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23) 댓글쓰기
목록
+ 확대- 축소

“쓰러진 벼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2019.9.29 농사일, 통일 체육축전, 농촌 구호활동

안녕하세요. 새벽 공기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새벽 4시 20분, 안개가 자욱한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목탁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스님은 서울에서 내려온 서울공동체 대중과 함께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한 후 아침 7시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고추가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지난 7월부터 달리기 시작한 고추는 3개월째 계속 주렁주렁 열리고 있습니다. 고추나무의 크기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크게 자라 비닐하우스 천정에 닿았습니다.

“밑에 달린 고추는 크기가 이렇게 큰데, 위로 올라갈수록 갈수록 작아지네. 고추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더 매워져.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진짜 그렇네.”

서서 고추를 따다 보니 고추를 담는 포대를 땅에 끌고 다니기가 불편했습니다. 어깨에 멜 수 있는 포대를 가져와서 어깨에 멘 후 다시 고추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크니까 앉지 않아도 되고, 고추를 따기가 훨씬 좋아졌어.”

고추의 색깔이 정말 빨갛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새끼 고추예요. 색깔이 이렇게 예쁘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모두 수확한 후 스님은 비닐하우스를 나왔습니다. 행자님들은 오늘 딴 고추를 물로 깨끗이 씻은 후, 품질 별로 분류해서 모아 놓는 일을 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나온 스님은 밤을 줍기 위해 산 밑으로 향했습니다. 수행팀 행자님들은 벌써 밤이 다 떨어지고 없을 것이라고 했고, 스님은 추석이 빨라서 그렇지 지금 틀림없이 밤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스님은 직접 확인하러 가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의 예상대로 밤송이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습니다. 껍질이 벌어져서 밖으로 나온 알밤들만 한 주머니 주워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쨍하고 떴습니다. 9시에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통일 체육축전이 열리는 삼동면민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스님은 운동장 구석구석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새터민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반갑습니다.”

곳곳에 다양한 부스들이 차려져서 새터민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 정각이 되자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경남, 경북, 대구, 부산, 울산에서 총 600여 명의 새터민들이 자리했습니다. 체육 경기를 하기에 앞서 북녘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추석 차례를 지냈습니다.

한 분에게 차례를 지내고 나니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이렇게라도 고향을 향해 차례를 지낼 수 있어 참 좋다”며 기뻐합니다. 경건하게 차례를 지낸 후 스님이 앞으로 나와 인사말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가을날입니다. 맑은 하늘처럼 마음도 맑게 가지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즐겁게 어울리는 날인만큼 짧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체육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평화팀과 통일팀 두 팀으로 나뉘어 응원전을 신나게 펼쳤습니다. 벌써 흥이 난 새터민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신나게 춤을 춥니다.

모두 운동장으로 내려와 국민체조를 했습니다. 스님도 함께 운동장에서 새터민들과 체조를 했습니다. 국민체조가 새천년체조로 바뀌면서 동작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의 어색한 동작에 다들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체육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큰 공 굴리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경기가 펼쳐지며 응원전도 열기를 더해 갈 무렵 스님은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농사일을 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상주대중과 함께 작천정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을 만끽합니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먹는 점심 식사가 꿀맛입니다. 오랜만에 도반들과 정겹게 이야기도 나눕니다.

오후에는 얼마 전 태풍 타파로 인해 벼가 쓰러진 논으로 향했습니다. 그저께 한 차례 벼를 다시 세우는 일을 했지만, 절반도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오늘은 20여 명의 대중이 논 장화, 장갑, 팔토시를 하고 논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해보는 행자들을 위해 스님은 벼를 세워서 묶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오늘은 벼를 서로 의지해서 세우면서 연기법을 공부해 보는 거예요.”

스님은 짚을 물에 적셔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저께 해보니 마른 짚은 묶는 과정에서 뚝뚝 끊어졌습니다. 물기를 먹은 짚은 잘 끊어지지 않고 더욱 질겼습니다.

그저께 벼 세우는 일을 한 사람들은 다음날 다리에 근육통이 무척 심했습니다. 스님은 대중이 무리하지 않도록 1시간 일하고 휴식하고 다시 일하도록 했습니다.

“사람 손이 무섭네.”


지난번에 세우다 만 5백 평 논의 벼를 금세 다 세웠습니다. 잠깐 휴식하며 목을 축인 뒤 다음 논으로 갔습니다.

“오백 평 논에서 나온 쌀값보다 강의 한 번 하고 받는 돈이 더 많아요. 농사가 이렇게 힘든데 말이죠. 세상의 분배 구조에 문제가 많죠.”

스님은 잠시 허리를 펴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스무 명이 함께 하니 일하는 재미가 솔솔 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 논의 주인이라면, 한 두 명이 벼를 세우고 있다면 얼마나 막막할까요. 우리가 서 있는 논 주위로도 많은 벼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허리를 숙인 곳에서 뻐금뻐금 고개를 내미는 우렁이도 마주쳤습니다.

우렁이를 밟지 않도록 묶어놓은 벼 사이로 옮겨주었습니다. 허리 숙여 벼를 묶으며 쌀 한 톨이 얼마나 귀한지, 자연이 얼마나 귀한지 몸과 마음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넘게 벼를 더 묶고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장화를 씻고 둘러앉아 일을 한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쌀을 사 먹는 건 너무 쉬운데 쌀 한 톨 만드는데 많은 손길이 필요하구나. 옛날에 할아버지가 쌀 한 톨이라도 떨어트리면 다 주어먹으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직접 일을 해보니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겠어요.”

“이전에는 벼가 누워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직접 일을 해보니 농부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벼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8개씩 모아서 세우니까 튼튼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족하고 허약하지만 모였을 때는 큰 힘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반의 소중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비료를 많이 준 논의 벼들이 쓰러졌다고 하니까 풍족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니까 저렇게 허약하게 쓰러지는구나. 역경을 견뎌내면 내적인 힘을 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어나서 볏단 세우는 걸 처음 해봤어요. 고추를 수확하고 건조하는 일을 해보면서 고춧가루가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참 많은 노력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오늘은 쌀 한 톨에도 참 많은 노고가 들어있다는 걸 알았어요."

“벼가 쓰러져있는 걸 보면 이제 남일 같지 않을 거 같아요.”

“자원봉사하고 싶은 사람 많을 텐데 자원봉사 일감으로 개발해보면 좋겠어요.”

“물속에 빠진 벼를 일으켜 세울 때 뿌듯했어요. 이제 벼가 살아나겠구나.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효율적으로 예쁘게 묶을까 생각하니 다른 잡생각이 없어졌어요.”

“처음 해보고 잘 모르는 일이니까 걱정이 됐어요. 한 줄로 서서 일을 시작했는데 나만 뒤에 쳐지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들었어요. 걱정을 하는지 알아차리니까 스스로에게 ‘걱정 해봤자다’하고 탁 놓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농사는 하기 전에는 하기 싫은데 하고 나면 참 좋아요. 땀 흘리면서 같이 일하는 게 좋았습니다."

“그저께는 마른 짚으로 묶으니까 계속 끊어졌어요. 오늘은 물 먹은 짚으로 묶으니까 훨씬 빨라졌어요. 묶을 때도 멀리서 묶으니까 잘 끊어졌는데 가까이서 묶으니까 일의 효율이 났어요.”

행자님들은 함께 해서 즐겁고 재미있었다며, 각자 느끼고 배운 점을 나누었습니다. 행자님들의 나누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다들 좋았다니까 저도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에게 일하러 오라고 하기가 조금 부담이 되었어요. 일의 강도가 조금 센 것 같았거든요. 일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닌데, 첫째, 옷이 젖고, 둘째, 논바닥이 질어서 발이 빠지니 다음날 다리가 너무 아파요. 그래서 함께 일하자고 권하기가 주저되었어요. 지난번에는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벼 세우기를 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오늘은 1시간에 한 번씩 쉬어주기를 한 겁니다.

사실은 쓰러진 벼를 다 세운다 하더라도 그 수익을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 되지는 않습니다. 돈을 주고 노동력을 사서 벼를 세우면, 적자가 나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고요. 그렇다고 기계로 벼를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안타깝지만 그냥 버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농부들은 저 벼를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거든요. 쌀이 한 움큼 땅에 떨어지면, 우리는 그걸 돈으로만 계산하기 때문에 그냥 빗자루로 쓸어버리는데, 농부들은 거기에 자신들의 노동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쌀 한 톨도 다 주워서 씁니다. 젊은 시절에는 본인이 논에 나가서 벼를 세우면 되는데, 지금 노인들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마음만 안타까운 겁니다.

만약 자원봉사 시스템이 잘 갖춰 있다면 이런 일은 쉽게 해결할 수가 있죠. 그러나 아직 정토회는 유튜브에 ‘봉사활동하러 가자’ 하고 공지를 올리면, 수천 명이 와서 봉사활동을 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직 안 갖춰져 있어요. 농민들을 돕고 싶어도, 첫째,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서 돕지 못하고, 둘째, 도우려고 해도 혼자 가서는 재미가 없잖아요. 재미가 있으려면, 스님과 대화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고, 봉사도 할 수 있게 프로그램이 기획해야 하거든요. 힘이 들어도 이런 의미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토회도 이제 봉사활동 시스템을 잘 갖춰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말에 등산 가는 것보다는 한 나절은 이렇게 봉사를 할 수 있게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면 정말 좋죠.

아무튼 여러분 덕분에 정말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런 봉사 활동이 몸은 좀 고단하지만 휴식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죠.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런 농사일로 풀어질 수 있다면 하나의 휴식이 될 수 있어요.

오늘 하루 같이 일하면서 여러분들이 쌀 한 톨, 고춧가루 하나가 정말로 귀한 줄 알았다니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상쾌합니다. 서로 “수고했어요!”하고 인사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씻고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 한 숟갈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저녁 예불을 드린 뒤 스님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평화재단과 JTS에서 상근 하는 행자님들이 농사일을 하러 왔습니다. 편안하게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필리핀 JTS 활동가는 재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며 질문했습니다.

농민들의 고통,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오늘 논에서 쓰러진 벼를 묶으면서 재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태풍이나 홍수 소식을 들으면 ‘또 일이 생겼구나, 누군가 도와주겠지’하는 생각만 들었는데, 실제로 재난을 겪은 장면을 처음 보니까 이로 인해 고통받는 농민들의 어려움이 느껴졌습니다. 필리핀에서 구호활동을 할 때도 뉴스를 통해 지진 소식 등을 접하면 진도는 얼마인지, 인명피해는 얼마인지 수치로만 추상적으로 어려움을 접했는데, 실제 재난을 당한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상황을 접하는 제 관점이 잘못되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국내 구호활동은 JTS가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JTS에서도 소외된 농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제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산업시설에 대해서는 보험이 일반화되어있습니다. 과거에는 산업시설 조차도 모두 개인 사업자들이 감당해야 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보험에 가입합니다. 심지어 집과 자동차도 보험이 적용됩니다. 저희 어릴 때만 해도 보험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험이 처음 소개될 때 믿음이 안 가기도 했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요즘에는 보험회사가 금융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 부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보험이 시작된 건 주로 생명보험이었어요.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면 ‘ㅇㅇ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된 보험회사가 많습니다. 생명보험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다가 점차 화재보험, 자동차보험 등 다양한 재난 보험으로 종목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재난 보험에서 많이 소외된 부분 중 하나가 농민들에 대한 농업 보험입니다. 농민들 중에도 농사를 큰 규모로 짓는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을 해서 재난을 당하는 경우에 보험 적용을 받습니다. 그리고 돼지열병, 광우병 등 국가 단위에서 대규모 폐기처분을 하는 경우에도 그에 따른 보상을 해줍니다. 그런데 영세농의 경우에는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 충남지역에서 젊은 농민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농민들에 대한 태풍 보험이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도 차원에서 보험을 들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세농인 농민들 개개인이 보험을 드는 것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귀농을 하거나 대단위 농업을 하는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하지만, 옛날부터 농사를 지어온 영세농의 경우에는 한두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지 농사를 지어서 생긴 작은 이윤으로 보험비를 내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태풍 피해가 아주 심하거나 폭설로 인한 피해가 아주 커서 정부가 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하게 되면 복구비가 지원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원되는 복구비도 농민들이 실제로 입은 시설물과 농작물로 인한 피해액에 비하면 크게 부족합니다. 홍수가 나서 둑이 무너지거나 하면 눈에 보이는 시설물이 망가졌으니까 복구비가 나오지만, 오늘 우리가 본 것처럼 바람에 벼가 쓰러졌다거나 고추대가 넘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따로 피해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농민들의 어려움이 큽니다.

오늘 우리가 다녀온 곳에도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곳인데, 할머니는 보험에 들자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들지 말자고 해서 들지 않았는데 지금 피해가 나니까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잔소리를 계속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심던 모종과 다른 벼 종자를 심었는데 이번에 그 벼들이 모두 쓰러졌나 봐요. 할아버지가 그 벼 종자를 심자고 했다고 할머니가 또 잔소리를 하시더라고요. (모두 웃음)

이런 경우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쓰러진 벼를 세울 수는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사람을 고용해야 합니다. 인건비로 들어가는 비용과 벼로 인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을 비교하면 인건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그냥 벼를 포기합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앉아서 벼를 세우는 일은 일당을 많이 줘도 하려는 사람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대부분 포기를 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평생 농사를 지은 분들이기 때문에 추수를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벼가 물에 잠긴 모습이 안타까우니까 자꾸 들어가셔서 벼를 세우려고 해요.

그래서 이것 때문에 자식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식들은 아예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계속 논밭에 가서 작업을 하시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 도와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이 작업을 하려니 힘이 들어 성질이 나서 갈등이 생깁니다. 자원봉사로 이 일을 하면 단체로 일하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재미라도 있는데, 혼자 앉아서 하루 종일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성질이 납니다. (모두 웃음)

그러니 젊은 사람들은 여기서 일하느니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건 돈 문제를 떠나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실제 피해 현장에 가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달리 엄두가 안 나는 경우가 많아요. 필리핀에서도 지진 피해 현장에 가보면 당장 먹을 수 음식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계속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원봉사 은행’과 같이 자원봉사자를 모아서 지역별로 배정해서 피해가 생기면 바로 지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자원봉사에 필요한 모든 기초적인 과정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하면 바로 구호활동을 나갈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이 많이 필요합니다. 창고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준비해놓고 있다가 봉사자들이 도착하면 질서 있게 필요한 일을 알려주고, 작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요.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도시락을 싸오라고 하거나 식사 시간에 라면을 끓여줄지 여부도 모두 사전에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긴급재난구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아주 큰 파급효과가 있습니다.

JTS에서도 10여 년 전에 국내 재난이 생긴 지역에 긴급구호활동을 하기 위한 긴급구조단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태풍 피해 지역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강릉에 가서 무너진 축대도 세우고, 그때도 벼가 쓰러져서 벼를 세우고 온 경험이 있습니다. 명상수련을 하는 중에도 태풍이 와서 재난 지역이 생기면 명상 수련을 중단하고 지원을 나갔습니다. 재난구호를 위한 예산도 따로 편성해두었어요. 2003년 태풍 매미가 상륙했을 때는 거제도에 가서 구호활동을 했고, 그때 애광원과도 인연이 맺어져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닥치고 더 급한 일이 많이 생기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그 후로는 해외 재난 지역에 주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긴급구호를 위해서 많이 갖춰놓긴 했는데 아직 본격적인 실천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차츰 실천에 옮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이 있는 이 동네도 극빈층이나 혼자 어렵게 사시는 분들은 정부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도 있고 논밭도 있지만 자식들이 집에 오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막상 가보면 집도 있고 땅도 있어서 지원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실제 생활을 보면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밑반찬을 해서 주고, 누가 일주일에 한 번씩 들여다봐주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 동네도 극빈층이 있어서 JTS가 도움을 주는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봉사하고 온 곳도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집도 아니고 자식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작물에 대해 안타까워하니까 도움을 드린 거예요. 이런 곳들은 재난 구호의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피해가 큰 지역은 정부에서 관리를 하니까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소외되는 곳을 들여다보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데도 국가가 제시하는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서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오늘처럼 벼가 쓰러진 경우에는 정부 차원에서 도움을 주기에도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둑이 터지거나 시설물이 망가지면 어떤 보상이 필요한지 명확한데, 농작물 피해의 경우에는 피해 정도를 가늠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보상 제도가 너무 쉽게 되어 있으면 그 안에서 부정부패가 생길 위험이 크고, 너무 엄격하게 되어 있으면 실질적인 피해자가 보상을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세상 일에는 이런 양면이 존재합니다.

정토회에서도 재난 피해지역에 도움을 주는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주말을 이용해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면 사회에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도움이 클 거예요. 지금은 여력이 안 되지만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를 통해 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강연장에 가면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도 뭐라도 하나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자원봉사로 잘 연결시켜 줄 수 있는지도 앞으로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되어 있으면 재난이 생기자마자 유튜브를 통해 어느 지역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원봉사자들에게도 매우 큰 보람이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조직하고 기획할 것인가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아홉 시 반이 넘었습니다. 오늘 울력도 했고, 내일도 울력을 해야 하니 이만 자기로 했습니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가을 들녘처럼 넉넉한 밤입니다.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목록
진달래 |2019-10-07삭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어어|2019-10-04삭제
난 전생에 좋은업을 마니진 사람인가봅니다 법륜스님같은분과 같은시대를 살아가는걸보면요~()()()
김정임|2019-10-02삭제
스님의 하루를 눈으로 따라가며 작은 것 하나 놓치지않고 살피고 챙기는 스님의 깊고 따뜻한 자비를 배웁니다 보이지않는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땀방울과 천지의 은혜 속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며 조금이나마 회향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디사트바|2019-10-02삭제
노인분들을 위해서 구호 활동을 하셨군요. ㅎㅎ 법륜스님과 정토회 여러분들의 공덕을 수희찬탄합니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_()_
이미정|2019-10-02삭제
주말이면 소비적인 생활대신 도시락싸들고 자원봉사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꿈을 꿔보니 흐믓합니다. 시스템이 잘 마련되면 참 좋겠네요.^^
정미영|2019-10-02삭제
스님 감사합니다~~
월광|2019-10-02삭제
밤송이 법문이 참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톨의 밥에도 만인의 노고가 있음을 압니다. 스승님과 수행자님들 참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길을 따라갑니다.
홍예지|2019-10-02삭제
자원봉사를 통해 넓어지는 마음과 뿌듯함, 성취감... 이러한 느낌을 많은이들과 함께 나누고싶습니다. 좋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이 세상에 잘 쓰이고 싶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정은미|2019-10-02삭제
이글을 읽으면서 부모님 생각이 많이났습니다 그때도 그랬을건데 한번도 해보질 못했네요 지금은 농사는 짓지않지만 죄송스러운 마음과 앞으로 봉사시스템이 잘 구축이 되어 많은 구원의 손길이 되길 희망합니다
박미순|2019-10-01삭제
처음 주말 등산가는 사람 볏단을 세웠으면 하는 제목을 읽을때 나라도 가서 쓰러진 볏단을 세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봉사시스템이 구축되면 사람들이 잘 쓰일수 있을것 같아서 좋겠구나 싶었고 볏단 세우기후 나누기를 읽으며 나누기가 필요한 이유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도반이 전부이구나
송미해|2019-10-01삭제
쌀 한 톨 안에 농부의 마음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을 오늘 바로 이해했습니다. 감사히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덕기|2019-10-01삭제
자원봉사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돈으로 할수없는 일 자원봉사.
최양희|2019-10-01삭제
감동 감동 감동입니다. 사진도 글도요
보리수|2019-10-01삭제
'벼를 서로 의지해서 세우면서 연기법을 공부해 보는 거다' 는 말씀 재미있습니다. 일한 후 나누기도 감동이네요. 사회봉사시스템이 잘 구축되면 참 좋겠습니다. 미래엔 새로운 주말레저 활동으로 봉사활동~^^
김애자|2019-10-01삭제
어떻게 자원봉사로 잘 연결시켜 줄 수 있는지도 앞으로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입니다
박경자|2019-10-01삭제
감사합니다~^^
봄바람|2019-10-01삭제
자원봉사 시스템을 연구하는 방법을 설명하시는데. 귀가 호강합니다
김혜경|2019-10-01삭제
스님의 혜안에 감동합니다. 녜 부디 건강하소서.^6
조복순|2019-10-01삭제
쓰러진 볏단을 보며 힘든시절을 사셨던 부모님 생각에 애잔한 마음입니다 ㅠ
산나무|2019-10-01삭제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도 제대로 된 봉사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봉사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백기순|2019-10-01삭제
함께 봉사하고 마음나누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명데오|2019-10-01삭제
"정토회에서도 재난 피해지역에 도움을 주는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주말을 이용해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면 사회에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도움이 클 거예요. " 감사합니다.~~^^
나누기|2019-10-01삭제
보살행입니다. 정말 좋은 일을 했습니다. 최고 스님.
첫화면 PC화면 문의하기 맨위로
©정토회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51길 7 | 02-587-8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