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법당 총무직을 맡고 있는 조영미 님을 만나러 가는 날은 캘리포니아에선 드물게 비가 오락가락하는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한국의 정취를 닮은 알마덴 밸리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Q. 어떻게 미국에 오자마자 총무직을 맡게되셨나요?

저는 수원법당에서 삼 년 총무 소임을 맡아 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해외주재원 발령을 받았다고 말했더니 묘당법사님께서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어디를 가냐 얼만큼 있을 예정이냐 물으셔서 캘리포니아 산호세로 가게 됐다고 하니 현재 샌프란시스코법당 총무가 공석인데 가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저는 일말의 주저 없이 '' 했어요. 왜냐면 전 어차피 해외가서도 정토법당을 찾아갈 거고 거기서 뭐라도 봉사를 할 텐데 못 할 게 없다 싶었지요.

수원법당 총무시절. 맨 아랫줄 가운데가 조영미 님.▲ 수원법당 총무시절. 맨 아랫줄 가운데가 조영미 님.

수원법당 확장불사 후 함께 해준 도반들과 함께. 가운데가 조영미 님▲ 수원법당 확장불사 후 함께 해준 도반들과 함께. 가운데가 조영미 님

해외 파견 후,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 후: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영미 님▲ 해외 파견 후,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 후: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영미 님

Q. 낯선 타국에서 총무직을 맡는 데 대한 부담이나 어려움은 없었나요?

9-1차 천일결사 입재식날 처음 샌프란시스코법당에 나갔어요. 법당이 깨끗하고 넓고 또, 실용적인 배치에 감탄했어요. 저는 아주 작고 열악한 환경에서 불교대학에 다니고 수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 제약도 없이 법당을 통째로 언제든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특혜 같았어요. 또 해외에서는 처음 해본 천일결사 입재식도 여여하게 진행됐고 그리 큰 어려움이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그러다 차츰 법회가 이어지면서 느낀 건 이렇게 좋은 법당에 생각보다 도반의 수가 적다는 거, 그리고 꾸준히 법회에 참석하는 도반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 의논할만한 도반이 있을까 싶더군요.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됐죠.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의 여건이 한국과는 참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단 거리가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해외 생활이 가족 중심적이다 보니 가족 구성원의 허락과 배려가 없이는 나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란 걸 알게 됐죠. 그러고 보니 매주 법회에 나오는 한 분 한 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어요. 더욱이 해외는 기독교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 있어서 생활의 편의나 정보를 얻고 사교를 위해서도 보통 교회를 많이 가는데 굳이 법당에 나오는 도반들은 정말 특별하고 법을 구하는 마음이 절실한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 법당을 찾는 분 중에서도 수행으로 연결되는 분들은 적었습니다. 안타까웠어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있었던 평화시위: 맨 오른쪽이 조영미 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있었던 평화시위: 맨 오른쪽이 조영미 님

Q. 수행하는 이유, 수행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는 항상 친정 아버님에 대해 두려움, 거부감, 억울함 같은 복잡한 감정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가 활동하던 집단이 아무리 좋아도 맘이 식어서 그만두게 되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숙여지지도 않는 몸을 억지로 굽히며 울며 절하고 그래도 맘이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나눔의장>과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에서 법사님의 가르침을 받고 해결해갔습니다. 점차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토회에서 하는 모든 일에 즐겁게 힘을 보탤 수 있었어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고마움으로 돌이킬 수 있었고 지금도 참회와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내가 나를 볼 때 편안해지고 변하는 모습을 느낄수록 이 좋은 법과 수행의 기쁨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과 수행이 하나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기에 주어지는 일을 능히 받아 해내게 됐고요.

법륜스님과 함께.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영미 님.▲ 법륜스님과 함께.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영미 님.

2017 스님의 해외 강연 때: 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조영미 님▲ 2017 스님의 해외 강연 때: 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조영미 님

Q. 일 년 정도 샌프란시스코법당에서 법회를 주관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곳 도반들은 모자이크 붓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법회에 자주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또 수행하진 않아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서 청하면 꼭 자발적인 참여자가 나오더군요. 앞으로 샌프란시스코법당이 수행학습기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좋은 법문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지 않으면 오래 갈 수가 없는 걸 알거든요. 그래서 불교대학이나 경전반에 많은 분이 등록해서 공부하고, 천일결사 기도도 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변화하는 수행공간으로 샌프란시스코법당이 자리 잡는데 제 힘을 보태고 싶어요.

총무님 부부가 오고 난 후 도반이 늘었다는 제 말에 일관되게 “그건 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모든 분의 공덕으로 이뤄진 거죠.”라는 총무님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돕니다. ‘네 하고 하겠습니다’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환한 미소로 늘 법당을 꽉 채워주는 총무님이 있어 앞으로도 샌프란시스코법당은 쨍하고 해 뜰 날만 있을 것 같습니다.

글_최경선 희망리포터 (샌프란시스코법당)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