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목포법당
부처님 따라 하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 성도재일 철야정진 이야기

"수행은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는 것이 아닌 콩고물을 바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리라수행은 정직합니다." 

 

성도재일 철야정진. ‘철야라는 단어에 잠 많은 필자는 참가를 고민했더랬습니다놀면서도 밤샘하기가 힘든데 가만히 명상하며 앉아 있는 것이 가능할는지 걱정이 됐지만, ‘우리도 부처님처럼이라는 문구에 설렘과 기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걱정이나 기대감 모두 놓아버리고 그냥 해보라는 불교대학 담당자의 조언에 또 놓쳤구나’ 하며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이었습니다.

 

8시 40분경법당에 들어서니 부지런한 도반들이 미리 준비해놓고 참가자들을 맞이합니다. 9시가 되어가니 속속 다른 도반들도 도착하여 작은 법당 안에는 어느새 12명의 참가자로 가득 찼습니다.

 

1. 우리도 부처님처럼 법문과 명상그리고 묵언

 

삼귀의를 시작으로 예를 갖추고 첫 번째 법문을 영상으로 들었습니다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발견하신 중도의 의미와 이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대결정심을 갖고 선정에 들어 성도하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잠시 2,600여년 전의 부처님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법문이 끝나고 자리정돈을 하니 명상안내가 이어집니다그리고 시작되는 첫 번째 명상시선을 코끝에 두고 날숨과 들숨을 관찰합니다. 호흡이 빠르면 빠른 줄 알아차리고호흡이 느려지면 느려진 줄 알아차리고호흡이 깊으면 깊은 줄 알아차리고호흡이 얕으면 얕은 줄 알아차립니다망상이 들면 망상이 들어온 줄 알아차리고등이 가려우면 가려운 걸 알아차리고다리가 아프면 아픈 줄 알아차린다다리를 펴고 싶으면 펴고 싶은 걸 알아차릴 뿐욕구에 끌려가 펴지도 않고 욕구를 억압하려 애쓰지도 않으며 그저 알아차립니다알아차리고알아차리고알아차리다 보니 어느새 세 번의 죽비소리가 울리고 첫 번째 명상이 끝났습니다.

 


▲ 
첫 번째 명상

 

명상 후에는 포행이 이어졌습니다. 포행 안내에 따라다리를 서서히 편 후 모두 일어나 법당 안을 걷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천천히시선을 발끝으로 옮겨왼쪽 발이 나가면 왼쪽 발이 나가는 줄 알고 오른쪽 발이 나가면 오른쪽 발이 나가는 줄 알아차린다알아차림의 지속포행에 이은 휴식도 묵언 속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봅니다.

 

두 번째세 번째네 번째 명상과 포행이 이어지고 드디어 마지막 다섯 번째 명상이 끝났습니다. 자세를 풀어 조금은 편안한 자세로 스님의 마지막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위해 자리정돈을 합니다.

 

2. 묵언 끝나누기

 

오롯이 자신에게만 향해 있던 시선을 이제는 도반들에게 건네는 시간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각자의 업식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한 도반들의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경험이 있어 편안하게 즐기면서 할 수 있었고끝까지 다 함께 마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회를 맡았는데 어둡다가 갑자기 조명이 켜지니 멘트가 잘 보이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불교대생이면 필수로 참석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왔고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처음 해보는 명상에 허리가 아프고 졸리기도 했지만끝까지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오기 싫었는데불교대생이 참석한다니 불교대학담당자로서 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12시까지만 있다 가려고 했으나 하다 보니 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내가 불교대학 다닐 때는 성도재일에 참석할 생각을 못했었는데여러 도반들이 참여하는 것 보고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막상 해보니 해볼 만 합니다.

 

자신의 게으름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오며 운동을 하지 않는 생활이었습니다명상을 하며 다른 분들은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는데 나는 어깨통증이 아주 심했습니다생각해보니 심한 통증만큼 내가 평소에 많이 어깨를 움츠리는 자세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명상자세로 어깨를 펴고 있으니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확 펴져 호흡이 편안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상당히 기대하고 왔습니다부처님 가피로 콩고물 쪼금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스님 말씀대로 절대 움직이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했습니다그런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코끝이 간질간질하더니 조금 있으니 콧속까지 간지러워지는 것입니다. 그걸 참고 있다가 결국 기침이 여러 번 나와 버렸어요나를 제어하는데 다섯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네 번은 실패했고 마지막 한 번은 성공했습니다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 기도 할 때도 명상을 하면 오히려 호흡이 긴장되어 쥐어짜지는 느낌이 들고는 하는데오늘도 호흡에 집중하니 오히려 호흡이 자연스럽지 못했습니다. 12시가 넘어가면서 졸리기도 해서 힘들었지만끝나고 나니 좋습니다.

 

가부좌가 되지 않아 명상수련도 참석하지 못하는 몸이라 두려움이 컸지만해보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그런데 하다 보니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고 어느새 끝이 났습니다. 명상을 이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겨 기쁩니다.

 

평소 다리가 불편해 아침에 절하는 것도 말리는 아내가 명상까지 하러 간다니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뒤로하고 왔습니다매년 해보지만 참 좋습네요. 내년에도 또 하고 싶어요.

 

평소 적게 먹고 적게 입고는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적게 자는 것만큼은 안되겠구나 생각했던터라 걱정이 되었습니다그래서 초저녁잠이라도 자고 가야 버티겠구나 싶어 낮에 일부러 산에 가서 운동을 하여 몸을 피곤하게 하였는데자던 시간이 아니라 잠을 못자고 평소보다 더 피곤한 상태로 참여했습니다쏟아지는 졸음에 몸이 넘어가지 않기 위해 버티느라 힘들었습니다.

 

초반에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회가 궁금해서 자꾸 생각이 났지만이후 다시 집중해서 명상했습니다오랜만에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좋습니다.

 

명상을 하다 보면 평소 무리가 되었던 신체 부위가 통증이 심하게 나타납니다얼마 전에 심해지는 두통 때문에 병원에서 검사받아야 하는 일정이 명상수련을 가는 일정과 겹친 적이 있었습니다고민하다 명상수련을 갔는데명상 중반까지 두통이 극에 달할 정도로 심해지다 후반부터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두통이 없는 상태입니다. 명상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오늘 여러 도반과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여러 일이 겹쳐 최악의 몸 상태가 되어 안 오고 싶었으나차 담당을 맡아 오게 되었습니다두 번째 명상까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 번째 명상부터 갑자기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아주 좋습니다.

 


▲ 
자신에게만 향하던 눈과 귀를 도반에게로 향하는 나누기

 

3. 천일결사 기도와 유미죽 공양

 

나누기를 끝내니 어느덧 시계는 5시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5천일결사자들이 어디에서는 함께 기도를 하는 시각밤샘을 했어도 아침 기도는 어김없이 이어졌습니다. 도반들이 합창하는 예불 소리가 청정하게 법당을 울리지만필자에게 예불 소리는 희미하게 멀어져 갔습니다. 방석 위에서 예불 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야말로 꿀잠을 잤더랬습니다.

 


▲ 
철야 정진을 마치고 환해진 도반들의 모습

 

밤샘 정진을 하고 아침기도까지 마친 도반들의 환해진 얼굴 뒤로 고소한 내음이 났습니다. 6년 고행이 끝난 후 산에서 내려와 쓰러지신 부처님께 수자타가 드렸다는 유미죽이름만 들어본 그 유미죽을 한 도반이 정성껏 끓여주셨습니다. 처음 끓여 본 유미죽이라는데그 맛도 일품이었지만 정진에 힘쓰는 도반들을 위해 준비하신 그 마음이 예쁘고 고맙습니다. 유미죽 공양을 하며 나누기 시간에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성도재일의 시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 
수자타가 부처님께 드렸다던 유미죽을 도반들과 함께

 

성도재일을 마치고 시작하기 전에 들었던 마음을 되돌아봅니다막상 해보니 끝까지 마쳐지는 것을 확인하니 걱정하는 마음 자체가 장애였고제 업식은 생각지 않고 하룻밤 정진으로 뭐라도 얻어 보려 했던 기대감은 욕심이었습니다거뜬히 해내는 선배 도반들을 보니 수행의 시간과 경험이 쌓인 분들입니다. 수행은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는 것이 아닌 콩고물을 바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리라수행은 정직합니다.

 

_이미라 희망리포터 (목포정토회 목포법당)

전체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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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덕

도반님들과 함께 명상으로 시작해 아침기도와 공양까지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 깊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2016-02-10 20:08:38

공덕화

잘들있습니다 도반이 힘입니다

2016-02-06 13:45:54

자비롸

콩고물을 바라는 그 마음을 살피라. 일상 어디에도 적용되는 말이군요. 성도재일 철야정진 참가 하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옵니다.내년에는 마음을 내어야겠습니다. ^^

2016-02-06 07: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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