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덖기와 건조를 반복해 고귀한 꽃차를 만들어 주는 양산사람. 작은 키에 소박한 얼굴로 만나기만 해도 웃음을 주는 좋은 사람. 양산법당 대들보! 백길남 님을 만나 봅니다. 그리 자랑할 것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성실함과 평온함으로 도반들의 귀감이 되기에 소개합니다.

환하게 웃는 백길남 님
▲ 환하게 웃는 백길남 님

덤으로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볼 생각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아주 아팠습니다. 무엇을 먹기라도 하면 바로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설사와 구토가 심해 잦은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나중에 나이 들어 안 일이지만, 이 병은 ‘선천성 장무운동증’이라고 했습니다. 젊은 청춘 시절 병마와 싸운다고 아까운 시간 다 보내버렸어요. 25세부터 지금까지 밥과 약은 한 세트인 줄 알고 삽니다.
30세 때 장에 구멍이 생겨 수술했는데, 10개월 만에 또 장이 서로 붙어서 음식물이 배출이 안 되더니 피를 토하고 또 입원. 그때부터 13년 동안 네 번의 대수술과 한 번의 긴 시술로 지금의 제 몸이 생겨났습니다.

그때 장기간 입원했는데 식물인간처럼 신체의 어느 부위도 나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귀는 용케 살아서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어요. 그런데 엄마는 제가 아무것도 못 듣는 줄 아시고 하루는 이모한테 전화하셔서 “언니야, 아무래도 오늘 밤을 못 넘기겠다. 너무 무섭다. 언니가 병원에 좀 와주면 좋겠다.” 하면서 많이 우셨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아 ,내가 이제 죽는가보다' 싶더라고요. 그 순간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죽음을 실감하기엔 너무 젊었잖아요.

그랬는데 그 다음 날 동트는 새벽에 제가 깨어나 천운이라 했습니다. 학창시절 때 친구들과 손금을 본 적이 있는데 제 손금에 명줄이 없다고 30세밖에 못 산다고 야단이었거든요. 서른살의 12월 25일날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생각했어요. '서른을 무사히 넘겼네. 이제 살았다!'

천일결사 입재식. 양산 도반들과 함께 (앞줄 맨 왼쪽이 백길남 님)
▲ 천일결사 입재식. 양산 도반들과 함께 (앞줄 맨 왼쪽이 백길남 님)

다시 태어난 내 인생 한번 잘살아 보자.

삶에 대한 수준 높은 철학이 불교라고 생각하고 이 절 저 절 이 스님 저 스님을 만나 보았지만 맞지 않아 실망만 컸습니다. 처음 만난 스님은 수행이 깊은 분이셨는데 주왕산 불사 가셨다가 빗길에 차 사고로 돌아가시고, 이후에 만난 스님은 금전을 많이 요구해서 '이게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그만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는데 그중에 20분짜리 법륜스님 <반야심경>을 듣게 된 겁니다. '이게 뭐지?' 순간 뒷머리가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분이 뉘신고? 법륜스님이었습니다. 그때가 2006년 여름. 무작정 전화를 돌렸더니 해운대법당에서 동래법당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때는 가을불교대학이 없어서 다음 해 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 해 봄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공부할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법당에서 안내해준 인터넷 정토불교대학 과정을 혼자서 날마다 컴퓨터 앞에서 동영상과 씨름했어요.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돌려서 보고 또 봤습니다. 불교대학 과정을 마치고 경전반 과정까지 혼자서 다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2007년 봄. 법당에서 인터넷으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불교대학을 도반들과 같이 배우면 또 다른 불법의 이치를 알 수 있다고 해서 다니기로 했습니다. 같이 배워보자는 제 말에 세 살 아래 여동생이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서 나란히 도반이 되어 천일결사 입재도 같이하고 둘이 나란히 불교대학 졸업을 했습니다.

꽃차도 맛있게 달여 주지만 연등도 이쁘게 만들어요 (왼쪽 뒤쪽이 백길남 님)
▲ 꽃차도 맛있게 달여 주지만 연등도 이쁘게 만들어요 (왼쪽 뒤쪽이 백길남 님)

동생은 지금도 같이 살면서 제가 법당 일에 전념할 수 있게 집안일과 가게 일을 많이 도와줍니다. 동생은 좋은 도반이고 동업자입니다. 막냇동생 제부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동생과 조카 둘까지 한식구가 되었고, 도반인 동생이 또 아파서 암 수술을 했고 그래서 책임져야 할 식구가 늘었습니다. 몸도 아프고 챙겨야 할 식구가 늘어나 힘들다 해도 불법의 이치를 알고 나니 삶이 그다지 고달프지는 않습니다.

동생들은 제게 엄마이기를 희망했고 친어머니 역시 제게 동생 뒷바라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 자매들은 사이가 좋습니다. 동생들과 순간순간 힘들 때도 있었지만 불법 만난 덕분에 힘들다는 생각을 오래 하지는 않았습니다. 몸은 비록 아픔과 고통에 힘들지만 인연 따라 살면 된다는 신념이 있었고, 불법의 이치를 알기에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내려놓는데 익숙해져 갔습니다. 어머님은 몇 해 전에 돌아가셨는데 동생들이 제 곁에 있는 것을 흐뭇해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조카들은 이제 청년이 되어서 제가 힘들 때 달려와 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세 살 아래 동생도 암을 잘 극복하고 동업자로서 당당하게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든 그 시기에 불법을 만난 인연으로 삶이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세상을 무조건 힘들게만 받아들이고 사는 많은 사람에게 스님의 법문은 환한 태양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학교 홍보 (앞줄 가운데가 백길남 님)
▲ 행복학교 홍보 (앞줄 가운데가 백길남 님)

양산법당 만들기 원을 세우다

불교대학 졸업 즈음에 한 활동가가 “백길남 님, 양산에 법당 만들어서 양산법당에서 경전반 하세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맞아. 그러면 되겠네. 양산에 법당 못 세울 이유는 없지 뭐” 답했지요. 양산법당 만들기 원은 이렇게 가볍게 세워졌습니다.

졸업하고 천일결사 입재와 기도만 하면서 세월 보내다가, 2010년 양산에서 처음으로 스님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총괄을 맡아야 한다고 합니다. '총괄이 뭐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래도 그냥 했습니다. 불교대학 때 명심문이 ‘그냥 합니다’ 였거든요. 양산문화회관을 대관하고 너무 넓은 곳이라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들이 많았지만, 많은 사람이 최선을 다해 홍보한 공덕으로 넓은 850석을 가득 메운 양산시민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하면 되는구나! 해보자!' 날이 가면서 양산법당 개원에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김남순 님(지금의 향웅법사님)이 자택을 내어 주셔서 가정법회를 먼저 시작했고, 2013년 불교대학 저녁반을 개설했습니다. 1년을 김남순 님 자택 거실에서 불교대학 수업을 했고, 다음 해 2014년 4월에 양산법당 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을 세워 기도하기 시작해 7년 만에 드디어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동생과 같이할 찻집을 찾던 중이었는데, 법당개원 공사와 맞물려 찻집 계약을 포기하고 법당부터 개원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에 흡족한 가게 자리가 있었는데 다음에 다시 구하기로 하고 취소했습니다. 드디어 공사가 마무리되어 법당이 개원하던 날 너무 좋았습니다. 양산 사람은 양산법당에서 불교대학을 다니고 금강경을 배우고 삶이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날 저녁 개원 행사가 진행 중인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찻집 할 만한 자리가 생겼다고요. 개원하고 천천히 해야지 하던 찻집 구하기는 한순간 바로 해결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법당 개원으로 포기했던 자리보다 더 좋은 조건의 가게가 생겼어요. 부처님 고맙습니다.
세상 살다 보면 마냥 힘든 것도 마냥 쉬운 것도 없고, 세상은 인연 따라 돌고 돈다는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몸에 좋은 꽃차를 만드는 백길남 님
▲ 몸에 좋은 꽃차를 만드는 백길남 님

오랜 시간 아픔과 고통을 견디어내고 나니 제 몸에 대해 너무 잘 압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뭘 원하는지? 아 그때 그랬지. 잘 지내왔지. 돌아보면 행복합니다. 지난 인연으로 인해 오늘의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처럼 돌봐준 이모인 저에게 조카들은 소중한 보물입니다. 제가 아프다면 두말하지 않고 기꺼이 달려와 주는 조카들 덕분에 지나온 날들이 후회스럽지 않고, 오늘의 행복을 알고 살게 해준 불법의 인연에 감사합니다.

통일의병 발대식 (둘째줄 가운데가 백길남 님)
▲ 통일의병 발대식 (둘째줄 가운데가 백길남 님)

수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저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힘들다 힘들다 하면 더 힘들어지지만 쉽고 가볍게 생각하면 세상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기 싫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냥 해버리면 되고 탁 내려놓으면 편해집니다. 30년을 밥 먹듯이 약 먹고 아프면 병원 갑니다. 약이 있어 다행입니다. 병원 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법당일 맡아서 하고 동생과 찻집을 해오고 있지만 내가 바라지 않고 행하면 섭섭할 것도 서운할 것도 없습니다.

법당일로 동생에게 가게 일을 많이 하게 해서 미안할 때가 많은데 동생이 수행자라 다행입니다. 이해해주고 서로 보듬어 가며 같이 살아가는 착하고 고마운 도반이고 동생이기에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저의 부처님입니다. 아침기도는 저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아요. 몸이 고단할 때 하기 싫은 마음 올라오지만, 그냥 하고 나면 좋습니다. ‘불법’을 만나 지금 평온함을 느낄 때야말로 다시 얻지 못할 기쁨입니다. 아픈 제게 주는 가장 값진 보물이라 생각합니다.

도반들과 함께 (맨 앞이 백길남 님)
▲ 도반들과 함께 (맨 앞이 백길남 님)

바라지 않으면 서운할 것이 없다

활동가들이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해주고 서로 도와가면서 마무리 해주고 있어 그다지 힘든 일은 없습니다. 양산법당 활동가들은 모두 똘똘합니다. 부총무인 제가 제일 부실합니다. 부총무만 잘하면 문제없습니다.‘일과 수행의 통일’을 늘 생각하지만 쉽지 않죠. 안되더라도 한 번 더 해보고, 하다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고, 도반들이 서로 각자의 소임에 충실하고 매사 긍정적인 사고로 잘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지금의 양산법당은 걱정 없이 잘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될 거고요. 우리 인간은 누구에게든 해주면서 바라니까 안 해주면 섭섭하고 그래서 다투고 힘든 관계가 됩니다. 바라지 않고 행하면 서운할 게 없습니다.

앞으로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꽃차 만들어서 도반들 나눠주기,정토를 일구는 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기꺼이 합니다. 천운을 타고난 저는 아마도 100세 이상 장수를 누릴 겁니다. 그때까지 저는 불법을 공부해 보겠다고, 행복해지겠다고 찾아오는 도반들에게 상냥한 웃음을 주는 불법 전도사가 될 것입니다.

송년을 기쁘게 보내며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백길남 님)
▲ 송년을 기쁘게 보내며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백길남 님)

산에서 딴 함박꽃, 덖음과 건조 아홉 번의 과정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행한다는 끈질긴 인내심에 감동을 하였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가끔 돕는 이로 참석한다는 부총무님. 내 몸 내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바쁜 일상에도 법당과 가게 일 처리도 가볍게 기꺼이 한다는 분. 내 마음과 몸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거라고, 오늘도 저를 돌아보고 후회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봅니다.

글_ 이순남 희망리포터(김해정토회 양산법당)
편집_ 조미경(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