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0.2 해외 즉문즉설 강연(36) 시애틀
남편은 주부, 나는 직장생활... 남편이 점점 우울해져서 걱정입니다

시애틀로 이동하기 위해 새벽 3시 30분 휴스턴 조지부시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2시 30분부터 움직임이 부산합니다. 다들 어제밤에 늦게 잠들었는데 거의 밤을 새운 것 같습니다. 따뜻한 누룽지와 된장국으로 간단히 속을 데웠습니다. 요기를 한 후 스님은 정토회원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우선 숙소를 제공한 연수진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하였습니다. 연수진님은 휴스턴 불교대학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휴스턴 강연 총괄을 맡아 허리케인 하비 피해 속에서도 회원들과 합심하여 강연을 잘 마친 부총무 임선희님께도 스님은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새벽부터 공항까지 운전지원을 위해 나온 전성열님께도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또한, 휴스턴법회 수행법회팀장을 맡아 부총무가 잠시 자리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법회를 잘 이끌고 이번 강연의 수행팀을 지원하고 스님 식사준비를 해주신 이윤주님께 인사를 전했습니다. 어제 이윤주님이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서 스님이 따로 인사말을 전하지 못해 공항운전지원 나온 남편인 전성열님께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북미동부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늘 아침 비행기로 뉴욕으로 돌아가는 해외지부 사무국장 이정인님과 북미동부 지구장 임금이님께도 수고 많았다고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숙소에 있던 모든 정토행자들이 스님이 건강히 해외순회강연을 마치길 기원하며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시간이면 늘 마음이 먹먹해지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스님, 이제 이 곳은 걱정마시고 다른 곳으로 가세요. 여기서 행복을 전하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전법하는 일은 저희가 부지런히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고통받고 힘들어 하는 모든 중생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때까지 이 곳은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부총무 임선희님과 전성열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하고 수속대로 들어와서 짐을 부쳤습니다. 스님은 짐을 부치는 짧은 시간에도 자리를 잡고 원고를 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출국게이트 앞에서도 스님은 비행기 탑승직전까지 원고교정업무를 보았습니다.

6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4시간 30분 비행 후 예정보다 조금 이른 시간인 8시 45분에 시애틀에 도착하였습니다. 시애틀이 가까이 다가오는지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 구름 위로 설산이 보입니다. 레이니에 산입니다.

곧 도착할 모양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짐 찾는 곳으로 오니 북미서부지구 지구장인 주상휴님과 김학로님, 하주홍님이 스님과 수행팀 마중을 나와 있어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시애틀법당은 공항과 10분거리에 있어 짐을 찾고 바로 법당에 오니 아직 10시도 안되었습니다. 시애틀에 도착하니 바람이 찹니다. 그 동안 가을날씨답지 않게 다니는 지역마다 평년보다 더워 추위 걱정은 없었고, 겨울옷을 꺼낼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애틀은 안개가 잔뜩 끼어있고 날씨도 비교적 쌀쌀하였습니다.

우선 스님은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공양간에서 식사준비하고 있던 정토행자들 모두 법당으로 와 시애틀법당을 1년만에 찾은 스님께 삼배로 인사드렸습니다.

곧이어 회원님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겸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식사 후 주변을 산책하며 법당주변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아직 야생 산딸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산책 후 스님은 숙소로 돌아와 수행팀에게 그 동안 북미지역을 어떻게 다녔는지 동부지역은 어디인지, 이번 서부일정에서 다닐 지역은 어디인지등을 지도를 보면서 상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내일은 캐나다 밴쿠버로 오전에 올라갔다가 하루에 2개 강연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연 후 밤에 야간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LA까지 고단한 일정이 계속됩니다. 오랜만에 일정이 비어 휴식도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스님은 여러가지 업무도 보면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오전에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는 안개가 끼여있고 날씨가 쌀쌀하였는데 오후로 들어가면서 기온도 올라가고 하늘도 아주 맑아졌습니다.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차가 많이 막힌다고 하여 조금 일찍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시애틀은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큰도시로 시내인구는 약 60만명, 대도시권의 인구는 360만 명으로 미국에서 15번째로 큰 메트로폴리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시애틀 메트로폴리탄 지역은 시애틀을 중간으로 북쪽에 에버렛지역, 남쪽에는 타코마지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약 60마일의 길이입니다. 시애틀 국제공항의 이름은 시애틀-타코마 공항입니다. 시애틀지역은 미 서부에서도 LA,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캐나다 국경에서 남쪽으로 160km떨어져 있습니다. 시애틀은 아시아 무역을 위한 주요 관문으로 컨테이너 처리량으로 미국에서 8번째, 북미까지 합쳐서는 9번째로 큰 항구입니다. 한인들은 시애틀뿐만 아니라 남쪽의 타코마지역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민 온 분들은 타코마지역에 정착하였으나 현재는 한인들이 조금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장은 Lakewood시에 위치한 Clover Park Technical College의 Conference room에서 있었습니다 Lakewood는 타코마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레이니에 산은 4392m인데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근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미국 본토 산 중에서 가장 넓은 빙하지대를 갖고 있으며 90평방킬로미터는 만년설로 덮여 있습니다. 정상이 돌출해 있어 시애틀 지역 어디를 가도 배경그림처럼 따라다닙니다. 덕분에 시애틀메트로 남쪽에 위치한 강연장으로 가는 내내 왼쪽편으로 레이니에 산이 보였으며 학교에 도착해서도 손에 잡힐듯이 레이니에 설산을 아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도 건물 밖으로 나와 레이니네 산을 보며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타코마 지역은 2014년 백강때 이후로 처음 강연을 합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학교 컨퍼런스 룸에서 강연을 하니 주변 부대시설도 좋아 강연전 휴식하고 업무보기도 좋았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나오자 스님은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추석이 가까워오네요. 지금 여기 오면서 보니 레이니에 산에 보름달이 걸렸어요. 이런 좋은 날에 오늘 우리는 불행한 소식을 들었어요. 라스베가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어요. 59명이 사망하고 400여명 이상이 다쳤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다친 분들, 그리고 그 가족분들을 위로하며,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잠시 묵념을 하겠습니다. (묵념)

어제 라스베가스 참사처럼 우리가 사는 인생은 예기치 못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어제 휴스턴에서 강의를 했는데 이번 휴스턴 자연재해는 천년만에 생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휴스턴 도시가 생기고 난 이래로 처음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역사가 200여년밖에 안되어서 처음 겪은 일인 것 같애요. 그러다 보니 수재를 입은 것도 문제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홍수 피해 보험을 안들었나봐요. 물에 잠기면 나무, 가구, 바닥 등 집을 거의 새로 짓다시피 수리를 해야 하는데 보험혜택을 전혀 못받는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했어요. 휴스턴이 텍사스에서도 오래된 도시가 되다보니 난개발을 한 도시라고 합니다. 개발에 대한 규제가 없어 피해가 더 컸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피해는 짧게 보면 우리에게 큰 불행이고 재앙입니다. 그런데 길게보면 재앙이 곧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이런 피해를 입고 나면 법도 바뀌고 수해피해에 대해 많은 고려를 하게 되어 앞으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금의 재앙이 우리에게 나쁜 점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고 나중에 좋은 점이 되기도 합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총기사고를 겪으면서 총기 소지 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라고 하면 미래에 사고를 방지하는 일이되겠지요. 세월호 사고때도 굉장한 비극이었지만 세월호를 통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이 그동안 성장, 속도만 중요하게 생각했지 안전, 생명에 대해서는 등한시하였습니다. 이제는 물질 중심보다는 생명중심, 성장중심보다는 안전중심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의 여망을 수용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정쟁으로 변하였고 안전의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똑같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쪽으로 가버려 과제를 지혜롭게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국민들의 잠재된 분노와 실망이 촛불시위에서 분출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런 불행을 행운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입니다. 자연재해가 도래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사건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하더라도 이것을 지혜롭게 해결하면 이 일은 행운이 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는 인생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을 하면 나날이 인생이 행운이 됩니다.”

그러면서 휴스턴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재해와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을 예시로 왜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지를 얘기하면서 질문을 받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8명이 질문했습니다.

감정변화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것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어떤지 묻는 분, 컵에 물이 반정도 들어 있으면 반이나 들어있다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묻는 분, 미국에 온 지 30년이 되었는데 이웃집 외국인 부부를 양부모로 삼고 살고 있는데 양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친딸이 연락을 두절하고 살고 있고 양아버지는 치매가 있어 돌봐드리는데 중압감이 느껴져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묻는 분, 어릴 때부터 인간평등을 믿었는데 어느 때부터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라는 분, 행복한 삶을 사는게 목표라고 생각하는데 그 방법으로 종교를 가져보려 하지만 믿어지지 않아 고민이라는 분, 남편이 직장없이 주부가 되고 본인이 직장을 다녀 남편과의 갈등이 있어 힘들어 하는 분, 어두운 터널을 헤매다 이승이 좋다고 믿게 되었다는 분등 총 8명이 스님과 대화하였습니다.

그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실직을 한 후 지난 3, 4년 동안 직장을 구하고는 있지만 못구하다보니 남편이 주부가 된 상황입니다. 요즘에는 집에서 잘 나가지도 않고 밥하고 설거지 하고 주로 집안일을 합니다.”

“그럼 질문자가 직장에 나가고 있는 상황인가요?”

“네, 저는 직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전보다 더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좋은 일이네요.”

“좋은 일이긴 한데, 지금까지 살면서 남편과 집에서 24시간 같이 지낸 적이 없어서 요즘 제 시간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남편은 집 안에서도 거의 저만 따라다니는 편입니다. 제가 윗층에 올라가면 남편도 윗층에 올라오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아랫층으로 내려와요. 밥 먹으려고 부엌에 가면 또 부엌까지 쫓아와요.” (청중 웃음)

“그건 남자와 여자가 역할이 바뀐 것 뿐이지 평소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똑같아요. 남편이 밖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남편은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집에 오면 대부분 쉬려고 해요. 그런데 아내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리니까 남편이 집에 오면 계속 이야기 하고 싶어 하고, 주말에는 드라이브도 하고 외식도 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주중에 일하느라 지친 남편은 주말에 주로 TV 보고 누워서 쉬고 싶어하죠. 서로 입장이 다르니까 남편은 쉬려고 하고, 아내는 ‘왜 주말에 시간도 많은데 누워서 TV만 보느냐?’고 불평을 해요.

지금 질문자는 역할을 달리 하다보니까, 즉 남편이 주로 집에 있으면서 아내를 기다리고, 아내가 저녁에 돌아오면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것이 삶의 재미이다 보니까 생겨나는 일인데, 이런 경우에 ‘남자가 왜 이러나?’하고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건 자연스레 일어나는 사람의 심리 현상이지, 남자와 여자 차이를 두고 나타나는 일이 아니에요.

만약 질문자도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면 그 사람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할 거예요.”

“저도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제가 어려워하는 부분은 남편이 자기 자신을 못 찾고 있는 것 같고, 점차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요즘에는 밖에 친구들도 만나러 나가지 않고, 운동하러 나가지도 않고, 직장도 잘 구해지지 않고 있어요.”

“남편은 연세가 어떻게 돼요?”

“53세예요.”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봐서는 그 나이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증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제가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우울증 증세가 아닌가 싶어요. 질문자가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해야해요.”

“그런데 고집이 세서…”

“육체적인 병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정신적인 병의 치료가 가장 어려운 점은 그것이 병인 줄 모를 때입니다. 우울증의 경우에는 스스로 우울증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완치까지는 안 되더라도 대부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지장은 없도록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스스로 우울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치료가 어려워요.

현재 남편의 상태로는 강제 입원까지는 시킬 수가 없어요. 질문자에게는 조금 힘이 들겠지만 이대로 조금 더 놔둬서 상태가 더 심각해져서 누가 봐도 우울증이라고 할 정도가 되면 병원에 치료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를 졸졸 따라다니는 증상만으로는 병원에서도 환자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상황을 놔두고 봐야하지 않나 싶어요.

조금 기다려봐서 상황이 나아지면 남편의 상태가 나아져서 좋고,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서 좋아요.”

“그런데 남편이 스스로를 잘 믿지 못하고…”

“그게 병이에요. 남편은 지금 환자인데, 환자에게 자꾸 이렇다 저렇다 따져서 뭐하겠어요? ‘아 남편에게 우울증 증상이 있구나’ 라고 이해하고 어린 아이처럼 항상 잘해주면 돼요.”

“남편이 일할 때도 다른 사람들을 관리했고, 성격도 그리 조용한 편이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가 지위를 갖고 일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직장은 구해지지 않으니까… 반면 저는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해와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저는 또 저대로, 두 사람의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사정은 알겠는데 그런 이야기는 길게 해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질문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다’ 라는 생각이 들고 함께 사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이혼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반면 남편이 불쌍하게 생각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처럼 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도와주고 감싸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이에요. 남편이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많이 벌 때는 같이 살다가 정작 어려움에 처하니까 헤어진다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네.”

“그런 마음이 들면 ‘남편이 좋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조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구나’ 하고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아내까지 박대하면 남편이 받는 심리적 충격은 더 큽니다. 지금처럼 어려울 때 오히려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따뜻하게 잘 대해 주어야 해요. 집에도 일찍 들어가서 남편에게 ‘여보, 집안일 하느라 힘들었지?’ 하고 위로하는 말도 해주고 자꾸 감싸주는 말을 해주어야 남편도 자존감을 회복하지, 이런 상황에서 아내까지 남편을 무시하면 남편의 자존감은 완전히 바닥나 버려요. 그러면 병이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여기서 결정을 해야 해요. ‘이 사람하고 더 살 필요가 뭐 있겠나?’하는 생각이 들면 이혼해주는 게 좋아요. 이때 이걸 너무 나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관점을 바로 잡고 뚜렷한 결정을 내리는 게 좋아요.

반면 지금까지 같이 산 세월도 있고 살면서 내가 덕을 본 것도 많고, 또 사람이 어려울 때 친구가 되어주는 게 사랑이잖아요? 좋을 때 잘해주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이 사람이 어려울 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자, 설령 헤어지더라도 이 사람이 어려움을 극복한 다음에 헤어지자’ 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처럼 남편이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어야 해요.

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걸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함께 해주고 격려도 해주어야 해요. 특히 남자들이 직장에서 지위를 가지고 있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그 다음 직장이 잘 안 구해지면 이런 증상이 많이 생깁니다. 그럴 때 아내들은 대부분 남편을 무시해요. 돈 벌어 올 때는 봐주다가 직장을 그만두면 ‘이제 돈도 못 벌어오는 게’ 하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아요. 남편이 은퇴하거나 명예퇴직하고 난 다음에는 가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자의 남편은 알아서 부엌에 들어가주니 아주 괜찮은 편이에요. 한국에서는 남편들이 직장을 그만 둔 다음에도 신문 가져와라, 커피 끓여와라 시키니까 아내들이 참다가 결국 화를 내요. 여기 계신 남편 분들도 혹시 나중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얼른 집안일을 시작하고, 알아서 잘 기어야 해요. (청중 웃음) 지금 질문자 남편처럼 알아서 부엌일, 집안일을 하면 한국에서는 만점이에요. 지금 이대로 헤어지면 오히려 질문자가 호강에 겨워서 요강을 깨는 꼴인지도 몰라요.

남편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따뜻하게 대해주고 감싸주어야 우울증이나 자아상실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더 따뜻하게 대해 줘 보세요. 그럴 때는 남편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환자라고 생각하고, 환자를 보살피는 엄마 같은 마음이어야 해요. 늘 배려해주고, ‘여보, 취직 안 되어도 괜찮아. 내가 있잖아’ 하며 격려해 주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 ‘당신은 왜 일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고, 뭐하는 거야’ 라며 구박하면 남편의 병을 악화시킵니다. 그러니 지금 질문자는 남편의 병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거꾸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 압박하거나 구박하면 안 돼요. 오히려 격려해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게 이 병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꾸 구박하면 남편의 입장에서는 더 불안해집니다. 자칫하다가는 아내도 도망갈 것 같이 느껴지고, 그럴수록 집안일이라도 더 열심히 해서 아내를 붙들고 싶어지니까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더 추해보이게 돼요.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다보면 결국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생각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남편을 사랑한다면 설령 헤어지더라도 지금은 남편이 힘든 상황이니까, 우선 남편을 치유한 다음에 헤어진다고 생각을 바꿔보세요. 그래도 어느 정도 치유해둬야 헤어진 다음에 다른 여자가 데려가도 데려갈 수 있을 거잖아요. (청중 웃음) 지금 이대로 놔두면 나도 싫다며 버린 사람을 누가 데리고 가겠어요? 자동차도 중고로 팔 때 수리를 해서 팔고, 집도 팔 때는 보수공사를 한 다음 팔아야지 쓰던 그대로 팔면 값이 많이 안 나가잖아요. (청중 웃음)

그런 것처럼 남편도 기를 좀 살리고 자존감을 회복시킨 다음에, 그래서 괜찮으면 계속 같이 살아도 되고 아니면 이제 남편도 회복했으니 그때는 헤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즐거운 분위기속에 8명과 대화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2시간 30분이 지났습니다.

스님은 마무리 말씀을 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 내 주위환경을 개선하거나 덜 괴롭기 위해서 환경을 개선하겠다 하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내가 환경을 개선할 수가 없다 그러면 괴롭게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아들이 죽어도 남편이 죽어도 행복할 수 있고, 내가 장애가 있어도, 내가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하고, 군대가서 성추행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지난간 경험입니다. 그런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재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막는 행동을 해야합니다. 내 원한 때문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성추행했다고 해도 나는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성추행 할 것을 막기 위해서 고발해야 합니다. 나의 원한 때문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요. 여러분들은 원한 때문에 하니까 원한이 원한을 낳은 것입니다. 원한을 갖지 말라고 하면 여러분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로 생각하고 '그냥 놔두라는 얘기냐' 라고 묻습니다. 저는 놔두라고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분노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분노하면 내가 괴롭고 보복하기 때문에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없이 세상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설령 개선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강연을 마치고 바깥에서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찍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오늘 질문을 한 여성분께 스님과의 대화가 어땠는지 물어보니 "스님의 답변이 명쾌하여 따라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질문하길 참 잘했다" 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와서 질문을 했는데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해보겠다" 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 스님 강연을 처음 들었다는 남자 분께도 소감을 물어보니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가 명쾌하고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스님께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약 180여명이 참가하였고, 그 중30명은 자원봉사자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스님은 오늘 강연의 실무총괄을 한 남희숙보살님께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시애틀정토회 김효경 총무에게도 감사인사와 스님책을 선물로 드리고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홍보책임자로서 열심히 홍보를 한 김유경님에게도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시애틀정토회원들에게 본인은 수행을 통하여 행복하고 자유롭게 되어야 하고, 본인이 행복해진 만큼 이웃에게 이 행복을 전할 수 있도록 수행, 보시, 봉사를 하는 정토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애기해주었습니다. 또한 시애틀정토법당이 북미서북부 지역에서 부처님의 정법을 전하는 좋은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주상휴 지구장님과 나누기를 하도록 하고 스님은 숙소인 시애틀법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은 캐나다 밴쿠버로 이동하여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영어통역으로 즉문즉설강연을 합니다. 스님 즉문즉설 영어통역봉사를 하는 제이슨림과 영어통역강연의 실무총괄을 하는 국제국 외국어 전법팀장인 김지현님이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에서 나눔의장 수련을 마친 묘덕법사님과 함께 워싱턴 디씨에서 출발하여 밤10시경에 시애틀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스님은 10시 30분경에 숙소에 도착하여 워싱턴 디씨에서 오는 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1시쯤에 워싱턴 디씨에서 오는 팀이 법당에 도착하자 스님은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숙소를 배정하고 내일 일정을 공유하였습니다. 내일은 4시에 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6시 30분에 밴쿠버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북미서부 첫강연인 시애틀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밴쿠버에서 영어통역강연과 한국어 교민 강연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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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7-10-14 00:22:43

큰바다

\"우리는 분노없이 세상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설령 개선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17-10-11 12:20:45

정지나

"관점을 바로 잡고 뚜렷한 결정을 내리는 게 좋아요."
늘을 허둥지둥 무엇을 결정못해 안절부절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조금씩 관점을 잡고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10-11 09: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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