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9. 고구마 캐는 날
“고구마야, 고마워!”

오늘은 고구마를 수확했습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부드러워 농사일을 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아침을 먹은 후 8시에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새벽 1시에 도착해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깨를 거두었습니다. 옮기기 좋게 묶어서 이동한 다음 볕이 잘 드는 곳에 펴두었습니다.

고구마 밭에는 고구마잎과 줄기가 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고구마를 캐기 전에 고구마 줄기와 잎을 걷어냈습니다. 낫으로 줄기를 자른 후 돌돌 말아서 트럭에 실었습니다. 새벽에 이슬을 맞아서 그런지 꽤나 무거웠습니다.

“원래 순을 햇빛에 말린 다음에 가져가야 가볍거든. 할머니들은 힘이 없으니까 그러는데, 우리는 힘이 좋은데 뭐.”

고랑 사이에는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부직포를 깔아 두었는데 내년에도 사용하기 위해 다시 부직포를 거두었습니다. 부직포를 땅에 고정하기 위해 박아 놓은 철심도 그대로 다시 회수했습니다.

거둔 부직포는 박스에 보관하기 위해 햇빛에 말렸습니다.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반찬으로 요리해 먹기 위해 고구마 순도 한 바구니 모았습니다.

“잎을 먹는 게 아니고, 길쭉한 잎의 줄기, 즉 순을 먹는 거예요. 통통한 순만 이렇게 모아 주세요.”

고구마줄기마다 순이 줄줄이 달려 있었습니다. 스님이 행자님들에게 안내하자마자 금세 한 바구니가 모아졌습니다.

밭에서 걷어낸 고구마잎과 줄기는 트럭에 싣고 동네에 소 키우는 집에 가져다주었습니다. 고구마 줄기는 소가 아주 맛있어한다고 합니다.

잎과 줄기를 모두 걷어내니 밭 전체가 훤히 드러났습니다. 고구마 줄기를 제거하느라 좀 무리를 했나 봅니다. 허리를 펴던 스님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옵니다.

“아이고, 허리야. 고구마순이 진짜 무겁네!”

“땅이 질어서 고구마 캘 때 힘들어요. 오전에 땅을 햇빛에 바짝 말렸다가 오후에 고구마를 캡시다.”

밭이 햇빛에 마르는 사이 스님과 행자님들은 고추가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온 세상이 가을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벼 속으로 황금빛 가을이 밀려와 논이 훤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서자 열기가 후끈 느껴졌습니다.

“이 안은 완전히 한 여름이네.”

빨간 고추가 하루가 멀다 하고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이라 그런지 고추 색깔이 더 빨갛네.”

며칠 사이에 고추나무의 키도 더 높이 자라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온실에서 이렇게 키우니까 이만큼 크지 밭에서 키우면 이만큼 안 커요.”

끝도 없이 계속 열리는 고추가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농사 담당 행자님이 얼마 전 생산한 고추를 고춧가루로 빻아서 샘플로 만들어 와서 스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스님의 짧은 편지가 스티커로 예쁘게 붙여져 있어서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고춧가루로 만들어서 보내주면 이 고추가 얼마나 좋은 고추인 줄 잘 몰라요. 제일 좋기는 고추 말린 걸 그대로 보내주는 건데 말이야.”

철분이 많다는 고춧잎도 반찬으로 먹기 위해 다듬었습니다.

어느 정도 고추를 따고 농장 옆 산으로 가서 밤을 주웠습니다.

“늦밤 따러 가자. 제 시기보다 일찍 따는 밤을 올밤이라고 하고, 오늘처럼 늦게 따는 밤을 늦밤이라고 해.”

이미 한 차례 사람들이 주워가고, 밤송이 껍질만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알밤이 있어서 한 주머니 주워 왔습니다.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고 장비를 챙겨 고구마 밭으로 향했습니다. 고구마가 얼마나 잘 컸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땅을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쇠스랑으로 땅을 깊숙이 뒤집고 호미로 고구마를 캐냈습니다. 땅속에 묻혀있는 고구마가 다치지 않기 위해 저절로 조심스러워집니다.

스님은 쇠스랑으로 땅을 뒤집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그러다 고구마가 정통으로 찔렸습니다. 주위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캐다 찍은 건 삶아서 먹자.”(웃음)

고구마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이상하면 이상한대로 웃음이 나옵니다. 캐낸 고구마는 뿌리를 자르고 흙과 잔뿌리를 털어서 잠시 햇볕에 말렸습니다.

한차례 땀을 흘리고 감나무 아래서 감을 먹으며 쉬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보며 단감 한 입 베어 무니 가을이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해가 벌써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땀도 식고, 쌀쌀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스님은 무가 자라고 있는 밭으로 향했습니다.

“한 달 뒤에 김장을 해야 하는데, 무가 아직도 크기가 너무 작네. 한 달 만에 쑥쑥 클 수 있을까?”

무의 크기가 작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스님은 조용히 무밭으로 가서 무청을 솎아 주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자주 닿는 만큼 채소도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습니다. 행자님들은 남은 고구마를 모두 캐어 고구마에 뭍은 흙을 털고 잔뿌리를 가위로 자른 다음 밤고구마, 물고구마, 호박고구마 종류별로, 또 크기 별로 분류해서 상자에 담았습니다.

상자에 담긴 고구마가 트럭에 가지런하게 실린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밭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고구마를 캐느라 땅만 쳐다봤다던 행자님이 말합니다.

“하늘이 이렇게 파랬군요. 너무 예뻐요.”

흙을 만지고 자연을 느낀 휴식 같은 하루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동그랗게 둘러앉아 오늘 농사일해보면서 어땠는지 편안하게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고구마를 많이 수확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직접 내 손으로 키워서 직접 수확해서 먹는 게 참 좋구나 많이 느꼈어요. 고춧잎을 따와서 저녁 밥상에 고추나물을 무쳐 먹었는데,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고춧잎이 참 소중하게 다가왔어요.”

“봄에는 밭을 갈고, 고랑에 부직포를 씌우고 했는데, 오늘은 그 반대 순서로 정리를 했잖아요. 밭이 원래 처음 모습으로 되돌아온 과정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일하려고 경쟁하는 제 마음이 보여서 그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일했습니다.” (웃음)

“참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내 입에 음식이 들어오는구나 느끼는 것이 큰 공부인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마트에서 봤던 고구마는 아주 깔끔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실제 밭에서 캔 고구마는 털도 많고 생김새도 못 생겼더라고요. 아, 내가 본 고구마가 전부가 아니었구나. 고구마도 팔려 가려면 성형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웃음)

마음 나누기를 하던 중 오늘 캔 고구마가 군불에 구워져서 나왔습니다. 호호 불며 맛있게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햇빛, 비, 땅, 지렁이, 사람 등이 6개월을 합작해서 만든 귀한 고구마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운전하는 행자님은 농사일을 마치면 운전을 해야 하니까 그게 저도 늘 부담이었거든요. 저는 차 안에서 쉬면 되지만, 행자님은 운전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이동하는 일정이 없으니까 편하게 일할 수 있었어요.

고구마를 캘 때 속도를 내다보니까 쇠스랑으로 고구마를 몇 개 찔렀어요. 삼지창이 대나무 뿌리에 걸려서 그걸 치우려고 하다 보니까 쇠스랑도 망가졌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 고구마값만큼 일을 못했어요. (모두 웃음)

응달에는 고구마를 안 심어야 하는데, 그걸 행자님들에게 주의를 못 준 것 같아요. 역시 모든 생명의 근원은 태양인가 봐요. 햇빛을 조금 더 받느냐 안 받느냐로 인해서 많은 차이가 나거든요. 그늘에는 더덕 같은 음지 식물을 심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땅이 마른 뒤에 고구마를 캐야 캐기가 쉬운데, 비 온 뒤에 고구마를 캐서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함께 해서 좋았어요. 저는 농사짓는 것이 휴식이에요. 때로는 그 휴식이 너무 과해서 피곤을 더해 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농사일을 할 때 제일 집중이 잘 되는 편이에요.” (모두 웃음)

마음 나누기를 마치고 나니 달이 산 위로 휘영청 떠 있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본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정기 수행 법회 일이어서 행자님들은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수행 법회를 함께 보았습니다.

내일도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한 후 저녁에는 진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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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1-23 00:58:50

무지랭이

가을 하늘이 참으로 아름답네요~~^^ 고맙습니다_()_

2019-10-13 13:51:56

정명데오

“잎을 먹는 게 아니고, 길쭉한 잎의 줄기, 즉 순을 먹는 거예요. 통통한 순만 이렇게 모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2019-10-12 17: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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