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30 농사일
“밤을 먹고 싶으면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해야죠”

안녕하세요. 가을로 물들어가는 구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했습니다.

아직 어둑한 새벽 4시 50분, 예불을 시작했습니다. 108배와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깨우는 사이 날도 점차 밝았습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조를 나누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을 깨끗이 청소하고,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따고 씻고, 탑곡 수련원에 유기농 채소 꾸러미를 포장하는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농장 옆에 있는 밤나무 숲으로 갔습니다.

푹신한 땅 위로 밤송이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냇가로 떨어진 알밤을 줍고, 함께 간 행자들은 마른 잎 위로 떨어진 알밤을 줍고 밤송이를 까기 시작했습니다.

밤송이가 툭 벌어진 사이로 토실토실하고 윤기 나는 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3개씩 꽉 찬 밤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저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밤송이 법문 생각나죠?”

즉문즉설에서 싫어하는 사람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해야 할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으면 스님은 주로 밤송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줍니다.

"밤이 먹고 싶으면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하고, 밤송이에 찔리기 싫으면 밤을 안 먹으면 돼요."

밤을 줍고 싶으니 밤송이는 아무 문제가 안되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에 곧잘 등장하는 다람쥐도 나올 것 같았습니다. 밤을 줍는 중에도 하늘에서 밤송이가 툭툭 떨어졌습니다.

“민 머리에 맞으면 정말 아파요.”(웃음)

두 시간 동안 재미나게 밤을 주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밤 알이 더욱 굵었습니다. 아직 밤송이가 많이 남아있어서 아쉬웠지만 다른 조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어 밤 줍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오전 일을 마치고 다 함께 탑곡 수련원에 모였습니다. 탑곡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조계환, 박정선 님 부부를 찾았습니다. 스님은 아침에 주운 밤 중에 일부를 선물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승 구경을 했다면서요?”

조계환 님은 며칠 전 높은 비탈길에서 트럭을 타고 가다가 브레이크가 고장 나 큰일 날 뻔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행자 몇 명이 조계환 님을 도와 유기농 채소를 다듬고 택배를 보낼 준비를 했는데 일이 덜 끝나 있었습니다. 스님과 나머지 행자들도 다 함께 채소 다듬는 일을 했습니다.

이 농장에는 외국인들도 견학을 자주 오는데 이번에는 독일에서 농부가 꿈인 19살 소녀가 함께 있었습니다.

한국에는 젊은 농부가 잘 없는데, 여기까지 농사를 배우기 위해 온 독일 소녀를 보며 스님은 농촌 회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해주었습니다.

“농촌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그래도 노인들이 늙어서라도 농사를 지었기 때문인데, 앞으로는 대다수의 노인들이 너무 고령이라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될 거예요. 이걸 해결하려면 동네마다 농업 회사를 만들면 되지 않겠나 생각해요. 노인들이 가진 농토를 전부 농업 회사에 주식처럼 넣은 다음, 농업 회사에서는 젊은 사람들을 직원으로 고용해서 전문적으로 농사일을 하도록 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하려고 하지만, 회사 직원으로 취직할 사람은 있을 거거든요. 회사 직원이 되어서 트랙터를 운전한다든지, 트럭을 운전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하고 월급을 받는 겁니다. 회사에서 생기는 수익을 농토를 제공한 노인들에게 주식 배당을 주듯이 나눠주는 거예요. 이런 방식이 아니고는 제 생각에 농촌은 더 이상 전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농촌 일은 이윤 추구를 하려고 하면 잘 안 돼요.”

“이윤이 생기든 안 생기든, 그렇게라도 해서 땅을 공용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렇다고 노인들이 가진 땅을 완전히 무료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정부가 회사에 지원을 하는 거예요. 개인농에게 지원하는 게 아니고요.”

“예전부터 농민 단체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농사일을 직원을 고용해서 하는 건 좀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최근에는 소농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면서 조금씩 조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지금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려면, 집도 구해야지, 농사도 배워야지, 준비해야 할 게 엄청 많거든요. 옛날 농사와는 달라요.”

“직원으로 일하면, 태풍이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는 데도 칼퇴근해버릴 수도 있겠네요.” (모두 웃음)

“괜찮아요. 직원으로 일해도 초과 근무한 만큼 근무 수당을 다 주면 돼요.”

다 함께 하니 일이 금방 끝났습니다.

일을 마무리 짓고, 근처에 가메들 계곡으로 다 함께 산책을 갔습니다. 가메들은 울산 태화강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쓰레기 담을 봉투 들고 오세요. 가다가 쓰레기가 있으면 좀 주웁시다.”

얼마 전 태풍에 계곡 물이 불었을 때 쓸려왔는지 농약병, 음료수 병 등 각종 쓰레기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도 많았습니다. 스님은 맨 앞에서 길을 방해하는 나무며 돌을 치우면서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부러진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 몸이 힘든 행자들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계곡에 물이 많았습니다. 부드럽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을 맞으며 시원하게 내려가는 계곡 옆으로 난 외길을 따라 걸으니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아직 푸른 잎이 대부분이지만 막 물든 단풍도 보였습니다.

고개를 들면 하늘에도 가을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가 어릴 때 내 목욕탕이었어요. 넓죠? 선녀탕이 아니라 나무꾼 탕이에요.”(웃음)

스님은 이 계곡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맑은 물이 고인 곳에서 활짝 웃으며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한 시간을 걸어 나오니 복안 저수지가 펼쳐졌습니다.

복안 저수지를 따라 걷는데 나뭇가지에 토시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지팡이로 낚시하듯 토시를 건졌습니다. 토시가 없던 행자가 기뻐하며 토시를 받았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논과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논으로 향했습니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었는데 해가 쨍쨍했습니다. 비올 확률이 80%인 2시까지 일을 마치기로 했습니다.

“자, 쉬는 시간 없이 딱 1시간 20분만 일할게요.”

“네!”

어제 해봤던 일이라 손에 익었는지 어제보다 빠른 속도로 벼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만났던 논 고동이 보입니다. 밥에 기대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우리가 정말 허리 숙여야 할 곳이 이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에 젖은 벼에 이미 싹이 나기도 했습니다. 싹이 난 볍씨는 도정하면 다 깎이고 얼마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볍씨가 논에 떨어져 벌써 싹이 나기도 했습니다.


주인 할머니가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할머니는 연신 “너무 고생한다. 그만해!”라고 했지만 그 속이 얼마나 탈지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2인 1조로 일을 했습니다. 한 명이 여섯 포기의 벼를 잡아주면 한 명이 재바르게 묶습니다. 속도도 빠르고 일을 나누어서 하니 힘이 덜 듭니다. 오늘까지 3번 벼를 세웠는데, 스님은 매번 조금씩 일 하는 방법을 개선했습니다.

“스님, 이렇게 하니 빠르네요.”

“그게 분업의 힘이지.”

1시간 20분이 지났지만, 600평 논의 벼는 다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줄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났지만 계속 벼를 세웠습니다.

멀리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서야 일을 끝냈습니다. 논에서 나와 개울로 걸어가는 사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와, 일 끝내니까 비가 쏟아지네요.”

우연도 필연처럼 기뻐하며 웃었습니다. 소나기를 피해 다다다 달렸습니다. 비를 흠씬 맞는 것도, 비를 피하는 동안 하릴없이 비를 구경하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거세던 비가 차츰 잦아들자 개울로 가서 얼른 장화를 씻었습니다. 논 주인 할머니가 특별히 담가주신 식혜를 먹고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흙과 땀과 비로 젖은 몸을 씻어냈습니다. 피로도 함께 씻겨나가는 듯 개운했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오늘 함께 일하면서 느낀 점을 나누었습니다.

“지금까지 벼가 쓰러진 모습을 자주 봤는데 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막상 직접 벼를 세우는 일을 해보니까 농민들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졌어요. 날씨 따라 좋았다 나빴다 하겠구나...”

“누군가가 2인 1조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그 방식이 안 받아들여졌어요. 막상 2인 1조로 해보니까 정말 속도가 빨랐어요. 일단 해봐야 하는구나 느꼈습니다.”

“스님과 2인 1조로 일했는데, 스님이 너무 빠르셔서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스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일이 더 잘 안 되더라고요.” (모두 웃음)

“끝까지 다 못하고 와서 아쉬워요. ‘20분만 더 하면 다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많은 분들이 일을 다 끝내지 못해서 아쉽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 짜내면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더 일을 하자고 했을 때 힘이 빠졌어요. ‘저는 더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논 밖으로 나갔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물이라도 떠올까 생각했는데 너무 먼 거예요. (모두 웃음) 그래서 그냥 앉아 있었어요. 똑같은 상황인데 전혀 다른 마음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참 재미있었어요.”

“내가 이 논의 주인이라면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1시간 정도 일을 더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스님이 일을 마치자고 했을 때는 ‘수행자는 내려놓을 때 딱 놓아야 한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같은 논에서 함께 벼 세우는 일을 했는데도 일어나는 마음이 다 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느낀 점을 나누었습니다.

“어제 벼 세우는 일을 다 못하고 가서 오늘은 1시간 정도만 더 일을 하고 가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기예보를 보니까 오후 1시부터 비가 올 확률이 60%, 2시부터 80%로 나와 있어서 오늘은 논에 안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해가 쨍쨍 났잖아요. 그래서 오늘 논에 가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벼를 다 못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들 일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결국 다 못했네요. 일을 하다 보면 늘 집착이 생겨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다가 몸에 무리가 가거든요. 그렇게 되면 다들 내일 서울 올라가서 출근을 못하는 일이 생길까 염려가 돼서 일을 시작할 때 딱 1시간 20분만 일하기로 정했어요. 그런데 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갈 때 또 집착이 생겨서 조금 더 일을 하게 되었네요. (모두 웃음)

그래도 마지막에 주위를 살펴보니까 벼를 묶는 짚이 다 떨어졌더라고요. 그리고 저 멀리 보니까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시간에 일을 끝낸 거예요. 진짜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게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줄 수 있어서 마음은 가볍습니다.

아침에는 밤을 주웠는데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를 다 둘러보고 밤이 어디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를 점검을 했어야 하는데, 밤나무가 시작되는 입구부터 무조건 줍기 시작했어요. 한 자루씩 다 줍고 나오다가 배가 아파서 저 혼자 볼일을 보러 저 안쪽까지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밤송이가 엄청 큰 게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처음부터 안쪽에 가서 주웠으면 알이 굵은 밤을 많이 주울 수 있었을 텐데, 입구에 있는 알이 작은 밤들만 실컷 주워 왔어요. (모두 웃음)

그래서 ‘아, 어떤 일을 하기 전에는 전체를 딱 살펴보고 시작해야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다들 수고하셨고요. 고추 따는 일이 아직 마무리가 안 되어서 저는 행자님들과 다시 비닐하우스로 돌아가서 1시간 정도 더 일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다들 조심히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도 지나치지 않고 돌아보는 스님의 나누기를 들으니 왜 매번 조금씩 일하는 방법이 나아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대중은 서울로 돌아가고 스님과 수행팀은 남아 일을 더 했습니다. 벌레 먹은 고추에서 먹을 수 있는 부분만 잘라냈습니다. 오전에 딴 밤도 씻고 분류했습니다. 밤은 내일 서울로 가져가서 대중들과 함께 먹을 예정입니다.

일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해 서초 정토법당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가까웠습니다. 모두 잠든 사이 스님도 낙엽이 나리듯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하루를 마쳤습니다.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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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욕심이 생기고 집착을하고 자책하고...
그런 나를 다시 자각하고 알아차립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11-17 21:30:04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1-04 15:45:34

무지랭이

수고 많으셨습니다~^^

2019-10-05 19: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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