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9.8 해외 즉문즉설 강연(12) 호주 멜번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하면 의절을 해버리게 되는데... 어쩌죠?

새벽 3시 기상하여 하루를 시작합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일정은 수행팀도 새벽 3시나 3시 30분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날은 스님은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새벽 5시에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새벽에 정갈하게 차려진 정성스런 음식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봉사자들이 스님께 공양 올린 음식의 반도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주인인 허청님뿐만 아니라 봉사자들이 스님께 정성스럽게 올리는 공양으로 음식 한두 가지씩 준비하여 미리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극진히 스님께 공양 올리는 모습이 감동스럽고 고맙습니다. 유튜브 동영상 법문으로 스님을 만나지만 스님의 법문을 듣고 삶이 행복해지고 바뀐 덕분이라 생각됩니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싸는데 최말순 보살님이 가방에서 뭔가 하나씩을 꺼내어서 수행팀에서 나눠줍니다. 어제 밤에 강연장에서 숙소로 돌아올 때 주차장에서 한 분이 자기 딸이 준비했다고 건네준 것이었습니다. 한명당 하나씩‘Goody Bag’을 준비하였는데 사탕, 젤리, 초콜렛등이 들어있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쪽지에 감사합니다. 하트표시, 김다운 올림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매일 매일 스님의 법문에 삶이 바뀌고 행복해진 분들의 감동과 정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남반구로 내려오니 계절이 달라졌습니다. 퍼스는 그런대로 따뜻했지만 멜번은 추울 것이라 하여 모두들 옷을 두툼하게 입고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출발하기에 앞서 허청님 부부뿐만 아니라 새벽에 운전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촬영을 하며 ‘퍼스법회 파이팅!’을 외쳐보았습니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어제 저녁에 보았던 보름달이 휘영청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공항에서는 한 사람당 짐을 20kg 한 개씩만 보낼 수 있고, 기내로 들고 들어가는 것도 작은 가방 두개 무게 합쳐 7kg만 보낼수 있다고 합니다. 공용짐 가방도 있고, 촬영장비도 있어 2개를 더 보낼려고 하니 호주달러로 140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합니다. 공항에서 20kg이 안되는 가방에 공용짐들을 옮겨 넣고 한 사람당 작은 가방 2개에 총무게 7kg이 넘지않도록 부랴부랴 짐을 새로 챙겼습니다.

짐을 부치고 수속을 밟고 있으니 드미트리 신부님께서 배웅을 나오셨습니다. 신부님은 어제 스님법문이 너무 좋아 밤새 설레였다고 하면서 소년처럼 환한 웃음으로 스님을 배웅하였습니다. 배웅 나온 봉사자들과 신부님께 인사하고 게이트로 들어왔습니다.

8시 15분 멜번행 비행기를 타고 3시간 30분 비행하였지만 +2시간의 시차로 인하여 1시 45분에 멜번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짐을 찾아 나오니 오늘 멜번강연의 총괄책임자인 김승주님과 김삼구님, 박현주님이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일행과 반갑게 인사하고 바로 숙소인 멜번 법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멜번(Melbourne)은 빅토리아주의 주도로서 호주에서 시드니 다음으로 큰 도시입니다. 멜번의 메트로권은 총 79개의 소도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7년 멜번 시 소개에 따르면, 근교를 포함한 대도시권의 크기는 9,990.5 km2, 인구는 약 450만이라고 합니다. 이 중 한인들은 약 2만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멜번은 시드니보다 남쪽에 있어 호주 5대 도시 중에서 가장 춥다고 합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3월 꽃샘추위처럼 추위가 찾아옵니다. 길가에는 벚꽂과 목련도 피어있었지만 이번 주에 찾아온 갑작스런 추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멜번은 남위 37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날씨는 제주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멜번 법당에 도착하니 부총무인 유영진 보살님이 스님과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법당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로 참배하였습니다. 이후 멜번법당을 찾은 스님께 봉사자들이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스님은 불대 졸업생은 몇 명인지, 경전반 학생은 몇 명인지, 현재 불대생은 몇 명인지 등 공부는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출신 경전반생인 율리아님께는 스님 강의 내용이 어렵지는 않는 지, 이해는 잘 되는지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율리아님은 한자어는 조금 어렵지만 현재로는 내용은 이해가 된다고 답변하기도 하였습니다.

가볍게 점심식사를 하고 스님은 강연시간 전까지 잠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늘 멜번 강연이 열리는 트리니티 그램마스쿨로 출발하니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고 환영하였습니다.

소개 영상이 나오고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연단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참가자들께 저녁식사는 했는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서두를 열었습니다.

“잠깐 영상에서도 나왔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문제를 두고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제가 이번 해외강연 중간쯤에 오다가 남편과 소통이 잘 안된다면서 어떻게 하면 남편과 소통을 잘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제가 이렇게 물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잘 한 분인가요?
(아닙니다)
국민이 대통령 말을 안들어서 소통이 안되었나요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 말을 잘 안들어 소통이 안되었나요?
(대통령이 국민들 말을 안들어서 소통이 안되었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남편 말을 안 들어서 소통이 안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남편이 당신 말을 안들어서 소통이 안되는 것인가요?
(남편이 내 말을 안들어서 소통이 안되었어요.)

이렇게 본인 얘기가 되면 이렇게 헷갈립니다. 그러나 소통은 들어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말을 안들어주어 소통이 안 된 것입니다.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입니다.

‘나는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려면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줄 때 소통을 잘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내 말을 잘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안들어줘도 내가 들어주면 소통이 되는 것입니다. 소통을 잘 하고 싶다면 내 말은 적게 하고 많이 들어주면 됩니다.

세상이 꼭 내 뜻대로 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은 세상 원리대로 흘러갑니다. 내가 비가 오라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비가 오기도 하고 안오기도 합니다. 여기에 나는 적응만 하면 됩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고 날이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고 더우면 외투를 벗으면 됩니다. 날씨가 덥고 춥고 하는 것은 나를 괴롭힐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괴롭힐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 뜻대로 안된다고 괴로워 합니다.

일어나는 현상에 내가 주체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대화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고 그 다음에 제가 얘기를 하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오늘 멜번강연에는 약 160여명이 참가하였고, 강연자원봉사자는 30여명이 되었습니다. 어린이들도 희망티셔츠를 입고 함께 봉사를 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입니다.

남자친구와 2년째 연애 중인데 주위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분, 상대방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과 의절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묻는 분, 고등학교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혼자 계신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좋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묻는 분, 예전에 잠수사로 구조활동을 했었는데 구조를 못한 죄책감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 지 묻는 분, 중요하고 해야 되는 순간에 도망가고 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등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내일 모레면 60살이 되는데요, 제 성격 중 악습 하나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주변으로부터 성격이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 편인데, 상대와 잘 지내다가도 단 한가지, 제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하면 의절을 해버려요. 상한 자존심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아요. 그냥 그 즉시 제 인생에서 상대방을 지워버립니다. 어느 날은 그렇게 의절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꽤 많아서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바쁘게 살 때는 제 삶을 돌이켜 볼 시간이 없었는데, 아이가 독립을 하고 나니 제 삶을 돌아보게 되고 이것이 저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상대방에게 일어나는 이런 저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풀고 싶어요?”

“네.”

“그럼 풀면 돼죠.” (청중 웃음)

“그게 쉽지 않아요. 당시 제 기분은 그냥 의절하고 싶었고, 상대방과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상대방 입장에서는 제가 토라졌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는데, 저는 ‘풀어야지’ 하면서도 생각대로 잘 안 돼요.”

“이건 좋다 나쁘다하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예요. 다만 풀고 싶으면 풀면 되고, 안 풀고 싶으면 안 풀면 돼요. 풀고 싶지 않아서 안 풀리는 것이지, 풀고 싶은데 안 풀리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나는 풀고 싶다며 다가갔는데 상대방이 풀지 않아서 안 풀리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풀고 싶은데 내가 잘 안 풀린다는 것은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요. 굳이 말로 표현하려면 ‘생각으로는 풀고 싶은데 마음으로는 잘 안 풀린다’ 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에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안 일어나집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청중 웃음) 다리를 다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어나고 싶으면 그냥 일어나면 되지 안 일어나지는 건 없잖아요. 그런 말을 할 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일어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여러분들이 스님한테 질문을 할 때도 대부분 ‘일어나고 싶은데 잘 안 일어나져요’ 라고 말합니다. 그런 말들은 모두 모순입니다.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가 잘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청년들도 많은데,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면 되지 하고 싶은데도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청중 웃음) 그런 경우에도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하기 싫은 거예요. 싫은 것은 마음이고, 해야 된다는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과 마음은 이렇게 따로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것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먹고 싶은 경우도 있고, 저것을 먹어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먹기 싫은 경우도 있고, 강연을 듣고 보시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까워서 보시하기 싫은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때 여러분들은 대개 ‘보시를 하고는 싶은데요’ 라고 이야기해요.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잖아요. (청중 웃음) ‘좋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보시를 해야 되지 않나’ 하고 생각은 일어나는데, 마음에서는 돈이 아까우니 하기 싫은 감정이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의 경우도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보니까 친한 사람과 이런 이유로 토라지는 것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에서는 여전히 꼴 보기 싫은 거예요.”

“네,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의절하고 사는 게 편한 점도 있으니 의절하고 사는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살아도 잘못된 건 없나요?”

“잘못된 건 없어요.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돼요. 질문자가 그렇게 산다고 문제제기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저 혼자서 그걸 문제 삼으며 괴로워하는 거죠. 우리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청중 웃음)

“그렇긴 하죠.”

“질문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데, 그것이 왜 도리어 질문자에게 문제가 돼요?”

“제 행동에 그런 마음이 드러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거절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느낌을 받겠죠. 비록 나는 의절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것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데, 상대가 바보예요?” (청중 웃음)

“아, 이게 욕심이네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

“자기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하는데, 상대방은 무슨 말이 질문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지 알아요, 몰라요?”

“…”

“질문자는 어떤 종류의 말을 들을 때 자존심이 상하는지 주변 친구들한테 미리 다 공지를 해두었어요? (모두 웃음) 미리 공지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잘 모를 거잖아요.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질문자는 자존심 상했다며 의절을 하니까 상대방 입장에서는 황당하겠죠. 이런 걸 두고 성질이 더럽다고 해요. (청중 웃음)

질문자가 ‘이러이러한 부분은 내가 힘들어 하는 부분이니, 그런 이야기는 안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미리 알려주었다면 모르겠지만, 질문자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상대방이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잘 나누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의절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황당할 거잖아요?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 사람 좀 이상해’, ‘그 사람 성질 더러워’ 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네. 스님 말씀은 이해했어요. 그런데 제가 편한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까지 자기 편한 대로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뭘 새삼스럽게 또 편한 대로 살겠다는 거예요? (청중 웃음) 지금까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왔는데 오늘 이걸 물었다는 건 뭔가 불편하다는 이야기겠죠. 질문하다가 왜 갑자기 편한 대로 살아야겠다며 꼬리를 내려요? (청중 웃음) 질문자가 정말로 편했다면 질문을 하라고 해도 질문할 게 없어서 안했을 거잖아요.”

“지금까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오긴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자존심이 상해요?”

“저는 제가 아는 어떤 사실에 대해서 상대방이 모를 때, 제가 아는 척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도와주고 싶어서 ‘이렇게 해 봐, 저렇게 해 봐’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이 ‘아는 척 하지마, 잘난 척 하지마’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일 때 자존심이 상해요. 제가 아는 척하거나 잘난 척하기 위해서 그랬다면 화가 안 났을 것 같은데, 저는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건데 제 설명이 상대방에게 그렇게 다가간 것이 화가 납니다.”

“잘난 척 하지마라는 정도만 말했으면 양호한 거예요. 저 같았으면 ‘잘난 척 하지마. 그래, 니 똥 굵다’ 라고 했을 것 같아요. (청중 웃음) 그런데 그 사람은 잘난 척 하지마라고만 했으니 점잖게 말한 거예요. 경상도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니 똥 굵다’ 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해야죠.” (청중 웃음)

“네, 그런 말들 뿐만 아니라 ‘너는 아직 애다’ 뭐 이런 식의 말을 하면 제가 눈이 핑 도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면 심리적으로 분석해보면 대부분 과거의 트라우마가 원인인 경우가 많아요. 과거에 그런 말에 의해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질문자가 어릴 때 기분이 좋아서 선생님이나 엄마한테 자기 자랑도 하면서 막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나 엄마가 ‘야, 잘난 척 좀 하지마’ 라고 해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으면, 이런 사건 자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지만 그때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어요. 머리에서 사건은 잊혀지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다가 비슷한 자극이 들어오면 금방 강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런 걸 ‘트라우마’ 라고 표현합니다. 우리의 성격은 대부분 마음의 상처와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말에 상처를 입는지 몇 가지를 찾아서 정신과 상담을 통해 분석을 하거나, 정토회에서 하는 ‘깨달음의 장’ 수련에 참가해서 탐구를 해보세요. ‘왜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괴로운가’, ‘왜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화가 나는가’에 대해 반복적으로 탐구하다보면 결국 그 원인을 찾아 들어갈 수 있어요. 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면 그 다음에는 그런 말을 들어도 반응을 안 하거나, 여전히 반응하더라도 그 반응의 정도가 훨씬 적어집니다. 그런 다음에는 반응을 하더라도 ‘아, 내 상처가 또 작동했구나’ 하고 돌이킬 수 있게 됩니다.

유독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와 관련된 과거의 상처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격렬하게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나이가 드신 분들은 어릴 때 공부를 잘해도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한 분들이 있어요. 특히 공부를 잘했는데도 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자기보다 공부를 못했는데 대학교에 간 사람들을 보며 학벌 컴플렉스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임에 나가서 누군가가 ‘너 몇 학번이니?’ 하고 물으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대학 나온 사람들은 ‘너 몇 살이니?’하고 묻지 않고 학번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럴 때 학벌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여기가 동창회야?’ 하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물어보면 마음의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면 이번을 계기로 어떤 말에 격렬하게 반응을 보이는지 연구해서 치유하면, 그런 반응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민감한 반응을 당연시 하거나 정당화 해왔을 거예요. 의절한 다음에도 속으로는 ‘너는 내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나는 이 관계를 끝낼거야. 이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보니 그게 꼭 잘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으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질문했을 거예요. 다시 되물으니 그래도 잘한 것 같다고 우겼는데(청중 웃음) 이건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과거에 입은 상처가 반응한 것일 뿐이에요.

감정적인 반응을 따라가면 대개 인생의 손실을 가져오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일은 나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이것이 과거의 상처로 인한 병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반응이 일어날 때 억지로 참고 관계를 맺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참으면 또 참는 것이 질문자에게 스트레스가 돼요. 자신이 이렇게 반응하는 원인을 알고 그것을 치유하면 차츰 반응이 약해집니다. 참아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반응이 약해지는 거예요. 설령 여전히 반응을 하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남이 ‘너 성격 좀 고쳐라’ 라고 한다고 해서 성격이 고쳐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돌이켜봤을 때 ‘이건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고 느껴질 때 변화의 기회가 생깁니다. 이렇게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을 자각(自覺)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자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고도의 작용이 바로 이 ‘자각’, ‘알아차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운명 지어진 대로 노예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바로 거기서부터 노예처럼 안 움직일 가능성이 생깁니다. 내게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에는 내게 주어진 길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길의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화가 나는지 알지 못하면, 이유도 모른 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를 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화가 나는지 알면 그 말에 화내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반드시 화내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화내지 않을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각(自覺)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정신현상입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의 핵심도 바로 이 자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 ‘순간순간 깨어있기’, ‘순간순간 알아차리기’ 등 수행에서 많이 쓰이는 말들을 모두 지금의 상태를 자각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두 지금 자기의 생각과 마음에 깨어있으라는 의미예요. 깨어있으면 자기 조절이 가능해집니다. 반면 깨어있지 못하면 프로그램이 짜여진 대로 반응하고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때부터 그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정신과 치료에서 우울증을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첫 출발점이 스스로 우울증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각하면 우울증 치료가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내가 왜 우울증이야?’ 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치료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치료도 거부하고 약도 거부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만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거의 상처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그때부터 치유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수행에서는 자발성, 자각, 각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줘도 생각으로는 수긍을 해도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아니야’ 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옛말에 ‘작심삼일’이 있잖아요. 마음이 아니라 생각이나 의지로 바꾸려는 것은 3일을 버티지 못하고 습관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의미예요. 습관이나 마음을 바꾸는 첫발은 바로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오랫동안 길러온 습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꾸준히 해야 습관이 조금씩 바뀌지 한 번 바짝 마음을 낸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각오하고 결심하는 방식은 그리 좋지 않아요. 반면 스스로 늘 알아차리는 자각과 꾸준함이 있으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질문자가 ‘잘난 척 한다’는 말에 상처를 입는다면 그 말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신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해요.”

“잘난 척 한다고 하면 화 안 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대다수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질문자처럼 의절하지는 않아요. (청중 웃음)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 대한 상처나 트라우마가 없으니까 질문자처럼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대화 도중에 욕설을 들어도 그냥 기분 나빠하고 말지 의절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누군가 욕설을 듣고서 격렬하게 반응하고 의절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 욕설과 관련된 상처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일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말조심도 해야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상적인 말이 자칫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요.

그렇다고 세상을 살면서 입 다물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상처를 자각하고 치유해 나가야 하고, 평소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는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거나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릴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을 하며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면 ‘성질 더럽다’ 라고만 하지 말고, ‘아, 저 사람은 이와 관련된 상처가 있을 수 있겠다’ 이해하고 앞으로는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치유도 하지 않고 남에 대한 배려도 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인간 관계가 계속 나빠지기만 합니다.

인간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입니다. 가진 돈만이 재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인간관계에도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연애하다가 결혼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그 관계를 단절해버리면 그건 여러분들에게 손실이에요.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지난 몇 개월, 몇 년 동안 나와 서로 좋아한 사람은 지구상에 몇 되지 않잖아요? 이혼했더라도 나와 같이 얼마간이라도 같이 살아본 사람은 지구상에 몇 되지 않습니다. 나랑 결혼한 사람은 지구상에 한 두 사람 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 관계를 모두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대개 이런 관계를 원한 관계로 만들어버려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주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주변 사람과 단절하는 행동은 결국 질문자에게 큰 손실을 가져옵니다. 그리 자랑할 만한 좋은 점이 아니니까 잘 치유해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언니한테 이야기했더니 ‘너 그러다 고독사(孤獨死)한다’ 라고 했어요.”

“자꾸 그러면 고독사 해요.” (청중 웃음)

5명이 질문을 했지만 2시간 20분 동안 대화를 이어나가 9시 20분이 되어야 강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마치고 바로 책 사인회를 가졌습니다.

스님이 책사인회를 하는 동안 오늘 소개된 질문자에게 소감이 어떤 지 물어보니 스님 말씀을 듣고 많이 편안해지고 시원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님께 질문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한 질문자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스님이 일상에서 꾸준히 연습해보라 하였으니 그렇게 꾸준히 해봐야겠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인 두 딸과 함께 온 어머니에게 소감을 물으니 스님 유튜브 법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힘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뵐 수 있어 좋고 스님의 답변은 늘 명쾌해서 좋다고 합니다. 두 따님에게도 스님 말씀이 어렵지 않냐고 물어보니 공감할 수 있는 답변이 많아 조금 어렵지만 좋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대를 넘어서서 스님의 법문은 우리에게 행복과 자유를 가져다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고 악수하면서 수고에 격려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강연의 총괄책임자 김승주님께는 스님의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멜번 한인회장님이 법문을 듣고 끝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스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부터는 한인회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이 곳까지 찾아주신 스님께 감사를 표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께 먼저 숙소로 가겠다고 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묘덕법사님과 정은지 지구장도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한 후 숙소인 법당으로 귀가하였습니다. 법당에 도착하여 유영진 총무님이 준비한 음식으로 가볍게 요기하고 내일 일정을 공유하니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 6시에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오전 3시 30분에 법당에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꼬박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멜번 일정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 갑니다. 내일은 시드니 강연을 마치고 바로 공항으로 가 독일 베를린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다들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시드니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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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에서

법륜스님 고맙습니다. 이제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의 목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시고, 스님의
강론은 답답한 속을 후련하게 뚫어주시고 또 씻어주십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말씀으로 광명을 비추어주시길 빕니다. 성불하소서! _()_

2017-10-28 13:35:29

감로음

잘 읽었습니다. 스님과 이 글을 올려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공감이 됩니다.
연락 안하는 친구들이 떠오르네요...
내 성질 더러운 줄 돌아보고, 내 안의 상처 살핍니다.

2017-09-12 23:11:44

구름

빠듯하고 바쁜 일정속에서 이렇게 법문을 올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잦은이동과 시차 날씨 변화에 지치실법도 한데...
오늘 법문도 한자한자 감사히 읽었습니다~~~

2017-09-12 10: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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