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종교인모임 및 정토회 신임임원 회의
제사 지내는 시간을 옮기면 안 되나요?

3월 2일, 경주 서라벌문화회관 ‘행복한 대화’ 강연을 마치고 법륜 스님은 밤을 달려 서울로 왔습니다. 평화재단에서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회의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정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경주 ‘행복한 대화’ 강연에서 있었던 재밌고 행복한 대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구수한 경상도 어머님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주 쉽고 재밌게 진행되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40년 가까이 제사를 12시, 자정에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카가 제사를 밤 10시에 지내면 안 되는지 물어보길래 시간을 옮겨서 10시에 지냈는데, 그날부터 꿈에 조상님이 보이고 꿈자리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3일 동안 안 좋은 꿈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무서워서 칼을 머리맡에 두고 자보기도 했는데요...”

“칼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하시려고요? (청중 웃음)”

“동네 어르신들이 악몽을 꿀 때 칼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악몽이 없어진다고 말씀들을 하셔서요. 그 후로는 다시 12시로 옮겨서 지내오다가 어제가 마침 제삿날이었는데, 이번에는 시동생이 ‘시대가 시대인 만큼 앞으로는 제사 시간을 조금 옮겨서 밤 10시 반에 지내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래서 밤 10시 반에 제사를 지내면서 마음속으로 ‘어머니 아버지, 도련님 내외가 제사를 10시 반에 지내자고 해서 이 시간으로 옮겼는데,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드시면 이번에도 제 꿈에 나와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꿈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청중 웃음) 이렇게 시간을 옮겨서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궁금해서 스님께 여쭈어봅니다.”

“제가 안 된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스님이 되고, 제가 된다고 하면 법도(法度)에 어긋나는 스님이 돼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래서 말하기가 참 어려워요. (청중 웃음) 질문자는 제가 시대에 뒤떨어진 스님이 되는 게 나아요, 법도에 어긋나는 스님이 되는 게 나아요, 아니면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고 법도에 어긋나지도 않는 스님이 되는 게 나아요?”

“시대에도 뒤떨어지지 않고 법도에도 어긋나지 않는… (청중 웃음) 그런데 제가 40년을 제사를 지내왔는데도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제사는 질문자 자신을 위해서 지내요, 아니면 귀신 · 영(靈) · 영가(靈駕)라고 부르는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지내요?”

“일단은 부모님을 위해서 지내요.”

“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지내죠? 그런데 그 분들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몸이 없는 귀신이에요?”

“지금은 귀신이지요.”

“그럼 귀신은 뭐든지 잘 알아요, 아님 뭘 잘 몰라요?”

“아는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우리말에 ‘귀신같이 안다’라는 말이 있는 거 아시죠?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요?”

“…”

“사람이 무언가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이 알면 ‘저 사람 귀신같이 안다’라고 말하잖아요.”

“네.”

“그럼 ‘귀신같이 안다’라고 할 때 귀신은 뭐든지 다 아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그렇지요.”

“그러니 귀신은 ‘전지(全知)’해서 뭐든지 다 알아요. 쉬운 예로, 아는 사람이 셋 있는데 그 중 둘만 몰래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약속했어요. 그렇게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정작 따돌리기로 한 사람도 그 자리에 오면 ‘이야, 귀신같이 알고 왔네!’라고 하잖아요. (청중 웃음) 귀신은 뭐든지 다 안다는 뜻이에요.

이런 귀신은 제사 지내는 시간을 옮기면 그걸 알까요, 모를까요? (청중 웃음)”

“귀신같이 안다고 하니까… 알겠지요?”

“그러면 제사 지내는 장소를 옮기면 그걸 알까요, 모를까요?”

“그것도 알겠지요…”

“그런데 대답하는데 왜 그리 자신이 없어요? (청중 웃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귀신은 뭐든지 다 알잖아요. 뭘 잘 모르면 그건 귀신이 아니에요. (청중 웃음) 그러니 장소를 큰 집에서 지내다가 작은 집으로 옮겨서 지내도 알까요, 모를까요?”

“알아요. (청중)”

“그러면 시간을 조금 옮겨도 알까요, 모를까요?”

“알아요. (청중)”

“알겠지요? 그러면 질문자가 평소에는 12시나 1시에 제사를 지내다가 10시나 10시 반으로 옮겨서 지내면 귀신이 알까요, 모를까요?”

“알겠지요.”

“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냥 평소대로 12시에 지내야겠네요, 그지예? (청중 박수와 웃음)”

“아니 왜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그렇게 돼요? (청중 웃음) 자, 다시 한 번 천천히 잘 생각해봐요. 귀신은 뭐든지 다 알잖아요. 그러니 장소를 변경해도 귀신은?”

“알아요.”

“시간을 변경해도 귀신은?”

“알아요.”

“그러니 12시 경에 지내던 제사를 10시 반으로 옮겨서 지내면, 이번에는 귀신이 몰라서 못 찾아올까요, 아니면 그것도 다 알고 때맞춰서 찾아올까요?”

“음....”

“귀신은 뭐든 다 아니까 알아서 올까요, 못 올까요?”

“아! 오시겠다, 그지요? (청중 박수와 웃음)”

“그러면 시간을 옮겨도 될까요, 옮기면 안 될까요?”

“되겠습니다! (청중 박수)”

“그러면 지금 스님이 옮겨도 좋다고 한 거예요, 질문자 자신이 옮겨도 되겠다고 결론을 내린 거예요? (청중 웃음)”

“…”

“지금 결정을 스님이 내려준 거예요, 자기가 직접 결론을 내린 거예요?”

“제가 결정했다고 봅니다.”

“그러니 스님은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았고, 법도에 어긋나지도 않았지요? (청중 웃음)”

“네! (청중)”

“그래요. 스님이 도움을 조금 주긴 했지만 질문자가 스스로 결정했어요. 아시겠지요?”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 웃음과 청중 박수)”

“자, 그러면 제사는 왜 12시에 지내게 되었을까요? 혹시 그 연유에 대해 아는 분 계세요?”

(청중 중에서)
“저는 하늘에서 천문(天門)이 12시에 열린다고 해서 그렇게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문을 한밤중에 여네요. (청중 웃음) 또 다른 연유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뒷편에 있는 거사님)
“돌아가신 날 가장 이른 시간에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또 다른 의견 있으신 분?”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가 자시(子時)인데, 그 시간에 귀신들이 가장 활발하다고 들었어요.” (청중 웃음)

“네, ‘천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하루의 첫 시작 시간이다, 자시에 귀신들이 가장 많이 활동한다’ 이렇게 세 가지 의견이 있었네요. 전통적 풍속을 보면 그 중 두 번째가 가장 합당한 이야기입니다.

제사는 돌아가신 날 중 가장 이른 시간, 즉 첫 시간에 지내요. 만약 조상이 3월 1일에 돌아가셨다면 이듬해 3월 1일이 오기까지 1년을 굶으신 거잖아요? 그런데 2월 28일 밤까지는 아직 1년이 안 된 시간이에요. 그러니 음식을 1년이 되는 3월 1일에 드리긴 하는데 그 중 가장 빨리 드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3월 1일 자시(子時)에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또 ‘새벽닭이 운 뒤에는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새벽닭이 운 뒤는 이미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새벽 1-3시)가 지나고 인시(寅時, 새벽 3-5시)도 지난 때인데 1년이나 굶은 조상님들께 이렇게 늦게까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니 그건 성의가 없다고 생각해서 나온 이야기예요.

그런 이유로 전통적으로 자시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점차 잊혀지다 보니까, 아까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자시가 천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귀신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간이다’등의 설명이 그 후로 생겨나게 된 거예요.

그러니 제사는 전날 앞당겨서 지내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당일 첫 시에 지냅니다. 그 시간이 주로 그 전날 밤 자시부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흔히 전날 밤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어떤 행사든 1주년 혹은 1주기 기념식을 하면 그 전날 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되는 당일에 기념식을 합니다. 그러니 제사도 굳이 풍속 상의 원칙을 따진다면 당일의 가장 이른 시간인 자시에 지내고, 사정상 자시에 제사를 지내기 어려우면 전날 당겨서 지내는 게 아니라 당일 오전에 지내는 게 합당합니다. 사회에서도 모든 기념식을 전날 하는 게 아니라 당일 오전이나 낮에 합니다. 절에서 1주기 재(齋)를 지낸다고 해도 전날 지내지 않고 당일 오전 법회에서 지냅니다.

법도만을 생각하면 제사는 당일 자시에 지내고, 1주기 기념식은 당일 낮에 지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녁 8시든, 10시든 굳이 따지자면 전통적인 법도에는 맞지 않지만, 돌아가신 분을 위한 제사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면 귀신은 시간이나 장소를 옮겨도 크게 구애받지 않으니까 저녁으로 옮겨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연장에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습니다. 어머님이 질문을 했으나 어느새 스님의 질문에 어머님이 대답을 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어머님은 “감사합니다!” 하시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서초동 정토회관에 도착하자 서울공동체 성원들이 막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려는 중이었습니다. 스님은 회관에서 잠깐 씻고 다시 평화재단으로 가서 ‘종교인 모임’ 조찬 회의로 아침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종교인모임은 일부 개신교에서 3·1절 날 태극기를 들고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폭력 선동 종교인의 행태에 대한 교계의 반응을 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갈려진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봐야할지, 종교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를 의논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비판하기보다, 이렇게 갈라진 모습을 뛰어넘는 종교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모아졌습니다. 특히 점점 더 고조되는 한반도의 분쟁 위기, 위태로운 평화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탄핵인용 여부와 키리졸브 훈련 등이 맞물려있는 지금,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내고 이해와 공감, 평화의 적극적 실천이 없이는 당면한 우리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강한 공감대가 이뤄진 시간이었습니다.

종교인모임이 마치자마자, 스님은 같은 장소에서 9차년도 정토회 행정처 신임임원들과의 회의를 하였습니다. 현재 각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점검이 주를 이루었는데 가장 큰 것은 제9차 천일결사의 시작을 알리는 1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여법하게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행사를 치루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점을 지적하며 먼저 무대, 영상 등 실무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나아가서 어느 지역에서 개최했을 때 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였습니다. 이후에는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모이는 행사를 지양하고 전국 생중계가 가능하도록 하여 공감대를 가지되 비용은 줄이고 참여자는 높이는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청년 사업, 시스템 사업 등에 대해서도 현안뿐만 아니라 지향을 가지고 연구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많은 제안을 하였습니다.

회의를 마치자 점심 공양 시간이 되었으나 스님은 사이사이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손님 맞이하기에 바빴습니다. 스님은 지역에 강연을 다니는 날보다 서울에 있는 날이 오히려 더 바쁜 날입니다.

오후에는 사회활동위원회 팀장들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8차 천일결사까지만 해도 통일 사업을 중심에 두고 에코붓다나 제이티에스와 같이 환경, 복지 분야의 주제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통일특위가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므로 정토회는 환경, 복지 분야의 사회활동을 다시 살려내고 균형을 맞추어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덧붙여 회의에 모인 팀장들은 평화재단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회의를 하여 사회활동에 관한 꾸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함을 짚어주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찾아오신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10시가 넘어서야 회관으로 왔습니다. 내일은 대전에서 행복캠프가 열릴 예정입니다.

연일 일정이 촘촘해지고 있습니다. 새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함께 만드는 사람들
임혜진 심규선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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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연

음력 12월14일에 돌아가셨다면 음력12월13일 자시(11시~1시)에 지내거나 음력 12월14일 오전에 지내면 되는건지요?

2023-10-24 17:17:50

최소영

음력 7월 20 일 기일이시면 당일오전이나 당일 저녁 8 시쯤 지내도 된다는거지요?

2023-09-07 13:30:18

중국에서 넘어온 제사문화 사라져야한다.

2023-07-16 12: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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