 가장 큰 일이었고, 중요한 일이었을까요?

백일 동안 정토회가 한 일을 담은 영상에도 나오지 않았는데 사실은 제일 중요하고 제일 큰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100일 동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각자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수행’입니다. 최근 미주 순회법회를 다녀왔는데, 순회법회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미국인 수행자들의 수행에 대한 점검이었습니다. 그중 한 수행자가 물었습니다.

‘부처님 법과 스님의 법문을 만나서 불안하던 마음, 화나는 마음이 많이 개선되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법사님들이나 스님께 여쭤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만, 미국 사람들에게는 번역된 책도 부족하고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도 자막이 갖추어져 있는 양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공부를 하다가 의문이 생겨도 물어볼 곳이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 수행을 점검해야 하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점검할 방법이 없으니,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점검해야 하나요?’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점검하는 방법은 바로 ‘자기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점검하는 건 마음이 편안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마음이 들떠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욕심을 내거나 미워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모두 마음이 들떠있거나 긴장되어 있거나 침울해 있는 거예요. 절을 천 배를 하든 명상을 하루에 다섯 시간을 하든 마음이 들떠있다면 그건 수행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수행의 목표는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해탈과 열반입니다. 해탈과 열반은 우리의 마음이 긴장되지 않고 편안한 상태, 들뜨지 않고 차분한 상태, 침울하지 않고 안온한 상태를 뜻합니다. 수행은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수행이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 수행 상태를 점검하지 못할 때 옆에서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누가 꼭 점검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렇게 우선 자기의 마음이 점검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의 행동입니다. 행동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몸으로 하는 행위, 말로 하는 행위, 뜻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가령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돈을 빼앗는 행위 등은 직접 몸으로 행하는 행위입니다. 말로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위나 욕설 등은 말로 하는 행위입니다. 속으로 상대방을 해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분노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욕심이 나지요. 즉 뜻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거나 성추행을 하는 등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손해를 주는 행위를 한다면 그건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말로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손해 끼치는 행위를 한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자기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수행을 어떻게 점검할 수 있는지 명쾌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에 나와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하며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화엄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수행자에게 정토란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수행자가 활동하는 세계다.’

그것처럼 수행자에게 열반이란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모두 열반입니다. 수행하는 과정 중에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삶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수행이란 삶이 개선되는 것

“수행을 하면 괴로움이 매번 되풀이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 개선됩니다. 이는 공을 던질 때마다 매번 안 들어가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열 번에 한 번, 열 번에 두 번, 이렇게 차츰 나아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지금도 열 번에 한 번 들어가고, 1년 후에도 열 번에 한 번 들어가고, 10년 후에도 열 번에 한 번 들어간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라 윤회하는 범부 중생이에요. 그건 개선이 안 되고 있다는 뜻이고, 개선이 안 되고 있다는 건 깨어있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수행자는 안 되는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몸이 불편해서 빨리 걷지 못하는 것, 몸이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탓하는 것은 오히려 차별하는 태도, 인권침해입니다. 그게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 변화를 주고자 결심을 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제대로 깨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법문만 좋아하지 자신이 개선해야 하는 점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늘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정토회는 수행공동체인데도 정말 자기 자신을 점검하면서 수행을 하기보다 불교단체 중에 그나마 괜찮은 단체라고 생각하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자기 변화는 꾀하지 않고, 여기에 와서도 늘 하던 대로 행동을 하려고 해요. 천일결사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천일결사는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시작했습니다. 입재식 때 지난 백일의 활동을 보고하는 이유도 수행은 기본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활동을 얼마나 했는지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세상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가 결사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활동보고에는 우리가 북한에 옥수수를 얼마나 보내서 배고픈 사람을 도울 수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대학과 인연을 맺어주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활동에 앞서 우리 각자의 수행을 점검하는 것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해요. 오히려 그것이 더 근본적인 내용입니다. 그것을 바탕에 깔고,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자기 수행의 진전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스스로를 위해서,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해요. 수행의 점검 기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가. 그것이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가’ 예요. 더디게 나아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조금씩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만약 고기를 먹는다면, 먹는 것까지는 좋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더 먹는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모두 웃음) 수행자라면 해를 거듭할수록 줄여가야 해요. 술을 마시는 사람도 마시는 것까지는 좋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마시는 양을 줄여가야 합니다. 아직은 짜증을 내더라도 해를 거듭할수록 짜증을 내는 횟수를 줄여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짜증 내거나 욕심내거나 술을 먹거나 고기를 먹는 것을 시비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수행을 하지 않았는데도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수행을 잘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원래 바탕이 그런 사람입니다. 수행이란 처음과 비교해서 어떻게 개선되어가고 있는가예요. 그러니 출발점이 아주 나빠도 괜찮습니다. 수행을 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세상에서 수행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보다 나쁘다고 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항상 자기를 기준으로 법(法)을 만난 다음에 그 전보다 나아졌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좋아졌다가 다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조금 개선되고 있는 것도 괜찮습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전보다 나아졌다면 개선되어가는 중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마지막으로 스님은 수행의 바탕 위에 모두 법을 전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길 당부하며 9-9차 백일기도 회향 법문을 마쳤습니다.

“아직 정토회에 외국인 수행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중에 복을 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삶의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교회나 다른 종교, 철학, 요가 등을 찾아서 헤맸어요. 그러다 부처님 법을 만나서 자기의 한 생각을 탁 바꿔서 삶이 개선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수행적 관점을 제대로 잡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외국인 수행자들을 보고 국제국에서는 해외에서는 앞으로 모두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어 통역 강연을 하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모두 웃음)

지금껏 1차 만일결사를 통해 한국인을 상대로 전법을 했지만, 2차 만일결사부터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법이 시작됩니다. 이제는 그 중심이 더 이상 제가 아니에요. 이제는 이 가르침을 알고, 그 나라의 언어를 아는 여러분들이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선 자기의 행복을 위해 수행하고, 여기서 조금 더 나가서 모두 법을 전하는 법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을 법과 인연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여러분 모두가 법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법사라는 사람이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거나 욕을 하거나 욕심을 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모두 웃음) 지금은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도 ‘수행을 한다고 해도 사람이니까 저럴 수 있지’하고 이해를 하지만, 법사라는 칭호를 달고 난 후에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번 백일 동안 그렇게 확 바뀌기는 어렵겠죠? 그렇지만 앞으로 천일 동안에 여러분 모두가 확 바뀌어서 모두가 법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모두 박수)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10차 입재식은 서초 법당과 강남 법당의 거사님들의 신나는 풍물공연으로 시작했습니다. 풍물과 함께 신나는 노래를 개사해 합창을 선보였습니다. 장구, 꽹과리, 북, 그리고 기운찬 목소리가 어우러져 신나는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감기는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성동 정토회는 신나는 댄스와 개사한 노래로 아침 기도를 표현했습니다. 반짝이는 무대의상만큼이나 발랄했습니다. 무대 아래에서도 흥겹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아침 기도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했는지 객석에서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흘러넘쳤습니다.

이어서 9차 천일결사, 10차 백일기도에 새롭게 동참하게 된 예비 천일결사자 628명의 결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정토행자는 자기의 생각을 바꾸어서 행복해지는 자기 변화와 자기가 사는 사회를 바꾸어 행복해지는 사회변화를 동시에 추구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정토 건설을 하기 위해서 매일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삽니다.”

예비 천일결사자들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진할 것, 정진 후 마음 나누기할 것, 어려운 이웃에게 보시할 것, 매일 한 가지 이상 봉사할 것, 매 백일마다 입재식에 참가하여 정토행자의 서원을 다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스님은 두 손 모아 새로 정진을 시작한 분들이 꾸준히 수행의 길을 가기를 발원한 후 격려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보니까 이번에 참여한 사람들은 지혜롭기보다 꾀가 많은 사람들이에요. (모두 웃음) 왜냐하면 10차 백일기도에 참여해놓고 경력을 쓸 때 9차 천일결사부터 참여했다고 말할 거 아니에요. 아주 영리한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수행자니까 넘어지지 않으면 좋지만 넘어지더라도 적어도 하루는 넘기지 말고 일어나야 합니다. 하루를 넘기지 않고 자각을 해서 인식상의 오류를 시정해야 합니다. 시정이란 참회를 말해요. ‘아, 내가 그걸 놓쳤구나. 그때 내가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자각하는 거예요.

꾸준히 자각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정진도 밥먹듯이 하면 돼요. 아침에 눈뜨면 살아있는 기념으로 정진합니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거예요. 각오하고 결심하지 말고 눈 뜨면 1번을 정진으로 하는 거예요. 순서만 1번으로 매기면 저절로 돼요.”

새로 입재한 분들 뿐만 아니라 계속 정진을 하고 있던 분들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9차 천일결사, 10차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마무리를 잘하면, 과거의 잘못도 거름이 될 수 있어요.

“10차 백일은 평소와 다름없이 100일 정진을 하면서 지난 3년에 걸친 9차 천일결사를 마무리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고추 농사를 잘 지어도 마지막에 고추를 따서 말리는 마무리 작업을 잘하지 못하면, 1년 동안 농사를 지은 일이 헛일이 됩니다. 아무리 잘했던 일도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손실이 큽니다.

그런 것처럼 이번 백일 동안 마무리를 잘 지으면 앞에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잘하지 못한 부분도 모두 수행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는 인생살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공부도 안 하고 말썽만 피웠는데 자기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 크게 깨우치면 오히려 처음부터 착실히 살아온 사람보다 결과가 좋을 때가 있습니다. 앞서 잘못 살아온 것들이 거름이 되어서 내 인생의 새로운 동력이 되는 거예요. 과거에 잘못이 갑자기 잘한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자각하고 변화하면 과거의 잘못이 모두 잘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이번 백일기도를 잘하면 천일기도가 모두 잘 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모두 박수)

지난 900일 동안 잘해온 사람들은 그대로 잘하면 됩니다. 그리고 900일 동안 부지런히 하지 못하고 중간에 빼먹은 사람들도 이번 백일기도를 잘하면 천일 마무리를 잘 지을 수 있습니다. 천일 동안 잘해서 우등생이 될 수도 있고, 마지막 백일을 잘해서 우등생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모두 웃음)

지난 천일 동안 다 잘하지 못했더라도 이번 백일만큼은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다짐을 해봅시다. 그렇게 백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진하는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면, 다음 다가오는 천일은 처음부터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백일 동안에도 빠지거나 대충 하면 다음 천일을 시작할 때 ‘나는 또 못할 텐데’하는 자기 불신이 생겨요.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이건 스스로 세운 계획을 완성시켜 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이번에 백일기도를 한 번 제대로 완성해보는 거예요. 그 경험을 갖고 있으면 다음 백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이번 백일도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 정진입니다. 점검기준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가’입니다. 중간에 놓쳐도 괜찮아요. 그러나 며칠 동안 놓친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른 알아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작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때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내가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됩시다. 물론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 시작으로 이번 백일만큼은 아침에 일어나서 정진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해봅니다.

이렇게 일점돌파를 해야 합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일점돌파입니다. 과하게 욕심내지 말고, 하나의 목표를 정해서 이번 백일 동안에는 그것 하나만은 완성을 해보는 거예요. 이런 원칙을 가지고 이번에 마무리를 잘하시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수행을 강조하고 난 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불교대학과 행복학교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과 더불어 9차 천일결사 마지막 백일을 맞아 법당에서는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을 다음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것을 당부했습니다.

“3년 마무리 잘하고 12월 회향식에서 보겠습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진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시 만나겠습니다.”(모두 박수)

스님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수행’을 꾸준히 하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오늘만큼은 다음 백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하고, 나를 행복하게 가꾸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마지막 공연은 부천 정토회에서 준비했습니다.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엄선된 47명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의 줄임말인 수보봉합창단은 정토행자로 살아가는 삶을 재치 있게 개사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주었습니다.

“수행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
보시하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건 없을걸
봉사하는 그 마음보다 뿌듯한 건 없을걸
도반의 눈길보다 정다운 건 없을걸”

마지막으로 4차 천일결사, 7차 백일기도부터 꾸준히 정진을 이어오신 노희경 님이 닫는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새롭게 입재하신 분들 축하합니다. 제가 처음 입재식에 왔을 때가 떠오르네요. ‘분명 사이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여법해졌는데 제가 18년 전 처음 정토회에 왔을 때는 문경에 슬라브지붕 아래에서 4-500명이 모여서 입재식을 했어요. 되게 불안했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 제가 지금 18년이 지났는데도 이곳에서 있네요. 지금 여기에 제가 있는 게 너무 좋습니다. 지혜로운 말씀을 들을 귀가 있고, 스승을 보는 눈이 있고, 좋은 도반을 따라갈 힘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2차 만일결사까지 30년 더 너끈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같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8년 동안 꾸준히 정진을 해온 노희경 님의 존재 자체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도반의 손을 맞잡고 산회가를 함께 불렀습니다. 마주 잡은 두 손이 따뜻했습니다.

스님도 함께 산회가를 부르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대중은 수행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담고 환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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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미소

제자를 사랑하는 스님 마음이 느껴집니다~!!!
가까이에서 스님 뵐수 있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건강하세요 스님~^^

2019-11-17 14:37:46

정지나

오늘도 놓치고 다시 괴로워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것!!!
감사합니다 꾸벅^^

2019-11-15 21:26:53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0-28 00: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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