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5. 17 행복한 대화 _ 부산 디자인센터
억울한 남편, 손해 보는 아내

오늘은 아침부터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새벽에 서초동 정토회관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기도가 끝나자마자 평화재단으로 갔습니다. 오늘 논의는 새로운 대통령 당선 후, 남북관계 개선과 국민통합을 위한 길에 대해서 의논했습니다. 국민들의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주고 공감을 주면서도 좀 더 화합을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 기대되지만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국민의 힘을 모아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주요 논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출범 일주일 밖에 안 되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국민의 화합을 위한 방안을 종교인 차원에서 더 모색해보자며 회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종교인모임이 끝나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과학외교의 전략적 효용성"이라는 주제로 국제전략화해연구원(ISRF)의 전영일 원장님의 세미나 발표가 3층 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평화연구원의 연구위원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2시간가량 토론의 시간을 가졌는데 북한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북한 미래 지도자들의 자존감 (Self-esteem)"이라는 연구결과를 포함하여 흥미로운 발표였습니다.

스님은 세미나 참석 후, 오랜만에 모인 연구원장님 및 연구위원님들과 점심 식사를 한 후, 부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부산에 진입해서 강연장인 디자인센터까지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 겨우 강연 시작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무대에서 청중을 바라보니 눈이 부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계단식으로 마련된 청중석과 무대의 거리가 멀어서 단상에서 내려와 청중들 사이에서 ‘대화’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스님과 좀 더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어서 환호하였습니다. 게다가 강연이 시작하고도 계속 사람들이 입장하여 청중석과 단상 사이에 간이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모두 여섯 명의 질문자와 스님이 ‘행복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 중에 두 질문을 소개하는데요, 부부관계에서 남편의 입장에서 질문한 것과 아내의 입장에서 질문한 것, 두 가지 질문을 함께 소개합니다. 예전과는 다른 요즘 부부관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더불어 남편과 아내, 양쪽의 입장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결혼 20년, 힘들었다는 아내의 말에 충격 받은 남편의 고민

“예. 저는 올해 50세가 되었고요, 직장생활은 24년째하고 있고요, 집사람과 결혼한지는 20년 정도 됐습니다. 최근에 집사람과 좀 서먹서먹해졌는데, 그 이유는 제가 집사람의 얘기에 좀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저에게 ‘당신이 짜증을 너무 많이 내서 나는 20년 동안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나름대로 집사람한테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집사람은 자기가 저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결국 집사람이 ‘내가 20년 동안 당신 짜증을 받아줬는데, 앞으로 30년을 더 받아줘야 되느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별거도 생각해 봤고, 아이들 클 때까지는 함께 살다가 아이들이 좀 크고 나면 헤어지는 방법도 생각해 봤거든요. 그런데 저는 집사람과 관계를 회복해서 ‘잘못된 게 있다면 서로 개선하려고 함께 노력해 보자’고 하고 싶거든요. 제가 어떻게 해야 집사람과 가장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결혼한 지 20년째라면서 아직도 그런 방법을 터득하지 못 했어요?(모두 웃음) 그건 질문자의 전공분야잖아요. 질문자는 아내와 20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될 것인가?’ 연구를 좀 했어야 해요. 저야 혼자 사니까 그런 연구를 할 필요가 없지만 말이에요.”

“아마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귀가해서 제가 짜증을 많이 내지 않았나, 제가 제 생각과는 달리 행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좀 들긴 들더라고요.”

“여기는 경상도라서 제가 이런 비유를 들어도 될지 좀 조심스러운데요,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잖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아세요? ‘억울하다. 너무너무 억울하다’고 한다는 얘기, 신문에서 보셨지요?”

“예.”

“그분은 평소에 ‘나는 결혼도 안 했다. 나는 나라와 결혼했고, 국민과 결혼했다’고 할 만큼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애를 썼다고 해 왔잖아요. 그런데 국민들이 그렇게 느낍니까, 안 느낍니까? 연세 드신 분들은 그렇게 느끼실 것 같아요.(모두 웃음)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안 느껴요. 젊은 사람들은 ‘우리는 당신이 국민과 결혼하는 걸 원치 않는다. 결혼은 남자랑 해라.’ 이거예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걸 알아주지 않아서 너무너무 억울해 하고 있단 말이에요. 마찬가지예요. 질문자도 아내한테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내는 ‘당신은 짜증이 너무 많다. 별거도 생각해 보자’고 하니까 질문자는 지금 억울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통령이 더 억울할까요? 질문자가 더 억울할까요?”

“제가 더 억울하지요.”(모두 웃음)

“질문자가 더 억울하다고요?(모두 웃음) 아이고, 참.(모두 웃음) 그러니까 질문자처럼 ‘나는 당신을 위해서 일을 했다’는 생각이 사실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우리는 자꾸 ‘내가 남을 위한다’고 생각해서 ‘상대가 나의 이런 정성을 알아줬으면’ 하는데, 그걸 안 알아주면 ‘억울하고 분하다’고 한다는 거예요.

특히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굉장히 희생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중에 자식이 안 알아주면 ‘내가 너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원망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자식한테 물어보면 ‘누가 낳아달라고 했나? 자기네 둘이 좋아서 생기니까 낳은 것이지!’(모두 웃음)라고 한다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타지요.
‘남을 위해서 내가 뭔가 했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로 착한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거예요. 착한 사람은 항상 자기가 희생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 여성분들 중에 특히 연세 높으신 분들은 시집 와서 평생 남편과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걸 몰라주면 화병에 걸리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 자신은 직장을 다니면서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몰라주니까 지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네요. 그런데 질문자가 직장에 가서 스트레스 받는 건 질문자의 문제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왜 집에서 풀었어요? 아내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아내는 ‘나는 집안일 하느라 스트레스 엄청 받아서 남편한테 좀 풀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네가 돈을 버냐? 직장생활을 하냐? 네가 뭐가 괴롭냐? 네가 스트레스 받을 게 뭐가 있냐?’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근데 아내는 ‘남편은 맨날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친구랑 술 마시러 돌아다니는데, 나는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애들만 돌보고 있다. 그러면 주말에라도 나를 좀 데리고 나가서 드라이브도 좀 시켜주고, 밥도 좀 사주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남편은 ‘5일간 죽어라 일을 했는데, 주말엔 집에서 TV 보면서 좀 편히 누워있으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렇게 서로 다른 거예요. 질문자는 자꾸 ‘내가 뭘 했다’는 것만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의 예’를 든 거예요. ‘나만 힘들게 일했다’고 생각하니까 박 전 대통령이나 질문자나 억울하다는 거거든요. 박 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국민들이 당신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우리는 또 당신이
그렇게 사는 걸 원치도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아내가 볼 때는 남편이 집에 와서 짜증을 잘 내고 신경질을 내도, 아이들도 있고 또 남편이 돈도 벌어오니까 지금까지는 봐 준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도 컸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20년 동안 이 짜증과 신경질을 받아 냈는데 앞으로도 2~30년을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이제는 본인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싶어서 별거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일본에는 이런 문제가 벌써 사회적으로 많이 퍼져있다고 해요. 일본 여성들도 결혼생활을 하면서 많이 참고 지내는 문화입니다. 그렇게 참고 참으며 살다가, 언제 이혼하는지 아세요? 남편이 퇴직금을 받는 날 이혼 신청을 해서 퇴직금의 절반을 가지고 간대요. (청중 웃음)

그리고 요즘에는 이혼이 아니라 ‘졸혼’을 한대요. 이혼은 완전히 헤어지는 것인데 그러려면 재산 분할도 해야하고 여러가지로 일이 복잡하니까, 혼인 상태는 그대로 둔 채 남편과 아내가 각자 원하는 삶의 방향을 추구하는 게 졸혼이에요. 이런 문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여성들이 남편에게 숙이고만 사는 시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도 이제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결혼생활의 경험도 20년 가까이 되니까,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아내의 입장도 헤아려보세요. 특별히 뭘 하라는 게 아니라 아내의 어려움도 헤아려보라는 거예요.

물론 아내와의 어려움을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예요. ‘어떻게 아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합니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님은 결혼을 안 해봐서 그런지 그냥 하자는 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아내가 짜증내지 말라고 하면 ‘응, 짜증 안 낼게’하면 되잖아요. 그래놓고도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면 ‘미안해’하면 돼요.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짜증을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아내가 ‘당신 짜증 안 낸다더니 또 짜증낸다’라고 하면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요. 그리고 아내가 밥을 하면 밥하는 동안 방청소라도 하고, 밥 먹고 나면 설거지라도 하면서 돕고 지내면 아내 입장에서도 굳이 별거해서 살고 싶겠어요? 남편이 지금 그렇게 안 해주니까 아내 입장에서는 ‘별거’라는 카드로 협박하는 거예요.

이렇게 아내 입장에서 ‘내가 평생 당신 짜증을 받아내고 살 줄 아느냐’하고 경고가 올 때 빨리 알아차려야 해요. 이럴 때 얼른 ‘알겠습니다’하고 먼저 숙이고 들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큰소리치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요.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예전에는 남자일과 여자일이 따로 있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요. 요즘에는 여성들도 직장 일을 하는 시대잖아요? 그러니 이제는 가사일도 영역을 굳이 나누지 말고 서로 도우면서 산다는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그리고 아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꼭 밖에 나가서 돈을 벌지 않아도 가정에서 자기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취미 생활도 하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일들을 하려고 해요. 남편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걸 인정 안 하고자 하면, 결국 혼자 살아야 해요. 이미 같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이제부터 혼자 살면 그것도 쉽지 않아요. 스님처럼 어릴 때부터 혼자 사는 연습을 하면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혼자 살면 추해져요. (청중 웃음) 아니면 아예 작심하고 머리를 깎으시면 됩니다. (청중 웃음)

항상 두 가지를 염두에 두시면 돼요. 우선 아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따르면 됩니다. 아내가 바라는 게 있으면 ‘못 해’ 하지 말고, 우선 ‘알겠습니다’ 해보세요. 다음은, 현실적으로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는 못하잖아요? 그럴 때는 ‘죄송합니다’ 하면 됩니다. 아내는 ‘말만 그런다’라고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을 쫓아낼 수도 없고 다루기가 어려워져요. (청중 웃음) 그러니 뻣뻣하게 하지 말고 이 두 가지만 잘 하면 큰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별거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거기에 따라가지 말고, 남편 입장에서는 말이라도 ‘내가 당신 없으면 어떻게 살아? 너무 협박하지 마. 나는 죽으나 사나 당신이 해주는 밥 먹으면서 살아야 돼. 대신 내가 다른 일을 조금 더 하도록 할게.’ 하면 괜찮아집니다.”

“네.” (청중)

“설령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하더라도 말은 그렇게 해야 돼요. 성질난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욱하고 나가면 나중에 후회해요. 젊을 때는 때론 그렇게 오기를 내어 본다고 해도, 특히나 나이가 들면 이제 오기 부리지 말고 숙여주는 게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지금까지 결혼생활 하면서 재미를 많이 봤으니까 이제는 그 대가로 고생을 조금 해야 해요. (청중 웃음)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아내를 돕고 협력하면서 잘 살겠습니다.”

“’협력’이 아니라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해야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 웃음, 청중 박수)

경제력 없는 남편, 가장 노릇하는 아내의 고민

“연애를 3년 하고 결혼한 지 3년이 되었는데 남편이 아직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3년 사귈 때 1년은 남편이 일을 했는데 2년은 또 시험 준비를 했어요. 저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만큼 경제적으로 바라지를 했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8개월 쯤 일을 하다가 또 시험 준비를 해서 제가 이제는 아예 책임을 지는 배우자가 돼서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편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될 때까지 도전할 것 같아서,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니까 불안감이 큽니다. 또 사이가 지금은 그나마 낫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사이를 유지할 자신이 없고, 걱정이 많이 됩니다.
한 사람이 일어서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커서 힘들어요. 배우자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점점 존중보다는 걱정이 커지고, 배우자에 대한 믿음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앞으로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질문의 요지는 덕 좀 보려고 결혼했는데 손해 본다는 거예요?”

“예.”(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그러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장사죠. 장사를 하다 보면 손해 볼 때도 있고 이익 볼 때도 있는 거예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손익을 계산하지 말아야 하고, 사랑이 아니라 그냥 장사라고 생각한다면 밑지는 장사는 때려치우면 돼요.”

“이때까지는 그런 생각을 안 해서 경제적으로도 계산하지 않고 결혼할 때도 계산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 낳는 문제에서는 마음이 다릅니다. 남편에게 ‘애들을 키우는 3년 동안만은 아이만 키우고 싶으니 당신이 돈을 버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질문자가 혼자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혼자 살아도 방은 필요하고 밥도 해먹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혼자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남자가 하나 있어서 가끔 잠자리도 하고 데이트할 때 손도 잡고 다닐 수 있으면 좋잖아요.
남편한테 뭔가 덕을 보려고 하는 입장, 즉 내가 원하는 만큼 남편이 안 돼서 실망스러운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남편이 없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혼자 산다고 생각해보면 그래도 있는 게 낫지 않아요?”

“... (질문자 한숨), 결혼하고 나서 매달 20에서 30만 원 정도의 용돈을 주고, 그 외에 남편한테 들어가는 돈도 한 30만 원씩 들어요. 그리고 앞으로 아이를 낳을 거잖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남편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자리를 못 잡는다 해도 질문자가 벌면 되잖아요. 프랑스 같은 데 보면 혼자 사는 여자들이 결혼은 안 하고 아기를 갖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정자은행에 가서 정자를 사다가 인공수정을 해서 아기를 낳는데, 그렇게 정자를 사는 비용이 천만 원도 더 들어요.(청중 웃음) 그런데 이건 공짜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아기 키우는 문제를 그렇게 계산하지 마세요. 아기가 있다면 질문자가 혼자서라도 키워야 하잖아요.”

“네, 맞습니다.”

“남편은 돈은 안 벌어도 그래도 애한테 아빠 역할은 해줄 거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남편이 질문자에게 손해 끼치는 건 특별히 없는 것 같아요. 그 정도 역할 하는데 한 달에 30만 원은 많이 드는 게 아니에요. 그래도 무거운 짐 있을 때는 들어주기도 하고, 손 잡고 데이트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돌봐주고 아빠 역할도 할 거잖아요.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덕 좀 보겠다는 게 안 돼서 실망하는 건 이해가 가요. 하지만...”

“많이 버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만큼만 벌면 좋겠어요.”

“덕을 많이 보든 적게 보든 그 바람은 안 이루어졌지만, 질문자가 결혼해서 손해나는 건 제가 보기엔 별로 없다는 말이에요. 남 보라는 듯이 ‘우리 남편이 잘 나간다’ 이런 행세는 좀 못하긴 하겠지만요.”

“아뇨, 저는 그런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지금 평범하게 살잖아요.”(청중 웃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내 밥벌이 하는데 왜 자기는 자기 밥벌이를 못 하지?’”

“그러면 우리나라의 전업 가정주부들은 다 어떻게 살아요?”

“아, 네...”(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그러니까 남자들이 만날 큰소리 치고 그러잖아요.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집에 있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고, 반면에 여자가 돈을 벌고 남자가 집에 있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하면 그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현대 여성으로서는 안 맞아요. 결국은 자기 권리 다 주장하고 덕도 보겠다는 이야기잖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부부 중 남자가 나이가 더 많은 것은 사람들이 문제 삼지 않는데 여자가 나이가 많으면 문제 삼는 것과 똑같이 사리에 안 맞는 거예요. 여성들이 이제 평등해졌고 여성이 자기 능력 갖고 벌어먹고 살 만하면 질문자가 벌어서 남편도 같이 먹고 사는 게 뭐 어때요? 질문자가 아기를 낳게 되면 남편이 집에서 공부하면서 아기를 돌보고 질문자는 직장 다니면 되죠.(질문자 웃음) 쉽게 얘기하면 남자 하나 잡아서 좀 벗겨먹고 싶었는데 그게 지금 안 되는 거잖아요.”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게 진짜 아니에요. 남편이 하나를 꾸준히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제가 볼 때 공무원 시험 결과가 걱정됩니다.”

“이번엔 보나마나 떨어져요. 신경 쓸 것 없어요.(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얘기 들으면 벌써 알 수 있어요. 걸릴 거라고 생각하면 또 실망하게 돼요. 그래도 술 마시고 바람피우고 행패 부리는 게 아니라 착실히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만하면 됐어요.
옛날식으로 말하면 질문자 사주팔자에 신랑 덕이 없어요.(청중 웃음) 남자를 바꿔봐야 마찬가지고 구관이 명관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마음을 딱 바꿔서 ‘내가 가장이다, 내가 먹여 살린다’ 이런 관점을 딱 가지면 이 부부는 아무 문제가 없는 부부예요.”

“그게 너무 어렵습니다.”(질문자 울먹임)

“뭐가 어려워요? 친구들은 다 덕을 보는데 질문자는 덕을 못 보니까 그렇죠.(청중 웃음) 친구들하고 비교해서 따질 것 없어요. ‘제가 가장입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예, 안 그래도 소녀 가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질문자 웃음)

“무슨 소녀 가장이에요? 아줌마 가장이죠.(질문자 웃음, 청중 웃음)
아침에 108배를 할 때 절하면서 ‘제가 가장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혼 사유가 될 만한 일이 아니에요. 아기가 생겨도 걱정할 것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아기를 가졌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다른 여자들은 다 남편 덕을 보는데 나는 팔자가 세서 남편 덕을 못 보니까 억울하고 분한 건 저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건 공감하지만, 덕 볼 생각만 내려놔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아야 남편도 기를 펴요. 이렇게 몰아붙이면 남편이 계속 위축이 돼서 아내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아빠 로서도 안 좋아요.”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힘을 보태니까 이 사람을 오히려 나약하게 만들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질문자가 너무 남편 기를 죽여요. 그러니까 존중해줘야 해요. 그럴수록 좀 더 존중해줘야 합니다.
남자들이 퇴직하는 경우도 그래요. 돈 벌 때는 싫어도 고분고분하게 말 듣던 여자들이 남편 퇴직하면 물 한 잔 갖다 달라고 해도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이렇게 나가죠? 그러면 남자는 더 위축이 돼요. 직장 잃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문제 삼는 것만 해도 상처가 되는데, ‘돈 못 번다고 마누라까지 나를 무시하나’ 이렇게 생각하면 분노가 막 생기고 살맛이 없어져 버려요. 그러니 그럴 때는 오히려 더 존중해줘야 해요. ‘여보, 그 동안 고생 많이 했어. 그러니 몇 년 쉬어도 돼. 내가 아껴 쓸게.’ 이렇게 격려해야 그게 부부죠.

남자가 무슨 돈 버는 기계예요? 왜 남자만 돈 벌어야 해요? 여성도 생각을 좀 바꿔야 해요. 여성 권리는 다 주장하면서 왜 돈은 남자가 벌어야 해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지금 다들 직장 구할 수 있고 월급에 남녀 차별이 없는 이런 사회에서 질문자가 벌면 질문자가 버는 거죠.
제가 보기에 질문자가 손해난다고 느끼는 건 덕 보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장사 해서 이익을 보려다가 이익을 못 봐서 마음이 안 좋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직은 실제로 손해나는 건 크게 없어요. 아직 폐업 신고할 때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가 가장입니다.’하셔야 해요.

‘제가 가장입니다.’

저 같으면 제가 가장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가장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잖아요. 그래도 물건이라도 하나 들어주고, 외출할 때도 옆에 있어주고, 아기 생기면 놀아주고 아빠 역할도 하고요. 그런 사람이 필요해요.
자꾸 돈 버는 것만 너무 생각하지 마세요. 벌면 벌고, 말면 말고, 그렇게 생각해야 해요. 아껴 쓰면 되죠. 그렇게 해서 어떻게 남녀평등을 하려고 해요? 자립을 하세요. 남편이 자립 못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질문자가 자립을 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덕 보려고 결혼했다면 3년 사귈 때 애초에 알아봤어야죠.(질문자 웃음) 중매로 얼굴도 안 보고 결혼했다면 좀 억울할 수도 있지만, 3년이나 자기가 보고 결정했다면 자기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좀 지세요. 덕 못 본다고 금방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스님.”(질문자 웃음, 청중 박수)

주거니 받거니 진행되는 대화를 보면서 질문자의 입장도 알게 되고 대화를 듣고 있는 내가 가진 생각의 모순들도 살펴지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과 가까이 대화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라 예정했던 시간보다 20분가량 지난 뒤에 강연을 마쳤습니다.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수고하신 행복학교 학생들, 선생님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부산 행복학교 선생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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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쓸께..여보..하며 예를드는 스님말씀들이 넘 애교스러워 잼있습니다~ㅎ

2017-05-20 15:09:59

운정

알아차침. 내려놓음
이 두 가지를 늘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덕분에 관점을 분명하게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7-05-19 14:37:54

무량덕

경제적 자립 외에도 정신적 자립이 중요함을 다시 확인합니다. 서로 위하며 아끼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5-19 13: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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