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0.31 공군 공중 전투사령부 초청 강연, 행복한 대화(15) 대구
“이혼하고 술집에서 일하는 아내를 보니 괴로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공군 공중 전투사령부 군인들을 만나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저녁에는 대구과학대학교에서 시민 2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마치고 11시에 서울에서 출발했습니다. 휴게소에 들러 점심식사로 잔치 국수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2시 30분에 공군 공중 전투사령부에 도착했습니다. 사령관, 참모장, 군수처장, 감찰 안전실장, 대위 등 공군 관계자들이 스님을 반겨주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눈 후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공군 공중 전투사령부 부대 내에서 강연 홍보를 보고 자발적으로 150여 여명이 찾아왔습니다. 병사도 왔고 장교도 왔습니다. 군인들 가족도 왔습니다. 강연하는 시간에 근무를 서야 해서 못 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군인들과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강연에 특별한 주제는 없습니다. 저는 오늘 종교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에요. 강사가 스님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을 꺼내놓고 자유롭게 대화하면 됩니다. 그렇게 대화하면서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는 거예요.

저는 동일 집단에 강연을 잘 안 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대화를 잘 못 하거든요. 특히 이런 계급사회에서는 불만을 잘 얘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불만이 생기잖아요.

사령관님, 오늘 여기에서 토로한 불만은 문제 삼지 않기로 약속해 주세요. 확실하게 사령관님이 약속을 해주셔야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어요. 옛날에 군대에서 ‘소원 수리’를 써내라고 해서 써냈다가 나중에 엄청나게 야단맞았다고 하잖아요.” (모두 웃음)

사령관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늘만큼은 군복을 벗고 사람으로 살면서 느끼는 괴로움, 고민, 의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자유롭게 손을 들고 대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말해보라는 이야기가 마음을 녹였는지, 한층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질문한 사람은 스님의 책을 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책을 받고 싶은 사람이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자기 고민을 내어놓고 질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20대 초반 병사들은 주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질문자와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곧 전역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아직 23살인데 장래 희망을 정하지 못하겠어요. 돈이나 명예에도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돈이나 명예에 관심이 없다면 스님이 되면 되겠어요.” (모두 박수)

“남을 돕는 것도 크게 내키지 않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오히려 괴로움이 커져요. 왜냐하면 좋아하는 것을 못 하게 되면 괴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옛날 1960년대나 70년대에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운동선수가 되면 못 먹고살았기 때문에 결국 공부를 해서 공대나 상대를 가야 했어요. 또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음악을 해서는 못 먹고 살기 때문에 음악을 선택하지 못했어요.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세대로 넘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해졌어요. 뭘 해도 먹고는 살 만해지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해줘라’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찾아라’ 이렇게까지 말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는 것이 큰 고민이 되었어요. 옛날에는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 ‘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라고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이 특별히 없는 사람은 고민거리가 없어야 해요. 그 이유는 아무거나 해도 되기 때문이에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우선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장 내일부터 막노동을 하든 뭘 하든 일단 부모한테 더 이상 의지하지 말고 자립부터 먼저 해야 해요. 그럴 때 직업을 구하는 방법은, 첫째, 일은 많이 하고 월급은 제일 적게 주는 직업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면 평생 동안 직장을 가질 수 있어요. 일은 고되게 많이 하고 월급은 적게 주는 직장은 전역하자마자 금방 구할 수 있어요.

노동자가 사장에게 주인 노릇을 하는 방법

이런 직장을 구하면 가장 좋은 점은 사장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돼요. 사장이 나를 내보낼까 겁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갈까 봐 사장이 겁냅니다. 여러분들이 돈만 조금 포기하면 노동자로서 주인으로 살 수가 있어요. 사장이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하면 ‘저 갑니다’ 이러면 돼요. 그러면 사장이 ‘아이고, 조금만 더 있어라’ 이렇게 붙잡습니다. 오늘처럼 법륜 스님 강의가 있는 날에도 ‘저 오늘 좀 일찍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와도 사장이 못 잘라요. 왜냐하면 그 돈 주고 이런 젊은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꼭 사장이 되어야만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돈만 조금만 포기하면 노동자 신분으로 있어도 언제나 목에 힘주고 살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첫 직장을 시작해야 나중에 직장을 옮기는 것도 쉬워요. 첫 직장에서 일을 고되게 하고 월급을 적게 받으면, 어디를 가도 이보다는 낫기 때문에 다음 직장에 적응하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만약 질문자가 어렵게 시험을 쳐서 재벌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면, 첫째, 시험을 치기 위해 2~3년을 낭비해야 해요. 떨어질 확률도 높지만, 설령 합격했다 하더라도 겨우 턱걸이해서 걸리면, 월급을 좀 많이 받는 대신에 잘릴까 봐 늘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 해요. 자기 능력의 부족을 느끼고 늘 콤플렉스를 느끼면서 살아야 해요. 그리고 만약 그 회사에서 잘리게 되면 죽을 때까지 다음 직장을 못 구해요. 왜냐하면 어디를 가도 그만한 직장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좀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하고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면 평생 폐인이 되는 거예요. 오늘 스님을 진짜 잘 만났어요. (모두 웃음)

첫 번째 직장은 일을 장시간 하고, 고단하게 하고, 위험한 일을 하고, 월급은 작게 받는 직장을 구하세요. 그런 직장은 하루 만에 구할 수 있어요. 그렇게 첫 번째 직장을 구하면 질문자가 직장을 나가면서도 목에 힘주고 다닐 수 있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서 직장을 옮기려고 할 때도 옮기기가 아주 쉬워요. 아무거나 할 수 있으니까 이쪽저쪽으로 옮겨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첫 번째 직장을 좀 낮춰서 계단을 밟으면, 같은 높이의 계단은 널려 있고, 재수 없으면 한 계단 올라가기가 쉽지 내려갈 일은 없어요. 그렇게 일단 일을 시작하면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은 없는데, 일을 해보면 ‘아! 이 일은 내가 못 하겠다’ 이런 일이 나와요. 그러면 옮겨가면 돼요. 그러다가 ‘이 일도 못 하겠다’ 하면 또 옮겨가면 돼요. 좋은 것을 찾아가지 말고 이렇게 싫은 것을 만날 때마다 옮겨가면 4~5번 옮기다 보면 ‘이 일은 할 만하네’ 이런 일이 생겨요. 그 일에 정착하면 돼요. 이렇게 자립을 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인데 가급적 노동효율이 높은 일을 하는 것이 좋잖아요. 내 전공이나 특기를 살릴 수 있거나, 같은 시간 일했는데 나의 재능 때문에 더 성과가 난다거나, 이런 일을 하면 됩니다. 어차피 하는 일인데 약간 소득 수준이 높은 것을 구하면 돼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단계에 놓여 있어요. 그런데 이 두 번째 단계는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러면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재능이나 능력이 있는 쪽에서 일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취미생활로 하면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수입이 되는 겁니다. 처음에는 취미생활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주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좋아하는 일이 수입이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일로 옮겨가면 돼요.

좋아하는 일로 옮겨갈 수만 있으면, 놀이와 노동이 통일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놀이가 필요해져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노동시간의 한계가 필요 없어집니다. 몇 시간 일한다고 정해놓을 필요도 없어요. 따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놀이도 할 필요가 없어요. 저도 지금 강연을 하면서 놀고 있는 중이에요. 좀 과하게 놀아서 탈이기는 해요. (모두 웃음)

직업을 구하는 방법은 세 단계입니다. 첫째, 무조건 자립해야 합니다. 직업에 귀천을 따지면 안 돼요. 범법행위와 부도덕한 행위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직업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기왕 하는데 약간 노동 효율이 높은 일을 합니다. 셋째, 좋아하는 일을 하고도 수입이 생기는 일로 옮겨 갑니다.

저도 지금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 일을 해서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 저도 이 일로는 생존을 못해서 학원 선생님을 해야 했습니다. 전통 절에서는 요령 흔들어주고 목탁 두드려 줘야 먹고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묶여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해요. 저는 그렇게 안 살겠다고 했기 때문에 탁 놓아버렸어요. 스님은 절에 있어야 소득이 생기는데, 저는 절을 나왔기 때문에 먹고살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백지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할 수 있겠다’ 해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소득으로 사무실을 내서 새로운 불교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제 법문을 들으러 아무도 안 왔어요. 제가 ‘새로운 불교, 이것이 불교다!’ 이렇게 광고를 엄청나게 하고 전단지를 몇 천 장을 뿌렸는데, 개강하는 날 세 명이 왔어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대부분 그냥 가버렸어요. 첫째 날 세 명이 왔는데 첫 강의를 하고 나서 두 명이 떨어져 나갔어요. 마지막 남은 한 사람도 떨어져 나가면 폐강할 수 있는데, 3개월 코스에 한 명이 안 가고 있어서, 그 한 명을 데리고 끝까지 강의를 했어요. (모두 웃음)

사무실 경비를 낼 수가 없으니까 학원 선생을 겸하면서 이 일을 했어요. 그런데 석 달이 지나니까 이 사람이 발심을 한 거예요. 인맥으로 친구를 네다섯 명 데리고 오고, 광고를 내서 서너 명 오고 해서 7~8명이 되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불어나서 지금의 정토회가 된 거예요.

처음부터 잘되면 망할 확률이 높아요. 처음부터 어려움 속에서 일어나면 어지간한 일이 일어나도 눈도 깜짝 안 해요. 어디 가서 5명만 와도 ‘옛날에 한 명 앉혀 놓고 석 달을 강의했는데 5명이면 됐지’ 이렇게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오늘 제대하면 당장 내일부터 나가서 직장을 구해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재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 결과 발표가 나서 떨어졌다면, 그날 바로 재수 준비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성공합니다. 그런데 12월에 떨어졌다는 발표가 났는데, 내년 2월까지 놀다가 3월부터 재수하는 사람은 대부분 또 떨어집니다. 그만큼 의지가 중요한 거예요. 정말로 내가 자립해서 살겠다고 하면 바로 집을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막노동을 해도 군대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요즘은 군대가 편해졌나요? (모두 웃음)

정토회에는 백일출가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백일 간 들어와서 스님처럼 생활하는 프로그램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0시에 잘 때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합니다. 이런 백일출가를 하고 난 뒤에 군대에 가면 ‘군대가 이렇게 여유 있는 줄 몰랐어요’ 이럽니다. 백일출가는 군대보다 더 빡빡하게 하니까요.

스케줄이 빡빡한 것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빡빡한 일을 하고 나면 나머지가 우습게 보이고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열치열’이라고 들어보셨죠? 그러니 직업을 구하려면 제대하는 날 바로 가서 시작해야지, 일주일은 친구들과 놀고, 이러면 마음이 해이해져서 공부가 안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베푸는 걸 좋아하는 천성인데 베풀다가 상처도 많이 받아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상처를 덜 받을까요?
  •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시기별로 어떻게 훈계해야 하나요?
  • 행복에는 욕구를 충족시켜 얻는 행복과 의미 있는 삶에서 오는 행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님은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9년 군 생활을 마치고 내년 2월에 세계 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막상 가려니 두려워요. 스님은 새로운 일을 할 때 어떻게 용기를 내시나요?
  • 군 생활하면서 고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순간적 유혹이나 쾌락에 잘 빠져요. 큰스님께서 인내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 홀어머니가 저를 헌신적으로 키워주셨어요. 제가 성인이 돼서 이제 도움이 필요 없어지니까 허탈해하세요. 어머니가 이제 자신의 인생을 사시면 좋겠는데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질문을 받다 보니 4시가 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군인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강연을 마쳤습니다.

“나라를 잘 지켜주셔서 이런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립니다.” (모두 박수)

강연을 마치고, 사령관님이 군인들을 대표해 선물을 주었습니다.

“최신 전투기 모형입니다. 이 비행기가 천억 짜리입니다. 오늘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 천억으로도 갚을 수 없겠지만 이 선물을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박수 소리가 크고 길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가는 군인들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바로 저녁 강연 장소인 대구과학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대구과학대에 도착하여 북구청장 배광식 님, 과학대 총장 박준 님, 홍의락 의원과 차담을 나눈 후 7시부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대구과학대 총장님, 북구청장님 이렇게 좋은 장소를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의락 의원님도 오셨습니다.” (모두 박수)

이천 여명이 너끈히 들어올 수 있는 강당이었습니다. 감사인사를 드린 후 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대구 북구에 사는 게 힘든가 봐요. 질문이 이렇게 많아요. 질문을 다 받지 못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거두절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질문을 할 때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길게 말하지 않으면 됩니다.” (모두 웃음)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무척 기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2천 명 중에 제가 제일 1등으로 왔습니다. 1시부터 기다렸어요 제가 결혼하고 34살 때부터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는데요. 스님 즉문즉설을 듣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제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좋아졌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청중은 박수로 축하해주었습니다. 질문자가 많아서인지, 질문자들은 대부분 짧게 핵심만 질문했습니다. 스님도 빠르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하면 오늘 23명 다 할 수 있겠어요.” (모두 웃음)

유쾌한 웃음이 넘쳤습니다. 다양한 질문 중에 오늘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었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혼 후 술집에서 일하는 아내를 보니 괴로워요

“저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서 해외에서 1년 6개월 동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떨어져 있으면 서로 힘들긴 하겠지만 아내의 동의를 얻어서 떨어져 지내기로 했습니다. 1년 3개월이 지난 올해 3월 중간 귀국을 했는데, 당시 별일 아닌 것에 싸움이 있었고 아내는 이혼을 원했습니다. 아내에게 왜 이혼을 원하냐고 물었더니 무뚝뚝한 성격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아내가 완강하게 요구하여, 최종 귀국한 뒤 한 달이 지난 7월에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하기 전에 알게 된 사실은 돈 관리를 해온 아내가 꽤 큰 금액을 친구에게 몰래 빌려줬다는 것입니다. 아직 누구에게 빌려줬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혼 후 주기로 협의한 돈도 아직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지난주 지인으로부터 전 아내가 일하고 있다는 곳을 듣게 되어 찾아갔는데 술집이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충격들이었고, 지금 마음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아기는 있어요?”

“없습니다.”

“질문자가 외국에 나가기 전에 아내는 어떤 직장에 다녔어요?”

“개인이 하는 작은 보험회사에 다녔습니다.”

“질문자가 보내준 돈으로 투자를 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다가 날렸다면, 개인이 하는 작은 보험회사에 다녀서는 그 돈을 갚을 수 있을까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많은 돈을 조금 쉽게 벌고자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일들이 눈에 들어올까요?”

“아무래도 유흥가 쪽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곳에서 일하게 된 거예요. 그게 뭐가 그렇게 충격이에요?”

“제가 전혀 생각을 못해봐서요.”

“남편이 돼서 아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질문자처럼 고지식한 사람은 아내가 돈을 날리고, 유흥가까지 다닌다는 것을 알면 완전히 뒤집어졌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질문 속에 그런 일은 생각도 안 해봤다는 걸 보면, 평소 성격을 봤을 때 아내가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을 했겠죠.”

“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으니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는데도 이야기를 안 했어요.”

“솔직하게 말하기 힘들죠. 또 솔직하게 말하면 질문자가 난리 났을 거잖아요.”

“난리는 낫겠지만 이해는 했을 것 같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남편하고 이야기하면 또 복잡해지니까 간단하게 이혼을 하자고 판단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 이걸 가지고 난리 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또 지금 상황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에요. 그냥 이 세상에 많이 일어나는 일 중 하나예요. 보통 사람이 갈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질문자가 고지식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죠.

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1년 이상 떨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10년씩 떨어져서 지내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오랜 기간 떨어져 있다 보면 남편이나 아내 모두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어떤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내는 이미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에게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아내의 어려움을 다 이해하고 감싸줄 정도의 포용력은 없잖아요? 아내 입장에서는 연애하고 결혼해서 같이 살면서 대충 질문자의 성격이 어떤지 아니까 이것저것 생각했을 때 깨끗하게 이혼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니 이 정도에서 아내를 놔주는 게 어떻겠어요.

만약 질문자가 지나 간 일에 대해 아내가 이야기를 하든 하지 않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더 이상 과거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그저 새롭게 생활하고자 한다면 아내를 찾아가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럴 정도의 포용력이 없다면 아내는 자기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아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데, 전 아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이제 더 이상 질문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질문자도 지나간 일은 잊고 자기 길을 가면 좋겠다 싶어요. 질문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아내의 과거를 모두 잊기로 하고 삼고초려를 해서 모셔오는 게 좋겠어요?”

“제가 중생이라 아직 고민을 조금 더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그 대답을 할 수준이면 그냥 잊는 게 좋아요. 스님하고 이야기를 해보니 ‘아, 그동안 아내에게 그런 고민이 있었는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이런 마음이 들어도 될까 말까인데, 사랑이라는 건 어려울 때 이해해주는 게 사랑이지 평소에 나한테 잘해줄 때 상대방을 이해하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에요.

1970-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붐이 일어났을 때 남자들이 일하러 사우디아라비아로 많이 갔습니다. 그때 2, 3년 동안 나가 있으면서 돈을 보내주면 아내들이 춤바람이 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중 한 부부는 남편이 돌아온 뒤에 승진을 해서 중요한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카바레 출입을 금지했어요. 이 아내는 평소 다니던 습관이 있으니까 남편이 돌아온 뒤에도 몰래 다녔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주로 낮에 카바레에 갑니다. (모두 웃음) 그런 와중에 한 번 단속이 떠서 여러 명이 잡힌 경우가 있었어요. 경찰서에 가서 조사받는 와중에 남편 이름이 모두 공개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인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니 개인 정보도 쉽게 공개되었어요.

그렇게 이름이 공개된 사람들은 창피를 당했어요. 그 일로 많은 가정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경찰서에 잡혀있어도 면회를 오는 남편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한 남편은 경찰서에 찾아와서 직접 사과하고 이렇게 선처를 구했어요.

'제가 외국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아내가 외로워서 춤추러 다니게 된 것 같습니다. 이건 아내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평소에는 그리 정이 없던 부부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아내가 감동을 해서 그 후로 남편에게 충성을 하게 되었어요.

이렇듯 아주 친한 사람들이 갑자기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하고, 별로 친하지 않던 사람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감동을 하고 아주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이 사람처럼 어려울 때 돕는 게 사랑이에요. 내가 원하는 조건이 다 맞아떨어질 때 상대방을 좋아하는 게 무슨 사랑이에요?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고 착하게 살 때 사랑하는 걸 누가 못해요. 그건 천하가 다 하는 일입니다.

질문자도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설령 내가 없을 때 아내가 내 선배와 놀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없을 때 외로워서 그랬구나,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됐다’ 이런 생각이 딱 들면 데리러 가고, 조금 전처럼 저는 중생이니까 고민을 더 해봐야겠다는 수준이면 이혼까지 한 마당에 깨끗하게 끊어주는 게 좋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런 소리도 하지 말고, 또 그 사람은 더 이상 질문자의 아내가 아닙니다. 둘 사이에 아이도 없으니까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이혼할 때 협의했던 돈도 주지 않고 있어요.”

“돈이 없는데 어떻게 줘요? 지금 돈이 없으니까 술집에 나가서 벌고 있는 거잖아요. 돈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그냥 포기해줘요. 질문자는 좋은 회사 다니니까 그 돈 없어도 지금부터 벌면 되잖아요.” (모두 박수)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7년 전에 이혼했는데 결혼한 날과 이혼한 날이 같습니다. 그게 마음에 걸려요. 우연이겠지요?
  • 아들이 어릴 때부터 무능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더니 아버지보다 더 심한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기도하면 될까요?
  • 딸이 열 살인데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짜증부터 내요. 이 딸을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요?
  • 아이 키우는 일이 버겁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즐겁게 키울 수 있을까요? 108배할 때 어떤 기도문으로 해야 할까요?
  • 가족과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딸을 제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 초등학교 교사이자 박사인데 교수에 도전해볼까요?
  • 중학생 때 이유 없이 친구랑 멀어진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인간관계에 자꾸 조바심이 나요.
  • 탁한 속세를 떠나 출가해서 청정하게 살고 싶은데, 아직 속세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어떻게 하죠?
  • 얼마 전에 이혼했는데 너무 힘들어요. 전 남편에게 다시 연락하고 집착하게 돼요.
  • 57세인데 일자리가 잘 안 구해져요, 30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안 와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 스무 살입니다. 스님은 이십 대에게 중요한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선택을 앞두고 갈등이 될 때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절대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요즘 화를 많이 내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나요?

15명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다 못하겠네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한 사람들이 지금 마음 상태를 딱 한 문장으로 이야기해보세요.”

“기쁩니다.”

“정신 차렸습니다.”

“자식에게 신경 끄고 가볍게 키우겠습니다.”

“저는...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모두 웃음)

“파이팅!”

“로또 1등 맞은 것처럼 너무 행복합니다.”

“스님 팬이에요.”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 스님 팬이라는 분이 두 분 있었습니다. 스님은 팬이 되지 말고 하나라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 팬이 되면 안 됩니다. 유튜브를 많이 본다고 좋은 것도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들은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자기화하는 일입니다. 여러 개를 보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하나를 보더라도 그걸 경험해서 내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모두 그림의 떡입니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나와, 내 인생과는 관계가 없어요.

즉문즉설에서도 ‘선(禪)이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은 사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거예요. 그건 자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 남편 때문에 괴롭습니다’, ‘살면서 화가 많이 납니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자기 이야기예요. 선(禪)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자기의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어디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나 책에서 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치 고상한 것인 줄 착각한다면,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불교를 아직 제대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자기 이야기,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아야’하는 소리를 내더라도 내 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남의 소리를 흉내 내는 건 내 공부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못하면 평생 남의 이야기를 가지고 말합니다. 부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다, 어떤 스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남이 한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해도 자기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남의 이야기는 번뇌일 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제 남편이 죽었거나 자식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옛말로 표현하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곧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런저런 온갖 핑계를 대면서 ‘나는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자기의 괴로움을 합리화합니다. 오늘 질문지들도 가만 보면 모두 ‘나는 이래서 괴롭습니다’, ‘나는 저래서 괴롭습니다’하는 내용이에요. 괜찮다고 말해도 ‘아니에요, 저는 괴로워요’라고 말해요. 그러면 저는 ‘알겠습니다. 계속 괴로워하세요’라고 말합니다.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굳이 본인이 괴롭고 싶다는데 다른 사람이 어떡하겠어요. (모두 웃음)

괴로움이라는 감정은 정신작용의 부정적 작용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을 때 ‘왜 이런 부정적 작용이 생길까?’하고 탐구를 해야 합니다. 그 결과 ‘아, 여기가 고장 나서 그런 부작용이 있었구나’하고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순간순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속에서 여러분이 조금 더 밝고 맑아지는 것이 공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일을 당하든, 잠시 눈물이 날 수도 있고 잠시 화가 벌컥 날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지만 금방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이렇게 가볍게 출발한다면 여러분의 삶도 오늘 가을 하늘처럼 맑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두 박수)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내일은 경주 남산에서 유적을 설명하는 영상 촬영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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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07 14:09:29

별천지

법륜스님?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9-11-30 15:33:40

무지랭이

자기주도적 삶을 영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_()_

2019-11-06 1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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