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20 수행법회, 특허청 초청강연, 행복한 대화(22) 천안
“사주팔자,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정말 있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울, 대전, 천안에서 세 번 강연을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정토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수행 법회를 했고, 대전에서는 특허청 초청 강연을 했고, 천안에서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정토회 법사단과 인도 성지순례 준비 회의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2020년 1월에 다녀올 인도 성지순례에서 숙박, 버스 배정, 역할분담 등 준비사항을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전국 150여 개 정토법당에 생중계가 되는 가운데 수행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서초 법당에는 200여 명이 자리해 직접 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법문 주제가 늘 있었는데, 오늘은 스님이 진행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참석자가 주제를 제안하도록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문이 있으면 물어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불교에서는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혹이 없어지면 저절로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여러분이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면, 그 주제로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자, 주제를 제안해주세요.”

6명이 손을 들고 주제를 제안했습니다. 홍콩 시위, 인공지능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흉악범의 인권보호, 갈등을 해소하는 법, 재단 통일의병의 회계원칙, 선농일치를 일궈가는 농사 사업의 전망과 계획이 제안되었습니다.

스님은 대중에게 6가지 중에서 듣고 싶은 주제에 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홍콩 시위, 인공지능, 농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스님은 “모든 주제에 대해 대화해보자” 라고 하면서 먼저 홍콩 시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홍콩 시위가 계속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홍콩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비록 식민지 지배를 받긴 했지만 중국 본토에 비하면 이미 민주화된 사회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을 때는 ‘독립’이라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반환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어요. 그러나 일부는 중국 본토의 권위주의 문제 때문에 우려를 했고, 상당수가 싱가폴이나 방콕 등으로 이민을 떠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50년 동안은 1국 2체제 형태로 중국 본토의 영향을 안 받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자치권 보장을 약속했어요. 자치권 보장이 된다니 본토의 영향력을 우려해서 떠나려던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다시 그곳에 머물러 홍콩의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홍콩이 중국 본토와 하나가 되니까 이제 홍콩의 배후에 있는 광둥성(廣東省)이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둥성에는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광저우(廣州) 같은 큰 도시가 있습니다. 이처럼 인구가 1억이 넘는 배후지가 홍콩을 출구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둥성과 홍콩이 함께 번영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중국 정부는 1국 2체제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배후에서 정치적 관여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최근 홍콩에서 몇몇 인사들의 실종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홍콩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까 중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어느 날 실종된 겁니다. 몇 달 있다가 사정을 알고 보니 중국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거예요. 그 후 사람들은 중국 정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위축되어 두려움이 점점 커졌던 겁니다.

게다가 땅이 워낙 좁은 가운데 번영하다 보니까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았습니다. 손바닥만 한 변두리 아파트도 우리나라 돈으로 작게는 5억 원, 많게는 8억 원일 정도니까 젊은이들은 집을 가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떤 신혼부부는 결혼을 한 뒤에도 각자 부모 밑에 살면서 데이트하듯 만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해요.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월급은 우리보다 적은데 집값은 우리보다 훨씬 비쌉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집값 비싸다고 난리지만 홍콩은 우리하고 비교가 안 돼요. 한국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홍콩도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의 이런 생활상의 불만이 굉장히 가중돼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겹쳐 있던 중에 송환법 문제가 터진 겁니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면 송환법 자체는 크게 문제가 안 돼요. 홍콩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갔을 때 다시 홍콩으로 송환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합당한 거잖아요. 우리도 한국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망갔으면 한국으로 송환해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거든요. 그것처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는 제안인데 이게 불똥이 돼서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봇물처럼 터진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심리적으로 자유가 억압받고 경제적인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태에서 송환법 자체가 홍콩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 거예요. 송환법이 제정된다면 꼭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정치적 사안에 연루되면 중국으로 송환될 위험이 닥친 겁니다. 자칫 말을 잘못했다가는 중국으로 송환된다는 위험을 홍콩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느끼게 된 거예요. 이런 배경에서 지금의 저항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불만이 굉장히 고조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치자들은 잘 몰라요.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심하게 반대한다’ 이렇게 생각해서 진압을 강경하게 하니까, 바로 그 진압 방식이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것 때문에 다시 저항이 거세지면서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우리나라도 과거에 경찰 갖고 아무리 진압해도 안 되면 계엄령을 내려서 군대를 동원했잖아요. 홍콩도 지금 그러느냐 마느냐 하는 경지에 이른 겁니다.

홍콩이 하나의 독립된 정부라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문제를 풀면 되지만, 홍콩 정부 뒤에 중국이 있고, 중국에서 ‘유화적으로 대응하지 마라’ 이런 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에 홍콩 정부는 강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문제를 풀기가 더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중국에서는 국가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니까 홍콩 주민들의 이런 요구가 너무 애국심도 없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외세의 개입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요. 그러나 홍콩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민주화 요구가 안 받아들여지니까 점점 더 분노가 커졌고, 강압적으로 탄압할수록 강력하게 저항해서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민주주의 발전의 한 과정이에요. 지금 홍콩은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될 것인지,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해서 민주화로 갈 것인지,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요구를 수용하면 이 문제가 홍콩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중국 안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수용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고 군대를 동원해서 제압하려니 국제사회의 반발에 부딪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홍콩의 특별한 위상이 또 문제입니다. 홍콩은 국가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국제사회에서는 홍콩을 국가처럼 인정하고 있어요. 이걸 ‘홍콩의 특별지위’라고 합니다. 1992년 미국은 홍콩과 협약을 체결해서 관세, 무역, 비자에서 ‘특별지위’를 부여했어요.. 그래서 돈도 홍콩 달러가 따로 있고, 무역도 독자적으로 하죠. 우리나라와의 무역 교역량에서 홍콩은 4위 정도를 차지할 정도예요.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특별지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이번에 미국 상원에서 홍콩 인권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홍콩에서 인권침해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홍콩의 특별지위를 취소해버릴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홍콩이 독자적인 지위를 잃어버리면 홍콩달러도 휴지조각이 되고, 홍콩과의 무역 거래도 다 중단될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홍콩만 몰락하는 게 아니라 앞서 말씀드렸던 홍콩의 배후지가 다 몰락해서 중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돼요. 미국이 이런 방식으로 중국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겁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시위를 진압하거나 상황이 폭압적으로 전개되면, 홍콩의 특별지위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거예요.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군대를 동원해 조기에 진압하려니 국제사회에서 여러 가지 압박이 심합니다. 거기다 지금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군대를 동원해서 폭력적으로 진압하기는 곤란한 겁니다.

이렇게 지금 상황은 홍콩 사태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단순히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라 배후에는 중국이 있고, 반대쪽 배후에는 미국이 있기 때문에 지금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거예요. 홍콩 자체만 보면 안타깝죠. 그래서 적극적으로 지원과 지지를 하고 싶어도 이렇게 국제적인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 보니 누구도 선뜻 나서서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 중국 유학생들이 대학마다 많잖아요. 한국의 일부 대학생들이 홍콩 시위에 연대와 지지를 표시하는 대자보를 붙이니까 중국 유학생들이 그 대자보를 찢어버려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한국 학생들이 ‘왜 한국에서 설치냐? 이게 너희 나라냐?’ 이렇게 욕하는 모습이 중국 sns에 동영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중국 본토의 다수 사람들은, 홍콩 사람들을 외세 치하에 오래 살면서 중국인의 자주성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한국 사람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모습이 중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재는 그럴 수 있는 초기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대의(大義)만으로 보면 홍콩 시민의 시위는 지지를 해야 할 일입니다. 홍콩이니 중국이니 미국이니 이런 것을 다 떠나서,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대항해서 민중이 벌이는 민주화 운동이란 측면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 경험을 생각해서 마땅히 지지를 해야 하는데, 말씀드린 것처럼 국제적인 정치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보니 엉거주춤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민주 정부라 하더라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게 되면 내정간섭처럼 비쳐서 중국 정부와의 갈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시민 개개인이 지지 의사를 보이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에 속하니까 괜찮지만, 이번 홍콩 시위 사태는 자칫 잘못하면 중국과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는 금방 해결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요. 원칙적으로는 그들을 지지하는 게 맞지만, 홍콩 내부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외부의 여러 가지 갈등 요소가 겹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지지 표명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여러분들의 토론이 좀 필요한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지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많은 부분들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이런 것들을 너무 고려하지 말고 원칙대로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지지와 연대감을 표시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건 남의 나라 문제니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겠죠.

요즘은 남의 나라 문제라도 인도적인 지원이나 인권 문제는 관영하는 게 일반적 추세입니다. 물론 당사국은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 인권 문제도 외부에서는 ‘이건 인권 문제니까 국제 사회가 얘기할 수 있다’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이번 홍콩 사태도 중국은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는데, 또 국제사회에서는 ‘이건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를 넘어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사태는 홍콩 주민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고, 우리가 섣불리 나서기에도 주저함이 있어요. 또 한국 사람들이 연대를 표시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홍콩 주민들이 지금 굉장히 섭섭하게 여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시아에서 이런 과정을 가장 비슷하게 겪은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홍콩 주민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원망이 좀 있어요. 홍콩 사람들은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에 대해 굉장히 익숙하고 친근감을 느낍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그린 ‘택시운전사’와 같은 영화들이 동남아에 확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봤거든요. 그걸 보면서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은 경험을 했으니까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위 현장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한국 노래도 부른 겁니다. 그런데 한국이 침묵하니까 좀 섭섭해합니다.

그런데 중국 본토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홍콩 문제에 의견을 내거나 개입하는 것을 내정간섭이라고 봅니다. 한국으로서는 지금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또 중국 정부는 한국이 개인 차원에서든 국가 차원에서든 조금이라도 홍콩 사태에 관여할까 싶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요. 한국이 이 문제에 관여하면 중국은 정치적으로 대응할 위험도 있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시겠어요?”

“네.”

이어서 스님은 인공지능으로 바뀔 미래 사회에 대해 설명하고 미래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수행’을 꼽았습니다.

“미래는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장밋빛 환상에 젖을 필요도 없어요. 제가 볼 때 미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수행입니다. 수행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집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이 좋은 법을 이렇게 일찍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몰라요. 좋은 길을 알려줘도 외면하고 있어요. 그래도 사람마다 인권이 있으니까 아무리 좋다고 해도 멱살 잡고 끌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자발적으로 수행 정진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홍콩 시위,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 11시 20분이었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대중이 명상을 하는 사이 스님은 바로 차를 타고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2시에 특허청 초청 강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1시 30분에 특허청에 도착하여 특허청장님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청장님은 스님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스님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아내가 스님 법문을 보고 나서 저희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별말씀을요.” (웃음)

“저희 특허청 직원들은 너무 공부를 많이 해서 기대는 너무 높고, 자존심은 너무 세고, 업무 할 때는 서류만 쳐다봐야 해요. 그래서 제가 어떤 걸 해줘야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난 게 일반 사람보다 파격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시는 법륜 스님이 오셔서 같이 대화를 나누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심스럽게 초청을 했는데, 흔쾌히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청장님은 이곳에 온 지 1년 2개월이 되었는데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담소를 나누다가 오후 2시에 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강당에는 특허청에서 일하고 있는 210여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들 앞에서 질문하기가 어려울 것을 헤아려 먼저 주의사항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나온 이야기로 흉보기 없기예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다음에 제가 또 오겠습니다.”

5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스님이 출가하게 된 ‘질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출가하고 그 답을 얻으셨나요? 목사님이 그 질문을 했다면 목사가 되셨을까요?”

“내가 행복하자고 하면 가족이 조금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또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 내가 불행해질 때가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2년 전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자책되고, 혼자되신 아버지께 어떻게 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또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외로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요?”

“아내에게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요?”

특허청에는 고시를 합격한 고학력자들이 많아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스님은 이런 고민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격려의 말을 해주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직장 다니는 것이 힘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취업도 못 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보일까요?”

“좋아 보여요.”

“부부관계가 힘들 수는 있어요. 그러나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의 상태는 좋은 상태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안 갖춰져 있는 게 맞아요. 그러나 내가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지금 상태가 최선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현재의 조건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그때가 좋았어!’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돌아보면 ‘아, 그 직장이 좋았어’ 이런 말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의 내 조건에 대해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나이, 직책, 직장, 가족 관계에 대해서 만족하면 좋겠어요.

지금도 만족하지만 다른 것을 더 해보고 싶어서 현재의 직장을 그만두는 건 괜찮아요. 그러나 현재가 불만이어서 다른 것을 선택하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게 됩니다.

‘나는 지금도 좋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른 길을 한 번 가보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진로를 변경해야 여러분들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좀 도움이 되었어요?

“네! 감사합니다.”

특허청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천안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이 시작하는 저녁 7시가 다 되어 천안시청 봉서홀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여유도 없이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1100여 명의 천안 시민들이 1층과 2층까지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만석이 되어서 돌아간 분이 300명이 넘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네요. 다른 곳이면 계단에 앉고 하는데 예술회관이라서 정원 외 입장이 일절 안 된다고 합니다. 질문을 하겠다고 신청한 분도 17명이네요. 2시간 동안 많이 해야 10명인데, 질문을 못하는 분들이 있더라도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돈 내고 여기 들어온 사람은 없잖아요.” (모두 웃음)

곧바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2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서 좋은 사주팔자와 나쁜 사주팔자가 있는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이 아주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좋은 사주, 나쁜 사주가 정말 있습니까

“사주를 봤는데 사주가 안 좋다고 해요. 이름이 안 좋아서 더 안 좋다고 하면서 개명을 하면 조금 나아진다고 하는데, 작명소에 가서 개명을 해야 할까요?”

“작명소를 차려놓고 작명을 해주는 사람은 이름에 따라서 사람이 좋아지고 나빠진다는 것을 믿으니까 작명을 하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질문자에게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은 그걸 믿으니까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교회 다니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으니까 교회에 다니잖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저더러 ‘스님, 하느님 믿어야 복 받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본인이 그렇게 믿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질문자에게 그렇게 얘기한 사람도 그걸 믿으니까 질문자에게 그런 말을 한 겁니다.

그 내용에 질문자도 동의가 되면 이름을 고치면 되고, 동의가 안 되면 그냥 ‘그 사람 얘기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돼요. 누가 저더러 ‘스님, 하느님 믿으세요’라고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얘기이고 저는 ‘No, Thank you’ 이러면 됩니다. ‘No, Thank you’라는 말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안 하겠습니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것처럼 ‘작명하세요’ 그러면 ‘No, Thank you’ 이러면 됩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사주가 어떻게 나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스님이 사주를 봤는데 ‘평생 결혼 못하고 혼자 살 팔자다’라고 나왔으면 그건 사주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글쎄요...” (모두 웃음)

“혼자 산다는 사주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만 물어도 대답을 못하잖아요. 그러면 스님이 사주를 봤는데 ‘돈을 많이 벌겠다’ 이렇게 나왔으면, 이건 좋은 사주예요, 나쁜 사주예요?”

“좋은 사주요.” (모두 웃음)

“스님이 돈 많이 버는 게 좋은 사주예요? 다시 예를 들어 볼게요. 사주를 봤더니 ‘스님 주위에 여자가 셋이나 있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이건 좋은 사주예요, 나쁜 사주예요?”

“나쁜 사주요.” (모두 박장대소)

“자, 그러면 ‘자식이 다섯 명이나 있습니다’ 이렇게 나왔으면 이건 좋은 사주예요, 나쁜 사주예요?”

“알겠습니다. 이해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결혼을 하려는데 남편 사주가 단명한다고 나왔어요. 이건 좋은 사주예요, 나쁜 사주예요?”

“나쁜 사주요.”

“나쁜 사주가 아니에요. 남편이 일찍 죽으면 시집 한 번 더 갈 수 있잖아요. 시집을 한 번 더 가는 것이 아주 합법적인 데다 도덕적으로도 전혀 어긋나지 않잖아요. (모두 웃음)

‘사주가 좋다’, ‘사주가 나쁘다’ 하는 건 옛날 얘기예요. ‘부잣집에 태어난다’라고 사주가 나오면, 이건 좋은 사주일까요?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장난감도 제가 만들고, 뭐든지 제 손으로 다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구호활동을 하기 위해 동남아에 가면 얼마나 생활하기 편한지 모릅니다. 그 덕분에 창의적인 사고가 많이 발달했어요. 어릴 때 팽이나 연, 썰매를 잘 만들려고 궁리하고 노력한 게 다 탐구하는 자세의 바탕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늘 그러잖아요.

‘저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이생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조기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모두 웃음)

부잣집에 태어나면 복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복이 아니에요. 부잣집에 태어나는 게 무슨 복이에요? 부잣집에 태어나서 패가망신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왕자로 태어나서 왕위 쟁탈하다가 죽은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도 왕자로 태어난 게 복이에요?

이런 건 다 옛날식 얘기예요. 옛날의 생활에 비추어보면 그게 삶에 유리한 조건이다 보니까 복이 됐다고 볼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좋고 나쁜 건 없어요. 부처님은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영원한 것이 없다’ 이렇게 가르치셨어요. 그런데 무슨 사주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모두 웃음)

사주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건 믿음에 해당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에는 ‘우리의 운명을 하느님이 다 주재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겁니다. 인도에는 ‘전생의 삶이 너의 운명을 정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주를 믿는 사람들은 ‘네가 태어난 생년월일시가 네 운명을 정한다’ 이렇게 믿는 겁니다.

그런데 태어난 생년월일시가 운명을 정한다면, 지구 상에 같은 시에 태어난 수많은 아이들에게도 모두 적용이 돼야 하겠죠. 전통적으로 시를 두 시간 간격으로 보니까, 특정한 두 시간 안에 태어나는 아이들을 다 조사해서 분석해보면 모두 운명이 같을까요?”

“아니요.”

“그래도 그걸 믿고 싶은 사람은 믿어도 좋아요. 또 그런 얘기도 들어보면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이름을 고치면 좋겠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진다는 건, 지금 살기가 좀 힘들다는 걸 말해요. 한마디로 세상일이 지금 뜻대로 안 되고 있다는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런데 이름을 바꿔서 좋아질 거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합니까. 이름만 바꾸면 되는데요. 얼마 전에는 스님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애를 곧 낳을 텐데 사주에 맞춰가지고 수술하는 게 낫겠습니까, 안 하는 게 낫겠습니까?’

요즘은 자연분만뿐 아니라 제왕절개가 되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앞으로 인공자궁이 나오면 애를 내가 낳는 게 아니라 회사에 주문해서 데려오게 될 겁니다. 그러면 다들 좋은 사주에 맞춰서 주문하고, 좋은 날짜에 맞춰 출고를 해주겠죠. (모두 웃음)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 보세요. 그걸 믿는 것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어요. 믿음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렇게 해도 돼요. 그건 남을 해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한테 와서 ‘그러냐, 안 그러냐’ 하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믿음의 문제는 주관적 문제이고, 진리라는 것은 객관적 문제예요. ‘신이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는 수천 년을 토론해도 끝이 안 납니다. 그건 주관적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믿음에 관계되는 문제예요. 그걸 자꾸 객관적인 문제로 보는 게 잘못된 거예요.

그러니 ‘있느냐, 없느냐’로 접근하면 안 돼요. 상대가 ‘있다’라고 하면 ‘저 사람은 있다고 믿는구나’ 하고, ‘없다’라고 하면 ‘없다고 믿는구나’ 하면 됩니다.

‘아, 저분은 성명 철학을 믿는구나.’
‘아, 저분은 사주를 믿는구나.’
‘아, 저분은 전생을 믿는구나.’
‘아, 저분은 신을 믿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천국이 도래한다고 누가 얘기했을 때 나는 안 믿어지는데 아내는 믿어진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아내는 틀리고 나는 옳은 게 아니에요. 아내와 내가 서로 믿음이 다른 거예요.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 믿음이 서로 다른 겁니다.”

“마음의 숙제를 해결한 것 같습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친정에 재산이 10억이 넘는데 올케가 다 받았어요. 그런데 올케가 선산을 다 팔아넘기고 부모님 묘를 파서 유골을 아무 데나 뿌리려고 합니다. 잠도 못 잘 정도로 괴로워요. 올케에 대한 미움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형이 대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지금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어요. 형을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학교 다니기를 싫어합니다. 고등학교도 안 가려고 해요. 이사를 가서 환경을 바꿔주면 좀 나아질까요?
  • 큰 딸이 심장병 치료를 받다 보니 작은 딸이 친척집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작은딸 성격이 불안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요.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편안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두 번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몸이 많이 힘든데 명절 때마다 시댁에 오라는 연락이 와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 정신에 입각해 무장독립운동을 해산시켰다는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일제강점기 용성스님처럼 무장독립운동을 지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행자는 폭력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 아내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습니다. 가정마저 팽개칠까 봐 걱정입니다. 강압적으로 못 나가게 하면 더 반발을 할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 연봉, 팀원을 만났어요.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인생이 재미가 없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 남편에게 깨어진 신뢰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6년이 흘렀는데 남편과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 절에 다닌 지 30년이 넘었는데, 그 절에서 오빠가 돈을 빌렸어요. 종무소 사무장님이 돈 문제로 저에게 무안을 줘서 돈은 갚았는데, 절에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합니다.
  • 육십 평생 줏대도 없이 살았습니다. 아내가 저와 부부관계를 안 하고, 밥도 안 차려줍니다. 이혼하자고 했더니 이혼도 안 해줘서 고민입니다.

대화를 모두 마치고 나니 2시간 26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질문했던 사람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목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아이를 좀 더 살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별일 아니었군요.”
“남편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벼워진 한 줄 소감에 청중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책 사인회가 없어서 스님은 봉사자들과 곧바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과의 사진 한 컷에 모두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천안을 출발한 스님은 밤새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두북에 도착하자 밤 12시 30분이 넘어 있었습니다. 늦게까지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김장을 하는 날입니다. 하루 종일 김장을 한 후 저녁에는 부산 사하구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6

0/200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27 15:08:32

무지랭이

급변하는 지금, 이렇게 수행하며 살 수 있는 것이 행복임을 각성합니다~^^

2019-11-25 19:08:03

산나무

국제사회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참 어려운 위치에 놓여져잇네요.
좀 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럴수록 우리가 서로 뭉쳐야 할것 같습니다

2019-11-23 12:12:21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