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
진흙 속에서 발아하다
진주정토회 권혜숙 님 수행담

오늘도 앙금 떡 케잌의 자태에 공양간이 환해지네요. 음식하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혜숙 님은 맛나고 이쁜 음식을 나누고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큰손입니다. 그 덕에 오늘도 불교대학 회원들의 눈과 입이 호강을 하네요. 작은 일에 감동하고 눈물을 보이는 소녀 같은 모습을 지니고 항상 변함없는 자세로 수행중인 권혜숙 님을 만나 수행담을 들어보았습니다.

법륜스님 희망강연을 함께 준비한 도반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가 권혜숙 님.
▲ 법륜스님 희망강연을 함께 준비한 도반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가 권혜숙 님.

고통스러운 나날들

어린 시절은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아픈 기억이 많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으로 나와 남동생은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나는 5학년, 남동생은 3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새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릴 구박했고, 하는 소리 소리마다 욕지거리에다가 손찌검도 하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봐 온 아버진 한없이 크고 위엄 있는 분이셨는데 새어머니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리 편이 되어줄 수 없는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 남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였고 흉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폭언과 횡포 속에서 나 자신과의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 속으로, 내 맘으로만 알고 남들에겐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향 마산을 떠나 진주에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고 어엿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괴로움은 멈춰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내 속을 보여 하소연이라도 하면 나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바보였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어느 날, 새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동네 사람들과의 친목계가 잘못되어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새어머니가 없어진 걸 안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밤낮으로 우릴 힘들게 했습니다. 일 년 반이라는 긴 공백 기간 동안 나의 행복 터전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살던 집과 재산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너무 허망하고 허탈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짐작조차 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버진 방 한 칸 얻을 돈만 손에 쥐고 내 곁으로 오셨습니다. 사천에 친척분이 사시는데 그분이 아버지께 덤프트럭을 하나 사서 일해보시라고 하셔서 그 곳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으셨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새어머니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버지께선 그 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나와 같이 새어머니를 데리고 오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분과의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고가 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병원으로 갔을 땐 아버진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은 싸늘하게 식어서 온기조차 느낄 수 없고, 두 눈엔 그동안 흘린 눈물 자국만 남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내가 보고 싶었을까? 나의 울부짖음에 아무 대답 없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날 이렇게 힘들게 해놓고 보상은커녕 갑작스레 떠나시다니. 이건 아니다. 아직 난 할 말이 많은데 이렇게 혼자 떠나시는 아버질 보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을 대하면서 나의 원망과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다 그분 때문이라는 얽매임이 나를 더욱 더 힘들게 했으며 그분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습니다. 그 더러운 정이 뭐라고...그 정이 뭔데. 내치지도 뿌리치지도 못하는 나 자신도 한심하고 싫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자책하며 어둠 속에 가두었고, 무시로 찾아오는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은 아픈 손가락이 되어 처매지도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정토회와의 만남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친한 언니의 권유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이유도 묻지 않고 따라나선 정토회의 ‘불교대학’. 난생 처음 입재식이란 대행사를 경험하면서 백일기도에 동참했습니다. 새벽마다 법당에 나가서 수행문과 참회문을 읽으며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절을 하면 할수록 어릴 적 나의 저 밑바닥이 자꾸 보이고 그것이 도리어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원망과 괴로움은 더욱 더 커져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일어났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흘린 눈물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정토 프로그램의 하나인 ‘깨달음의 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나의 업식을 잘 알기에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 몸과 마음을 긴장상태로 몰아갔습니다. 입소한 첫날부터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습니다. 온몸은 마비되고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두 손은 마치 큰 바위를 들고 있는 듯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질 못했고 앉아있는 이 바닥은 방바닥이 아니라 뾰족한 탑 위인 듯 위태로웠습니다. 몸은 이상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내면으로의 여행에 적응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온통 부정적인 마음의 문이 서서히 긍정의 문으로 돌아서고 있었습니다. 꽁꽁 감춰두었던 내 안의 나를 이렇게 쉽게 드러낼 줄 몰랐습니다. 드러낼 용기가 없었던 것을 자존심이라 생각했습니다. 드러내지 않아 아팠고, 아픔을 표내지 않으려고 혼자였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이 눈물은 괴로움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 과거는 이제 가끔 한 번씩 꺼내보는 나만의 보석상자가 되었습니다. 보석 중에는 찌그러진 것도, 울퉁불퉁한 것도 있지만 내게는 하나하나가 빛을 발합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변화된 나 자신이 보입니다.

깨장동기들과 즐거운 한때. 왼쪽에서 첫 번째 권혜숙 님.
▲ 깨장동기들과 즐거운 한때. 왼쪽에서 첫 번째 권혜숙 님.

가벼워진 내 모습

4박 5일간 ‘깨달음의 장’에서 괴롭기만 했던 과거의 꿈을 깨고 본래의 나로 돌아온 내가 대견합니다. 혜숙아~~~그 동안 수고했어.
그동안 넌 할 만큼 했으니 이젠 조금씩 쉬어가도 돼. 이젠 엎드려 울지 말고 어서 일어나라고. 다시 시작하라는 희망의 소리가 내 귓전에 맴돕니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업식을 꾸준히 알아차리고 깨어있기를 반복하며 찰나 찰나의 소중함에 감사한 시간을 보낸, 오롯이 내 것이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공감하고 배려해주는 가족들과 도반들이 있어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면 안 되고 그것을 실제로 경험해보면서 온 몸으로 체험해야 내 것이 된다는 스님 말씀이 떠오르며 이제는 ‘아~~’하고 이해가 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임을 압니다. ‘무시무종’ 시작과 끝은 같다. 시작과 끝은 다르지 않다. 나의 괴로움은 이제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내 어깨의 무거운 짐들이 한순간 무너지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스님과 선주법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선배 도반님들 덕분에 좋은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잘 쓰이는 내가 되겠습니다. 나부터 행복해야함을 알게 되어 부족한 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 꾸준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시국대회 촛불집회.
▲ 사랑하는 아이들과 시국대회 촛불집회.

글_하상선 희망리포터 (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목인숙 (경남지부)

전체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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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경

잘 들었습니다. 졸업수련 때 수행담으로 들으면서 함께 마음 아프고 또 자랑스러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_()_

2016-12-10 06:50:21

공덕장 손명진

혜숙보살님~~ 환한 얼굴이 떠 오릅니다~
정성스런 예술품이 어찌 탄생했는지 ~~~
그 자체가 감동 감동 입니다~
이 인연 값지고 소중히 여기며 행복을 누려보아요
사랑합니다♥

2016-12-09 19:50:41

이기사

나무 관세음보살_()_

2016-12-09 1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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