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28 통일의병대회, 청년활동가 미팅
“천년만의 기회”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통일의병대회에 참가하고, 저녁에는 청년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일의병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활동하는 사람들입니다. 2015년 3월 법륜스님의 통일의병학교를 시작으로 통일의병이 양성되었습니다. 오늘은 전국에서 2천여 명 의 통일의병이 세종대 대양홀에 모였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 모두 애 많이 쓰셨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욕 많이 봤습니다.”

스님이 지난 3년간의 활동을 격려하자, 통일의병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지금 이 시기에 통일의병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 강조했습니다.

천년만의 기회

“만약 우리가 과거의 아픔을 청산하지 못하고 또다시 새로운 변화 속에 우리의 운명이 주변국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그저 종속적인 나라로 그들의 손에 놀아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다시 겪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이것만은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이 화해하여 하나 되는 통일을 이뤄낸다면, 새로운 100년에는 동아시아 주변국들과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룸으로 해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여 ‘아시아 시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시아 시대를 여는 데에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낸다면, 그것은 짧게는 100년의 한(恨)을 푸는 것이 되고, 길게는 고구려 발해 멸망 이후 우리 민족사의 천년의 한을 푸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동북아의 중심 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년 만에 찾아온 기회입니다. 우리들은 한편으로 혼란과 분단, 대결 속에서 자란 불행한 세대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를 극복해낸다면 천년 만에 올까 말까한 기회를 되살리는 민족사에 있어서 선각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살려내는 것은 민족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길이고, 역사 속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이고, 인류사에 있어서 선각자가 될 수 있는 길이며,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부족하지만 우리가 작은 이해를 버리고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부처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정토행자들은 지금 ‘모자이크 붓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천년 만에 찾아온 기회이며 선각자의 길이라는 말씀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를 창립할 당시의 문제의식과 정토회의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_“서론이 긴 것은 통일의병이 그냥 3년 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심해서, 정토회가 창립될 때부터 준비됐기 때문”_이라며 통일의병의 역할이 무엇인지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관건이 무엇일까요? 제가 지난 20년 간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본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그리고 지금까지도 미국에 가서 설득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지만, 우리가 미국과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북한과 미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물론 평화와 통일은 군사적 문제, 외교적 문제, 경제적 문제, 정치적 문제 등 다양한 성격을 띱니다. 이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지난 20년간 저희가 민간 활동을 하면서 느낀 바입니다. 민간 활동은 필요하지만, 이러한 민간 활동은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그 영향력이 작았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인만큼 10년 전만 해도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일을 많이 했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전했지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겪으면서는 정부가 평화와 통일에 대한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나라 전체가 전쟁 위기로 치닫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평화와 통일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도 하고, 또 민간 차원에서 각 나라를 다니면서 정부를 설득하는 일도 해야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통일 추진 정부를 구성하는 일입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주도하는 정부를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외면해왔습니다. 가능하면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설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점을 지녀왔습니다. 그러나 국민들 개개인이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바꿔나가면 정부가 바뀌게 되고, 정부가 바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는 주인한테 가서 부탁하지 않고, 머슴한테 가서 부탁을 한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날 ‘아, 이건 주인한테 가서 부탁을 해야지, 종업원에게 부탁할 일이 아니다’하고 알게 된 거예요. (모두 박수)

그러니 이제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호소해야합니다.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면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하고, 국민들에 의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스님이 지난 20년 간 노력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여서 그런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의병들이 지역 사회에서 해야 할 구체적인 역할을 힘차게 설명하였습니다. 상상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지는 미래였습니다.

행복 모델

“앞으로 통일의병 여러분들은 읍면동에 행복센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행복센터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 수행을 현장에서 지도하는 곳이 되고, 지역사회에서는 주민자치의 요람이 될 것입니다. 잘 정착하면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스위스나 미국 등의 외국에 가서 배워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지 배워가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의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제 대중음악과 드라마는 우리가 외국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외국 사람들이 우리 것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것처럼 전국 각 지역에서 여러분들이 환경 운동과 평화 운동을 하고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일은 점차 붕괴되어가는 서방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이에요. 그러면 결국 서양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찾아와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 행복도는 세계 118위입니다. 이것이 쑥쑥 올라가서 산업화도 30년 만에 이루어내고 민주화도 30년 만에 이루어내더니 행복도 까지 30년 만에 세계 상위로 올라간다면, 서양 세계에서 ‘도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하고 찾아올 겁니다. 그때 그 자리에 여러분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4차 산업시대의 최고 가치는 행복입니다. 봉건시대에는 권력이 최고의 가치였고, 자본주의 시대에는 부(富)가 최고의 가치였지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는 행복이 최고의 가치가 될 것입됩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는 산업화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아버지 세대는 민주화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편으로는 통일의 기적을 이루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행복도를 높이는 기적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이제는 행복한 한국인, 평화로운 한반도,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정토회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국가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인 운동이라 한다면,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수행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발전함과 동시에 국민도 행복해야지, 국가만 발전하고 국민은 행복하지 않거나, 국민의 행복만 추구하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지 않으면, 결국 그 행복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과도 일치합니다. 하화중생이 곧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상구보리라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길을 나아가야 합니다.”

오전에는 큰 비전을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의병들의 식사는 도시락이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쳐, 세종대 맞은편 어린이 대공원에서 의병들은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스님도 도시락을 드신 뒤, 오후 공연 리허설 팀들을 격려하고, 대공원을 둘러보며 의병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의병의 군자금은 어떻게 합니까?

오후에는 앞으로의 통일의병 활동에 대한 제안이나 궁금했던 점을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총 8명의 질문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한 의병은 활동을 하려면 비용이 필요한데 군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 된다며 질문했습니다.

“의병 활동에도 군자금이 들어갑니다. (모두 웃음) 의병 활동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비용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데,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궁금합니다. 가령, 행복학교를 운영하려고 해도 컴퓨터를 구입해야 하고, 전단지와 플래카드를 만들 때도 비용이 들어가는데, 모금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개인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컴퓨터의 경우에는 비용이 크게 들어가거든요.”

“역사를 보면 전쟁이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급했을 때 정부의 지원을 받고 의병운동을 시작했습니까, 그냥 시작했습니까?” (대중 웃음)

“그냥 시작했죠.”

“의병의 특징이 뭘까요? 모두 다 자기 음식 가지고 오고, 옷도 자기 옷을 입고 오고, 총도 자기가 구해서 와야 했어요. 잘 사는 사람들은 괜찮은 총과 칼을 구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나무를 꺾어서 죽창을 쥐고 참가했습니다. 농사할 때 쓰는 쇠스랑, 곡괭이를 들고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런 저런 사람들 모두가 모여서 함께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의병 활동이 정부가 볼 때 관군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인식이 생긴 다음에는 관군과 의병의 합동 작전을 폈습니다. 관군만 지원하고, 의병을 무시했는데, 정작 합동 작전을 해보니 의병들은 의기가 충천하고 관군들은 도망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의병과 관군 모두가 의기투합해서 전력을 다해 싸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로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의병들의 중요성과 전투력을 인정해서 의병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일도 있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의병들의 양식과 무기를 지원하다보니 의병들이 준관군화 되는 현상도 생겼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눈치 빠른 의병들은 각자의 본분으로 돌아갔어요. 선비는 선비로 돌아가고, 포수는 포수로 돌아가고, 농사꾼은 농사꾼으로 돌아갔는데,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관군에서 한 자리 나지 않을까 하고 기웃거린 사람들인데, 대부분은 모함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끝나자 관군이 보기에 의병들은 자신들의 경쟁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희생당하는 아픈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의병이 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해요.

첫째,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둘째,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셋째, 자립적이어야 합니다.
넷째, 실패하면 죽어야 합니다. (대중 웃음)
다섯째, 성공하면 집에 가야 합니다. (대중 박수)

이러한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중성이 없는 용어라고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활동을 표현하기에는 ‘의병’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것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의병’이라고 하면 그 말에서부터 벌써 어떤 사람들인지 드러나잖아요.”

질문한 통일의병은 본인부터 군자금을 내놓고 시작하라는 임무를 되돌려 받았네요. 실패하면 죽어야 하고, 성공하면 집에 가야하는 의병. 웃으며 박수를 쳤지만 역사 속에서 헌신했던 의병들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9월 평양 선언은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뜻하는 것이라며 평화를 반대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통일의병은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해야 하나요?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군인들이 가장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군인들을 위해 통일의병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행복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청소년 동아리 활동 형태로 활성화 시켜보면 어떨까요?
-북한의 안 좋은 모습을 부각하면서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단체들도 많은데,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은 이 운동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모델을 개발한 거예요. 이제는 이것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 일을 하는 핵심적인 사람들이 통일의병입니다. 나라를 잃었을 때는 독립의병이 일어났고, 독재 시대에는 민주의병이 일어났고, 그것을 계승해서 분단을 극복하고 미래의 가치인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는 행복의병이자 곧 통일의병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역사의 전통을 계승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겁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큰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랑스러운 통일의병입니다.”

사홍서원으로 모든 행사를 마치고, 다함께 <터>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스님이 무대에 먼저 올랐습니다. 법사님들도 따라 올라 손을 맞잡았습니다. 무대 위와 아래에서 서로 마주보며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역사의 숨소리, 그 날은 오리라
그 날이 오면은 모두 기뻐하리라.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나가자.”

30년 전, 단 한 사람이 꾼 꿈이었습니다. 스님이 천년을 내다보며 꾼 꿈은 오늘 모인 2천여 명의 가슴 속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저도 기분이 좋아서 노래 한 곡 할게요” 하면서 기쁜 얼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와 이래 좋노. 와 이래 좋노. 와 이래 좋노...”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주잡은 두 손은 따뜻했습니다. 누구는 미소 지으며, 누구는 눈물 흘리며 함께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스러져가는 나라를 위해 이름도, 얼굴도 없이 활동했던 과거 의병들처럼, 오래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의병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스님은 행사를 준비한 활동가들에게 수고했다며 악수를 나누고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지난 13일 청춘콘서트&청춘박람회를 준비한 청년들이 해단식을 위해 모였습니다. 행사를 위해 홍보, 디자인, 무대 등 각 영역에서 애써준 50여 명의 청년들이었습니다.

청년들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이번 행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도 도착하여 청년들의 소개를 듣고, 팀별로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한 서로를 위해 박수도 쳐주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스님은 청년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스님은 먼저 수고한 청년들을 격려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첫째, ‘주관한 단체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둘째, ‘이익을 떠나 일반 청년들을 위해 필요한가.’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가 필요해요. 오늘 모인 김에 그런 평가를 본인 느낀 대로, 힘이 들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 해보면 좋겠어요.”

스님은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지금은 청년이 가장 어려운 세대입니다. 지금 청년들은 앞선 세대보다 더 좋은 시대에 태어나고,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할 세상이 더 좋다는 보장이 없기에 좌절하는 청년이 많습니다. 독립도 쉽지 않고요. 이런 가운데 청년 활동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

청년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저는 할 의향도, 준비도 되어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게 청년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가’가 고민이에요. 청년으로서 느낀 점, 아이디어를 내보고 스님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안해주세요.”

청춘콘서트와 청춘박람회를 참여한 소감, 트렌드를 반영한 청춘콘서트 기획의 필요성, 취업을 하고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20대가 사회적 활동을 하기 어려운 점,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의 필요성 등 청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느낀 점, 제안, 아이디어를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하며 청년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때로는 스님의 의견도 이야기했습니다.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자, 멀리 가야 하는 사람도 있으니 오늘은 이정도로 하고, 연말이 되기 전에 한 번 더 봅시다. 그 땐 제가 짜장면을 살게요.”

청년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짜장면도 맛있지만, 그 말씀이 따뜻해서였겠지요.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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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병

사정상 함께하진 못했지만
뜨겁고 간절해집니다
스승님 덕분입니다

2018-11-17 23:17:13

원형

이런 통일의병이 있었다니 , 처음 알았네요.
저도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2018-11-04 14:08:48

임무진

행복의병이 되어 제 동을 책임집니다. 말씀하신 5가지도 잘 새기겠습니다

2018-11-01 19: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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