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2.24.(저녁) 행자대학원 13기 졸업식
“깨달음이란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에요.”

안녕하세요? 전국 대의원회 회의와 서원 행자 대회를 모두 마친 후 저녁 6시 30분부터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행자대학원 13기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3년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오늘 졸업하게 된 두 행자를 위해 졸업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저녁 6시가 되는 대웅전은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대중들로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수련원의 상주 활동가들과 얼마 전 입재한 백일출가 36기 행자들도 함께 참석해 풍성함을 더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으로 여법하게 졸업식을 시작한 후 사회자가 행자대학원 13기 경과보고를 해주었습니다.

행자대학원 13기 박은혜, 한혜련 행자는 2016년 3월에 입재하여 3년 과정을 마치고 오늘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1학년에는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 운영’을 목표로 문경에서 농사, 김장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순환적인 삶에 대해 공부하며 공동체를 체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학년 1학기는 NGO 활동을 통한 사회 실천가로서의 지도력 함양을 목표로 서울에서 콘텐츠사업국, 평화재단 연구원에 근무하며 통일, 환경, 복지 등 여러 분야의 사회활동을 경험했습니다.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는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통한 국제 구호 활동을 목표로 필리핀 JTS에 파견되어 학교 건축, 연수, 마을개발, 재정, 행정 등의 사업을 맡으며 JTS의 이념과 사상을 이해하는 실습을 하였습니다. 3학년 2학기는 문경에서 원력 보살의 삶과 경영 학습을 통한 미래 문명을 이끌 지도자 교양을 목표로 백일출가 스텝 소임을 맡아 초심을 돌아보고, 3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과 보고를 들으니 한 사람의 수행자가 탄생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친 두 행자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어서 현재 행자대학원 상임 법사를 맡고 있는 묘수 법사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출가를 할 때, 그동안의 삶의 터전을 한 번 끊고 들어왔습니다. 3년을 마친 오늘, 아직도 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졸업을 계기로 그 나머지를 다 끊고 정말 보디 사트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희도 두 행자님과 더불어서 초심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정토수련원 원장인 유수 스님이 축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13기 행자대학원 행자님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었지요. 저희들도 기회가 닿는다면 행자님처럼 생활해보고 싶습니다. (모두 웃음)

오늘에 이르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한 움큼의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이 여전히 ‘나’라고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를 버리려고 출가했는데 아직도 얼마나 움켜쥐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행자대학원의 근본은 해탈하는 것입니다. 3년 동안 얼마나 해탈했는지 가늠해보시면 좋겠고요. 오늘도 소중한 깨달음의 기회가 있습니다. 지도법사님의 법문 잘 들으시고 해탈 열반에 꼭 이르길 바랍니다.”

선배 법사님들의 따뜻한 축하와 격려 말씀에 두 행자는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은 후배 기수인 14기 행자대학원과 예비 행자 대학원 행자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스크린에는 지난 3년의 추억이 사진 슬라이드로 흘러가는 가운데, 축하의 마음을 담아 신나는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에 “졸업을 축하합니다”라고 외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선배와 후배의 돈독한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두 행자의 졸업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먼저 박은혜 행자가 졸업 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 저는 제가 생각했던 긍정적이고 용감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라 매사에 내가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해서 불편을 참지 못해 주변 사람들을 더 불편하게 하고, 나 말고 남은 다 망하길 바라는 심술쟁이에, 문제제기를 두려워하고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쉽게 받는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진짜 나를 만나고 나니 끊임없었던 분별을 잠시 멈출 수 있게 되었고, 나와 남에게 관대해지니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행자대학원에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어디서 무얼 하든 행복하게 살 자신이 생겼습니다. 저도 선배들처럼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행자대학원은 정말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요. 백일출가까지 3년 8개월 덩치 큰 떼쟁이 불평불만받아주시고 함께 살아준 도반과 공동체 여러분들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부족함을 알아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을 원으로 삼는 행복한 수행자로 살겠습니다.”

이어서 한혜련 행자의 소감도 들어보았습니다.

“... 평생 ‘궂은일’,‘손해 보는 일’은 안 하려고 이리저리 피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다만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누린 풍족함 뒤에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대중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행자대학원을 졸업하는 지금, 저는 이전의 불안하고, 답답하고 괴로웠던 인생과는 다른 길에 섰음을 압니다. 이 은혜 잊지 않고, 하루하루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곁에서 3년을 지켜본 법사님, 도반들은 그들의 성장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두 행자는 졸업 소감을 발표한 뒤 수행의 길을 일러주신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드렸습니다.

이어서 청법가로 법륜 스님에게 졸업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 단 두 명의 행자를 위한 법문이었습니다. 스님은 함께 참석한 백일출가생들도 헤아리며 수행의 원리를 알려주고 무엇보다 직접 탐구하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중도포기 안 하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큰 일 하신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준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립니다.

‘행자대학원’이라고 할 때 ‘행자’는 수행자의 줄임말입니다. 수행자란 자신의 행을 닦는 사람을 뜻합니다. 행이란 습관, 까르마라는 뜻이에요. 우리의 감정은 습관, 까르마로부터 일어납니다. 수행자란 자신의 까르마를 잘 닦아 자신이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을 말해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버럭 나고, 어떤 물건을 보면 덜컥 욕심이 납니다. 이럴 때 그 대상이 나쁘기 때문에 내가 나쁘다고 인식하고, 그 대상이 좋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인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고 싫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좋고 나쁘다고 인식하는 게 동일하다면 인식하는 대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관찰해보면 똑같은 사람을 두고도 사람마다 좋고 나쁘고 가 다르고, 똑같은 일을 두고도 사람마다 좋고 나쁘고가 달라요.

비유하자면, 무색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가지 무지개 빛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프리즘과 같은 게 우리들의 업식, 까르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 다른 프리즘을 가지고 있는 거죠. 무색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해서 내 눈에 비칠 때 빨간색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럼 진짜 색깔은 뭘까요? 이 탐구가 수행에서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탐구하는 힘이 부족해요. 게으릅니다.

‘똑같은 이야기인데 왜 아까는 기분이 좋다가 지금은 기분이 나쁘지? 나는 좋은데 왜 저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고 하지? 저 사람은 좋다는데 왜 나는 기분 나쁘지?’

이렇게 탐구를 해야 제가 설명한 원리를 알 수 있어요. 제가 설명한 원리를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진리를 관념화하는 겁니다. 그럼 원리를 말하라고 하면 잘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딱 부딪쳤을 때, ‘저 사람을 파랗게 보는구나.’하고 안 받아들여져요. 그래서 원리를 탐구하고 직접 체험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

또 스님은 졸업하는 두 행자를 격려하며 사로잡힘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 설명해주었습니다.

“보통은 100일을 수행하면 자기를 알고, 3년을 수행하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3년이 아니라 30년이 지나도 자기를 완전히 안다는 건 어렵습니다. ‘네 꼬라지를 네가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는 낮은 차원에서는 100일 만에 알 수도 있지만, 높은 차원에서는 30년 해도 알기 어려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같은 세상에 여기 이 두 행자와 같은 사람들이 잘 없어요. 다 자기 이익 추구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놓고도 헤어지고, 직장도 마음에 안 들면 사표 던지고, 부모가 그렇게 아끼고 키워줬는데도 마음에 안 든다고 집을 나오는 게 요즘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런 세상에서 백일 출가한다고 여기 와서 만 배 하는 건 대단한 일이에요.(모두 웃음과 박수) 비록 만 배하다가 도망가더라도 도전해봤으니까 대단한 사람이에요.

만 배 할 때 그냥 염주 집어던지고 집에 가고 싶죠? 그리고 이게 무슨 수행이냐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게 무슨 수행이냐? 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옛날 군대처럼 몽둥이로 때리고 물구나무 세우는 걸 안 할 뿐이지, 군대보다 더한 고문이잖아요. ‘부처님이 이렇게 가르쳤나? 부처님 경전에 보면 고행하지 말라고 했는데!’(모두 웃음) 절하면서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나요. 그런 분별이 일어날 때 콱 그만두지 않고 ‘그래도 절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하자. 천 배만 해놓고 가지. 이왕 한 거 조금만 더 해놓고 가지’ 하다가 3일이 지나서 만 배가 되는 거예요. 또 아까 소감에서 얘기했듯이 처음엔 까마득했는데 하루 살고 이틀 살고 사흘 살다 보면 100일이 지나고, 또 3년이 지나고, 또 살다 보면 눈 감을 때가 다 되어 가요.(모두 웃음) 인생이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이 젊은이들을 보면 ‘대단하다!’ 이렇게 평가를 해야 해요. 하나하나 하는 꼬라지를 보면 ‘아이고, 저게 무슨 백일출가자고 저게 무슨 행자대학원 졸업생이냐?’ 싶고, 행자대학원 졸업하면 ‘저게 무슨 실무자냐? 저게 무슨 법사냐?’라고 할 수도 있죠.(모두 웃음) 하나하나 하는 꼬라지를 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도전해보는 젊은이다’라고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귀한 사람들이에요. 지금 이 두 분은 백일출가도 아니고 3년이나 했잖아요. 굉장한 일이에요.

그런데 인생이라는 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아요. 세상도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고, 나의 변화도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돼요. 원하는 만큼 돼야 한다고 생각하면 좌절과 절망이 생깁니다. 그게 욕심이에요.

옛사람들은 승려가 되기 위해서 3년간 행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 3년을 밥하고, 빨래하고, 나무하고, 똥 치우고, 머슴처럼 온갖 궂은일은 다 합니다. 그러면 ‘내가 중 돼서 경전 공부하고 부처님 법 공부하려고 여기 왔지, 여기에 무슨 머슴처럼 일하려고 왔나?’하고 엄청나게 분별심이 일어나서 대부분 3년 안에 가버립니다. 3년을 잘 설득해서 붙들어놓는다면 그건 의미가 없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3년을 살아남았다면 이제 수행을 할 기본이 됐다는 뜻이에요. 백일 출가하기 위해서는 만 배를 해야 기본이 됐다고 하듯이 3년을 해야 수행자가 될 기본이 된다는 거예요. 안 그러면 그 사이에 다 포기를 해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한 고승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 주십사 청했는데 안 받아줬어요.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받아달라니까 스님이 마지못해서 ‘그러면 저 밭에 가서 일해라.’라고 했어요.

이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면 받아줄까 싶어서 열흘 열심히 해도 안 받아주고, 한 달을 열심히 해도 안 받아주고, 그렇게 하다 보니 1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가타부타 말이 없어요. 그러면 사람 마음이 ‘에이, 그냥 시간만 낭비했다. 그냥 가버릴까!’하고 생각하다가도 이미 보낸 1년이 아까워서 또 1년을 해요. 1년이 지나서 진짜 가버린다고 결심했다가 또 2년이 아까워서 ‘이왕 했는데 3년은 해보자’ 하게 됩니다. 옛날에 3년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3년을 해도 아무런 말이 없어요. 그래서 스님에게 물어보면 ‘네가 뭐든지 한다고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받아만 주면 뭐든지 한다고 해놓고 왜 또 딴소리냐?’라고 해요. 자기가 좀 열심히 하면 경전을 강독해주든 참선을 가르쳐주든 할 줄 알았는데 공부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는 거예요. 그러다 딱 3년이 되니까 도저히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딱 한 번 더 얘기해보고 안 하면 정말 가버리겠다!’ 이렇게 결심하고 스님에게 가서 딱 얘기했는데 또 아무 반응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성질이 나가지고 확 가버렸어요. 가면서 그랬어요. ‘이놈의 영감쟁이! 이제는 따라와서 아무리 잡아도 절대 안 돌아간다!’ 이러고 가면서도 슬쩍 돌아봤어요. 혹시나 스님이 부르나 싶어서요.(모두 웃음) 안 불러요. 그때만 해도 ‘불러도 안 돌아간다, 진짜 갈 거야!’ 했는데, 한참 가다가 또 혹시나 싶어서 돌아봤어요. 안 불러요.(모두 웃음)

그렇게 5리를 가도 안 부르니, 이제 포기를 했는데 마음이 허전해요. 그런데 좀 있으려니까 ‘아무개야!’ 하고 스님이 뒤에서 막 쫓아오는 거예요. ‘아, 이제 부르는구나’하고 너무 반가워하면서 기다렸는데 스님이 ‘야, 너 냇가에 상추 한 잎 떠내려가는 거 못 봤냐?’ 이러는 거예요. ‘뭐요?’라고 하니까 ‘내가 상추를 씻다가 상추 한 잎이 떠내려 갔다’라고 해요.(모두 웃음) 상추 한 잎 찾으러 왔다는 거예요. 얼마나 실망이 크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그때 자기 마음을 본 거예요. 기대하고 실망하는 자기를 보고 그때 탁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깨달음이라는 건 지식에서 오는 게 아니에요. 자기 마음을 보는 거예요. 자기가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결심하고선 가르쳐주기를 기대하고 또 실망하고, 또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올커니!’ 했다가, 또 상추라는 소릴 듣고 또 실망하잖아요.(모두 웃음) 이렇게 경계 따라 움직이는 자기 마음을 자기가 어느 순간에 탁 알아차렸어요. 이건 체험한 거예요.

그러면 이제 마음이 탁 놓이죠. 모든 분별이 사르르 내려가고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그런 기대를 가지고 헐떡거리던 마음이 놓인다는 거예요.

공부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자기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해요. 여기에 대한 유명한 설화 가운데 하나가 금강산 보덕각시전입니다. 금강산에 가면 보덕굴(普德屈)이라는 곳이 있어요. 구리로 외기둥을 세워서 굴에 전각을 지은 곳입니다. 이것도 옛날 얘기예요. 어떤 스님이 있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진짜 착실한 스님이었어요. 10년쯤 열심히 정진을 해서 다들 진짜 괜찮은 수행자라고 칭찬했어요. 이렇게 남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본인은 아직 뭔가 자기 마음에 탁 안심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공부해서는 안 되겠다 그래 가지고 송라암(松羅庵)에 가서 혼자서 천일기도를 했어요.

‘내가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꼭 친견해야겠다.’

수행을 열심히 해서 진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겠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이런 신앙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관세음보살 기도를 천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네 번을 기도했어요. 이걸 사분 정근(四分精勤)이라고 해요. 그렇게 천일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기도하다가 꿈인지 생신지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네가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하니 내가 길을 일러주겠다.’

기도하다가 소위 영험이 생긴 거죠. 어디를 찾아가면 누가 길을 안내해 줄 거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금강산으로 들어갔어요. 금강산 어딘가에 들어가서 어떤 사람을 찾으니까 어떤 노인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러 왔다고 했더니 이 노인이 막 쌍욕을 해요. ‘너 같은 신심 가지고 무슨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하느냐!’라고 욕부터 해요. 그래도 이 사람한테 안 물어보면 어디 물어볼 데가 없잖아요. 그것도 3년 기도해서 겨우 길을 찾은 건데요.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제가 극복하고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겠습니다’ 이렇게 싹싹 빌어서 노인의 가르침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이 노인이 금강산 속으로 더 들어가면 어디에 또 어떤 노인이 있을 텐데, 그 노인한테 물어보면 안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 성질이 아주 고약해서 당해내기가 어려운데 네가 참아내겠느냐?’
‘참아내겠습니다!’

얘기 들은 대로 찾아갔더니 과연 움막이 하나 있길래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여기에 도인이 사는구나 싶어서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니까?’ 하고 불렀는데, ‘누구세요?’하고 쏙 나오는 사람이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이 스님의 가슴이 막 두근두근거렸어요. 그런데 지금 관세음보살 친견하러 와놓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되겠어요?(모두 웃음)

어떤 노인을 찾아왔다고 하니까 그 여인이 ‘네, 저희 아버님이세요. 산에 나무하러 가셨는데 좀 기다리세요’라고 해요. 목소리도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것 같고 얼굴도 참 예뻐요. 산을 넘어오느라 땀도 나고 목이 마른데 그 처녀가 ‘아이고, 목마르시죠? 물 드릴까요?’라고 해서 ‘예’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바가지에 물을 떠줬는데, 그걸 받아서 마시려고 하는 순간 작대기가 날아와서 바가지를 박살내고 대갈통을 딱 때렸어요.

‘이놈, 어디 여자를 희롱하느냐!’

이 스님이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해봐도 ‘이놈이 처녀를 희롱했다’며 실컷 두드려 맞고, 그래도 아니라고 계속 변명하니까 그때서야 겨우 노인이 ‘그러면 왜 왔냐’라고 물었어요. 스님이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러 왔다고 하니까 노인이 ‘네깟 놈이 무슨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하느냐?’ 이러면서 또 때려요.

스님은 여기 있게만 해주면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싹싹 빌었어요. 진짜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어서 할 수 있다고 한 거예요. ‘어르신이 죽으라고 하면 죽기라도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결의를 다졌어요. 나무하라면 나무하고 뭘 하라 해도 하겠다고요. 그랬더니 이 노인이 하는 말이 이래요.

‘그래? 그러면 우리 딸하고 결혼해라.’(모두 웃음)

아까 가슴도 뛰었으니까 결혼하라고 하면 좋아해야 하잖아요. 금방 자기가 뭐든지 하겠다면서 죽으라고 해도 죽겠다고 했는데, 결혼하는 건 죽는 것보다 쉽잖아요. 그런데 이 스님이 그것만은 안 된다고 싹싹 빌었어요. ‘어르신, 그것만은 안 됩니다. 저는 지금 출가한 지 10년이 넘었고 계율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것만은 안 됩니다.’ 그랬더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방금 네 입으로 말하더니, 이 거짓말쟁이!’ 이러고 막 작대기로 두드려 패요.

그렇게 맞다가 보니까 그 처녀가 눈을 깜빡깜빡해요. 그냥 어르신 하자는 대로 하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영감이 찬물 한 그릇을 떠놓고 둘이 마주 보고 절하게 하더니 옆방이 신혼방이라고 가서 자래요.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하러 그렇게 3년을 기도하고 왔다가 졸지에 결혼해버리게 된 거예요.(모두 웃음) 얼마나 인생이 허무하겠어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니 막 꿈같아요. 인생을 다 망친 것 같고, 잠이 안 와요.

그렇게 앉아 있으니까 부인이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떡하느냐고, 이리 들어와서 주무시라고 권해요. 그래서 마지못해 옆에 가서 누웠어요. 그렇게 부인 옆에 누워 있었는데 밤이 깊어가다 보니 부인 손을 꾹 잡았다가, 몸을 점점 더듬게 되는 거예요. 부인이 손을 빼니까 또 잡고, 손을 빼니까 잡고... 이렇게 계속 이불 밑에서 손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어요.

그러다가 부인의 사타구니에 손이 딱 닿았는데, 스님이 소스라쳐서 벌떡 일어났어요. 여자가 고녀(鼓女)예요. 생식 기능이 온전한 여자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 스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계율을 파하고 결혼까지 했는데 상대가 또 여자도 아니잖아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몸의 열은 일순간에 식어버리고 한숨이 푹 나와요. 이건 결혼생활도 안 되니까요. 그래서 한숨을 막 쉬고 있으려니 부인이 이것도 엎질러진 걸 어떡하느냐고 해요. 이렇게 얘기가 진행되는데, 이런 고난의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이 사람의 얘기를 한 번 보세요. 여기 있게만 해주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 해놓고 막상 결혼하라니까 못 하겠다 그랬죠? 그러다가 또 결혼하겠다고 해놓고, 하고서는 자기가 계율을 파했다고 그렇게 한숨을 쉬고, 그래 놓고는 또 여자를 찾았어요. 그러다가 이번에는 여자가 아니라 벌떡 일어나서 한숨을 쉬잖아요. 여자가 아니면 오히려 손뼉 치고 춤을 춰야죠. ‘야, 내가 결혼하고도 계율을 안 어겨도 되는구나!’ 영감 말도 듣고 계율도 안 어기고 두 가지 다 했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생각이 그런 식으로 안 간다는 거예요.

이게 사로잡힘이라는 거예요. 계속 자기 생각에 끌려 따라갑니다. 이게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거예요. 수행과정이란 자기가 자기를 보는 기회를 주는 거예요. 어느 순간에 자기를 탁 보아야 하는데, 이건 계속 자기 마음을 못 보고 계속 따라가잖아요. 아까 상추 씻는 일화도 그렇고 다 일어나는 자기 마음의 상태, 모순을 딱 알아차리라는 건데 마음이 움직일 때는 그걸 몰라요. 이게 사로잡힘입니다.

제가 아까 두 사람 얘기 들어보니 3년을 계속 그런 식으로 온 것 같아요.(모두 웃음) 백일 출가해서 좋아했다가, 또 못 견디겠다고 했다가, 행자대학원 입학해놓고는 또 괜히 했다고 하다가... 이렇게 계속 오락가락하는 거예요.

이런 옛날 얘기는 다 무슨 얘기일까요? 이런 것을 통해서 자기를 보도록 하는 거예요. 어느 순간에 자기 속에 일어나는 마음의 모순을 봐야 해요. 사로잡힘에서 딱 벗어나야 이 모순이 탁 보이는 거예요. 이런 경험이 지금도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하루에 한 번 일어나는 게 아니고, 1년에 한 번 일어나는 게 아니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일어납니다.

일상에서 늘 마음을 관찰하면 어느 순간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인도 성지 순례할 때도 ‘마음을 살펴라. 그러면 법을 보리라’라고 하는 거예요. 보덕 각시에 나오는 스님처럼 늘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이건 이래서 안 되고, ‘내가 평생 계를 지켰는데 여기서 어떻게 계를 파하고 결혼을 하느냐’라고 하고, ‘결혼까지 했는데 어떻게 여자가 고녀야?’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요. 우리가 지금 그렇게 따라가고 있어요.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야 여러분들이 이제 입지(立志)가 되는 거예요.

이런 차원에서 볼 때는 ‘절에서 사느냐, 나가서 사느냐’, ‘이거 하느냐, 저거 하느냐’ 하는 건 부차적이에요. ‘이혼하느냐, 결혼하느냐’ 이런 건 다 부차적인 것이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런 말까지도 다 자기 좋을 대로 들어요. 여기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가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있어야 한다’라고 들리고, 나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래, 스님 말이 맞아. 있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나가도 괜찮아’ 이렇게 들려요.(모두 웃음) 전부 다 제 식대로 들리는 거예요. ‘결혼하느냐 안 하느냐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하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그래, 안 하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구나. 해야지’ 이러고, 헤어지고 싶은 사람은 ‘그래, 결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헤어져야지’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는 다 자기에게 속는 겁니다. 자기가 어떤 일을 합리화하는 것도 그래요. 자기가 하고 싶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래서 이렇게 한다고 하고, 부모를 위해서 이렇게 한다고 해요. 어떤 때는 부모를 위해서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어떤 때는 똑같은 이유를 내세워서 다르게 행동해요. 이렇게 늘 천 가지, 만 가지로 자기를 합리화하는 게 마군(魔軍)이에요. 여기에 우리가 늘 속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졸업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걸 어느 순간에 ‘탁!’ 하고 체험을 해야 여러분들이 경계에 덜 놀아나는 거예요. 그래도 3년이나 수행했으니까 제가 이 법문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이 법문을 딱 챙겨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 더 이상은 부모 핑계 대고 남 핑계대면서 이게 어쩌니, 저게 어쩌니 하지 마세요. 먹든, 가든, 오든, 자든, 더 이상 핑계 대고 탓하지 말고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책임지라는 거예요. 그런 주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지난 3년 동안 수고 많이 했습니다.”(모두 박수)

스님의 멋진 선물에 참석한 대중들도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졸업하는 두 행자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대중들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법문을 마친 후 스님이 직접 두 행자에게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졸업을 받는 행자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두 행자는 그동안 많은 대중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지난 3년 동안 가르침을 잘 설해준 법륜 스님과 함께, 다음은 유수 스님과 묘수 법사님과 함께, 다음은 법사단 전체와 함께, 다음은 행자대학원 후배들과 함께, 마지막으로는 졸업식에 참석한 모든 대중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 명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졸업을 축하하느라 화기애애한 대웅전을 나와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11시에는 평화재단에서 3.1 운동 100주년기념 심포지엄 점검회의가 약속되어있었습니다. 예정보다 늦게까지 법문을 했지만 밤 11시를 넘기지 않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회의를 마친 뒤에도 심포지엄 준비로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았습니다.

전체댓글 29

0/200

엄태숙

감사합니다 🙏
웃으면서 배우는 시간이였습니다 자동으로 스님 음성과 도반님들 웃음소리가 재생되는데 또 그게 이상하기보다 그러려니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거듭거듭 꾸준히 귀한 법문 들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

2023-06-23 03:29:30

정명데오

"수행자란 자신의 까르마를 잘 닦아 자신이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을 말해요." 감사합니다.~~^^

2020-03-03 20:35:29

이지은

“어느 순간에 자기 속에 일어나는 마음의 모순을 봐야 해요. 사로잡힘에서 딱 벗어나야 이 모순이 탁 보이는 거예요.”
하루에 열두번도 더 모순이 일어납니다.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 힘을 기르겠습니다.

2019-03-01 23:58:4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