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5.5 북미동부 순회강연(7) 버지니아(Virginia)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까지 가져오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2024년 법륜 스님의 북미동부 순회강연 중 일곱 번째 강연이 워싱턴 D.C.와 인접한 버지니아(Virginia) 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5시에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에서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워싱턴 D.C.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팅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식사를 한 후 실내에서 업무를 보다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10시 30분에 제이슨 님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제이슨(Jason Lim) 님은 2006년 1월에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을 다니던 대학생 시절부터 스님의 영어 통역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졸업 후 워싱턴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거의 전적으로 스님 일정에 맞춰 휴가를 받아 가며 19년째 통역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스님의 미국 방문 일정에서도 통역을 맡아 주었습니다.

제이슨 님의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점심 식사를 함께 먹고 나서 스님은 제이슨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후에는 미팅을 하기 위해 애넌데일에 있는 한인센터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 미국의 안보 전문가인 올린 웨딩턴(Olin Wethington) 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미팅 장소에 도착하자 올린 웨딩턴 님과 카트리나 델가도 님이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올린 웨딩턴 님은 재무부 출신으로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의 이사이며, 미국 정부에서 중국 특사, 재무장관 고문,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보, 백악관 경제정책위원회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냈습니다.

“I really love Korea. I have visited Korea about 40 times and always stopped by the DMZ. I am very interested in solving the problem of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저는 한국을 정말 사랑합니다. 40번 정도 한국을 방문했는데 비무장 지대(DMZ)를 꼭 들렸습니다. 한반도의 분단 문제 해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올린 님이 스님에게 고견을 구했습니다.

전쟁의 위험이 높은 한반도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I think the most dangerous place in the world is the Korean Peninsula. We need a peaceful solution. That’s why I want to hear your opinion on this issue. Right now, the war between Ukraine and Russia may be a bit more of a priority. However, when looking at Global Risk Index, I think the risk of war on the Korean Peninsula is a very serious problem.”

(저는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이 높은 곳이 한반도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적인 해결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당신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조금 더 우선일 수도 있겠지만, 지구 전체의 위험 지수로 봤을 때는 한반도가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굉장히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올린 웨딩턴 님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에 앞서 먼저 스님이 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옆에 절이 있어서 그곳 스님의 권유로 이렇게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유학을 갈 기회가 없어서 영어를 못합니다. 이렇게 통역을 통해서 당신과 대화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I’m sorry we don’t speak Korean. Don’t worry.”

(저도 한국어를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불교를 종교보다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속에서 사람들이 좀 더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북한 문제에 관여하게 된 이유는 북한에서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그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고향은 한국의 남쪽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경험하거나 전쟁의 피해를 겪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역사기행을 갔다가 북한 난민을 만나서 그들의 고통을 알게 되어 인도적 지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겪는 기아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래서 미국에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인도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주로 북한에 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어서 죽었다는 사실을 조사해서 서방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난민들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북한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UNHCR 등 많은 국제기구에 가서 호소했지만, 중국이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국제기구가 그들을 도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국경 변에서 북한 난민들을 돕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저희들의 멤버가 체포되어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난민들을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하고, 또 한국에 들어온 난민들이 정착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하려면 한반도의 평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 정부는 인권 개선이나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운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북한 정부는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 침해와 굶주림의 고통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북 특사를 맡고 있던 조셉 디트라니 대사님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6자 회담이 성사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USAID(미국 국제개발처) 대표를 맡고 있었던 앤드루 나찌오스 님과 함께 북한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He is a good man. I know him.”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좋은 분입니다.)

“저의 원래 관심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권 문제 해결이었는데, 근본 원인이 한반도의 평화 문제였기 때문에 지금은 평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재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많은 연구원들과 같이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린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반도가 갖고 있는 전쟁의 위험은 매우 중차대합니다. 아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지,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 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막대한 피해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 관계는 북미 간의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긴장이 매우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과 북한의 관계라도 개선해서 긴장을 좀 완화시키려고 지난 2월에는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을 만나서 북일 관계의 개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올린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떻게 하면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우리가 함께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는 북한의 핵기술이 계속 고도화되고 있고, 그 양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이 가장 큰 위협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완화시킬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현재 미국이 하고 있는 한국, 일본, 미국의 삼각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정책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은 되지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정책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을 더 부추기는 효과가 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No, I welcome your thoughts on this. I share your concern.”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의견에 동의합니다. 스님의 의견을 주위에 공유하겠습니다.)

올린 웨딩턴 님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본인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소개하면서 지금의 변화된 상황에서는 북한이 더욱 빠른 속도로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해법이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특히 스님이 해법의 하나로 일본에 가서 대화와 설득을 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스님은 북한에 대한 강경책과 유화책이 모두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미국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북한의 위상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안보리에서 미국과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고, 현재 북한은 러시아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얻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러시아를 통해서 그동안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한 대량살상무기의 핵심 기술을 조금씩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과 미국, 일본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의 핵개발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과거에는 북미 관계 정상화가 비핵화의 출구 전략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입구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빨리 중단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로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면 북한과 중국의 관계 개선도 늦추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현재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이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어떤 정부가 새로 들어서든 북한을 지금 이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협상을 해나가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핵전쟁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곧 핵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전쟁을 한다면 북한은 핵전쟁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면 과제이지만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훨씬 더 심각한 위험이라는 올린 웨딩턴 님의 지적에 대해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바이든 정부처럼 북한을 내버려 두는 정책은 계속되는 핵확산을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I completely agree with you. I think many Americans should listen to you.”

(스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스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참석한 카트리나 델가도 님도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카트리나 님은 영적인 부분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It seems to me that you have talked and studied a lot about happiness. I’m curious about how the concept of happiness has changed.”

(제가 보기에 스님께서는 행복에 대해서 많이 말씀해 오셨고 연구를 해오셨는데요. 행복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습니다. 인간의 심리는 즐거움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괴로움은 없고 즐거움만 있기를 바랍니다. 현실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늘 되풀이됩니다. 그래서 붓다는 이것을 ‘윤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건강한 것인가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고,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는데, 어떤 게 건강한 것인가요? 아프지 않은 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것처럼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행복입니다. 이것을 팔리어로는 ‘닙바나(Nibbana)’,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Nirvana)’라고 합니다. 괴로움이란 우리들의 마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슬픔이라든지, 미움이라든지, 초조 불안, 근심 걱정, 화, 원망, 이런 것이 다 부정적인 심리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행복입니다. 즐거움이란 마음이 들뜨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을 지속 가능한 행복, 즉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괴로울 때 ‘왜 괴로운가?’ 하고 그 원인을 탐구해야 합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무지’ 즉 알지 못함이 원인입니다. 집착을 내려놓거나 알지 못함을 깨우치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즉,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전이나 교리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괴로움을 말하게 하거나 그들의 의문을 말하게 합니다. 대화를 통해 그들 스스로 ‘너무 한쪽으로 편중되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거나,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합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주로 제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이런 방식의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 온 것도 그런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 절반입니다. 또 이번 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 이런 활동을 저는 빈곤 국가에서 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원을 합니다. 지원의 대상은 종교나 인종, 민족, 정치 체제와 관계없어야 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고 유엔(UN)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생존이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에는 주로 심리적인 이유로 괴로움이 생기기 때문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 수행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심리적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것을 도와주고 기부를 받고, 그 돈을 가난한 나라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괴롭지 않은 것입니다.”

“Thank you. I didn’t go to church this morning. I usually go there. I feel like I just heard a very good sermon.”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엔 안 갔지만 저는 보통 교회에 가는데, 굉장히 훌륭한 설교를 들은 것 같습니다.)

“불교 중에서도 저는 선불교에 속해 있는데요. 선불교는 부처님이 마음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이 밝고 가벼운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이 붓다라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To me, you have inner calm about you.”

(스님께서는 내면의 평화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평화롭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어 죽어서 그 시신이 강변으로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 후 어떤 미움이나 원망보다는 ‘그런 아픔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관점을 갖고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웃음)

“I think our country here needs of spiritual help. There’s a crisis of values. I think your work on behalf of human lives and democracy is very important, and I hope it continues for years.”

(제 생각에는 미국은 가치가 많이 무너지고 있어서 영적으로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스님께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하시는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4시 30분부터는 토마스 제퍼슨 하이스쿨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자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말을 했습니다.



“보통 절에 가면 스님은 법상에 앉아 있고, 여러분들은 바닥에 앉아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조금 경직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죠. 그래서 옛날에는 법상을 법당 밖으로 들어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막 자유롭게 합니다. 이것을 ‘야단법석’이라고 해요. 야단법석이라는 것은 시끄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밖에 법단을 차리고 거기에서 법을 논하는 자리를 야단법석이라고 합니다. 오늘처럼 이런 자리가 바로 야단법석이에요. 그러면 야단법석을 한 번 시작해 봅시다.”

이어서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이 차례대로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동안 11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직장에서 감정이 상했을 때 그것을 집에까지 갖고 오게 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까지 가져오게 됩니다

“직장생활을 한 지 7년 정도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회사에서 있었던 안 좋은 기분을 집에까지 가지고 오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직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요?”

“직장에서 제가 해놓은 것에 대해 상사로부터 고쳐야 된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냥 고치면 된다고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고 ‘나는 왜 이렇게 못 했지?’ 하면서 자책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집에서까지 그 기분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것을 흘려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에서 이미 감정이 상했는데, 그 기분을 집에 안 가져오는 방법이 없겠느냐 이 말이지요?”

“네.”

“질문자가 그 기분을 집에 안 가져오면 되지요. (웃음) 그런데도 질문자가 안 가져올 방법이 없겠냐고 묻는 이유는 안 가져 올래야 안 가져올 수 없이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질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안 가져오면 되는데 질문자는 가져올 수밖에 없으니까 해결책은 직장에서 그런 기분이 안 일어나도록 하는 겁니다. 가져 올래야 가져올 것이 없게 만드는 것이죠. 상사가 이것을 고쳐라 하면 ‘예, 알았습니다’ 하고 고치는 겁니다. 왜 그걸 문제 삼아요? 상사의 지적에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더 대화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상사의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것이 왜 저에게 상처가 되는지 스님에게 여쭈어 보고 싶었습니다. 상사의 피드백을 받으면 제가 모자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데 그것이 잘못됐거나 틀렸을 때 누군가 ‘이거 고치세요’ 하면 고치면 되잖아요?”

“네, 맞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틀릴 수가 있습니다. 잘못할 수도 있고요. 그럴 때 ‘나만 잘못했니? 너는 잘못 안 했니?’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한다면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했네요’ 이러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스님도 틀릴 때가 있고, 잘못할 때가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제가 맞다고 우겼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틀린 경우도 있습니다.”

“스님은 그럴 때 자책하지는 않으시나요?”

“자책한다는 게 뭘까요? ‘나는 잘못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하고 자신에 대해 알고 있을 때는 내가 잘못했을 때 ‘그래, 잘못할 수 있지’ 하고 받아들여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책을 하게 되는 이유는 ‘나는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인데 잘못을 했으니까 자책이 되는 거예요. 질문자는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잘 난 사람이네요.” (웃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질문자는 본인이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질문자는 잘못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잘못을 많이 저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잘못할 수 있는 사람이 잘못했는데 뭐가 문제예요? 그러니 상사가 지적을 하면 ‘제가 잘못했네요. 개선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 상처가 없습니다. 아무 상처가 없으면 집에 가져갈 것도 없습니다. 질문자의 얼굴 표정을 보니 아직 해결된 것 같지 않네요. 질문이 있으면 더 해봐요.”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음속에서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는 이성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할 때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하잖아요. 정신을 차리고 무언가를 하면 이성적으로 한다고 말하고, 정신없이 하면 감정적으로 한다고 말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그럼 정신을 차리고 하는 게 나아요? 정신없이 하는 게 나아요?”

“정신을 차리고 하는 게 낫습니다.”


“내가 정신없이 뭔가를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잘못했다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하면 됩니다. 잘못을 했을 때는 자책을 하지 말고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는 것이 특별히 무슨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요. 누구나 잘못할 수가 있어요. 다만 조금 많이 잘못하느냐, 조금 덜 잘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 차이는 오십보백보입니다. 죄책감을 느끼거나 열등의식을 느낀다는 이유는 자기는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자기도 모르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못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잘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때 마음이 상하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질문자는 뭐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잘못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잘못할 수 있는 사람이 잘못한 것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

“정상입니다.”

“질문자는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자책을 하거나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왔는데 다시 열정적으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것이 도덕적인 지탄을 받을 일인지 궁금합니다. 부모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했지만 미국 사회에 진정으로 녹아들어 간 느낌이 안 듭니다. 주류 사회에 동화하기 위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 스님은 어떻게 정토회를 세우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노인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미래에는 어떤 분야의 노인학을 연구하는 것이 좋을까요?

  • 운명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항상 행복할 수 있을까요?

  • 4살 아들이 영어로만 이야기하고 미국인 시댁 식구들과만 가까이 지내려고 해서 소외되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 미국 생활이 안정되자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가족을 미국에 두고 저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처럼 이웃들의 어려움은 나의 행복에도 영향을 줍니다.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치고,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스님 법문 듣고 제가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에는 비공개 미팅을 했습니다. 내일부터 미국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미국 의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의 조언을 듣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차를 타고 10시가 되어 다시 워싱턴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박진영 교수님과 ‘폭력, 비폭력, 사회정의’를 주제로 대담을 하고, 오후에는 미국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과 미팅을 한 후 워싱턴타임스 제킨스 박사님과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워싱턴 D.C.에서 영어 통역으로 미국인을 상대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5-16 07:08:16

금광화

스님 감사합니다

2024-05-12 22:53:33

월광

Thank you, Jason.

2024-05-11 07: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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