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28. 애광원 가을 나들이
“사랑으로 물든 하루”

애광원과 스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16년 전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남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거제도에 있는 애광원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때, JTS가 애광원의 피해복구를 도왔습니다. 피해 복구가 끝나고 스님이 김임순 원장님에게 앞으로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냐고 물으니 원장님은 "장애인들은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나들이를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정토회에서 매년 봄과 가을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울산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오전 10시,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 입구에 하늘색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이 두 줄로 나란히 서서 애광원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0분 뒤에 애광원 식구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버스 문 앞에서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안녕!”

“스님, 안녕!”

스님에게 달려와 꽉 껴안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파요.”(웃음)

버스에서 내린 애광원 식구 한 명마다 봉사자가 한 명씩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함께 나들이를 할 짝지입니다.

애광원 식구 33명이 모두 짝지의 손을 잡자 스님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울산 태화강 대나무 숲길을 걷고 오후에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현대자동차 공장을 둘러볼 거예요. 그리고 폐교된 옛날 학교 운동장에서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게 놀겠습니다.”

“네!”

“하늘이 맑죠? 저런 맑은 하늘처럼 우리 마음도 맑아서 항상 입가에 웃음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오늘 하루 함께 할 분들은 정토회 경남지부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서로 인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눈을 마주치고 악수를 하고 부둥켜안으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십리대숲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며 숲으로 향했습니다.

잔잔히 흐르는 태화강 옆으로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습니다. 그 길이가 십리(4.3km)라 십리대숲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숲으로 들어서자 하늘로 쭉쭉 뻗은 대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초록빛 세상에 눈도 마음도 맑아집니다. 애광원 식구들의 얼굴에 싱그러운 웃음이 피었습니다.

“대나무 숲은 다른 숲보다 산소발생량과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30% 높아요. 대숲을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면 굉장한 보약을 먹은 것과 같아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어보세요. 대숲에 널려진 보약을 마음껏 챙겨가세요. 자, 보약이 내 몸 안에 들어온다!”(모두 웃음)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대나무처럼 손을 쭉 뻗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습니다. 한껏 숨을 들이마시는 표정이 재미있어 내쉬는 숨에 웃음이 터집니다.

“여러분, 대나무 꽃을 본 적 있나요?”

“대나무 꽃은 보면 안 돼요. 죽어요.”

스님이 제일 먼저 정답을 말했습니다.

“네. 맞아요. 대나무는 일생에 단 한 번, 죽기 전에 꽃을 피운답니다.”

고개를 들어 숲 사이로 난 하늘을 봐도 좋고 고개를 아래로 숙여 땅에 비친 햇살을 봐도 좋습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웃고 있는 짝지의 얼굴을 봐도 좋습니다. 싱글벙글 웃다 보니 대나무 사이로 노란 물결이 보이고 꽃향기가 밀려왔습니다.

대숲을 나와 태화강 국가정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엔 황금빛 세상입니다. 노란 국화 꽃밭이 넓게 펼쳐져있었습니다.

“우와! 예쁘다!”

예쁜 꽃과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수세미가 주렁주렁 달린 터널도 지났습니다.

2시간 정도 십리대숲과 태화강 국가정원을 산책하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애광원 식구 한 분이 밥을 다 먹고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짝지에게 건넸습니다. 직접 만든 공예품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하부영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이곳을 방문하셨죠?”

“네. 한 20년 전에 굶어 죽는 북한동포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러 여기 왔었어요. 그때는 울면서 이야기하고 다녔죠.”

그때 하부영 위원장은 당시 노조 사무국장이었는데, 스님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동료들과 1억 원을 모아 북한동포 돕기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전국을 다니시는 것 같던데...”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하고 몇 차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새터민들, 외국인 노동자들과도 봄가을로 시간을 보내는데 오늘은 애광원 식구들과 같이 왔어요. 새터민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즉문즉설을 하면서 고민도 들어주고 하는데, 애광원 식구들과는 하루 종일 같이 놀아주는 것만 해요.”

스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애광원 식구들은 현대자동차 전시관을 구경하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버스를 타고 공장도 견학했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안내해주어 공장 내부에서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나들이를 하면 주로 사찰 순례를 해왔었는데, 자동차 구경도 무척 신나 보였습니다.

현대자동차 견학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해 함께 놀았습니다. 먼저 공놀이로 몸을 풀었습니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했습니다.

“와, 이겼다!”

진 사람도, 이긴 사람도 없는 놀이를 모두 이겼다며 기뻐했습니다. 한바탕 몸을 풀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회자가 “노래 신나게 해 보실 분 있어요?”하고 묻자 1초도 안 되어 애광원 식구들이 뛰어나왔습니다.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 ♬

오늘 자동차 공장을 보고 와서인지 꼬마자동차 노래가 두 번이나 나왔습니다. 가사가 정확하지 않아도,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마이크만 흔들어도 박수소리는 뜨거웠습니다.


마이크를 기다리는 줄이 길었습니다. 3분의 2가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섰습니다.

다 함께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도 췄습니다.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날이 조금씩 쌀쌀해졌습니다. 강당으로 들어가 오늘 나들이를 마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오늘 하루를 담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영상 끝에는 지난 16년 동안 나들이를 했던 장면이 담겨있었습니다. 애광원 식구들은 자신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_“우리는 오늘 하루 원생들과 함께 했지만 선생님들은 1년 내내 고생이 많다”_며 스님의 책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원장님께는 올해 직접 농사지은 고춧가루를 선물했습니다.

애광원에서도 선물을 주었습니다. 애광원 원생들이 직접 빚은 컵, 직접 만든 차와 빵, 미역이었습니다. 송우정 애광원 상임이사 님이 선물을 보여주며 원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컵은 원생들이 직접 만든 겁니다. 누가 만들었어요?”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기뻐했습니다.

“와, 오늘 부자 됐네요.”

애광원 식구들도 기뻐했습니다. 선물을 주고받고 스님은 나들이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했습니다.

보람 있는 인생을 사는 방법

“오늘 즐거우셨어요?”

“네.”

“여기는 제가 다닌 초등학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입학을 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이곳에서 2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매일 2킬로를 걸어 다녔는데, 친구들 중에는 집이 먼 아이는 4킬로 떨어진 곳에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모두 놀람)

제가 다닐 때는 나무로 된 교실이 4칸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반은 학생수가 적어서 교실 하나도 배정받지 못했어요. 한 칸을 반으로 나누어서 쓰곤 했습니다. 교실이 부족해서 여름에는 팽나무 앞에서 수업을 하곤 했어요. 어릴 때는 학교가 아주 크게 느껴졌는데 오늘 와보니 학교가 아주 작게 느껴지네요. (모두 웃음)

저도 이곳에서 학교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 67세입니다. 금방 나이를 먹는 것 같아요. 95세인 원장님 앞에서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모두 웃음)

인생이 유수 같다고 하듯이 하루하루는 긴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아주 짧게 느껴집니다. 매일매일 다른 사람을 돕고 즐겁게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하루하루 괴롭게 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 끼치고 살 여유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거나 괴롭게 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인생이 괴롭게 살만큼 길지도 않고, 괴롭게 살만큼 의미가 있지도 않습니다. 산에서 토끼가 살듯이, 다람쥐가 살듯이 가볍게 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구걸해서 얻어먹고 살면 존재가치가 적어집니다. 토끼나 다람쥐도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데, 정작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구걸을 합니다. 우리는 도움을 구걸하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장애인들은 혼자서 독립해서 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라 신체조건상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면 어떨까요? 자기의 재능으로 돕거나, 재정적으로 돕거나, 오늘처럼 시간을 내서 같이 놀아주면서 돕거나 하면, 내 인생에 보람이 생겨요. 직업을 갖더라도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 돈을 벌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생활을 영위한다면 더욱 좋습니다.

애광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는 오늘처럼 하루 도움을 드리지만 이걸 365일 매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도 인도에 학교를 만들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게 하고, 병원을 지어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인도에는 보호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애광원처럼 보호 시설을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꼭 재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사람의 정성과 원(願)이 있어야 하는데, 원장님께서는 대학 다니던 시절부터 마음을 내셔서 무려 70년이 넘게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올해 나이가 아흔다섯이세요. 사람이 어떤 일을 한결같이 하기가 쉽지 않은데, 변함없이 활동을 해오신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합니다. (모두 박수)

비록 일 년에 두 차례지만 애광원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김임순 원장님의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장애인들을 위해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구경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토회 여러분 같은 분들이 있어 우리나라가 깨끗하고 좋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받은 사랑으로 남은 한해도 잘 살아가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봉사를 했다고 하지만, 받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다시 운동장으로 나와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무 아래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이 ‘애광원!’하고 외치자 나머지 사람들은 “나드리~”하고 웃었습니다.

떠나는 버스를 향해 스님은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습니다.

가을 단풍보다 더 고운 사랑으로 물든 하루였습니다.

전체댓글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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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야

사람으로 사랑으로 위로 받습니다.
저도 뭐라도 도움이 되는 실천을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2-27 10:02:50

혜당

저를 울리십니다♡

2021-02-02 12:13:44

인아

스님, 봉사자님들 모두 너무나 훌륭하십니다.
감사합니다.

2020-02-03 14: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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