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26 경주 남산 순례 1차
“결혼을 했지만, 다른 남자가 자꾸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가을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하는 날입니다. 전국에서 어젯밤부터 버스를 타고 출발한 대중은 새벽 6시경에 대부분 경주에 도착했습니다. 부산 울산, 인천 경기, 경남, 광주전라 지역에서 8백 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경주 남산은 지붕 없는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 곳곳에 절터, 불상, 탑이 많습니다. 골짜기마다 볼 것이 많고, 한꺼번에 많은 대중이 설명을 듣기 어렵기 때문에 정토회 법사단이 각 골짜기마다 안내를 맡았습니다. 스님은 삼릉골을 선택해서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남산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영상 촬영도 했습니다.

삼릉골 입구 주차장에서 지도를 보며 남산에 대해 전체적인 설명을 듣고 삼릉으로 출발했습니다.

삼릉골 입구

“경주 남산은 남북 길이가 10km 정도 되고, 동서 길이가 4km 정도 되는 약간 길쭉한 타원형 모양입니다. 거북이 모양이라고도 얘기합니다. 큰 봉우리가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금오봉, 다른 하나는 고위봉입니다.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있는 큰 골짜기가 용장골입니다.

경주 남산에는 용장골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많은 골짜기가 있는데, 유물과 유적이 있는 골짜기가 50여 개가 됩니다. 절터가 있는 곳이 150여 곳, 불상이 있는 곳이 100여 곳, 탑터가 60여 곳, 이렇게 많은 불적지가 있습니다. 민속 문화재까지 포함하면 700여 점의 유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 전체가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리울 정도인데요. 현재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불적지가 가장 많은 서남산에 위치한 삼릉골을 오르게 됩니다. 정상인 금오봉에 올랐다가 동남산으로 내려가서 통일 암 너른 마당에서 점심을 먹겠습니다.”

오전 7시, 소나무향이 배어있는 새벽 공기를 맡으니 정신이 맑아집니다. 삼릉골에서 만난 첫 번째 유적은 삼릉이었습니다.

삼릉

“왕릉이 3개가 있다고 해서 삼릉이라고 불립니다. 이곳 서남산은 신라가 시작된 곳인 동시에 신라의 마지막인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나정’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신라는 1000여 년 동안 56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중 마지막 53대, 54대와 55대 왕의 릉이 서남산에 있습니다.

맨 위에 있는 무덤이 8대 아달라왕이 무덤이고, 그 밑에 53대 신덕왕, 그 밑에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렇게 3개의 무덤이 있고, 여기서 계곡 건너편에 55대 경애왕의 무덤이 있어요.”

20분 정도 산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곧 머리 없는 불상이 나타났습니다. 먼저 옆 기슭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만한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니 이제 막 아침햇살을 받기 시작한 관세음보살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관세음보살상

“저 바위 위에 붉은 색깔이 중간중간에 있죠? 그 부분을 입술에 맞춰서 조각을 새겨서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입술 부분이 붉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 뒤에 저 바위가 있음으로 해서 빛이 주욱 내려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관세음보살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사뿐 내려앉은 것 같죠?”

“네.”

“남산의 불상은 대부분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너무 돌출되지 않도록 약간만 인공을 가미해서 새긴 것이 큰 특징입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차례로 내려와 머리 없는 불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불상이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이유

“이 불상은 보시다시피 가슴 부분에 아주 아름다운 옷 무늬가 있는 불상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머리 부분이 현재 없습니다. 이 불상은 이 계곡에 가슴 쪽을 아래로 해서 쓰러져 있었어요. 그 위로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다가, 1964년에 발견이 되어서 여기에 모셔졌습니다. 이 불상이 원래 있었던 자리가 이 자리는 아닙니다.

가슴을 보면 옷자락 무늬가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머리 부분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불상일지 상상해볼 수 있겠죠?”

“네.”

“특이한 점은 이런 옷 묘사가 부처님의 옷 모습이 아니라는 거예요. 부처님의 옷은 어떤 이음새가 없습니다. 통 천을 몸에 두르고 있기 때문에 매듭 같은 게 전혀 없는데, 여기 보시면 매듭이 있습니다. 이걸 보면 신라 시대의 매듭 생김새를 짐작할 수는 있는데, 그래서 이 불상을 부처님의 상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워요.

그러면 저런 옷을 입고 있는 분은 누굴까요? 불보살 중에 지장보살이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보살의 상일 것이라는 추측이 하나 있어요. 또 다른 추측은 신라인들이 부처님의 옷을 인도식으로 입히지 않고 신라 식으로 입혔다는 겁니다. 이런 불상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용장사지의 삼륜대좌불도 이런 옷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제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청소년 시기에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그때 이 불상의 머리를 찾아서 복원하자는 운동을 벌였어요. 이 골짜기를 늘 다니면서 불두(佛頭) 찾기를 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불상의 복원은 곧 불두를 찾아서 맞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청년 시절에 이런 걸 깨달았습니다.

‘이 불상은 마치 한국 불교의 모습과 같다. 머리는 떨어져 나가고 두 손과 두 발이 다 파괴된 모습을 보라. 머리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담마(Dharma)를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불교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인 담마가 이미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또 두 손과 두 발은 자비의 실천행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 불교는 실천행이 없고, 그저 불교라고 하는 이름만 몸체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 불상은 한국 불교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불상을 복원한다는 것은 머리를 찾고 팔다리를 복원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인 지혜를 재현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 담마를 우리가 이 세상에 재현해낸다면 이것이 곧 부처님의 머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비의 행을 우리가 이 세상에 실천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이 불상의 두 손과 발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상은 새로운 불교 운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어서 정토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때 어떤 자극을 받는지가 평생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저는 청소년 때 이 골짜기를 오르내리면서 이 불상으로부터 그런 영감을 얻었어요.”

다시 10분을 걸으니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선각육존불

“왼쪽 바위를 보시면, 가운데에 부처님이 서 계시고, 좌우로 두 분의 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앉아 있습니다. 이것은 아미타 부처님상이에요. 아미타 부처님은 극락세계의 교주입니다. 좌우에 두 분의 보살이 우슬착지를 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중생이 죽으면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할 때, 아미타 부처님이 그 중생을 환영하는 내영 아미타불의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오른쪽 바위를 보시면, 가운데에 있는 부처님이 앉아 계십니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양쪽에 두 분의 보살은 서 있습니다. 왼쪽이 문수보살이고, 오른쪽이 보현보살입니다.

그러면 왜 서쪽에 아미타 부처님을 새겼을까요?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세계는 항상 서방에 있기 때문에 서쪽 바위에 아미타불을 모신 겁니다.

마치 바위에 연필로 스케치를 하듯이 그려 놓았죠? 그런데 전해 내려 오는 얘기에 의하면 바위에 새기만 한 게 아니고 채색까지 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채색이 지워진 것이라고 학자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바위 위에는 홈을 파 놓아서 빗물이 내려오면 그 홈에 걸려서 옆으로 빠지도록 물길을 만들어 놓았어요. 그리고 위에 덮개로 지붕을 만든 흔적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지붕은 없어지고, 이렇게 노천에 드러나 있게 된 겁니다.”

선각육존불 뒤로 큰 바위를 올랐습니다. 경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대중은 가빠지는 숨을 다독이며 부지런히 스님 뒤를 따랐습니다. 10분 뒤에 또 불상을 만났습니다.

마애여래좌상

“여기 마애불은 신라시대 불상이라기보다는 고려시대의 불상이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얼굴 모양이 투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친근감이 있긴 한데, 코가 너무 크고, 입술이 너무 두터워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아주 섹시한 부처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못난이 부처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불상에서 저 멀리 서쪽을 바라보면 보이는 저 산이 단석산입니다. 김유신 장군이 화랑 때 돌을 칼로 잘랐다는 곳입니다. 전망이 아주 좋죠?”

“네.”

“여기서 보면 바위가 직각처럼 보이죠?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약간 바위가 뒤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부처님도 서쪽 하늘을 쳐다보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불상을 만났습니다.

석조여래좌상

“대부분 바위에 불상을 새겼는데, 이 불상은 이 골짜기에서 완전하게 조각을 한 유일한 불상입니다. 남산에 있는 불상들은 조선시대에 대부분 파괴가 되었는데, 현재 이 모양으로 새로 복원해 놓은 겁니다. 지금은 울타리를 쳐놓았는데, 옛날에는 남산에 오면 부처님과 팔짱 끼고 사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여기입니다. 아주 친근감을 주는 불상이에요.”

이번에는 큰 바위를 지나는가 했더니 스님이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선각 마애 여래상

“저 위에 햇살이 비치는 바위 보이죠? 자세히 보면 저 바위 위에 불상이 선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안 보일 거예요. (모두 웃음)

오늘은 해가 마침 딱 비춰서 선명하게 잘 보이네요. 불상을 항상 봤니 못 봤니 시비가 많은 곳이에요. 잘 보여요? 안 보여도 봤다고 하고 오세요.”

다음 장소인 상선암까지 20여분이 걸렸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니 금세 땀이 흐릅니다.

상선암을 참배하고 마애 대좌불로 향했습니다.

바위 속에서 얼굴을 내밀어 인사하는 부처님

“이 불상을 보시면 아랫부분인 몸체는 바위에 그냥 선각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상체는 돌출되어 있죠. 그래서 마치 바위 속에 가만히 계시다가 여러분이 와서 절을 하니까 ‘너 왔느냐?’ 하고 바위 속에서 얼굴을 내밀어 인사하시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저 봉우리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이 불상의 아주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과 인공을 굉장히 조화롭게 만든 것이 경주 남산에 있는 조각들의 특징입니다. 이 불상도 그래요. 몸 아랫부분은 자연석 그대로 두고, 중간 부분은 선각으로 새기고, 더 위로 올라갈수록 자꾸 돌출되도록 해서 머리 부분은 인공적으로 거의 다 드러나게끔 새겼습니다.”

마애대좌불 앞에서 정성을 다해 예불을 했습니다. 스님은 경주남산순례를 하러 온 대중을 위해 축원도 해주었습니다.

경치 좋은 바둑바위를 지나 금오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중들은 휴식을 하고 스님은 _“저는 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는 다른 대중도 맞이해야 해서 먼저 내려가겠습니다.”_라고 양해를 구한 후 먼저 산을 내려왔습니다.

통일 암 너른 터에 도착한 스님은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대중들보다 일찍 식사를 마친 후 막 내려오기 시작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식사가 모두 끝나자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 인생살이에서 겪는 고충들에 대해 스님에게 마음껏 물을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다른 이성이 마음에 들어온다는 질문자가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차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다른 남자가 자꾸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즉문즉설을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질문이 안 나와서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남편 하고도 소통이 잘 되고 아이들도 잘 자라 군대에 가 있는 가운데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정이 있는 다른 남자가 제 마음에 들어와요. 제가 남편과 소통이 안 되거나 문제가 있다면 또 모르지만, 저는 정말 잘 살고 있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다른 남자가 계속 제 마음에 들어와요.

그것 때문에 정토회에 나와서 계속 강의를 듣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짝이라는 말도 잘 모르겠고, 내려놓고 알아차리라는 말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선까지 알아차려야 하는 건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곧 지켜본다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스님이 단칼에 자르라고 하시면 자를 수 있어요. 저 혼자 짝사랑하다시피 하는 상황이거든요. 마음속으로 혼자 일희일비하면서 상상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쥐약입니다. (모두 박수)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수는 있어요. 예를 들어 늘 쓰레기장만 뒤지던 쥐가 어느 날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고구마가 접시 위에 딱 얹혀 있는 광경을 봤다고 합시다. 그래서 반색하고 좋아했습니다.

‘야, 살다 보니 나도 이럴 때가 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고구마가 이렇게 깨끗한 곳에 이렇게 곱게 놓여 있다니!’

그런데 그런 건 대부분 쥐약이에요. 질문자는 지금 쥐약을 발견한 거예요. 그걸 먹을지 안 먹을지는 자기가 결정하면 되는데, 대부분의 쥐는 쥐약을 먹고 죽게 됩니다. (모두 웃음)

질문자가 불법(佛法)을 안 만났다면 질문자 역시 이미 쥐약을 먹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쥐가 그런 음식을 발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걸 안 먹고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은 쥐약을 발견하는 경우가 쥐의 평생에 별로 없습니다. 질문자는 쥐약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 먹지는 않은 상태잖아요. 이제 먹을지 안 먹을지는 질문자가 결정을 하면 돼요. 그걸 먹고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죽는 게 나을지,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안 먹고 오래 사는 게 나을지는 본인이 선택을 하면 돼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에요. 결혼한 사람이 어떤 여자나 남자를 보고 마음에 흥분이 일어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그게 죄도 아니고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따라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 번 맛있게 먹고 죽겠다’ 이러면 해볼 만해요. (모두 웃음)

그런데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결과가 있어요. 배가 아프고 데굴데굴 구르는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좋음을 쫓지 않는 게 낫다고 할 수 있죠. 이건 질문자 본인이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감정을 안 따라가고 지켜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소모적이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변덕일 수도 있지만, 이런 감정이나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제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쓸 수도 있잖아요. 선택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원인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면 선택을 해도 괜찮은 걸까요? 그런데 저는 인생을 멋있고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마음이 자꾸 요동치는 걸 그냥 계속 보는 것도 제 수행이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쥐가 쥐약을 굉장히 먹고 싶으면 저한테 어떤 질문을 할까요?

‘스님, 조금만 먹어보면 안 될까요? 꼭 쥐약 들었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접시에 놓인 음식이라고 다 쥐약이 든 건 아니잖아요.’

먹고 싶기 때문에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처음에 ‘와, 웬 떡이냐’ 했다가도 ‘거기 쥐약 들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그냥 탁 내려놓습니다. 그 음식이 아무리 빛깔이 좋고 맛있다 해도 쥐약이 들었다고 하면 거기서 정이 딱 떨어져야 해요. ‘아, 그래요?’ 하고 탁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나쳐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이러는 거예요.

‘조금만 먹어보면 안 될까요? 꼭 쥐약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쥐약이 안 들어있는 음식도 있잖아요.’

이러면 먹을 확률이 높죠.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쥐약을 곧 먹을 것 같네요.” (모두 웃음)

“아니오, 안 먹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 것 같아요.”

숲속에서 펼쳐진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대중은 아주 솔직한 자신의 고민을 말했고, 스님은 법상에서 내려와 격의없이 행복해지는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 순서에 질문한 분은 첫번째 질문자 분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이라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이성의 유혹에 넘어가 바람이 날 것 같아요

“첫 번째 질문하신 여성분과 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하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조금 다른 부분도 있기에 질문드립니다. 저는 남편과 연애 3년 끝에 결혼한 지 6년 됐고 다섯 살 된 딸이 있습니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가족이 주는 안정감을 감사히 여기면서 10년 가까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성과 관련한 유혹이 많지만 제가 말을 직선적으로 하는 편이어서 잘라낸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매번 자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저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서 쥐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2주 전에는 이러다 정말로 쥐약을 먹어버릴 것 같아서 유튜브 검색창에 ‘즉문즉설, 바람이 날 것 같아요’라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관련 법문을 찾지 못해 법당 총무님께 상담을 받았고, 다행히 쥐약을 먹지 않고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제 경우만이 아니라, 결혼하고도 이성을 유혹하거나 이성의 유혹에 넘어가 쥐약을 먹는 저희 중생을 위해 스님께서 혼을 좀 내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 혼을 내주셔야 제가 쥐약을 안 먹을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왜 이리 쥐약이 많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음식을 안 보고 좀 평온한 마음으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잘하고 싶습니다.”

“옛날에는 주로 남자들에게 이성에 대한 유혹이 많았어요. 가정을 두고도 딴 여자에게 관심을 두는 게 고민인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여자들이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경우는 백 명에 한 명도 안 될 정도였어요. 여자들은 주로 집에서 지내고, 인간관계가 제한돼 있고, 또 인간관계를 맺더라도 이혼 같은 변화가 자기 삶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이혼해도 자기 직장이며 돈벌이가 있고 가진 재산도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느긋했습니다. 안 되면 재혼하면 되고, 또 밖에서 활동하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확률도 높아서 유혹도 많아지고요.

그러나 사실은 유혹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질문자 본인이 끌리는 거죠.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

법륜스님한테 누가 찾아와서 ‘스님, 사랑해요. 나하고 연애해요’ 이런 걸 유혹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건 그냥 바람 소리예요. 내가 관심이 있으면 비로소 유혹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관심 없으면 아무리 그런 소리를 해도 웃으면서 ‘어, 그래요?’ 이러고 넘어갑니다.

전에는 남자들이 그런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여성들도 그런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 이유는 첫째, 직장 생활을 해서 접촉면이 넓어졌습니다. 두 번째, 직업을 가지면 어느 정도 자기 생활이 되잖아요. 그게 무의식 세계에 영향을 줍니다. ‘내가 먹고살 만하니까 바람을 피워도 된다!’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 밑바닥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드는 거예요.

‘만의 하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죽는 건 아니지 않으냐, 뭐 어떻게든 살 수야 있지 않겠느냐.’

이런 게 밑바닥에 남아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이제 이런저런 조건들이 똑같이 일어나는 거예요. 전에는 남자들만 이런 경우가 많다 보니 이것이 남자의 어떤 신체적 특성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남자나 여자나 사실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그런 것이 도덕적으로 죄의식을 덜 느끼게 되고, 또 주위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고 사니까 그걸 대수롭잖게 생각해요. 반면에 여성들은 주위에 그런 사례가 거의 없고, 또 이혼하면 살길도 막막하니까 그게 무의식 세계에서부터 두려움이 돼서 딱 억제를 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사회생활이 개방되면서 이것은 이제 남자든 여자든 다 동일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거나, 여자가 이런 얘기를 하면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과거의 사고방식이에요. 이런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들 수 있는 마음입니다.

제가 7, 8년 전에 이런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부가 모두 아주 좋은 직장을 다니고, 아기도 있고, 부부 사이도 화목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분이 자기 직장의 동료가 마음에 들어서 너무너무 가슴이 설렌대요.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며 상담을 해왔습니다.

그런 마음은 나쁘다 좋다 판단하거나 억제한다고 해결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것도 지나가는 한때의 위기란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외국에 파견 근무를 나가보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속을 밟아서 1년 동안 해외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는 가운데 그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쥐약을 맞닥뜨렸을 때는 좀 피해야 해요. 그 마음이 10년, 20년씩 가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이 ‘법륜스님!’ 이러고 좋아하지만 그건 그때뿐이지 며칠 안 가요. 그때만 넘어가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모두 웃음)

이런 쥐약은 피해 가는 게 현명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집에서 부부관계에 갈등이 생기거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끌리는 마음이 더 강화됩니다. 집안이 안정이 돼 있으면 유혹이 덜한데, 집안에 분란까지 생기면 마음이 더 쏠리게 됩니다.

돈을 빌려 쓰면 쓸 때는 편해요. 한 달에 수익이 백만 원인데 매월 은행에서 백만 원씩을 빌려 쓴다면 쓰는 당시에는 마치 자기 수입이 이백만 원인 양 쓸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모두 갚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이런 좋음이 실제로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 가정에서 닥칠 문제를 고려해봐야 해요.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해서 애를 데려와 키우는 것도 문제지만, 새로운 관계가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이렇게 약간 위험이 있을 때 더 긴장되고 고양되지만, 실제로 일을 딱 저질러보면 금방 식어버립니다. 그런데 과보는 엄청나게 크게 돌아오죠. 감정이 지속되면 그래도 과보를 견딜만하겠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이루어졌을 때 그냥 가라앉아버리는 경우가 다수예요. 그러면 미래가 막막해지고 과거가 후회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결과를 생각해봐야 해요. ‘이러저러하게 됐을 때 내가 그걸 감당해내겠느냐?’ 이렇게 결과를 먼저 헤아려 보면 지금의 이 순간을 좀 이겨낼 수 있어요. 이걸 윤리 도덕적으로 자꾸 통제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아이들더러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하면 더 반발이 심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적으로 나쁘다. 그러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억지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해도 되지만, 그게 과연 나한테 좋으냐?’ 이런 관점에서 깊이 살펴봐야 합니다.

물론 마음이 막 쏠리는 상태에서는 자기가 평가해 봐도 다 좋아 보이고, 결과도 다 잘 나올 것 같아요. 주식 살 때는 다 오를 것 같죠? 막상 사 보면 안 그래요. 그런 것처럼, 현재의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일단은 그냥 가정을 유지하는 게 지혜입니다.

여러분한테 즉문즉설을 할 때 스님이 ‘결혼했으니까 그대로 살아라’ 이런 이야기는 안 하잖아요. 그런데 지나 놓고 보면 이혼하고 재혼을 하게 되면 인생이 복잡해져요. 이 집 아이, 저 집 아이, 게다가 부모도 늘어나요. 시집만 가도 벌써 처음 보는 사람을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고, 상대방 형제자매들도 있어서 복잡하잖아요. 그런데 이 상황을 한 번 더 바꾸게 되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해져요. 재혼이 윤리적으로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는 게 굉장히 복잡해진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서 살 필요가 뭐 있어요? 이제 정신 좀 차렸어요? 찬물 한 그릇 줄까요?” (모두 웃음)

“스님, 그러면 지금의 그런 유혹의 꿀맛이 나중에 과보로 돌아온다면 어느 정도의 고통으로 돌아올까요? 열 배, 혹은 백 배일까요? 어느 정도인지 수치적으로 알려주세요. 제가 수학을 좋아해서요.”

“수치적으로 보통 억 배쯤으로 돌아와요.”(모두 웃음)

“네, 고맙습니다.” (모두 박수)

“물론 쥐약이라도 자기가 감당하고 먹겠다고 하면 괜찮아요. ‘하루를 살더라도 그 쥐약을 먹어보고 죽겠다’ 이러면 괜찮아요. 스님은 그런 걸 두고 ‘쥐약이니까 먹지 마라’ 이런 얘기는 안 해요. 먹고 죽겠노라 각오하면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질문자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대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과보가 억 배로 돌아온다는 말에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염불사 앞에 모여서 경주 남산 순례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

“미래에 가장 중요한 공부는 지금 우리가 하는 마음공부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하고 결혼을 해도, 성공을 해도 행복하지 못하고 괴롭다면 그 모든 것은 사실은 의미가 없습니다. 대리만족을 할 뿐이죠. 그러니 여러분이 이 공부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돈 몇 푼 버는 것보다, 승진하는 것보다 이 마음공부가 중요하다.’

이런 관점이 잡혀 있어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불교대학 1년 과정부터 우선 마쳐야 해요.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야 합니다. 경험을 먼저 해봐야 해요. 공부가 하기 싫을 때도 있고, 바쁠 때도 있고, 몸이 아플 때도 있겠지만, 중간에 떨어지지만 마세요. 떨어지지만 않고 붙어 있으면 좋았다 나빴다 반복하더라도 끝에 가면 결과적으로 좋아지게 돼 있습니다.”

남산 순례가 끝난 후 스님은 두북으로 돌아와서 들깨를 털었습니다. 바싹 말린 들깨를 줄기 채로 탈탈 털었습니다.

“깨를 너무 일찍 베어서인지 쭉정이가 많네.”

스님은 체로 큰 찌꺼기를 거른 다음 선풍기를 켜 두고 쭉정이를 가려냈습니다.

선풍기 바람에 가벼운 쭉정이는 날아가고 무거운 깨만 바닥으로 떨어지는 원리입니다. 다 털고 나니 깨만 한 대야 모였습니다.

내일도 남산 순례를 가기 때문에 오늘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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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백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에서 분리된 불두, 경주 남산 약수곡에서 발견
https://news.v.daum.net/v/20200603093017686

2020-06-04 13:02:49

쥐약

스님말씀을 들었어야 하는데
괴롭습니다

2019-12-28 10:17:36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04 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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