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부산적십자회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한다면 한다

하늘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조용하게 내려앉아 있는 아침이 밝았습니다. 법륜 스님은 아침 일과로 기도와 공양을 하고 가뫼들 산책을 나갔습니다. 산책길에 버들강아지가 뽀송뽀송 피어있어 몇 가지를 꺾어 왔습니다.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똑똑 떨어지던 비가 제법 지붕을 때리며 내렸습니다.

“비가 제법 오네.”

스님은 비야 오든 말든, 처마 밑에서 물을 기다리던 작은 화분들도 마당에 내놓고 쌓인 마른 잎들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잔디 솎는 일을 하였습니다. 손을 거드는 지혜명에게 ‘민들레 뿌리는 뽑지 말라’며 손놀림을 계속하며 보여주었습니다. 가볍게 정원 정리를 마치고 원고를 본 후, 점심 공양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짐정리를 하여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녁 강연 전에 우선 들를 곳이 있었습니다. 부산 구치소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스님께 법문을 요청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빗발이 점점 굵어졌습니다. 빗길에, 교통체증이 심한 부산이라 미리 출발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근처 공원에서 차를 세워두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에 맞춰 부산 구치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박호서 소장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고, 재소자 법회가 열리는 ‘어울림마당’이라는 작은 강연 장소로 갔습니다. 기결수만 출입할 수 있다는 그곳에는 스무 명 남짓 푸른 수형복을 입고 있는 재소자와 관계자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마련된 작은 단상에서 내려와 굳은 얼굴로 앉아있는 그 분들에게 다가서서 인사하였습니다.

“억울하시죠?”

응? 몇 몇 분이 고개를 들어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자기가 겪어봐야 알 수 있다 하잖아요. 저도 구치소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일반 재소자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상에 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래서 ‘다 억울하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저는 매일 강연에서 이 세상의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나만 억울한 게 아니라 모두가 억울하다는 거예요. 이런 이치를 알아서 억울한 마음이 풀려야 합니다.”

스님은 젊은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짧은 호응의 답, 네, 아니오의 답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지고 웃음소리가 자연스러워지자 질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러분들 묻고 싶은 것,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요.”

두 사람이 질문하였습니다. 반야심경 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분과 염불하면 좋다고 해서 여섯 가지 염불을 하고 있는데 얼마만큼 하는 게 좋을지 염불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즉문즉설의 장이 이곳에서도 펼쳐졌습니다. 사경과 염불 방법을 묻는 질문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80여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푸른 수형복을 입은 분들의 얼굴에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소장님은 스님께 직원을 위한 법문을 해주시면 좋겠다며 다음 기회를 요청하였습니다. 빗속에 배웅하러 소장님과 관계자분들이 나오자 얼른 들어가시라며 서둘러 차를 돌려 빠져나왔습니다. 빗발이 더 거세어져서 가까운 서면 법당에 들러 잠깐 쉬었다가 저녁 강연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싸간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바로 가까이에 있는 적십자회관으로 갔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해서 한사랑 교회 방영식 목사님과 경상대 김해창 교수님과 잠깐 인사를 나누고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적십자회관 강연장에는 남녀노소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평화재단 통일의병 중 부산 울산 지역의 통일의병 모임에서 주최를 한 통일강연 이었는데 질문은 인생 관련 질문과 사회문제에 대한 질문이 섞여 있어서 스님은 제안하였습니다.

“이 자리는 통일문제 관련하여 마련한 자리인데 인생 질문을 하러 오신 분들은 반칙이세요. 그러니 약속을 하나 하셔야겠습니다. 인생 질문을 하실 분은 통일의병이 되겠다고 약속하시면 질문을 허락해드릴게요.”

다들 웃으며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세 명의 통일 관련 질문, 네 명은 인생 관련 질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통일문제를 인생의 관점에서 쉽게 이야기 해 주신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통일이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가 같이 합의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하셨는데, 남한의 경우에는 국민이 원한다면 통일 의지가 있는 정부를 선출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그런 선택도 없고 너무 견고해 보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북한 정권의 변화를 유도해 낼 수 있는지, 북한 붕괴의 가능성이 정말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질문자 개인적인 문제에 비추어 한 번 생각해봅시다. 질문자는 혹시 화를 많이 낸다거나, 술을 많이 먹는다거나, 현재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게 있습니까?”

“평소에 말이 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말이 없다고 이야기를 해준다고 그게 쉽게 고쳐지던가요?”

“아니요, 잘 안 고쳐집니다.”

“저는 자기 고민 이야기를 평소에 늘 듣습니다. 남편이 짜증이나 화를 많이 낸다, 아내가 잔소리가 많다는 등의 고민을 사람들이 이야기해요. 그때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준다고 습관이 쉽게 고쳐지던가요, 안 고쳐지던가요?”

“잘 안 고쳐져요.”

“네, 10년, 20년이 지나도 잘 안 고쳐집니다. 물론 고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오래 살아온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잘 안 고쳐져요. 그런 것처럼 우리 국민들이 볼 때 정치권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게 잘 바뀌던가요, 안 바뀌던가요?”

“잘 안 바뀌어요.”

“그러면 북한 정부의 경우에도 잘 바뀔까요, 바뀌기가 힘들까요?”

“잘 안 바뀔 것 같습니다.”

인생사의 원리

“네, 잘 안 바뀝니다. 그런데도 그걸 자꾸 바꾸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잘 모르거나 혹은 자기의 힘을 과신하고 교만하게 구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령, 이명박 정권 때도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했지만 결국 못했잖아요? 그 뒤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국정원장이 2014년까지 북한이 망하고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잖아요? 다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에 북한이 망할 거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 했는데도 아직 안 망했잖아요? 오히려 본인이 지금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죠. (청중 웃음)

이렇듯 다른 사람을 함부로 고치려는 것은 잘 안 될 뿐더러 어떤 측면에서는 다소 위험한 생각입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먹는다고 그걸 고치려고 하면 술을 먹지 못하게 하는 다양한 방법을 써야하는데,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어쩌다가 성공할지 몰라도 대다수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경험상 열에 아홉은 성공하기 힘들어요. 이런 경우에 어차피 남편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술을 먹으니까, 일단 남편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내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술을 먹는 남편하고라도 같이 사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지, 못 고칠 바에야 따로 사는 것이 유리한지를 따져보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따져본 다음, 같이 안 사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남편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안녕히계세요’하고 떠나면 됩니다. (청중 웃음) 이게 현명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 고치면 좋긴 하지만 설령 못 고친다고 하더라도 헤어지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면, 이제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어차피 남편은 술을 마실텐데, 하나는 술 그만 먹으라고 계속 시비하고 싸우면서 사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먹어라’하고 허락해주고 안 싸우면서 사는 방법이에요. 어차피 매일 마실 술이니까 그냥 ‘먹어라’라고 말하는 게 제일 쉬운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면 남편이 내 말을 잘 들어요, 안 들어요? 아주 잘 듣게 됩니다. (청중 웃음) 어차피 함께 살 거라면, 이렇게 내가 자세를 탁 바꿔서 괴롭지 않게 살아야죠.

다시 정리하면, 같이 안 살거라면 더 이상 시비할 것 없이 그냥 ‘안녕히 계세요’하고 떠나면 돼요. 그런데 만약 같이 살 거라면, 굳이 괴롭게 살지 말고 관점을 바꿔서 괴롭지 않게 살라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어떤 경우에도 술 먹지 말라고 싸울 필요가 없어요. 싸워서 술 먹지 않게 하는 건 성공 확률도 거의 없는 방법인데다 바뀌지 않으면 괴롭기까지 해요.

북한이란 술 마시는 남편

그런 이치로 북한을 바라봅시다. 북한 정부의 성격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쉽게 바뀌지 않아요. 인도적 지원도 해보고, 남북교류협력도 해보고, 윽박질러서 봉쇄정책도 펴보고, 심지어 공격한다고 협박도 해봤지만 지금까지 잘 안 되었잖아요. 사람이든 정부든 그 성격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도적 지원을 했는데 잘 안 되면 ‘거봐라, 퍼준다고 되냐’라고 비판하면서 강경책을 주장하고, 그 다음 정부가 들어서서 강경정책을 펴는데 잘 안되면 ‘거봐라, 협박한다고 되냐’라고 비판하며 교류와 협력을 주장합니다.

스님이 볼 때에는 협박을 해도 안 되고, 교류와 협력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상황을 받아들이면 우선 잘 안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강경정책을 펴야한다, 교류와 협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북한 정부가 바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진보와 보수 각자 나름대로의 주장을 펴는 거예요.

그런데 스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 이래도 안 바뀌고, 저래도 안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잘 바뀌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고, 아까 술 마시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구슬려서 협력하고 하나의 나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대립각을 세워 나갈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어요?”

“통일하는 게 좋겠습니다.”

가시 밤송이, 먹을까, 말까?

‘이렇게 하면 바뀔 것이다’라는 기대는 하지 말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근거한 선택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밤송이 안에 들어있는 밤은 아주 맛있어요. 그런데 밤을 꺼내려니까 밤송이를 둘러싸고 있는 가시들이 손을 자꾸 찔러요. 그럴 때 가시가 많다고 성질을 내는 게 도움이 되나요? 밤 대신 다른 먹을 게 있으면 굳이 밤송이를 까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먹을 게 없으면 가시에 조금 찔리더라도 밤을 까먹어야 하잖아요? 혹은 다른 먹을 게 있더라도 알밤이 나에게 아주 도움이 되거나 내 입맛에 아주 맛있다면, 가시에 찔리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밤송이에 가시가 없으면 다람쥐나 다른 동물이 벌써 먹어버렸을 거예요. 그런데 가시가 있으니까 다른 동물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고 그대로 놔둔 거예요. 그러니 가시는 내가 먹을 때도 불편함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시가 가지고 있는 그 불편함 때문에 나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기도 해요.

이럴 때 성질을 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안 먹으려면 그냥 안 먹으면 되고, 먹고자 한다면 되도록 가시에 덜 찔리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할 수는 있잖아요? 장갑을 끼든지 연장을 이용하든지 해서 밤송이를 까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밤송이에 가시가 없기를 자꾸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 남한이 변했으면 변했지 북한은 안 변할 거라고 봅니다. 지원을 조금 해준다고 변하는 것도 아니고, 협박한다고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북한이 협박한다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과도 대립을 불사하는 외교정책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도 계속 고개를 들고 싸우잖아요? 1976년에 일어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미군을 도끼로 해(害)한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물론 애니메이션이기는 하지만 만화로라도 혹은 영화로라도 미국에 미사일을 쏴서 미국을 불바다로 만드는 영화를 만드는 나라를 전세계에서 봤나요? 아직 중국, 러시아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청중 웃음)

북한은 우리의 뜻대로 쉽게 되지 않습니다. 우선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즉, 밤송이에 가시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시작하는 거예요. ‘가시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는 거예요. 저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 비유하자면 가시가 조금 있지만 그래도 까먹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구슬려서라도 통일을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미래와 세계의 평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가시에 자꾸 찔리니까 성질내면서 밤송이를 버리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청중 웃음) 그런데 스님은 가시에 조금 찔리더라도 가능한 적게 찔리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어떻게든 그 안에 있는 밤송이를 까먹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공하는 전략, 실패하는 전략

이렇게 선택을 하고 나면 연구를 해야죠. 우선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아주 강합니다. 우리와 만나도 큰소리치는 편이에요. 하지만 배는 고픈 실정이에요. 그렇다고 배고픈 실정이라고 무시하면 그들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요. 반면 자존심이 강하다고 먹을 것은 주지 않고 칭찬만 해도 배고픈 현실의 문제가 개선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이 상황을 두고 연구를 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의 정책을 보면 우선 북한과 테이블에 앉으면 강경책으로 뺨부터 때려요. 그러면 북한이 반발합니다. 전쟁이 일어날 듯 하면 달래듯이 테이블 밑으로 당근을 줍니다.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당근과 채찍’ 전략입니다. 성공할까요, 실패할까요?

네, 이런 정책은 실패합니다. 우선 맞으니 기분 나쁘고 자존심도 상하고, 결국 밑으로 당근을 주니까 미국과 한국을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히려 테이블 위에는 악수하고 정중히 대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테이블 밑에서는 정강이를 차든지 강경하게 나가야 해요. (청중 웃음) 남이 볼 때는 친구처럼 잘 대해주고, 아무도 안 볼 때 좀 패주어야 해요. 이렇게 하면 자존심도 세우고, 동시에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싶어서 상대방에 대해 겁도 냅니다. 이렇게 체면은 세워주되 겁을 내게끔 하는 정책을 펴나가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디어를 내도 현실에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바로 미국의 정치와 한국의 정치 상황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북한의 김정은과 만나서 악수를 하면 미국 내의 여론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미국 내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면 북한과의 만남에서 뺨을 때려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북한과의 문제를 좋게 풀어나가려고 하면 여론에서 ‘종북’이라고 몰아가서 그런 움직임을 보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똑똑한 국민이 똑똑한 정책을 만들어

그러니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누가 똑똑해야 할까요? 바로 국민이 똑똑해져야 합니다. 즉, 정부가 통일정책을 잘 펼치려면, 국민들 사이에 충분한 지지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북한과 테이블 위에서 악수를 할 때 그것이 굽실거리거나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어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북한과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 언론과 여론이 ‘남한이 끌려간다, 굽실거린다’며 비난하기 일쑤였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겉으로는 우호적으로 하되 테이블 밑에서는 강경하게 대하려고 하면, 국민들도 그것을 믿어주어야 해요.

지금까지 진보 정권은 테이블 위에서 우호적인 대우는 해주었지만 테이블 밑에서 정강이를 차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북한이 우습게 알고, 자꾸 뭘 더 얻으려고만 했습니다. 반대로 보수 정권은 테이블 위로 뺨을 때리고 밑으로 당근을 주는 정책을 펼쳐 왔습니다. 즉, 진보는 악수만 할 줄 알았지 강경하게 나가지 못했고, 보수는 뺨을 때리고 당근 주는 것만 알았지 존중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이 두 정책을 잘 펼쳐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하고, 그 위에 여론을 포용해가면서 북한에 대한 강경과 우호라는 두 정책을 잘 펼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탄탄한 국민들의 지지 기반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현재까지는 북한에 우호적이면 남한의 여론이 바로 나빠졌어요. 그렇다고 여론만 신경쓰면 북한과의 관계를 풀지 못합니다. 이제는 국민들의 지지 기반 위에 이 문제를 잘 풀어야 할 정부 형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국민들의 지지 기반이 없으면 정부가 그런 정책을 펼치고 싶어도 여론이 뒷받침해주지 않기 때문에 펼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의병이 필요한 거예요.

정부가 안정적으로 통일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똑똑해서 합니다. 미국이 강경하게 나올 때 정면으로 맞서면 오히려 우리가 다칩니다. 그러니 우선 겉으로는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어요. 하지만 그 중심은 똑바로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잘 잡을 수 있어요. 앞으로는 만만치 않게 보이되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부가 자주적이되 예의도 있는 확실한 주관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 기반은 국민의 지지입니다. 북한은 자주는 있지만 예의는 없는 편이에요. (청중 웃음) 반면 남한은 예의는 있어 보이는데 자주가 없는 편이에요. 그러니 때로 동네북이 되기도 해요. 실제로 경제력도 있고 나름 힘이 있는데도 주변국들이 한국을 존중하지 않아 제 값을 못하고 있어요.

누가, 어떤 정부가 할 것인가

이걸 불교 용어를 빌리면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隨處作主)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중심을 잡고 하는 거예요.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중심을 잡되 예의는 바르게 해야 합니다. 즉, 당당하되 겸손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분명히 하면 통일문제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낙담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중심이 분명하면 이제 ‘누가, 어떤 정부가 이것을 할 것인가’하는 부분만 남습니다. 그런 정부, 지도자만 있다면 능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닙니다. 북한의 독재가 심해져서 경제가 나빠진다는 것은 통일의 관점에서 보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북한에게 조금만 잘해도 인심을 많이 얻을 수 있잖아요? 반대로 오히려 북한 정부가 정치를 잘하면 통일이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어요. 관계는 좋게 풀 수 있겠지만 통일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더 어려워져요. 그러니 일부러 못하기를 바랄 필요는 없지만, 알아서 못할 때에는 통일에 결코 불리한 게 아니에요.

북한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서도 아까 잠시 이야기를 했었는데, 고집스럽고 자존심 강한 것도 결코 나쁜 게 아니에요. 만약 통일되는 과정이나 통일된 다음에 우리가 중국과 싸워야 될 일이 있으면 남한군이 잘 싸울까요 북한군이 잘 싸울까요? 북한군이 잘 싸우겠죠. (청중 웃음) 일본과 싸운다면 누가 잘 싸울까요? 북한이겠지요. 그렇게 보면 북한을 꼭 고쳐야만 되는 건 아니에요. 지금 있는 그대로 두고도 얼마든지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략, 지혜이자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꼭 술을 안 마셔야 되고, 꼭 일찍 들어와야 되는 게 아니에요. 돈도 잘 벌고 제 할 일을 잘하면 술을 조금 먹도록 놔둬도 됩니다. (청중 웃음) 행여 그러다가 일찍 죽으면 시집 한 번 더 가고 얼마나 좋아요? (청중 웃음) 그걸 왜 걱정해요. 술 먹고도 안 죽으면 안 죽어서 좋고 술 먹어서 안 죽으니 굳이 먹지 말라고 말할 필요도 없어요. 반대로 술 먹어서 죽으면 이제 술 안 먹는 남자한테 시집 한 번 더 가면 되니까 그것도 문제될 게 없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자꾸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고 하는 것은 관점을 잘 못 잡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개인적인 문제든, 통일 문제든 희망이 있어요, 없어요?”

“희망이 있어요.” (청중)

“문제의 관건은 그런 대한민국을 우리가 만드는데 있습니다. 즉, 우리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건설해 나가는가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아닙니다. 지혜로운 전략·전술을 쓸 대한민국 정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정부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의 강대국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부를 어떻게 구성하고, 우리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몫입니다. 이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우리의 권리입니다. 단지 지금까지 우리가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통일 지향적 정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를 잘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부가 바뀌면 개성공단부터 여는 이야기도 하는데, 정부가 바뀌자마자 개성공단을 막 열고 그러면 안 됩니다. 개성공단이 열려 있을 때는 함부로 닫으면 안 되지만, 이미 닫은 상황에서는 또 함부로 여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사드 배치가 결정되지 않았으면 배치에 문제가 많으니 반대하는 것이 맞지만, 이미 결정이 난 상황에서는 쉽게 취소하면 안 됩니다. 지금 취소하면 미국으로부터 보복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받아요. 그런 것을 보면 우선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되 주어진 상황에서 또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중국의 보복을 생각하니 사드 배치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판단하고 바로 번복을 하면, 미국으로부터의 보복을 받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 커집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지금 중국의 보복으로 힘들어하는 것처럼, 미국의 보복으로 힘들게 됩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물론 국민이 사드 배치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은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분명히 밝혀주어야 해요. 그런 국민의 뜻을 손에 쥐고, 정부는 국민 핑계를 대면서 적절히 눈치 봐가면서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지혜가 있는 정부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번에 이런 정부를 바로 출범시키면 좋겠지만, 만약 여의치 않다면 차선의 정부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설령 차선이 안 되더라도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혹시 남·북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할 것 같은 세력이 있으면, 관계를 아주 잘 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파탄 내지는 않을 정부를 꾸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기회를 또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선거가 중요합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에는 총을 들고 싸워야 했고, 민주화운동을 할 때는 돌멩이를 들고 싸워야 했는데, 올바른 정부를 세우고 통일운동을 하는 것은 총을 들지 않아도 되고 돌멩이를 들지 않아도 됩니다. 누가 올바른 정책을 펼칠지 잘 살펴보고, 선거를 통해 정부 선택만 잘하면 됩니다.

목표는 우리 시민이 직접 통일 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민이 북한에 직접 가서 북한과 교섭한다고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통일은 정부가 하고, 우리의 몫은 통일을 지혜롭게 추진해 낼 수 있는 정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어때요, 손으로 선택만 잘하면 되는 것이니 쉽지요? 할 수 있습니까?
대답이 신통치 않네요. (청중 웃음) 이번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실 거예요, 빠지실 거예요?”

“참여할 겁니다!” (청중)

“네, 참여해서 최선이 있으면 당연히 선택하고,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하고, 차선이 없으면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손해를 보더라도 덜 손해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돈을 많이 썼다고 해도, 앞으로 더 잃을 게 보이면 그 시점에서 딱 손을 끊어야 합니다. 어차피 이익을 못보고 손해를 봐야하는 상황이라면, 되도록 적게 보는 쪽으로 선택하는 것도 차악을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좋은 선택이 없고 나쁜 선택들만 눈앞에 보이면 대개 선택을 포기합니다. 즉,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난 연말의 촛불집회 등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도 잘 느낄 수 있었지요? 이제 우리국민들이 이런 지혜도 갖추고, 이 기회를 잘 살린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강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무겁고 딱딱한 통일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쉬운 스님의 설득력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계속 굵은 빗발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든 말든, 스님과 수행팀 일행은 서울로 갑니다. 왜냐하면 내일 아침 일찍, 해야 할 일정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들도 내일 다시 ‘스님의 하루’에서 만나겠지요?
왜냐하면 ‘스님의 하루’는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함께 만드는 사람들
임혜진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심규선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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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정부의 성격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쉽게 바뀌지 않아요 ] [ 오히려 테이블 위에는 악수하고 정중히 대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테이블 밑에서는 정강이를 차든지 강경하게 나가야 해요. ] [ 우선 이래도 안 바뀌고, 저래도 안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 협박을 해도 안 되고, 교류와 협력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합니다 ] [ 이제는 이 두 정책을 잘 펼쳐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하고, 그 위에 여론을 포용해가면서 북한에 대한 강경과 우호라는 두 정책을 잘 펼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탄탄한 국민들의 지지 기반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 이렇게 하면 바뀔 것이다’라는 기대는 하지 말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근거한 선택을 하는 거예요.]

2017-02-28 00:35:48

수원의 별

통일이 되서 차 운전하고, 만주와 시베리아 여행갈 날을 기다립니다. 시민들이 100% 투표에 참여하면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눈치를 안볼수 없을겁니다. 투표 꼭 하겠습니다.

2017-02-26 17:25:13

김봉석

\"진보는 악수만 할 줄 알았지 강경하게 나가지 못했고, 보수는 뺨을 때리고 당근 주는 것만 알았지 존중하지 못했다\"라는 말씀처럼 중도, 중심를 지키면서 북한에게 현명하게 대처할 정부를 뽑는게 중요한거 같습니다^^ 스님 감사하고 건강하세요~ 스님의 하루 만드시는 분들도요^^

2017-02-24 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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