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7.15 백중 입재
“죽은 사람을 떠나보낼 때 가장 중요한 것”

안녕하세요. 오늘은 돌아가신 조상님과 영가들이 극락세계에 태어나도록 발원하는 백중 기도 입재일입니다. 스님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한 후 백중 기도 입재 법문을 하고 나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침 7시, 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유튜브 채널 ‘법륜 스님의 행복TV’에 발행할 영상 삽입용 오디오 녹음을 했습니다.

녹음이 끝나자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 등 종교인 분들이 속속 평화재단에 도착했습니다. 지난달에 통영을 함께 방문한 이후 한 달 만입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차린 밥상이 나오자 김명혁 목사님이 식사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마음과 뜻을 모으고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도록 은혜와 복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다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며 심부름꾼으로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축북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스님, 신부님, 목사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 모두 아멘을 크게 외치며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통영 방문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이후 후속사업을 어떻게 할지 논의했습니다.

윤이상 음악가를 매개로 남북 문화 교류의 장을 열어보자는 제안과 거북선이 한산도를 출발해 통일에 대한 온 국민의 염원을 담아 평양에 도착하는 행사를 기획해보자는 제안이 올라왔습니다. 여러 의견들을 수렴한 후 스님도 의견을 말했습니다.

“남북 교류를 시작해야 한다는 제안은 정말 좋은 제안입니다만, 남북 관계가 좀 풀리고 나서 추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지금 남북이 일절 서로 소통이 안 되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 윤이상평화재단 측과 가볍게 더 논의를 해봅시다.”

지난 통영 방문 일정을 준비해 준 통영시와 윤이상평화재단에 감사 편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습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사회 문제들에 대해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면서 시민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눈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그럼 8월에 다시 뵙겠습니다.”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스님은 백중기도 입재법문을 하기 위해 서초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서초법당 앞마당에는 백중기도를 맞이하여 영가를 위한 백등 수백 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10시부터 백중기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백중 기도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은 스님은 백중기도가 생긴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백중 기도 입재일입니다. 백중(百中)은 음력으로 7월 15일, 인도 말로는 우란분재(盂蘭盆齋) 또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 부릅니다. 백중 기도는 백중절보다 49일 이전인 오늘 입재를 해서 칠칠재를 지내고 백중 당일에 백중 기도 회향을 하게 됩니다.

백중 기도가 생긴 이유

그 유래를 살펴보면 백중은 인도에서 온 명절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의 많은 전통 명절 중에서도 유독 이 우란분재일이 불교 명절로 들어온 것은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조상 또는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참으로 좋지만,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는 출가라는 것이 부모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는 불효라는 의식이 있어요. 그런데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조상을 섬기고 연연한다는 것은 출가의 정신에 어긋나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어떻게든 불교 안에 정착시켜보려고 했던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목련존자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상수제자(常隨弟子)로 꼽히는 두 분이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입니다. 이 두 분은 부처님보다 연세가 많아서 모두 부처님보다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종교화되고 우란분절을 불교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목련존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목련경(目連經)’의 내용을 보면, 목련존자는 신분도 높고 부유해서 부러울 것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서, 아버지의 유업을 목련 존자가 계승했습니다. 목련 존자는 유산을 삼등분해서 3분의 1은 어머니에게 드리고, 3분의 1은 자신이 가지고, 3분의 1은 아버지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서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널리 베푸는 용도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재산의 3분의 1을 드리고, 아버지 몫의 3분의 1도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베풀어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은 남은 3분의 1을 가지고 장사를 하러 떠났습니다.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지만, 결국 부처님을 만나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닫고는 출가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출가를 해야겠다. 이 재산은 다 어머니께 드려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베풀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작 어머니는 아들이 맡긴 재산 3분의 1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베푸는 게 너무 아깝게 느껴져서 그 돈을 베풀지 않고 가축을 키워서 도살해서 판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구걸을 하러 오면 전부 하인을 시켜서 내쫓아버리는 바람에 동네에 원성이 자자해졌습니다. 집 주변에서 늘 비명소리가 들리고 피비린내가 풍겼다고 해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들한테 부탁을 받은 게 있었기에 마음속에 켕기는 구석이 있었겠죠. 그래서 아들이 돌아오는 길목에 미리 하인을 보내 놓고 혹시 아들이 돌아오면 미리 알리도록 시켜놓았습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뒤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청소한 뒤에 빈 그릇들을 뒤뜰에 갖다 놓았어요.

목련존자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게 들려왔습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걸식하러 온 스님이나 구걸하러 온 사람들을 내쫓고 살생을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목련존자는 자기 어머니가 그랬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한테 물어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서로 반가워하는 중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이런 비난의 소리가 들리던데 사실입니까?'

그러자 어머니가 펄쩍 뛰었어요.

'나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 네가 준 건 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베풀었단다. 뒤뜰에 한 번 가봐라. 오늘도 500명이 와서 음식을 먹고 갔다. 저 빈 그릇들을 봐라. 내가 만약에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했다면 일주일 안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게다. 그래도 날 못 믿겠니?'

이렇게까지 맹세를 하니까 아들은 ‘어머니가 그러지 않으셨나 보다’ 이렇게 좋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도 우연이라고 생각했지, 어머니가 맹세한 내용대로 돌아가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어머니를 위해서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한테 베풀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어디에 가 계신지 궁금해진 목련존자는 신통으로 하늘세계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하늘세계에 아버지는 계시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어머니가 안 계셨어요. 인간 세계를 둘러봐도 안 태어나 있었습니다. 축생계를 봐도 없고, 아귀도를 봐도 없었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지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불에 데는 온갖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고 목련 존자는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어머니를 구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살아생전에 지은 좋은 인연의 끈으로 구제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어떤 좋은 일을 했는지 업경대(業鏡臺)에 비춰보니까 자기 어머니인데도 진짜 못된 짓만 했지 잘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좋은 일을 한 게 있었어요. 어느 날 화롯불에 다림질을 하는데, 천장에 있던 거미가 똑 떨어져서 화롯가에 떨어졌어요. 또르르 굴러서 불에 떨어지게 됐는데, 이걸 손으로 탁 튕겨서 살려준 게 유일하게 좋은 일을 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인연의 끈인 거미줄을 내려보내서 어머니를 구제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살려달라고 마구 아우성치다가 하늘에서 가늘지만 줄이 하나 내려오니까 그걸 덥석 잡았습니다. 그런데 지옥에서 고통받던 온갖 중생이 다리를 잡고 또 그 다리를 잡고 매달려서 다 따라 올라왔어요. 어머니가 올라가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줄줄이 매달려 이어져 있었어요. 자기 혼자 매달려도 줄이 끊어질 것 같으니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막 발로 차서 모두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고, 이제 살았다’ 하는 순간 거미줄이 툭 끊어져버렸어요. 그렇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직도 자기가 지은 죄를 반성하지 못한 거죠.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성질이 또 드러나서 지옥에 다시 떨어진 거예요. 목련존자가 부처님께 다시 찾아가 울면서 이 얘기를 하니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자기가 지은 공덕의 끈으로는 구제할 수가 없구나. 자기만 구제받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냈다면 그 거미줄이 동아줄보다 단단해졌을 텐데... 그러니 아들인 그대가 공덕을 지어주거라.'

이 말을 듣고 목련 존자는 안거가 끝나는 날에 출가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걸식을 하는데 안거 중에는 걸식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날 때가 되면 비쩍 말라서 영양실조 상태가 돼요. 안거가 끝나는 날의 수행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배고픈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안거를 지냈으니까 아주 청정한 상태에 있다는 뜻도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조건에 처했으면서도 가장 정신이 맑고 몸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바로 안거가 끝나는 날의 수행자입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나는 날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가장 공덕이 크다고 말하는 겁니다. 목련 존자도 바로 이 날에 안거를 마친 오백 대중을 위해서 갖가지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 말을 한문으로 옮길 때 ‘백중(百衆)’ 또는 ‘백종(百種)’이라고 옮겼어요. ‘백중’은 오백 무리에게 공양을 올렸다는 뜻이고, ‘백종’은 백 가지 종류의 음식을 올렸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공양을 올려서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목련 존자가 그렇게 베풀었더니 그 공덕으로 어머니가 지옥에서 아귀도로 올라왔다고 해요. 아귀도는 지옥보다는 조금 덜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고통스러워요. 막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며 죽이는 일을 당하지는 않지만, 배가 고파서 헐떡거리는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보니 목련 존자는 또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발우에 밥을 가득 담아서 신통력으로 보냈습니다. 배가 고파 헐떡거리던 어머니가 밥을 발견하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다른 손이 수십, 수백, 수천 개가 달라붙었습니다. 어머니는 발우를 끌어안고 다른 사람들을 마구 쳐냈어요. 그렇게 다 쫓아내고 밥을 입에 넣었더니 밥알이 목구멍에서 불덩어리가 되어서 목을 태웠습니다. 어머니가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보고 너무 안쓰러워서 목련 존자는 다시 공덕을 지어서 어머니가 축생도로 올라오게 해 주었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재미있어요?” (모두 웃음)

“예.”

“여러분은 ‘에이그, 거짓말!’ 이렇게 생각하죠?” (모두 웃음)

“아니요.”

“이게 문화예요. 문화는 스토리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런 스토리에 의해서 백중이 불교 안에 명절로 정착됐습니다. 여기에는 출가한 스님들이 불효를 한 게 아니라 이렇게 갖가지 노력으로 효성을 다하고 있다는 뜻도 담겨 있고, 출가한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이 가장 큰 공덕이 된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인도에서 원래 조상을 섬기는 전통 명절이었고, 또한 안거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나는 이 날에 스님들을 초청해서 공양을 올리면 설령 지옥에 가 있는 조상 영가라 하더라도 천도할 수 있다고 해서 백중이 불교 안에 종교적인 의식으로 정착된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수행으로서의 불교라기보다는 종교로서의 불교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운다

‘우란분재’는 인도 말인 ‘울람바나(Ullambana)’와 한자 ‘재(齋)’자를 합쳐진 말입니다. ‘울람바나’는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우려면 베풀어야 합니다. ‘재’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제사 제(祭)’ 자가 아니라 ‘베풀 재(齋)’ 자를 씁니다. 이렇게 가난한 이, 배고픈 이, 병든 이를 위해서 베풀면 그 공덕으로 거꾸로 매달린 것이 바로 선다는 의미입니다.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지옥에서 영가를 구제한다는 ‘천도(薦度)’예요. 그래서 ‘천도재(薦度齋)’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모두 부모의 고통 속에서 태어났고, 부모의 노고 속에서 자랐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또 그 부모의 그런 노고 속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오늘 내가 있기까지에는 부모와 또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이렇게 무수한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체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우기는 하지만, 우선 가까이로는 내 생명의 뿌리인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들이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어떤 죄업을 지었다면 그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잘 되게 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을 베풀어서 조상의 그런 업장을 다 녹여주고자 백중 기도를 하는 거예요.

죽은 사람을 떠나보낼 때 가장 중요한 것

그런데 재(齋)를 지내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마음속에서 영가를 떠나보내기 위함입니다. 천도재를 지냄으로 인해 외부적으로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되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내 마음에서 영가를 떠나보내는 게 되어야 해요. 쉽게 말해 ‘안녕’ 하고 인사를 해줘야 합니다. 물론 인사하기가 쉽지는 않죠. 그러나 재를 지낼 때는 작별 인사를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49재는 극락을 가든 천당을 가든 환생을 하든 어쨌든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할 때 사별한 사람들에게는 늘 ‘안녕’ 하고 인사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 백중 기도를 하면서 바깥으로는 베풀고, 안으로는 집착을 놓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 기간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모와 조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어릴 때 섭섭했던 것을 아직도 움켜쥐고 섭섭해해서는 안 돼요. 미워하고 원망하는 걸 다 놓아야 합니다. 반면에 애잔한 그리움으로 붙들고 있는 것도 안 됩니다. 미움과 원망도 놓아야 하지만 애착도 놓아야 해요.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되어도 무의식 세계에서는 아직도 어린아이일 때 상처를 받았던 게 모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걸 건드리면 눈물을 흘리면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게 마련이에요. 그러니 이렇게 백중 기도를 하는 동안 마음속에 있는 원망이나 애착을 다 내려놓도록 하세요. 그래서 영가 천도 법문도 모두 이런 내용들입니다.

‘생과 사는 얼음과 물 같아서 둘이 아니다. 뜬구름 같이 허망한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애착도 원망도 두지 마라.’

이제 내 법당에서 백중 기도를 지낸다

오늘은 정토회가 생기고 처음으로 재를 온라인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모두 웃음)

그동안은 백중 기도 때 법당에 와서 잔도 올리고 인사도 하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을 텐데, 이번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각자 집에서 온라인으로 백중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란 다 내 마음에 있는 거예요. 집에서 물 한 잔 올리고 절 한 번 하면 됩니다. 오늘은 온라인 방식이 처음이지만 앞으로는 이게 일상화가 될 거예요. 앞으로는 여러분의 방이 곧 법당이 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백중기도를 지낸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내 법당에서 백중 기도를 지낸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이 외에도 스님은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바로 세우는 방법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오계와 팔계를 지켜나가는 삶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입재 법문이 끝나고 곧바로 백중기도 중 첫 번째 재를 시작했습니다. 서초법당에서 백중기도를 지내는 모습이 인터넷 선을 타고 국내외에 있는 정토행자들에게 생중계되었습니다. 4000여 명의 대중이 각자 자신의 집에 마련한 법당에서 천도재를 함께 지냈습니다.

법문을 마친 후 11시가 넘어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날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3시에 두북에 도착해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한 후 밀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5일을 보내고 돌아오니 작물도 풀도 쑤욱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텃밭 주변에 마구 자란 풀을 깎아주었습니다.

풀 깎는 기계가 오래되어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는 살짝 추웠는데, 어느새 땀이 났습니다.

기계가 잘 닿지 않는 곳은 낫으로 풀을 베었습니다.

비를 맞고 쓰러진 키다리 상추와 꽃이 핀 상추는 다 뽑았습니다.


상춧대는 약으로 쓰기 위해 따로 모아두었습니다.


꽃대가 올라온 고수도 솎아주었습니다.


손가락만하던 깻잎 모종도 무릎보다 높이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감탄하며 깻잎을 땄습니다. 톡톡 깻잎 따는 소리가 경쾌했습니다.




금세 한 소쿠리를 땄습니다.

“이건 깻잎 김치를 담아 먹읍시다.”

뒷밭에 심은 깻잎도 땄습니다.

두 시간 정도 농사일을 하고 수련원으로 갔습니다. 수련원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딸기를 옮겨 심은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딸기가 다 자리를 잘 잡았네.”


수련원에 들어와서 농사팀 행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지난 5일간 잘 지내셨어요?”

농사 진행 상황과 안거 기간 동안 일감을 점검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행복학교 참가자들을 위한 생방송 특강이 있습니다.

전체댓글 72

0/200

혜당

감사합니다 ♡

2021-01-13 09:32:11

김현숙여래심

젤 마지막 사진 호박이 참 이뻐요 빛깔도 곱고
백중의 유래 다시 짚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0-08-06 19:43:29

정지나

나쁜집착도 내려놓치만 애착도 내려놔야
한다는 말씀도 다시 챙겨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7-28 20: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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