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23 해외 즉문즉설 강연(27) 애틀란타
결혼생활 20년째, 대화가 점점 줄고 교감이 없어져요

오늘은 애틀란타에서 영어통역강연과 한국어강연 두 번의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새벽 3시 30분 집주인인 유정희 님께서 마련한 죽으로 아침요기를 하고 그 동안 숙소 및 식사제공에 감사인사를 하고 4시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라과디아 공항은 요즘 한참 공사중이라 터미널 찾아가기도 복잡하다고 합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일주일간 운전봉사를 한 김명호님과 배웅나온 해외지부 사무국장 이정인님께도 그 동안 수고에 감사 인사를 하고 수속대로 들어왔습니다.

새벽 6시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25분의 비행 후에 오전 8시 25분 애틀란타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작년에 숙소를 제공한 성락거사님과 영어통역강연을 준비한 김은재보살님이 제공한 차편의 기사인 James 님이 스님을 마중나와 있었습니다.두 분께 스님은 마중나와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성락거사님편으로는 배너 등 한국어강연장에 필요한 공용물품을 전달하고 바로 김은재님댁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영어 강연은 애틀랜타에 사시는 김은재님께서 준비해주셨습니다. 댁에 도착하니 김은재님이 반갑게 스님과 일행을 맞으며 남편과 4시간거리에서 스님을 뵙기 위해서 온 조카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현관에는 스님 영어통역 강연 포스터와 영문 깨달음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죽과 떡 등을 준비해주셔서 점심식사 전 야외에서 잠깐 남편과 스님은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김은재님과 남편은 스님의 법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한국어가 어려운 분들에게 법을 전할 수 있도록 올해 초부터 국제국에 후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통역을 맡아줄 제이슨 림이 도착하자 남편분이 유튜브 영어통역 법문 영상에서 제이슨 님을 많이 보았다며 스님의 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애틀랜타가 미국 남부 지역이라 기독교세가 강하고 불교 승려의 강연을 들으러 오는 것이 어색했는지, 오겠다고 하신 분들 중 많이들 못 오실 것 같아 김은재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스님은 열 명이 와도 괜찮다고 하시며 오늘 강연장소인 Chastain Horse Park 로 향했습니다. 큰 유리창으로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결혼식 등 행사장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오늘은 라운드 테이블 형식으로 앉아 친밀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테이블을 둥글게 모아 서로 얼굴을 보면서 대화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특정한 종교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요,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문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죽음에 대해서든 여러 의문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또 고뇌가 있잖아요. 즉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죠. 어떤 이야기도 괜찮아요. 주제에 어떤 제한이 없이 그냥 삶에 대한 얘기면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얘기를 꺼내면 같이 대화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니가 뭘 아는데 아무 얘기나 꺼내도 되나’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일단 얘기를 한 번 꺼내보시죠. 제가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아무 얘기나 해도 좋습니다. 시작해보시죠.”

스님이 장을 열어주자 젊은 남자분을 시작으로 몇몇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작은 그룹이라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분이 이어서 질문도 하시고, 또 질문자가 스님 말씀을 듣고 추가 질문도 하는 등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번 영어통역 강연 시리즈의 제목 “선사와의 격의없는 대화: 삶, 사랑, 성공, 행복, 의미에 대하여 Casual Conversation with a Zen Master about Life, Love, Success, Happiness, and Meaning” 그대로였습니다.

친구나 가족 등 인간관계에서 어디까지 참아야하는지, 내가 화가 나지 않더라도 도를 넘는 행동에 대해서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지, 최근 명상에 대해 뇌과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스트레스나 불안증 등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명상을 하기도 하는데 여러 종류의 명상들이 어떻게 다른지, 스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단식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는데 단식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렇게 오랜 기간 단식을 하시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이 안 좋아도 ‘오늘 기분좋게 살거야’ 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이러이러한 느낌이나 감정을 갖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죽으면 의식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스님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위파사나 명상의 세 조건 중에 ‘의도가 없는 상태’를 말씀하셨는데 의도 없이 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렇게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중 다음의 두 질문을 소개드립니다.

“제가 질문드린 것은 감정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느낄지 선택할 수 있나요? 화가 나는데 화가 나지 않도록 선택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 것인지요?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하는데 화가 안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감정은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이라는 것은 의식에서 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무의식에서 일어납니다. 의식이 무의식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긴급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습니다. ‘오늘 화를 안내겠다’ 하면 조금은 됩니다. 그러니까 바깥으로 내는 것은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됩니다. 그러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컨트롤이 안됩니다. 일어나는 것은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일어나는데 이것을 억눌러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니까 내면에서 압력이 발생하고 이것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압력이 커지면 결국 터지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말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결심을 하면 삼일을 못넘긴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대로 그것을 각오하고 결심해서 억눌러서 참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내가 화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인정하고 알아차리라는 거예요. 자기 상태를 잘 알아차리는 것이 굉장한 공부에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하는게 ‘내 이 감정상태에 대해서 늘 알아차리고 있어라’ 하는 것이니까 성인의 경지라고도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몰라요. 우리는 남에 대해서는 잘 알잖아요. ‘저 사람 성질 더럽다’ 이러잖아요. 본인에 대해서는 몰라요. 이게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남은 나에 대해서 아는데 나는 나를 모른다는 거예요. 근데 남이 아는 만큼 내가 나를 안다고 하면, ‘너 화났다’ 그러면 ‘그래 나 화났지’ 하고 알고 ‘너 고집 부린다’ 하면 ‘어 내가 고집 부리고 있네’ 이러면 현명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조금 더 공부를 하면 화가 일어날 때 자기는 알아차리지만 바깥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너는 어떻게 화도 안내나’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그러나 나는 내가 화가 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모르는 걸 나는 나에 대해서 알고 있잖아요. 그건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나도 화가 나지’ 이렇게 말하죠. 그러면 사람들이 겸손하다고 해요. 그런데 겸손한 게 아니라 사실대로 말한 것 뿐이에요. 남이 모르는 나를 내가 알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적어도 그렇게 나아가야 된다는거죠.”

이어 다른 분이 죽음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죽은 뒤에도 의식은 계속됩니까? 스님께선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활동의 중단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낙엽이 떨어진다는 것은 신진대사 활동이 중단된 겁니다. 죽음은 육체적인 신진대사가 중단된 것이고 정신적으로는 정신작용이 멈춘겁니다.”

“물리학적으로보면 빅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리학적으로는 에너지가 그렇게 계속됩니다. 정신작용은 계속되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전기가 있으면 컴퓨터가 작동을 하는데 전기가 없으면 그게 어디로 갑니까? 다만 작동이 중단될 뿐입니다.

우리가 낮보다는 밤에 길을 갈 때 약간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까? 늘 만나는 사람보다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약간 긴장을 느낍니다. 늘 가던 곳이나 하던 일을 할 때 보다는 낯선 곳이나 새로운 일을 할 때 약간 긴장이 일어나잖아요. 두려움이라는 건 왜 일어날까요? 낯선 곳? 어두운 곳? 새로운 일? 때문이 아니에요. 무지때문에 생기는 거에요. 어두우면 잘 모르잖아요. 사물에 대한 이해가 안되면 심리가 불안해 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게 뭘까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조금도 알 수 없는 것이 죽음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거에요. 죽음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거에요.

그래서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첫째 가장 좋은 방법은 안 죽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길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나온 것이 죽지만은 죽은 뒤에 더 좋은데 간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면 이게 두려움이 조금 줄어들죠. 그래서 천당이니 극락이니 용궁이니 이상세계가 나온거에요. 내생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특정한 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냐?’ 이렇게 접근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인도사람들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발명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거에요. 그래서 인도사람들은 사람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덜 웁니다.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아침에 죽으면 바로 화장을 해버립니다. 관이 없습니다. 빨리 태워버려야 빨리 환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들의 무지때문에 일어나는 심리현상이 또 하나 있습니다. 신비주의입니다. ‘와, 신기하다’ 이게 무지 때문에 일어납니다. 제가 여기서 ‘옴마니반메훔’ 하다가 공중에 1미터 정도 뜬다고 합시다. 다들 눈이 똥그래질거에요. 근데 비행기는 300명을 태워서 여기서 한국까지 가도 아무도 신기하다고 안합니다. (웃음) 왜 그럴까요. 원인을 알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공중부양하는 것은 왜 신기할까요.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신비하다 할 때는 모를 때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비주의와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지때문에 생기는거에요. 그래서 붓다는 무지를 깨뜨리게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니까 죽어서 어디가느냐 이런 것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명작용의 중지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허무합니까? 왜 에너지가 계속돼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계속 된다고 뭐가 좋습니까. (웃음)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을 때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암으로 일년밖에 못산다고 진단을 받으면 그 때부터 괴롭게 삽니다. 일 년밖에 못살기 때문에 괴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 년밖에 못산다는 생각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거에요. 그런 분은 일년을 괴롭게 살다가 죽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일년 안에 죽을 수 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안괴롭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지금 죽는다는 생각을 안하고 있잖아요.
죽음이라는 것을 움켜쥐게 되면 결국은 괴롭게 됩니다. 그건 그냥 낙엽이 떨어지듯이 자연현상이에요. 우리가 일부러 죽을 것도 없고 안죽을려고 애쓸 것도 없습니다. 신비주의를 없애서 죄송합니다.” (웃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스님께서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란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오늘 한 이야기는 종교와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아무래도 모습이 스님이다보니 기독교인들이 많이 안 오신 것 같다”고 하시며 "다음 번에는 다른 옷을 입고 와야 되나?" 하셔서 다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과 기념으로 다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소그룹이다보니 이런 좋은 점도 있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해주신 김은재님이 생각보다 참석자가 적어 많이 미안해하여 스님께서는 괜찮다고 말씀해주고 휴식공간과 식사, 차량, 강연경비 등을 후원해주신 두 부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참석한 분들과 이야기해보니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많은 도움이 되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참석하길 주저한 분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쉬워했습니다. 국내에서, 그리고 해외에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스님을 모르는 분이 적을 정도로 스님이 잘 알려져 있고 호응도 높지만 아직까지 미국 현지인 전법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멉니다. 욕심내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강연을 위해 워싱턴 디씨와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애틀랜타까지 온 제이슨 림, 김지현, 조혜진님과 워싱턴 디씨에서 다시 만나자고 작별인사를 한 뒤 한국어 강연이 열리는 애틀랜타 한인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한인회관에 도착한 후 스님은 강연 후 바로 앨라바마주 몽고메리로 떠나야해서 먼저 자원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자 일찍 왔다면서 봉사자들께 감사인사를 하고 수고에 격려를 했습니다. 올해 봉사자는 예년과는 좀 달리 젊은 분과 새로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미리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사진촬영을 하고 보니 밖에서 주차안내를 하는 분들이 빠졌다고 해서 스님은 일부러 밖으로 나가 이 분들과 따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을 총괄한 이현주님과 이상우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애틀란타는 법회담당자가 타주로 이사를 가게 되자 이현주님이 수행법회 담당을 하고, 이상우님이 집을 내주어 가정에서 불교대학을 하여 모임이 지속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이번에도 강연총괄을 맡아 행사준비에서부터 진행까지 잘 해주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애틀란타 열린법회를 잘 이끌어 가는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강연준비를 하는 동안 스님은 대기실에서 잠시 휴식하였습니다. 대기실에서 휴식하는 동안 플로리다 잭슨빌정토법회를 담당했던 김성순님과 최영태님 부부가 멀리 6시간 운전을 하고 스님을 뵈러 와서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세계100강후 3년만의 만남을 얘기하면서 이번 허리케인의 피해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5시 강연이 시작되자 스님은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올랐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약 200여명이 참석하였고, 봉사자는 20명이었습니다.

“어제 뉴저지에서 강연을 하고 오늘 새벽비행기를타고 애틀란타에 왔습니다. 저는 여기 오기전에 영어통역강연을 한 탕 더 뛰었어요. (웃음) 여기 애틀란타에 계시는 외국인들이 스님이 애틀란타에 오시는 김에 통역을 해서 외국사람을 위해서 강연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여 외국인 통역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들도 마음의 작용에 대해 관심이 많아 진지한 대화를 했습니다. 사람은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도 다 스트레스가 있어요. 한국사람들만 자식문제로 스트레스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들도 자식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날 때 언제 얼마만큼 참아야 하냐 이런 질문도 있고 해서 재미있는 대화를 했습니다. 오늘 준비한 분들이 기독교인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남부지방이 보수적이라서 불교승려라고 꺼려서 좀 적게 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에는 양복입고 가발쓰고 오겠다고 했더니 한바탕 웃었습니다.

물론 오늘 강사가 스님이긴 하지만 종교로서의 불교를 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를 넘어서서 우리 인생얘기를 하러 왔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고뇌에 대해서, 그리고 살다보면 일어나는 각종 의문에 대해, 궁금함에 대해서 이런 것을 가지고 대화를 해보고자 합니다. 고뇌가 해소되고 궁금함이 풀리는 것 이런 것을 즉문즉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옛날 얘기, 미래 얘기가 아닌 지금 얘기, 저기 얘기가 아니고 여기 얘기,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얘기를 해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지금 여기 내가 깨어있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함께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후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질문했습니다.

미국생활 10년인데 도피를 온 것 같고 일이나 수련등 모두 다 하기 싫은데 까르마(업식)을 이길 수 없을지 묻는분, 국제결혼해서 20년 되었는데 배우자와 계속 사이가 멀어지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결혼한지 13년째로 12살 아들이 있는데 남편이 투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습관을 바꿀 의지가 없어 괴롭고 화가 난다는 분, 한국에서 체대에 다니다가 십여년 전에 미국으로 왔는데 조직생활을 하다 받게된 마음의 상처와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마음의 짐 때문에 질문한다는 분, 기독교에서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수 없는 논리에 화가 난다는 분, 명상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멀리 해외에 살고 있지만 한반도의 남북통일에 일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 분등 7명이 스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희 부부는 20년 째 국제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꿈들을 안고 여러 가지 행복을 상상하며 지냈는데, 가면 갈수록 이런 첫마음이 없어지고, 국제결혼의 힘든 점이 많이 생깁니다. 저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특히 언어적인 어려움이 굉장히 큽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대화도 많이 줄어들고, 주위에 서로 헤어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니까 걱정이 됩니다. 헤어지는 상황까지는 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한 지 20년이 되니 힘들다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질문자가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에 힘든 건 아니에요. 질문자가 국제결혼을 했으니까 지금 ‘국제결혼 때문이다’ 이렇게 핑계를 대는 거지요. 한국 에서 한국 사람끼리 결혼해도 20년쯤 되면 굉장히 어려워요.(모두 박장대소)

지금 질문자가 힘든 건 국제결혼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건 핑계에 불과해요. 예를 들면 한국 안에서도 경상도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또 무슨 핑계가 있고,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면 지역이 안 맞아서 그렇다고 또 핑계를 대고, 부부가 나이 차이가 좀 나면 나이차 때문이라고 또 핑계를 댑니다. 이렇게 이유를 붙여서 그렇지, 원래 부부가 오래 살면 갈등이 생기게 되어있는 거예요. 한 20년 살다보면 거기엔 아기자기한 재미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모두 웃음)

그런 걸 자꾸 꿈꾸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즘 미국에서 미국사람들끼리 결혼한 커플들 중에도 20년 이상 산 사람이 절반이나 될까요? 절반도 안 될 겁니다. 질문자가 국제결혼해서 20년 이상 살았다는 건 굉장히 잘 산 거예요.” (모두 웃음)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러니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아, 그래도 마누라와 20년이나 살았다. 마누라한테 고맙다.’ 이렇게 하시고, 내년부터는 ‘21년이나 살아줘서 고맙다.’ 이렇게 하세요. ‘언제까지 사나?’ 이런 생각하지 마시고요. 항상 ‘그래도 이 정도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국제결혼이든 어떤 결혼이든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나와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면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항상 고맙다고 생각하면요. 지금은 연애할 때처럼 그렇게는 안돼요. 질문자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린애 같은 생각이네요. 원래 오래 살면 서로 할 말이 없어져요.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오래 산 부부는 하루에 세 마디밖에 할 말이 없다고 하잖아요. ‘밥 먹었나?’, ‘아이는?’, ‘자자!’ 이렇게요. (모두 웃음)

결혼 생활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면 결혼생활이 불행하게 됩니다. 너무 많은 기대나 요구를 하지 마세요. 지금 결혼생활이 힘들다는 건 질문자가 상대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결혼을 해서 더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고, 혼자 살 때보다 더 속박을 받게 되는 거예요. 지금 세계적으로 두 가지 현상이 유행 중입니다. 하나는 프랑스에서, 하나는 일본에서 일어난 현상인데요, 먼저 프랑스에서는, 옛날 남성중심 사회에서 결혼 후에 얼마 안 살고 결혼을 파기하면 여성들이 피해를 많이 입으니까 여성보호를 위해서 결혼하면 책임을 지도록 법적으로 강화를 시켰단 말이에요. 여성이 굉장히 차별을 받는 시대에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을 함부로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남녀가 평등해서 여자도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잖아요. 가정생활에 대해 법적으로 너무 많이 묶어놓으니까 같이 살다가 둘이 뜻이 안 맞아서 이혼하려면 재산분할, 양육권, 양육비 지급 등 너무 절차가 복잡한 거예요.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취지로 법적인 결혼, 즉 혼인신고를 안 하고 그냥 둘이 사는 일이 많아요. 이것을 ‘동거’, 또는 ‘계약결혼’이라고 합니다. 법에 의해서 보장받는 걸 거부하고 당사자들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사는 ‘사실혼’인 거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살다, 그만 살다, 살다, 그만 살다를 반복할 거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결혼해서 사는 기간이 법적으로 보장된 결혼을 해서 사는 기간보다 길었으면 길었지, 짧지가 않습니다. 법적으로는 결혼을 안 했으니까 언제든지 당사자들이 헤어지고 싶으면 합의해서 그냥 헤어지면 되지, 법원에 가고 그런 일은 없는 거예요.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결혼해서 자식도 있는 사람이 대통령까지 됐잖아요. 그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됐다는 건 그런 형태의 결혼이 그 사회에서는 보편적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프랑스는 전체 커플의 절반이 이런 계약결혼이라고 해요. 사회가 바뀌면서 혼인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경우입니다.

또 일본에서는 한때 결혼한 지 30년 내지 40년 되어 나이가 예순이 넘고 직장에서 은퇴를 한 남자가 이혼을 당하는 일이 많았어요. 이런 이혼을 소위 ‘황혼 이혼’이라고 했지요. 가정주부인 여자가 남편이 은퇴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남편이 퇴직금 받는 날 바로 이혼소송을 청구해서 남편이 받는 퇴직금의 딱 절반을 재산분할로 가져가버리는 거예요. 한 때는 이 황혼 이혼이 굉장히 유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그런 황혼 이혼을 넘어서서, 이혼을 하게 되면 재산분할과 상속 등의 문제가 복잡하니까 65세가 넘어 퇴직을 하게 되면, 지금은 또 여성들도 직업을 갖고 있는 시대가 되다 보니까 ‘서로 속박하지 말자’고 해서 법적인 이혼만 안 하는 거예요. 결혼생활이 법에 의해서 너무 묶여있다 보니까 절차를 밟으려면 복잡하잖아요. 그래서 법적인 이혼은 안 하고 사실상 이혼을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별거 상태를 유지하는 ‘별거 중’인 거죠. 의견이 안 맞아서, 자꾸 싸워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살자’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요즘에는 아내들한테 남편들이 ‘은퇴 후에 시골로 가서 전원생활하면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같이 가자’고 하면 아내는 ‘그러고 싶으면 너나 그래라’ 하고 안 가려고 해요. 시골에 가면 일이 많아서 고생할 게 뻔하고, 문화생활도 즐길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옛날에는 남자들한테 억지로 끌려갔단 말이죠. 그래서 불만이 많았어요. 그렇게 둘이 안 맞으니까 싸우게 된단 말이에요. 이 때 최선의 방법은 각자 간섭을 안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인간에게는 회귀본능이 발현됩니다. 그래서 사실 국제결혼 해서 서로 나이가 들면 좀 어렵습니다. 이혼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나이가 들면 한국 사람은 더 한국적으로 돌아가고, 외국인은 외국인대로 그래요. 예를 들어 젊었을 때는 된장국을 안 먹어도 됐는데 나이가 들면 계속 된장 찾고, 김치 찾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젊었을 때보다 고향도 더 그리워하고요. 그런데 상대한테는 그게 안 맞을 뿐만 아니라 상대는 상대대로 자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돼요. 인간의 성질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년에 가서 충돌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젊을 때는 언어만 소통이 되면 함께 살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정서적으로 교감을 자꾸 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은 이 정서적 교감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국제결혼을 할 때부터 알아야 돼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상대에게 간섭을 안 해야 돼요. 상대가 제 나라 음식을 먹든, 제 나라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든 간섭하지 말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풀어줘야 돼요. 그래야 좀 자유로워집니다. 안 그러면 속박이 돼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것을 이혼이 아니라 ‘졸혼’이라고 그럽니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입니다.(모두 웃음) 현재 이런 사회적 현상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사회는 변화하는데 과거의 시스템이 현실과 안 맞아서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그러니까 법이 좀 바뀌어야겠지요? 사회제도와 통념도 좀 바뀌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바뀌고 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의 현실적 요구에 의해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상대를 속박하지 말고 조금 더 열어주고, 자유롭게 해 줘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나는 자유롭고 싶고, 상대는 속박하고 싶잖아요. 나는 속박을 받더라도 상대에게 열어주면 나도 자유로워지는 원리를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자꾸 열어주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첫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살 때는 좀 속박을 해도 서로 견디는데, 재혼을 했는데도 초혼 때처럼 하면 대부분 깨집니다. 재혼은 거의 동거생활 정도라고 생각하고, 상대에게 간섭을 안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에게도 이미 자녀와 전 부인이 있고, 또 나에게도 이미 자녀와 전 남편이 있기 때문에 이전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화하고 만나는 걸 자유롭게 해 줘야 하는데, 그걸 간섭하기 시작하면 ‘에잇! 못 살겠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재혼할 때는 공통분모를 최소화하고, 개인적 삶의 자유를 더 많이 보장해 주고 살면 재혼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재혼해서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벌써 처한 조건이 많이 달라서 간섭하면 유지될 수가 없어요.

결혼생활에 대해서 너무 기대가 크기 때문에 오히려 이혼하게 되는 것이니까 질문자도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를 좀 낮추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20살이 넘었어요?”

“아니요, 아직요.”

“아이가 20살이 넘을 때까지 조금 더 살아보고, 20살이 넘으면 서로 삶을 자유롭게 해 주세요. 그때는 아이들도 다 컸을 테니까 너무 아이들한테 신경 쓰지 말고, 서로 좀 열어주고 살면 결혼생활이 재미있지요. 혼자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같이 사는 게 낫지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만나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든 어쨌든 함께 사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것이 사람한테는 굉장한 활력을 주는 거예요. 낯선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연애하려면 피곤할 것이고요. 그래도 아는 사람하고 사는 게 좋지요. 아내가 질문자의 많은 요구를 다 맞춰주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좀 열어놓으면 그만한 사람이 없어요. 안 맞다 하더라도 20년을 같이 살면서 서로 아는 게 많아졌잖아요. 이런 장점이 있음을 아시면 좋겠어요. 물론 정신질환이 있거나 진짜 성격이 안 맞거나 해서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이상 서로 기대를 좀 낮추기만 해도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혼하고 재혼하면 가족들 촌수도 복잡해집니다.(모두 웃음) 서로 아이가 있는 상태라면 그 아이들한테는 친가와 외가가 있었을 텐데, 거기에 또 새로운 친가나 외가가 생기게 되면 관계가 굉장히 복잡해져요. 이미 이혼을 해 버렸다면 어쩔 수 없이 재혼을 해도 되는데, 질문자는 아직 이혼을 안 한 상태이니까 어지간하면 좀 열어주고 그냥 사시는 게 좋아요. 저처럼 평생 혼자 사는 사람도 있는데 결혼을 한 번 해 봤으면 됐지 무슨 미련이 많아서 뭘 더 어떻게 해 보려고 그래요? 그냥 좀 열어주고 같이 사시면 훨씬 삶의 활력이 생깁니다.”

7명과 대화를 하고 나니 벌써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은 무대옆에 마련된 곳에서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길게 줄어서서 스님께 사인을 받고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기다리는 중 오늘 질문한 한 분께 소감을 물어보니 머리가 깨끗하게 맑아지고 스님께 질문을 잘 한 것 같아 참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참석자 한 분께도 물으니 이렇게 매년 찾아 주고, 애틀란타에서 1시간 남쪽에서 왔는데 스님 말씀 내용이 너무 좋아 유튜브로 듣고 있지만 가족들과 함께 내일 몽고메리에도 갈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와서 스님법문을 듣고 가족들이 다함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것도 큰 기쁨입니다.

사인회가 끝나고 묘덕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바로 나누기를 진행하였습니다. 나누기가 진행되는 동안 스님과 일행은 노인회관에 차려진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애틀란타 정토회원들이 스님께서 강연 후 간편하게 식사하고 바로 앨라바마로 이동할 수 있도록 노인회관을 사용할 수 있게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애틀란타 한인회관은 미주지역에서 드물게 큰 공간에 한인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인회관에는 노인분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한국노인분들께 일주일에 3일 무료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도 들으시고 노인회장님께 좋은 일 하신다고 금일봉으로 후원금을 보시하였습니다.

묘덕법사님과의 나누기가 끝난 후 스님은 봉사자들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내년에 뵙자고 하면서 준비된 차량을 타고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앨라바마 몽고메리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음지역으로 이동하는 시간이면 늘 강연을 준비하고 지역에서 정토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는 봉사자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는 법을 전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라는 명심문이 오늘은 더욱 더 마음에 새겨집니다.

거의 11시가 다 되어서 앨라배마 몽고메리에 있는 앨라배마 법당 부총무 용수진님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용수진님과 이상섭님, 홍현주님, 김미경님이 반갑게 인사하고 스님과 일행을 맞아주었습니다. 2층에 마련된 앨라바마 법당에 도착하여 스님은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앨라매바 정토행자들도 멀리 몽고메리까지 찾아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 법당은 용수진님과 이상섭님이 본인들 가정집의 이층에 직접 만들었습니다. 앨라바마법당은 집이 법당이 되도록 한 그런 사례가 되는 경우입니다. 깔끔하고 소담스럽게 잘 꾸며진 법당입니다. 스님은 찬찬히 둘러보면서 나름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기도 하였습니다.

-1시간의 시차가 있어 이 곳 시간으로 10시라고 하니 다들 시간을 벌은 것 같아 좋아했습니다. 내일은 5시에 함께 법당에서 예불과 기도를 하기로 하고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다함께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몽고메리는 스님께서 처음 찾은 곳입니다. 현대자동차가 앨라배마에 공장을 지으면서 많은 한인들이 이주하게 되어 현재 약 천 명이상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면 자생적으로 정토모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가 행복한 수행자임을 다시 느끼게 하는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앨라바마 강연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영어 통역 녹취는 <김지현>님이 했습니다.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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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7-10-18 23:59:48

구름

괴로운 것은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몽고메리법당은 아름다운 곳이군요

2017-10-02 11:00:51

정지나

서로가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상대를 먼저 자유롭게 하면 상대도 그렇게 나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2017-09-28 08: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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