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5. 18 행복한 대화 _ 당진 종합복지타운 대강당
이것인지, 저것인지 선택이 어려울 때는?

아침 햇살이 무척이나 밝은 날입니다. 아침 일과 후, 텃밭의 상추와 고소 등 채소를 솎아주고 웃밭에 올라가 주변 정리를 하였습니다. 토마토 가지에 작은 토마토들이 달리면서 줄기가 늘어져 끈으로 줄기가 일어설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멀칭이 없는 두둑에는 잡초가 많이 자라는 것에 대비해서 현수막 천을 깔아 두었습니다.

얼마 전에 심었던 고구마 순들은 말라붙은 모습이었지만 그 중에도 적응을 하여 새 잎을 틔우는 것도 있었습니다.

옥수수는 새 잎을 열심히 틔우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주변 정리를 마무리 하고 조금 일찍 나섰습니다.
오늘은 5.18 광주민주항쟁 기념일이라 광주 국립 5.18 민주 묘지에 들렀다 강연장인 당진으로 가기로 일정을 계획하였습니다. 두북에서 출발하여 4시간가량 후, 광주 국립 5.18 민주 묘지에 도착하였습니다.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였습니다. 스님은 분향소 앞에서 방문한 학생들과 함께 참배한 후 묘역으로 올라가 참배하였습니다.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를 마친 후, 스님은 5.18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까지 가서 참배하였습니다.


“이 곳이 당시 공수부대원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들의 시체를 쓰레기차에 실어와 암매장한 곳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스님은 묘역을 돌아보며 이야기하였습니다. 참배하고 나서는 스님을 보고 원불교 교무님, 뉴욕에서 오신 교포 내외분, 그리고 기념일을 맞아 참배하러 온 정토회 신도님도 계셔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더욱 뜨거워진 햇살을 느끼며 강연장인 당진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당진으로 가는 동안 스님은 5.18광주민중항쟁의 기사를 읽으며 간간히 눈물을 훔쳤습니다. 아픈 역사인 5.18광주민중항쟁 위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가슴 절절히 느끼는 날입니다.

오늘 ‘행복한 대화’ 강연장인 당진 종합복지타운 대강당에는 행복학교 선생님들과 학생, 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강연장 앞 로비에서 영상과 안내문으로 열심히 홍보하고 계시는 행복학교 학생들을 만나니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7시, 강연이 시작되어 사회자가 스님을 모셨습니다. 환호하는 소리에 스님이 부끄러운 웃음을 웃었습니다. 오늘은 모두 9명의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는 학생의 질문을 싣습니다.

“저는 학생인데, 두 가지 진로를 두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중 이걸 선택할지, 저걸 선택할지 망설이는 거예요?”

“네.”

“그럴 때는 동전 한 쪽에 A라고 쓰고 다른 쪽에 B라고 쓴 다음, 던져서 나오는 대로 선택하면 돼요. 아니면 손바닥에 침을 뱉어서 튀는 쪽으로 선택을 해도 됩니다. (질문자와 청중 웃음)
스님이 어릴 때에는 그렇게 선택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안 하나요? 길을 가다가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이 맞는지 잘 모를 때 침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곤 했어요. (청중 웃음) 아주 간단한데 뭘 그런 걸 묻고 그래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아직 스님이 무슨 이야기 하는 지 못 알아들었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너무 근거가 없는 방법인 것 같아서 그래요?”

“…”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주 과학적인 방법이에요. 왜냐하면 질문자 마음속에서 두 가지 선택을 두고 어느 한 쪽으로 이미 70:30 혹은 80:20 정도로 기울었다면 스님한테 와서 안 물었을 거예요.

가령, 결혼하기 전에 이 남자와 결혼하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80이고, 안 좋겠다 싶은 부분이 20이면 본인이 알아서 하는 쪽으로 결정을 합니다. 반대로 좋은 부분이 20이고 안 좋은 부분이 80이어도 안 하는 쪽으로 스스로 결정을 해요.

그런데 고민이라면서 물을 때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거의 50:50으로 비슷할 때입니다. 꼭 반반은 아니더라도 51:49이거나 52:48 이렇게 50:50에 근접하면 어느 선택이 좋을지 사람이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아무리 고민을 해도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요. 밤에 잠들기 전에는 이렇게 선택했다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면 또 다른 선택이 더 좋아 보여요.

그만큼 양쪽의 비중이 비슷하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그만큼 양쪽 비중이 비슷하니까 어떤 선택을 해도 별 차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전을 던져서 결정을 해도 되는 거예요. 둘 다 장단점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오히려 가볍게 선택을 해버려야지, 밤새 고민한다고 결론이 쉽게 나지 않고 설령 결론이 난다고 해도 이 선택을 하면 저런 아쉬움이 있고, 저 선택을 하면 이런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후회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금 질문자의 고민은 사실 ‘어떤 선택이 더 좋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에 따른 책임의 문제입니다. 선택을 두고 고민이 된다면 질문자 마음속에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만약 누군가가 결혼을 하고 평범하게 살지,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될지 고민한다면, 그 마음을 잘 살펴보면 결혼을 했을 때 따르는 어려운 점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스님으로 혼자 살 때 마주하게 될 어려움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혼자 살까 같이 살까, 이럴까 저럴까’하며 망설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건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만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만 있으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괜찮아요. 혼자 살겠다고 결정하면 혼자 사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감수하면 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함께 살겠다고 하면 그 사람과 맞추겠다는 각오를 하면 돼요.

결혼해서 사는데 혼자 사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살 수는 없잖아요? 입맛, 방의 온도 등 작은 것부터 하나씩 맞추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싫다면 혼자 살아야 해요. 그러면 혼자 사는 편안함을 택하는 대신, 외로움이 따른다든지 둘이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덜 효율적이라든지 하는 부분을 감수해야 합니다. 둘이 살면 밥도 한 번 해서 둘이 같이 먹으면 되니까 번갈아 가면서 밥을 해도 되고, 한 방에서 둘이 같이 지내면 방 값도 따로 안 내도 되니까 여러모로 효율적인 부분이 많아요. 또 그런 효율적인 장점이 있는 반면 둘의 다름을 어떻게 극복하고 맞추면서 살 것인가 하는 부분이 남는 거예요. 그러니 이건 어느 결정이 낫다고 할 수 없고, 선택에 따르는 문제를 극복할 의지가 있는가, 그렇게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예요.”

“그러면 저는 덜 후회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면 될까요?”

“질문자가 돈을 빌릴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돈을 빌리고 싶다는 것은 지금 현실이 궁하다는 말이잖아요? 대신 빌린 만큼 이자까지 더해서 갚아야 해요. 즉, 지금 궁한 걸 생각하면 돈을 빌려야 할 것 같고, 이자까지 쳐서 갚을 것을 생각하면 빌리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럴 때는 어떤 결정을 하든지, 돈을 빌리기로 하면 이자까지 쳐서 갚은 각오를 해야 하고, 그 책임이 싫으면 지금 궁하더라도 빌리지 않아야 하는 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청중 웃음과 박수)

“아마 지금 질문한 학생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여기 계신 분들도 모두 이런 고민을 매일 하면서 살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이건 ‘어떤 선택이 옳은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이런 고민이 생기면 점쟁이를 찾아가서 묻곤 하죠? (청중 웃음)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런 고민은 장단점이 엇비슷할 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점쟁이는 아무렇게나 대답해주어도 괜찮아요. (청중 웃음) 어차피 51:49로 고민하는 거니까 점쟁이의 역할은 그냥 한 쪽으로 기울게 해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에게는 나중에 점쟁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실은 생기죠. (청중 웃음)

이렇게 스님한테 와서 묻는 이유도 나중에 ‘스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요?’ 하며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아요. (청중 웃음)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간섭하고 싶지가 않아요. (청중 웃음)

이렇게 망설임이 생길 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의 비중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비중의 장?단점을 두고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어요. 쉬운 예로 ‘연애는 하고 싶은데 맞추기는 싫다’거나 ‘같이 살고 싶은데 아이가 생길까봐 겁난다’ 이런 것과 같아요. 이는 선택에 따르는 결과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질문자들 중에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에 대해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결혼은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하니 축하도 못 받고 재정지원도 못 받을까 봐 망설이는 거예요. 그럴 때는 부모님이 반대하더라도 내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면 부모님으로부터의 지원을 포기하면 됩니다. 내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이면 돼요. 부모님을 원망할 필요도 없어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니 ‘어머니 아버지 마음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사람이 좋으니 이 사람과 결혼하겠습니다.’ 하고 결정을 내리면 됩니다.

그러니 망설이는 것은 왜 그렇다고요?”

“책임 안 지려는 거요.”

“네, 망설이는 것은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안 지려는 거예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를 합니다. 후회는 바로 무책임성에 의한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해요. 이걸 다른 말로 ‘인연을 지었으면 그에 따른 과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즉,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언제든지 맞닥뜨리는 선택의 문제. 스님과 학생의 대화로 다시 한 번 관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장소 제약으로 책 사인회는 없이 간단하게 강연이 마쳤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행복학교 학생과 선생님들과 함께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차에 올랐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울에서 회의가 있어 서울로 차를 달렸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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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진

늘 선택할 때 마다 엄청 고민을 하는 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그러한 행동이 나옴을 알아차립니다. 가볍게 선택하고 그 과보는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2017-07-12 09:50:27

월광

5.18 희생자님들께 머리숙여 참회드립니다. 빛으로 다시 돌아 오소서.
스승님! 고맙습니다. 강연 준비해 주신 분들도 고맙습니다.

2017-05-22 18:41:00

jungan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2017-05-22 18: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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