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27 경주 남산 순례 2차
“사람들 앞에 서면 너무 떨려요”

안녕하세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스님은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했습니다.

가을불교대학생 천 이백여명은 10팀으로 나누어 남산을 순례했습니다. 정토회 법사단이 각 골짜기마다 안내를 맡았습니다. 스님은 경주 남산에 대한 이야기를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영상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바위와 칠불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전 7시, 탑골 코스로 오르는 불교대학생들이 부처바위에 대한 설명을 법륜스님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불상이 새겨져 있는 곳, 부처바위

“저희들이 온 이 골짜기의 이름은 탑골입니다. 여기에 탑이 있다고 해서 탑골이라고 부릅니다. 이 바위는 불상이 아주 많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부처 바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골짜기를 ‘부처 바위골’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사면불 신앙에 담긴 의미

이곳 부처바위에는 동서남북 사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면불은 여러 곳에 남아있는 유적의 형태입니다. 바위의 동서남북 면에 각각 불상을 조각했다고 해서 ‘사면불’이라고 부릅니다. 경주 남산에는 이곳 부처바위뿐만 아니라 칠불암에도 사면불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금강산 백율사 입구에도 사면불이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이 계시는 정토(淨土)가 이 우주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있다고 봅니다. 수많은 정토 중에서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이 계시는 정토입니다. 왜냐하면 비로자나 부처님은 모양과 형상이 없는 모든 부처님의 진신인 법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은 대개 모양과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굳이 형상으로 표현할 때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계신 모습으로 나타냅니다.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곳은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비로전이라고 부릅니다. 해인사에는 대적광전이 있고, 불국사에는 비로전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합니다. 마치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이듯, 비로자나불이 모든 부처님들의 중심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로자나불의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사면불의 중심에 비로자나불이 있고, 동서남북으로 화현불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이라고도 부릅니다. 법신(法身)은 본체를 뜻하고, 화신(化身)은 드러난 모습(化現)을 뜻합니다.

서쪽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불을 그렸고, 동쪽에는 유리광 세계에 계신 약사여래불을 그렸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불상이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신 아미타 부처님입니다. 서방정토는 법장비구가 48 대원을 세운 다음 성불해서 극락세계를 이룬 것을 상징합니다. 동방의 약사여래불은 12 대원을 세우고 성취해서 불국토를 이루었습니다. 경주 분황사에 가면 약사여래불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사여래불을 주로 손 앞에 그릇이 있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반면 인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발우를 들고 있는 모습은 바이샬리를 상징합니다. 바이샬리는 부처님이 원숭이로부터 꿀을 공양받은 곳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발우가 등장하는 불상이 바이샬리를 상징하고, 한국에서는 발우를 들고 있는 불상이 약사여래불을 상징합니다. 물론 경전에 따라서 서방의 부처님과 동방의 부처님이 조금 다르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어떤 경전에는 동방에 아촉불(阿閦佛)이 계신 것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서방에는 아미타불, 동방에는 약사여래불이 있다고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남방과 북방은 경전마다 많이 다릅니다. 대개 남방은 보생여래(寶生如來), 북방은 불공성취여래(不空成就如來)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경전과 종파에 따라 섬기는 불상이 보다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마치고 스님은 부처바위의 사면을 돌아서 내려가며 그림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면은 바위의 남쪽 면입니다. 남쪽 면에는 삼존불이 있습니다. 잘 보입니까? 가운데에 부처님이 계시고 양쪽에 보살님이 두 분 있는데, 마치 다정한 가족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네.”

“여기 바위를 자세히 보시면, 스님 한 분이 탑을 바라보고 합장하고 계십니다.”

“오른쪽으로 돌아내려가 보겠습니다.”

“여기가 동쪽면입니다. 그런데 이 바위를 기준으로 보면 서쪽이 되기 때문에 여기를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여기고 삼존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무 밑에 앉아서 수행하는 모습, 공양 올리는 스님의 모습, 천녀들의 모습 등 많은 것들이 이 동쪽 면에 새겨져 있어요.

여기가 북쪽면입니다. 이 북쪽면이 면적이 가장 넓고 큽니다. 여기에는 당시 경주에서 가장 큰 목탑이었던 황룡사 탑을 그려 놓았어요. 9층 탑과 7층 탑 2개를 그려 놓았는데, 9층 탑은 황룡사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7층 탑은 분황사 탑인지 다른 탑인지 알 수가 없어요. 황룡사 탑은 불에 타서 소실되고 없는데, 그림이라도 그려져 있는 것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이 두 탑 위에 부처님이 허공에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시 돌아서 이곳 반대편 서쪽면에는 약사여래불이 새겨져 있어요. 그릇을 쥐고 있기 때문에 약사여래불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서쪽면이 동방 세계가 되니까 자동적으로 동쪽면은 서방세계가 되는 겁니다.”

한 시간 동안 부처바위를 설명하고 8시 15분에 칠불암으로 향했습니다. 칠불암은 남산의 동쪽에 있습니다. 조용한 산길에는 스님 일행뿐이었습니다.

“내가 여기 처음 온 지가 50년째예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왔었거든요.”

50년 전, 갓 출가한 열일곱 살 스님이 걷던 길입니다. 무덤뿐이었던 땅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계곡은 넓어졌습니다. 단숨에 올랐던 길이었습니다. 여전히 스님의 걸음은 빨랐지만 이따금씩 멈춰 서서 숨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아이고. 늙어서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한 시간을 걸어가니 샘터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물을 떠서 지게를 지고 칠불암까지 가면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어요.”

스님은 옛날 생각이 아른거리는 듯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습니다. 물지게를 지고 가지 않아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샘터에서 칠불암까지 가는 마지막 돌계단은 정말 가팔랐습니다.

마지막 돌계단을 딛고 오르니, 일곱 분의 돌부처님들이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칠불암에 계신 스님들과 잠시 차담을 나누며 대중이 모이기를 기다렸습니다. 칠불암 코스를 답사하는 불교대학생들이 모이자 스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경주 남산의 유일한 국보, 칠불암

“올해는 제가 이곳 칠불암에 첫 번째로 온 지 딱 50년째 되는 해입니다. 여기 청년들은 태어나기도 전이예요. (모두 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분황사에서 출가를 한 다음에 이곳 칠불암에 와서 수행을 하곤 했어요. 그때의 옛길을 따라서 오늘 올라왔어요.

이곳 칠불암은 경주 남산의 동쪽 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국가에서 돈을 지원해서 거창하게 만든 절이 아니고, 서민들이 개인적으로 시주를 해서 조각을 했거나, 석공이 와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조각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 불상의 규모가 작아요.

지금 가려져서 안 보이는데, 뒤에 큰 바위에 삼존불상이 있고, 앞에 작은 바위에는 동서남북에 사면불이 있습니다. 이렇게 총 일곱 분의 부처님이 있어서 칠불암이라고 불립니다.

경주 남산에는 많은 불상들이 있는데, 그중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유일한 국보입니다. 그 외 12점의 보물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불상, 특히 청동이 아닌 돌에 새긴 불상으로는 첫 번째가 불국사 석굴암, 두 번째가 이곳 칠불암입니다.

이곳에 있는 불상들은 통일신라 초기 무렵인 8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불국사 석굴암도 그 무렵인 750년경에 만들어졌고요. 이곳에는 칠불암 사면 석불이 있고, 저 바위에 위에 올라가면 신선암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절에 왔을 때 저의 스승님은 아주 엄격했습니다. 저기 바위 위에 올라가면 낭떠러지 위에 돌이 두 개가 있어요. 스승님은 뒤에 앉고, 저는 앞에 앉아서 밤새 참선을 했어요. 졸려서 끄떡해서 넘어지면 바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제 경험은 그렇게 위험해도 졸렸어요. 한번 끄떡하고 나면 다시는 안 졸 것 같은데, 졸음이라는 건 목숨이 경각에 이르러도 찾아와요. 그래서 가부좌를 하지 않으면 바로 절벽에서 떨어집니다. 가부좌를 하면 양쪽 무릎이 받쳐주고 있으니까 굴러 떨어지지는 않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기도를 잠깐 합시다. 여기서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고 해요.” (모두 웃음)

설명을 마치고 스님이 절벽 위에서 밤새 참선을 하곤 했다는 신선암까지 올랐습니다. 발을 한 번 잘 못 내디뎠다가 황천길을 구경할만한 높이였습니다.

“큰스님이 여기 나를 딱 앉혀 놓고 참선을 시켰었어요.”

스님은 오십 년 전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절벽 위 난간을 겨우 지나 신선암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 불상이 하나 더 있는데, 이게 신선암(神仙庵)입니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죠. 부처상이 아니라 보살상이에요. 머리에 장식을 해놓았으면 보살상입니다. 왼쪽 다리를 오른 무릎 위에 두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두는 자세를 가부좌라고 합니다. 가부좌의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아래로 내리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됩니다.

그런데 이 보살상은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의자 위에 편안하게 놓여져 있고, 다른 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온 모양을 하고 있어서 ‘유희상’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유희상일지도 모릅니다. 인도에 가면 유희상이 많거든요. 어쩌면 인도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스님은 신선암 보살상을 향해 잠시 합장의 예를 올렸습니다.

다시 칠불암으로 내려가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 절벽이 명상하기 좋은 자리가 아니에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조마조마해요.” (모두 웃음)

칠불암으로 내려온 스님은 영상 촬영을 위해 칠불암 삼존불과 사면불을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1시간 동안 올라갔던 산을 30분 만에 뛰다시피 하며 내려왔습니다. 오후에는 어제처럼 통일암 너른 터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각자 싸온 도시락을 하나식 펼쳤는데, 한 행자님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불교대학생에게 받은 황남빵을 내어 놓았습니다. 스님께 드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스님이 한 말씀을 했습니다.

“스님과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정토회 회원들이 주는 음식을 절대 받으면 안 돼요. 스님도 음식 접대를 일체 안 받는데, 스님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음식을 받으면 더더욱 안 돼요. 수행자는 자력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속속 불교대학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통일암 너른 터 입구에서 한 명 씩 차례대로 1200여 명과 악수를 나눠주었습니다.

대중들이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자 스님은 한국 불교의 역사와 경주 남산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민중불교의 요람, 경주 남산

“신라시대에는 왕족과 귀족들도 불교를 믿게 되면서 불교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면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때 왕이 세운 절이 황룡사라면 재상이나 귀족이 세운 절이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당시 그런 절에는 귀족들만 출입이 가능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면 서라벌 시내에 망덕사라는 큰 절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재(齋)에 참석하고자 절 입구에 들어서는데 그 앞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늙은 스님 한 분이 서 계셨다고 해요. 옷을 초라하게 입고 있으면 스님조차도 출입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모습을 본 임금은 그 늙은 스님이 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재가 끝난 뒤 임금은 스님에게 다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디에 가서 임금이 참석한 행사에 참석했다는 걸 떠벌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자 스님도 임금에게 말합니다.

‘임금님도 어디에 가서 석가의 진신이 참석한 재에 참석했다는 걸 떠벌리지 마십시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란 임금이 스님을 다시 보자 스님이 곧 구름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임금의 명을 받고 스님이 사라진 방향으로 말을 타고 쫓아간 신하는 이곳 남산 비파골이라는 곳으로 들어갔지만 결국 스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사라진 바위 위에는 주장자와 발우만 남아있고, 바위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불상의 모습이 조금 전 스님의 모습과 같았다고 합니다. 스님이 없어진 자리, 즉 발우와 주장자가 놓여져 있던 자리에는 부처가 없어졌다는 의미로 ‘무불사(無佛寺)’를 짓고, 스님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불상이 있는 곳에 ‘석가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당시 신분사회에서는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도 신분이 미천하면 대접을 받지 못했고, 자장율사, 의상조사 등 귀족 출신들은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원효대사는 육두품 출신으로 성골이나 진골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분적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교계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던 자장율사, 의상조사와는 달리 원효대사에게는 불교 내에서도 신분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물론 원효대사는 그런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민중불교를 하게 된 이유는 이러한 신분적 배경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 당시에 브라만 제도를 부정하셨는데, 스리랑카에는 아직도 천민 출신의 종단과 양반 출신 종단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불교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제도가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이런 불교는 부처님이 설하신 진정한 불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주 남산은 귀족 불교가 아닌 민중불교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출입의 제한도 없었고, 바위에 불상을 새기고 그 앞에서 누구나 절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남산은 민중 신앙의 요람이었습니다. 기존에도 바위 신을 믿고 그 앞에서 절하던 곳인데, 불교가 들어오고 나서는 바위에 불상을 새기고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처가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원래 바위 속에 있다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그 얼굴을 내밀었다는 믿음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불상들을 보면 하반신은 바위 속에 그대로 있고 상반신만 밖으로 드러내는, 그렇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불상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칠불암에는 큰 불상이 있기도 하지만 남산에는 민중들이 만든 작은 불상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어서 불교대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10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오늘은 사람들 앞에 서면 너무 떨리는 것이 고민이라는 질문자와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너무 떨려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중 앞에 서거나 하면 많이 떨어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교단에 나와서 무얼 해보라고 시키면 제가 너무 떨어서 그 모습을 본 친구가 ‘너 왜 그렇게 떨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제가 왜 그렇게 떨었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스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그 원인을 떠올리다 보니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중 앞에서의 긴장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도 변함이 없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저의 이런 부분이 중3 아들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저는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교육에 참석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토론을 할 때 제가 실력 발휘를 잘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 아들이 친구들 앞에 있으면 긴장이 돼서 뭘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왜 그런 것 같은지 물어보니 본인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도 제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 원인과 극복 방법을 알고 싶어서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그 정도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모두 박수)

스님의 첫마디에 청중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금 떨린다고 했지만 떨어가면서도 그 정도로 질문할 수 있는 정도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저도 사람들 앞에 있으면 긴장이 돼요.”

“저는 너무 긴장이 돼요.”

“누구나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리고 긴장이 돼요.”

“저희 아들은 중3인데도 그래요.”

“어른도 떨리는데 중3 아이가 떨리는 건 당연하죠.” (모두 웃음)

“아무 이유 없이 떨린대요.”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리는 이유

“원래 사람들 앞에 서면 이유 없이 떨려요. (모두 웃음)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이유가 있어요. 첫째, 사람들 앞에 서서 뭔가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떨리는 거예요.”

“잘하려고 안 하는데도 떨려요.”

“말은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잘하고 싶은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고, 노래도 잘하고 싶고, 말도 잘하고 싶어서 떨리는 거예요. 물론 사람에 따라 조금 더 긴장하는 사람이 있고, 비교적 덜 긴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면 아이에게도 전이가 됩니다.

둘째,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떨리는 거예요. 자신감이 없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지는 거거든요. 아무리 못해도 강아지보다는 잘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안 떨립니다. 아무리 말을 못 해도 강아지보다는 잘하잖아요. (모두 웃음)

그런데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짖으라고 해도 강아지는 긴장을 안 하고 짖잖아요. 왜냐하면 강아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에요. (모두 웃음)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긴장을 한다는 것은 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칠 때도 긴장을 하는 건 시험을 잘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잘하고 싶은데도 사람마다 긴장의 정도가 달리 나타나는 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까르마 때문입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대중들 앞에 자주 서다 보니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졌습니다.

떨리는 마음 극복하는 방법

이 걸 해결하는 방법은 잘하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하는 거예요. 방금 저에게 질문할 때 종이에 적어 와서 읽으셨는데, 사실 이것도 조리 있게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립니다’ 이렇게 한 마디만 하면 될 질문을 뭐 그렇게 길게 적어 와서 읽어요? ‘저도 떨리지만 저희 아들도 떨린다고 합니다’ 이 한마디면 질문이 다 되잖아요. (모두 웃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되는데 잘 보이고 싶으니까 긴장이 되는 거예요. 스님한테 잘 보여서 뭐하려고 그래요? (모두 웃음)

잘 보이려는 마음이 떨림의 근원이에요. 누구나 처음 하는 건 좀 긴장됩니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하다 보면 차츰 괜찮아져요. 그러니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만약 질문자도 부모로부터 이것을 물려받았다면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오늘처럼 앞에 나와서 노래하고 말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해요. 다른 사람이 한 번 할 때 질문자는 두 번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 들고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내질러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가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꾸 잘하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거 같아요.”

“이렇게 하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할지라도 고칠 수 있어요. 그걸 왜 엄마 핑계를 대고 그래요? (모두 웃음) 연습을 계속하면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더라도 훨씬 개선될 수 있습니다.

아들도 제 영향을 받아 긴장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질문자의 엄마도 그런 와중에 질문자를 낳고 잘 살았고, 질문자도 그런 와중에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아들도 사람들 앞에서는 조금 떨려하지만 직장도 다니고 잘 살 거예요. 아들이 떨린다고 하면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괜찮아, 엄마도 사람들 앞에서는 떨리는데, 그냥 좀 덜덜 떨면서 살면 돼. 아무 문제없어.’

이렇게 안심을 시켜줘야 아들이 그나마 좀 덜 떨려요.”

“저희 엄마가 많이 긴장을 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물려받는다고 들었어요.”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미 질문자가 그렇게 태어났는데 이제 와서 엄마를 바꾸어서 다시 태어날 순 없잖아요. (모두 웃음)

그 부분이 조금 약하게 태어났다면 이제라도 조금씩 연습해서 그 부분을 강하게 만들 수 있잖아요. 가정환경이 그랬으면 긴장을 더 많이 하고 자랐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지금처럼 긴장하면서 계속 지내거나, 긴장하지 않고 싶으면 연습을 많이 하는 겁니다.”

“절을 하면 될까요?”

“절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다리 아프게 왜 자꾸 절을 하려고 해요? (모두 웃음) 오늘처럼 이런 행사에 참석했을 때 노래도 부르고, 마이크 잡고 말도 해보고, 이런 연습을 계속하면 개선이 됩니다. 말 나온 김에 노래 한 곡 불러 보세요.”

스님의 즉석 제안에 망설이던 질문자는 용기를 내어 주현미의 짝사랑 노래를 한곡 불렀습니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
난 아직 몰라 난 정말 몰라
가슴만 두근두근 아 사랑인가 봐 ♬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스님도 용기를 낸 질문자에게 칭찬을 했습니다.

“오늘 노래 부른 사람 중에 제일 잘 불렀어요.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그냥 아무 노래나 부르면 돼요. 나와서 구질구질하게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노래 부르라고 시키면 처음에는 안 한다고 빼다가 결국 ‘비목’ 같이 어려운 노래를 부릅니다. (모두 웃음)

이게 다 잘나고 싶어서 그래요. 그런데 그런 마음 때문에 여러분들의 삶이 꼬이는 거예요. 자기가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 살기 바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신경을 안 써요. 옷에 뭐가 묻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떨까’ 하고 걱정을 하는데, 아무도 안 쳐다봐요. (모두 웃음)

그런 걸 과대망상증이라고 합니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삶을 가볍게 살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질문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마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더 못하겠어요. 아쉽겠지만 나머지 분들은 그냥 들어가세요.”

사홍서원을 끝으로 경주 남산 순례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과 대중은 염불사지로 향했습니다. 염불사지에 대중이 집결하는 동안 관세음보살 정근을 했습니다. 대중이 모두 모이자 스님은 참석한 모든 이들을 위해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순례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수고가 많았던 법사단과 봉사자들, 불대담당자들을 차례대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괴롭지 않도록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임을 강조하며 모두 불교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기를 기원해 주었습니다.

엿처럼 끈적하게 살지 말고, 가을 햇살처럼 가볍게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깁니다. 병이 날 수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절에 다니거나 수행을 한다고 해서 몸에 병이 안 생긴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면 병이 나든, 남편이 애를 먹이든, 자식이 애를 먹이든, 사업이 망하든, 그런 가운데서도 입에 미소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수행이지, 수행을 하면 오늘처럼 남산 순례 갈 때 비가 안 온다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정토회는 비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좋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상관하지 않고 갑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가기 어려우면 그냥 취소를 합니다. 그렇게 주어진 조건에서 선택할 뿐이지, 그런 일로 부처님께 빌거나 하느님께 빌지 않습니다. 갈 조건이 안 되면 안 가면 되지, 그런 일로 비굴하게 다른 존재에게 빌 필요가 뭐가 있어요? 늘 자기 인생에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서 헤어지게 되더라도 울거나 원망하지 마세요.

‘지난 10년간 고마웠어. 나랑 산다고 고생했어, 안녕!’ (모두 웃음)

이렇게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엿처럼 붙어서 끈적하게 살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가볍게 살아야 합니다. 가방도 물건만 잘 들어가면 되지 굳이 명품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잖아요. 이미 명품 가방이 집에 있으면 또 버릴 것까지는 없어요. 그냥 쓰는 만큼 들고 다니되 그런 것에 연연할 이유는 없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들판에는 가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가을 나들이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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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04 23:22:19

임무진

뭘 그리 잘 보이고 싶은지 여러 사람 앞에 서면 떨립니다 남들은 신경 안쓰는데 저만 그렇네요. 자꾸 나서봅니다

2019-11-08 17:35:13

무지랭이

모두가 성불하시기를~^^

2019-11-04 12: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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