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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도 학교에서 회의를 합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이러 저러한 것을 동료 선생님과 협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의 도중, 올해 우리 학교로 전입해 온 한 선생님이 계속 질문을 합니다.
“잠깐만요!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럼 그건 그래서 그런 건가요?”
궁금한 것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 확실하게 알고 싶은 마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 그 선생님의 질문 속에 작년 제 모습을 봅니다. 학교를 옮겨 이것저것 낯선 것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저는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빨리 학교에 적응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사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수록 반드시 질문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1년을 보내며 학교 시스템이 익숙해지자, 이제는 이 학교가 낯선 그 선생님의 질문이 조금은 불편합니다.
‘아~ 그냥 적응하지!’, ‘꼭 이해되어야 할 수 있는 건가?’
그러다 오늘은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문득 청년으로 활동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정일사1 점검 때마다, 제가 괴로운 이유는 누군가가 ‘이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팀장이 이해가 안 돼요.’
‘팀원이 이해가 안 돼요.’
마지막은 ‘엄마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까지...
그렇게 이해 타령을 하던 제가 이제 다른 사람이 이해 타령한다며 ‘이해가 안되는 것’ 자체를 탓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정일사 점검을 하면서 정말이지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계속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지금 돌이켜 보니 밑마음은 ‘나는 절대 이해하지 않겠다.’였습니다. 결국 제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말을 에둘러서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해묵은 정일사 과제를 이렇게 돌이킬 수 있다니! 젖은 낙엽처럼 오래도록 정토회에 붙어 수행해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좀 있으면 천일결사2 입재식3입니다. '백일 간의 발자취'를 편집할 날이 다가옵니다. 지난 100일의 영상을 다 수집해서 7~8분짜리 영상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작업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여러 단계의 점검을 받아서 수정 보완하다 보면 20일 정도는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백일 간의 발자취' 소임으로 영상을 작업할 때마다 ‘이번 백일 간 영상에서 행복과 평화의 관점은 무엇인가?’가 항상 머릿속 기준이 됩니다. 제가 관점바꾸기를 확실히 경험한 것은 한 도반의 힘이 큽니다. 오늘은 그 도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정토행자의 하루'를 담당했을 때 한 도반을 만났습니다. 서울제주지부 희망리포터 담당이었는데 그 도반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했고, 불교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습니다. 특히 지도법사님이 전 세계에 평화와 관련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직접 경험한 것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2017년 '한반도 평화대회' 때였습니다. 평화대회하기 몇 달 전, 정토행자들은 북한이 핵마사일을 들이대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전국으로 진행했습니다. ‘NO WAR’ 피켓을 들고 추운 겨울 주말마다 시위하러 나갔고, 미 백악관 사이트에 청원 서명을 받으러 길거리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영상이 나오고, 지도법사님은 전쟁을 막기 위해 전 세계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저는 전쟁 위험이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서명운동하면서도 속으로는 ‘서명 이거 받는다고 뭐 달라지나?’라는 의구심도 올라왔습니다.
심지어 몇몇 도반들이 “대학교수들도 한반도에 전쟁 날 확률이 적다고 하는데 지도법사님 혼자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다.”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도법사님은 입재식 법문 때, 수행법회 후 영상에서도, “지금 한반도는 전쟁 직전의 위기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외신들은 곧 한반도에 전쟁이 날 거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는데 국내 언론들만 조용하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주변 도반들도 딴 세상 이야기를 듣는 듯 덤덤했는데, 유독 그 도반은 지도법사님 말이 맞다고 흥분하며 미국 친구들과 텔레그램으로 소통한 방을 보여주었습니다. ‘서명운동이 지금 우리가 행복을 지킬 수 있는 가치 있는 작은 행동이다.’라는 말과 함께.
그 도반은 백악관 온라인 서명을 미국 친구 세 명에게 부탁했는데 두 명은 서명했고 한 명은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너 왜 안 하는 거야?” 물었더니 그 미국 친구가 “트럼프는 어차피 전쟁할 놈이니까.” 라며 코웃음 쳤습니다. 나머지 두 명은 “난 트럼프가 싫어!” 하면서 서명했습니다. 그 도반이 보여준 외신보도에서 트럼프는 지금 한반도와 시리아 중 한 군데에 화학무기 공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둘 중 어느 나라에 전쟁을 터트려야 무기장사를 할 수 있는지 고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후 한반도 전쟁 위기가 한고비 넘겼다고 할 즈음 그 도반이 텔레그램으로 기사 하나를 보내주었습니다. 시리아에 내전이 발생했고, 한반도는 전쟁을 피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제야 국내에만 머물러 있는 제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알았고, 꽉 막힌 관점이 한순간에 탁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영상소임을 받으며 '정토행자의 하루'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만든 모든 영상에 그 도반이 경험하게 해준 그 때의 관점이 살아있습니다. 정토회 안에서만, 우리나라 안에서만, 가능한 행복은 없습니다. 전 세계로 행복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작은 봉사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천일결사 기도 입재해서 백일동안 행복하게 봉사하며 사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는 행복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도반의 이야기가 일상에서 소소하게 깨달은 내용이라 더 친근하게 와닿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이 거슬리다가도 '저건 작년의 내 모습이네'라는 정다운 님의 알아차림은 꾸준히 수행하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또 전은정 님의 도반을 통한 관점 변화는 '도반은 수행의 전부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작지만 큰 울림의 수행담, 고맙습니다.
글_정다운, 전은정(행정처)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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