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26. 농사일, 행복한대화(2) 울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삼재 때문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북에서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세우고, 저녁에는 울진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4일 전 17호 태풍 타파가 부산 앞바다를 지났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황금빛 물결을 이루던 논마다 벼들이 드러누워 있습니다. 수확을 앞두고 쓰러진 벼들을 보는 농민들의 속은 까맣게 타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벼가 썩지 않도록 세워줘야 하는데 노동이 만만치 않은 데다 그렇다고 노동력을 쓰기에는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기도를 마치고 업무를 본 후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일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서둘러 모내기 장화를 신고 논으로 향했습니다.

쓰러진 방향에서 벼를 일으켜 세워 4~6포기씩 짚으로 묶어주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는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사리풋트라가 아사지에게 물었습니다.
“존자여! 당신의 스승은 무엇을 말합니까?”
“사리풋트라여! 나의 스승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은 연기되어 있다. 볏단이 서로 의지하여 서 있듯이.’"

오늘 쓰러진 벼를 서로 의지해서 일어설 수 있도록 묶어 세우며 연기법을 공부해봅시다.

4개는 4성제, 6개는 육바라밀, 8개는 팔정도예요.” (웃음)

쓰러진 벼를 세우며 불교 교리를 공부하니 일과 수행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질퍽한 논에 발이 깊숙이 빠져 한 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구부린 등허리로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었습니다.

“벼를 직선으로 세우기보다 쓰러진 반대 방향으로 조금 기울여서 세우는 게 더 좋아요.”

언제나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스님의 모습을 오늘 또 배웁니다.

논의 주인인 할머니가 안타까워하며 말했습니다.

“맛도 좋고, 수확량도 더 좋다는 신종 볍씨들이 죄다 쓰러졌어. 영감이 비료도 많이 줬는데 말이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료를 많이 줬거나 신종 볍씨를 심은 곳은 다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 장단점이 있어요. 태풍만 안 왔으면 신종 볍씨를 심은 분들이 더 좋았겠죠.”

뙤약볕에서 3시간을 꼬박 벼를 묶어주었습니다. 열 명이 함께 했는데도 불구하고 500평 중 절반을 조금 넘게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많이 쓰러져 있는 벼들을 보며 스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아이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주말에 등산 가는 사람들이 산에 가지 말고 여기 와서 농민들 좀 도와주면 좋겠다.”

저녁에는 울진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습니다. 차로 4시간은 가야 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일을 더 하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씻은 뒤 울진으로 출발했습니다. 달리다 보니 차창 밖으로 동해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자, 바다 보세요. 어제는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고, 오늘은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웃음)

어쩌다 보니 해안을 따라 전국 일주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목포, 목포에서 울산, 울산에서 울진, 내일은 다시 전라도 장수를 들렸다가 서울로 갑니다. 잠깐 동안의 바다 구경을 뒤로하고 강연이 열리는 울진 연호문화센터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넘었습니다.

강연장 바로 옆에 연꽃 호수에서 저녁 식사로 김밥을 먹었습니다. 연꽃 호수를 한 바퀴 걸으려고 했지만, 강연 전에 차담이 있어 입구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울진군수 전찬걸 님과 울진군의회 의장 장시원 님이 찾아와 차담을 나눈 뒤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청중은 기다리던 스님이 입장하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군수님도 함께 입장하여 청중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멀리서 울진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믿는 종교는 가톨릭입니다만 즉문즉설을 자주 보았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이 스님의 은총을 받으리라 확신합니다.”(웃음)

이어서 스님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전에 울산에서 태풍 타파가 오고 난 후 쓰러진 벼를 세웠어요. 그래서 몸이 좀 찌뿌둥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거리가 멀어서 좋았어요. 거리가 가까우면 오후까지 벼를 세우다가 왔을 거예요.(웃음)

동네 분들에게 들어보니 신종 볍씨를 심은 논은 벼가 다 쓰러졌다고 해요.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나쁘다고 신종 볍씨가 더 맛있고 수확량도 많다고 해서 심었다가 일이 이렇게 됐대요.

이처럼 지금 좋다고 하는 일이 나중에도 좋은 일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어요. 그 좋은 일이 원인이 되어서 가장 큰 불행이 찾아오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금 불행하다고 하는데, 그 불행이 원인이 되어서 나중에 복이 찾아올 수도 있어요. 이것을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고 합니다. 이 고사가 생겨난 유래를 잠깐 들려드릴게요.

옛날에 중국 변방에 사는 어떤 늙은 영감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새옹(塞翁)이라는 것은 늙은 영감을 말합니다. 아들이 들녘에 나갔다가 야생마를 한 마리 잡아왔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횡재했다고 기뻐했는데 이 영감만 안 기뻐했습니다. 왜 안 기뻐하냐고 물으니 ‘두고 봐야지’ 그랬어요. 사람들은 ‘저 영감은 복을 복인 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야생마를 길들이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재수가 없어서 아들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감만 별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 다리가 부러졌는데 당신은 감정도 없소?’라고 물으니 이번에도 ‘두고 봐야지’ 그랬어요.

그런데 전쟁이 났습니다. 마을에 있던 모든 젊은이들이 징집됐는데, 이 집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서 징집이 안 됐습니다. 징집이 된 남자들이 전쟁에서 다 죽고 이 동네에서 이 집 아들 하나만 살아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살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은 이런 거예요.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불행인지 행복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을 해보셨죠? 남자나 여자나 자기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 하나 잡았다고 좋아했는데, 쥐약을 먹어서 죽겠다고 난리인 사람들이 이 중에도 많을 거예요. 가장 행복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불행하게 된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를 낳아서 즐거워했는데, 키운다고 고생하든, 키워 놨더니 말썽을 부려서 고생하든, 자녀가 인생의 큰 고민이 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늘 이렇게 뒤바뀌는 거예요. 이렇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바뀌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욕심 많으면 돼지가 되고, 미련하면 소가 되고, 이런 것을 윤회라고 하는데, 그것은 불교가 아니고 인도의 전통 사상인 힌두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윤회는 ‘우리의 인생은 고(苦)와 락(樂)이 되풀이된다’라는 뜻입니다. 이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고 다시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해탈’과 ‘열반’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대화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자, 대화를 시작해보죠.”

이렇게 여는 인사를 한 후 스님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청중 속으로 더 가깝게 다가갔습니다.

“맨 앞줄에 앉은 분들은 저를 쳐다보려면 목이 아프겠네요. 제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서 이야기를 할게요.”

총 6명이 질문을 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삼재에 대해 질문한 첫 번째 분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삼재에 들어서 일이 안 풀리는 것 같아요

“제가 작년까지 기간제로 일하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서 올해 다시 시작하려고 몇 번 이력서를 내고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올해 이상하게 일이 잘 안 되고, 인간관계도 많이 틀어지다 보니까, ‘진짜 삼재 때문에 그런가 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불자라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무시를 해야 되는데, 자꾸 삼재에 들었다는 것이 마음에 쓰입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자유니까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된다, 안 된다, 이런 건 없어요. 사람은 어떤 생각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말 삼재라서 그런 건가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겠죠. 그러면 이번에 태풍이 불어서 일 년 농사지은 벼가 다 쓰러진 분들은 올해 삼재가 들어서 그럴까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쓰나미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은 삼재가 들어서 그럴까요?”

“일본 사람들이 나쁜 일을 많이 해서요.” (모두 웃음)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치신 분이에요?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태풍이 불거나 쓰나미가 일어나거나 해서 집이 부서지고 부모가 죽고 이러면, 내 자식이 아니라도 돌봐라, 내 가족이 아니라도 돌봐라, 내 나라 사람이 아니라도, 종교가 다르더라도 돌봐라.’

그런데 여러분들은 ‘태풍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은 것이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신체장애가 생기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애를 낳았나’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인권 침해에 속하는 발언입니다.

옛날에는 여자를 차별하는 사회였으니까 여자 아이를 연달아 셋을 낳으면 어머니가 ‘아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한탄을 했어요. 또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딸만 낳나’ 이렇게 전생 탓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를 낳는 것이 전생에 지은 죄의 과보일까요? 여자 아이를 낳는 것이 하나님이 벌을 준 것일까요? 옛날에는 여자가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여자를 낳으면 불이익이 생기니까 ‘왜 내게 불이익이 생기냐’, ‘전생에 죄를 지었나’, ‘하늘이 나에게 벌을 주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자가 차별을 안 받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장애도 장애일 뿐이지 죄의 과보가 아닙니다. 그건 장애인을 죄악시하는 생각이에요.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겁니까. 이건 단순 사고예요. 건물 옆을 지나가다가 간판이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어요. 그러면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인가요?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병원에 가야죠.”

“옛날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손실이 생겼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 그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지, 질문자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예요.

스마트폰 화면에 어떤 사람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요즘 사람들은 그냥 ‘스마트폰 성능이 좋네. 얼마 주고 샀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만약에 원시인이 보면 어떨까요? 놀라서 거기에 절을 할 겁니다. 숭배의 대상이 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될 거예요. 이것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지를 깨우치면 이런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여래는 두려움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거든요. ‘성난 코끼리가 옵니다’라고 해도 ‘여래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하셨고, ‘앙굴리말라가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러 옵니다’라고 해도 ‘여래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왜 두려움이 없을까요? 문제의 본질을 환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형성되는 핵심 바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비주의, 다른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신통이니 기적이니 신기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다 ‘신비주의’에 해당합니다. 벌을 받게 될까 봐 무서워하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 무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첫째,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약간 긴장이 되고 두려울까요,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두려울까요? 둘째, 아는 곳에 갈 때 두려울까요, 모르는 곳에 갈 때 두려울까요? 셋째, 밝을 때 두려울까요, 깜깜할 때 두려울까요?

이 세 가지 상황의 공통점은 ‘모른다’입니다. 모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 두려움은 본질을 꿰뚫어 앎으로 해서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 본질을 몰랐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재물을 바치거나 했던 겁니다.

종교 행위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재물을 바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비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이 분이 내 상사라고 합시다. 내가 이 분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이 분한테 잘 보여야 득이 좀 생겨요.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분한테 뭘 갖다 바쳐야 됩니다. 둘째, 싹싹 빌어야 돼요. 이게 종교 행위예요.

재물만 차려주면 돼요? 재물도 차려놓고 싹싹 빌기도 해야 돼요? 싹싹 빌어야 됩니다. 이것은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사에 이어져 내려오는 행위예요.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인류문화사적으로 설명을 드리는 거예요.

이런 종교행위는 무엇 때문에 생겼을까요? 무지 때문에 생겼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오늘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이 중에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싶다면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에요?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에요?”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님에게 정해달라고 하면 되겠어요? 부처님 보고 정해달라고 하면 되겠어요? 부처님은 결혼한 자기 부인하고 헤어지고, 자기가 낳은 아들과도 헤어지고, 왕위도 버리고 출가를 했는데, 그런 부처님한테 ‘승진하게 해 주세요’, ‘부인 구해주세요’, ‘남편 구해주세요’, 이렇게 빈다는 게 논리적으로 맞아요?”

“안 맞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있다니까요.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분은 높은 지위, 아름다운 부인, 좋은 아들을 갖고도 인생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서 인생 문제의 본질을 찾기 위해 왕궁을 떠난 분입니다. 그런 분이 우리들에게 결혼 잘 되게 해 주고, 사업 잘 되게 해 주고, 이런 일을 할까요? 가게를 내서 사업이 잘 되게 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에요, 부처님이 해주시는 일이에요?”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장사가 안 되면 폐업을 하든지, 리모델링을 다시 하든지, 광고를 많이 내든지 하면 되잖아요.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왜 부처님한테 해달라고 그래요? 과거에는 사람의 인지력이 부족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 칩시다. 그런데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달나라에도 가고, 스마트폰도 쓰는 이런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그런 수준의 생각을 해서 되겠어요? (모두 박수)

물론 심리적인 위로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아요. ‘굿을 한 번 하면 좋아진다’, ‘절에 가서 기도를 하면 좋아진다’라고 해서 실제로 굿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 심리적인 위로가 될 수 있어요. 그런 행위가 틀렸다든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제 말을 잘못 들으면 스님이 종교를 비방한다고 들을 수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즉문즉설은 진실을 말하는 자리입니다. 제가 무슨 이익이 남는다고 진실이 아닌 것도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얘기하겠습니까.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죠.

요즘은 사회 전체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서 장사가 잘 안 되잖아요. 그러면 전부 다 삼재가 들은 겁니까? (모두 웃음)

요즘은 사회 전반적으로 취직이 안 되는 분위기잖아요.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요즘 젊은이들은 전부 삼재가 들어서 그런 겁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법륜 스님이 훌륭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해도, 저도 비행기 타고 가다가 추락하면 죽습니다. 이때 법륜 스님의 도가 낮아서 비행기 추락할 때 죽은 게 아니에요. 이런 생각은 이제 그만하면 어떨까요?

저는 여러분이나 다른 스님들과 비교했을 때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훨씬 많잖아요. 한두 배 많은 정도가 아니라 열 배도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 필리핀 민다나오 같은 오지에 많이 다니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들보다 사고가 나서 죽을 확률이 높아요, 낮아요?”

“높습니다.”

“그런데 이게 스님의 수행력 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수행력이 있다면 죽을 때 아무런 후회 없이 죽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죽을 때 ‘이렇게 죽을 바에야 비행기 안 탈 걸’ 이런 소리는 안 해요.

헌법에는 믿음과 신앙, 종교는 개인의 자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무엇을 믿든지 저는 신경을 안 써요. 여러분들이 굿을 하든지, 길거리에 가다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을 만나서 49재 지내고 천만 원을 지불하더라도, 저는 아무 얘기를 안 해요. 왜 그럴까요? 그건 총을 갖다 대놓고 강제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 유혹이 되어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처벌이 안 됩니다. 종교 행위 속에는 사기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지만, 처벌이 안 되는 이유는 어쨌든 스스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말을 믿고 내가 사기를 당한 것은, 그가 한 거짓말만 원인일까요? 나도 거기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사기를 당한 겁니다. 제가 이 분께 ‘이 주식을 사면 엄청나게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서 천만 원을 투자받아 냈는데, 대박은 커녕 주가가 떨어져서 손해가 났어요. 이때 이 분이 저를 고발해도 유죄 판결이 안 나요. 이 사람의 이익을 제가 강제로 빼앗았다면 죄가 되지만, 이것은 자기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죄가 안 됩니다.

질문자가 조금 더 지혜로워지면 좋겠어요. 자꾸 어떤 신비적인 현상이 일어나거나 두려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기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현재 내 체력으로 100미터를 달리면 25초 정도에 달릴 수 있다고 합시다. 23초를 목표로 잡으면, 3개월 정도 연습하면 목표 달성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다가 누가 100미터를 10초에 달리는 것을 봤어요. ‘아! 나도 한 번 해봐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부터 1년 동안 맹훈련을 해도 10초에 달릴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럴 때 ‘아,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럴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죄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 괴로움은 왜 생겼을까요? 자기의 현재 능력에 대한 오판에서 생긴 거예요. 현재 자기의 상태가 정확하게 점검이 안 됐기 때문에 이런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점검하는 겁니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괴로울 일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느릿느릿한 아이에게 짜증을 내게 돼요. 아이가 이제 좀 컸다고 저항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어떻게 해야 탐진치를 벗어날 수 있나요? 엄마가 잔소리하면 화나고, 신랑이 술 먹고 오면 화가 나요.
  • 결혼 26년 차, 대구에 가족과 사는데 저만 울진에 따로 살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 울진으로 이사 오고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이 많이 생기는 걸 보면 스트레스받아요. 행복하게 나이 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 결혼 18년 차, 딱 한 번의 관계로 아들이 생겼고, 그 뒤로 남편과 관계를 한 번도 안 했어요. 1년 반 전부터 따로 살고 있는데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할 것이 두려워요.

울진에 이사오고부터 더욱 부쩍 늙은 것 같다고 고민하는 질문자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 설명한 후 울진 사람들이 남북 평화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울진 사람들이 남북 평화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

“여러분들이 울진에 사니까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요. 전쟁이 나면 가장 위험한 곳이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곳들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 전쟁이 나면 이곳 원자력발전소는 북한으로부터 공격받을 위험이 높아요.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드론으로 공격받는 것 보셨죠? 일 년에 수조 원의 예산을 국방비로 쓰는데도 천만 원짜리 드론 몇 대에 공격받고 터지잖아요. 그것처럼 남북 간에 너무 갈등이 심해지거나, 상대가 약이 올라서 ‘너 죽고 내 죽자’ 하면서 덤비면, 이런 시설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북한이 갖고 있는 원자 폭탄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런 시설들이 사실은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너 죽고 내 죽자’ 하는 선까지 안 가도록 남과 북이 평화 관계를 유지하는 겁니다. 통일이 되면 더 좋지만, 통일까지는 안 가더라도, 기습 공격하는 이런 짓은 서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질이 나면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거든요. 그렇게만 안 되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만약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에 대해 울진 사람들이 반대한다면, 울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험을 자초하는 거예요. 남북 관계가 악화돼서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면, 울진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다른 것은 보수적으로 하더라도, 다른 것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정신을 여러분들은 확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자기 생명과 자기 지역을 위해서 그런 관점을 가져야 해요.”

울진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어떻게 태어났든, 어떻게 자랐든 어떤 인생을 겪었든, 살아있는 사람은 다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장애가 있든, 남편이 바람을 피웠든, 뭐가 어떻게 됐든, 그런 것 때문에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를 학대하는 거예요. 우리가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행복할 수가 있어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2시간 30분 동안 찌뿌둥한 몸으로 서서 강연을 한 스님에게 청중은 큰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표정이 환합니다. 오늘 질문한 분 중에는 베트남에서 온 분도 있었는데, 그분이 사인을 받으러 오자 스님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멀리까지 시집왔는데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사인을 받고 돌아선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많이 아쉬웠지만, 스님의 말씀이 와 닿았다"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사인회까지 마치고 봉화 정토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차에 오른 스님은 베트남에서 온 질문자를 걱정했습니다.

“말을 다 못해서 그렇지 정말 힘들 거예요.”

한정된 시간 안에 대화를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위로와 격려를 충분히 해주지 못한 것에 스님도 아쉬움이 남았는가 봅니다.

봉화 수련원이 있는 시골길에 들어서자 어둠이 더욱 짙어집니다. 별빛은 더욱더 반짝입니다. 내일은 용성조사 오도일을 맞아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기념 법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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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0-30 15:45:46

혜정

정토회 차원에서 태국,캄보디아 등 불교국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네요
성장중인 다문화 가정 2세들을 위해서라도 불교 안에서 도움을 주고 받을수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2019-10-02 15:49:47

보리수

문제의 본질을 환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그렇구나, 합니다. 청중석 더 가까이, 한 분이라도 더 괴로움을 덜어주시려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2019-09-29 23: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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