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산법당
광장에 선 수행자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대구 동성로 끝자락인 한일극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선 청소년들의 시국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수능이 끝난 뒤여서인지 적지 않은 고등학생들이 극장 앞 작은 무대에 모여 또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학교에서 그저 정답만 맞히는 아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 접한 내용을 자신의 주관에 따라 주장을 잘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광장은 이렇게 수많은 시민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고, 듣고, 공유하는 민주주의 공간으로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 동성로를 가득 채운 시민들.
▲ 대구 동성로를 가득 채운 시민들.

역사의 현장에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기회이고, 더없는 경험입니다. 저는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이미 수없이 많은 최루탄 가스를 맡았고, 지금보다 더 험악한 분위기로 광장의 한쪽에서 사람들은 피 흘리고,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른 힘겨움을 지금 우리는 또 이렇게 겪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왜 또다시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건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글자로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왕이 통치하는 시대가 아닌 대통령이 집권하는 민주공화국이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로 왕조시대의 어리석은 백성처럼 생각하면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의 잘못은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의심치는 않지만, 탐욕스런 위정자들에 의해 변화되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냄비 속 개구리처럼 삶기기 전에 겨우 이렇게 다시 광장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발언을 하는 시민
▲ 발언을 하는 시민

지금의 이 힘겨움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누구임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세월이 흐른 뒤 우리들의 아이들이 한겨울 교실 밖에서 힘겨운 상황을 맞이할 것입니다.

모두가 안주할 때 우리만이라도 깨어있도록 불국사의 돌기둥처럼 정진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글_윤용희 (경산법당)
편집_도경화 (대경지부)

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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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

지금의 광장에는 최루탄가스도 없고 피흘리는 사람도 없다는 것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감사합니다.^^

2016-12-20 08: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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